2022년 상반기에 읽은 책 리뷰
지금 읽는 책은 나우: 시간의 물리학인데 이건 6월 말까지 읽을 수 없을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니 이 책은 다음에 다루기로 하고 올 1월부터 지금까지 읽은 책들을 정리해 둡니다.
- 방금 떠나온 세계: 이 분의 이야기를 읽을 때면 항상 나는 바깥에서 스노우볼 안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합니다. 평소에 살아가면서 별로 생각해볼 겨를도 없는 시선, 이해해야 한다는 목적 조차 가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야기들을 현실에 겹쳐보려고 시도하다가도 ‘아니야. 이건 스노우볼 안에 남겨두는 것이 좋겠어.’라고 생각을 멈추게도 만들었습니다.
- 우주 다큐: 오래 전에 사놓은 것도 잊어버렸다가 우연히 찾아 읽었습니다. 매스컴에서 잘 다루지 않는 우주 탐사의 일면을 재미있게 이야기합니다. 시각 외에도 등장인물들이 느낄 촉각이나 후각을 느낄 수 있게도 해 주지만 약간 장황한 서술은 같은 자리를 몇 페이지째 멤도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 부분과 전체: 이 책의 시점으로부터 미래 사람인 저는 양자역학에 대해 대중 상식 수준의 지식이 있고 이를 별 의심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이를 처음 발견한 시대에 그 이전 시대의 철학으로부터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에 이르는 과정을 따라가는 철학적 문제의식을 독일에 남은 독일인 물리학자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것은 색달랐습니다.
- 데이터 분석가의 숫자유감: 확률통계의 기초 이야기를 합니다. 각 장 뒤에 해설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만화로 설명하는 책의 특성 상 어쩔 수 없이 정보량은 많이 낮은 편입니다. 항상 게임을 만들며 접하는 확률통계와는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접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만약 철학맹이라는 말이 있다면 그건 저를 가리키는 말일 겁니다.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보기 위해 철학적인 도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지만 도무지 어디서 부터 시작해야 할 지 알 수 없어 아무것도 안 하며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다가 혹시 이 책이 다룬 여러 철학자들의 이야기들로부터 철학적인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익히기 위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을 얻는 일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님을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 코지마 히데오의 창작하는 유전자: 메탈기어 솔리드 시리즈에 열광하던 2000년대 초반부터 최근의 데스스트랜딩에 이르기까지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온전한 게임 세계를 구축한 게임 개발자 코지마 히데오가 관심 있게 바라본 이야기들을 훔쳐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내가 이 사람의 게임을 하며 느꼈던 강렬한 고구마들의 원천을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게임의 일부가 고구마였다면 이 책은 책 전체가 고구마 그 자체입니다.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겨울서점을 통해 알게 되어 읽은 책. 한 인물의 생애를 따라가며 여러 사건과 업적을 따라갔습니다. 인물의 여러 가지 욕망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불굴의 의지를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지금까지 열심히 따라가던 나는 내가 출발한 책의 첫 부분과 지금 도달한 뒷 부분이 서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음을 문득 느끼게 됩니다.
- 신의 망치: 갑자기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 읽고 싶어졌습니다. 어느 날 곧 다가올 종말을 깨닫게 된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한참 동안 생각해봤습니다.
- 지구 끝의 온실: 단편을 잘 쓰는 작가와 장편을 잘 쓰는 작가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경계를 넘는 시도에 조금 걱정했습니다. 여러 모로 아쉬웠습니다. 이 과거의 이야기와 이 현재의 이야기는 시작할 때부터 결국 만나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어디서 어떻게의 문제일 뿐이었어요. 다른 단편에서처럼 아주 잔잔하게, 한편으로는 마치 안 만난 것 같은 느낌으로 만났고 단편에서라면 별로 아쉽지 않았을텐데 장편에서는 좀 그랬습니다. 아주 마음에 들지는 않았어요.
- 세계의 악당으로부터 나를 구하는 법: 출근하다 보면 거대 기업의 범죄를 고발하는 커다란 현수막을 마주하게 됩니다. 또 그 근처에서는 다른 기업의 부당해고를 규탄하는 집회가 열립니다. 왜 이분들의 메시지는 짧지만 장황하고 출근하려고 빨리 걸어 지나가는 내가 이해하기에 어려울지 생각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었고 이전처럼 그 현수막 앞을 빠르게 걸어 지나갈 수 없었습니다.
- 다섯 번째 감각: 여태까지 이 분의 이야기를 하나도 읽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초기 작품’을 묶은 책이 나왔다길래 읽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아무 정보 없이 시작했는데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어느 순간 ‘어?’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냥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와 그 안에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어?’ 하고 이야기 속 세계가 내가 사는 세계와는 상당히 다름을 느꼈습니다. 이 경험이 신기하고 또 흥미로웠습니다.
- 착각의 경제학: 별 생각 없이 지나치는 경제뉴스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해줬습니다. 책에서 해주는 이야기를 따라 뉴스에 나오는 경제소식을 둘러싼 큰 그림으로 옮겨갔다가 다시 그 큰 그림을 이루는 작은 사건들을 둘러보고 그 사건과 나 사이의 연결관계를 생각해볼 기회였습니다. 뉴스에서 이야기하는 작은 조각들을 보면서는 ‘어 뭐 당연히 그렇지’라고 생각하지만 이 조각들이 내게 영향을 끼치는 과정은 내 직관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점을 조금이나마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 존리의 금융문맹 탈출: 나쁜 책에는 링크를 걸지 않겠습니다. 당연히 금융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으므로 제목을 보고 사봤습니다. 이 책은 금융에 대해 어떤 것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검색해 보라고 합니다. 미치셨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원금보장상품에 묶여있는 당신의 돈이 주식에 투자되지 않았음에 안타까워할 뿐입니다. 온갖 용어들을 늘어놓으며 이들을 모른다면 당신은 금융문맹이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그것들을 설명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모든 페이지에서 당신의 돈을 주식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역시나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빈약할 뿐입니다. 이런 책은 팔려서는 안됩니다.
- 저주토끼: 이렇게 유명한 책은 좀 시간이 지난 다음에 읽을 생각이었는데 베스트셀러 목록에 계속해서 떠 있었고 저는 마침 읽을 책이 떨어져 아직 유명한 동안에 읽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뻔한, 다른 한편으로는 익숙해서 마음이 편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읽는 내내 내 마음을 편안한 채로 놔두지 않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하며 곁에서 노는 아이를 바라보다가 문득 전화를 끊었을 때 이 익숙한 전개가 주는 편안함과 아이의 의미가 주는 결코 편안하지 않은 감정을 함께 겪었습니다.
- 프로젝트 헤일메리: 전작 아르테미스는 개인적으로 별로였습니다. 왜 별로라고 느꼈는지를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이야기의 무대가 지구와 너무 가까웠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또 이야기가 전형적인 면도 있었습니다. 바로 위 저주토끼에서는 이야기의 전형적인 면이 장점이었다면 아르테미스에서는 그렇지 않았고 덕분에 신작을 읽을지 말지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이야기의 무대가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멉니다. 역시 이야기의 재미는 지구와 무대 사이의 거리에 정비례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 술에 취한 세계사: 어쩌다 이 책을 골랐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대중서인 만큼 어떤 학술적인 엄밀함이나 설명의 진지함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이름을 들어보면 ‘아 맞다’ 싶으면서도 평소에는 발음조차 할 일 없는 술들의 이름과 이를 마시기 시작한 사람들, 마시는 풍습, 과거에 이 술의 모습, 술을 둘러싼 역사적인 배경과 사건들을 따라가면서 편의점에서 파는 에일을 사발에 부어 한여름 바깥에 한나절 놔뒀다가 뜨끈하게 마시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식중독을 걱정해 실행하지는 않았습니다.
-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1, 2: 이 유쾌한 물리학자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멘하튼 프로젝트에서 학생들에게 목적의식을 부여한 이후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지만 한편으로는 매사에 유쾌하고 권위에 절대로 복종하지 않는 강함 역시 기억에 남았습니다. 탑리스 바에 간 이야기를 하자마자 바로 이어서 ‘하! 내가 당신이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지!’ 하는 장면에서는 ‘풉!’ 하고 ‘교수님 저도 그렇게 생각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마음속으로 사과해야만 했습니다.
-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이전에 하이젠베르크, 파인만의 책을 읽었으니 그 다음은 당연히 오펜하이머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 역시 오래 전에 사놓고 그 무시무시한 두께 때문에 초중반의 이제 우리는 개새끼들이다 정도까지 읽은 다음 덮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 책의 핵심은 그 다음부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메카시즘의 관용적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 존 메카시가 직접 활동하는 이야기는 몰랐습니다. 1945년 이후 오펜하이머의 책임감과 시대의 광기 사이에서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끼며 책을 읽어야 했습니다.
- 배드 블러드: 맙소사.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미 이 이야기는 몇몇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책을 시작할 때부터 이미 이 책의 결말을 알고 있었던 셈이었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그 긴 세월 동안 그 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그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 기업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는 결말을 알고 있다고 해도 대강 읽고 지나갈 수 없었습니다.
- 멈춰서서 가만히: 박물관, 유물. 존스 박사가 항상 가져다 놓아야 한다고 말하던 바로 그 박물관은 존스 박사가 나오는 영화 바깥에서는 딱히 관심이 가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박물관은 이름 모를 유물과 그 옆에 깨알같이 적힌 텍스트 이외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소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뒷사람이 유물 앞을 서성이는 나를 흘끔거리며 언제 내가 그 장소를 떠날지 궁금해함을 느껴 불편해지는 장소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가끔씩 이건 어쨌든 과거의 사람들이 만들어 실제로 사용하던 물건이었을텐데 유물 뒤에 적힌 깨알같은 텍스트는 - 도대체 왜 그리 작게 써있는지 모르겠음 - 그런 유물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잘 전달해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아쉬움을 아쉽지 않게 해 줍니다.
짧게 쓰고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반 년 어치를 한번에 정리하다 보니 예상보다 길어졌습니다. 자, 그럼 다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