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G 규칙의 역사와 발더스게이트 3의 표면 시스템 탐구

이전에 턴 기반 게임디자인을 살펴보다가 전통적인 D&D 규칙에 같은 턴에 동작하는 표면 규칙을 채용한 발더스게이트 3의 표면 시스템을 자세히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기왕 살펴보는김에 발더스게이트 3의 시스템에 도달하는 중간 과정을 완전히 훑어봅시다.

RPG 규칙의 역사와 발더스게이트 3의 표면 시스템 탐구

디지털 게임과 테이블탑 게임을 막론하고 모든 게임은 어떤 형태로든 규칙 위에서 동작합니다. 규칙은 단순히 버튼을 누르면 공격하는 수준의 조작법을 넘어,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그리고 그 행동에 대해 시스템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정의하는 구조적 틀입니다. ‘Rules of Play’에서 게임 설계를 인터랙티브 시스템의 미학을 설계하는 것으로 정의하며, 게임을 이해하기 위한 세 가지 층위(규칙, 플레이, 문화)를 제시했습니다[^Rules of Play]. 여기서 규칙은 게임을 구성하는 형식적인 시스템이며 플레이는 그 시스템과 상호작용, 문화는 그 상호작용이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의미를 얻는 과정을 말합니다. 게임디자이너가 제어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층위는 바로 규칙의 층위입니다. 규칙이 어떻게 설계되어 있는지에 따라 플레이 경험의 가능 범위가 달라지고 어떤 플레이가 보상받고 어떤 플레이가 봉쇄되는지 결정됩니다. 규칙을 중심에 두는 설계 접근은 때로 건조하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하지만 복잡한 시스템 기반 게임을 설계할 때는 필수적인 관점입니다. 규칙 중심의 접근은 제한적이지만 이 때문에 게임디자이너가 전체 시스템을 이해하고 통제하는데 유용합니다. 규칙은 모든 가능한 상태와 전이, 그리고 플레이어 행동에 대한 시스템의 반응을 명시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는 특히 Dungeons & Dragons(D&D)나 발더스게이트 같은 규칙 중심 RPG를 분석할 때 중요합니다[^Dungeons & Dragons (1974)][^Dungeons & Dragons]. 이들 게임에서는 규칙이 곧 세계의 물리 법칙이자 사회의 규범이며, 캐릭터 빌드, 전투, 상호작용의 결과를 결정하는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테이블탑 RPG이 역사에서도 규칙 체계 설계는 항상 핵심 이슈였습니다. D&D는 전통적인 워게임에서 파생되었지만, 전통 워게임이 군단 단위 전투와 승패 조건에 초점을 두었던 반면 D&D는 개별 캐릭터의 역할 수행과 서사적 경험에 초점을 옮기면서 새로운 규칙 집합을 만들어냈습니다. 히트 포인트, 경험치, 클래스, 능력치, 주사위 판정 체계 등의 기본 요소들은 모두 플레이어가 한 명의 모험가로 세상과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규칙 장치입니다. 워게임 규칙이 군사적 시뮬레이션에서 출발했다면 D&D의 규칙은 서사와 선택, 성장의 경험을 재현하기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규칙은 단순히 결과를 계산하는 기계가 아니라 경험의 범위를 제어하고 게임의 구조를 결정하는 디자인 도구로 작동합니다.

규칙의 중요성은 디지털 RPG에서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CRPG는 테이블탑 RPG의 규칙을 디지털로 옮기는 과정에서 많은 변형을 거쳤습니다. 컴퓨터는 인간보다 복잡한 계산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지만 DM(Dungeon Master)처럼 즉흥적으로 규칙을 바꾸거나, 상황에 맞춰 판정 로직을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CRPG 게임디자이너는 DM의 재량을 어느 정도까지 시스템화 할 것인지, 어떤 부분을 고정 규칙으로 만들고 어떤 부분을 플레이어의 자유와 해석에 맡길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이때 규칙 설계는 단순히 룰북을 구현하는 일이 아니라, 시스템과 플레이어 사이의 상호작용을 설계하는 핵심 작업입니다. "발더스게이트 3"은 이러한 규칙 중심 설계의 대표적 사례입니다[^Baldur's Gate 3]. "발더스게이트 3"는 D&D 5판의 규칙을 충분히 구현하면서도 표면 효과, 밀쳐내기(Shove), 반응, 고도, 환경 상호작용 등 독자적인 규칙 레이어를 추가해 시스템적 상호작용을 극대화했습니다[^All Elemental Surface Effects In Baldur's Gate 3]. 라리안 스튜디오의 스벤 빈케는 인터뷰에서 모든 캐릭터, 오브젝트, 크리처가 모든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 연결되는 시스템적 RPG를 만들고자 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는 곧 규칙을 독립된 모듈이 아니라 서로 얽혀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네트워크로 설계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규칙 시스템은 게임의 기본 구조이자 창발적 플레이를 이끌어내는 엔진 역할을 합니다. 이 탐구가 규칙 시스템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게임디자이너가 실무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다루는 도구가 바로 규칙이기 때문입니다. 서사, 아트, 사운드는 중요하지만 이들을 어떻게 플레이 가능한 경험으로 변환할지는 결국 규칙 설계에 달려있습니다. 특히 D&D와 발더스게이트 3처럼 규칙이 풍부하고 상호작용이 복잡한 게임은 규칙 설계가 곧 게임 디자인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따라서 규칙 시스템의 역사, 구조, 변형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게임디자이너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오늘의 탐구 대상은 테이블탑 RPG의 사실상 표준이라고 할 수 있는 D&D와 그 규칙을 기반으로 한 대표적인 CRPG 발더스게이트 시리즈, 특히 최신작 발더스게이트 3입니다. 이 조합을 선택한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D&D는 TRPG 장르를 사실상 창조한 최초의 상업적 규칙 체계이며, 이후 50년 동안 여러 판을 거치며 다양한 규칙 설계 시도를 축적해 온 실험의 역사입니다. D&D 1판은 워게임 규칙에서 출발해 개별 캐릭터와 서사를 다루는 규칙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여러 불안정성을 보였습니다. 이후 AD&D 3판, 4판, 5판으로 이어진 각각의 판은 규칙 설계를 통해 해결하려 했던 문제와 그에 따른 설계 철학의 변화를 보여줍니다[^Editions of Dungeons & Dragons][^History of AD&D 1st Edition Hardbacks]. 이런 연속적 변화를 살펴보면 어떤 규칙 설계가 어떤 플레이 경험을 만들어내는지 비교적 명확히 추적할 수 있습니다. 둘째, 발더스게이트 시리즈는 D&D 규칙이 디지털 게임으로 옮겨지면서 어떤 변형을 겪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새로운 디자인 패턴이 생겨나는지 관찰하기에 적절한 사례입니다. "발더스게이트 1, 2"는 AD&D 2판을 기반으로 실시간 및 일시정지(RTwP: Real-Time with Pause), 즉 실시간 일시정지 시스템을 통해 테이블 규칙을 실시간 파티 전투로 번역한 대표적 게임입니다[^Real-Time with Pause]. 반면 "발더스게이트 3"은 D&D 5판을 기반으로, 턴 기반 전투, 표면 효과, 반응 시스템, 고도 및 환경 상호작용 등 새로운 규칙 레이어를 추가하여 디지털 전용 설계를 강화한 게임입니다. 두 세대의 발더스게이트를 비교하면 같은 IP와 세계관, 유사한 플레이 기대를 가진 게임들이 서로 다른 규칙 체계와 전투 시스템을 통해 얼마나 다른 경험을 만들어내는지, 그리고어떤 설계 의도와 제약이 그 차이를 만들어냈는지 분석할 수 있습니다

셋째, D&D와 발더스게이트 3은 모두 규칙 중심의 설계를 강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게임디자이너가 규칙을 통해 경험을 설계하는 방법을 학습하기에 적합합니다. ‘meaningful play’란 플레이어가 시스템 안에서 행동하고 시스템이 그에 대해 일관된 방식으로 피드백을 주는 과정으로 정의됩니다[^Meaningful Play Conference Overview]. D&D의 규칙은 이 정의를 매우 직접적으로 구현합니다. 주사위는 플레이어의 행동을 판정하고 규칙은 그 결과를 해석하며 DM은 그것을 서사와 장면으로 구체화합니다. 발더스게이트 3 같은 구조를 디지털 환경에서 구현하면서 주사위 굴림과 수정치를 인터페이스를 통해 직접 보여주고 표면 효과와 반응 같은 추가 규칙을 통해 플레이어의 행동과 피드백 사이의 관계를 더욱 촘촘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두 시스템을 함께 분석하면 규칙 설계가 어떻게 의미 있는 플레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는지 관찰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발더스게이트 3은 현대 게임 산업에서 상업적, 비평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으며 시스템 중심 RPG디자인의 대표 사례로 언급됩니다. 라리안의 스벤 빈케는 여러 인터뷰에서 플레이어의 에이전시를 극대화하는 시스템 설계를 일관된 목표로 강조해 왔고 발더스게이트 3은 그 결과로 평가받습니다. 따라서 발더스게이트 3을 탐구 대상으로 삼는 것은 단순히 D&D 구현 사례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현대 시스템 기반 게임 설계의 가장 중요한 참고 사례 중 하나라는 점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D&D와 발더스게이트 시리즈는 모두 룰북과 실제 플레이의 간극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으며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한 다양한 설계 시도가 이어져 왔습니다. 테이블탑에서는 DM이 이 간극을 온몸으로 흡수하지만 디지털 게임에서는 시스템과 컨텐츠로 메워야 합니다. 오늘의 탐구는 바로 이 지점, 즉 규칙 설계와 구현 방식이 플레이 경험에 어떤 경험을 주는지 살펴보는 사례로 D&D와 발더스게이트를 선택하겠습니다. 실은 이전 턴 기반 게임 디자인을 작성하기 위해 스터디 하면서 발더스게이트를 한번 제대로 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스터디의 목적은 D&D와 발더스게이트 시리즈 중에서 특히 발더스게이트 3의 역사와 규칙, 시스템을 재구성해보고 분석해 게임디자이너가 실제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 설계 원칙과 방법론을 도출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초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규칙 자체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다른 하나는 기존 규칙 체계를 다른 매체 가령 테이블탑에서 디지털로 옮길 때 무엇을 유지하고 무엇을 변형해야 하는지입니다. 첫 번째로 규칙 자체의 설계 관점에서 보면 D&D의 각 판과 발더스게이트 3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가 새로운 문제를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연속적인 실험으로 볼 수 있습니다. D&D 3판은 규칙을 통합하고 수학적으로 일관되게 만들려는 시도를 통해 d20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그 결과 파워 인플레이션과 빌드 최적화에 따른 진입장벽 상승 문제가 생겼습니다[^d20 System]. 5판은 정확도 상한 설정과 단순화된 수정치 구조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고 발더스게이트 3은 그 위에 표면 효과, 고도, 반응 같은 새로운 레이어를 쌓으면서 다시 복잡성을 추가했습니다. 이런 흐름을 따라가면, 규칙을 설계할 때 항상 복잡성과 이해 가능성, 표현력과 밸런스 사이에서 트레이드오프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게임디자이너는 자신의 프로젝트에서 어떤 지점에 균형점을 둘 것인지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규칙의 매체 전환 관점에서 보면 발더스게이트 3은 D&D 5판의 규칙을 거의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많은 부분을 비디오게임에 맞게 조정했습니다. 예를 들어, D&D 5판에서 밀쳐내기는 액션을 소모하는 특수 공격이지만, "발더스게이트 3"에서는 보너스 액션 또는 별도의 리소스를 사용하여 낙사 전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You can BREAK the 5e Action Economy with BONUS ACTIONS!! | Let's Learn D&D 5e]. 또 D&D 5판에서 환경과 지형의 상호작용은 주로 DM의 재량에 맡겨지지만 발더스게이트 3에서는 표면 효과 시스템을 통해 이를 명시적인 규칙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다른 매체로 옮길 때 규칙을 그대로 구현할 것인가, 매체 특성에 맞게 변형할 것인가는 시스템 설계의 핵심적인 고민 지점입니다. 이 글에서는 각 사례에서 어떤 선택이 일어났고 결과적으로 플레이 경험의 어떤 차이를 가져왔는지 비교해보고 저 자신을 포함한 게임디자이너가 비슷한 결정을 내릴 때 참고하도록 해보겠습니다.

게임 설계를 규칙 관점에서 이해하려면 먼저 규칙 시스템이 어떤 일을 하는지부터 정리해야 합니다. ‘Rules of Play’에서는 게임을 하나의 형식적 시스템으로 보고 이 시스템의 핵심 구성 요소가 규칙이라고 정의합니다. 규칙은 플레이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의 집합과 그 행동에 대한 시스템의 응답 방식을 정합니다. 이때 규칙 시스템이 너무 단순하면 플레이가 금방 소진되고 너무 복잡하면 플레이어가 학습하기 어렵고 접근성을 잃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중요한 설계 딜레마가 기계적 깊이를 얼마나 가져갈 것인지, 그에 따른 진입 장벽을 어떻게 관리할지입니다.. 기계적 깊이란 규칙이 만들어내는 상태 공간이 얼마나 풍부하며, 플레이어가 그 안에서 얼마나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탐색할 수 있는지를 의미합니다. 게임을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펼쳐지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과 플레이어가 탐색하는 가능한 행동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는 정의가 있는데 이 복잡성이 바로 깊이를 만듭니다. 가령 D&D의 전투 규칙은 능력치, 수정치, 주사위, 주문, 상태이상, 지형 등 많은 요소가 얽혀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매 턴 단순히 공격할지 말지를 넘어 어떤 주문을 어떤 순서로 사용할지, 어떤 위치에서 싸울지, 어떤 상태이상을 걸거나 피할지 등 복잡한 판단을 하게 됩니다. 발더스게이트 3의 표면 효과와 반응 시스템은 이런 깊이를 디지털 환경에서 극대화한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표면과 고도, 밀쳐내기, 반응이 서로 연결되며 플레이어의 행동 공간이 매우 넓어지고 융합적인 전술이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깊이가 늘어날수록 규칙을 이해하고 사용하는데 필요한 인지 부담이 함께 커집니다. 의미 있는 플레이는 플레이어의 행동과, 그에 대한 시스템의 결과가 명확하게 연결되어야 합니다. 플레이어가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면 시스템의 응답을 예측하거나 학습하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행동이 게임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이는 곧 진입 장벽 문제로 이어집니다. 여러 CRPG와 테이블탑 RPG에서 초보자가 규칙의 양과 복잡함 때문에 좌절하는 이유는 규칙이 제공하는 기계적 깊이가 크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깊이를 탐색하기 위한 방법이 충분히 안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임디자이너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규칙의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 가능한 규칙들의 질을 설계하는 것입니다. 좋은 게임은 많은 규칙을 가진 게임이 아니라, 서로 잘 상호작용하는 소수의 규칙으로 풍부한 상태 공간을 만드는 게임입니다. 발더스게이트 3은 이 관점에서 좋은 사례입니다. 표면 유형 자체는 몇 가지에 불과하지만 물, 불, 냉기, 라이트닝, 산, 독의 상호작용 규칙을 촘촘하게 설계해 환경을 무기로 사용하는 다양한 전술이 가능해졌습니다. 반대로 규칙을 추가할 때마다 인터페이스나 튜토리얼이 이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면 주사위와 표면, 반응을 모두 처음 접하는 플레이어에게는 지나치게 높은 진입 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계적 깊이와 진입 장벽 사이의 적정선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는 D&D와 발더스게이트 3이라는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핵심 설계 과제입니다[^Rules of Play][^Dungeons & Dragons gameplay][^D&D 5e rule changes][^Baldur's Gate 3 review].

플레이어 에이전시는 게임 설계 논의에 자주 언급되는 개념입니다. 플레이어가 게임 안에서 의미 있는 선택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정도를 말합니다. 의미 있는 플레이를 정의하면서 플레이어의 행동이 게임 시스템 안에서 인과적인 결과를 낳고 그 결과가 플레이어에게 인지되고 해석될 수 있을 때 비로소 플레이가 의미를 가집니다. 에이전시는 바로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가 자신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만들고 있다는 감각을 가지는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이 얼마나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느냐보다 플레이어가 그 선택지를 이해하고 결과를 예측하고 자신의 의도와 연결지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발더스게이트 3을 개발한 스밴 빈케는 여러 인터뷰에서 플레이어 에이전시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고 반복해서 밝힙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플레이어가 세계와 재미있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가, 흥미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게임이 아니라 그저 관찰하는 영화나 책일 뿐이라고 말하며 시스템이 플레이어 에이전시를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발더스게이트 3의 설계 방향은 이 발언과 잘 맞아떨어집니다. 지형과 표면, 전투와 대화, 동료와 서사가 모두 플레이어가 다양한 방식으로 개입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가령 같은 보스를 상대할 때도 정면 전투, 잠입, 설득, 독살, 낙사, 환경적 폭발 등 여러 전략이 가능하고 게임은 이 대부분을 규칙적으로 처리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에이전시를 높이기 위한 설계에서 중요한 한 가지 원칙은 일관된 규칙입니다. 플레이어가 어떤 행동을 할 때 시스템이 그에 대해 일관된 방식으로 반응해야 플레이어는 자신의 행동이 의미 있다고 느낍니다. 행동과 결과 사이의 관계가 인과적으로 통일된 방식으로 자동할 때 플레이어가 의미를 가집니다. 가령 물이 항상 라이트닝와 상호작용해 감전 표면을 만들고 얼음이 항상 이동을 어렵게 만들며 불이 항상 기름을 폭발시키면 플레이어는 한 번 학습한 규칙을 다른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고 이때 자신의 계획이 규칙에 기반한다는 만족감을 얻습니다. 발더스게이트 3이 표면 시스템을 대규모로 도입할 때 커뮤니티의 불만 중 일부는 바로 이 일관성이 부족한 구간입니다. 특히 감전된 물의 상호작용처럼 직관에 어긋나는 예외에서 나왔습니다. 이런 사례는 에이전시가 단순한 선택지의 수가 아니라 선택과 결과를 이어주는 규칙의 신뢰성에 달려있음을 보여줍니다. 핵심은 힌트를 통한 에이전시 유도입니다. 빈케는 같은 인터뷰에서 우리는 적 AI에게 특정 행동을 하게 해서 플레이에게 이런 행동도 가능하다는 힌트를 주려 한다고 말합니다. 가령 적이 먼저 알코올 통에 화염 주문을 날려 폭발시키는 모습을 보여주면 플레이어는 자신도 저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 순간 플레이어에게는 새로운 행동 가능성이 열리고 에이전시가 확장됩니다. 이런 설계 방식은 D&D에서도 DM이 플레이어에게 환경 활용 예시를 보여줄때 흔히 쓰이는 기법이며 발더스게이트 3에서 이를 AI 행동과 튜토리얼, 인터페이스를 통해 체계적으로 재현하고 있습니다[^Designing Player Agency: A Beginner’s Guide][^What is Player Agency in Games?][^Baldur’s Gate 3’s Swen Vincke: “I Believe in Agency for Both Developers and Players”][^10 DM Lessons from Baldur’s Gate 3][^Player Agency in TTRPGs: Why It Matters and How Different Systems Handle It][^So why do people hate surface affects?].

창발적 게임플레이는 게임디자이너가 명시적으로 설계하지 않은 플레이 방식이나 상황이 규칙과 시스템의 상호작용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최근 게임 디자인 입문 자료들은 창발적 게임플레이를 게임 메커닉과 플레이어 선택의 상호작용에서 개발자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행동, 전략, 경험이 나타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가령 물리엔진과 간단한 오브젝트 상호작용 규칙을 가진 샌드박스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여러 오브젝트를 이어붙여 비행 장치를 만든다면 이는 개발자가 특정한 설계를 의도적으로 마련한 기능이라기보다 시스템이 허용한 행동 공간 안에서 플레이어가 창의적으로 조합한 결과입니다. 이런 형태의 창발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이 게임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가능성이 많다는 느낌을 주고 게임의 수명과 몰입도를 크게 늘립니다. 창발적 게임플레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규칙과 시스템이 객체 간 상호작용을 충분히 허용해야 합니다. 단일 버튼에 미리 스크립팅된 연출만 붙어 있는 게임에서 창발성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둘째, 규칙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각 규칙이 자기 안에서만 쓰이고 다른 규칙과 만나지 않는다면 가능한 전략의 수는 급격히 줄어듭니다. 셋째, 시스템이 약간은 열려 있어야 합니다. 개발자가 모든 경우를 통제하려고 하다 보면 예기치 않은 조합과 행동이 봉쇄됩니다. 게임 디자인 관련 글들은 이를 시스템 중심 디자인이라고 부르며 개별 스킬, 아이템, 연출을 따로 설계하는 대신 상호작용 가능한 규칙 집합을 만드는 쪽으로 중심을 옮기는 것이 창발성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설명합니다. 발더스게이트 3의 표면, 고도, 밀쳐내기 시스템은 이러한 창발적인 플레이를 겨냥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표면 시스템은 물, 불, 얼음, 라이트닝, 산, 독이 서로 변환 및 조합되는 규칙을 가지고 있고 고도 시스템은 위치에 따라 명중률과 피해량이 바뀌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밀쳐내기와 반응, 이니셔티브와 턴 순서가 합쳐지며 플레이어는 다양한 조합을 스스로 발견하게 됩니다. 가령 물 표면을 깔고 라이트닝 주문으로 감전 지대를 만들고 그 지대 위에 적을 멀어넣어 스턴 상태를 유도하는 플레이는 룰북에 이렇게 사용하라고 적힌 것이 아니라 규칙 간 상호작용을 허용하는 가능성을 플레이어가 이용한 것입니다. 이런 형태의 창발적 전술은 발더스게이트 3 커뮤니티에서 환경 퍼즐로 자주 공유되며 새로운 조합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창발적 게임플레이에 대한 교육 자료들은 이런 시스템 중심 설계를 스크립트 기반 설계와 일부러 대비시킵니다. 스크립트 기반 설계에서는 디자이너가 모든 상황과 그에 대한 반응을 하나하나 정의해야 합니다. 반면 시스템 중심 설계에서는 몇 가지 규칙만으로 수많은 상황을 커버합니다. 후자는 예측이 어렵고 밸런스 조정이 까다롭지만 한 번 설계해 두면 새로운 컨텐츠를 추가하지 않고도 플레이어 스스로가 새로운 컨텐츠를 생선해준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발더스게이트 3의 표면, 반응, 고도 시스템은 이런 원리를 D&D 5판 위에 덧씌운 사례이자 창발성을 주도하는 규칙 설계의 좋은 참고 사례입니다[^D&D 5e rule changes].

게임 밸런스는 표면적으로는 모든 선택지가 공평하게 강한 상태를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훨씬 복잡한 개념입니다. 경쟁 게임 이론에서는 밸런스를 플레이어가 사용할 수 있는 전략 중 어느 하나도 항상 이기거나 다른 모든 전략에 비해 압도적으로 좋은 상태가 아니며 여러 전략이 공존할 수 있는 상태로 설명합니다. 게임이 완벽하게 대칭일 필요는 없지만 특정 전략이나 캐릭터가 항상 최선의 선택이 되면 다른 전략은 사실상 의미를 잃습니다. 게임 이론에서 말하는 지배 전략은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좋은 선택인 전략을 의미하며 실제 게임에서는 이런 지배 전략이 메타를 압도하면 게임의 다양성이 줄어들고 플레이가 반복적이며 예측 가능해집니다. 격투 게임의 경쟁 플레이 문화를 분석한 ‘Playing to Win’과 후속 글에서 플레이어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게임의 전략 공간을 탐색하며 효율적인 전략을 찾아가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플레이어들은 처음에는 다양한 캐릭터와 전술을 시도하지만 점점 승률이 높은 전술과 캐릭터에 집중합니다. 이를 통해 메타 게임이 형성됩니다. 메타 게임은 특정 시점에서 커뮤니티가 사실상 유효하다고 판단한 선택지들의 집합 즉 실제 플레이에서 사용되는 전략들의 묶음입니다. 메타는 시간이 지나면서 바뀔 수 있고 새로운 전략이 발견되거나 기존 전략에 대한 카운터가 개발되면 균형이 이동합니다. 하지만 어떤 전략이 너무 강해 메타를 고착시키면 게임디자이너가 패치나 규칙 업데이트를 통해 이를 약화시키거나 다른 전략을 강화해 균형을 되찾아야 합니다. 게임 밸런스에서 중요한 것은 숫자 튜닝 뿐 아니라 규칙의 우선순위를 설계하는 것입니다. 가령 발더스게이트 3의 표면 효과 시스템은 각 타일에 한 종류의 표면만 유효하다는 규칙과 물과 불, 라이트닝, 냉기의 조합은 먼저 변환 규칙을 적용한 다음 우선순위를 결정한다는 규칙으로 운영됩니다. 이때 어떤 표면이 다른 표면을 덮어쓰는지, 어떤 조합이 우선 적용되는지는 사실상 전략 간 우선순위로 결정됩니다. 물과 라이트닝가 감전된 물로 변환되고 감전된 물 위에 피가 튀면 히트 포인트가 사라지는 규칙은 감전 전략이 피에 의해 카운터될 수 있다는 형태의 메타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플레이어는 이를 학습하면서 감전 전략을 사용할 때 피를 어떻게 관리할지, 다시 물과 라이트닝를 써서 재설치할지 같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런 규칙의 우선순위 설계는 밸런스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Strategic dominance][^D&D 5e rule changes][^So why do people hate surface affects?].

밸런스를 수학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에서는 우월 전략과 열등 전략의 제거, 내쉬 균형의 존재 여부 같은 개념을 통해 게임 구조를 평가합니다. 하지만 실제 게임 디자인에서는 이런 이론적인 분석보다 플레이어가 어떤 전략을 합리적이라고 느끼는지, 그 전략이 다른 선택지를 얼마나 압도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발더스게이트 3의 예를 보면 초기에 밀쳐내기와 환경 낙사, 표면 조합을 활용하는 전략이 매우 강력해 모든 전투를 낙사로 해결하는 플레이가 커뮤니티에 밈이 되었습니다. 이는 환경 상호작용 장려라는 시스템 설계 의도와 밸런스 문제가 맞물린 사례입니다. 라리안은 패치를 통해 일부 상호작용의 수치를 조정했지만 완전한 약화보다는 플레이어 창의성을 유지하는 방향을 택했습니다. 게임디자이너에게 밸런스의 메타 게임 형성 원리는 두 가지 시사점을 줍니다. 첫째, 규칙을 설계할 때 단일 규칙의 효과만 보는 대신 플레이어가 실제로 사용할 전략 묶음을 상상하고 그 전략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고려해야 합니다. 어떤 전술이 항상 최선이 되지 않도록 카운터와 리스크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게임이 출시된 다음에도 메타는 계속해서 진화하므로 밸런스는 완료되는 작업이 아니라 지속적인 조정 과정입니다. D&D가 여러 판을 거치며 규칙을 고쳐 온 과정, 발더스게이트 3이 얼리액세스 기간 내내 시스템을 조정해 온 과정은 메타와 밸런스를 실험하고 수정하는 장기적 과정의 좋은 사례입니다. 이를 통해 게임디자이너는 규칙 우선순위와 메타 게임 형성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밸런스를 설계하고 유지하는 일이 어떤 의미에서 협상의 연속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Game Theory][^Strategic dominance][^D&D 5e rule changes][^So why do people hate surface affects?].

TRPG가 등장하기 전 테이블 위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게임은 전쟁을 모사한 워게임이었습니다. 이들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D&D나 발더스게이트와는 전혀 다른 전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플레이어는 캐릭터 한 명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군대 혹은 여러 부대를 통제하는 장교나 참모 역할을 맡았고 게임의 목적은 개인 서사나 역할 수행이 아니라 전술 및 전략적 승리였습니다. 근대적 워게임의 출발점으로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은 19세기 프로이센에서 만들어진 크리그스슈필(Kriegsspiel)입니다[^Kriegsspiel][^Kriegsspiel 1824 (PDF)]. 초기 형태의 워게임은 체스에서 출발해 말 하나가 보병, 기병, 포병 같은 병과를 나타내고 보드의 색이나 표시가 지형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전장을 추상화했습니다. 하지만 이 구조는 실제 지형과 부대 움직임을 세밀하게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프로이센 장교 게오로그 폰 라이스비츠 부자가 개발한 크리그스슈필은 기존 추상화된 보드가 아니라 실제 지형을 그린 지도 위에 말을 움직이는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이 게임은 나폴레옹 시대의 전투를 가능한 한 정확하게 재현하려고 했고 각 말은 특정 병력 규모의 부대를 대표했습니다. 이동 거리, 사거리, 사격 효과, 사상자 계산 등이 모두 수치로 정의되어 있었으며 이 수치는 당시 군사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크리그스슈필에서 플레이어는 참여자가 아니라 지휘관입니다. 각 플레이어는 한 쪽 군의 사령관이나 고위 장교 역할을 맡고 지도를 보고 부대에 내릴 명령을 종이에 써 전달했습니다. 부대 말은 플레이어가 직접 옮기는 것이 아니라 심판이 플레이어의 명령을 해석해 움직였습니다. 심판은 현재 상황을 고려해 실제 병사들이 어떻게 행동했을지를 판단하고 그 결과를 지도에 반영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투 결과는 주사위나 표를 통해 확률적으로 계산했고 포그 오브 워를 구현하기 위해 적의 부대 위치는 플레이어에게 모두 보이지 않았습니다. 심판은 어느 부대가 누구에게 보이는지 경사나 숲 같은 지형이 시야를 어떻게 가리는지를 판단해 보이는 말만 지도에 올려두고 나머지는 모두 머릿속에 기억했습니다. 이런 구조에서 플레이어는 전장을 직접 보는 병사가 아니라 제한된 정보를 가진 지휘관이고 실제 병력 운용과 전술적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입장에 놓였습니다. 크리그스슈필은 처음에 군사 교육용 훈련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1824년 프로이센 장교 라이스비츠 주니어가 크리그스슈필을 군 상층부에 시연했을 때 당시 참모총장 카를 폰 뮈플링이 이것은 게임이 아니라 전쟁을 위한 학교라 말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후 프로이센 군은 각 연대마다 크리그스슈필 세트를 비치하도록 지시했고 겨울철 교육 기간 동안 장교 교육에 활용했습니다. 전쟁 경험이 부족한 장교들에게 전장을 체험하게 하는 수단으로 워게임은 실제 실탄 사격이나 참호 훈련보다 비용이 적고 다양한 가상 상황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이때의 워게임은 재미를 위한 놀이라기보다 전술 및 전략 교육을 위한 진지한 도구였습니다. 이 군사 워게임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민간 취미로 넘어오면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테이블탑 워게임 형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바닥에 직접 지도를, 그리고장난감 병사를 놓고 전투를 플레이했습니다. 이런 미니어처 전투 놀이가 취미로써 워게임의 시작으로 간주됩니다. 이후 20세기 중반에는 지도 대신 모래상자, 테이블 위의 지도 모형을 사용하는 방식이 퍼졌고 보드게임 기업들이 상업용 워게임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 워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여전히 부대를 통제하는 지휘관의 입장을 유지했고 게임 목표는 개별 병사의 생존이 아니라 부대의 승리였습니다. 이렇듯 크리그스슈필과 미니어처 워게임 구조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플레이 단위가 군단이나 사단, 연대 같은 집단입니다. 플레이어는 특정 부대의 위치와 전략을 보고 전체적인 전술을 계획합니다. 둘째, 규칙은 전투 결과를 가능한 실제와 가깝게 추정하는 데 초점이 맞춰집니다. 지형, 거리, 사기, 병과 차이 등이 모두 수치나 표로 정의되어 있었고 심판이나 룰북은 이 수치를 사용해 결과를 계산합니다. 셋째, 플레이어의 역할은 병사가 아니라 이 군대의 사령관에 가깝습니다. 플레이어는 게임 세계 안에서 한 개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내려다보며 지시를 내리는 존재입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개별 병사의 감정이나 성장, 서사 선택은 당연히 규칙의 제어 대상이 아니었고 역할이라는 말은 직책을 의미할 뿐 지금 우리가 말하는 롤플레이와는 다른 개념이었습니다[^Kriegsspiel][^Kriegsspiel 1824 (PDF)].

크리그스슈필이 잘 작동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한계도 드러났습니다. 규칙이 너무 세밀하고 복잡해 실제 교육 현장에서 쓰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 것입니다. 모든 상황에 규칙을 맞추려고 할수록 룰북은 두꺼워지고 장교들은 규칙을 외우거나 표를 찾는데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것이 프리크리그슈스필(Free Kriegsspiel) 전통입니다[^On the Free Kriegsspiel Revolution]. 이는 기존의 엄격한 크리그스슈필(rigid Kriegsspiel)과 달리 규칙을 대폭 단순화하고 심판의 재량과 판단에 중심을 두는 방식입니다. 프리크리그슈스필의 핵심은 규칙을 하나하나 상세히 정하는 대신 심판이 자신의 군사 지식과 상식에 따라 상황을 판정하는 것입니다. 프리크리그스슈필 관련 글은 원래 크리그스슈필 규칙이 너무 번거로워 여러 장교들이 실제 교육에서는 룰북을 덜 보고 심판의 판단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인 장교에게는 병력 규모, 지형, 거리, 병과를 보고 이 상황에서 어느 쪽이 우세할지 직감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복잡한 표를 찾아보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교육적으로도 유용했습니다. 그래서 프리크리그스슈필에서는 룰북에 없는 상황이 나왔을 때 심판이 임의로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룰북에 있는 규칙도 필요하면 무시하고 심판의 판단을 우선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이런 방식은 워게임에서 규칙보다 판정이 우위에 있는 구조를 만들어냈습니다. 규칙은 심판을 돕는 도구일 뿐 절대적인 법이 아니라는 인식이 자리잡았습니다. 프리크리그스슈필의 설명을 보면 주사위와 규칙은 판정이 애매한 상황에서 무작위 요소를 제공하는 도구로만 쓰이고 나머지 모든 것은 심판의 판정과 서술로 처리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 구조는 나중에 테이블탑 RPG에서 룰은 도구이고 최종 판정은 DM이 내린다는 관념으로 계승됩니다. 프리크리그스슈필에서 심판의 역할은 단순한 규칙 집행자가 아니라 세계를 운용하는 관리자이자 중재자입니다. 심판은 가상의 세계와 상황을 준비하고 플레이어가 조종하지 않는 모든 존재를 담당하며 규칙은 필요할 때만 선택적으로 사용하고 플레이어의 선택이 공정하고 그럴듯한 결과를 만들도록 판정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 설명은 그대로 오늘날 우리가 하는 DM의 역할과 일치합니다. 세계를 만들고 NPC와 환경을 조정하며 룰북을 절대규칙이 아니라 툴킷 취급하고 판정이 필요한 순간에만 규칙을 부르는 역할입니다[^On the Free Kriegsspiel Revolution][^Kriegsspie].

이 심판 중심 구조는 미국과 영국의 민간 워게임 씬을 거쳐 1960년 미니애폴리스 세인트폴 지역 게임 동호회에서 새로운 시험으로 이어집니다. 미드웨스트 밀리터리 시뮬레이션 어소시에이션(Midwest Military Simulation Association)의 데이빗 웨슬리(David Wesely)는 1880년대 워게임 룰북인 ‘Strategos’에서 심판 개념을 차용해 자신이 진행하던 워게임에 적용했습니다[^Midwest Military Simulation Association]. 여기서 심판은 군사 훈련 교관이 아니라 취미 워게임 그룹에서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고 판정해주는 사람입니다. 웨슬리는 이 구조를 발전시켜 브라운스타인(Braunstein)이라는 실험적인 게임을 만들었습니다[^A semi-brief history of D&D and some other RPGs: 1967-1979][^Inventing the Roleplaying Game: The First "Game Master"][^Braunstein (game)]. 브라운스타인은 특정 독일 마을을 배경으로 각 플레이어에게 시장, 은행가, 학생 지도자, 장군 같은 서로 다른 역할과 목표를 주고 심판이 그들 행동을 판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플레이어들은 더 이상 한 군대의 지휘관이 아니라 마을의 개별 인물이 되었고 심판은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충돌을 중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브라운스타인과 그 뒤를 이은 브라운스톤, 블랙무어 같은 캠페인에서는 심판이 규칙 해석자 역할을 넘어 사실상 이야기의 세계를 운용하는 사람이 됩니다. 규칙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플레이어가 규칙에 없는 행동을 제안하면 심판이 그 결과를 상식과 이야기의 문맥에 맞게 판정합니다. 크리그스슈필의 DM이 이 부대는 이만큼 전진하고 전투 결과로 저만큼 손상을 입는다고 판정했지만 브라운스타인과 블랙무어 심판은 이 도둑인 이 지붕에서 저 골목으로 뛰어내리려고 하지만 민첩 판정에 실패했으므로 다리를 삔다는 식으로 개인 단위의 사건을 판정했습니다. 이때부터 심판은 전장을 내려다보는 군사 교관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운영하는 디렉터이자 엔진으로 역할이 바뀌었습니다. 이 흐름이 D&D의 DM이라는 명칭으로 구체화됩니다. DM은 규칙을 알고 세계를 준비하고 플레이어 외 모든 존재를 연기하며 규칙적으로 모두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판정하는 사람입니다. 이 구조는 분명히 크리그스슈필과 프리크리그스슈필 전통에서 왔습니다. 크리그스슈필이 DM을 통해 시뮬레이션의 빈틈을 매웠다면 프리크리그스슈필은 DM에게 규칙보다 우위에 있는 재량을 주었고 이를 민간 게임 동호회에서 취미로 이어받으면서 심판은 군사 전문가가 아닌 세계의 운영자로 변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룰북은 참고서이도 최종 판단은 DM이 내린다는 TRPG 문학의 핵심 규범입니다. 정리하면 TRPG 이전 워게임 구조는 군단 단위 조종, 전술 시뮬레이션, 지휘관 역할을 중심으로 설계했습니다. 하지만 크리그스슈필과 프리크리그스슈필 전통이 만들어낸 심판 개념, 그리고20세기 즁반 미국 워게임 동호회에서 발전한 브라운스타인과 블랙무어의 실험을 통해 심판의 규칙을 넘어 세계와 서사를 운영하는 존재로 확정되었고 이 구조가 그대로 D&D의 DM 모델로 어졌습니다. TRPG 이전의 워게임 구조는 군단 단위 조종, 전술 시뮬레이션, 지휘관 역할을 중심으로 설계되었습니다. 하지만 크리그스슈필과 프리크리그스슈필 전통이 만들어낸 심판 개념과 20세기 중반 미국 워게임 동호회에서 발전한 브라운스타인과 블랙무어의 실험을 통해 심판은 규칙을 넘어 세계의 서사를 운영하는 존재로 확장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규칙 해석의 자유도가 높아졌고 플레이어는 군대가 아닌 개별 캐릭터를 맡게 되었습니다. 장르 전환의 핵심에는 언제나 누가 무엇을 조종하는가와 규칙을 누가 어떻게 해석하는가의 두 가지 축이 있었습니다. 크리그스슈필에서 프리크리그스슈필, 브라운스타인, 블랙무어, 그리고 D&D로 이어지는 흐름은 이 두 축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Midwest Military Simulation Association][^A semi-brief history of D&D and some other RPGs: 1967-1979][^Inventing the Roleplaying Game: The First "Game Master"][^Braunstein (game)].

브라운스타인은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TRPG의 이전 형태로 평가되지만 당시 웨슬리가 의도한 것은 어디까지나 새로운 유형의 워게임이었습니다. 다만 그가 선택한 몇 가지 설계 결정 특히 플레이어에게 개별 역할을 부여하고 심판이 많은 부분을 즉흥 판정으로 처리하도록 한 구조는 이후 블랙무어와 D&D로 이어지는 개별 캐릭터 기반 롤플레잉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브라운스타인의 첫 번째 시나리오는 나폴레옹 전쟁 시대의 가상 독일 마을을 배경으로 합니다. 웨슬리는 이 마을 이름을 게임 제목으로 삼고 도시 안팎에서 벌어질 수 있는 군사적, 정치적 사건을 워게임 형태로 다루려 했습니다. 기존 워게임에서는 한 플레이어가 한 군대나 여러 부대를 맡지만 웨슬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각 플레이어에게 서로 다른 개인 역할을 배정했습니다. 누군가는 마을 시장, 누군가는 은행장, 또 다른 누군가는 대학 총장이나 혁명 지도자 같은 식입니다. 군사 역할은 전체 플레이어 중 일부에게만 주어지고 나머지는 군사력이 없는 민간인이나 지역 세력으로 설정되었습니다. 각 플레이어에게는 비공개로 개별 목표와 비밀 정보가 적힌 시트가 주어졌고 이들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자 행동해야 했습니다. 웨슬리가 구상한 진행 방식은 먼저 플레이어들이 자신의 계획을 심판에게만 알려주고 심판은 플레이어를 따로 방으로 불러 상황을 듣고 그 결과를 정리한 뒤 전체 지도에 반영하는 구조였습니다. 워게임에서 영향을 받은 이 방식은 플레이어가 서로의 계획을 모르는 상태에서 움직이는 다자간, 다목표 게임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웨슬리는 심판으로 브라운스타인 전체를 관리하며 개별 플레이어의 결정을 취합해 하나의 일관된 사건 흐름으로 만드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때 규칙은 기본적인 이동, 전투, 은신 같은 행동을 처리하는데만 사용되고 대부분의 세부사항은 웨슬리가 상식과 이야기의 맥락에 따라 임기웅변으로 운영했습니다[^Braunstein (game)][^A semi-brief history of D&D and some other RPGs: 1967-1979][^Inventing the Roleplaying Game: The First "Game Master"].

하지만 웨슬리가 브라운스타인 1회를 진행했을 때 게임은 그가 예상한 방향과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흘러갔습니다. 1969년 처음 열린 브라운스타인 게임에는 웨슬리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플레이어가 보였고 모두에게 개별 역할이 배정되었습니다. 원래 웨슬리는 플레이어들이 심판에게만 비밀리에 지시를 전달하고 주로 심판과 일대일로 상호작용하리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플레이어들이 서로를 직접 찾아다니며 캐릭터로써 대화하고 협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장은 은행장과 세금 문제를 두고 흥정했고 학생 지도자는 다른 플레이어에게 시위를 부추기며 정치적 동맹을 시도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두 플레이어가 서로에게 모욕을 주다가 결투를 하겠다고 선언하는 상황마저 벌어졌습니다. 웨슬리는 이런 상황을 처리하기 위해 즉석에서 새로운 판정 규칙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가령 두 플레이어가 결투를 요구할 때 기존 워게임 규칙에는 개인 간 결투를 다루는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웨슬리는 임시로 주사위 규칙을 정의하고 둘의 능력 차이를 대략 반영해 결과를 정했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플레이어들이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마음대로 행동하자 심판은 개별 이동, 교섭, 전투, 도난, 술책 등 워게임이 원래 다루지 않던 사건들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사전에 준비된 규칙이 아닌, 심판의 판단과 즉흥 판정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웨슬리 자신은 이 첫 브라운스타인을 실패한 실험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가 나중에 회고한 바에 따르면 플레이어들이 각자의 목표를 달성하기보다는 엉뚱한 행동에 몰두했고 전체적인 전황을 관리하기 힘들 정도로 게임이 혼란스러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플레이한 사람들의 반응은 정반대였습니다. 그들은 규칙 밖의 행동이 허용되고 캐릭터로써 다른 플레이어와 협상하고 음모를 꾸미는 경험을 매우 즐거운 것으로 기억했고 웨슬리에게 같은 형식의 게임을 다시 열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개발자나 심판이 생각하는 성공적인 워게임과 플레이어가 경험하는 재미있는 롤플레이 사이에 큰 간극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브라운스타인은 이후 여러 변형 시나리오로 이어졌습니다. 웨슬리는 라틴아메리카의 가상의 국가 바나니아(Banania)를 배경으로 한 쿠데타 및 혁명 시나리오를 만들었고 MMSA의 다른 멤버인 듀에인 젠킨스(Duane Jenkins)는 서부극 배경의 브라운스톤 텍사스(Brownstone Texas) 시리즈를 제작했습니다. 이들 게임에서는 한 플레이어가 군부, 반군, 기업인, 외교관, 현지 유력자 등 서로 다른 역할을 맡아 자신의 목표를 위해 움직였습니다. 웨슬리와 데이브 아네슨(Dave Arneson)은 번갈아 심판을 맡으며 매번 새로운 사건과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브라운스타인은 단일 게임 제목이자 여러 플레이어가 개별 역할과 비밀 목표를 부여하고 심판이 판정하는 식의 멀티플레이 롤플레잉 워게임이라는 장르명으로 쓰이게 됩니다. 이 시기 브라운스타인 게임의 구조를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개별 캐릭터와 심판 모델의 핵심 요소가 이미 거의 다 들어있습니다. 각 플레이어는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며 행동할 때는 내 캐릭터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의사결정을 내립니다. 심판은 이들 캐릭터가 만드는 사건과 상호작용을 받아 전체 마을이나 국가의 상태를 업데이트합니다. 규칙이 있긴 하지만 규칙이 다루지 않는 부분은 심판이 즉흥적으로 보충하는 방식으로 처리됩니다. 이런 구조는 훗날 TRPG의 플레이어캐릭터와 게임마스터의 구도로 직접 이어집니다.

브라운스타인의 게임 구조를 조금 더 세밀하게 살펴보면 TRPG 장르에서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는 몇 가지 핵심 설계 패턴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각 플레이어는 개별 캐릭터를 맡습니다. 브라운스타인에서는 캐릭터가 병사가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역할을 가진 인물입니다. 시장, 은행장, 혁명 지도자, 주둔군의 장군, 학생 운동가 등 모두가 마을의 한 사람입니다. 이 인물은 자신의 목표와 정보, 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게임 내에서 오직 이 인물을 통해서만 상호작용합니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캐릭터가 알고 있는 정보만을 기반으로 판단하며 캐릭터가 모르는 사실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이미 초기의 관점 제한과 정보 비대칭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심판은 세계와 규칙을 관장하는 중심 노드입니다. 브라운스타인에서 웨슬리와 아네슨이 맡은 심판 역할은 단순한 규칙의 집행자가 아니라 세계와 물리 법칙, NPC 의사결정, 사건 결과를 통합하는 하나의 시스템이었습니다. 심판은 각 플레이어를 따로 만나 그 플레이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듣고 그 행동이 다른 플레이어의 행동과 어떻게 충돌하거나 조합되는지를 계산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 플레이어가 밤에 무기고에 몰래 들어가 무기를 바꿔치기하는 동안, 다른 플레이어는 같은 시간에 병사들을 집결시키려는 계획을 세울 수도 있습니다.. 심판은 이 두 가지 계획이 시간과 공간 상에서 어떻게 만나는지 판정해야 합니다. 만약 시점과 장소가 겹친다면 들키는지 들키지 않는지, 어떤 결과가 이어지는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사전에 정의된 규칙보다는 심판의 판단과 즉흥 판정에 의존합니다. 셋째, 브라운스타인은 턴이나 라운드 같은 전통 워게임의 구조를 상당부분 버리고 시간 흐름을 느슨하게 다룹니다. 연대기(Chronology) 관련 자료들을 보면 웨슬리는 브라운스타인에서 각 플레이어가 개별적으로 심판을 찾아와 계획을 이야기하고 심판은 여러 플레이어이 계획을 모아 이 날 하루 동안 마을에서 일어난 일을 구성하는 식으로 진행했다고 합니다.

이는 후에 TRPG에서 매우 익숙해진 씬(Scene) 단위 진행에 가깝습니다. 특정 사건을 중심으로 플레이가 진행되고 그 사건 중간중간에 플레이어와 심판이 개별적으로 상호작용합니다. 이런 구조는 장교 훈련용 크리그스슈필에 쓰이던 턴 별 전투 진행과는 꽤 다른 방식입니다. 브라운스타인에서는 이전 턴에 누구를 몇 칸 움직였는지보다 이 장면에서 누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는지가 더 중요했습니다. 넷째, 규칙은 명시된 부분보다 암묵적 부분이 훨씬 많았습니다. 브라운스타인에는 완성된 룰북이 없었고 웨슬리가 참고한 기본 워게임 규칙도 특정 출판물에 정리된 것이 아니라 동호회 내에서 공유되던 다양한 자료와 경험의 축적이었습니다. 웨슬리는 상황마다 적절해 보이는 규칙을 가져와 사용하거나 없으면 즉석에서 새로 만들었습니다. 가령 플레이어가 학생 시위를 조직해 시장을 압박하겠다고 하면 웨슬리는 시위 규모, 병력 반응, 민심을 고려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판단해야 했습니다. 이때 원래의 워게임에서는 시위 효과를 수치화하는 표 같은 것은 없었으므로 심판은 상식과 플레이 맥락에 따라 판정을 내립니다. 이 과정에서 규칙이 없는 부분은 심판이 결정한다는 암묵적 원칙이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됩니다. 이후 TRPG에서 게임마스터가 가지는 권한은 이 원칙의 연장입니다. 다섯째, 브라운스타인에는 정확히 정의된 승리 조건이 거의 없거나 상당히 느슨했습니다. 일부 시나리오에서는 점수나 목표가 있었지만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진행하면서 스스로 새로운 목표와 갈등 구조를 만들어냈습니다. 브라운스타인 스타일 게임을 소개하는 현대 글에서도 이런 게임의 특징을 여러 독립된 행위자, 각자의 목표와 비밀, 그리고 이를 연결해주는 심판으로 설명합니다. 승리보다 중요한 것은 플레이어들이 서로 속이고 설득하며 협력하고 배신하는 과정 그 자체입니다. 이후 블랙무어와 D&D에서 캠페인이라는 개념이 등장할 때 명확한 최종 승리 조건이 아니라 캐릭터가 세상 속에서 살아가며 장기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이유를 이 초기 브라운스타인의 설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브라운스타인은 매우 혁신적인 구조였지만 동시에 여러 설계 문제도 드러났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심판 의존성이었습니다. 규칙이 느슨하고 심판의 즉흥 판정에 크게 의존하는 만큼 게임의 결과와 경험은 심판의 판단에 크게 좌우되었습니다. 브라운스타인 관련 회고와 분석은 웨슬리는 첫 브라운스타인에서 너무 많은 플레이어를 받았고 동시에 여러 역할을 관리해야 해서 큰 부담을 느꼈다고 합니다. 한 심판이 15-20명에 이르는 플레이어의 계획을 처리하려면 누구의 요청을 먼저 듣고 어느 정도 상세하게 판정을 내릴지, 또 어떤 결과를 언제 피드백할지 같은 운영 문제가 일어납니다. 이러한 운영 부담은 재미있지만 재현이 어려운 게임이라는 평가로 이어졌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반복 가능성과 공정성입니다. 브라운스타인에는 표준화된 룰북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그룹이 같은 시나리오를 재현하려면 심판이 처음부터 다시 구조를 설계해야 했습니다. 커뮤니티에 남아있는 브라운스타인 규칙 일부를 보면 각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역할 시트와 비밀 목표, 시작 자원이 모두 유일하고 이 구성 자체가 게임의 핵심이기 때문에 외부 출판이 어렵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한 글에서는 각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정보가 모두 다르고 이를 그대로 출판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내용을 알게 되면 게임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상업적 규칙 체계로 발전하기 위해서 공개 가능한 규칙과 비밀 정보를 분리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또한 심판의 즉흥성은 어느 정도까지는 장점이지만 한계를 넘으면 플레이어에게 불공정하게 느껴지는 판정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브라운스타인 관련 Q&A와 재현기에서 어떤 심판은 특정 상황에서 주사위 판정보다는 자신의 감각을 우선시했습니다. 또 다른 심판은 보다 규칙적인 판정을 선호했다는 사례가 있습니다.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같은 행동을 할 때 심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는 상황이 반복되면 규칙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게 됩니다. 나중에 D&D에서 룰북에 명시된 룰과 게임마스터의 재량 사이의 균형이 중요한 논쟁거리가 되는 이유는 이미 브라운스타인 단계에서 얼마나 심판에게 맡기고 얼마나 규칙에 명시할 것인지의 문제가 있었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문제는 확장과 변형의 필요성입니다. 브라운스타인 자체는 나폴레옹 시대 도시나 라틴아메리카의 쿠데타 같은 현대 및 근현대 정치, 군사 상황을 다뤘습니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곧 다른 장르와 배경을 원하게 되었습니다. 듀에인 젠킨스의 서부극 브라운스톤, 그리고 데이브 아네슨의 블랙무어는 브라운스타인 구조를 다른 장르에 옮긴 사례입니다[^Blackmoor (campaign setting)][^Dave Arneson].

블랙무어 초기 설명을 보면 아네슨은 자신의 캠페인을 중세 브라운스타인이라고 불렀고 그 안에는 판타지 요소와 던전 탐험이 있었습니다. 이런 장르 전환 관점에서 기존 워게임 규칙은 더이상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마법, 몬스터, 던전, 경험치 같은 새로운 요소들을 다루려면 브라운스타인식 즉흥 판정만으로는 부족했고 보다 상세한 규칙이 필요했습니다. 이처럼 브라운스타인은 한편으로는 심판에게 큰 자유를 주는 실험적 구조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누가 진행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게임이 되어버리는 시스템이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RPG 역사를 정리한 글들에서는 브라운스타인에서 TRPG로 넘어가는 과정을 역할을 맡은 개인 플레이어들이 반복 사용되는 캐릭터를 가지고 심판이 즉흥 판정에 의존하던 부분을 점차 규칙화한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듀에인 젠킨스(Duane Jenkins)의 브라운스톤에서는 플레이어가 같은 캐릭터를 여러 세션에 걸쳐 사용하기 시작했고 아네슨의 블랙무어에서는 경험치, 레벨, 던전 구조처럼 반복 가능한 메커니즘이 제시되었습니다. 이런 흐름은 결국 개리 가이갹스와 아네슨이 함께 정리한 D&D 1판 규칙으로 이어집니다. 정리하면 브라운스타인은 누군가의 역할을 맡아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게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규칙의 부재와 심판 의존, 재현성과 확장성의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이 한계들이 바로 룰북이 필요한 이유이고 게임마스터가 왜 필요한지, 그러면서도 규칙과 균형을 맞춰야 하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브라운스타인에서 TRPG로 전환은 이 실험적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표준화된 규칙을 도입해 누구나 어느 정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태어난 것이 바로 블랙무어와 D&D 1판이며 나아가 발더스게이트와 같은 CRPG들이 참조하는 장르의 기반이 되었습니다[^Blackmoor (supplement)][^Inventing the Roleplaying Game: The First "Game Master"][^A semi-brief history of D&D and some other RPGs: 1967-1979][^Paizo Publishing: 2002-Present].

브라운스타인과 블랙무어가 개별 캐릭터와 심판이라는 구조를 만들어냈다면 개리 가이갹스와 제프 페렌이 만든 미니어처 워게임 체인메일은 그 구조에 중세 전투 규칙과 판타지 몬스터를 결합해 D&D 직전 단계의 규칙 체계를 제공했습니다[^Chainmail (game)][^🎖 Overview of Chainmail Rules for medieval miniatures by Gary Gygax & Jeff perren ( OD&D )]. 체인메일은 1971년 가이던 게임즈에서 출판된 중세 미니어처 전쟁 게임으로 D&D 규칙의 직접적인 전신으로 거의 모든 자료에 언급됩니다. 체인메일의 출발점은 1967년 헨리 보덴슈테트(Henry Bodenstedt)가 만든 ‘Siege of Bodenburg’라는 40밀리미터 미니어처용 중세 공성전 게임이었습니다. 이 게임은 ‘Strategy & Tactics’라는 잡지에 룰이 실고 가이갹스는 첫 번째 젠콘(Gen Con I)에서 이 게임을 보고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제프 페렌은 이 규칙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중세 전투 규칙을 만들었고 이를 가이갹스에게 공유했습니다. 가이갹스는 레이크 제네바 테이컬 스터디즈 어소시에이션에서 동료들과 이 규칙을 실험하면서 전투 해석과 병종 구분을 더 세밀하게 만든 확장 규칙을 작성했습니다. 이 확장판이 체인메일의 핵심이 됩니다. 1970년 가이갹스는 젠콘 3에서 도널드 로우리(Don Lowry)를 만나 로우리가 설립한 가이던 게임즈와 계약해 워게이밍 위드 미니어처(Wargaming with Miniatures) 시리즈를 출판하기로 합니다. 이 시리즈에서 첫 번째 규칙서로 나온 것이 체인메일입니다. 체인메일은 중세시대 대규모 전투를 다르는 규칙으로 각 피규어가 병사 한 명이 아니라 20명을 대표하는 집단 단위로 설정되어 있었습니다. 규칙은 병종을 라이트 풋(light foot), 헤비 풋(heavy foot), 아머드 풋(armored foot), 라이트 호스(light horse), 미디엄 호스(medium horse), 헤비 호스(heavy horse) 같은 기본 유형으로 나눈 뒤 공격자가 어떤 병종이고 방어자가 어떤 병종인지에 따라 몇 개의 d6을 굴리고 어떤 눈이 나와야 킬이 되는지 정의했습니다. 가령 헤비 호스가 라이트 풋을 공격할 때는 공격 행동 하나 당 d6 네 개를 굴리고 5나 6이 나오면 킬로 처리하는 식입니다. 이 방식은 개별 병사의 능력보다 병종 간 상성에 초점을 두고 대규모 전투를 빠르게 처리하기 위한 설계입니다. 체인메일에는 이 대규모 전투 규칙(mass combat)외에도 일대일(man-to-man) 전투 규칙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규칙은 각 미니어처가 병사 한 명을 나타내고 개별 근접전과 사격을 세밀하게 다루는 구조입니다. 탈 것, 방패, 갑옷, 무기 종류에 따라 공격 및 방어 판정이 바뀌었고 이는 이후 D&D가 한 캐릭터가 한 전투를 경험하는 구조를 구현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 체인메일은 어디까지나 워게임이었습니다. 플레이어는 여전히 전체 부대를 조종하는 지휘관이었고 개별 병사의 이름이나 성격, 성장 같은 요소는 규칙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체인메일은 한편으로는 크리그스슈필에서 발전해 온 군단 단위 전투 시뮬레이션의 계보를 잇고 다른 한편으로는 브라운스타인과 블랙무어에서 싹트기 시작한 개별 병사와 영웅 전투라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초를 제공했습니다. 대규모 전투와 개별 전투를 모두 다루는 이 구조는 나중에 D&D에서 한 캐릭터의 모험과 대규모 전투를 같은 세계관 안에서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됩니다.

체인메일의 가장 중요한 유산은 룰북 말미에 붙어 있는 짧은 판타지 부록(Fantasy Supplement)입니다. 이 부록은 표면적으로는 중세 전쟁 게임에 판타지 요소를 추가해 엘프, 오크, 드래곤이 나오는 전투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귳익이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상업적으로 출판된 첫 판타지 워게임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리고 이 부록이 바로 데이브 아네슨의 블랙무어에 영감을 주고 오리지널 D&D에서 몬스터와 마법 목록의 직접적인 원형이 됩니다. 체인메일 판타지 부록은 엘프, 드워프, 고블린, 오크, 트롤, 오우거, 자이언트, 드래곤, 발록, 엔트, 히어로, 수퍼히어로, 위저드 같은 유닛을 규정합니다. 이들 유닛은 모두 기존 중세 병종과는 다른 특별한 능력과 전투 값을 가집니다. 가령 엘프는 장궁을 잘 쓰고 드워프는 특정 몬스터에 대해 강하며 영웅 캐릭터는 여러 명의 보통 병사에 맞먹는 전투력을 가진 영웅 유닛으로 표현됩니다. 위저드는 좀 더 흥미롭습니다. 위저드는 파이어볼이나 라이트닝 볼트 같은 주문을 사용할 수 있는 독립 유닛으로 이 주문은 체인메일의 대규모 전투 규칙 안에서 특수 원거리 공격으로 구현됩니다. 가령 파이어볼은 일정 반경 안의 대상에게 무차별 피해를 주는 폭발 공격이고 라이트닝 볼트는 직선 경로로 여러 대상을 관통합니다. 이 두 주문의 효과는 이후 D&D에서 거의 그대로 파이어볼과 라이트닝 볼트로 옮겨집니다. 역사 연구자 존 피터슨(John Peterson)은 블로그 ‘Playing at the World'에서 체인메일 판타지 부록이 기존 워게임 잡지인 'The Courier’에 실린 환상 생물 규칙에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보여주면서도 이 부록 자체가 당시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독창적인 상업판 규칙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중요한 점은 판타지 부록이 체인메일의 중심이 아니라 마지막에 덧붙인 부록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가이갹스 본인은 나중에 이를 나중에 추가한 생각(afterthought)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이는 바로 수년 뒤 전 세계 RPG 시장을 여는 씨앗이 되었다는 점에서 작은 부록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들에게 우리가 아는 중세 전쟁이 아니라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세계 전투를 직접 재현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합니다. 부록의 서문에는 이 규칙을 사용하면 J.R.R. 톨킨의 소설에 나오는 대규모 전투를 다시 싸워볼 수 있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실제로 초기 플레이어들은 헬름 협곡이나 팔렌노트 광야 같은 전투를 체인메일로 재현해보려 했다는 증언이 남아있습니다. 즉 판타지 부록은 단순히 새로운 유닛을 추가한 것이 아니라 소설 속 장면을 게임으로 옮긴다는 새로운 상상력을 제공했습니다. 이후 D&D가 판타지 문학의 게임화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체인메일과 오리지널 D&D 사이에서 톨킨의 영향은 지금도 논쟁 대상이지만 초기 규칙과 자료들을 살펴보면 그의 세계관이 적어도 몬스터나 종족 선택에 큰 영향을 끼친 점은 분명합니다. 반지의 제왕은 D&D의 유일한 영감은 아니었지만 특히 초기에 커다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체인메일 판타지 부록 서문이 톨킨이 묘사한 서사적 전투를 재현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가이갹스의 발언을 인용하면 그는 체인메일과 D&D를 만들 때 톨킨 뿐 아니라 로버트 E. 하워드(코난), 프리츠 라이버, 잭 밴스 같은 여러 작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체인메일 판타지 부록에서는 톨킨의 이름을 가장 먼저 언급했습니다. 초기 D&D의 종족과 몬스터 리스트를 보면 톨킨의 흔적이 더 직접적으로 드러납니다. D&D 초기판에는 인간, 엘프, 드워프, 호빗, 오크, 고블린, 와이트, 발록과 유사한 항마형 존재, 엔트 등 톨킨 작품에서 거의 그대로 가져온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Geek Native’와 ‘EN World’에서 톨킨과 D&D의 관계를 분석한 글들은 D&D의 기본적인 파티 구성인 강한 전사형 드워프, 민첩한 엘프, 은신과 기민함을 가진 호빗 인간 중심의 세계관과 여러 인종의 동행, 고대 유적과 던전 탐험 같은 모티프들이 톨킨의 서사 구조를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 요소들이 모두 톨킨의 독점적 발명은 아닙니다. 이들은 북유럽 신화, 중세 전설, 다양한 판타지 소설의 영향을 공유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1970년대 미국 판타지 팬덤에서 톨킨의 위상이 워낙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가이갹스와 아네슨이 그 언어와 이미지를 차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습니다. 다만 가이갹스는 이후 인터뷰에서 톨킨의 영향이 과장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주요 영감으로 로버트 E. 하워드와 잭 밴스를 더 자주 언급하며 톨킨의 작품은 너무 느리고 서사 중심이어서 D&D의 모험 구조와는 맞지 않는다고 말한 적 있습니다. 가이갹스가 말하는 영향에는 두 가지 레이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모험 구조, 던전 크롤링, 마법 시스템 같은 플레이 방식에 대한 영향이고 다른 하나는 엘프, 드워프, 오크, 엔트 같은 표면적 테마와 장식에 대한 영향입니다. 가이갹스가 톨킨의 영향을 줄여 말하려던 것은 전자 즉 D&D의 핵심은 톨킨식 서사가 아니라 펄프 어드벤처와 던전 크롤링에 있다는 주장이고 후자 즉 종족과 몬스터 이름, 외형이 있어서는 톨킨의 영향이 명백하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Worlds of Design: Reassessing Tolkien’s Influence][^Tolkien and Dungeons & Dragons][^Leigh Brackett, J.R.R. Tolkien, and Appendix N: Advanced Readings in D&D][^Gygax on Tolkien (Again)][^Did Tolkien inspire Dungeons & Dragons?][^D&D Orcs Lore: Tolkien & Twitter].

한편 톨킨 아이피를 관리하던 회사와 TSR 사이의 법적 갈등은 D&D의 초기 디자인이 어떻게 조정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1970년대 후반 톨킨 관련 라이선스를 가진 회사는 TSR이 호빗, 엔트, 발록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결국 TSR은 기본 D&D와 AD&D에서 호빗을 하플링, 엔트를 트리언트, 발록을 발로어로 바꿨습니다. ‘Strong Museum of Play’가 보존한 관련 문건과 ‘Sacnoth’s Scriptorium’ 블로그에 정리된 자룔르 보면 이 변경이 단순히 단어 몇 개를 바꾼 정도가 아니라 D&D 세계가 톨킨의 세계와는 다른 고유의 판타지 세계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전략적 조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D&D는 톨킨이 직계 모방자로 보이는 위험을 줄이고 원작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톨킨과 체인메일, 그리고 D&D 초기 설계의 관계를 판타지 문학의 게임화라고 볼 때 중요한 것은 문학의 서사를 그대로 옮겨온 것인지가 아니라 문학이 제공한 세계의 언어와 존재들을 게임 규칙으로 번역한 점입니다. 체인메일 판타지 부록이 톨킨식 엘프, 드워프, 드래곤, 위저드를 전장에 올렸다면 D&D는 이 존재들에게 능력치, 레벨, 클래스, 경험치 같은 규칙적 구조를 부여했습니다. 소설 속 엘프는 장면에 따라 시인, 왕, 전사, 마법사 등 여러 역할을 오가지만 D&D에서 엘프라는 종족이 특정 능력치 보너스와 시야 범위, 마법 저항 같은 게임적 속성으로 고정됩니다. 마찬가지로 톨킨의 마법은 분위기와 상징성이 강하지만 D&D의 마법은 주문 슬롯, 준비 규칙, 주사위 피해량으로 정량화됩니다. 이 과정에서 판타지 문학의 요소들은 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부품으로 변환됩니다. 게임 디자인 관점에서 이 과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발더스게이트 3이 D&D 5판의 규칙을 구현하면서도 표면 효과, 반응, 고도와 같이 D&D 룰북에 없는 레이어를 추가한 것처럼 가이갹스와 아네슨도 톨킨과 다른 판타지 작품에서 요소를 가져와 이를 게임 규칙으로 표현 가능한 구성요소로 재구성했습니다. 체인메일의 판타지 부록은 첫 결과였고 오리지널 D&D 룰북은 그 결과를 플레이어가 직접 캐릭터를 만들어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규칙 집합으로 확장했습니다. 결국 판타지 문학의 게임화는 단순한 팬 서비스가 아니라 서사와 세계 구조를 규칙으로 번역하여 상호작용 가능한 시스템으로 만드는 작업이며 이것이 곧 TRPG와 CRPG 규칙 설계의 핵심이 되었습니다[^A Brief History of Tolkien RPGs][^Leigh Brackett, J.R.R. Tolkien, and Appendix N: Advanced Readings in D&D][^What do you think of Gary Gygax's take on Tolkien?][^Did Tolkien inspire Dungeons & Dragons?][^Gygax on Tolkien (Again)].

데이브 아네슨의 블랙무어 캠페인은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TRPG 캠페인 구조의 출발점으로 알려졌습니다. 브라운스타인이 한 번의 사건을 다루는 실험적 워게임에 가까웠다면 블랙무어는 같은 세계에서 캐릭터들을 여러 세션 동안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장기 진행을 시도한 최초의 판타지 캠페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1977년 저지스 길드(Judges Guild)에서 출판된 The First Fantasy Campaign 서문은 아네슨이 1970년 경부터 블랙무어라고 부른 새로운 유형의 게임을 시작했으며 1972년에 이 게임을 개리 가이갹스에게 시연했다는 설명으로 시작합니다. 이 책은 이후 출판사의 편집과 다른 설정과 연결 때문에 혼재된 부분이 있지만 블랙무어 게임이 단일 전투가 아니라 긴 기간에 걸쳐 동일한 세계에서 벌어지는 여러 모험이 연속으로 진행됐다는 점을 일관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블랙무어의 공간적 중심은 블랙무어 성과 그 아래에 뻗어 있는 지하 던전입니다. MDavid의 블랙무어 연구(DMDavid's Blackmoor Research)는 블랙무어 초기에는 야외 전투와 성 방어가 중심이었으나, 어느 시점부터 플레이어들이 성 아래 지하 공간에 흥미를 느끼고 성 지하에 괴물이 있다면 어떨까라는 발상에서 던전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네슨은 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성 아래 지하 공간을 그려나갔고 ‘Blackmoor Gazette and Rumormonger’라는 팬진 2호에서 블랙무어 성 아래의 던전에 영웅들이 모험과 보물을 찾아 내려간다는 글을 실었습니다[^Blackmoor Gazette and Rumormonger #1]. 존 피터슨은 ‘Playing at the World’에서 이 시점까지 아네슨이 성 아래로 6층 깊이의 던전을 그려두었고 각 층에는 점점 더 강한 적들이 등장하도록 설계했습니다[^Playing at the World, 2E]. 이 던전은 단순한 지하 감옥 이상으로 여러 층과 방, 함정, 비밀통로, 괴물 서식지, 보물 창고로 이루어진 복합 구조물이었습니다. ‘Hidden in Shadows’를 보면 블랙무어 던전은 하나의 완성된 설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세션을 거치며 점진적으로 확장되고 수정된 살아있는 구조입니다[^Hidden in Shadows]. 플레이어들이 특정 방향으로 계속 파고들면 그쪽 층과 방이 더 빨리 구체화되고 아직 탐험하지 않은 영역은 메모 수준의 아이디어만 있는 경우도 많았습니다.초기 세션 리포트와 지도 조각을 분석한 글은 블랙무어 던전의 특정 방은 후대에 정리된 지도와 구조가 다르게 묘사되어 있고 이는 던전이 실제 플레이 과정에서 계속해서 재구성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방식은 오늘날 메가던전(Megadungeon)으로 불리는 캠페인 구조의 원형입니다[^Megadungeon]. 메가던전을 마을에서 출발해 거대한 던전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 반복 루프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캠페인이라고 정의하면서 블랙무어의 플레이 패턴을 대표적 사례로 인용합니다. 플레이어들은 세션마다 블랙무어 성이 있는 마을이나 주변 지역에서 시작해 던전 입구에 가서 가능한 깊이 내려갔다가 자원이 떨어지거나 위험이 커지면 다시 올라와 휴식과 보급을 했습니다. 이런 루프가 반복되면서 던전과 성 주변 세계는 점점 디테일을 얻고 플레이어는 매번 같은 공간을 새 관점으로 탐색하게 됩니다. 이 구조는 새로운 마을과 세계를 매번 설계할 필요 없이 한 장소를 반복 사용하면서도 계속 새로운 선택과 긴장을 제공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블랙무어의 가장 중요한 혁신 중 하나는 ‘캐릭터 성장'이 명시적인 규칙 요소로 도입되었다는 점입니다. OSR(Old School Renaissance) 커뮤니티 글들은, 경험치(Experience Points, XP)와 레벨 업(leveling up) 개념이 D&D 룰북에 등장하기 전에 이미 블랙무어에서 사용되고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FactMyth’는 '데이브 아네슨이 블랙무어에서 경험치 시스템과 레벨 업 시스템을 처음으로 도입했으며, 이는 이후 모든 RPG에 영향을 주었다'고 요약합니다[^The First Fantasy Campaign]. ‘Experience Points, levels and Combat in Blackmoor’라는 글은 블랙무어의 경험치는 ‘종족(크리쳐 타입)과 히트 다이스(HD), 아머 클래스(AC)에 기반해 산출되었고, 다음 레벨로 올라가기 위해 필요한 경험치는 현재 히트 다이스 × 아머 클래스 × 1000이라는 공식으로 계산되었다’고 합니다[^Experience Points, levels and Combat in Blackmoor]. 레벨이 오를 때마다 필요한 경험치는 50%씩 증가하여, 2레벨에는 x 1000, 3레벨에는 x 1500, 4레벨에는 x 2250 같은 식으로 늘어났습니다. 또 아네슨은 ‘어떤 크리쳐도 1레벨 상태의 최대 10배를 넘는 힘을 가질 수 없다'고 적어, 1HD 생물은 10레벨이 상한이라는 식의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오늘날 D&D에서 보는 '경험치 테이블'과는 다르지만 핵심 아이디어는 같습니다. 캐릭터는 특정 목표(몬스터 처치, 보물 회수, 임무 달성 등)를 통해 경험치를 얻고, 경험치가 일정량 누적되면 강해집니다. 이 강해짐은 히트 포인트 증가, 공격력 상승, 새로운 능력 획득 등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데이브 아네슨을 다룬 글들은, 그가 종종 플레이어에게 '이제 너는 히어로급이다'라는 식으로 서술적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점점 이를 수치와 레벨로 구체화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캐릭터가 한 번의 전투나 시나리오가 아니라, 다수의 세션을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한다는 개념이 명확해졌다는 사실입니다. 히트 포인트 개념도 블랙무어 맥락에서 발전합니다. 'Secrets of Blackmoor’ 사이트에서 플레처 프랫(Fletcher Pratt)의 해전 워게임과의 연결을 설명하는 글은 아네슨과 동료들이 해전 워게임에서 사용하던 ‘배의 내구도(HP)’ 개념을 가져와 대형 개체에 히트 포인트를 부여하고 나중에는 플레이어 캐릭터에게도 같은 개념을 적용했다고 주장합니다[^SECRETS OF BLACKMOOR - Secrets of Blackmoor]. 블랙무어 초기에는 체인메일의 ‘한 번 맞으면 피규어 하나 제거’ 방식에서 벗어나, 개인 단위 유닛에게도 여러 번의 피해를 버틸 수 있는 히트 포인트를 도입했다는 것입니다. 이 변화는 캐릭터가 단순한 말 하나가 아니라, 시간에 걸쳐 '축적된 상태(state)'를 가진 존재가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히트 포인트와 경험치, 레벨 개념은 모두 '캐릭터를 장기적 축에서 다루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이처럼 블랙무어는 캠페인 구조와 캐릭터 성장 규칙을 결합함으로써 오늘날 RPG에서 너무나 당연한 '내 캐릭터가 세션마다 조금씩 강해진다'는 경험을 처음으로 제공한 사례로 평가됩니다. 이는 단순한 숫자 상승을 넘어, 플레이어가 자신의 캐릭터에 애착을 가지게 만들고, 다음 세션을 기대하게 만드는 설계 장치입니다. 경험치와 레벨은 게임 디자인 용어로 보면 '장기 목표(long-term goal)'와 '중간 보상(intermediate reward)'을 제공하는 시스템입니다. 블랙무어의 경험치 설계는 지금 기준으로는 다소 단순하지만, '장기 캠페인을 유지하기 위해 캐릭터 성장 곡선이 필요하다'는 통찰은 분명했습니다.

블랙무어는 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체인메일 규칙 위에 새로운 요소를 얹은 하이브리드였습니다. ‘Hidden in Shadows’의 'Blackmoor as a CHAINMAIL Campaign' 글은 '블랙무어가 체인메일 캠페인이었다는 말은, 체인메일 미니어처 룰이 블랙무어 캠페인의 기초 규칙으로 사용되었다는 뜻'이라고 설명합니다[^Blackmoor as a CHAINMAIL Campaign]. 실제로 블랙무어 초기에는 체인메일의 대규모 전투 규칙과 일대일 전투 규칙을 그대로 사용해서 성 주변 전투와 소규모 교전을 처리했습니다. 플레이어가 이끄는 부대가 블랙무어 주변의 적과 싸울 때는 대규모 전투 규칙을 사용하고, 성 안이나 던전 내부에서 벌어지는 소규모 전투에는 일대일 규칙을 적용하는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블랙무어의 전투 진행 방식은 체인메일 규칙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아네슨과 블랙무어 그룹은 전투를 할 때 '행동 순서를 엄격히 나누는 이니셔티브 롤'을 사용하지 않고, 양측이 동시에 행동을 선언하고 동시에 타격하는 '병렬 행동(parallel actions)' 방식을 선호했다고 합니다. 이는 플레이어와 몬스터가 서로 번갈아 한 번씩 공격하는 전형적인 턴제(combat round) 구조와 다릅니다. 예를 들어, 한 라운드 동안 A와 B가 서로를 공격한다고 할 때, 전통적인 턴제에서는 A가 먼저 공격하고 B가 다음에 공격하는 식으로 순서를 정합니다. 그러나 블랙무어에서는 한 라운드 동안 양쪽이 모두 공격 기회를 가지고, 동시에 서로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이런 구조는 이후 RTwP 방식의 느낌과도 어느 정도 닮아 있습니다. 즉, 턴을 명시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한 '라운드' 동안 여러 행동이 겹쳐 일어나고, 판정은 그 결과를 정리하는 역할만 하는 셈입니다. 블랙무어는 또 범선 해전 워게임 'Fletcher Pratt's Naval War Game'에서 영향을 받아 전투를 단위 시간 동안의 '동시 해결'로 보는 관점을 가져왔습니다[^Fletcher Pratt's Naval War Game (1943)]. 해전 워게임에서는 각 플레이어가 자신의 함선 이동과 사격을 동시에 선언하고, 그 결과를 라운드 끝에 종합해 배치와 피해를 결정합니다. 블랙무어 전투에서도 플레이어와 마스터가 동시에 움직임과 공격을 처리하고, 그 결합 결과를 한 라운드 후에 반영하는 방식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이 구조는 훗날 발더스게이트 1과 2의 RTwP에서 '실시간으로 모두 움직이지만 일시정지하고 명령을 재정렬한 뒤 다시 동시에 실행하는' 플레이 경험과 꽤 닮아 있습니다. 물론 블랙무어 자체가 디지털 게임은 아니었지만, '행동을 동시에 선언하고, 판정을 통해 결과를 한꺼번에 정리한다'는 사고방식은 턴 기반 TRPG와 RTwP CRPG 사이를 잇는 아이디어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블랙무어에서는 체인메일 규칙을 그대로 사용하는 대신, 캐릭터 중심 전투에 맞게 여러 부분을 수정했습니다. 예를 들어, 체인메일의 일대일 규칙은 '한 번 맞으면 피규어 하나 제거'라는 구조가 기본이었습니다. 하지만 플레이어 캐릭터가 한 번 맞아서 바로 죽어버리는 것은 장기 캠페인에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블랙무어에서는 히트 포인트 개념을 도입해 캐릭터가 여러 번 맞고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체인메일은 '히어로'나 '슈퍼 히어로'처럼 한 피규어가 여러 보통 병사에 해당하는 강력한 유닛을 정의했지만, 블랙무어에서는 이 개념이 레벨과 경험치 시스템과 결합해, 플레이어 캐릭터가 성장하면서 결국 영웅급 존재로 올라가는 구조로 재해석됩니다. 이런 변화는 규칙적으로 보면 작은 수정처럼 보일 수 있지만, 플레이 경험의 관점에서는 '부대를 지휘하는 전쟁놀이'에서 '한 영웅의 모험담'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결정적인 전환이었습니다.

블랙무어가 TRPG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지점은 ‘던전 크롤(dungeon crawl)'의 기본 구조를 사실상 정형화했다는 점입니다. 'DMDavid’의 블랙무어 관련 글은 초기 블랙무어 캠페인이 원래는 마을 방어와 야외 전투에 초점을 맞추었으나, 플레이어들이 성 아래 던전에 집착하면서 캠페인 구조 자체가 '던전 탐험 중심'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합니다. 아네슨은 처음에는 플레이어들에게 '성 아래 지하 공간은 위험하니 너무 오래 머물면 마을이 위험해진다'고 경고했지만, 플레이어들은 계속해서 던전 깊숙이 내려가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캠페인 설정상 블랙무어 성이 악당 세력의 침공으로 함락되면서 첫 캠페인이 종료되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 에피소드는 '던전 크롤이 애초에 의도된 구조였다기보다, 플레이어의 선택이 캠페인을 던전 중심으로 끌고 갔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던전 크롤의 기본 루프는 단순합니다. 마을에서 준비를 하고 던전으로 들어가 가능한 만큼 탐험하고, 보물을 회수한 뒤 다시 마을로 돌아와 휴식과 보급을 하는 것입니다. 블랙무어에서는 이 루프가 반복되면서 던전의 구조와 마을의 역할이 점점 정교해졌습니다. 메가던전 설계에 대한 현대 글들은 블랙무어 던전을 ‘메가던전 구조의 원형'으로 보며, 이 구조가 DM에게도 유리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DM 입장에서는 마을과 던전이라는 두 축만 잘 관리하면 되기 때문에, 매 세션마다 완전히 새로운 지역과 NPC, 갈등 구조를 설계해야 하는 부담이 줄어듭니다. 플레이어 입장에서도 반복적으로 같은 공간을 방문하면서, 처음에는 몰랐던 비밀 통로와 지름길, 몬스터 생태, 파벌 구조 등을 학습하게 됩니다. 이 반복은 지루함 대신 '익숙해짐과 전략화'를 가져오고, 플레이어는 점점 던전을 효율적으로 공략하는 방식을 찾아내게 됩니다. 블랙무어 던전의 구조 자체도 던전 크롤 디자인의 기준점이 되었습니다.

‘The Alexandrian’과 'Hidden in Shadows’ 같은 블로그에서 공개된 블랙무어 지도와 분석을 보면, 던전은 단순한 직선형이 아니라 여러 층과 루프, 비밀문, 엘리베이터 방(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방), 함정 방 등이 혼합된 형태였습니다. 이런 구조 덕분에 플레이어는 항상 두 가지 긴장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하나는 '더 깊이 내려갈수록 보상이 크고 위험도 커진다'는 리스크–리턴 구조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탐험한 구역과 아직 탐험하지 않은 구역 사이에서의 선택'입니다. 이는 후대 D&D 던전 설계 가이드에서 강조하는 원칙, 예를 들어 '플레이어에게 항상 한두 개 이상의 이동 선택지를 제공할 것', '위험도와 보상의 상관관계를 공간 구조로 표현할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마지막으로, 블랙무어는 던전 크롤을 '장기 캠페인을 수용하는 구조'로 정착시켰습니다. 'The Alexandrian’의 글은 블랙무어를 '여러 플레이어 그룹이 한 세계를 공유하며 오랫동안 탐험한 최초의 메가던전'으로 평가하면서, 같은 공간에서 다른 그룹이 남긴 흔적을 발견하는 경험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한 그룹이 던전에 길 표시를 남기면, 나중에 다른 그룹이 그것을 발견하고 해석해야 합니다. 이런 '장기적 상호작용'은 던전 크롤을 단순한 일회용 모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세계의 일부로 느끼게 해 줍니다. 이런 설계는 훗날 D&D 캠페인에서 '오프 테이블(open table)'과 '퍼시스턴트 월드(persistent world)' 개념으로 이어집니다. 정리하면, 블랙무어는 체인메일 규칙과 브라운스타인의 구조를 바탕으로, 던전이라는 새로운 공간 구조, 경험치와 레벨로 표현되는 장기 성장, 병렬 전투 해석과 심판 판정, 그리고 마을–던전 루프를 결합해 '캠페인으로서의 게임'을 창조했습니다. 이 구조는 D&D 1판에서 룰북 형태로 정리되고, 더 나아가 발더스게이트와 같은 CRPG에서 디지털로 구현되면서, 여전히 현대 RPG 디자인의 기본으로 살아 있습니다. 발더스게이트 3의 턴 기반 전투와 표면 상호작용, 환경을 활용한 전투 설계는 이런 역사적 구조 위에 새 시스템을 얹어, 50년 전 블랙무어가 보여준 '동일한 공간을 반복해서 탐험하면서도 항상 새로운 선택이 나오는 구조'를 또 다른 매체에서 재현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Running Castle Blackmoor][^Running Castle Blackmoor – Part 12A: Lessons Learned in Blackmoor ][^Xandering the Dungeon][^What's Better than a Battle Braunstein?].

전통 워게임에서 테이블탑 RPG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플레이 단위'의 변화였습니다. 크리그스슈필과 초기 미니어처 워게임에서 플레이어는 항상 군대나 부대, 즉 다수 병력을 대표하는 집합을 조종했습니다. 플레이어는 전장을 내려다보는 장군이었고, 말 하나가 병사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을 나타냈습니다. 전투 규칙은 병종과 지형, 사거리, 사기에 초점을 맞추었고, 개별 병사가 누구인지, 성격이 어떤지,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는지는 규칙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이 구조는 ‘전략적 사고'를 유도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었지만, 플레이어가 어느 한 병사나 인물에 감정 이입하고, 그 인물이 겪는 특정 사건과 성장에 집중하는 경험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브라운스타인은 이 구조를 처음으로 깨뜨린 사례였습니다. 여기서 각 플레이어는 더 이상 한 군대를 맡지 않고, 한 마을의 시장, 장군, 은행장, 학생 지도자 등 ‘한 사람'을 맡았습니다. 단위가 군대에서 개인으로 바뀐 것입니다. 다니엘 콴(Daniel Kwan)은 브라운스타인을 분석한 글에서, 이 변화의 핵심을 ‘각 참가자가 더 이상 ‘병력을 대표하는 말’을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맡은 캐릭터’로 행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라고 설명합니다. 플레이어는 그 캐릭터가 가진 정보와 목표, 지위를 기준으로 결정을 내렸고, 이 과정에서 내가 이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이후 TRPG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플레이어 캐릭터(PC)' 개념의 직접적인 전조입니다. 블랙무어에서는 이 단위 변환이 더욱 명확해집니다. 블랙무어 초기에도 미니어처와 지형을 이용해 부대를 움직이는 전투가 있었지만, 점점 중심은 '개별 모험가'들의 지하 던전 탐험으로 옮겨갔습니다. 브라운스타인이 여전히 '워게임 기반의 롤플레잉 실험'에 머물렀다면, 블랙무어는 플레이어가 개별 캐릭터의 장기 목표를 세우고 추구할 수 있게 하면서, 워게임과 구분되는 독자 적인 게임 형태로 나아갔습니다. 플롯과 전투는 여전히 미니어처와 그리드 위에서 진행되지만, 각 플레이어는 이제 '성 아래 지하를 탐험하는 모험가 한 명'을 조종하고, 그 모험가의 생존과 성장을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했습니다. 이 단위 변환은 단순한 규모 축소가 아닙니다. 플레이어가 다루는 대상이 군단이냐 개인이냐에 따라, 시스템이 다루어야 하는 정보의 종류와 깊이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군단 단위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병력 수, 위치, 전열, 사기 같은 집합적 속성입니다. 반면 개인 단위 게임에서는 개별 캐릭터의 능력치, 장비, 상처, 심리, 관계, 과거 경험 같은 미시적 요소가 중요해집니다. 이러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블랙무어와 D&D 1판에서는 능력치, 히트 포인트, 경험치, 레벨, 인벤토리 같은 '캐릭터 시트' 구조가 도입됩니다. 즉, 단위 변환은 곧 '게임이 어떤 데이터를 추적해야 하는가'를 바꾸고, 이를 표현하기 위한 규칙과 인터페이스 구조까지 바꾸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변화는 디지털 CRPG에도 그대로 옮겨졌습니다. 발더스게이트 1과 2'는 여전히 파티 전체를 조종하는 RTwP 구조를 사용하지만, 화면 하단에 각 캐릭터의 초상화와 개별 HP 및 상태를 표시하고, 캐릭터별로 스펠북, 장비창, 레벨업 화면을 따로 제공합니다. 플레이 단위는 파티이지만, 시스템 내부에서는 개별 캐릭터가 독립된 단위로 관리되는 셈입니다. 발더스게이트 3은 턴 기반 구조와 표면과 밀쳐내기 시스템을 추가하면서, 이 '개별 캐릭터 단위'를 더 강하게 내세웁니다. 각 캐릭터는 턴마다 고유한 행동과 반응을 수행하고, 위치와 상태, 표면 위 여부 등에 따라 각자 다른 영향을 받습니다. 워게임에서 TRPG로의 단위 변환은 곧 '말 하나가 수십 명을 나타내는 추상 표현'에서 '말 하나가 한 사람을 나타내는 구체 표현'으로 전환하는 것이고, 이 전환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경험치, 레벨, 빌드, 캐릭터 감정 묘사 같은 RPG 특유의 시스템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Running Castle Blackmoor][^Blackmoor (campaign setting)].

두 번째 질적 도약은 목표 체계의 변화, 즉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무엇을 위해 플레이하는가'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의 변화였습니다. 전통 워게임에서 목표는 매우 명확했습니다. 특정 턴이 끝났을 때 특정 지형을 점령하고 있거나, 적 병력을 일정 비율 이상 궤멸시키는 것, 또는 시나리오마다 정해진 전역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워게임 시나리오를 다루는 글들을 보면, 설계자는 보통 '이 싸움에서 역사적으로 어느 쪽이 이겼는가, 어느 지점을 차지했는가'를 참고해 승리 조건을 설정합니다. 플레이어는 이 승리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병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데 집중하고, 전투가 끝나면 게임도 함께 끝납니다. 다음 게임에서는 같은 전투를 다시 하거나, 다른 전역을 재현합니다. 이 구조는 '한 번의 전투, 한 번의 승리 조건'에 기반한 폐곡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브라운스타인과 블랙무어는 이 구조를 서서히 허물었습니다. 브라운스타인에서 각 플레이어는 게임 시작 전에 개별 목표를 받은 뒤, 심판이 설정한 외형적 상황(마을 점령, 혁명, 쿠데타 등) 안에서 자신의 목표를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이 목표들은 여전히 '한 판에서 달성할 수 있는 목표'였고, 게임이 끝나면 그 캐릭터는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블랙무어에서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RPG 역사 문서를 보면, 블랙무어의 플레이어들은 점차 공식 시나리오의 목표보다 자신의 캐릭터가 추구하는 목표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캐릭터는 마을을 지키는 대신 지하 던전에서 더 많은 보물과 마법 아이템을 찾는 것을 우선시했고, 어떤 캐릭터는 특정 NPC와의 관계나 복수 같은 장기 목표를 스스로 설정했습니다. 위키의 TRPG 역사 항목은 이 점을 '블랙무어 게임의 핵심 차이는, 플레이어가 심판이 제시한 시나리오 목표 외에도 자신의 캐릭터 목표를 세우고 추구할 수 있었다는 데 있다'고 요약합니다. 이 변화를 조금 더 일반적인 게임 디자인 관점에서 보면, '승리 조건(victory condition)' 중심 게임에서 '개인 목표(personal goals)' 중심 게임으로의 이동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승리 조건은 플레이어의 의사결정 방향을 규정합니다. 워게임에서는 이 승리 조건이 하나의 전역 목표로 설정되어 있고, 모든 플레이어가 그것을 공유합니다. 반면 TRPG와 같은 롤플레잉 게임에서는 각 플레이어가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가 게임 속에서 충돌하거나 협력하게 됩니다. 이 차이를 승리 조건과 개인 목표는 다릅니다. 전자는 게임이 인정하는 공식 조건이고, 후자는 플레이어 자신의 이야기적 목표일 수 있습니다. TRPG와 스토리 중심 게임은 의도적으로 개인 목표를 강조하고,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는가'를 가장 중요한 지표로 삼습니다. TRPG에서 공식적인 의미의 '게임 종료'나 '승리 선언'은 흔치 않습니다. 캠페인이 끝날 때 '세계가 구원되었다'라든지, '파티가 모두 죽었다' 같은 결과가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캠페인은 서서히 페이드아웃되거나, 플레이어와 DM의 사정으로 중단됩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이겼는지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졌는가'입니다. 살렌과 짐머만은 규칙을 논하면서, 일부 게임은 명확한 승리 조건과 점수 체계를 가지지만, 또 다른 게임들은 '서사적 결과(narrative outcome)'를 중심으로 플레이를 구조화한다고 소개합니다. TRPG는 후자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주사위와 규칙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 규칙은 승부를 가르는 도구가 아니라, 서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결정하는 도구입니다. 발더스게이트 3 같은 CRPG에서는 이 두 층위가 다시 혼합됩니다. 한편으로는 '보스를 쓰러뜨리라', '도시를 구하라' 같은 전통적인 승리 조건이 분명히 존재하고, 전투에서 이기면 경험치와 전리품을 얻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각 동료와 주인공이 가진 개인적 목표와 서사가 있고, 많은 플레이어에게 '진짜 승리'는 특정 엔딩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캐릭터와 동료들이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에 있습니다. 이런 구조는 워게임의 전역 목표와 TRPG의 개인 목표가 디지털 게임 안에서 겹쳐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게임디자이너는 공식 승리 조건과 개인 서사가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 선택지가 서사적으로는 흥미롭지만 시스템 상으로는 항상 손해만 보게 만든다면, 많은 플레이어는 결국 '시스템이 보상하는 선택'만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D&D와 발더스게이트 3의 사례를 연구하는 것은, 이 두 층위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에 대한 실질적인 힌트를 제공해 줍니다[^Win Conditions in Roleplay focused games, how much can you enjoy a one page RPG][^Victory conditions and personal goals][^Winning RPGs: You People Made Me Do This][^Winning and losing in RPGs...][^Story vs Gameplay Balance?].

세 번째 전환점은 규칙의 역할 자체가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크리그스슈필과 전통 워게임에서 규칙은 '전장을 최대한 정확하게 시뮬레이션하는 도구'로 여겨졌습니다. 전투 결과, 이동 거리, 사격 효과, 사기 붕괴 같은 요소를 현실에 가깝게 모사할수록 좋은 규칙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물론 실제로 완전한 시뮬레이션은 불가능했지만, 설계자의 이상은 '가능한 한 현실을 많이 담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규칙은 빈틈없이 세계를 덮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룰북이 두꺼워지고, 예외 규정이 늘어나는 것은 어느 정도 '정밀함의 증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반면 TRPG에서 규칙은 점차 '완전한 모사'의 목표를 내려놓고, '플레이를 위한 프레임(frame)'으로 재정의됩니다. 살렌과 짐머만은 'Rules of Play'에서, 규칙은 현실을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를 담는 틀'이라고 강조합니다. 규칙은 어떤 행동이 가능하고 어떤 행동이 중요한지, 그리고 그 행동에 대한 피드백이 어떻게 주어지는지를 정의하지만 모든 상황을 사전에 규정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규칙은 어느 정도 여백을 남겨, 플레이어와 진행자가 이를 채울 수 있게 합니다. 이를 '여백 있는 프레임'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데이비드 웨슬리와 데이브 아네슨의 사례는 이 변화를 잘 보여줍니다. 브라운스타인과 블랙무어는 체인메일 규칙이나 기존 워게임 규칙을 참고했지만, 플레이어가 규칙에 없는 행동을 제안하면 심판이 즉흥적으로 판정하는 구조를 택했습니다. 다니엘 콴의 에세이는 웨슬리가 'Strategos' 같은 군사 워게임 매뉴얼에서 심판 개념을 가져왔고, '플레이어가 무엇이든 시도하게 두고, 나중에 어떻게 점수를 줄지 걱정하지 않겠다'는 방향으로 게임을 운영하기로 했다는 회고를 인용합니다. 여기서 규칙은 '표준 상황'을 처리하는 기준일 뿐, 플레이를 제한하는 절대 법칙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규칙은 오히려 플레이어의 자유로운 상상을 담는 그릇의 역할을 하며, 심판은 그 그릇의 경계를 넘는 부분을 자신의 판단으로 채워 넣습니다. TRPG가 독립된 장르로 자리 잡으면서, 이 '여백 있는 규칙' 철학은 룰북에도 반영됩니다. D&D 룰북은 상당히 많은 상황을 다루지만, 동시에 'DM은 언제든 규칙을 수정하거나 무시할 수 있다'는 문장을 반복해서 넣습니다. 규칙은 권장안이며, 궁극적인 판정자는 DM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워게임에서의 '심판은 규칙을 집행하는 사람'이라는 역할에서, TRPG에서의 '규칙은 DM이 참조하는 도구이고, DM은 세계의 최종 해석자'로 역할이 확장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학술적으로 TRPG를 분석한 자료들은 이 구조를 '룰과 내러티브의 이중 구조'라고 부르며, 규칙이 세계를 완전히 결정하지 않고 서사와 협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둔 덕분에 TRPG가 상상력과 즉흥성의 장이 될 수 있었다고 평가합니다[^Rulings, Not Rules: A Foundation, Not an Oversight][^Rules vs. Rulings?].

이 관점에서 보면, 발더스게이트 3 같은 CRPG는 다시 '여백을 시스템으로 얼마나 치환할 것인가'라는 도전과제를 안게 됩니다. 디지털 게임은 DM 같은 인간 심판의 즉흥성을 그대로 구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많은 여백을 '명시적 규칙'으로 끌어와야 합니다. 예를 들어, 테이블탑 D&D에서는 '바닥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붙이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DM이 상황에 맞게 판정합니다. 하지만 발더스게이트 3에서는 이러한 상호작용을 모두 규칙으로 정의해 두어야 합니다. 물과 불, 라이트닝, 냉기, 산, 독 표면의 변환 규칙, 밀쳐내기와 고도, 반응과 이니셔티브 처리까지, 시스템이 모두 처리해야 합니다. 여기서 설계자는 '얼마나 많은 상호작용을 시스템에 넣을 것인가'와 '어디까지를 여전히 플레이어의 상상과 연출에 맡길 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디지털 게임에서도 규칙은 여전히 프레임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게임디자이너가 모든 것을 코드로 강제하려 하지 말고, 유저가 해석하고 상상할 여지를 남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발더스게이트 3도 마찬가지로, 비록 많은 상호작용을 시스템으로 끌어올렸지만, 여전히 DM의 여백에 해당하는 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화 선택지와 주사위 판정은 정해져 있지만, 플레이어가 '내 캐릭터는 왜 이런 선택을 했는가'를 해석하는 것은 여전히 플레이어의 몫입니다. 또한 모드 제작이나 룰 변형을 통해, 플레이어가 스스로 시스템을 확장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구조도 남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여백 있는 프레임'이라는 TRPG의 철학이 디지털 게임에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워게임에서 TRPG로의 질적 도약은, 하나의 관점에서 보면 세 가지 축의 변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플레이 단위가 군단에서 개인으로 옮겨가면서 캐릭터 중심 시스템이 필요해졌고, 목표 체계가 전역 승리에서 개인적 서사로 옮겨가면서 경험과 이야기가 플레이의 핵심이 되었으며, 규칙은 현실을 완전히 시뮬레이션하려는 시도에서 플레이와 상호작용을 위한 프레임으로 역할을 재정의했습니다. 이 세 가지 변화가 만나 만들어낸 것이 바로 D&D와 블랙무어이고, 이 구조는 디지털로 옮겨지면서 발더스게이트 시리즈와 같은 CRPG를 낳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각 매체는 자신만의 한계와 장점을 반영하며 규칙을 다시 설계했습니다. 이 역사적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게임디자이너가 새로운 규칙과 시스템을 설계할 때, '어떤 단위를 다룰 것인가, 어떤 목표를 중심에 둘 것인가, 규칙을 어디까지 명시하고 어디까지 여백으로 남길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 중요한 기준점을 제공해 줍니다.

1974년에 TSR이 발매한 최초의 Dungeons & Dragons', 소위 화이트 박스 혹은 리틀 브라운 북(Little Brown Books)은 오늘날 우리가 TRPG라고 부르는 장르의 출발점으로 평가됩니다. 이 세트는 나무 무늬 갈색 또는 흰색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세 권의 소책자와 참조용 시트 묶음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세 권은 각각 Volume 1: Men & Magic', Volume 2: Monsters & Treasure', Volume 3: The Underworld & Wilderness Adventures'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었고, 분량은 각 30-40페이지 내외의 다이제스트 사이즈였습니다. Men & Magic'은 플레이어와 던전 마스터(당시에는 단순히 '심판(Referee)'이라고도 불렀습니다)를 위한 기본 규칙서로, 능력치(Ability Scores), 클래스(Class), 종족(Race), 주문(Spells), 경험치와 레벨, 장비 구입 규칙 등이 들어 있었습니다. 'Monsters & Treasure'는 말 그대로 몬스터와 보물을 다루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에는 고블린, 오크, 드래곤, 트롤 같은 다양한 몬스터와 그들의 히트 다이스, 아머 클래스, 공격력 등이 정리되어 있었고, 각 던전 층이나 조우 표에 사용할 수 있는 보물 테이블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The Underworld & Wilderness Adventures'는 던전과 야외 모험을 설계하고 진행하는 방법을 설명했습니다. 던전을 어떻게 그릴지, 어떤 몬스터를 어느 층에 배치할지, 야외에서 랜덤 조우를 어떻게 굴릴지, 전쟁 규모의 전투를 어떻게 다룰지 등의 규칙과 조언이 이 책에 담겨 있었습니다. 이 세 권의 책과 함께 각종 표와 수치를 모아 놓은 레퍼런스 시트 묶음이 들어 있었는데, 플레이할 때에는 사실상 이 표들을 계속 펴놓고 사용하는 형태였습니다. 이 구조는 TRPG의 역할을 세 가지로 나누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캐릭터와 기본 규칙','세계의 생명체와 보상', '모험의 공간과 진행 방법'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세 권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플레이어 핸드북, 몬스터 매뉴얼, 던전 마스터 가이드'의 원형이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명칭이 없었고 하나의 박스 안에 모여 있는 느슨한 규칙 모음에 가까웠다는 점입니다. 'Acaeum’ 같은 수집가 사이트에서는 이 세트를 '명확하게 구조화된 코어 룰북이라기보다, 아네슨과 가이갹스가 블랙무어와 체인메일 캠페인을 하면서 사용하던 규칙 노트를 정리한 결과물'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거칠고 모듈화된 구조는 이후 D&D가 판을 거듭하며 규칙을 체계화할 때 개선해야 할 과제였지만, 동시에 DM과 플레이어들에게 큰 자유를 주는 원인이기도 했습니다[^Dungeons & Dragons (1974)][^Original D&D: Where It All Started (The 1975 White Box in photos)][^Review: Original D&D Part 1 - Men & Magic][^History of Basic D&D?][^Dungeons & Dragons Classic(r20 판)].

원본 D&D의 능력치 시스템은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면 매우 단순하면서도 동시에 다소 거친 형태였습니다. 'Men & Magic'은 캐릭터가 Strength, Intelligence, Wisdom, Constitution, Dexterity, Charisma라는 여섯 가지 능력치를 가진다고 규정합니다. 이 여섯 능력치 자체는 훗날 모든 D&D 판과 수많은 CRPG에 계승되지만, 1974년 당시에는 이 수치들이 게임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금보다 훨씬 약했습니다. 능력치 생성 방식은 기본적으로 '각 능력치마다 3d6을 굴려 나온 값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방법이었습니다. 즉, 플레이어는 힘을 위해 3d6을 굴려 3에서 18 사이의 값을 얻고, 지능에 대해 또 3d6, 이런 식으로 여섯 번을 반복했습니다. 어느 능력치에 어느 값을 배치할지 재배열하는 규칙은 명시되어 있지 않았고 일부 하우스룰이나 후속 보충 규칙에서 다른 방법들이 제안되었습니다. 이 방식의 문제는 통계적으로 '평범한' 캐릭터보다 '극단적으로 약하거나 강한' 캐릭터가 적지 않게 나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3d6의 평균은 10.5이지만, 7 이하나 15 이상의 값도 꽤 자주 나와서, 어떤 캐릭터는 매우 낮은 능력치를 여러 개 가진 반면 다른 캐릭터는 거의 모든 능력치가 높게 나오는 등, 플레이어 간 전력이 크게 벌어지는 일이 흔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공들여 얻은 능력치가 실제 게임에서 주는 보너스가 매우 제한적이었다는 점입니다. OSR(Old School Renaissance) 커뮤니티에서 초기 능력치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글들을 보면, OD&D에서는 대부분의 능력치가 9-12일 때는 아무 보너스도 주지 않고, 13-15에서 +1, 16-18에서 +2 정도의 보너스를 주는 수준이었으며, 어떤 능력치는 아예 효과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소개합니다. 가령 ‘Men & Magic'에서 힘(Strength)은 근접 공격의 타격 보너스나 피해에 미치는 영향이 지금처럼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았고, 사정에 따라 '체인메일 규칙을 참조하라'거나 '특수한 경우에만 +1'을 언급하는 정도에 머물렀습니다. 민첩(Dexterity)은 원거리 공격과 AC에 약간의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암시가 있지만, 표나 공식이 정리되어 있지 않아 DM 재량에 달려 있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Mythlands’ 블로그에서 AD&D의 능력치를 분석하면서 OD&D와 비교한 글은 '3d6으로 능력치를 만들면서 보너스가 거의 없는 구조는, 능력치가 실제 플레이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작았음을 뜻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글은 OD&D에서 능력치 범위와 보너스 배치를 그대로 두고 4d6 drop lowest 같은 강한 롤 방식을 쓰면, 결국 모든 캐릭터가 보너스를 얻는 방향으로 기운다고 소개합니다. 반대로 능력치 생성은 완전히 랜덤이고, 보너스 테이블은 거의 비어 있는 상태에서는, 플레이어가 능력치를 전략적으로 설계하거나 능력치 빌드를 통한 차별화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즉, 원본 D&D의 능력치 시스템은 캐릭터의 '맛'과 '서사적 상상'에는 영향을 주지만, 기계적인 영향은 상대적으로 미미했습니다. 이런 구조는 두 가지 상반된 결과를 낳았습니다. 한편으로는, 능력치가 낮더라도 플레이에 큰 지장을 주지 않기 때문에 '능력치가 나빠서 캐릭터가 망했다'는 불만이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능력치가 높아도 크게 보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능력치를 중심으로 한 빌드 전략이 거의 없었습니다. 후속 판들, 특히 AD&D와 D&D 3판이 능력치와 수정치를 점점 더 중요한 시스템으로 키운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A comparative history of Dungeons & Dragons - AD&D 2nd Edition - 1989]. 능력치가 중요해지면 빌드 다양성과 전략성이 늘어나지만, 동시에 진입 장벽과 위험도 커집니다. 원본 D&D의 '능력치 약함'은 이후 규칙 설계 논쟁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원본 D&D의 클래스 시스템은 단 세 가지 클래스, 파이팅 맨(Fighting-Man), 매직유저(Magic-User), 클레릭(Cleric)으로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수십 개 서브클래스를 가진 D&D 5판이나, 다양한 직업이 존재하는 CRPG에 익숙한 입장에서 보면 매우 단촐한 편이지만, 이 세 클래스가 사실상 '탱커, 딜러, 힐러 및 서포터'라는 현대 RPG 기본 파티 구성을 미리 제시했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파이팅 맨은 말 그대로 전사형 클래스였습니다. 중갑과 모든 무기를 사용할 수 있고, 레벨이 오를수록 히트 다이스가 늘어나 HP가 많이 올라가는 구조였습니다. 마법을 전혀 쓰지 못하는 대신, 장비 선택과 공격력에서 가장 큰 이점을 가진 클래스였습니다. 매직유저는 전사와 완전히 반대입니다. 갑옷을 거의 착용할 수 없고 무기도 제한적이며, 평균 HP도 낮지만, 준비한 주문을 사용해 강력한 효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주문 시스템은 잭 밴스의 소설에서 영향을 받은 준비형(Vancian) 구조로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주문 슬롯이 정해져 있고 사용한 주문은 다시 준비하기 전까지 잊었습니다[^Vancian Magic][^In Defense of Vancian Magic]. 클레릭은 이 둘의 중간 위치에 있었습니다. 갑옷과 둔기를 사용할 수 있고, 레벨이 오르면 회복과 보조 위주의 성직 주문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또 클레릭은 ‘언데드 퇴치(turn undead)' 능력을 갖고 있어, 좀비나 해골 같은 언데드를 밀어내거나 파괴할 수 있었습니다. Critical-Hits 블로그에서 이 세 클래스를 분석한 글은 '파이팅 맨, 매직유저, 클레릭은 사실상 현대 RPG에서 탱커, 딜러, 힐러 역할의 원형이며, 이후 도입된 도둑(Thief)은 함정 해제와 잠입, 백스탭 같은 특화 역할을 추가해 파티를 완성한다'고 설명합니다. OD&D 단계에서는 도둑이 아직 없었고, 던전 탐험에서 자물쇠 따기, 함정 탐지 같은 역할은 주로 플레이어의 선언과 DM 판정에 의존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 클래스는 매우 '개념적인 역할'에 가깝습니다. 전사, 마법사, 성직자라는 세 가지 판타지 서사 아키타입을 규칙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The Archetypes And Collective Unconscious]. 이 단순한 클래스 구조는 규칙 설계 측면에서는 장점과 한계를 동시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장점은 이해하기 쉽고 파티 구성이 직관적이라는 점입니다. 신규 플레이어에게 '앞에서 맞는 사람, 뒤에서 주문 쓰는 사람, 모두를 치료하는 사람'이라는 그림을 제시하면, 규칙을 다 읽지 않아도 대략 어떤 역할을 기대해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한계는 캐릭터 커스터마이징과 다양성의 부족입니다. OD&D에서는 서브클래스나 특성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았고, 능력치와 장비를 제외하면 같은 클래스 캐릭터들이 기계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그룹이 초기부터 하우스룰로 새로운 클래스나 변형 규칙을 도입했고, 이러한 실험이 나중에 공식 보충 규칙(예: 'Supplement I: 'Greyhawk'의 도둑)으로 이어지게 됩니다[^Greyhawk (supplement)].

원본 D&D가 게임 디자인 역사에서 특히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경험치(Experience Points, XP)와 레벨(Level)을 통해 '게임 진행'을 수치화하고 구조화했다는 점입니다. FactMyth 같은 사이트는 'D&D가 레벨 업 개념을 게임에 도입한 최초의 사례이며, 이후 거의 모든 RPG가 이를 채택했다'고 소개합니다. OD&D 이전에도 체스에서 폰이 승급하거나, 워게임에서 승리 점수를 누적하는 식의 구조는 있었지만, 개별 캐릭터가 누적 점수에 따라 강해지는 구조를 정식 규칙으로 제시한 사례는 드물었습니다. OD&D에서 경험치는 몬스터를 처치하거나 보물을 획득했을 때 얻습니다. 'Men & Magic'과 Monsters & Treasure'를 보면, 기본 규칙은 '몬스터 1 히트 다이스(HD)당 100 XP'를 주고, 보물의 골드(GP) 1당 1 XP를 얻는 구조로 요약됩니다[^TSR 2002 Vol 1 Men & Magic.pdf][^Monsters & Treasure.pdf]. 각 클래스는 레벨당 필요한 경험치가 다르고, 파이팅 맨, 매직유저, 클레릭 모두 1레벨에서 2레벨로 오르는 데 약 2,000 XP 내외를 요구하는 것으로 제시됩니다. Dungeon of Signs 블로그는 OD&D의 경험치 규칙을 분석하면서, '실제 플레이에서는 몬스터 처치 경험치보다 보물 획득 경험치가 훨씬 큰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캠페인에서 경험치 = 골드라는 공식이 사실상 유효했다'고 말합니다. 이는 플레이어 동기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단순히 몬스터를 무조건 싸워 죽이는 것보다,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보물을 훔치거나 얻는 것이 최적 전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경험치 시스템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캐릭터의 성장 곡선을 시스템적으로 표현합니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XP가 얼마인지, 다음 레벨까지 얼마가 남았는지 계속 추적하게 되고, 레벨업 순간에 새로운 주문 슬롯, 히트 포인트, 타격 보너스 등을 얻게 됩니다. DMDavid 같은 디자이너는 경험치를 '다음 보상까지 남은 거리를 보여주는 진행 막대(progress bar)'로 설명하면서, 플레이어가 자신의 노력과 성취를 수치로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고 평가합니다. 둘째, 경험치가 '어떤 행동을 보상할 것인가'를 결정함으로써 플레이어의 전략과 플레이스타일을 유도하는 도구가 됩니다. OD&D에서 골드 = XP 규칙은 플레이어에게 '전투 그 자체'가 아니라 '성공적인 약탈과 생환'을 목표로 삼게 만들었습니다. 위험한 전투를 피하고, 최대한 안전하게 보물을 들고 나오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되는 셈입니다. 이는 후대 D&D 에디션에서 '전투 위주 경험치'로 변하면서, 플레이어가 싸움을 더 선호하게 된 구조와 대조됩니다. 경험치와 레벨 시스템은 오늘날 거의 모든 CRPG의 기본 구조로 이어집니다. 발더스게이트 시리즈는 물론, 디아블로, 엘더스크롤, 디비니티, 수많은 모바일 RPG들이 '몬스터를 처치하고 경험치를 얻어 레벨을 올리고, 스킬 포인트를 얻어 빌드를 만드는' 구조를 사용합니다. 이 구조는 '게임의 진행'을 플레이어 행동과 직접 연결하는 설계 장치입니다. D&D 0판에서 경험치가 거칠고 다소 불균형한 방식으로 정의되어 있었음에도, '플레이어가 장기 목표를 위해 단기 행동을 반복하면서 수치적으로 성장한다'는 발상 자체는 매우 강력한 설계 아이디어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원본 D&D는 오늘날 기준에서 보면 매우 거친 규칙서입니다. 규칙 사이의 간극이 많고, 모호한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능력치가 정확히 어떤 상황에서 어떤 보너스를 주는지 일관되게 설명되어 있지 않고, 전투에서 어떤 표를 언제 사용하는지도 체인메일이나 다른 워게임 규칙을 참고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많은 상황은 ‘로컬 그룹이 알아서' 처리하도록 암묵적으로 전제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거친 면은 당시 플레이어들에게 혼란을 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던전 마스터(DM)에게 강력한 재량을 부여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Geek Related’에서 D&D의 'Rule Zero' 전통을 분석한 글은, 초기 OD&D와 체인메일 단계에서는 심판(Referee)이 주로 규칙 위반 여부를 판정하는 역할을 했지만, AD&D 시점이 되면 DM이 '규칙 위에 있는 존재'로 격상되었다고 정리합니다. 가이갹스는 AD&D 던전 마스터 가이드 후기에 'DM은 규칙을 완전히 이해하고, 필요할 때는 규칙을 넘어서는 판정을 내려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습니다. 이 글은 '체인메일과 OD&D의 심판은 스포츠 심판에 가까웠지만, AD&D의 DM은 규칙과 세계를 모두 관장하는 군주 같은 존재로 재해석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런 변화의 기반에는 원본 규칙의 거칠음이 있었습니다. 룰북만으로는 모든 상황을 처리할 수 없었기 때문에, DM은 끊임없이 '즉흥 판정(ruling)'을 내려야 했습니다. OSR 계열 블로그에서 흔히 인용되는 모토인 'Rulings, not rules(룰이 아니라 판정)'는 바로 이 초기 D&D의 문화를 요약한 표현입니다. D&D는 모든 상황을 커버하는 규칙 집합이 될 수 없고, 그렇게 설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규칙이 설계 의도를 드러내고, DM이 그 의도를 이해해 판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OD&D의 거친 특징은 단점만이 아니라 장점도 있었습니다. 규칙이 비어 있는 부분은 DM이 자신의 그룹과 캠페인에 맞게 채워 넣을 수 있는 여지였고, 그 덕분에 서로 다른 그룹이 같은 룰북을 가지고도 매우 다른 스타일의 게임을 만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게임 디자인 관점에서 이것은 '시스템의 개방성'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모든 것을 코드와 규칙으로 강제하는 대신, 어느 정도는 플레이어와 진행자가 해석하고 협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것이, 오히려 시스템의 수명을 늘리고 다양한 플레이스타일을 수용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발더스게이트 3처럼 디지털 환경에서는 DM의 즉흥성을 완전히 구현하기는 어렵지만, 여전히 '룰북을 완결된 법전이 아니라, 디자인 의도가 담긴 가이드로 제시하는' 방향은 유효합니다. 예를 들어 발더스게이트 3의 표면 시스템은 많은 상호작용을 규칙화했지만, 모든 환경적 상호작용을 스크립트로 고정하지는 않고, 물리 엔진과 범용 규칙을 통해 플레이어의 실험을 일정 부분 허용합니다. 이는 OD&D의 거칠음이 낳았던 '플레이어와 DM의 창의성을 자극하는 역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1974년 원본 D&D는 구조적으로는 세 권짜리 작은 규칙 묶음에 불과했고, 능력치와 클래스, 경험치 시스템도 오늘날 기준에서는 매우 단순하고 거칠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거칠음 덕분에, DM과 플레이어는 규칙의 틈을 메우며 각자 다른 스타일의 게임을 만들어 갈 수 있었고, 경험치와 레벨, 파티 역할이라는 핵심 발상이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 첫 번째 규칙 집합은 이후 50년 동안 이어질 D&D의 규칙 진화에서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가'와 동시에 '무엇을 잃지 말아야 하는가'를 동시에 보여주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Rule Zero Over The Years][^Rulings, Not Rules: A Foundation, Not an Oversight][^Subtleties of “Rulings, not Rules”][^Larian Studios’ RPG Design Philosophy: Baldur’s Gate 3].

1970년대 중반, 오리지널 D&D(OD&D)가 예상 밖의 성공을 거두면서 미국 전역의 수많은 그룹이 각자 자신들만의 하우스룰을 만들어 쓰기 시작했습니다. 블랙무어와 그레이호크 같은 원 캠페인에서는 창작자가 직접 판정을 내렸지만, 룰북만 들고 들어온 지방 게임 그룹에서는 룰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 DM마다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TSR과 개리 가이갹스는 ‘공식 대회와 공인 플레이를 위한 단일 기준'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RPG 역사를 정리한 글들은 AD&D(Advanced Dungeons & Dragons) 1판이 바로 이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합니다. 가이갹스는 여러 인터뷰에서 'D&D와 AD&D는 서로 다른 게임이며, AD&D는 토너먼트와 상호 호환성을 위한 공식 규칙 세트'라고 강조했다고 전해집니다. 레딧의 관련 스레드에서도, 가이갹스가 OD&D는 각자 마음대로 쓰되, AD&D는 통일된 포맷을 위해 세부까지 지정하는 방향을 택했다는 증언이 반복됩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AD&D 1판은 이전 세트와 비교해 규칙의 형식화 정도가 크게 높아졌습니다. 1977년 'Player’s Handbook', 1979년 Dungeon Masters Guide, 같은 해 'Monster Manual’이 출간되면서, 세 권의 굵은 하드커버 책이 새로운 코어 룰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각 책은 수백 페이지 분량이었고, 세부적인 표와 예외 규정, 선택 규칙까지 담고 있었습니다. D&D 위키는 AD&D 1판을 '룰북을 통한 공식화와 표준화의 시도'라고 요약하면서, 이 판이야말로 D&D를 단일한 게임으로 통합하려 한 첫 대규모 개정이었다고 설명합니다. Wayne’s Books 같은 수집가 사이트에서도, AD&D 1판은 OD&D의 '메모 묶음'과는 달리, 분명한 책 구조와 색인, 챕터 구성, 공격과 세이브 및 능력치 표를 갖춘 '완성된 규칙 제품'으로 평가됩니다. 규칙의 형식화에는 장단이 있었습니다. 장점은, 어떤 그룹에서든 같은 상황이면 같은 규칙이 적용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레벨 5 파이터가 아머 클래스 3인 적을 공격할 때 필요한 d20 목표값'은 공격 표에 의해 명확하게 주어집니다. OD&D에서는 체인메일을 뒤지고 DM이 임의로 조정해야 했던 부분입니다. 단점은 규칙이 두꺼워지고 복잡해졌다는 점입니다. Hack & Slash 블로그는 가이갹스의 설계 방식을 분석하면서 AD&D 1판이 만들어낸 '광대한 룰 텍스트'는 한편으로 미시적 조정이 가능하게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플레이어에게 무거운 입문 장벽을 제공했다고 소개합니다. 그럼에도 당시로서는 '무한히 분기하는 하우스룰'을 조금이라도 정리하기 위해 이 정도의 형식화가 필요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As a PRO DM here are my 10 favorite house rules for DnD:][^GYGAX OD&D ADDITIONS][^How D&D Editions Evolved Core Mechanics][^Player's Handbook][^How was D&D Played back in 1st Edition?][^What are the BEST house rules you've used in your home games?].

AD&D 1판의 전투 시스템은 여전히 표(attack matrices)에 기반했지만, 그 구조는 OD&D보다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Attack Matrix’는 레벨 구간과 아머 클래스에 따라 공격 성공에 필요한 d20 값이 정리된 표였으며, 전사형, 도적형, 성직자형, 마법사용 클래스별로 별도의 표를 사용했습니다. AD&D 1판에서 THAC0('To Hit Armor Class 0')라는 용어는 공식 룰북에서는 명시적으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A comparative history of Dungeons & Dragons - AD&D 2nd Edition - 1989][^Please explain THAC0 AD&D2nd]. 이 개념이 용어로 정착한 것은 AD&D 2판에 들어서이지만 ‘공격 표에서 0 AC를 맞히기 위한 값'을 미리 계산해 사용하는 플레이어 습관은 1판 시절부터 존재했다는 것이 OSR 커뮤니티의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THAC0 방식은 공격 표를 보지 않고도 '공격자의 THAC0 – 목표 AC = 필요한 주사위 값'이라는 단순 계산으로 해결하기 위한 플레이어 편의 공식이었습니다[^AD&D 2nd Edition: How to THAC0 (How THAC0 Works)]. 전투 표 통합의 의미는 단순히 편의를 높인 것 이상입니다. 'Attack Matrix’는 각 클래스가 레벨이 오름에 따라 어느 속도로 공격력이 증가하는지를 명시적으로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전사는 1-3레벨 구간에서는 일정한 값, 4-6, 7-9레벨 구간마다 점차 필요한 목표값이 줄어드는 식으로 '계단형 성장'을 보입니다. 이 계단형 성장과 아머 클래스의 한계를 결합해 '전사가 무한히 강해지지 않고, 특정 레벨 이후에는 추가 레벨업의 효용이 감소하는 구조'를 설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3판의 BAB(기본 공격 보너스)처럼 매 레벨마다 일률적으로 보너스를 주는 방식과는 다른 접근입니다. 결과적으로 AD&D 1판의 전투 표는 '각 클래스의 성장률과 한계를 동시에 시각화한 도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공격 표와 세이브(내성 굴림) 표, 턴 언데드(Turn Undead) 표, 도적 기술 성공률 표 등 다양한 표가 동일한 방식으로 정리되면서, DM과 플레이어는 '표만 찾으면 된다'는 안정감을 얻었습니다. 물론 오늘날 기준에서는 이런 표 기반 설계가 느리고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지만, 당시에는 계산기를 들고 다니지 않고도 복잡한 확률 구조를 구현하는 실용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옛 시스템을 현대적으로 단순화하려는 글에서도, 원래의 공격 표가 던져주는 성장 곡선과 밸런스 감각을 유지하려면, THAC0나 다른 공식을 설계할 때도 그 의미를 고려해야 합니다.

AD&D 1판은 능력치의 역할을 OD&D보다 훨씬 강화했습니다. OD&D에서 능력치는 대체로 +1, –1 정도의 소규모 보너스를 주거나, 특정 판정에 약간의 영향을 주는 수준이었지만, AD&D 1판에서는 능력치별로 상세한 '수정치 표(modifier table)'가 도입되었습니다. ''Player’s Handbook''에는 힘(Strength), 지능(Intelligence), 지혜(Wisdom), 민첩(Dexterity), 체질(Constitution), 매력(Charisma) 각각에 대해, 3-18 점수 구간별로 히트 보너스, 피해 보너스, 언어 수, 주문 가능 수, 내성 보너스, 반응 조정, 최대 하이어링 수 등 다양한 효과가 표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 표는 OD&D 시절 '능력치가 높은데 실질적인 기계적 보상이 적다'는 불만에 대한 직접적인 응답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힘(Strength) 표는 전사형 캐릭터에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힘 18은 다시 18 및 01-18 및 00의 범위로 나뉘고, 18 및 00은 +3 히트, +6 피해, 탁월한 문 열기 확률 같은 강력한 보너스를 제공했습니다. Delta의 D&D 관련 블로그는 이 구조가 사실상 '19 이상 능력치의 대체 표현'으로 작동하면서, 파이터를 강하게 만들어 주는 대신 다른 클래스와의 간극을 크게 벌렸다고 분석합니다. 이런 표 구조 덕분에 플레이어는 능력치를 올렸을 때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명확히 알 수 있었고, 이는 캐릭터 빌드를 계획하는 데 큰 동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능력치 간 격차가 커졌고, '좋은 능력치를 뽑느냐가 캐릭터 성능을 크게 좌우하는 구조'가 강화되었습니다. 지능과 지혜, 체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능은 언어 수, 주문 습득 가능 여부, 최대 주문 레벨 등 마법사에게 필수적인 정보와 직결되었고, 지혜는 클레릭의 추가 주문과 마법 내성 보너스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체질은 레벨당 HP 보너스를 결정했는데, 전사는 높은 체질에서 더 큰 HP 보너스를 얻고, 다른 클래스는 일정 수준까지만 보너스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능력치 표는 클래스별로도 서로 다른 의미를 가졌습니다. 이런 설계는 '능력치가 캐릭터 빌드에 실질적인 분기를 제공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규칙의 체계화를 잘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Classic ability adjustments in AD&D][^D&D Ability Scores and Modifiers (old vs new)][^A History of Ability Score Modifiers][^1E Fighter Exceptional Strength][^D&D Ability Scores: Here’s Everything You Need to Know][^Ability Modifiers in Immortal Rules].

AD&D 1판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클래스 다양화입니다. 'Player’s Handbook'는 파이터, 매직유저, 클레릭, 도둑 같은 '코어 4직업' 외에도 팔라딘(Paladin), 레인저(Ranger), 드루이드(Druid), 일루저니스트(Illusionist), 바드(Bard) 등 수많은 추가 클래스와 서브클래스를 소개했습니다. Dragonsfoot 포럼에서 플레이어들에게 '코어 네 직업(C, F, MU, T) 외에 가장 좋아하는 직업'을 묻는 글을 보면, 팔라딘과 드루이드를 꼽는 경우가 많습니다. 팔라딘은 엄격한 성향과 행동 제한(선 alignment 유지, 기부 의무 등)을 가진 대신, 레이 온 핸즈(치유), 디텍트 이블, 언데드와 악에 대한 강력한 저항 같은 특수 능력을 가진 '성기사' 아키타입을 규칙으로 구현한 직업입니다. 레인저는 자연 환경에서 추적과 적응이 뛰어나고, 특정 적 종류(Bane 대상)에 대한 추가 피해, 후반부 주문 사용 능력을 가진 '정찰 및 헌터형' 클래스입니다. Grumpy Wizard 블로그는 AD&D 1판 레인저의 주문 레벨과 캐스터 레벨 규칙을 분석하면서, 레인저와 팔라딘이 '하이 레벨에서 보조 주문을 배우는 하이브리드 클래스'로 설계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드루이드는 클레릭의 서브클래스로, 자연 신에게서 힘을 받으며 동물 변신, 자연 주문, 특정 레벨에서의 듀얼 시스템(지역 대드루이드와의 1:1 결투로 계층 승격)이 특징입니다. 이 클래스는 후대 에디션에서도 계속 '자연과 변신'의 상징적 직업으로 남게 됩니다. 이런 클래스 다양화는 규칙 설계 측면에서 '역할 세분화(role specialization)'로 볼 수 있습니다. OD&D에서 전사 및 마법사 및 성직자 세 역할만 있던 것을 AD&D 1판은 그 사이마다 세부 역할을 정의하고, 각 역할에 특정 능력과 제약을 부여했습니다. 예를 들어 팔라딘은 전사보다 공격력이 조금 떨어지고 행동 제약이 있지만, 특정 상황에서 매우 강력한 서포트 능력을 발휘합니다. 이런 세분화는 파티 구성의 다양성을 늘리고, 플레이어에게 더 많은 선택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규칙과 밸런스의 복잡도를 높입니다. 이 문제는 이후 Unearthed Arcana, 2판의 키트(kit), 3판의 프레스티지 클래스 등으로 계속 확대되면서, '옵션 과잉'과 '파워 빌드' 논란으로 이어지게 됩니다[^Why AD&D 1e's Class System Was So Good][^Player's Handbook][^Fighter, Paladin, Ranger and Weapon Specialisation][^D&D Class Roles – The Druid][^Caster Level for Paladins and Rangers in 1st Edition D&D #RPG #DnD #ADnD][^Could someone explain the "bloat issue" caused by prestige classes?].

AD&D 1판 시기는 규칙뿐 아니라 세계관(세팅) 측면에서도 중요한 전환기였습니다. 초기 D&D는 각 DM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드는 하우스룰 문화에 가까웠지만, AD&D는 특정 캠페인 월드와 규칙을 긴밀히 묶어 '콘텐츠 라인'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AD&D 1판의 기본(디폴트) 세계관은 개리 가이갹스의 그레이호크('Greyhawk')였습니다. 그레이호크는 오스(오어스)라는 행성 위에 여러 국가와 도시, 던전이 펼쳐진 세계이고, 수많은 모듈과 시나리오가 이 세계를 배경으로 작성되었습니다. 'Greyhawk'는 '상대적으로 미니멀한 설정과 DM에게 주어진 큰 여백'으로 유명합니다. 레딧의 토론에서는, 그레이호크는 적당한 힌트와 이름만 제공하고, 대부분의 디테일은 DM에게 맡기는 '열린 세계(Open World)'였다고 회고하는 DM들이 많습니다. 반면, 포가튼 렐름(Forgotten Realms)은 에드 그린우드(Ed Greenwood)가 1960년대부터 개인적으로 만들던 세계를 TSR이 1980년대에 공식 설정으로 도입한 사례입니다. 이 세계는 보다 세밀한 지리, 역사, 신계 구조, 수많은 NPC와 마법 아이템의 상세한 설정을 갖고 있었고, 1판 후반부부터 박스 세트와 소설, 모듈 형태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D&D Beyond의 포가튼 렐름 소개 글은, 그레이호크가 1판의 기본 배경으로 시작했지만, 가이갹스가 TSR에서 물러난 뒤에는 포가튼 렐름이 점점 더 중심이 되어, 2판 이후에는 사실상 D&D의 대표 세계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합니다. 세계관 통합은 한편으로 규칙 설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정 세계관에는 특정 조직, 종족, 신앙, 마법 전통이 있고, 이는 클래스, 주문, 몬스터 디자인과 연결됩니다. 예를 들어, 드루이드의 계층 구조와 대드루이드 대결, 팔라딘의 서약과 행동 제한, 레인저의 특정 적종 선택은 모두 '세계 안에 존재하는 집단과 규범'을 반영합니다. 또한 모듈 번호 체계(T1–4, G1–3, D1–3, S1–4 등)는 각 모듈이 어느 세계관 어느 지역에 배치되는지, 어떤 레벨 구간을 대상으로 하는지를 나타냅니다. 이는 DM에게 '이 모듈을 가져와 제 캠페인에 붙이면, 플레이어들이 이 지역에 가는 모험이 될 것이다'라는 사용법을 제공하는 셈입니다. 게임 디자인 측면에서 보면, 규칙과 세계관을 함께 설계하는 방향이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What’s the deal with Greyhawk?][^Forgotten Realms vs Greyhawk as a setting for AD&D 1e][^AD&D 1e modules][^Forgotten Realms][^Dungeons & Dragons campaign settings].

AD&D 1판은 규칙을 형식화하고 세계관을 통합하는 데 큰 진전을 이뤘지만, 완전히 명확한 시스템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여전히 룰 텍스트의 모호성과 예외 규정, 상충되는 설명이 나타났습니다. ‘Greyhawk'와 ‘Dragon’ 잡지, 서플리먼트까지 포함하면, 하나의 규칙에 대한 여러 버전의 설명이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Geek Related’가 ‘Rule Zero’의 역사 변천을 다루면서 지적하듯, AD&D 1판의 DMG는 매우 많은 규칙을 담고 있으면서도, 특정 상황에 대해 서로 어긋나는 텍스트를 주는 경우가 있어 DM이 결국 '이 문장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계속 결정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팔라딘과 레인저의 주문 시전 레벨과 캐스터 레벨 규칙은 'Player’s Handbook'와 DMG의 문장들이 해석 여지를 남겨, 해석자에 따라 '팔라딘 및 레인저는 몇 레벨 캐스터로 간주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었습니다. 룰 텍스트를 액면 그대로 읽으면 팔라딘과 레인저의 캐스터 레벨은 명확히 정해지지 않고 '일반 규칙에 따라 캐릭터 레벨과 동일하다합리적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공식 룰문서에 명확히 서술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각 그룹마다 다른 해석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례는 AD&D 1판이 '형식화'를 지향했지만, 여전히 룰의 언어가 완전히 법조문처럼 정제되지는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세부 규칙의 양이 많아질수록, 규칙 간 상호작용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늘어났습니다. Grumpy Wizard의 'Subtleties of ‘Rulings, not Rules’' 글은 AD&D 'Player’s Handbook'에 있는 장비 목록과 암시된 규칙을 예로 들며, '장비 목록에 부싯돌과 강철이 있다는 것은, 어딘가에 불 피우기에 대한 규칙이 있지 않더라도, 상식적으로 모험가는 불을 피울 수 있다는 암묵적 룰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이를 통해, AD&D처럼 규칙이 많은 게임에서도 '암시된 규칙(implied rules)'과 'DM 판정(rulings)'이 여전히 필요하며, 룰북만으로 모든 상황을 다루려는 시도는 현실적이지 않다고 주장합니다[^Rule Zero Over The Years][^Subtleties of “Rulings, not Rules”][^Gary Gygax's Ability Score Creation Methods from ADnD 1e][^Why AD&D 1e's Class System Was So Good].

이런 논의는 AD&D 1판이 '완전한 규칙 체계'를 지향하면서도, 실제 플레이에서는 여전히 DM 재량과 상식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는 사실을 반영합니다. OSR 커뮤니티에서 'Rulings, not rules'라는 구호가 다시 부상한 것도, 어느 정도는 AD&D 1판과 2판의 복잡한 룰 텍스트에 대한 반작용입니다. 모든 상황에 대한 룰을 만들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규칙이 디자인 의도를 분명히 전달하고, DM이 그 의도를 이해한 상태에서 판정을 내릴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AD&D 1판은 그 복잡성과 모호성 때문에, DM이 룰을 완벽히 숙지하고 해석하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했고, 이는 어떤 그룹에서는 '깊이와 풍부함'으로, 또 다른 그룹에서는 '진입장벽과 혼란'으로 작용했습니다. 정리하면, AD&D 1판은 OD&D의 거친 규칙과 하우스룰 혼란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체계화의 시대'였습니다. 공격 표와 능력치 수정치, 다양한 클래스와 세계관 통합을 통해 규칙은 훨씬 정교해졌고, D&D를 단일한 게임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기반을 제공했습니다. 동시에, 그 방대한 규칙 텍스트와 여전히 남아 있는 모호성, 예외 규정은 '룰이 많아질수록 판정의 필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역설을 드러냈습니다. 이 경험은 이후 에디션에서 '얼마나 규칙을 써야 하는가, 얼만큼을 DM 재량으로 남겨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설계자들에게 중요한 참고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발더스게이트 같은 CRPG가 AD&D 규칙을 구현할 때, 어떤 부분을 시스템으로 고정하고 어떤 부분을 추상화하거나 삭제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When “Rulings, Not Rules” Hits Home…][^Rule Zero Over The Years][^Subtleties of “Rulings, not Rules”][^Larian Studios’ RPG Design Philosophy: Baldur’s Gate 3][^The Dungeon Master: An Interview with Gary Gygax].

AD&D 2판은 순수한 규칙 개정판이라기보다, 1980년대 미국에서 벌어진 '사탄적 공황(Satanic Panic)'과 그 여파에 대응하는 TSR의 전략적 결과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Baldur's Gate (video game)].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일부 보수 기독교 단체와 선정적인 언론은 D&D가 악마 숭배, 마법, 자살, 폭력성을 부추긴다고 비난했습니다. 'Dark Dungeons' 같은 전도 만화는 TRPG 동아리를 마치 오컬트 집단처럼 묘사했고, 실제 범죄와 D&D를 억지로 연관시키려는 기사들도 이어졌습니다. 이런 논란은 D&D 매출을 단기간에는 끌어올리기도 했지만, 동시에 학교, 교회, 가정에서 강한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D&D 논란을 정리한 위키 문서는, 1979년 230만 달러였던 TSR의 매출이 1980년에는 870만 달러로 뛰어올랐으나,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악마, 마법, 폭력' 이미지 때문에 유통망과 교육기관에서 반감을 사게 되었다고 요약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1989년에 나온 AD&D 2판은 규칙 개선과 함께 '이미지 세탁'을 목표로 했습니다. TSR은 2판에서 'demon, devil, hell, hellhound' 같은 노골적인 기독교적 악마 용어를 룰북에서 삭제하고, 'tanar’ri, baatezu' 같은 새로운 이름을 붙였습니다. 2판에서 악마 관련 몬스터들이 빠지거나 이름이 바뀐 것을 사탄적 공황에 대한 안전한 선택이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규칙 디자인 자체라기보다 마케팅과 브랜딩의 결과였습니다. D&D에서 악마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룰북 표지와 챕터 제목, 몬스터 이름에서 '기독교적 악마‘를 연상시키는 단어를 제거함으로써 부모와 교육자에게 ‘이제는 덜 위험한 게임'이라는 인상을 주고자 한 것입니다. 이 전략이 어느 정도 의도적이었는지는 TSR 내부자의 증언에서도 확인됩니다. ENWorld에 정리된 짐 워드(Jim Ward)의 글을 보면, 그는 '2판 작업에 들어갔을 때, 컨벤션에서 AD&D의 ‘악’에 대해 항의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책을 읽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2판에서 Zeb Cook에게 데몬과 데빌을 부를 새로운 이름을 만들도록 지시했고, 같은 타입의 존재를 완전히 다른 이름으로 부르게 했다'고 설명합니다. 워드는 '사람들 사이에 TSR이 데몬과 데빌을 게임에서 제거했다는 이야기가 퍼졌고, 엄밀히 말하면 사실은 아니었지만, 논쟁과 항의는 마치 스위치를 끈 것처럼 사라졌다'고 회상합니다. 이 증언은 2판이 '순수 규칙 개선판'이 아니라 외부 사회적 환경을 의식한 리포지셔닝 작업이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EkorrenGames’나 'Classic RPG Realms’의 사탄적 공황 정리 글은, 당시 대중이 D&D를 바라보던 시선이 '악마와 주문이 실제로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비합리적인 공포에 기반해 있었지만, 퍼블리셔 입장에서는 이 감정을 무시하기 어려웠다고 소개합니다. 결국 TSR은 2판을 통해 룰 텍스트 수준에서 외형적인 요소를 정리하고, '폭력적이고 어두운 게임'이라는 이미지를 희석하는 쪽을 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Jim Ward: Demons & Devils, NOT!][^Dungeons and Dragons Satanic Panic][^Dungeons & Dragons controversies][^Tabletop RPGs and the Satanic Panic][^AD&D and the Satanic Panic - How Bad Was It?].

AD&D 2판은 규칙 차원에서도 중요한 변화를 여러 가지 도입했습니다. 첫 번째는 비전투 기술(Non-Weapon Proficiencies, NWP)의 핵심화입니다. NWP는 이미 1판 후반부와 'Oriental Adventures' 같은 보충 룰에서 등장한 선택 규칙이었지만, 2판에서는 기본 규칙 책에서 '캐릭터 개성을 드러내는 핵심 요소'로 재정리되었습니다. NWP는 각 캐릭터가 무기 숙련(Weapon Proficiency)과 별개로 선택하는 기술 목록으로, 각 기술은 하나의 능력치에 연결된 d20 판정으로 처리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Tracking'은 지혜(혹은 지능), 'Smithing'은 힘 또는 지능, 생존(Survival)은 지혜에 연결되어, 능력치 이하를 d20으로 굴리면 성공하는 구조였습니다. OSR 커뮤니티의 논의를 보면, NWP는 '브라운스타인 및 블랙무어 시절 DM 재량에 맡겨졌던 비전투 활동을 어느 정도 규칙으로 끌어온 것'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능력치에 기반한 NWP 시스템은 캐릭터의 비전투 활동을 정리해 주는 좋은 시도였고, 반드시 숙련이 없다고 행동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숙련이 있으면 전문가로 판정하는 식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이 글은 DM이 NWP를 '할 수 있음 및 없음'의 절대 기준이 아니라, '전문가 보너스'로 취급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즉, 누구나 텐트는 칠 수 있지만, 생존 숙련이 있는 사람은 폭풍이 와도 안 날아가게 친다는 식입니다. 이런 접근은 5판의 '능력치 + 기술(proficiency bonus)' 구조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두 번째 변화는 마법 시스템, 특히 클레릭(성직자) 계열의 주문 체계를 '스피어(sphere)' 기반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2판에서는 클레릭과 드루이드 같은 프리스트 계열이 모든 신성 주문을 공유하는 대신, 각 신이나 신앙이 담당하는 스피어(Healing, Protection, War, Plant, Animal 등)에 따라 접근 가능한 주문이 달라졌습니다. Grimnir’s Grudge 블로그에서 2판 프리스트 스피어를 정리한 글은, 2판 기본 룰북과 'Tome of Magic', 'Player’s Option: Spells & Powers'까지 포함해 각 스피어에 어떤 주문이 들어가는지를 컴파일하면서, 이 시스템이 '신마다 고유한 주문 리스트를 제공해, 같은 클레릭이라도 신에 따라 플레이 감각이 달라지게 하는 설계'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세계관(신격, 종교)과 규칙(주문 목록)을 긴밀하게 연결하는 시도로, 이후 3판의 도메인(Domain) 시스템, 발더스게이트 3에서 각 신마다 다른 주문과 보너스를 주는 구조로 이어집니다[^Nonweapon Proficiencies][^AD&D 2E and (non-weapon) Proficiencies][^2e Priest Spells by Sphere][^Player's Option: Spells & Magic][^2E Priests Vs 5E Domains].

세 번째는 '반인족(humanoid 및 half-human) 요소와 노골적인 악 및 선 개념의 제거 혹은 완화'입니다. 2판의 큰 특징 중 하나는, 룰북에서 악마(demon), 데빌(devil), 하프오크(half-orc) 같은 요소를 삭제하거나 축소한 것이었습니다. D&D 논란을 정리한 위키는, 사탄적 공황 논란 이후 TSR이 2판에서 악마 및 데빌 관련 몬스터를 제거한 것을 대표적인 움직임으로 꼽습니다. 동시에 2판 코어 규칙에서는 하프오크 플레이어 캐릭터가 사라졌고, 드라우 같은 '근본적으로 악한 종족'의 플레이어 옵션도 줄어들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악마와 반인족 = 사탄 숭배 및 인종차별적 이미지'라는 외부 비난을 완화하려는 목적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변화는 '도덕적 중립성'을 강조하는 방향입니다. AD&D 2판은 여전히 9칸 얼라인먼트(법 및 중립 및 혼돈 × 선 및 중립 및 악)를 유지했지만, 룰북의 서술과 모듈에서 특정 종족이나 직업의 얼라인먼트를 '본질적으로 악 및 선'이라고 단정하는 표현을 줄이려 했습니다. 대신 '대부분 이러한 경향을 보인다'는 식으로 서술을 완화했고, 모듈의 서사도 '악한 악당을 응징한다'에서 '각 세력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80-90년대 문화 전반이 도덕적 이분법에서 벗어나 복잡한 캐릭터와 갈등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움직였고, 2판의 '도덕적 중립성 강조'는 이런 흐름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이 변화는 훗날 5판의 'usually lawful evil' 같은 표현, 그리고발더스게이트 3에서 악마과 데빌 NPC들이 보다 입체적으로 묘사되는 경향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2E, Demons and Devils - where are they at?][^Dungeons & Dragons controversies][^D&D in the 80s, Fads, and the Satanic Panic][^Tabletop RPGs and the Satanic Panic][^Alignment (PHB)][^How Baldur’s Gate 3’s Main Five Devils Are Connected].

AD&D 1판은 능력치에 강력한 수정치를 부여하며 '능력치 중심 빌드'를 촉진했는데, 2판 설계자 팀은 일부러 이 경향을 완화하려 했습니다. 2판 룰북 자체는 1판의 능력치 표를 상당 부분 계승했지만, 캐릭터 생성 규칙과 추천 플레이 방식에서 '극단적인 능력치 빌드'를 덜 중요하게 만드는 방향을 택했습니다. 특히 기본 능력치 생성 방법으로 다시 '3d6을 각 능력치 순서대로 굴리는 방식'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 상징적입니다. AD&D 2e 플레이 경험을 회고한 'Learning to Play AD&D 2nd Edition' 글은,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는 4d6 드랍(4d6을 굴려 최저 하나를 버리고 나머지를 합산)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룰북 기본 규칙은 '3d6을 여섯 번 굴려 힘, 민첩, 체질, 지능, 지혜, 매력 순서대로 배정하라'고 요구했다고 소개합니다. 이 글은 '이 방식은 플레이어가 미리 캐릭터 컨셉을 정하고 그에 맞춰 능력치를 조정하기보다, 굴린 값에 맞춰 캐릭터 컨셉을 바꾸도록 유도하는 구조'라고 설명합니다. 이런 설계 의도는 능력치가 '빌드 최적화의 수단'이 아니라 '캐릭터를 정의하는 무작위 요소'로 다시 돌아가기를 바랐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Brian Escobar가 여러 판의 능력치 생성 방식을 비교한 글에서도, AD&D 2판이 제시한 네 가지 생성 방법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이 3d6 순서 배치였고, 고성능 캐릭터를 위한 4d6 드랍나 다른 방법들은 선택 규칙이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런 선택은 1판 후반과 Dragon 잡지에서 유행하던 '능력치 미니맥싱' 문화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했습니다. 2판은 시스템적으로는 1판의 능력치 수정치 표를 그대로 쓰면서도, 기본 생성 규칙과 모듈의 난이도 밸런스를 '평균적 캐릭터'에 맞춰 조정함으로써 '능력치가 높지 않아도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주려 했습니다. 능력치의 상대적 비중을 줄이고 클래스와 장비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시도는, 경험치와 클래스 진행, 아이템 디자인에서도 드러납니다. AD&D 2판에서는 프리스트 스피어 구조와 도메인 비슷한 개념, 각 클래스별 키트(kit)를 통해 클래스 선택이 플레이스타일과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강화했고, 스페셜리스트 위저드, 스페셜티 프리스트 같은 변형 클래스들이 강력한 개성을 제공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능력치가 전투와 판정에 미치는 보너스는 1판과 동일하거나 일부 축소된 수준으로 유지되었습니다. 그 결과, 플레이 경험에서는 '힘 18 및 00 전사 vs 힘 15 전사'의 차이보다 '팔라딘 vs 레인저 vs 바바리안' 같은 클래스 선택과 '어떤 마법 검과 갑옷을 획득했는가'가 더 크게 체감됩니다. r/osr와 2e 플레이어 회고 글들에서도, 2판을 두고 '능력치보다 클래스와 장비가 플레이 경험을 정의한다'는 말이 반복됩니다[^War pick has no property?][^Rolling Ability Scores (PHB)][^Are there any non-random methods of generating stats in AD&D 2nd ed?][^Rolling Ability Scores in Every Edition of D&D and Then Some][^Making Ability Scores mean something other than a means to a modifier?].

이러한 방향성은 어느 정도 의도적인 '능력치 약화'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AD&D 1판 후기에는 능력치를 높이기 위한 각종 방법(마법 아이템, 포션, 레벨 업 표 등)이 많아졌고, '힘 18, 체질 18, 지혜 18' 같은 극단적 캐릭터가 흔했습니다. 2판은 이런 극단을 다소 억제하려 했습니다. 공식 텍스트에서 '능력치가 낮아도 괜찮다, 그게 캐릭터를 더 흥미롭게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모듈에서도 능력치보다 플레이어 선택과 DM 연기가 더 중요한 상황을 많이 제시했습니다. 물론 현실 플레이에서는 여전히 많은 그룹이 4d6 드랍, 3d6 × 12 후 선택 같은 강력한 롤 방식을 사용했고, 이 때문에 2판 설계자의 '능력치 균질화' 의도가 항상 지켜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규칙 텍스트 수준에서는, 2판이 분명히 '능력치를 시스템의 중심에서 한 걸음 물리고, 클래스와 세계관, 비전투 활동, 서사에 비중을 두려 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방향은 이후 3판에서 완전히 뒤집힙니다. 3판의 d20 시스템은 능력치를 중심으로 한 선형 수정치 구조를 도입하고, 특전(Feat)과 멀티클래스 시스템을 통해 '빌드 중심' 설계를 극대화했습니다. 2판과 3판의 이 대비는, 한 게임이 에디션마다 '능력치, 클래스, 장비, 서사' 사이의 비중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2판의 '능력치 의도적 약화'는, 밸런스와 진입장벽을 고려해 어떤 요소를 강조할지 결정하는 디자인 선택의 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발더스게이트 3은 5판의 단순한 능력치 및 수정치 구조를 따르면서도, 표면 효과, 반응, 환경 상호작용 등 다른 시스템 층을 추가해 '능력치 자체의 압도적 비중'을 줄이고, 플레이어의 위치 선정, 행동 순서, 지형 활용 같은 요소가 더 크게 느껴지도록 설계한 게임입니다. 이 점에서 2판의 설계 목표와 현대 CRPG의 방향 사이에는 흥미로운 공명점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Rolling Ability Scores in Every Edition of D&D and Then Some][^Balancing the ability scores and their contribution to different classes][^Are there any non-random methods of generating stats in AD&D 2nd ed?][^What is the point of having only even ability scores matter (in terms of game design)?].

1990년대 후반은 TRPG 산업 전반에 위기감이 퍼지던 시기였습니다. 80년대 중후반까지는 TSR과 여러 퍼블리셔들이 다양한 룰을 쏟아내며 시장이 빠르게 성장했지만, 90년대 들어 비디오게임과 CCG(특히 매직 더 개더링)의 등장, 그리고 RPG 붐이 한 번 꺾이면서 테이블탑 RPG 시장은 매출과 관심 모두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게임 디자이너 그레이엄 데이비스(Graeme Davis)는 '테이블탑 RPG의 경제학'을 다룬 글에서, 80-90년대에 RPG를 출판하는 일이 레이아웃과 인쇄, 유통 등에서 큰 비용과 리스크를 안고 있었고, 90년대 후반에는 과포화된 시장과 낮은 판매량 때문에 많은 라인이 단종되었다고 회고합니다. EN World에서 3판 20주년을 돌아본 글 역시 '90년대 중후반은 D&D 출범 이후 RPG 시장의 최저점 중 하나였고, 많은 게이머가 다른 시스템으로 떠나거나 아예 취미를 접었다'고 말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1997년 위저즈 오브 더 코스트(Wizards of the Coast, WotC)가 TSR을 인수하고, D&D를 다시 살려야 하는 책임을 떠안게 됩니다. 새로운 D&D는 단순한 룰 개정이 아니라, '시장 전체를 다시 활성화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어야 했습니다. 3판 설계자들은 '동일 레벨의 캐릭터는 어느 정도 균형 잡힌 전투력을 가져야 한다', '룰이 일관되고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다른 장르와 게임으로 확장 가능한 시스템 기반이어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또 3판이 동종 업계의 경쟁작인 GURPS, Rolemaster 등 복잡한 시스템에 비해 진입장벽은 낮추고, 깊이는 유지하는 쪽으로 설계되었습니다. 요약하면, 90년대 시장 침체 속에서 3판은 '룰의 단순화과 통합'과 '개방형 플랫폼 전략'을 통해 TRPG 산업을 다시 키우려는 해결책으로 기획된 셈입니다[^On the Economics of Tabletop RPGs][^What explains the shrinking of the RPG market post-90s?][^History of role-playing games][^D&D 3rd edition design goals (Interviews, essays, articles etc)][^Wizards of the Coast to Acquire TSR Inc (1997)].

3판의 가장 큰 특징은 'd20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통합 판정 메커니즘입니다. 이전 에디션에서는 공격, 세이브, 능력 판정, 도적 기술 판정 등마다 서로 다른 주사위와 표, 공식을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THAC0와 하향식 아머 클래스, 1-100% 기반 도적 기술, 3d6 기반 능력 판정 등이 그 예입니다. 3판은 이를 모두 폐기하고, 단일한 공식인 'd20 + 수정치 vs 난이도(DC)'로 통합했습니다. D&D 에디션 변천을 정리한 위키는 3판을 두고 ‘d20 시스템은 이전 에디션보다 훨씬 통합된 메커니즘을 사용해, 거의 모든 행동을 d20을 굴리고 적절한 수정치를 더한 뒤 난이도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판정한다'고 설명합니다. '에디션별 핵심 메커니즘 변화'는 3판과 3.5판이 THAC0, 내림식 AC 같은 혼란스러운 요소를 제거하고 직관적인 d20 판정 시스템을 도입해, 유저 경험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이 통합 규칙의 핵심은 선형성(linearity)입니다. d20은 1-20까지 균일한 분포를 가지며, 각 눈의 확률은 5%입니다. 거기에 능력 수정치, 숙련 보너스, 기타 보너스를 더한 값을 난이도와 비교하면, 수정치가 1 올라갈 때마다 성공 확률이 정확히 5%씩 증가합니다. 이 선형성 덕분에 디자이너는 '+1이 의미하는 것'을 명확히 알고 밸런스를 조정할 수 있고, 플레이어도 자신이 받은 보너스가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Justin Alexander’가 스킬 시스템의 복잡성과 효용을 논한 글에서, d20 판정의 성공 확률을 계산하는 공식은 (20 – DC + 수정치 + 1) × 5%라고 분석되는데 이는 곧 '수정치가 커질수록 높은 난이도도 도전 가능해지고, 낮은 수정치로는 DC 20 이상에서 성공 확률이 0에 가깝다'는 의미입니다. 이 선형 구조는 고난이도를 '능력과 숙련의 차이가 크게 드러나는 영역'으로 설정합니다[^Pre-3e mechanics vs d20 system mechanics][^What is the D 20 system and how is it different from DND 3.5 or PF1E?][^How Difficulty Class and the D20 engine ruined roleplaying][^How D&D Editions Evolved Core Mechanics][^In Defense of Ability Scores].

이 통합 시스템은 룰의 학습 곡선을 크게 낮추었습니다. 예전처럼 ‘이 상황은 d6, 저 상황은 d%, THAC0 표 등등’을 기억할 필요 없이, 플레이어는 'd20을 굴리고 수치를 더한 뒤 목표값과 비교한다'만 이해하면 대부분의 상황을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 커뮤니티의 논의에서도, 많은 플레이어가 3판을 두고 '초보자에게 설명하기 편해졌다. 높은 숫자가 항상 좋은 것이고, 같은 공식이 반복되니 혼란이 적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습니다. 이 점에서 d20 시스템은 단순한 룰 변경이 아니라, D&D를 '하나의 일관된 시스템'으로 바라보게 만든 사고방식의 변화였습니다. 하지만 선형성과 통합 시스템은 새로운 결과도 가져왔습니다. 하나는 '수치 경쟁'의 심화입니다. 3판에서는 모든 유의미한 행동이 'd20 + 수정치 vs DC'로 환원되기 때문에, 수정치를 올리는 모든 요소(능력치, 특전, 마법 아이템, 시너지, 상황 보너스)를 최대한 모으면, 높은 DC를 거의 자동으로 통과하는 '최적화 빌드'가 가능해집니다. EN World 3판 20주년 회고 글은, 3판이 '같은 레벨의 캐릭터를 전투력 면에서 균형 잡게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매우 많은 옵션과 스택 가능한 보너스들이 결국 캐릭터 빌드의 격차를 크게 만들었다'고 평가합니다. 또 다른 결과는 '3판의 복잡한 스킬과 특전 구조가, 룰을 이해하고 최적화할 수 있는 플레이어와 그렇지 않은 플레이어 사이에 큰 격차를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즉, d20 시스템은 이해와 구현을 단순화했지만, 그 위에 쌓인 선택지와 수치들의 조합은 매우 복잡한 메타게임을 낳았습니다[^What is the D 20 system and how is it different from DND 3.5 or PF1E?][^How D&D Editions Evolved Core Mechanics][^Rolling Ability Scores in Every Edition of D&D and Then Some][^The 20th Anniversary of 3rd Edition D&D][^The Worst Official D&D Rules That We're Glad Are Gone].

3판과 함께 나온 또 다른 혁명은 d20 시스템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법적과 경제적 구조, 즉 오픈 게임 라이선스(Open Game License, OGL)였습니다. OGL은 위저즈 오브 더 코스트가 2000년에 발표한 라이선스로, d20 시스템의 핵심 규칙과 특정 콘텐츠를 '오픈 게임 콘텐츠(Open Game Content)'라는 이름으로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허용하는 조항을 담고 있었습니다. 위키의 OGL 항목은, OGL v1.0 및 1.0a가 '3판 규칙 일부를 공개 라이선스로 풀어, 서드파티 출판사가 D&D 호환 규칙과 콘텐츠를 자유롭게 출판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합니다. 톰 맥킨티(Tomas McIntee)는 'D&D와 오픈 게이밍의 짧은 역사' 글에서, 이 라이선스가 사실상 '롤플레잉 게임계의 오픈소스 실험'이었다고 평가합니다. 핵심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WotC는 3판의 시스템과 SRD(System Reference Document)에 포함된 규칙을 OGL로 공개하고, 타사 출판사들은 이를 바탕으로 d20 기반 룰과 모듈, 설정, 새로운 클래스를 제작합니다. 이때 타사는 로열티를 지불할 필요가 없고, 단순히 OGL 조항을 준수하기만 하면 됩니다. Tomas의 글은 이 전략이 'D&D의 시스템을 산업 표준으로 만들고, 타사 콘텐츠가 모두 D&D 생태계 안으로 편입되도록 하는 플랫폼 전략'이었다고 분석합니다. 실제로 2000년대 초 d20 붐(d20 boom) 기간 동안 파이조(Paizo), 그린 로닌(Green Ronin), 코볼드 프레스(Kobold Press) 같은 출판사들이 d20 룰을 사용한 수많은 서플리먼트와 독립 게임을 냈고, 'd20 모던', '스타워즈 d20', '콘안 d20' 등 다양한 장르로 확장되었습니다[^Open Game License][^Open Gaming License: A Brief History][^Setting the record straight on the Open Game License (OGL)][^History of the Open Gaming License][^A Quick History of the D&D Open Gaming License][^d20 System].

OGL의 영향은 최소 두 가지 측면에서 게임 디자인에 중요했습니다. 첫째, 룰 설계의 '공개 표준화'가 가능해졌다는 점입니다. 서로 다른 출판사가 같은 규칙 기반을 공유하면, 플레이어는 한 번 d20을 익힌 뒤 다양한 세계와 모듈을 오갈 수 있습니다. EN World 글이 지적하듯, 3판과 OGL 조합은 '플레이어와 디자이너에게 d20 시스템이라는 공통 언어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인디 디자이너와 소규모 출판사들이 실험적인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는 점입니다. WotC 공식 제품이 다루지 않는 틈새 장르나 실험적 규칙은, 서드파티 출판물을 통해 시장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런 구조는 오늘날 OSR, 인디 TRPG 씬이 드라이브스루RPG 같은 플랫폼에서 보여주는 '룰 해킹과 변형 문화'의 전신입니다. 물론 OGL은 이후 3.5판, 4판, 5판을 거치며 여러 논란과 변화를 겪었고, 2023년 5판 OGL 개정 시도에서는 큰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습니다[^Dungeons and Dragons 4th Edition Review][^Why turn-based combat works in Baldur's Gate 3]. 하지만 2000년 3판 OGL의 도입은, '게임 시스템을 폐쇄 IP가 아니라 공유 플랫폼으로 보는 관점'을 처음으로 대형 퍼블리셔 차원에서 실천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발더스게이트 3와 같은 CRPG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D&D 5판 SRD가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라리안 같은 스튜디오가 '5판 호환 시스템을 구현한 CRPG'를 만들 수 있는 법적과 문화적 기반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간접적인 영향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Open Game License][^Open Gaming License: A Brief History ][^Dungeons & Dragons controversies][^Setting the record straight on the Open Game License (OGL)][^The 20th Anniversary of 3rd Edition D&D][^Why turn-based combat works in Baldur's Gate 3].

3판에서 도입된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능력치(Ability Score)와 능력 수정치(Ability Modifier) 관계를 명확한 수학 공식으로 정의했다는 점입니다. 이전 에디션에서는 각 능력치 구간마다 별도의 표를 보고 수정치를 확인해야 했고, 능력치 간격이 일정하지 않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3판은 이 관계를 '수정치 = (능력치 – 10) 및 2, 내림'이라는 간단한 공식으로 통합했습니다. 능력치의 역사와 역할을 논하는 글에서, 3판 이후 D&D에서 능력치의 주요 용도는 중요한 능력 수정치를 계산하는 것이 되었고, 이 수정치는 –5에서 +5 범위 내에서 d20 판정에 더해지는 숫자입니다. 이 공식을 통해 디자이너는 능력치 상승이 게임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고, 플레이어는 능력치가 변했을 때 수정치를 손쉽게 계산할 수 있습니다. 이 공식의 장점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선형성이 유지됩니다. 능력치가 2점 증가할 때마다 수정치는 +1씩 증가하고, 각 +1은 d20 판정에서 5%의 성공 확률 증가를 의미합니다. 둘째, 시스템 전체에서 재사용이 쉽습니다. 같은 수정치가 공격 굴림, 세이브, 스킬 체크, 이니셔티브, AC 등 여러 곳에 일관되게 적용되므로, 설계자가 '어디에 어떤 수정치를 적용할지'를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습니다. 셋째, 능력치의 절대 값보다는 수정치가 중심이 되면서, 능력치 표 전체를 암기할 필요가 줄어듭니다. 실제로 3판 이후부터 플레이어와 DM은 '힘 18'이라기보다 '힘 수정치 +4'라는 표현을 더 자주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수치화는 능력치의 의미를 '서사적 개성'에서 '기능적 수치'로 더 강하게 옮기는 효과도 있습니다. Prismatic Wasteland 글은 능력치를 둘러싼 논쟁에서 '능력치는 캐릭터의 서사를 나타내는 잔재로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수정치를 계산하기 위한 데이터로만 볼 것인가'라는 두 입장이 있다고 소개합니다. 3판의 설계는 명백히 후자에 더 가깝습니다. 능력치는 이제 수정치를 만들기 위한 원재료이며, 대부분의 규칙은 수정치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이런 전환은 3판의 '빌드 게임화'와 잘 맞아떨어지고, 5판의 Bounded Accuracy 설계에서도 동일한 공식을 계속 사용하는 흐름으로 이어집니다[^Ability Modifiers? (3.5)][^Ability Modifiers in Immortal Rules][^In Defense of Ability Scores][^Bounded Accuracy 5e [DnD Design Guide]].

3판은 클래스 설계에서도 큰 변화를 도입했습니다. 그중 가장 상징적인 것이 '프레스티지 클래스(Prestige Class)'입니다. 프레스티지 클래스는 3판 코어 룰과 'Dungeon Master’s Guide'에서 정의된 개념으로, 일반 클래스(파이터, 위저드, 클레릭 등)로 일정 레벨 이상 플레이한 캐릭터가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전문화 경로'로 진입할 수 있는 상위 클래스입니다. 'Prestige Class Design Basics' 글은 프레스티지 클래스를 '특수한 입문 조건(Prereq인터페이스sites)과 독자적 능력 테이블을 가진 고급 클래스'로 정의하면서, 설계 시 고려해야 할 요소로 입문 난이도, 파워 곡선, 컨셉의 명확성을 강조합니다. 프레스티지 클래스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캐릭터 진행 곡선의 단조로움을 해소하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20레벨 단일 클래스 구조에서는, 특정 레벨 이후에는 새로운 능력이 적어지고 '레벨이 올라도 큰 변화가 없다'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프레스티지 클래스는 중간에 분기점을 제공함으로써 플레이어가 새로운 능력과 컨셉를 얻도록 했습니다. 둘째, 세계관과 규칙을 결합하는 수단입니다. 예를 들어 '아케인 아처(Arcane Archer)'는 엘프와 궁술, 비전 마법을 결합한 세계관 속 특수 훈련을 규칙으로 표현하고, '섀도댄서(Shadowdancer)'는 특정 그림자 마법 비밀결사의 일원이라는 설정과 연결됩니다. 20레벨 기본 클래스와 프레스티지 클래스의 파워를 비교하는 글들을 보면 많은 프레스티지 클래스가 사실상 특정 컨셉를 강화하거나 베이스 클래스의 약점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프레스티지 클래스는 파워 인플레이션과 밸런스 문제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Paizo 토론에서는 '프레스티지 클래스의 75%는 베이스 클래스보다 약하고, 나머지 일부는 지나치게 강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하지만 디자인 관점에서 보면, 프레스티지 클래스 도입은 '클래스 진행을 계단형으로 설계하고, 중간에 선택 가능한 분기점을 제공해 장기 캠페인에 변화를 주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발더스게이트 2는 2판 기반 특수 키트와 클래스 변형을 통해 유사한 효과를 이미 보여준 바 있고, 3판의 프레스티지 클래스는 이를 시스템 차원에서 정식화한 셈입니다[^Baldur's Gate II: Shadows of Amn][^Baldur's Gate II: Shadows of Amn][^Baldur's Gate II: Shadows of Amn]. 발더스게이트 3이 사용하는 5판 SRD에는 프레스티지 클래스 개념이 그대로 들어 있지는 않지만, 서브클래스(subclass)와 멀티클래스 기능이 비슷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 구조의 원형은 3판의 프레스티지 클래스 설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List of Dungeons & Dragons 3rd edition prestige classes][^3.5 Players and veterans, explain Prestige Classes from experience?][^Prestige Classes: The Gems of 3e D&D][^Podcast Transcript: Prestige Classes (D&D 3e/3.5e) with Sam Roberts][^Designing Prestige Classes #1: Prestige Class Design Basics, Part One][^Baldur's Gate: Classes and Kits].

D&D 3판과 d20 시스템은 CRPG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직접적으로 3판 룰을 사용한 CRPG로는 네버윈터 나이츠(Neverwinter Nights)', 나이츠 오브 더 올드 리퍼블릭(Knights of the Old Republic)', 템플 오브 엘리멘탈 이블(Temple of Elemental Evil)' 등이 있으며, 간접적으로 d20 계열의 통합 판정 구조를 채용한 게임들은 훨씬 더 많습니다. TTRPG 메커니즘 진화를 정리한 글들은, 3판 d20 시스템이 '턴 기반 전술, 스킬, 특전, 세이브를 모두 하나의 판정 구조로 통합함으로써 디지털 이식과 구현을 상당히 쉽게 만들었다'고 평가합니다. 프로그래머는 'd20 굴림 + 수정치 vs DC'를 하나의 함수로 구현하고, 스킬과 능력, 공격 판정을 모두 이 함수에 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CRPG AI나 인터페이스 설계에도 장점이 있어서, 예를 들어 툴팁에 'd20 12 + 힘 수정치 3 + 숙련 보너스 2 = 17 ≥ DC 15, 성공'을 일관된 형식으로 보여줄 수 있습니다. GamesRadar에서 CRPG 베테랑 조쉬 소여(Josh Sawyer)를 인터뷰한 기사에서는, 발더스게이트 3와 D&D 5판의 관계를 논하면서 '3.5판이 비디오게임 어댑테이션 측면에서 더 나은 에디션이었느냐'는 질문이 나옵니다. 소여는 '5판은 학습과 접근성 측면에서 3.5판보다 낫고, CRPG로 옮기기에는 인터페이스와 복잡성 문제 때문에 도전이 있지만, 여전히 d20 계열 시스템으로서 좋은 선택'이라고 답합니다. 이 대화는 5판이 3판의 d20 시스템을 간소화한 버전이라는 점, 그리고발더스게이트 3이 이 단순화된 d20 구조를 기반으로 '표면 효과, 반응, 고도' 같은 자체 시스템을 추가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Tildes.net의 'Baldur's Gate Effect' 토론 글도, 발더스게이트 3이 수많은 신규 플레이어에게 'd20 시스템 및 5판 D&D'를 소개하는 창구가 되었다고 소개합니다. 결국 3판 d20 혁명은, 단순히 한 에디션의 룰 개정이 아니라, 'TRPG와 CRPG 모두에서 d20 + 수정치 vs DC라는 공통 언어를 제공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판은 룰 복잡성과 최적화 문제로 비판도 받지만, 통합 판정 시스템, 수학적으로 명확한 수정치 공식, 프레스티지 클래스와 스킬 및 특전 구조, 그리고OGL을 통한 시스템 개방이라는 네 가지 축을 통해, 이후 5판과 발더스게이트 3까지 이어지는 디자인 사슬의 중간 고리 역할을 했습니다. 발더스게이트 3은 5판 위에 자체 시스템을 얹었지만, 그 밑바탕에 깔린 'd20로 모든 것을 판정하는 구조'와 '능력 수정치가 행동 거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설계'는 3판에서 처음 완전히 정립된 것입니다. 1990년대 위기 속에서 탄생한 이 시스템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TRPG와 CRPG 양쪽에서 여전히 가장 널리 쓰이는 규칙 언어로 남아 있습니다[^List of Dungeons & Dragons 3rd edition prestige classes][^d20 System][^How D&D Editions Evolved Core Mechanics][^What is the D 20 system and how is it different from DND 3.5 or PF1E?].

D&D 3.5판은 표면적으로는 3판의 '자잘한 문제 수정판'으로 소개되었지만, 실제 플레이어 경험과 메타 측면에서 보면 '옵션과 파워의 폭발적 확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으로 평가됩니다. 2003년 3.5판은 '수많은 작은 규칙 변경과 함께 DMG와 MM의 확장을 포함한 개정판'으로 소개되며, 당시 WotC는 이를 '하프 에디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3.5가 나온 이후 규칙 지원 전략은 3판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수많은 스플랫북(splatbook), 서플리먼트, 환경별과 테마별 소스북을 쏟아내는 방향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문제는 3.5는 곧 클래스, 프레스티지 클래스, 특전, 주문, 마법 아이템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캐릭터 옵션이 사실상 헤아리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입니다. r/dnd 및 r/rpg 토론을 보면, 당시 플레이어들은 한편으로는 이 많은 옵션을 즐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옵션 그 자체가 하나의 미니게임이 되어 버렸다'고 회상합니다. 2024년 한 유저는 '플레이어 옵션은 좋아한다. 하지만 옵션이 너무 많아 그것만 따로 게임이 되어버리는 상황은 싫다. 기본 클래스, 프레스티지 클래스, 특전, 주문, 마법 아이템의 조합을 분석하는 데만 시간이 너무 들어간다'고 적었습니다. 이런 증언은 3.5판이 사실상 '빌드 엔진'으로 작동했다는 점을 잘 보여 줍니다. 실제로 3.5 시절에는 Minmaxforum, Giant in the Playground 같은 포럼에서 '최적 빌드'를 찾기 위한 이론공학(Theorycrafting)이 하나의 문화가 되었고, 수많은 '티어 리스트'와 '원샷 빌드'가 공유되었습니다. 출판사 측의 사정을 고려하면, 이런 옵션 폭발은 어느 정도 의도된 전략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TRPG 시장에서 수익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책을 팔아야 합니다. 3.5판은 코어 룰북 세 권이 이미 잘 팔린 상태였기 때문에, 이후 매출은 대부분 'Complete Warrior', 'Complete Arcane', 'Races of Stone', 'Libris Mortis', 'Tome of Battle' 같은 확장 서적에서 나왔습니다. EN World 포럼에서 한 유저는 3.5 시절 스플랫북에 대해 '문제의 핵심은 파워 인플레이션이다. 스플랫북은 종종 ‘기본 룰보다 훨씬 강력한 요소를 제공해, 이 책을 가진 사람만 큰 이득을 본다’는 구조를 가지기 쉽다'고 소개합니다. 이는 곧 '책을 더 많이 사는 사람일수록, 더 좋은 옵션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메타로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옵션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결과, DM에게는 새로운 부담이 생겼습니다. 모든 서적을 다 읽지 않는 이상, 플레이어가 가져오는 프레스티지 클래스와 특전, 주문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3.5판이 '파워 인플레이션과 룰 붕괴의 정점' 역할을 했고, 4판은 이 추세를 되돌리려는 실패한 시도였습니다[^The D&D 4th edition renaissance: A look into the history of the edition, its flaws and its merits]. 즉, 3.5판의 옵션 폭발은 플레이어에게는 자유와 창의성을 제공하는 동시에, 설계자와 DM에게는 밸런스와 복잡도라는 두 가지 큰 부담을 안겨 준 셈입니다[^The Best and Worst of D&D 3.5][^What do you think of Splat Books][^The D&D 4th edition renaissance: A look into the history of the edition, its flaws and its merits][^3.5e How does eldritch blast work?][^Re: How did the Char Ops forum/culture come to be?][^D&D 3.5 Character Sheet Comments and Questions].

3판에서 이미 능력치 수정치 공식 ((능력치 - 10) / 2)가 도입되면서, 능력치가 d20 판정에 미치는 영향은 명확하고 강력해졌습니다. 3.5판은 이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수많은 보너스와 스택 가능한 효과, 마법 아이템, 버프 주문을 통해 능력치의 실질 영향력을 더 키웠습니다. 그 결과, 중과 고레벨 플레이에서는 '능력치와 수정치가 낮은 캐릭터는 아예 게임에 참여하지 못하는 수준'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EN World와 Paizo 포럼의 논의를 보면, 3.5 및 파이조 경계에서 '고레벨 마법사와 클레릭, 드루이드의 주문과 시너지 조합이 다른 클래스들을 압도했다'는 점이 반복해서 비판됩니다. 3.5판에서 능력치는 여러 층위에서 중첩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첫째, 기본 공격과 세이브과 스킬 판정에서 수정치로 사용됩니다. 둘째, 많은 주문과 특전의 전제 조건(예: '지능 13 이상, 캐릭터 레벨 5 이상')으로 등장합니다. 셋째, 마법 아이템과 버프가 능력치에 직접 보너스를 주면서, 수정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 있습니다. 'DMing with Charisma' 블로그는 능력치 제거를 상상하는 글에서 3.5 구조를 분석하며, '시전자는 특정 레벨 이상의 주문을 쓰기 위해 10+주문 레벨의 능력치를 요구했고, 특전은 대부분 능력치 13, 15, 17 같은 홀수 수치를 요구했다'고 정리합니다. 이 글은 '캐스터는 높은 능력치가 없으면 상위 주문을 시전할 수 없고, 전사는 특정 특전을 쓰려면 능력치 요구치를 맞춰야 해서, 능력치는 빌드 가능성과 직결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TVTropes의 'Rocket-Tag Gameplay' 항목에서는 3.5판이 '로켓 태그(한 번 맞으면 거의 끝나는 게임)'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 중 하나로, 고레벨에서 공격력과 주문 파워가 체력 증가 속도를 앞지르는 구조를 꼽습니다. 이 글은 3.5 고레벨에서 공격이 대체로 '한 번 맞으면 중립화되거나 사망에 이르는 수준'이라서, 방어보다는 선공, 회피, 광역 무력화 전략이 더 중요해졌다고 소개합니다. 능력치가 높아질수록 이런 '한 번에 끝내는' 옵션들이 더 잘 통하고, 반대로 능력치가 낮으면 고레벨 전투에서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요약하면, 3.5는 선형 d20 시스템 위에 지수적으로 커지는 능력치과 보너스과 주문 효과를 쌓아, 고레벨로 갈수록 파워 격차와 '한 방 게임' 위험을 키운 셈입니다[^Ability Modifiers? (3.5)][^D&D 3.5 Character Sheet Comments and Questions][^Removing Ability Scores][^Rocket-Tag Gameplay][^The 20th Anniversary of 3rd Edition D&D].

3판에서 특전(Feat)은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의 핵심 요소였습니다. 3.5판은 이 구조를 확대하면서 더 많은 특전과 더 복잡한 전제 조건을 도입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홀수 능력치'의 중요성이 설계적으로 크게 올라갔습니다. 능력치 수정치는 짝수에서만 변화하지만, 많은 특전 전제 조건이 13, 15, 17 같은 홀수 능력치를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레딧에서 능력치와 수정치에 대한 토론 중 하나는 '전사 힘 12와 힘 13은 명중률과 피해는 같지만, 힘 13 전사는 파워 어택(Power Attack)을 선택할 수 있고, 힘 12 전사는 그렇지 못하다. 이는 홀수 능력치가 특정 빌드를 여는 ‘문턱’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각 에디션의 특전은 홀수 능력치를 전제 조건으로 사용하는데, 이는 의도적으로 홀수 능력치를 유의미하게 만들기 위한 설계로 보입니다[^D&D Stats in Simple Language]. 전사 입장에서는 힘 13이 없는 한 파워 어택과 클리브 같은 핵심 근접 특전에 접근할 수 없고, 민첩 13이 없으면 투 웨폰 파이팅(Two-Weapon Fighting) 계열로 갈 수 없습니다. 시전자 역시 법사 지능 13, 15 등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메타마법 특전과 상위 주문 접근성이 달라집니다. 이 구조는 능력치 배분과 성장 계획을 ‘특전 목록'과 강하게 결합시키는 셈입니다. 이 설계는 두 가지 결과를 낳았습니다. 하나는 빌드 최적화 측면에서, 플레이어가 '레벨 1부터 20까지의 특전과 능력치 상승 계획을 미리 짜 두지 않으면, 중간에 필수 전제 조건을 놓쳐 빌드가 망가질 수 있다'는 압박입니다. 'EN World’에서 3.5 및 파이조의 선택 과잉을 논의하는 스레드에서는, 한 유저가 '3.5와 파이조는 선택지가 너무 많고, 서로 전제가 얽혀 있다 보니, 사실상 1레벨에서 최종 빌드를 다 계획해야 했다'고 말합니다. 이는 '능력치와 특전의 강한 연동'이 가져온 설계 부작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능력치가 실제 판정보다 빌드 잠금 해제용 키(key) 역할을 더 중요하게 갖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능력치는 이제 '수정치를 만드는 원재료'이자, '특전과 상위 능력에 접근하기 위한 문턱'으로 기능합니다. 게임 디자인 관점에서 보면, 이런 구조는 능력치를 '장기 계획 리소스'로 만들지만, 동시에 '잘못 올리면 돌이키기 어려운 함정 요소'로 바꾸게 됩니다. 3.5의 많은 빌드 가이드가 '처음 캐릭터를 만들 때부터 20레벨까지 전제 조건을 계산하라'고 조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Attribute requirements with odd numbers for feats like 13/15 are pure evil and whoever came up with it is an asshole][^D&D 3.5 question on Power Attack calculations][^D&D Stats in Simple Language][^Is there a purpose in odd ability scores?][^What is the point of having only even ability scores matter (in terms of game design)?].

3.5판과 파이조 1판(Pathfinder 1e)에 대한 가장 흔한 비판은 '선택은 좋은데, 너무 많아서 마비를 일으킨다'는 점입니다. EN World에서 5판의 선택 수를 논의하던 스레드에서 한 참가자는 '3.5와 파이조는 반대 방향으로 너무 멀리 갔다. 선택지는 많지만, 상당수가 전제 조건과 상호 의존성이 심해, 사실상 1레벨에서 1-20레벨 빌드를 다 확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런 구조를 '옵션 분석 마비(option paralysis)'로 부르며, ‘선택지는 많지만 그중 상당수는 함정이거나 최적 도달을 막는 경로라, 정보를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더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라고 묘사합니다. 크레이튼 브로드허스트(Creighton Broadhurst)는 ‘선택의 역설(The Paradox of Choice)'을 TRPG에 적용한 글에서,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의 개념을 빌려 '선택이 일정 수준까지는 만족도를 높이지만, 그 수준을 넘어서면 오히려 결정을 어렵게 하고, 결정 후에도 ‘더 나은 선택을 하지 못했다’는 후회를 키운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3.x 및 파이조 스타일의 방대한 특전, 스킬, 클래스, 프레스티지 클래스, 주문 목록을 예로 들며, DM과 플레이어 모두가 '모든 옵션을 검토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자신이 ‘최선이 아닌 선택’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고 소개합니다. 이는 시스템이 제공하는 자유도가 오히려 피로와 불만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든다는 뜻입니다. 'RPG Codex’나 'EN World’ 같은 커뮤니티의 비판 글들을 보면, 3.5에서 '한 레벨업 때마다 가능한 선택지 수십 개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하고, 이 선택이 이후의 전제 조건과 빌드 루트를 결정하기 때문에, 매번 레벨업 때마다 빌드 전체를 다시 검토해야 하는 느낌'이 있었다는 증언이 많습니다. DM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플레이어가 가져오는 빌드와 옵션이 너무 다양하다 보니 '이 캐릭터가 어떤 파워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데 많은 시간이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투 준비와 진행 속도가 느려지고, 플레이어들도 자신의 캐릭터 시트를 계속 들여다보며 '어떤 옵션을 쓸지' 고민하느라 템포가 떨어지기 쉽습니다[^Too many choices? (Options Paralysis)][^Gaming Advice: The Paradox of Choice][^What do you think of Splat Books][^Players Often Paralyzed by Choice].

The Angry GM아 4판을 평가하며 '사람들은 4판의 느린 전투를 ‘분석 마비’ 탓으로 돌리지만, 실제로는 플레이어가 매 턴 자신의 파워 목록을 다시 읽어야 해서 생기는 ‘파싱 시간’ 문제였다'고 말하듯, 3.5의 문제도 단순히 선택이 많기 때문이라기보다 '선택지의 양과 구조가 플레이 템포와 인지 부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3.5의 설계는 '플레이어에게 가능한 많은 자유를 주자'는 선의에서 출발했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그룹에서 '룰을 알고 최적화하는 사람만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뒤처진다'는 계층화를 낳았습니다. 이러한 3.5판의 경험은, 이후 5판과 발더스게이트 3 설계에 중요한 반례로 작용했습니다. 5판은 능력치 수정치 범위를 좁히고(Bounded Accuracy), 특전 수를 줄이고, 클래스별 서브클래스와 몇 개의 큰 선택만 제공하는 방향으로 복잡도를 낮추려 했습니다[^D&D 5e/5.5e Rules – Bounded Accuracy!][^Advantage vs Disadvantage : What's the Math][^Bounded Accuracy]. EN World의 논의에서도 많은 플레이어가 '5판은 여전히 의미 있는 선택이 있지만, 3.5만큼 빌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해야 하는 압박은 없다'고 말합니다. 발더스게이트 3은 5판 구조를 기반으로 하면서, 환경 상호작용과 표면 시스템, 반응 같은 '룰 외적' 요소를 전투 깊이의 주요 원천으로 삼습니다. 이는 '빌드 중심 옵션'보다 '상황 중심 옵션'을 강조하는 설계로, 3.5의 옵션 폭발과 분석 마비에서 얻은 교훈을 반영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The Best and Worst of D&D 3.5][^Jans Token Pack 30 - Constructs (FG VTT)][^Why turn-based combat works in Baldur's Gate 3][^D&D 5e/5.5e Rules – Bounded Accuracy!].

4판은 내부 개발자들이 공개적으로 인정하듯, ‘모든 클래스가 전 레벨 구간에서 비슷한 영향력을 가지게 하자'는 목표 아래 설계된 판이다. 3.5판에서 시전계(위저드, 클레릭, 드루이드)가 중과 고레벨에서 전사 계열을 압도하던 구조에 대한 반작용이 4판 설계의 출발점이었습니다. 4판의 '통일된 진행 구조(unified progression table)’가 핵심 변화 중 하나입니다. 모든 클래스가 같은 레벨에 같은 수의 파워를 얻고, 레벨 전 구간에서 비슷한 전투 영향력을 갖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특히 3.5판 Tome of Battle: Book of Nine Swords'가 4판 설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고, '마샬 계열을 ‘파워를 가진 존재’로 만드는 철학'이 4판 전체로 확장되었습니다. EN World의 '클래스 밸런스 접근' 논의에서도, 4판이 '클래스간 전투 기여도가 비슷하도록, 각 클래스에 전투 역할(role)과 파워 구조를 부여했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전사(Fighter)는 디펜더(Defender), 로그(Rogue)는 스트라이커(Striker), 위저드(Wizard)는 컨트롤러(Controller), 클레릭(Cleric)은 리더(Leader) 같은 식으로, 각 클래스는 역할과 플레이 패턴이 명확히 정의되어 있었습니다. 4판 이전에는 어떤 레벨 구간에서는 법사만 빛나고, 다른 구간에서는 전사만 쓸 만했지만, 4판에서는 언제나 모든 클래스가 전투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밸런스와 접근성의 승리'라고 평가했고,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클래스의 비대칭성과 고유함이 사라졌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therpggazette 글은 4판 설계의 키워드를 '밸런스와 접근성(balance and accessibility)'이라고 요약합니다. 복잡하고 제각각이던 이전 에디션과 달리, 4판은 클래스마다 같은 구조의 파워 카드(At-Will, Encounter, Daily, Utility)를 제공함으로써 신규 플레이어도 '내 차례에 할 수 있는 일'을 카드 한 장씩 보고 선택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런 접근은 보드게임과 TCG 설계 경험을 TRPG에 적용한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통일성과 명료성이 '플레이 감각이 비슷한 클래스들'이라는 비판으로도 이어졌습니다. 다시 말해, 4판의 설계 철학은 분명했고, 많은 면에서 성공적이었지만, 그 결과물이 기존 D&D 팬층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간 측면이 있었습니다[^The Best and Worst of D&D 3.5][^The D&D 4th edition renaissance: A look into the history of the edition, its flaws and its merits][^Riding a Horsey!].

4판은 클래스의 ‘힘의 근원'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Power Source’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기본 플레이어 핸드북(PHB1)에서는 Martial, Arcane, Divine 세 가지가 등장했고, 이후 PHB2, PHB3 등에서 Primal, Psionic, Shadow가 추가되었습니다. Egopoisoning의 Power Sources 개요 글은 4판의 파워 소스를 '클래스의 서사적과 기계적 정체성을 구분하는 틀'로 설명하면서 각 소스의 특징을 개괄합니다[^Talking 4e: Power Sources Overview and Martial]. Martial은 무기와 훈련, 인간의 의지에서 힘을 끌어오는 전통적인 전사형이고, Divine은 신과 신성력에서 힘을 얻는 성직자 계열, Arcane은 마법 에너지 조작, Primal은 자연과 정령의 힘, Psionic은 정신력, Shadow는 암흑과 그림자에 기반한 힘입니다. 위키의 'Magic in Dungeons & Dragons' 항목도 4판에서 마법이 Arcane, Divine, Primal로 나뉘어 재정의되었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Primal 소스는 야만전사(Barbarian), 드루이드(Druid), 샤먼(Shaman), 워든(Warden) 같은 클래스에서 사용되며, '자연과 정령의 힘, 변신과 격노'라는 테마를 공유합니다. Primal 클래스들은 공통적으로 변신과 상태 변화, 환경 제어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는 4판이 '소스별 플레이 감각'을 만들려고 했음을 보여 줍니다. Divine 소스는 'Channel Divinity'라는 공통 메커니즘을 통해, 각 신앙 클래스가 일정 횟수의 신성 능력을 사용하는 구조를 공유했다는 점에서, 5판의 Channel Divinity 개념의 직접적인 전신이기도 합니다. 다만 실제 플레이에서 파워 소스의 기계적 영향력은 비교적 제한적이었습니다. Egopoisoning 글은 '소스별로 약간의 특전(특정 소스 전용 피트, 에픽 특전 등)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플레이에서는 소스는 테마적 레이블 역할에 가깝고, 실제 파워 구조는 역할(role)과 클래스 설계가 더 중요했다'고 평가합니다. 일부 플레이어는 이를 두고 '소스 간 차이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고 비판했고, 다른 플레이어는 '세계관을 이해하기 쉽고, 향후 디자인 확장의 기준을 제공했다'고 긍정적으로 보았습니다. 디자인 관점에서 보자면, 파워 소스는 '클래스 분류와 확장 공간을 명시적으로 만드는 메타 구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Talking 4e: Power Sources Overview and Martial][^Magic in Dungeons & Dragons][^How can I help my players to create their characters?].

4판의 또 다른 중요한 실험은 Skill Challenge 시스템이었습니다. 이는 전투가 아닌 장면(외교, 추격, 방 탈출, 탐색, 사회적 갈등 등)을 여러 번의 스킬 판정으로 구조화하여, '전투와 유사한 난이도와 리스크를 가진 비전투 장면'을 만들기 위한 시스템이었습니다. 4판 DMG와 후속 서적은 Skill Challenge를 '정해진 성공 횟수와 실패 허용치를 가진 도전'으로 정의합니다. 예를 들어 '총 10번의 시도 중 5번 성공하면 목표 달성, 3번 실패하면 실패' 같은 구조입니다. 각 시도는 하나의 스킬 체크(예: Diplomacy, Bluff, Athletics 등)로 구성되고, DM은 어떤 스킬이 '주 스킬(primary)', 어떤 스킬이 '보조 스킬(secondary)'인지 설정합니다. Justin Alexander는 'Playtesting 4th Edition – Part 6: Skill Challenges'에서 이 시스템의 설계와 텍스트 간 불일치 문제를 비판적으로 분석합니[^Playtesting 4th Edition – Part 6: Skill Challenges]. 그는 Mike Mearls가 'Skill Challenge 시스템은 여러 번의 스킬 체크로 복잡한 활동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제 DMG 텍스트는 확률과 XP 배분, 난이도 설정에서 여러 버전이 섞여 있어 혼란을 줬다고 소개합니다. 또한 초기 DMG 규칙은 '실패 누적 시 즉각 도전 실패' 같은 요소 때문에, 창의적인 스킬 사용을 시도하는 플레이어를 오히려 불리하게 만드는 구조를 띠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 플레이어가 '상식적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은 스킬'을 사용했다가 실패하면, 그 실패가 누적되어 전체 도전을 망칠 수 있어, 플레이어가 '정해진 최적 스킬만 반복하는 게 안전하다'고 느끼게 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이후 DMG 2와 공식 에라타에서 일부 개선되었습니다. Knight at the Opera 블로그의 Skill Challenge 분석 글은 DMG 1과 DMG 2의 규칙 변화를 비교하면서, DMG 2에서 '보조 스킬이 실패해도 전체 도전에 실패 카운트를 추가하지 않고, 상황적 보너스나 서사적 요소만 바꿔주는 식으로 완화되었다'고 설명합니다[^A Thorough Look at Skill Challenges (Part 1: the Rules)]. 이 변화는 '창의적 시도는 리스크가 크지 않게, 주 스킬은 계속 사용하면 일정한 성공률을 보장하게' 설계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그룹에서 Skill Challenge는 제대로 이해되거나 활용되지 못했고, '숫자만 빨리 돌리려는 미니게임'이나 'DM이 원하는 스킬을 맞히는 숨은 규칙 찾기'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디자인 관점에서 Skill Challenge는 분명히 야심찬 시도였습니다. 전투 외 영역을 구조화하고, 그에 상응하는 XP와 난이도를 부여해 '비전투 장면도 전투만큼 의미 있게 만들자'는 의도를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스템 텍스트와 실제 운용 사이의 괴리, 그리고 당시 플레이 문화의 기대(자유로운 롤플레잉 vs 구조화된 절차) 사이의 충돌로 인해 기대만큼 성공적이진 못했습니다. 이 경험은 5판과 발더스게이트 3에서 '비전투 규칙을 어느 정도까지 구조화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 중요한 참고가 되었고, 5판은 보다 간단한 능력 판정과 모험 지침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되었습니다[^Playtesting 4th Edition – Part 6: Skill Challenges ][^A Thorough Look at Skill Challenges (Part 1: the Rules)][^{LotR} Am I the only one who has TTT ?][^How to convert AD&D 2e (Planescape) PCs to nWoD Hunters (modern) mid-campaign].

4판에 대한 커뮤니티 반응은 '극단적 양극화'라는 말이 잘 어울립니다. 한쪽에서는 '가장 잘 설계된 전투 TTRPG'라고 칭찬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건 더 이상 D&D가 아니다'라며 격렬히 반발했습니다. therpggazette의 '4판 르네상스' 글은 4판 출시 당시의 반응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3.5e의 수백 개 서드파티 옵션을 사랑하던 올드 팬들은 대규모 규칙 변경에 크게 실망했다. 비판자들은 4판을 비디오게임에 지나치게 가깝다고 폄하했으며, 전투 역할, 재충전되는 파워, 전투 중심 구조 때문에, 플레이어 주도 스토리텔링이 희생되었다고 느꼈다'는 것입니다. Paizo 포럼의 'WotC가 내 게임에 무슨 짓을 한 거지?!'라는 스레드는 당시 정서를 잘 보여 줍니다. 한 참가자는 '옛 에디션을 좋아할수록, 4판은 덜 D&D처럼 느껴질 것이다. 3.x는 보다 시뮬레이션적인 RPG 룰을 가지고 있고, 4.0은 수집형 미니어처 게임(CMG)과 같은 게임적인 룰을 가졌다. 어떤 것을 선호하느냐는 취향 문제'라고 씁니다. 이 발언은 4판에 대한 비판이 단순히 '룰이 나쁘다'는 차원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게임을 원하는가'에 대한 가치 충돌임을 시사합니다. 많은 올드 팬에게 D&D는 '자유로운 서사와 DM 판정 중심'의 게임이었는데, 4판은 '전투 중심의 보드게임 및 미니어처 게임'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레딧의 'ELI5 4판이 왜 나쁜가?' 같은 스레드를 보면, 자주 나오는 비판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클래스가 파워 카드에 묶여 있어, 규칙으로 정의되지 않은 행동을 하려면 DM이 별도로 처리해야 한다', '비전투과 유틸리티 주문과 능력이 크게 줄어 위저드 같은 클래스가 전투 밖에서 활약할 수 있는 여지가 적어졌다', 'Rituals 시스템은 아이디어는 좋지만, 비용과 효과가 맞지 않아 잘 쓰이지 않았다.' 이런 의견은 4판이 전투 외 영역을 상대적으로 약하게 설계한 것에 대한 불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4판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레딧의 r/rpg에서 '4e is balanced?'라는 질문에 한 유저는 '4판은 플레이어 캐릭터들 사이에서 매우 잘 밸런스가 잡혀 있다. 모든 클래스가 자신의 역할 안에서 유효하고, 어느 레벨에서도 쓸모 있는 선택지를 가진다'고 답합니다[^Dnd 4e is balanced?]. 과거 에디션에서는 어떤 레벨 구간에서 특정 클래스가 다른 모든 클래스를 압도하는 일이 흔했지만, 4판은 전 레벨에 걸쳐 어느 클래스든 특별히 꿀리는 구간이 없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즉, 4판의 밸런스, 명료성, 전투 구조는 많은 디자이너와 일부 플레이어에게 큰 인상을 남겼고, 이후 보드게임 풍 TRPG나 전술 RPG 설계에 중요한 영향을 준 셈입니다[^Why is 4th edition so hated][^okay, so what are the ACTUAL criticisms of 4e ?][^Is 4E any good ?][^Why is D&D 4E so hated/bad?].

4판이 '실패'였는지는 여전히 논쟁적입니다. 일부 분석은 4판이 판매량과 브랜드 영향력 면에서 생각만큼 나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패스파인더와 합산하면 5판과 맞먹는 수준의 플레이어 기반을 유지했다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Graeme Davis의 '왜 4판이 실패했는가'를 다룬 글은 '4판이 실제로 상업적으로 실패했다는 확실한 근거는 없으며, 다만 파이조 패스파인더와 시장을 분할한 결과, ‘단일 D&D’ 이미지가 약해졌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고 소개합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4판은 CRPG 산업에서는 거의 영향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1-2판은 골드박스 시리즈와 발더스게이트 및 발더스게이트 2로, 3.x는 네버윈터 나이츠와 KOTOR 등으로 재해석되었지만, 4판 규칙을 정면으로 채택한 CRPG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Beamdog 포럼의 '왜 GURPS는 CRPG 적응이 없는데, D&D는 있나?'라는 논의에서 한 유저는, D&D 각 에디션의 CRPG 적응을 나열하며 '1과 2판은 골드박스과 다크 선과 BG 및 IWD, 3(3.5)판은 NWN1 및 2, IWD2, 5판은 발더스게이트 3와 솔라스타가 있고, 4판만 유독 비어 있다'고 소개합니다. 이 유저는 '4판은 테이블에서 미니어처와 배틀맵을 쓰고, 각 턴에 파워 카드를 사용하는 전투 구조라 디지털로 옮기면 나쁘지 않았겠지만, 당시 라이선스 문제와 낮은 팬 호응 때문에 대형 4판 CRPG 프로젝트가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합니다. r/Games의 '왜 4e 기반 CRPG가 없었나?' 스레드에서도, 많은 참가자가 '3.5 기반 NWN2 이후, 라이선스를 가진 Atari가 제대로 된 4e 프로젝트를 추진하지 않았고, 이후 Hasbro가 다시 라이선스를 회수했을 때는 이미 5판 계획이 진행 중이었다'는 식으로 설명합니다[^Paizo Publishing: 2002-Present].

디자인 측면에서도 4판의 강점인 '보드게임 같은 전술 전투'는 당시 CRPG 시장 트렌드와 잘 맞지 않았습니다.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의 주류 CRPG는 액션 RPG(디아블로류)와 시네마틱 RPG(매스 이펙트, 스카이림)였고, '그리드 기반 전술 전투에 집중한 게임'은 상대적으로 틈새 장르였습니다. 또한 4판의 클래스과 파워 구조는 테이블에서 파워 카드를 펼쳐놓고 친구들과 상호작용하는 경험에 최적화되어 있었지만, 싱글플레이 CRPG에서는 '여러 캐릭터의 파워 막대와 쿨다운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인터페이스 부담'으로 돌아올 위험이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4판 설계 철학은 디지털로 옮겨지지 못한 채, 일부 인디 전술 RPG나 보드게임 풍 TRPG의 영감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결국 4판은 '모든 클래스를 동등하게 강하게 만들고, 규칙을 통일된 전술 시스템으로 정제하자'는 야심 찬 시도였습니다. 이 시도는 밸런스와 명료성 측면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기존 D&D 팬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자유도, 비대칭성, 비전투 마법과 서사적 유연성'을 상당 부분 희생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CRPG 측면에서 보면 4판은 거의 직접적인 발자취를 남기지 못했고, 5판과 발더스게이트 3은 다시 '간단한 d20 기반 + 풍부한 내러티브 및 환경 시스템'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이 역사는 게임디자이너에게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완벽한 밸런스를 추구하는 것이 항상 좋은가?', '전투 시스템을 명확하게 구조화하는 것이 서사적과 환경적 자유와 어떤 긴장을 이루는가?', '테이블에서 잘 작동하는 시스템이 디지털 환경에서도 그대로 매력적인가?' 같은 질문들입니다. 4판의 도전과 그에 대한 반응은, 발더스게이트 3 같은 현대 CRPG가 '시스템적이지만 과도하게 게임화되지 않은' 설계를 추구할 때 계속 참조할 수 있는 반면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The D&D 4th edition renaissance: A look into the history of the edition, its flaws and its merits][^Why turn-based combat works in Baldur's Gate 3].

5판은 공식 개발진이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과거 에디션의 장점을 살리면서, 새로운 플레이어도 쉽게 들어올 수 있는 판'을 목표로 설계되었습니다. 이는 3.5판의 복잡성과 파워 인플레이션, 4판의 과감한 전투 중심 재구성과 커뮤니티 분열을 모두 경험한 뒤에 나온 반작용이기도 합니다. 5판 설계를 설명한 여러 자료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키워드는 ‘심플하지만 얕지 않은(Simple but not shallow)'과 '룰은 가볍게, 플레이는 깊게'에 가깝습니다. 'EN World’와 'D&D Beyond’를 종합하면, 5판의 핵심 설계 목표는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규칙 수와 수치를 줄여 진입장벽을 낮춘다. 둘째, 과거 에디션(특히 1과 2판)의 자유로운 롤플레이 감각을 되살린다. 셋째, 3판의 d20 통합 판정 구조와 클래식 클래스 아키타입을 유지하되, 수치 인플레이션과 최적화 강박을 줄인다. 이 설계 철학은 여러 구체적인 시스템에서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5판은 공격 보너스, 세이브 보너스, 난이도(DC)의 수치 범위를 이전 에디션보다 크게 줄였습니다. 도저히 성공할 수 없는 DC나 자동 성공 및 자동 실패가 반복되는 극단 상황을 줄이고, 전 레벨 구간에서 '성공과 실패가 모두 가능하지만, 높은 레벨일수록 유리한' 상태를 유지하려 했습니다. D&D Beyond 포럼과 각종 해설에서는, 5판의 디자인 목표가 '수치들을 작게 유지해 계산을 빠르게 하고, 20레벨까지 같은 DC 스케일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대표적인 예로 난이도 상한을 30으로 제한하고 DC 10–20을 중심 축으로 배치한 점을 듭니다. 이런 설계는 플레이어가 '이 DC가 어느 정도 어려운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DM이 즉석에서 난이도를 정하기 쉽게 만듭니다. 또한 5판은 룰 텍스트에서도 DM 재량과 창의적 판정을 강조합니다. 'Rulings, not rules'라는 슬로건은 원래 OSR에서 다시 부각된 표현이지만, 5판 개발을 이끌던 마이크 머얼스(Mike Mearls)는 인터뷰와 글에서 '5e는 가능한 한 DM이 판정을 내릴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규칙은 DM의 도구이지 족쇄가 아니다'라고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Baldur's Gate 3 General Information]. 여러 칼럼에서도 '룰은 기본, 판정은 현장'이라는 철학이 5판의 핵심이라고 설명하며, '모든 상황을 규칙으로 덮는 대신, 규칙은 설계 의도와 기본 틀을 제공하고, 세부는 테이블에서 조정하도록 한다'는 방향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설계 철학은 발더스게이트 3에서도 명확하게 계승됩니다. 라리안 스튜디오는 인터뷰에서 '가능한 한 5판 규칙을 존중하되, 플레이어가 다양한 방식으로 환경과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열어두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 결과, 발더스게이트 3은 5판의 단순한 d20 코어 위에 환경 상호작용, 표면 효과, 고도, 반응 시스템 등을 얹어, 수치나 빌드 최적화보다 '상황 중심의 창의적 플레이'가 돋보이도록 설계했습니다. 이런 구조는 5판의 '심플하지만 얕지 않은' 철학과 '룰은 가볍게, 플레이는 깊게'라는 목표를 디지털 환경에서 구현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D&D 5e/5.5e Rules – Bounded Accuracy!][^How D&D Editions Evolved Core Mechanics].

'Bounded Accuracy'는 5판 설계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개념 중 하나입니다. 이는 'd20 판정에 더해지는 보너스가 레벨이 올라가도 일정 범위 안에 머물도록 해서, 전 레벨에 걸쳐 수치가 크게 인플레되지 않게 하는 설계 원칙'으로 정의됩니다. DMDavid은 'Bounded Accuracy는 이전 에디션에서 캐릭터들이 받던 체크와 공격 보너스의 지속적인 증가를 억제하기 위한 장치'라고 말하며, 고레벨 모험에서 난이도 설정이 과도하게 양극화되던 문제를 해결하려 한 것으로 봅니다. 이 설계의 첫 번째 핵심은 '낮은 레벨 몬스터도 장기적으로 의미를 유지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DMDavid는 3.x 및 4판에서 고레벨이 되면 '낮은 CR 몬스터는 히트 보너스를 아무리 높여도 PC를 맞히지 못하거나, 반대로 PC가 너무 높은 방어 및 세이브를 가져서 낮은 난이도 체크는 자동 성공이 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고 소개합니다. 이 경우 DM은 '전문가를 중심으로 DC를 설정하면 비전문가는 아무것도 못하고, 비전문가를 고려해 DC를 낮추면 전문가는 자동 성공이 된다'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Bounded Accuracy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레벨에 따른 보너스를 크게 줄이고 몬스터의 강함을 '히트 포인트와 피해량, 특수 능력' 쪽으로 옮기는 설계를 택했습니다. 그 결과, 낮은 CR 몬스터도 숫자를 많이 데려오거나 특수 효과를 잘 활용하면 고레벨 파티에게도 여전히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EN World에서 인용된 마이크 미얼스의 설명처럼, '3레벨 파티에게 위협이 되는 고블린 무리는 10레벨 파티에게도 완전히 농담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Bounded Accuracy의 목표 중 하나였습니다. 두 번째 핵심은 'd20 최대값 20의 소프트 한계'입니다. Old Dungeon Master 글은 5판에서 능력치 보너스 상한을 +5(능력치 20), 숙련 보너스 상한을 +6으로 제한하고, 그 외 대부분의 보너스를 상황 및 주사위 기반으로 설계해 이론상 최대 보너스를 대략 +11 수준으로 묶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d20 + 수정치' 판정에서 수정치가 아무리 높아도 주사위가 차지하는 비중을 대략 50% 이상 유지하게 만드는 효과를 노린 것입니다. D&D Beyond 포럼의 Bounded Accuracy 설명 글도 '보너스를 낮은 범위에 묶어 두면, 말도 안 되게 높은 보너스를 가진 캐릭터와 그렇지 않은 캐릭터 사이의 격차가 줄어들고, 대부분의 DC가 전 레벨에 걸쳐 의미를 유지한다'고 강조합니다[^Bounded Accuracy is what?]. 물론 이론적으로는 합성 버프나 마법 아이템, 빌드 최적화로 Bounded Accuracy를 '깨는' 사례도 존재하지만, 코어 설계 목표는 일관되게 수치 상한을 낮게 두는 데 있습니다. 세 번째 핵심은 '수정치 범위의 제한(대략 –5 - +5)'입니다. Prismatic Wasteland와 각종 5e 해설 자료는, 5판에서 능력치 수정치가 이 범위에 머물도록 설계되었고, 이는 d20 판정의 선형성을 유지하면서도 수치 폭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수정치가 +1 오를 때마다 성공 확률이 5%씩 늘어나는 효과가 더욱 뚜렷하게 체감됩니다. D&D Beyond 포럼의 Bounded Accuracy 관련 글은 '+1 수정치가 주는 5% 성공률 증가는 테이블에서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변화이며, 시스템 설계자는 이 변화를 기준으로 난이도와 보상을 조정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즉, 수정치 상한을 제한함으로써 작은 수치 변화가 의미 있게 느껴지도록 만든 것입니다. 이러한 Bounded Accuracy 설계는 발더스게이트 3의 전투와 판정에도 그대로 반영됩니다. 발더스게이트 3에서 고레벨이 되어도 낮은 CR 몬스터에게 완전히 무적이 되는 일은 드물고, 대신 몬스터 수, 위치, 표면 효과, 고도, 상태 이상 같은 요소가 난이도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으로 작동합니다. 이는 '수치 vs 수치' 중심이었던 3.5식 디자인에서, '상황 vs 상황' 중심으로 초점을 옮기는 설계 철학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Bounded Accuracy 5e [DnD Design Guide]][^Bounded Accuracy is what?][^In Defense of Ability Scores][^Why turn-based combat works in Baldur's Gate 3].

5판의 또 다른 핵심 시스템은 ASI(Ability Score Improvement), 즉 '능력치 개선'과 특전(Feat) 사이의 선택 구조입니다[^Everything You Need to Know About Ability Score Improvements (ASI) in 5e]. PHB 기준으로 대부분의 클래스는 4, 8, 12, 16, 19레벨에 도달할 때마다 '능력치 두 개에 +1씩, 혹은 하나에 +2'를 줄 수 있는 ASI를 얻거나, 대신 특전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wikiHow의 ASI 설명 글은 ASI를 '플레이어가 캐릭터의 능력치를 올리거나, 특전을 선택해 새로운 능력과 약간의 능력치 보너스를 얻을 수 있는 주요 성장 지점'으로 설명합니다. 이 글은 특히 '일부 특전은 하프 피트(half-feat)로, +1 능력치 보너스와 추가 능력을 동시에 제공한다'고 설명하며, ASI와 특전 선택 사이의 미묘한 트레이드오프를 강조합니다. 5판에서 특전은 기본 규칙 기준 '옵션 규칙(optional rule)'로 취급됩니다. D&D Beyond 규칙 요약과 포럼 토론을 보면, 많은 DM이 초보자 캠페인에서는 특전을 일단 꺼 두고 ASI만 사용하게 하기도 합니다. '왜 ASI 대신 특전을 고르느냐'는 질문에, 한 플레이어는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주요 능력치를 20에 최대한 빨리 맞추고 싶어 하기 때문에 초반에는 ASI를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특전은 빌드를 변형하거나 서사적 개성을 강조하고 싶을 때 고르는 선택'이라고 답합니다. 이 구조는 3.5의 '필수 특전 체인'과는 다르게 설계되었습니다. 필수 전제 조건을 맞추지 못하면 빌드가 망하는 구조 대신, '특전이 있으면 재미있고, 없으면 약간 덜 특별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캐릭터'가 되도록 한 것입니다[^5e Feats vs Ability Score Improvement][^Ability Score Increase vs. Feat?][^ASI vs Feats - which is really more optimal?][^What Are Ability Score Improvements & How Do They Work in D&D 5e?][^Is feats a optional thing?][^Optional Feat Rules question].

ASI와 특전 선택 구조는 플레이어 자유도를 복원하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3.5에서는 능력치와 특전 전제 조건이 강하게 연동되어 있어, 사실상 ‘완벽한 빌드를 추구하려면 1레벨에서 20레벨까지의 선택을 다 계획해야 하는' 압박이 있었던 반면, 5판에서는 주요 능력치를 일정 수준까지 올린 뒤 특전 선택으로 개성을 더하든 말든 둘 다 존중받는 구조입니다. 'EN World’의 Bounded Accuracy 토론 글에서도, 한 유저는 '5판에서는 특전을 강제하지 않고 ASI만으로도 충분히 강한 캐릭터를 만들 수 있어서, 빌드 최적화 스트레스가 줄었다'고 평가합니다. 이는 디자인 관점에서 '최적 전략이 하나로 수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 설계입니다. 즉, 능력치 20에 빠르게 도달하는 것이 좋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두 번 특전을 선택해도 '망캐'가 되지 않도록 수치와 특전 효과를 조정한 것입니다. 또한 ASI 시스템은 '홀수 및 짝수 능력치'에 대한 미묘한 전략을 낳습니다. wikiHow 글은 ASI를 사용할 때 '능력치를 홀수에서 짝수로 올릴 때만 수정치가 증가하므로, 필요할 때 홀수로 올려 두고 다음 ASI에서 짝수로 맞추는 전략도 있다'고 설명합니다. 일부 특전이 +1 능력치 보너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이번에는 하프 피트로 홀수를 짝수로 올리고, 다음에는 ASI로 다른 능력을 짝수로 맞춘다'는 식의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수준의 최적화는 3.5식 '전제 조건 체인 계산'에 비하면 훨씬 부담이 적습니다. 요약하면 ASI 및 Feat 구조는, 플레이어에게 성장 방향을 제어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선택지를 제공하면서도, 그 선택이 시스템 전체를 붕괴시키지 않도록 Bounded Accuracy 위에서 조정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Do you have to reveal your NPC's aspects?].

5판은 상업적과 문화적 성공 면에서 D&D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에디션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5판 출시 이후 D&D 플레이어 수는 전 세계적으로 대략 1,300만-5,000만 명 사이로 추정되며, 이는 이전 어떤 시기보다 큰 규모입니다. Roll20의 Orr Group 인더스트리 리포트와 이를 분석한 글들은, 해당 플랫폼에서 진행되는 캠페인의 50% 이상이 D&D 5판이며, 전체 유저 기준으로도 절반 이상이 5판을 플레이한다고 보고합니다. 이는 5판이 온라인 VTT와 스트리밍 시대에 맞는 규칙 간결성과 접근성을 제공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5판 성공의 중요한 촉매는 유튜브와 트위치 같은 스트리밍 플랫폼, 그리고'크리티컬 롤(Critical Role)' 같은 AP(Actual Play) 쇼였습니다. Business Insider는 2021년 트위치 데이터 유출을 분석하며, 크리티컬 롤이 2019년 8월부터 2021년 9월까지 약 9.6백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린, 당시 플랫폼 최대 수익 채널 중 하나였다고 보도합니다. Weird Marketing Tales와 유사한 마케팅 분석 글들은, 크리티컬 롤이 '마블 영화가 슈퍼히어로 장르에 한 일과 비슷한 일을 D&D에 했다'고 평가하며, 프로 성우들의 연기, 높은 제작 퀄리티, 팬 커뮤니티의 자발적 확산이 맞물려 '협업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설명합니다. 많은 플레이어가 '5판은 크리티컬 롤, 스트레인저 씽즈 같은 미디어 덕분에 폭발적으로 퍼졌고, 이 미디어는 5판의 낮은 진입장벽과 서사 친화적 구조 덕분에 성립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즉, 5판의 규칙 설계와 마케팅과 미디어 환경은 상호 강화 관계에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규칙이 더 복잡했다면 스트리머가 새 플레이어에게 설명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룰이 지나치게 전투 중심이었다면 '극 중심 Actual Play'의 매력도 떨어졌을 것입니다. Bounded Accuracy와 심플한 코어, ASI 및 Feat 선택 구조, 클래식 아키타입은, 시청자가 몇 회만 봐도 대략 이해할 수 있는 구조를 제공했습니다[^Effect of Critical Role on RPG Popularity][^A Twitch channel known for 'Dungeons and Dragons' earned over $9 million in the last 2 years, the highest payout listed in the data leak][^Why did TSR and WotC choose Forgotten Realms over Greyhawk as the main setting of D&D? #dnd][^This is How Critical Role Made Dungeons & Dragons Cool][^Are there any statistics on D&D's popularity through the years?][^D&D Statistics by State (March 2023)].

발더스게이트 3의 성공도 이 흐름 위에 놓여 있습니다. 발더스게이트 3은 5판의 규칙과 세계관을 기반으로, 시네마틱 연출과 시스템 중심 디자인을 결합한 CRPG입니다. 5판은 테이블에서는 접근성과 모듈성을 높였지만, 이를 CRPG로 옮기는 과정에서는 일부 구조적 도전이 있습니다. 발더스게이트 3이 그 도전에도 불구하고 큰 상업적과 비평적 성공을 거둡니다. '플레이어 에이전시 - 플레이어의 의도와 영향력 - 와 시스템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설계'를 5판의 자유로운 규칙 구조 위에 구현했기 때문에, 발더스게이트 3이 넓은 대중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습니다. 즉, 5판의 성공은 테이블 위에서만의 일이 아니라, 스트리밍과 CRPG를 포함한 전체 게임 생태계에서 벌어진 현상입니다. 정리하면, 5판은 Bounded Accuracy, ASI 및 Feat 선택 구조, 단순한 d20 판정, 클래식 아키타입의 복원, DM 재량 강조라는 설계 선택을 통해 깊이와 접근성 사이의 균형점을 찾으려 한 에디션입니다. 그 결과 D&D는 다시 대중적인 게임으로 자리 잡았고, 유튜브과 트위치와 CRPG를 통해 새로운 세대에게 확산되었습니다. 발더스게이트 3은 이 에디션과 설계 철학의 가장 성공적인 디지털 구현 사례로, 테이블과 디지털, 스트리밍을 잇는 교차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연결고리를 이해하는 일은, 현대 게임 디자이너가 '룰 설계와 미디어 환경, 플랫폼 전략'을 함께 고려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데 중요한 참고가 됩니다[^How D&D Editions Evolved Core Mechanics][^D&D 5e/5.5e Rules – Bounded Accuracy!].

1998년에 발매된 발더스게이트 1'은 인피니티 엔진(Infinity Engine)을 사용하는 첫 번째 작품이었으며, 동시에 AD&D 2판 룰을 실시간에 가까운 시간 흐름 위에서 구현한 최초의 대형 CRPG였습니다[^Baldur's Gate (video game)][^On this day: In 1998 BG1 came out. It was the first RPG made by BioWare and the first to use the popular Infinity Engine][^Infinity Engine][^Infinity Engine]. 인피니티 엔진은 바이오웨어(BioWare)의 프로그래머인 스콧 그리그(Scott Greig) 씨가 직접 만든 아이소메트릭 실시간 렌더링 엔진으로 애초에 RTS까지도 구현할 수 있을 정도로 '워크래프트 2'와 같은 실시간 전략 게임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구조였습니다. 화면 구성, 맵 스크롤 방식, 화면 가장자리에 배치된 명령 버튼, 캐릭터 발밑의 색깔 원형 표시는 90년대 RTS 인터페이스를 연상시키며, 엔진 자체가 '동시에 여러 유닛을 선택하고 명령을 내리는' 사용 경험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었습니다. Filfre는 인피니티 엔진에 대해 '만약 바이오웨어가 원했다면, 이 엔진으로도 훌륭한 RTS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하였으며, 실제로 발더스게이트의 인터페이스와 카메라, 유닛 선택 방식이 당시 RTS 장르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즉, 발더스게이트의 RTwP는 단순히 '룰 해석 방식'의 선택이 아니라, 엔진 설계와 인터페이스 관성의 산물이기도 했습니다. 실시간 렌더링과 다중 유닛 제어에 최적화된 인피니티 엔진은, 전통적인 턴제 인터페이스(그리드, 개별 턴 순서, 애니메이션 대기 등)를 새롭게 설계하는 것보다, '실시간으로 모든 캐릭터가 움직이되, 필요할 때 시간을 멈추고 명령을 입력하는' 구조를 채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습니다[^Baldur's Gate (video game)][^Infinity Engine][^On this day: In 1998 BG1 came out. It was the first RPG made by BioWare and the first to use the popular Infinity Engine.][^A Dialog in Real Time (Strategy)][^The History And Legacy Of The Infinity Engine].

발더스게이트의 전투는 표면적으로는 '실시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6초를 한 라운드로 하는 라운드 기반의 시간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Lilura의 상세 리뷰에서는 이를 'round-based real-time with pause'라고 부르며, 내부적으로는 라운드 단위 이니셔티브와 행동 순서가 존재하지만, 화면에는 연속적인 움직임으로 표현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플레이어 플레이어에게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다'는 긴장감을 주면서도, AD&D 2판의 라운드와 세그먼트 기반 전투를 대략적으로 유지하려는 절충이었습니다. 이 시스템의 핵심 혁신은 '일시정지 상태에서도 대부분의 인터페이스가 완전히 열려 있다는 점'입니다. Lilura는 RTS와 비교하면서, 일반적으로 게임의 일시정지(pause)는 '모든 입력을 막는 정지 상태'이지만, 발더스게이트의 일시정지는 액션만 멈출 뿐, 플레이어가 캐릭터에게 명령을 내리고, 스킬과 주문을 선택하며, 인벤토리와 상태창을 자유롭게 열어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인피니티 엔진은 일시정지 상태에서 큐에 쌓인 명령들을 저장해 두었다가, 플레이어가 다시 시간을 흐르게 할 때 한꺼번에 실행합니다. 이는 훗날 '파워 카드 큐'를 사용하는 4판이나, '전술 모드'를 도입한 CRPG 설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개념입니다. Auto-Pause 기능은 RTwP 구조를 실질적으로 '턴제에 가까운 체감'으로 바꾸어 주는 장치였습니다. CRPG Addict와 Sorcerer’s Place 포럼의 토론을 보면, 많은 플레이어가 '적 발견 시', '파티원 피해 입음', '파티원 사망', '원거리 무기 탄환 소진', '라운드 종료'와 같은 이벤트에 자동 일시정지를 설정하고, 이를 통해 사실상 '준-턴제(semi-turn-based)'로 플레이했다고 회고합니다. Sorcerers.net의 한 유저는 '적이 보이면 자동 일시정지를 걸어, 파티 전체가 반응할 시간을 확보하고, 피해를 입으면 다시 멈춰 전열을 조정한다'고 설명하며, Auto-Pause 옵션이 곧 발더스게이트 전투의 정보 흐름을 제어하는 핵심 도구였다고 말합니다. 이 구조를 정리하면, 발더스게이트의 RTwP는 세 가지 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 엔진 레벨에서는 라운드 기반의 연속 시간이 흐릅니다. 둘째, 플레이어는 임의로 혹은 Auto-Pause 이벤트를 통해 시간을 멈추고 충분한 고민 시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셋째, 일시정지 상태에서도 명령 큐가 작동하여, 턴제 게임처럼 '각 캐릭터에게 행동을 할당한 뒤 일괄 실행하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이 세 요소가 결합되어 RTwP를 단순한 '일시정지 가능한 실시간'이 아니라, '턴제의 사고 과정과 실시간의 연출을 동시에 추구하는 실험적 구조'로 완성시켰습니다[^It rules that Baldur's Gate 3 is turn-based][^Infinity Engine][^The Infinity Engine and Beyond: A Look Back at Classic D&D cRPGs][^The History And Legacy Of The Infinity Engine][^cRPG User Interfaces (UI)].

왜 바이오웨어에서는 테이블탑 D&D에서 사용하던 명시적 턴제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RTwP라는 하이브리드 방식을 택했을까요? 이에 대한 답은 개발자 인터뷰와 후대 분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라리안 포럼의 '왜 발더스게이트 3은 턴제이고, 과거 발더스게이트는 RTwP였는가'라는 토론에서 한 유저는 4판과 5판 설계자들의 설명을 인용하며, '인피니티 엔진 시대에는 모든 주사위 굴림과 계산을 자동화하기 위해 RTwP를 선택했고, 화면에 일일이 턴 순서를 표시하거나 애니메이션을 멈추는 것보다 ‘백그라운드에서 라운드를 돌리면서 실시간처럼 보이게 하는 방식’이 기술적으로 더 자연스러웠다'고 정리합니다. 같은 스레드에서는 '네버윈터 나이츠(3판 기반)에서 아예 모든 주사위 굴림을 로그에 보여주는 방식으로 RTwP를 활용했다'는 예를 들어, RTwP가 '룰 계산을 기계에게 맡기고, 인간에게는 흐르는 전투를 보여주는' 방향이었다고 설명합니다. AD&D 2판 룰은 매우 복잡하며, 수많은 상황별 표와 예외 규정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테이블에서 턴제로 운용할 때는 DM이 대략적으로 단순화하거나, 많은 판정을 생략할 수 있지만, 컴퓨터 게임에서는 모든 판정을 정확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인피니티 엔진은 이러한 계산을 초당 여러 번 수행할 수 있었고, RTwP는 이 자동화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CRPG Addict에서는 '인피니티 엔진 게임에서 실시간 전투는 사실상 ‘자동으로 진행되는 턴제’이며, 플레이어는 일시정지와 명령 큐를 통해 DM 없이도 복잡한 규칙을 운용할 수 있게 된다'고 평가합니다. 다시 말해, RTwP는 규칙의 복잡성을 '계산은 엔진이, 판단은 플레이어가 맡는다'는 방식으로 분리하는 수단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6인 파티 관리'입니다. 발더스게이트는 최대 6명의 파티원을 동시에 조종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각 캐릭터는 서로 다른 클래스, 주문,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을 순차 턴제로 운영할 경우, 턴 순서와 인터페이스, 애니메이션을 모두 관리해야 하는 부담이 당시 기술과 UX 설계 경험으로는 상당히 컸습니다. Filfre는 '인피니티 엔진은 RTS에서 차용한 다중 유닛 인터페이스 덕분에, 플레이어가 여러 캐릭터를 드래그로 선택하거나, 개별 클릭으로 명령을 내리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했다'고 설명합니다. RTwP는 이 인터페이스 위에서 '중요할 때만 세밀하게 조작하고, 그 외에는 AI에게 맡기는' 방식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플레이어는 잡몹 전투에서는 거의 일시정지를 쓰지 않고, 보스전이나 난전에서는 잦은 일시정지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운영했다는 회고를 남깁니다. 마지막으로, 인피니티 엔진의 실시간 렌더링 기반 자체가 RTwP 선택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엔진은 640×480 해상도에서 배경 비트맵 위에 다수의 스프라이트를 실시간으로 그려내는 구조였으며, 발더스게이트의 동시성과 넓은 맵, 다수 NPC, 파티원을 고려하면 프레임 단위로 턴을 끊어 처리하는 방식보다 '계속 돌리면서 필요할 때만 멈추는' 구조가 부하 분산과 연출 측면에서 더욱 유리했습니다. 정리하자면, 바이오웨어에서 RTwP를 선택한 이유는 'D&D 룰의 복잡성 자동화', '여러 캐릭터 동시 제어를 위한 RTS형 인터페이스', 그리고'실시간 렌더링 엔진의 특성'이 모두 맞물린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Turn based vs Real time with pause][^Turn based vs Real time with pause][^Infinity Engine][^The Infinity Engine and Beyond: A Look Back at Classic D&D cRPGs][^A Dialog in Real Time (Strategy)].

RTwP 구조는 발더스게이트의 전투를 더욱 '영화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PC Gamer의 RTwP 비판 칼럼에서도, 발더스게이트가 '6명의 영웅이 동시에 마법을 사용하고, 화살과 주문이 난무하는 장면을 연속적으로 보여 줌으로써 턴제보다 역동적인 화면을 제공했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YouTube의 발더스게이트 1 회고 영상에서도 제작자는 '캐릭터들이 달려가고, 주문을 외치고, 폭발이 연달아 일어나는 장면들이 당시 기준으로 매우 영화적이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4:3 해상도와 도트 기반 그래픽, 제한된 애니메이션에도 불구하고, '동시성'이 주는 시각적 몰입감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RTwP는 동시에 '마이크로매니지먼트의 지옥'이라는 비판도 받곤 했습니다. Shamus Young의 'This Dumb Industry: Real Time With Pause' 글에서는 RTwP 시스템 전반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제기하며, 특히 발더스게이트류 게임에서 '효율적으로 플레이하려면 거의 턴제처럼 매 1-2초마다 일시정지를 눌러야 한다'는 점을 문제로 소개합니다[^This Dumb Industry: Real Time With Pause]. 그는 '기본이 실시간이기 때문에, 잠시만 주의를 돌려도 파티원이 죽거나, 중요한 주문 타이밍을 놓치기 쉽다'며, 인터페이스가 '일시정지 버튼을 계속 반복적으로 누르게 만드는 구조'라고 소개합니다. 이러한 비판은 RTwP가 'RTS와 턴제의 단점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주장과도 연계됩니다. 즉, 일시정지를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고, 자주 사용하면 템포가 느려지고 손이 바빠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CRPG Addict는 보다 중립적인 시각에서, 인피니티 엔진 RTwP가 '잡몹 전투를 빠르게 넘기면서도, 중요한 전투에서는 충분한 제어를 허용하는 타협점'이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는 '초반에는 마이크로매니지먼트가 많지만, 게임에 익숙해지면 AI 스크립트와 위치 선정, Auto-Pause 옵션을 통해 손이 덜 가게 조정할 수 있다'고 회고합니다. Lilura 역시, 발더스게이트 전투를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고, 적절히 Pausable real-time을 활용했을 때 깊이가 나온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마법사 싸움처럼 많은 준비와 타이밍이 필요한 전투에서는 일시정지가 매우 잦아져 사실상 턴제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인정합니다. 요약하자면 RTwP 구조는 발더스게이트의 전투를 시각적으로 풍부하고 긴장감 있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플레이어 플레이어에게 높은 집중력과 빈번한 조작을 요구하는 구조였습니다. 이는 20년 뒤 발더스게이트 3 설계에서 '멀티플레이와 관전, 스트리밍을 고려할 때 RTwP는 너무 복잡하다'는 이유로 턴제를 선택하게 된 배경이기도 합니다. 물론 D&D가 본래 턴제라는 점도 있지만, RTwP가 가진 마이크로매니지먼트 문제는 현대 UX 관점에서 재고하게 만든 중요한 요소였습니다[^It rules that Baldur's Gate 3 is turn-based][^This Dumb Industry: Real Time With Pause][^The Infinity Engine and Beyond: A Look Back at Classic D&D cRPGs].

발더스게이트 1은 출시 당시부터 'AD&D 2판을 가장 충실하게 구현한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RPGCodex와 레딧의 토론을 살펴보면, 많은 올드 게이머들가 '발더스게이트와 발더스게이트 2는 AD&D 2판의 대부분 규칙을 충실히 구현했고, DM의 실수나 편의적 생략 없이 일관되게 적용했다'고 회고합니다. 템플 오브 엘리멘탈 이블이 3.5판 구현의 표준이라면, 발더스게이트는 2판 구현의 표준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THAC0, 세이브, 능력치 보너스, 무기 숙련, 이중 클래스 및 멀티 클래스, 전문 마법학교, 클레릭 스피어와 같은 2판 특유의 시스템이 광범위하게 적용되어 있습니다. Scribd에 올라온 AD&D 2판 규칙과 인피니티 엔진 구현 비교 문서에서는, 발더스게이트가 '무기 숙련(weapon proficiency)을 THAC0 보정과 함께 사용하고, 전사 계열은 숙련도에 따라 명중 보너스를 받도록 한 점, 이중 클래스 및 멀티 클래스의 조건과 제약을 상당히 정확하게 구현한 점' 등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습니다. 이 문서는 물론 팬 메이드 자료이지만, 실제 룰 비교를 통해 '컴퓨터 게임 치고는 매우 높은 수준의 룰 충실도'를 보여 준다고 평가합니다. 레딧의 또 다른 토론에서는, 일부 마법(예: Project Image)이나 투웨폰 스타일 같은 요소들은 테이블 규칙에서 약간 변형되었지만, 이는 디지털 환경에서의 밸런스와 조작 편의를 위한 타협으로 받아들인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이처럼 발더스게이트는 'RTwP라는 새로운 전투 구조 위에 AD&D 2판 규칙을 최대한 그대로 올려놓은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룰의 충실성과 전투의 영화적 표현을 동시에 목표로 한 설계였으며, 그 결과는 당시 CRPG의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후 아이스윈드 데일,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와 같은 인피니티 엔진 게임들도 같은 기반을 활용하였고, 발더스게이트의 룰 구현은 '디지털에서 TRPG 룰을 얼마나 충실하게 가져올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답이 되었습니다. 20여 년 뒤 발더스게이트 3에서 D&D 5판을 구현하며 턴제 구조와 인터페이스 설계를 선택하게 된 배경에는, 이러한 선례를 반면교사로 삼은 점과 '룰 충실성과 플레이어 경험의 균형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발더스게이트 1의 RTwP와 AD&D 2판 구현은, 이 긴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첫 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Are the ruleset of any of the Baldur's Gate/Infinity Games completely adhering to D&D rulesets?][^Baldur Gate and DnD rules?][^Question Regarding Project Image][^AD&D 2nd Edition Ruleset][^Review of the Original Baldur's Gate 1].

RTwP는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실시간에 일시정지가 붙은 전투'처럼 보이지만, 실제 구현 관점에서는 턴제 시스템보다 훨씬 더 복잡한 설계와 구현을 요구합니다. Shamus Young은 RTwP 일반론을 다룬 글에서, 이러한 시스템이 '실시간과 턴제의 장점을 동시에 얻으려다가, 오히려 양쪽의 약점을 함께 안을 수 있는 구조'가 되기 쉽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는 RTwP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결정해야 할 순간마다 일시정지를 반복해서 눌러야 하며, 시스템은 그 과정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구간과, 갑자기 많은 일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구간을 모두 처리해야 한다'고 소개합니다. 이 지적은 곧 RTwP의 기술적 난제를 잘 요약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엔진은 실시간 루프 내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모든 행동과 애니메이션, 효과를 계산해야 하며, 플레이어는 언제든지 시간을 멈추고 새로운 명령을 큐에 쌓을 수 있어야 합니다. AI 설계 측면에서 RTwP는 특히 까다로운 과제입니다. 턴제 시스템에서는 각 캐릭터가 자신의 턴에 하나의 행동을 하고, 그 행동의 결과를 보고 다음 턴을 계획할 수 있지만, RTwP에서는 플레이어와 AI가 동시에 행동하며, 일시정지와 재시작이 불규칙적인 순간에 일어납니다. Obsidian 포럼에서 리얼타임 전투 흐름을 비판한 글에서는, 'RTwP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는 너무 많은 일이 동시에 벌어지는 것'과 'AI가 플레이어 명령을 덮어쓰는 것'이라고 소개합니다. 예를 들어, 파티 AI가 자동으로 적에게 돌진하는 동안 플레이어가 일시정지를 눌러 주문 시전을 명령했더라도, 일시정지 해제 직후 AI 스크립트가 그 명령을 덮어써 버리면 주문이 끊기거나 엉뚱한 행동이 나타나게 됩니다. GOG 포럼에서 발더스게이트 2용 커스텀 AI를 만드는 한 모더는 '원본 AI 스크립트가 플레이어 명령을 중간에 덮어써서 주문이 끊기는 경우가 많았고, 이를 막기 위해 ‘AI는 절대 플레이어 명령을 덮어쓰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스크립트를 새로 작성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RTwP AI 설계에서 나타나는 실질적인 난제입니다. AI는 플레이어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어느 정도 자율성을 가져야 하지만, 동시에 플레이어의 명령과 충돌해서는 안 되고, 일시정지 및 재시작에 따라 행동을 적절히 재평가해야 합니다[^This Dumb Industry: Real Time With Pause][^RTwP's problems and how to improve them?][^RTwP versus Turn Based Combat][^Custom Ai Scripting Ep. 2: DisplayStringHead Baldurs Gate 2][^Real-Time or Turn-Based?].

동시 행동 처리 역시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레딧의 'RTwP 장르가 멀어지고 있는가'라는 스레드에서 한 유저는 '턴제에서는 행동 경제(action economy)가 단순합니다. 누구 턴인지 명확하며, 각각의 턴에 하나의 행동만 처리하면 됩니다. 반면 RTwP에서는 팀 양쪽이 동시에 행동하면서 서로의 행동을 방해하거나, 주문 시전을 끊거나, 위치를 바꾸는 일이 잦아 이런 모든 상호작용을 정확히 처리하는 것이 어렵다'고 설명합니다. RTwP 엔진은 동시에 발생하는 수십 개의 행동을 시간 순서대로 정렬하고, 충돌 여부를 판단한 후, 이를 애니메이션과 로그에 반영해야 합니다. 인피니티 엔진 같은 고전 엔진은 내부적으로 6초 라운드와 세그먼트 단위를 유지하면서, 시간 틱마다 행동을 업데이트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단순화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문 중첩, 이동과 시전 동시 처리, 넉백과 다운 상태 처리 등에서는 종종 버그와 어색한 장면이 발생하곤 했습니다. 인터페이스 설계 또한 RTwP에서 결정적으로 어려운 부분입니다. Shamus Young은 'RTwP에서 진짜 문제는 AI나 수학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전투 상황을 이해하고 적절한 순간에 일시정지 및 명령을 반복하도록 돕는 인터페이스'라고 말합니다. '플레이어가 일시정지를 누를 때마다 어떤 일이 일어났고, 어떤 주문이 시전 중이며, 어느 캐릭터가 위기에 처했는지를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많은 RTwP 게임이 이를 충분히 지원하지 못한다'고 비판합니다. Obsidian 포럼의 '전투 흐름이 엉망이고 오토-포즈 타이밍을 고쳐야 한다'는 글 역시 같은 문제를 소개합니다. 이 글의 작성자는 '어빌리티 사용에 대한 오토-포즈가 효과 적용 전에 먼저 발생해 실제 상황을 확인하기 어렵고, 결과를 보려다 다시 일시정지를 누르면 또 다른 오토-포즈와 겹쳐 전투가 단절된다'고 언급합니다. 이는 RTwP에서 '언제 멈추고,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라는 UX 설계의 어려움을 잘 보여줍니다. 요약하자면, RTwP의 기술적 복잡성은 세 가지 레이어에서 나타납니다. AI 레이어에서는 '플레이어 명령을 존중하면서 필요한 행동을 자동화하는 스크립트'를 작성해야 하고, 시뮬레이션 레이어에서는 '동시 행동과 중첩 효과'를 시간 축에서 정교하게 처리해야 하며, 인터페이스 및 UX 레이어에서는 '플레이어가 일시정지와 재시작 사이에서 상황을 읽고 적절히 반응할 수 있도록, 오토-포즈와 피드백을 설계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잘 맞물린다면 RTwP는 강력한 시스템이 되지만, 어느 한 군데라도 미흡하면 전투 경험이 혼란스럽고 피로해질 수 있습니다[^Is the genre moving away from RTWP (Real-Time With Pause)? And if so, how do you feel about it?][^This Dumb Industry: Real Time With Pause][^Combat flow is all screwed up, pause and auto-pause need to be fixed][^RTwP versus Turn Based Combat][^The RTwP vs Turn-Based RPG Debate (Baldur's Gate 3)].

게임 경험 측면에서 RTwP는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지는 구조입니다. 많은 플레이어는 '실시간으로 파티가 동시에 움직이고, 적과 아군이 서로 얽혀 싸우는 장면'에서 큰 몰입감을 느낍니다. 레딧의 'RTwP의 매력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는 한 유저는 'RTwP 전투는 잘 돌아갈 때 ‘동시에 벌어지는 난전 속에서 제가 지휘관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고 말합니다. 그는 '턴제처럼 일일이 턴 순서를 기다릴 필요 없이, 원하는 타이밍에 시간을 멈추고 지시를 내린 뒤, 다시 시간을 흘려 전개를 지켜보는 과정이 마치 전술 퍼즐이나 영화 연출과 같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특히 인피니티 엔진 게임에서 두드러졌습니다. 마법 효과와 투사체, 퍽퍽 튀는 로그 메시지가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화면은, 테이블 위에서 상상만 하던 전투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구조에는 '상수적인 마이크로매니지먼트 스트레스'도 동반됩니다. Shamus Young은 RTwP에 대해 '실시간의 스릴과 턴제의 질서를 동시에 얻지 못하고, 두 방식의 단점만 합친 시스템'이라고 혹평했습니다. 그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반사적으로 일시정지를 눌러야 하고, 아무 일도 없는 시간에는 기다려야 하며, 흥분되는 순간과 지루한 순간을 반복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실제 플레이어 경험에서도 이러한 지적이 자주 보고됩니다. 레딧의 r/CRPG 스레드에서는 한 플레이어는 'RTwP는 두 세계의 최악을 합한 것처럼 느껴진다. 턴제처럼 구조적이지도 않고, 액션 RPG처럼 직관적이지도 않다. 그래서 결국 매 2-3초마다 일시정지를 누르게 된다'고 적었습니다. 이런 느낌은 특히 난이도가 높은 전투에서 더 크게 나타납니다. 적이 강력한 주문이나 CC를 사용하는 경우, 플레이어는 이를 끊기 위해 잦은 일시정지와 캐릭터 재배치를 계속 반복해야 하며, 그로 인해 정신적 피로와 손의 피로까지 겪게 됩니다[^What Is The Appeal of RTWP Combat?][^I don't understand the appeal of RTWP][^Is RTwP generally misunderstood?][^This Dumb Industry: Real Time With Pause][^Combat flow is all screwed up, pause and auto-pause need to be fixed][^The RTwP vs Turn-Based RPG Debate (Baldur's Gate 3)].

반면 RTwP의 효율성은 확실한 장점입니다. 많은 플레이어가 '잡몹 전투와 간단한 조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RTwP를 선호합니다. RTwP는 지루한 구간을 빨리 넘기고 싶은 욕구에서 나온 타협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모든 전투가 항상 깊이 있는 전술 퍼즐일 필요는 없으며, 때로는 이벤트성으로 빠르게 끝나는 전투도 존재합니다. 이때 RTwP는 난이도를 낮추고 AI 스크립트를 적절히 설정하면 플레이어가 거의 개입하지 않아도 전투를 자동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발더스게이트 1 및 2에서 잡몹 전투는 거의 자동 전투처럼 흘려보내고, 보스전이나 중요한 싸움에서만 일시정지를 자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플레이 패턴은 턴제가 항상 같은 속도로 진행되는 구조와 대비됩니다. 요약하자면, RTwP의 게임 경험은 '몰입감, 스트레스, 효율성'이라는 세 요소의 균형 위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대로 설계된 RTwP 전투는 '동시성에서 오는 박진감'과 '특정 순간의 일시정지에 의한 전술적 선택'을 결합하여 독특한 손맛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동일한 구조가 '지나치게 많은 일시정지와 명령 큐 관리'로 인해 플레이어를 쉽게 지치게 만들 수 있으며,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Auto-Pause와 AI 스크립트에 대한 세심한 설계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균형점을 어디에 두느냐가 RTwP 게임의 체감 난이도와 재미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What Is The Appeal of RTWP Combat?][^Why People Prefer Turn-Based To RTWP In CRPGs...][^RTwP versus Turn Based Combat][^RTWP is a flawed mechanic and TB will actually fix the game, and bring it into the mainstream][^RTwP, pure turn-based, grid based tactical... what gameplay ‘type’ has the biggest appeal to you?].

멀티플레이에서 RTwP를 사용하는 것은 싱글플레이보다 훨씬 더 복잡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RTwP가 온라인 멀티에서 가지는 의미 있는 장점은 ‘모든 플레이어가 동시에 행동할 수 있다’는 점이지만 누가 언제 일시정지를 걸 수 있으며 일시정지가 다른 플레이어의 흐름을 어떻게 끊는지가 문제로 작용합니다. 또한 한 명이 자주 일시정지를 걸면 다른 사람들은 계속 기다려야 하고 아무도 일시정지를 걸지 않으면 전투가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적절히 반응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실제로 발더스게이트 1과 2의 멀티플레이는 대부분 소수의 테이블 친구들과 음성 채팅을 병행해 사용하는 용도로 활용됐으며, 대중적인 온라인 멀티플레이 모드로 자리잡지는 못했습니다. 라리안 포럼의 '턴제 vs RTwP' 스레드에서도, 멀티플레이 환경에서 RTwP 구조가 가지는 문제점에 대해 많은 의견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한 참가자는 'RTwP는 로컬 멀티에서는 비교적 잘 작동하지만, 인터넷을 통한 매치메이킹 게임에는 적합하지 않다. 누가 언제 일시정지를 사용할 수 있고, 합의를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를 시스템적으로 정의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일시정지 권한을 제한하거나, 투표 기반의 일시정지 시스템을 만들 수 있지만, 그 자체가 UX 부담을 높일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스튜디오에서는 멀티플레이, 관전, 스트리밍 환경을 고려할 때 '완전 턴제' 혹은 '완전 실시간'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흔히 사용되는 해결 방법으로는 '호스트에게만 일시정지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 '특정 이벤트에만 자동 일시정지를 허용하는 방식', 또는 '전투 전체를 슬로모션으로 진행해 일시정지 빈도를 줄이는 방법' 등이 있습니다. Obsidian 포럼의 글에서는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2에서 '오토-포즈 타이밍과 멀티플레이의 일시정지 권한 문제가 전투 판독 가능성(decipherability)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소개합니다. 즉, RTwP 멀티플레이에서는 '언제 멈출 것인가, 누가 멈출 것인가'뿐만 아니라 '일시정지가 발생했을 때 어떤 정보를 누구에게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설계도 필요합니다. 이러한 모든 요소를 완벽하게 만족시키기는 매우 어렵고, 그 결과 많은 개발 스튜디오에서는 발더스게이트 3처럼 멀티플레이 기반 CRPG에서 '턴제'를 선택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Turn based vs Real time with pause].

발더스게이트 2와 그 확장팩 Throne of Bhaal'은 RTwP 시스템을 보다 정교하게 발전시킨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Lilura는 발더스게이트 1과 발더스게이트 2를 비교하며, '발더스게이트 2에서는 AI 스크립트, 적 배치, 주문 조합이 훨씬 정교해졌으며, 플레이어가 RTwP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전투 난이도가 급격히 상승한다'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발더스게이트 2의 마법사 및 사제 적들은 '마법 방어막, 디스펠, 카운터 스펠, 소환, 컨트롤 주문'을 조합하여 사용하고, 이에 따라 플레이어가도 유사한 수준의 마이크로매니지먼트와 주문 순서 최적화를 요구받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RTwP의 장점과 단점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잘 설계된 마법전은 '폭발적이고 화려한 전투 연출'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0.5초 단위의 일시정지와 명령 큐 관리'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AI 측면에서도 발더스게이트 2는 발더스게이트 1보다 한층 발전했습니다. GOG 포럼에서 발더스게이트 2용 커스텀 AI를 만든 모더는 '발더스게이트 1에서는 거의 없었던 몬스터 간 ‘호출(call for help)’ 스크립트가 발더스게이트 2에서는 rudimentary하게나마 구현되어 있고, 적이 동료를 부르거나 후퇴하는 패턴이 추가되었다'고 설명합니다. Gibberlings3의 Sword Coast Stratagems(SCS) 모드 설명을 보면, 발더스게이트 2 원본 AI가 가진 문제점(플레이어 명령 덮어쓰기, 무의미한 이동, 부적합한 마법 선택)을 개선하여 적이 더 일관되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모드 작업은 동시에 '원본 AI가 어느 정도의 한계와 실수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며, RTwP 기반 AI 설계의 어려움을 다시 한 번 입증하고 있습니다. 인터페이스 및 UX 측면에서도 발더스게이트 2에서는 오토 포즈 옵션과 스크립트 메뉴가 더욱 세분화되었습니다. 플레이어는 각 캐릭터별로 기본 행동 패턴(공격, 마법 사용, 후퇴 기준 등)을 설정하고, 오토-포즈 이벤트도 더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파티 AI의 기본 행동을 스크립트에 맡기고, 플레이어가 중요한 순간에만 개입하는' 플레이 스타일을 지원하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실제 플레이에서는 여전히 많은 유저가 'AI를 꺼두고 전투 내내 직접 조작하거나, 반대로 AI에 거의 모든 것을 맡기고 지켜보는' 두 극단 사이를 오갔다고 회고합니다. 이러한 양극화는 RTwP가 '부분 자동화'를 전제로 하지만, 플레이어가 어느 수준까지 자동화를 허용할지 스스로 조정해야 하는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비롯됩니다. 결국 발더스게이트 2는 RTwP 시스템을 기술적으로나 디자인적으로 한 단계 끌어올린 작품이었지만, 동시에 이 시스템이 가진 구조적 한계도 분명하게 드러난 사례였습니다. 적 AI와 주문 조합이 복잡해질수록 플레이어는 더 잦은 일시정지와 명령 큐 관리에 의존하게 되고, 멀티플레이나 관전, 스트리밍과 같은 현대적 요구사항과는 점점 어긋나기 쉽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라리안이 발더스게이트 3에서 '완전 턴제 + 표면과 반응 시스템'을 선택한 이유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RTwP는 발더스게이트 1과 2 시절에 기술적 제약과 규칙 복잡성을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훌륭한 타협 방식이었지만, 2020년대의 게임 디자인 관점에서는 '다른 해법을 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Baldur's Gate 3's simultaneous turn-based combat is a blessing for multiplayer][^Baldur's Gate (video game)][^The Infinity Engine and Beyond: A Look Back at Classic D&D cRPGs][^cRPG User Interfaces (UI)].

발더스게이트 2: 섀도우 오브 암(Shadows of Amn)'은 전작과 같은 인피니티 엔진을 사용하면서도, AD&D 2판 룰과 콘텐츠를 훨씬 더 넓고 깊게 구현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Dragonsfoot와 EN World의 회고 글들을 보면, 많은 올드 AD&D 플레이어들이 발더스게이트 2를 '2판에서 책으로만 보던 고레벨 규칙과 몬스터, 주문, 클래스 옵션을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디지털 구현'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발더스게이트 2는 1-2레벨의 고블린과 코볼트 위주의 저레벨 전투에서 벗어나, 마인드플레이어(일리시드), 베홀더, 리치, 드래곤, 데미리치, 발호 등 고레벨 몬스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모험을 다루고 있습니다. 레딧의 한 토론에서는 '발더스게이트 2에서 250 HP짜리 치트 캐릭터로도 여전히 일리시드, 베홀더, 고레벨 마법사에게 당할 수 있다'는 경험담이 공유되는데, 이는 2판이 고레벨에서 강조하던 '면역, 저항, 상태 이상, 보호막 벗기기' 메타가 게임에 충실히 반영된 결과입니다. 이 점은 Dicey Rules. System Design and Automation in the Baldur’s Gate series'에서도 언급됩니다. 해당 논문은 발더스게이트 1과 발더스게이트 2를 비교하며, 'AD&D 2판 고레벨 전투 복잡성이 발더스게이트 2, 특히 Throne of Bhaal에서 본격적으로 표면화되었다'고 분석합니다. 예를 들어, 마법전에서는 플레이어가 적의 스톤스킨, 미러 이미지, 프로텍션 프롬 매직 웨폰, 스펠 트랩 등 보호막을 순서대로 벗겨내기 위해 브리치, 디스펠, 시퀀서, 트리거 등 다양한 주문을 적절한 순서로 사용해야 하고, 동시에 적도 같은 방식으로 플레이어의 보호막을 벗기려 하며, 면역과 저항을 전제로 한 '내성 굴림 없이 즉사'같은 주문도 자주 등장합니다. 이러한 구조는 AD&D 2판 DM용 서적인 DM’s Option: High-Level Campaigns'에서 논의되던 고레벨 전투의 특징, 즉 '면역과 보호막, 즉사 효과를 중심으로 한 전투'를 디지털 환경에서 구현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발더스게이트 2는 클래스와 키트, 주문, 아이템 측면에서도 2판 콘텐츠를 폭넓게 구현했습니다. Dragonsfoot에서 '발더스게이트 2가 AD&D 2e 자료를 얼마나 반영하는가'에 대한 질문에서는, 참가자가 '코어 클래스와 대부분의 키트, 방대한 고레벨 주문, 다양한 전문 마법 학교, 무수한 마법 아이템이 게임에 포함되어 있다'고 답합니다. 물론 모든 2판 서플리먼트가 구현된 것은 아니지만, DM 입장에서는 '2판 고레벨 규칙을 이 정도 규모로 자동 처리해주는 시스템'은 발더스게이트 2 외에 찾기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발더스게이트 2는 단순히 스토리뿐만 아니라, 룰 구현 측면에서도 '2판 CRPG의 정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Are the ruleset of any of the Baldur's Gate/Infinity Games completely adhering to D&D rulesets?][^Baldur Gate and DnD rules?][^Question Regarding Project Image][^AD&D 2nd Edition Ruleset][^Baldur's Gate 2 had the most clever level scaling ever and people don't talk about it nearly enough][^Baldur's Gate: Classes and Kits].

2001년에 발매된 확장팩 Throne of Bhaal'은 발더스게이트 2의 직접적인 확장으로, '바알스폰(Bhaalspawn) 사가'를 완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Throne of Bhaal은 새로운 고레벨 던전인 Watcher’s Keep을 추가하고, 최대 레벨을 40까지 확장하며, 신규 하이 레벨 능력(High-Level Abilities)도 도입했습니다. 이 확장팩을 포함하여 발더스게이트 1, Tales of the Sword Coast, 발더스게이트 2: SoA, Throne of Bhaal 전체 캠페인을 순서대로 플레이하면 실제 플레이 시간은 200시간을 가볍게 넘고, 모든 서브퀘스트와 확장 지역까지 고려할 경우 300시간을 넘길 수도 있다고 일반적으로 평가됩니다. Lilura와 Filfre 같은 분석자들은 발더스게이트 1+발더스게이트 2+ToB를 하나의 '장기 캠페인'으로 보며, 'D&D 룰과 세계관에 기반한 디지털 캠페인 구조로서 이만큼 큰 규모와 완성도를 가진 사례는 이후로도 드물다'고 말합니다. Throne of Bhaal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플레이어 캐릭터가 태양(Solar)의 심문을 받고, 자신의 바알스폰 본질에 대해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이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하나는 '바알의 본질을 받아들여 신으로 승천한다'는 선택이고, 다른 하나는 '바알의 본질을 버리고 필멸자로 남는다'는 선택입니다. 후자를 택할 경우, 이전에 임온(Imoen)이 자발적으로 주인공께 넘긴 바알의 정수까지 함께 포기하게 되어, 둘 다 더 이상 바알스폰이 아니게 됩니다. 이 장면은 플레이어의 여정을 '신이 될 것인지, 인간으로 남을 것인지'라는 상징적인 질문으로 마무리합니다. 레딧의 한 팬는 'Throne of Bhaal의 마지막에서 필멸자를 선택하는 것은 단순히 신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바알의 영향력 전체를 거부하고 새로운 길을 선택한다는 선언'이라고 해석합니다. 이 최종 선택은 바알스폰 사가 전체에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Filfre는 CRPG 르네상스 연재에서 '발더스게이트 1이 CRPG 장르를 다시 메이저 대열로 이끌었다면, 발더스게이트 2와 Throne of Bhaal은 이 장르가 장기적인 서사를 얼마나 잘 구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평가합니다. 발더스게이트 1에서 시작된 '정체불명의 고아' 이야기가 발더스게이트 2와 ToB에서 '신의 자식'이자 '세계의 운명을 좌우하는 존재'로 확장되며, 마지막에는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라는 철학적 선택으로 마무리되는 구조는, 당시에 보기 드물었던 장기 서사였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실제 플레이 타임 수백 시간 동안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 발더스게이트 사가를 다른 CRPG와 구별해 주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Baldurs Gate 2 EE and the expansion do you play them seperate ?][^How was BG2 able to handle high levels compared to BG3?][^Throne of Bhaal has always felt much smaller scale, despite the larger scope of the story][^Baldur's Gate II: Throne of Bhaal][^(AD&D 2e) DM's Option: High-Level Campaigns].

그럼에도 불구하고, Throne of Bhaal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Lilura의 ToB 회고에서는 이 확장팩을 '장엄한 소재를 다루지만 전체적으로는 급하게 마무리된 인상을 주는 러시작(러시된 시작)'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는 특히 '발더스게이트 2: Shadows of Amn이 18개월의 개발 기간 중 상당 부분을 ‘메인 스토리와 크게 관련 없는 방대한 서브 콘텐츠’에 투자했고, 그 결과 정작 바알스폰과 알라우도(Alaundo)의 예언, 바알 신화에는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다'고 소개합니다. 그의 관점에서는 이상적으로는 '발더스게이트 1 이후 곧바로 대규모 ToB급 후속편'이 이어졌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섀도우 오브 암에서 '도시 모험과 서브퀘스트에 많은 시간을 썼고, 바알스폰 서사는 ToB에서 급하게 압축되어 정리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커뮤니티 내에서 Ascension 모드의 필요성과도 연결됩니다. Ascension는 발더스게이트 2의 시나리오 디자이너였던 데이비드 게이더(David Gaider) 씨가 주도한 Throne of Bhaal 엔딩 개선 모드로 챕터 10 전체를 새롭게 각색해, 새로운 적과 아군, 더욱 강력한 최종 전투, 보다 확장된 롤플레잉 선택지 등을 추가합니다. Weidu README에는 게이더 씨의 설명이 실려 있는데, 그는 Ascension에 대해 '단순히 최종 전투만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ToB의 엔딩을 더 길고 재미있으며, 조금 더 만족스럽게 만들기 위한 작업'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주요 요소에는 Balthazar와 동맹을 맺을 수 있는 루트, Sarevok과의 관계 개선, 잃어버린 바알스폰 힘의 복원, 강화된 슬레이어 변신, 확장된 에필로그 등이 포함됩니다. GOG 포럼과 모드 추천 글에서는 Ascension를 '사실상의 공식 패치에 가깝다'고까지 평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유저는 'Ascension는 처음에는 ‘강화된 최종 전투’ 모드로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는 ToB의 엔딩을 개발자가 원래 의도했을 법한 모습에 더 가깝게 만들어 준다'고 말합니다. 이는 공식 개발 일정, 예산, 마케팅 압박 등으로 인해 ToB의 엔딩이 충분히 다듬어지지 못했다는 점을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25주년 발더스게이트 2 기념 토크에서 데이비드 게이더은 '발더스게이트 2와 ToB를 합쳐 120만 단어 이상을 썼으며, 마무리 즈음에는 거의 번아웃 상태였다'고 회상하며, 시간과 리소스 제약이 컸음을 밝힌 바 있습니다. Ascension의 존재는 이러한 개발 압박과 '엔딩에 대한 아쉬움'을 커뮤니티가 자발적으로 보완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Throne of Bhaal Review Retrospective][^Is it just me or Throne of Bhall is just not as good as the rest of the series?][^Ascension][^Baldur’s Gate and the Happy Ending Override][^What makes Baldur's Gate 2 so good?][^Interview with David Gaider, Lead Writer at Bioware].

발더스게이트 2와 Throne of Bhaal은 흔히 'CRPG 르네상스(cRPG Renaissance)'의 정점으로 언급됩니다. Lilura의 CRPG 역사 글에서는 1995년부터 2000년까지를 CRPG 르네상스기로 규정하며, 이 시기를 '디아블로 1, 폴아웃 1, 발더스게이트 1이 장르의 표준을 공식화한 시기'로 봅니다. 그는 2000년부터 2005년까지를 '장르가 그 표준을 온전히 유지하지 못하고 점차 하향세로 접어든 시기'로 규정하면서도, 예외적으로 발더스게이트 2와 ToB를 '르네상스가 이룬 정제도의 절정'이라고 평가합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르네상스 시기의 CRPG들은 복잡성과 창의성, 기술적 완성도가 가장 높았고, 그 전후의 작품들은 대체로 ‘입문용 RPG’에 가까워진다'고 말합니다. Filfre 또한 발더스게이트 2를 폴아웃 2와 함께 'CRPG 르네상스의 쌍두마차'로 평가합니다. 그는 '폴아웃 1이 오픈 월드와 선택과 결과 구조를 정교하게 설계했다면, 발더스게이트 1과 2는 파티 기반, 장기 캠페인, AD&D 룰 구현, 방대한 서사와 콘텐츠 측면에서 장르의 기준을 세웠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발더스게이트 2는 '초반 아스카톨라(Amn) 챕터에서 플레이에게 도심 전체를 자유롭게 탐험하게 하면서도, 강력한 스토리 메인 퀘스트를 유지하는 구조'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Beamdog 포럼에서 트렌트 오스터(Trent Oster) 씨와 데이비드 게이더(David Gaider) 씨가 25주년을 맞아 나눈 대화에서도, 사회자는 발더스게이트 2를 'CRPG 디자인이 기술적과 창의적으로 가장 야심찼던 프로젝트 중 하나'라고 소개했습니다. 이러한 평가 속에서 발더스게이트 2 및 ToB는 단순히 D&D 2판 구현의 정점일 뿐만 아니라, '컴퓨터 RPG가 할 수 있는 것의 정점'으로도 상징되었습니다. 이후 2000년대 중반부터 CRPG 장르는 3D 액션 RPG와 콘솔 친화적 디자인에 밀려 상대적으로 축소되었고, 인피니티 엔진 스타일의 RTwP 파티 RPG는 오랫동안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발더스게이트 2는 하나의 '잃어버린 황금기'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으며, Ascension, SCS와 같은 모드들과 EE(Enhanced Edition)를 통해 세대를 넘어 계승되었습니다. 발더스게이트 3은 바로 이러한 유산 위에 서 있습니다. 발더스게이트 3은 5판 턴제, 표면 시스템, 반응, 시네마틱 카메라 등 여러 부분에서 이전 작품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지만, '수백 시간에 걸친 장기 캠페인', '룰 충실성과 서사적 선택의 결합', '파티 기반 전술 전투' 등 핵심적인 목표는 발더스게이트 1과 2와 동일합니다. 발더스게이트 2 및 ToB가 CRPG 르네상스의 정점이었다면, 발더스게이트 3은 '스트리밍 시대와 5판 시대의 새로운 정점'을 지향하는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작품을 잇는 근본적인 연결고리는 D&D 규칙과 포가튼 렐름 세계관, 그리고'플레이어가 자신의 선택으로 장기간에 걸쳐 서사를 만들어 간다'는 RPG의 본질적인 설계 목표임을 볼 수 있습니다[^The Infinity Engine and Beyond: A Look Back at Classic D&D cRPGs][^Throne of Bhaal Review Retrospective][^How ‘Baldur’s Gate’ Saved the Computer RPG][^What makes Baldur's Gate 2 so good?].

발더스게이트 3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커뮤니티에서 제기된 첫 번째 반응 중 하나는 '라리안이 과연 발더스게이트라는 이름을 사용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의문이었습니다. 이는 25년 전 바이오웨어와 인피니티 엔진이 구축한 시리즈의 이미지가 워낙 강했기 때문이고, 그 사이에 D&D 에디션도 여러 번 바뀐 점이 배경입니다. 이 물음에 대한 실질적인 답은 라리안의 과거 행적과 발더스게이트 3의 완성된 결과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일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스웬 빈케는 자신의 커리어를 회고하며 'Divinity: Original Sin 1이 나오기 전까지 라리안 RPG의 약점은 늘 전투였고, 우리는 전투 시스템을 완전히 다시 만들 필요가 있었다'고 밝힙니다. 그는 이전 디비니티 시리즈에서 '정확히 원하는 시스템을 구현하지 못했다'고 인정하며 '좋은 턴제 전투를 갖춘 RPG 제작이 회사 전체의 전환점이었다'고 설명합니다. Divinity: Original Sin과 Divinity: Original Sin 2(이하 DOS2)는 이런 인식에서 출발하였으며, 특히 DOS2는 시스템 기반(turn-based, 환경 상호작용, 상태 이상, 위치 전략) CRPG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DOS 2 Environmental Effects Guide]. INT 매거진 인터뷰에서 빈케 대표는 'Original Sin을 만들면서 과거의 실수들을 돌아보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에 집중했다. 그 결과가 Original Sin이고, 이것이 라리안의 전반부를 마감하는 전환점이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DOS2는 표면(effect surface), 고도, 상태 이상, 연쇄 반응이 결합된 전투 시스템과, 플레이어 선택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시나리오 구조를 통해 '시스템과 내러티브가 동시에 열려 있는 RPG'라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발더스게이트 3 설계의 사실상 전제조건이 되었습니다. DOS2를 통해 라리안은 '턴 기반 전투를 대규모로 설계하고 밸런싱하는 역량', '환경과 상태 이상을 규칙 일부로 만드는 노하우', '멀티플레이와 협업적 스토리텔링을 인터페이스와 규칙에 통합하는 방법' 등을 이미 검증했습니다. 발더스게이트 3은 이런 축적된 경험을 토대로 완성된 작품으로, 단순히 '발더스게이트라는 간판만 단 또 하나의 CRPG'가 아니라, 'Divinity 계열에서 진화한 시스템과 D&D 세계관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정당성을 가집니다. 더불어 발더스게이트 3은 25년 전 인피니티 엔진 시리즈의 설계를 단순히 복제하지 않고, '핵심 정신(core spirit)'을 계승하는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2019년 아스텍니카 인터뷰에서 빈케 대표와 D&D 프랜차이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이크 미얼스는, 발더스게이트 3이 'D&D 5판 기반의 완전히 새로운 게임이지만, 원작 발더스게이트의 감성을 유지하려 한다'고 강조합니다. 미얼스는 '발더스게이트 1과 2가 그 시대 D&D 에디션을 대표하는 게임이었다면, 발더스게이트 3은 5판의 대표 디지털 구현이 되기를 바란다'고 설명합니다. 빈케 대표 역시 '발더스게이트라는 이름을 쓰려면, 플레이어가 파티를 이끌며, 자기 선택이 세계와 동료에게 큰 영향을 주고, D&D 룰 아래에서 모험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부연합니다. 이런 발언들은, 라리안이 단순히 이름만 빌려온 스핀오프 작품이 아니라, '동일 IP과 동일 도시과 같은 세계에서, 다른 시대와 룰 위에 세워진 정통 후속작'을 기획했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결국 '발더스게이트'라는 이름의 재사용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정당화됩니다. 하나는 라리안이 DOS와 DOS2를 통해 입증한 시스템 설계 역량이고, 다른 하나는 발더스게이트 3이 실제 보여 준 결과물 - 수백 시간에 달하는 캠페인, 방대한 파티 멤버와 상호작용, 시스템 기반의 전투, D&D 룰 충실 구현 - 이 '발더스게이트 1과 2의 계승자'라는 기대를 훌륭히 충족시켰다는 점입니다. CRPG 커뮤니티의 평가, GOTY 수상, 그리고 상업적 성공은 이러한 정당성을 외부로부터도 인정받은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DOS 2 Environmental Effects Guide][^How D&D Editions Evolved Core Mechanics].

발더스게이트 3이 발표되었을 때 또 하나의 논쟁은 '왜 룰을 3.5가 아니라 5판으로 선택했는가'였습니다. 레딧의 한 스레드에서 어떤 유저는 '3.5판은 더 깊고 옵션이 많으므로, 컴퓨터가 모든 계산을 대신해 주는 CRPG에서는 3.5가 더 적합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다른 유저들은 세 가지 관점에서 반박합니다. 첫째는 라이선스 문제입니다. '위저즈 오브 더 코스트(WotC)와 협력해 개발되는 공식 게임은 최신 에디션 규칙을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는 가능성입니다. 실제로, 그 스레드에서는 '새로운 D&D 비디오게임은 최신 에디션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사실상 라이선스 조건이다. 다른 에디션을 사용하면 여러 방면에서 불리하다'고 단언하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둘째는 3.5판이 구조적으로 파워 인플레이션, 빌드 격차, 복잡한 보너스 스택 문제를 가지고 있어서, 이를 그대로 디지털로 구현하면 '룰을 잘 이해하는 플레이어와 이해하지 못하는 플레이어 사이의 격차'가 극심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셋째는 5판이 이미 테이블에서 대중적으로 자리 잡았고, 새로운 플레이어에게 설명하기 쉬운 에디션이었다는 점입니다. 게임 설계 관점에서는, 5판이 가진 Bounded Accuracy 구조가 발더스게이트 3 같은 CRPG에 다양한 장점을 제공합니다. D&D Beyond 포럼의 관련 글에서는 3.5, 4판과 비교해 5판의 수치 증가 폭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보여주면서, '5판의 Bounded Accuracy는 DC가 레벨에 따라 자동으로 상승하지 않게 하며, 보너스의 상한을 설정하여 주사위의 의미를 보존하는 시도'라고 요약합니다. CRPG 구현에서 이는 두 가지로 연결됩니다: 하나는 난이도 설계가 간단해진다는 점입니다. 몬스터와 DC를 설계할 때 고레벨이라는 이유로 AC나 DC를 과도하게 올릴 필요가 없게 됩니다. 또 하나는 저레벨 몬스터와 스킬 도전이 고레벨에서도 완전히 무의미해지지 않고, 숫자보다는 캐릭터 수, 지형, 상태 이상, 시너지로 난이도를 조정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3.x 및 4판에서 나타난 두 가지 문제는 고레벨 캐릭터가 낮은 DC에서 자동 성공하게 되고, 저레벨 몬스터는 고레벨 캐릭터를 거의 맞히지 못해 '자동 성공 및 자동 실패 구간'이 생겨난다는 점, 또 전문가만 의미 있는 도전을 할 수 있고, 다른 캐릭터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구조가 발생합니다. 5판의 Bounded Accuracy는 이런 문제를 완화하며 '모든 레벨에서 도전의 스펙트럼'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발더스게이트 3와 같은 CRPG에서는 파티의 다양한 캐릭터가 각자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고, 특정 캐릭터가 '수치적으로 게임을 압도하는' 상황을 줄여줍니다. 물론 발더스게이트 3에서도 빌드 최적화와 시너지를 통해 높은 수치를 구현할 수 있지만 기본 설계는 5판의 Bounded Accuracy 틀 안에서 이루어집니다[^Why the hell is baldurs gate 3, 5E?][^D&D 3.5 vs 5+][^BG3's Implementation of D&D 5e: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기술적으로도 5판은 3.5에 비해 구현 난이도가 낮습니다. D&D Beyond 포럼의 '5E vs 3.5' 토론에서는 3.5판이 '수많은 서로 다른 종류의 보너스, 복잡한 스택 규칙, 여러 단계의 곱셈 및 나눗셈, 예외적인 상호작용'을 가진 반면, 5판은 '적은 종류의 보너스를 폭넓게 쓰고, 대부분 스택을 제한하거나, 농도(concentration)와 조합 제한으로 관리한다'고 설명합니다. 3.5판 CRPG를 구현하면 엔진이 모든 복잡한 보너스와 예외적인 룰을 코드로 처리해야 하며, 인터페이스는 플레이어에게 적용된 모든 효과를 한눈에 보여줘야 하므로, 기술적과 UX적 부담이 커집니다. 반대로 5판은 '적은 양의 직관적인 수치'와 '명확한 조합 제한'을 전제로 자동 계산과 시각화가 비교적 쉽게 이루어집니다. 라리안 스튜디오는 이런 차이를 고려하여, '5판 룰을 최대한 충실하게 구현하고, 비디오게임에 맞지 않는 부분은 과감히 보완하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라리안 포럼의 Den of Geek 인터뷰에서 빈케 대표는 '발더스게이트 3은 5판 룰을 기반으로 한다. 우선 룰을 꼼꼼히 도입한 뒤, 비디오게임에 맞지 않는 요소는 해결책을 찾아 적용했다'고 설명합니다. '게임플레이는 5판에 충실하게 느껴질 것이다. 다만 DM의 역할을 디지털로 구현해야 했기에, 룰북에는 없는 요소도 추가했다'고 언급하며, 점프와 밀쳐내기, 반응 처리 등이 그 예입니다. 라리안 포럼 분석도 '발더스게이트 3에서는 점프과 밀쳐내기과 숨기과 일부 액션이 보너스 액션으로 바뀌었고, 반응도 자동 처리와 플레이어 선택 사이에서 타협을 했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5판 테이블 룰과 정확히 같지는 않으나, 5판의 설계 철학(단순한 액션 경제, Bounded Accuracy, 플레이어 에이전시)를 유지하면서 디지털 환경에서의 쾌적성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5판 선택은 '현 세대 D&D 팬들과 CRPG 신규 유저를 모두 포섭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합니다. 5판은 이미 스트리밍과 유튜브를 통해 대중적으로 확산되었고, 규칙이 단순해 'CRPG에서 룰을 직관적으로 드러내기'에 알맞았습니다. GamesRadar와 Eurogamer 인터뷰에서 기자들은 5판이 CRPG엔 너무 단순한 것 아니냐 묻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룰이 단순하기 때문에 시스템과 환경과 서사에서 더 큰 복잡성을 구현할 수 있다'고 답합니다. 발더스게이트 3이 보여주는 표면 시스템, 고도, 반응, 환경 상호작용은 모두 '룰은 단순, 시스템은 복합' 전략의 결과물입니다. 복잡한 3.5 규칙을 그대로 구현하기보다는, 비교적 단순한 5판 코어 위에 별도의 시스템 레이어를 쌓는 것이, 현대 CRPG 설계와 UX, 멀티플레이과 스트리밍 환경에 훨씬 더 적합한 선택임을 볼 수 있습니다[^Looking for DM][^Some idea's, what do you think?][^How D&D Editions Evolved Core Mechanics].

D&D 5판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게임 내 거의 모든 주요 판정이 'd20 굴림 + 수정치 vs 목표값'이라는 하나의 공통 구조로 통합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전 에디션에서도 d20을 많이 사용했지만, 공격과 내성과 기술과 도적 기술과 시야 판정 등마다 각각 다른 표와 공식이 혼재되어 있었습니다. 5판은 이를 정리해 공격 굴림(Attack Roll), 능력 판정(Ability Check), 내성 굴림(Saving Throw)을 모두 'd20 테스트(d20 Test)'라는 개념 아래 묶고, 하나의 규칙으로 처리하도록 했습니다. 위저즈가 배포한 공식 Basic Rules' PDF를 보면 '게임에서 실패할 수도 있는 행동을 할 때, DM은 d20 테스트를 요구하며, 이 테스트는 d20을 굴린 후 관련 능력 수정치와 해당되는 경우 숙련 보너스를 더해, DM이 정한 난이도(DC) 또는 목표값과 비교하는 방식'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이는 공격, 문 열기, 사람 설득, 주문 버티기 등 모든 행동이 같은 틀 안에서 처리된다는 의미입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공격 굴림은 'd20 + 능력치 수정치(주로 힘 또는 민첩) + 숙련 보너스(해당 무기에 숙련 시)'를 굴려 상대의 AC(Armor Class)와 비교합니다. Basic Rules에서는 이를 'TO HIT ROLL – ROLL D20 + Ability modifier + Proficiency modifier (if app.) vs. Target’s AC'로 간략히 표현합니다. 능력 판정은 'd20 + 관련 능력치 수정치 + 숙련 보너스(해당 기술과 도구 숙련 시)'를 굴려 DM이 정한 DC와 비교합니다. Roll20의 5e 콤펜디움은 '능력 판정에서 d20을 굴리고 관련 능력 수정치를 더한다. 숙련 시 숙련 보너스를 더하고 결과를 DC와 비교한다'고 설명합니다. 내성 굴림은 'd20 + 해당 능력 내성 수정치(대개 능력치 수정치 + 내성 숙련 보너스)'를 굴려 주문이나 효과의 요구 DC와 비교합니다. 예를 들어 '화염구' 주문 내성은 'DEX 세이브 vs 시전자 주문 DC'입니다[^D&D Basic Rules, Version 1.0, Released November 2018][^Rules Definitions][^Rules Glossary][^d20 Tests: let's at least get clear on what the rule says][^In Defense of Ability Scores].

시전자 입장에서는 주문 공격과 주문 내성 DC도 같은 구조를 따릅니다. 스펠 공격은 'd20 + 주문 능력 수정치 + 숙련 보너스'를 AC와 비교하고, 내성을 요구하는 주문은 '8 + 주문 능력 수정치 + 숙련 보너스'로 계산된 주문 DC에 대상이 d20을 굴려 내성을 시도합니다. 주문 DC 계산 공식('8 + 주문 능력 수정치 + 숙련 보너스')과, 이 수치를 넘기면 주문 효과를 버팁니다. 5e의 스펠 공격과 스펠 DC를 각각 '능동적 d20 테스트'와 '수동 체크(passive check)와 유사한 구조'로 규정하며, 모든 것이 'd20 + 수정치 vs 기준값'이라는 공통 구조를 유지합니다. 이처럼 공격, 능력 판정, 내성 굴림이 모두 하나의 공식을 공유할 때 얻을 수 있는 장점은 여러 가지입니다. 첫째, 룰 학습이 아주 단순해집니다. 플레이어는 '상황에 따라 사용하는 능력치와 보너스만 다르고, 주사위 굴림과 비교 방식은 같다'는 원칙만 익히면 됩니다. 신규 유저 입장에서는 이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EN World 토론에서 한 DM은 '5판의 가장 큰 장점은, 초보자에게 ‘d20을 굴리고, 적절한 수정치를 더한 뒤 목표값과 비교한다’는 한 문장만 가르치면 된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둘째, 시스템 설계와 밸런싱이 쉽게 이루어집니다. 공격과 스킬과 내성 모두가 동일한 수치 범위와 통계 구조(1-20 균등 분포)를 공유하기 때문에, 설계자는 '+1 수정치의 의미'를 명확히 인지한 채 DC를 설정할 수 있습니다. EN World의 관련 논의에서는, 초보자 기준 +0, 숙련자 기준 +5, DC 10-15 사이에서 대부분 상호작용이 일어나도록 설계하는 편이 합리적임을 설명합니다. 셋째, 메커닉 확장이 용이합니다. 5판의 Advantage 및 Disadvantage(유리 및 불리) 시스템이 대표적 예입니다. Gamers Dungeon과 Delta의 블로그는 Advantage 시스템을 '추상적인 +X 대신, d20을 두 번 굴려 유리한 값을 택하는 방식으로, 플레이어가 상황의 유리함을 직관적으로 체감하게 한다'고 설명합니다. Advantage도 본질적으로 'd20 테스트' 구조를 건드리지 않으며, 주사위 굴림에만 영향줍니다. 이 덕분에 DM과 디자이너는 '수치 보정 대신, 유리하면 Advantage, 불리하면 Disadvantage'라는 이분법적 규칙으로 많은 상황을 처리할 수 있고, 룰 텍스트와 계산이 단순화되며, 서사와 메커닉도 밀접하게 연결됩니다[^DC Attack Rolls to Hit vs Saving Throws for Spells and the Language thereof?][^Attack rolls vs Saving Throws, and why we don’t need both mechanics][^Understanding Attack Rolls for Spell Casting][^Tweaking the Core of D&D 5E][^What Are Ability Score Improvements & How Do They Work in D&D 5e?][^How to calculate the spell DC for a dex save?][^Advantage and Disadvantage in 5e Explained].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숙련 보너스(Proficiency Bonus)의 통합입니다. 숙련 보너스는 모든 캐릭터가 레벨에 따라 +2부터 시작해 17레벨에 +6까지 같은 값을 갖습니다. 공격과 스킬과 도구과 내성과 주문 공격 등 '특별히 훈련된 행동'에만 적용되고, 훈련되지 않은 행동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Arcane Eye와 Dice Dungeons는 숙련 보너스를 '캐릭터 훈련과 경험을 수치로 나타낸 것'이라고 정의하며, 이 보너스 덕분에 캐릭터 성장과 d20 테스트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고 설명합니다. 즉, 레벨이 오를수록 모든 숙련 행동은 성공률이 조금씩 상승하지만, Bounded Accuracy 덕분에 무한정 오르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Knight at the Opera 블로그의 표현대로 '유연하지만 부서지지 않는(supple but not brittle) 코어 시스템'을 만들어 줍니다. 5판은 '단일 판정 메커니즘과 상한이 있는 수치 구조' 덕분에 OSR 스타일 던전, 스토리 게임, 하이 판타지 등 다양한 스타일을 비교적 낮은 노력으로 포팅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서드파티 모듈과 인디 룰 변형이 5판을 기준으로 하고 있고, 발더스게이트 3 같은 CRPG도 d20 구조를 그대로 도입해 인터페이스와 로그에서 모든 판정을 명확히 설명할 수 있게 했습니다. 발더스게이트 3에서 공격, 능력 판정, 내성, 대화 주사위가 모두 'd20 + 수정치 vs DC'의 프레임을 따르는 것은, 테이블과 디지털을 아우르는 공통 언어로서 d20 시스템이 완전히 정착했다는 증거입니다. 정리하자면, D&D 5판의 d20 시스템은 3판에서 시작된 단일 판정 메커니즘을 '더 명확하고 단순한 형태로' 완성한 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격 굴림, 능력 판정, 내성 굴림 모두를 통합된 공식으로 처리한 덕분에 룰 학습, 설계, 확장이 쉬워졌고, Advantage 및 Disadvantage와 숙련 보너스도 자연스럽게 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관성과 단순성 덕분에 5판은 테이블과 CRPG 모두에서 다양한 장르적 실험과 미디어 확장을 수용가능한 '공통 기반'이 되었고, 발더스게이트 3은 그 대표적 디지털 구현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What Is a Proficiency Bonus in D&D and How Does It Work?][^Rules Glossary][^D20 Tests][^Bounded Accuracy Explained [DnD 5e]][^The New School, the Old School, and 5th Edition D&D][^D20 in Baldur's Gate 3].

D&D 5판의 능력치 시스템은 전통적인 6개 능력치 구조를 유지하면서, 이를 단순하고 선형적인 수학 구조 위에 구성한 방식입니다. 능력치는 힘(STR), 민첩(DEX), 건강(CON), 지능(INT), 지혜(WIS), 매력(CHA) 여섯 가지로 구분되며, 각각은 캐릭터의 다양한 특성을 대표합니다. Roll20 콤펜디움 등 여러 입문 자료에서는 이 여섯 능력치를 아래와 같이 설명합니다. 힘은 물리적 파워와 근접 공격의 기반, 민첩은 반사신경과 정밀함과 회피과 원거리 공격 관련, 건강은 체력과 내구성과 히트 포인트와 연관, 지능은 학문과 논리과 기억, 지혜는 직관과 지각과 정신력, 매력은 설득력과 존재감과 사회적 영향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러한 능력치 구분은 AD&D 시절부터 크게 변화하지 않았지만, 5판에서는 능력치 그 자체보다 '능력 수정치(Modifier)'가 실제 판정에서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 강조됩니다. 능력 수정치는 매우 단순한 수학 공식, 즉 ((능력치 - 10) / 2)를 내림하여 계산합니다. 예를 들어 능력치가 10이나 11이면 수정치는 0, 12나 13이면 +1, 14나 15면 +2, 8이나 9면 –1, 이런 식입니다. '능력 수정치를 표 없이 계산하려면, 능력치에서 10을 빼고 2로 나눈 다음 항상 아래로 내림하면 됩니다. 이런 식의 선형 관계 때문에, 능력치가 2씩 올라갈 때마다 수정치가 정확히 1씩 증가하게 됩니다. 이 공식은 d20 판정의 선형 구조와 맞물려, +1 수정치가 곧 성공 확률 5% 상승을 의미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 선형성은 Bounded Accuracy 구조와도 깊이 연결됩니다. 5판의 능력치 기본 상한은 20(수정치 +5), 숙련 보너스는 20레벨에 최대 +6이고, 대부분의 상황과 아이템 보너스도 일정 범위 안에 관리되고 있습니다. 플레이어 캐릭터가 얻는 총 보너스는 일반적으로 +10-+14가 소프트 상한이며, 극단적 빌드만이 그 이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이 구조 덕분에 d20 테스트에서 주사위의 역할이 유지되고 '한 번의 굴림으로 자동 성공 및 실패'가 되는 상황이 줄어듭니다. 능력치 수정치가 선형이면서도 –5-+5 정도로 제한되어, DC 10-20 사이에서 초보자부터 숙련자까지 다양한 성공 확률을 갖게 됩니다[^Ability Scores][^D&D Basic Rules, Version 1.0, Released November 2018][^In Defense of Ability Scores][^Bounded Accuracy Explained [DnD 5e]][^Rules Glossary].

홀수 능력치는 5판에서 기술적 효과가 거의 없다는 점도 자주 논의됩니다. 예를 들어 능력치 15와 16 모두 수정치가 +2이므로, 실제 게임 성능은 동일하게 나옵니다. 레딧의 '홀수 능력치는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토론에서 유저들은 '5판에서는 홀수 능력치가 직접 수정치 변화를 만들진 않지만, 다음 ASI(능력 점수 개선)나 특전으로 +1을 받을 때 바로 수정치 상승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대기 상태’로 기능한다'고 설명합니다. 또 한 답변자는 '홀수 능력치는 점프 거리나 짐 운반량 등 STR에서 약간 영향을 주거나, 능력치 감소 효과에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덧붙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논의는 '실질적인 효과는 짝수에서만 나오기 때문에, 포인트 바이(point buy)나 ASI 설계 시에는 짝수 능력치를 목표로 한다'로 의견이 모입니다. 홀수 능력치가 이런 '기술적 빈칸'으로 남는 이유는, 5판이 '능력치 자체보다 능력 수정치와 숙련 보너스를 중심으로 설계했다'는 구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능력 수정치가 거의 모든 공격 굴림, 능력 판정, 내성 굴림에 직접 영향을 주기 때문에, 능력치는 종종 수정치를 산출하는 데이터에 불과합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홀수 능력치가 '다음에 짝수가 될 준비 단계'로 작동합니다. CRPG, 특히 발더스게이트 3 등에서는 점프, 짐 운반량 같은 일부 기능이 STR의 정수 값으로 다소 달라지지만, 대부분의 전투과 내성 판정에서는 수정치가 대부분을 결정합니다. 발더스게이트 3 커뮤니티에서도 스팀 포럼 'Uneven Ability Scores' 스레드에서 '홀수 능력치는 수정치에는 영향이 없지만, 다음 ASI나 특정 특전에서 +1을 받으면 짝수로 전환되어 의미를 가진다'는 의견이 공유됩니다[^What is the point in having an odd numbered ability score?][^Is there a purpose in odd ability scores?][^Why do magic items always give odd ability scores?][^Uneven Ability Scores][^Odd-numbered ability scores][^Even VS odd stats].

능력 점수 개선(ASI) 및 특전(Feat) 선택은 이러한 능력치 구조 위에서 성립하는 전략적 선택입니다. 5판에서는 대부분의 클래스가 4, 8, 12, 16, 19레벨에 도달할 때마다 ASI를 선택할 수 있으며, 이때 '능력치 두 개에 +1씩, 또는 하나에 +2를 주거나, 대신 특전을 하나 고를 수' 있습니다. wikiHow의 ASI 안내서는 '플레이어가 일반적으로 주 능력치를 먼저 올려, 수정치를 신속하게 +5까지 달성하는 것이 강력한 전략'이라고 하면서 '특전은 새로운 행동 옵션과 유틸리티를 제공해, 단순 숫자 이상의 재미와 전략을 선사한다'고 설명합니다. 레딧 'ASI vs Feats' 토론에서는 한 유저가 '순수한 숫자 기준으로는 ASI가 장기적으로 더 효율적이지만, 대부분의 특전은 새로운 기능을 줘서 그냥 숫자만 올리는 것보다 게임을 흥미롭게 만든다'고 요약합니다. 또 다른 유저는 '메인 능력치가 20에 도달하면 5판 Bounded Accuracy에서는 큰 가치가 있지만, Polearm Master나 Sentinel, Great Weapon Master, Sharpshooter 등 일부 특전은 ASI 이상의 기대값을 낳는다'고 소개합니다. 이 논쟁은 '성능과 재미' 사이의 선택을 반영합니다. ASI는 대부분의 경우 모든 판정에 조금씩 도움을 주는 안정적인 선택입니다. 예를 들어 주문 시전자의 지능이 18에서 20으로 오르면, 주문 DC와 주문 공격 보너스가 모두 +1이 올라, 거의 모든 주문의 성공률이 5%씩 증가합니다. 그러나 이는 기존 행동을 '조금 더 잘하게' 해줄 뿐, 새로운 행동 옵션을 제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 특전은 완전히 새로운 전술과 상호작용을 만들어줍니다. 예를 들어 Polearm Master는 기회 공격 조건을 변화시키고, 보너스 액션 공격을 추가해 근접 전투의 리듬을 바꾸며, War Caster는 시전자가 기회 공격 대신 주문을 사용할 수 있게 해 행동 선택을 대폭 확장합니다. 이런 특전은 단순한 +1, +2 수정치 이상의 전략적 가치를 지닙니다[^War Caster][^The Polearm Master Feat is Crazy Good!][^ASI versus feats discussion][^ASI vs Feats - which is really more optimal?][^Ability Score Increase vs. Feat?][^5e Feats vs Ability Score Improvement].

EN World 'Choosing between ASI and Feats' 토론에서는 한 유저가 '4레벨에 특전을 선택해 캐릭터 컨셉를 명확히 하고, 이후 레벨에서 ASI로 능력치를 다듬는 것이 개인적인 규칙'이라 밝히기도 합니다. 이런 조언은 5판의 능력치과 특전 설계방향을 잘 나타내며, 시스템 자체가 ASI와 특전을 모두 허용하면서 어느 한쪽만 항상 최적이 되지 않도록 균형을 잡고 있습니다. Bounded Accuracy 때문에 +2 능력치( = +1 수정치)도 여전히 큰 의미를 가지지만, 특전은 새로운 시스템 층(추가 공격, 반응, 보너스 액션, 새로운 판정 방식 등)을 열어 주어서, '캐릭터를 더 잘하게 만들 것인가, 새로운 무언가를 하게 할 것인가' 사이에서 플레이어가 선택하게 만듭니다. 결론적으로, D&D 5판의 능력치 시스템은 전통적 6능력치 구조를 유지하면서 ((능력치 - 10) / 2)라는 단순한 선형 공식과 Bounded Accuracy를 결합, '작은 숫자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홀수 능력치는 즉각적인 수정치 변화는 없으나, ASI와 특전을 통한 향후 성장의 완충제로 기능하며, ASI vs 특전 선택은 캐릭터 빌드 및 플레이 스타일 설계의 핵심 의사결정 지점입니다. 이 능력치 시스템은 발더스게이트 3에서도 거의 그대로 구현되며, 그 위에 점프과 밀쳐내기과 표면과 고도 등 시스템 레이어가 추가되어, 테이블과 디지털 양쪽 모두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숫자 변화'와 '상황과 위치 기반 전술'이 동작하는 구조가 완성됩니다[^Ability Scores][^The New School, the Old School, and 5th Edition D&D][^Can Someone Explain Proficiency Bonuses to Me?][^D20 in Baldur's Gate 3][^Do you have to reveal your NPC's aspects?].

D&D 5판에서는 전통적인 폴리헤드럴 주사위 세트, 즉 d4, d6, d8, d10, d12, d20, 그리고d% (d100)를 사용합니다. 레딧과 여러 입문 자료에서는 각 주사위가 '어떤 정도의 효과'를 표현하는지에 대한 유사한 설명을 제공합니다. 일반적으로 d4는 '아주 약한 피해나 효과'를 나타내는 데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단검(dagger)이나 작은 주문, 저레벨 치유 주문의 피해 또는 회복량은 대부분 d4에 기반합니다. d6는 가장 널리 사용되는 피해 주사위로, '표준적인 피해량'을 표현합니다. 많은 기본 무기(단검 제외), 화살, 여러 주문의 피해량이 d6 단위를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d8은 d6보다 한 단계 높은 '강한 일반 무기 피해'를 표현하는 데 자주 쓰입니다. 롱소드, 레이피어, 일부 양손 무기 및 주문이 d8 피해를 사용하며, 평균 4.5의 피해량을 제공합니다. d10은 그보다 더 높은 피해량이나 특정 상황에 의미 있게 사용됩니다. 강력한 무기(헤비 크로스보우, 특정 양손 무기) 및 상위 레벨 주문(예: eldrich blast의 상승 레벨)에서 사용되며, 경험치 지급이나 퍼센트 기반 결정에도 d10이 활용됩니다. d12는 가장 큰 단일 피해 주사위로, 바바리안의 그레이트액스 같은 '극강' 물리 무기의 피해를 표현할 때 상징적으로 사용됩니다. 많은 해설에서는 d12를 '자주 등장하지 않지만, 등장할 때는 큰 피해를 상징하는 주사위'라고 평가합니다. d20은 d20 시스템의 중심으로, 대다수 공격 굴림, 능력 판정, 내성 굴림에 사용됩니다. The Shop of Many Things와 Die Hard Dice 등의 설명에서는 d20을 '행동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주사위'로 규정하면서, 공격 명중 판정, 스킬 체크, 설득 시도, 함정 회피 등 거의 모든 주요 행동의 판정에 사용된다고 합니다. d% 혹은 d100은 두 개의 d10을 조합하거나 별도의 100면체 주사위를 사용해 1-100 사이의 백분율 결과를 산출하는 데 쓰입니다. 이는 보통 무작위 결과 표(랜덤 아이템 테이블, 기이한 효과 표), 희귀 이벤트, 일부 마법 효과의 발동 여부 결정 등에 활용됩니다. 정리하자면, d4-d12는 주로 피해과 회복과 변동량을 표현하고, d20은 행위의 성공 여부 판단, d%는 '극단적인 무작위성'과 테이블 기반 결과를 나타내는 데 사용됩니다[^Does anyone have a simple and organized list of all the situations in which you roll dice in 5e with a break down of the formula for each roll?][^Can't understand dice][^Noob Question,What do all the different dice do?][^Understanding dice rolls][^Damage Types 5e].

각 주사위가 표현하는 확률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시스템 설계 및 해석에 매우 중요합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한 개의 공정한 n면체 주사위의 기대값(평균)은 ((1 + n) / 2)입니다. 따라서 d4의 평균은 2.5, d6은 3.5, d8은 4.5, d10은 5.5, d12는 6.5가 됩니다. Die Hard Dice와 TheshopofManyThings에서는 이러한 평균값을 바탕으로 '작은 무기는 d4, 일반적인 무기는 d6, 강한 무기는 d8, 매우 강한 무기는 d10-d12로 피해를 표현한다'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 기본 공격 액션이라도 d4 무기를 사용하는 캐릭터와 d12 무기를 사용하는 캐릭터의 평균 피해량에는 약 4점의 차이가 생기고, 이는 전투 설계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집니다. 여러 주사위를 조합할 경우, 분포는 중앙값으로 몰리는 경향을 보입니다. Paizo 포럼의 'Dice Size: Calculating Average Damage' 글에서는 다양한 주사위 조합의 평균과 분포를 비교하며, 6d6, 4d10, 2d20–1, 8d4 같은 서로 다른 조합의 평균 피해와 예측 가능성을 분석합니다. 예를 들어 평균 20 피해를 내는 여러 조합을 비교해 보면, 2d20–1은 '20 이상'이 나올 확률이 52.5%인 반면, 6d6–1은 56.64%, 8d4는 95.97%로 훨씬 더 예측 가능한 피해량을 제공합니다. 해당 논의에서는 '8d4의 분포는 매우 좁아 16-24 사이에 84.8%의 확률로 머물지만, 2d20–1은 분포가 더 넓고 예측이 어렵다'고 설명합니다. 이처럼 주사위의 개수와 크기로 피해량의 안정성과 변동성을 설계자가 조절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D&D 5판은 이전 에디션보다 피해 주사위 조합을 다소 단순하게 유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무기와 주문은 1-3개의 동일한 주사위를 사용하며, 너무 많은 주사위를 굴리는 것을 피합니다. 이는 플레이 편의성을 고려한 선택인 동시에 Bounded Accuracy 철학과도 연결됩니다. 이미 공격 명중 여부에서 d20의 큰 변동성이 작용하기 때문에, 피해량까지 과도하게 랜덤하게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평균값을 바탕으로 밸런스를 맞추고, 주사위 개수와 크기로 '클래스별 피해 곡선'과 '운의 영향력'을 조절하는 설계를 합니다. 이 철학은 트랩, 광역 주문, 고레벨 능력 설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Paizo 포럼에서는 '같은 평균 피해를 가진 트랩이라도, 여러 개의 d6을 사용하는 것이 d10 몇 개를 사용하는 것보다 예측 가능성이 더 높아 게임 흐름에 덜 파괴적'이라고 평가합니다. 5판에서는 많은 광역 주문(예: 파이어볼, 라이트닝 볼트)이 여러 개의 d6을 사용해 피해를 표현하고, DM은 플레이어의 평균 HP를 기준으로 '평균 피해가 위험하지만 치명적이지 않은 수준'인지 판단합니다. 예를 들어, 파티 평균 HP가 30일 때 8d6 파이어볼의 평균 피해는 28로, 세이브 성공 시 14, 실패 시 28이라는 숫자는 '한 번 맞으면 크게 다치지만, 운이 따를 경우 버틸 수 있는' 위험도를 제공합니다. 이러한 설계는 기대값과 분포를 이해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결과입니다[^New PDF once the Golarion Campaign Setting is revised?][^Bounded Accuracy Explained [DnD 5e]].

어드밴티지 및 디스어드밴티지(Advantage 및 Disadvantage) 시스템은 5판 주사위 설계의 핵심 혁신입니다. Delta의 D&D Hotspot과 EN World 확률 분석 글에서는 Advantage가 d20을 두 번 굴려 높은 값을, Disadvantage가 두 번 굴려 낮은 값을 택하는 구조임을 설명합니다. 단순한 +X 보너스가 아니라 분포 전체를 비선형적으로 바꾸어 주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DC에서 '10 이상이 나오면 성공'이라고 할 경우, 일반적으로 d20을 한 번 굴리면 성공 확률은 55%입니다. Advantage 시 성공 확률은 약 79.8%, Disadvantage는 약 30.25%로 나타나며, Advantage는 약 +25% 포인트 상승, Disadvantage는 –25% 수준의 감소에 해당합니다. 'Advantage의 효과는 매우 크며, 높은 값을 노릴 때 성공 확률을 거의 두 배 가까이 올려준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이는 d20 단일 굴림에서 +5 수정치 추가와 비슷한 효과입니다. 실제로 5판에서는 '수동 판정(passive check)'에서 Advantage 및 Disadvantage를 ±5 보정으로 간주합니다. EN World 글에서는 '기본적인 DC 구간(10-15)에서 Advantage 및 Disadvantage는 대략 ±5의 정적 보너스와 같으므로, 수동 판정에는 +5 및 -5로 대신 적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정리합니다. 이 시스템의 설계 철학은 Chris Sims의 글에서 잘 드러납니다. Sims는 개발 참여 경험을 기반으로 '보너스는 잊기 쉽고, 여러 수정치 합산은 어렵고 재미도 없으며, 주사위를 더 많이 굴리는 것이 촉각적과 시각적 단서를 제공해 더 즐거움을 주었다'고 설명합니다. 개발팀은 '정적 보너스 대신 추가 주사위를 적용하는 방식을 시도했고, 그 결과가 Advantage 및 Disadvantage, 바드의 영감(Bardic Inspiration) 등으로 남았다'고 회고합니다. 주사위를 더 많이 굴리는 것은 플레이어에게 더 많은 긴장감과 보상을 주고, 계산에 복잡함을 더하지 않습니다. Bounded Accuracy 철학과 연결해 보면, 정적 보너스를 과도하게 쌓으면 금방 한계를 넘기고 시스템이 깨지기 쉬운 반면, Advantage는 한 번만 적용되고 스택되지 않아, '유리함이 무한대로 쌓이는 것'을 자동으로 방지합니다[^Advantage vs Disadvantage : What's the Math?][^Bounded Accuracy is what?][^Bounded Accuracy Explained [DnD 5e]].

자연 20과 자연 1의 규칙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5판 Basic Rules에 따르면 공격 굴림에서 자연 20(주사위 눈이 20)이 나오면 수정치와 상관 없이 반드시 적중하며, 피해 주사위를 두 배로 굴리는 치명타(critical hit)가 적용됩니다. 반대로 자연 1은 자동 실패로, 어떤 보너스가 있더라도 공격이 빗나갑니다. 레딧과 EN World 토론에서도, 이 규칙이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전투의 긴장감과 불확실성을 유지해 주는 장치'라고 강조됩니다. 아무리 강해도 5% 확률로 빗나갈 수 있고, 아무리 방어력이 높아도 5% 확률로 적중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Advantage 및 Disadvantage의 또 하나의 설계 특징은 '스택 불가'라는 점입니다. 여러 개의 Advantage를 얻어도 계속 d20 두 번만 굴려 높은 값을 선택하며, Advantage와 Disadvantage가 동시에 있으면 상쇄되어 평범한 d20 굴림이 됩니다. 레딧과 EN World의 논의에서도 이것이 의도된 제한임이 설명됩니다. 'Advantage를 여러 번 쌓을 수 있으면 끝없이 보너스를 찾아야 하고, 결국 복잡한 보너스 스택 규칙이 도입되어야 한다. 한 번만 얻으면 거기서 멈추도록 설계된 장치'라는 의견이나, Apothecary Press의 보너스 설계 해설에서 '키워드 스택과 정적 보너스의 남발을 막는 Bounded Accuracy 철학에 맞추기 위해 Advantage 및 Disadvantage가 대안으로 선택되었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정리하자면, 5판의 주사위 시스템은 다음과 같은 철학을 따릅니다. 먼저, d20 단일 판정을 중심으로 두고, 다른 주사위는 피해과 회복과 변동량에 집중합니다. 다음으로, 주사위의 수와 종류를 통해 평균값과 변동성을 설계하고, 기대값을 기반으로 난이도과 밸런스를 맞춥니다. 마지막으로, Advantage 및 Disadvantage와 자연 20 및 1 등 특수규칙을 정적 보너스 대신 '추가 주사위와 극단값'으로 긴장감과 보상을 표현하는 데 사용합니다. 이러한 구조는 발더스게이트 3 같은 CRPG에서 시각적 표현과 로그 제공에도 매우 유리합니다. 플레이어는 화면에서 '2d20 중 높은 값', '1d8+3 피해', '자연 20 → 치명타' 등의 정보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개발자는 복잡한 보너스 계산 대신 '언제 Advantage를 주고, 어떤 주사위를 몇 개 굴릴지'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주사위 시스템은 5판에서 룰의 단순화, 긴장감, 설계의 용이성을 동시에 실현하기 위한 핵심 도구임을 볼 수 있습니다[^DMs, how do you deal with natural 1's and natural 20's?][^How does a natural 20 and natural 1 work ?][^Why you can't just balance spells: a discussion of class scaling in 5e and OneDnD.][^Tweaking the Core of D&D 5E][^Bounded Accuracy][^what do you do/rule with nat 1 or nat 20 in combat?].

D&D 5판에서 자연 20과 자연 1은 단순한 숫자를 넘어서는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규칙상 공격 굴림에서 d20이 20이 나오면, 수정치와 방어도(AC)에 상관없이 자동으로 명중하며 동시에 치명타(critical hit)로 처리됩니다. D&D Beyond의 규칙 Q&A에서도 '자연 20은 공격 굴림에서 자동 명중이며, 피해 주사위를 두 배로 굴리는 치명타가 발생한다'고 명확히 설명하고 있고, 2024년 개정판의 d20 테스트 규정에서도 이 사실을 재확인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d20이 1이 나오면, 어떤 보너스가 붙더라도 그 공격은 자동 실패로 처리됩니다. 기본 규정(Rules as Written)에 따르면, 이러한 자동 성공과 실패 규칙은 공격 굴림과 사망 내성 굴림에서만 적용되며, 일반 능력 판정이나 내성 굴림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도 레딧 Q&A에서 명확히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 규칙이 주는 직접적인 효과는 바로 '극적인 순간을 만들어 준다'는 점입니다. EN World의 토론이나 TheGamer 같은 기사에서는, 플레이어들이 자연 20을 '게임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스전에서 마지막 공격이 자연 20으로 나와 남은 HP를 한 번에 날려버리거나, 거의 불가능해 보이던 공격이 성공하는 장면은 룰 효율성, 밸런스와 별개로 강한 감정적 보상과 만족을 줍니다. 자연 1 역시 비슷한 효과를 가집니다. 아무리 강한 캐릭터라도 5% 확률로 치명적인 실수나 명백한 실패를 할 수 있으며, 이는 긴장과 유머를 동시에 만들어냅니다. EN World 'How fantastic are natural 1’s?' 논의에서 한 참가자는 '자연 1은 캐릭터가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때로는 이야기의 재미있는 전환점이 된다'고 말합니다. 게임 디자인 이론 관점에서는 이런 규칙을 '게임 감각(game feel)'의 일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Delta Vector의 'Game Design #102: Game Feel' 글에서는 주사위와 같은 물리적 요소, 그리고극단적 결과가 플레이어의 체감과 몰입에 끼치는 영향을 분석하며, 'swingy d20s'가 만들어내는 긴장과 만족감을 강조합니다. 그는 '플레이어가 높은 숫자를 굴려 극적인 결과를 얻는 경험 자체가, 수학적으로 최적이냐와 상관없이 게임의 핵심 재미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자연 20과 1 규칙은 '변동성 높은 d20의 손맛'을 의도적으로 강화하는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발더스게이트 3 같은 CRPG에서는 이 효과가 화면 연출(슬로 모션, 카메라 줌, 특수 효과)와 결합되어, 자연 20 및 1이 나올 때마다 플레이어에게 강한 피드백을 제공합니다[^DMs, how do you deal with natural 1's and natural 20's?][^How does a natural 20 and natural 1 work ?][^Critical Fumble Tables for 5e D&D][^Bounded Accuracy][^Why Does D&D Use a D20? (and which game used it first?)][^Adventure System - Polyhedral Madness].

자연 20 / 1 규칙은 Bounded Accuracy 설계 철학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D&D Beyond 토론에서는 한 디자이너가 '몬스터는 어떤 공격 굴림도 항상 5%의 명중 확률과 5%의 실패 확률이 있다는 가정 하에 설계하며, 치명타의 피해 두 배 효과 또한 이 밸런싱 구조에 포함된다'고 설명합니다. 즉, 자연 20 및 1 규칙은 오랜 전통이나 감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실제 몬스터와 캐릭터 밸런스 설계의 근간이기도 합니다. 드래곤이든 고블린이든, 이 규칙 덕분에 이론상 5% 확률로 누구에게든 공격이 명중할 수 있고 실패할 수 있습니다. Bounded Accuracy의 기본 원칙은 '수치가 과도하게 벌어져 낮은 레벨의 몬스터나 DC가 고레벨에서 완전히 무의미해지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Old Dungeon Master와 EN World의 해설에 의하면, 5판은 능력치과 숙련 보너스과 기타 보너스의 상한을 제한하고, 몬스터의 방어도(AC)과 내성과 공격 보너스를 좁은 범위 안에서 조정함으로써 레벨이 상승하더라도 성공과 실패 가능성을 항상 일정 수준 확보하도록 설계합니다. 자연 20 및 1 규칙은 Bounded Accuracy 위에서 '최소 5% 확률 바닥(floor)'을 깔아줍니다. 아무리 방어도가 높아도, 낮은 레벨 몬스터의 공격이 5% 확률로 명중할 수 있고, 반대로 아무리 보너스가 높아도 항상 자동 실패의 위험이 남아 있습니다. Dragonsfoot의 'Nat 20 및 Nat 1' 논의에서는 1E-5E 공통 규칙으로 '대부분의 경우, 자연 20은 자동 명중, 자연 1은 자동 실패이며, 이는 높은 AC의 적에게도 항상 어느 정도 위험을 남기고, 낮은 공격 보너스의 캐릭터에도 언제나 약간의 희망을 주는 규칙'임을 설명합니다. EN World의 Bounded Accuracy 논의에서도, 한 참가자가 'Bounded Accuracy의 핵심은 낮은 레벨의 적이라도 다수로 나타나면 고레벨 파티에게도 일정 수준 위협이 되는 구조'임을 소개합니다. 자연 20 및 1 규칙은 이것을 수학적으로 보장하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예를 들어, 공격 보너스 +4를 가진 고블린 20명이 AC 20의 전사를 공격할 경우, 각 고블린은 기본적으로 5% 확률(자연 20)로 명중할 수 있고, 20번 공격 중 1-2번은 맞거나 치명타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는 '수많은 작은 적이 모여 고레벨 캐릭터에게도 의미 있는 위협을 줄 수 있다'는 설계와 일치합니다[^Bounded Accuracy is what?][^[D20/5E] Mechanical differences from 1E][^Pre-3e mechanics vs d20 system mechanics][^D&D Basic Rules, Version 1.0, Released November 2018].

반대로 자연 1 규칙은 고레벨 캐릭터라도 완전 무적이 되는 것을 막는 안전장치입니다. D&D Beyond Q&A에서 '+5 공격 보너스를 가진 캐릭터가 젤라틴 큐브를 공격할 때, 자연 1은 항상 빗나가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변자는 2024 PHB의 d20 테스트 규정을 인용하며 '자연 1은 어떤 AC에도 자동 실패'임을 확실히 합니다. 이것은 '플레이어가 방심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이자, '운이 좋으면 약한 적도 위험해질 수 있고, 운이 나쁘면 강한 캐릭터도 실수할 수 있다'는 Bounded Accuracy 철학을 확고히 뒷받침하는 규칙입니다. 자연 20 및 1 규칙은 단순히 극적인 연출을 위한 요소를 넘어, 수학적으로도 게임 밸런스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EN World와 레딧의 수학 토론을 정리하면, 이 규칙은 다음 두 가지 핵심 효과를 가집니다. 첫째, '상대 AC가 일정 수치를 넘어서면 방어 효율이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 구간'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공격 보너스가 +2인 캐릭터가 AC 22, 25, 30인 적을 공격할 경우, 자연 20 자동 명중 규칙 때문에 이 모든 AC에 대해 명중 확률이 똑같이 5%가 됩니다. 레딧의 한 분석글에서는 '공격 보너스 +2 캐릭터에게 AC 22 이상은 모두 방어 성능이 똑같다. 이 시점에서 AC를 아무리 올려도 실질적인 방어력은 더 상승하지 않는다'고 소개합니다. 즉, 보스의 생존력을 높이고 싶으면 AC 무한 상승이 아니라 HP, 저항, 면역, 전술, 전장 요소 등 다른 수단을 고려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둘째, 자연 1 자동 실패 규칙은 공격 보너스가 아무리 높아도 명중률이 100%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상한을 둡니다. 아무리 AC가 낮아도, 공격자는 반드시 5% 확률로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고레벨이 되면 어떤 공격이든 항상 명중하는 현상'을 방지합니다. EN World 수학 토론에서는 '만약 자연 1 자동 실패 규칙이 없으면, 공격 보너스가 AC보다 19 이상 높으면 명중률이 100%가 된다. 이렇게 되면 고레벨 캐릭터가 낮은 레벨 몬스터에게 완전 무적이 되거나, 반대로 일부 몬스터는 플레이어를 아예 맞히지 못하는 극단 현상이 발생한다'고 소개합니다. 자연 1 및 20 규칙은 이러한 극단을 방지하는 '확률적 안전장치' 역할을 합니다. 이 규칙이 실질적인 밸런스 지표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는 D&D Beyond 토론에서도 드러납니다. 한 디자이너는 '몬스터는 어떤 공격이든 5%의 자동 명중, 자동 실패 확률을 갖고 있으며, 치명타 피해량(crit damage) 역시 그 통계에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즉, 몬스터 공격 보너스와 피해량 산출에서 '5% 확률의 치명타(crit) 기대값'이 이미 계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평균 피해 10의 공격을 가진 몬스터라면 '95% 확률로 10, 5% 확률로 20'을 내는 것으로 기대값을 계산하여 총 피해량 10.5로 설계합니다. 만약 자연 20 자동 명중 및 치명타 규칙을 빼거나 변경하면, 모든 기대값과 CR(도전 등급) 계산이 어긋나게 됩니다[^DMs, how do you deal with natural 1's and natural 20's?][^How does a natural 20 and natural 1 work ?][^Stacking advantage and disadvantage][^D&D 5e | DM's Guild Review-Critical Hit/Fumble Tables | Nerd Immersion][^Tweaking the Core of D&D 5E].

Bounded Accuracy와 natural 20 및 1 규칙이 결합되면 시스템은 '중간 수준에서의 수치 변화'에는 민감하지만, '극단적 수치 차이'에서는 자연 20 및 1이 5% 확률 하한을 형성합니다. 이 구조는 다음 두 가지 설계적 함의를 가집니다. 첫째, 중저레벨 구간에서는 능력치과 숙련과 아이템 등으로 공격 및 방어 보너스를 조정하는 것이 큰 영향을 줍니다. +1-+3 보너스만으로도 성공 확률이 실질적으로 많이 변합니다. 둘째, 고레벨 구간에서는 '수치 스택'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므로, 상태이상, 면역, 지형, 수적 우위, 액션 이코노미(Action Economy) 같은 전술 도구의 활용이 더욱 중요해집니다[^Action Economy]. 실제 5판의 고레벨 보스는 높은 AC 대신 레전더리 세이브, 레전더리 액션, 레어 액션 등의 시스템 위에서 설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자연 20 및 1과 Bounded Accuracy가 '수치 스택만으로는 공략 불가한 영역'을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자연 20과 자연 1 규칙은 5판에서 세 가지 측면을 동시에 다룹니다. 첫째, 플레이 감각 차원에서 극적인 순간과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극단값 메커니즘입니다. 둘째, 설계 철학 차원에서는 Bounded Accuracy와 결합해 '모든 캐릭터에게 최소 5%의 기회와 5%의 리스크를 보장'함으로써 저레벨 적과 고레벨 캐릭터 사이의 상호작용을 유지합니다. 셋째, 수학적과 밸런스 차원에서는 AC와 공격 보너스의 효용 범위를 제한하고, 기대값 계산에 5% 자동 명중 및 실패를 내포시켜 CR과 난이도 설계의 기준을 제공합니다. 발더스게이트 3 역시 이 규칙을 그대로 도입하여, 자연 20 및 1에 고유의 시각적 피드백과 이벤트 연출을 더해, 테이블과 디지털 양쪽에서 이 설계 의도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고 있습니다[^Bounded Accuracy is what?][^D20 in Baldur's Gate 3][^Bounded Accuracy Explained [DnD 5e]].

3.5판에서 가장 자주 지적되는 문제 중 하나는 '파워 인플레이션(power creep)'와 수정치 누적에 따른 극단적인 격차 현상입니다. 3.x 및 3.5판 시스템에서는 레벨이 높아질수록 공격 보너스, 내성, 스킬 보너스, AC, 주문 DC 등이 급격히 상승하는 구조였고, 여기에 다양한 마법 아이템, 버프, 특전(Feats), 프레스티지 클래스 능력이 더해져 특정 수치가 20을 훌쩍 넘기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DMDavid의 'Bounded Accuracy를 필요하게 만든 두 가지 문제'라는 글에서는 3판의 수치 인플레이션이 초래한 현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첫째, 특정 스킬이나 능력에 집중 투자한 캐릭터는 '말도 안 되는 보너스'를 가지게 되어 해당 분야에서는 사실상 자동 성공만 하게 됩니다. 둘째, 반면 해당 분야에 전문성이 없는 캐릭터는 DC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이 되어 자동 실패만 경험합니다. 예를 들어, 고레벨 로그가 은신(스텔스)에 +25 보너스를 가지고 있으면 DC 35 순찰을 손쉽게 돌파할 수 있지만, +5 보너스의 다른 캐릭터는 실질적으로 시도 자체가 무의미해집니다. 이 구조는 DM의 DC 설계에도 큰 딜레마를 가져왔습니다. DC를 높게 잡으면 전문가는 겨우 도전할 만하지만 비전문가는 완전히 불가능해지고, DC를 낮추면 전문가는 자동 성공이고 비전문가만 겨우 도전 상태가 됩니다. Campaign Mastery와 EN World의 오래된 논의에서는 3판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DC를 더 세분화하거나, 추가 주사위를 도입해 '도전 가능 영역'과 '항상 실패 영역'을 분리하는 방안도 제시했으나, 결국 룰 자체가 지나치게 복잡해지는 부작용만 남았다고 회고합니다. 여기다 수많은 스플랫북과 확장 서적들이 점점 더 강력한 옵션을 도입하면서 '신간을 사지 않으면 메타에서 뒤처지는' 구조가 생겨 파워 인플레이션은 단순히 수치의 문제가 아니라 상업 및 커뮤니티 전반의 문제로까지 이어졌습니다[^Colored versions of Claudio's Iconics].

5판의 Bounded Accuracy는 이러한 논란에 대응하기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DMDavid의 'D&D Next에서의 숙련과 Bounded Accuracy' 글에서는 Bounded Accuracy를 '레벨이 오를수록 공격과 스킬과 내성 보너스가 끝없이 상승한다는 가정을 버리고, 대신 HP와 피해량, 새로운 능력에 초점을 맞춘 설계'라고 설명합니다. Roleplayers Chronicle에서 인용된 로드니 톰슨(Rodney Thompson) 개발 메모 또한 'Bounded Accuracy의 기본 원칙은 플레이어의 명중률이나 방어가 레벨이 오르면 자동적으로 올라가지 않는 것이며, 캐릭터 간의 차별점은 HP, 피해량, 그리고획득하는 능력에 있다'고 밝힙니다. 즉, 공격과 방어과 스킬 수치 인플레이션을 제한하여 3.5판에서 나타났던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극단적 격차' 문제를 완화하려 했다는 뜻입니다. Bounded Accuracy의 수학적 핵심은 '수정치의 범위를 제한하는 것'입니다. DnD Lounge의 Bounded Accuracy 해설을 보면, 5판에서 플레이어 캐릭터가 일반적으로 얻을 수 있는 최대 보너스를 구체적으로 계산합니다. 일반적으로 능력치 상한은 20이며(+5 수정치), 숙련 보너스는 20레벨에 +6까지 오릅니다. 특정 클래스나 특수 능력으로 특정 판정에 추가 +1-+3 정도의 보너스를 얻을 수 있지만, 이 모든 특수 보너스를 더해도 통상 최대치가 +10-+11 수준입니다. 즉, '최적화한 캐릭터도 d20 테스트에서 가질 수 있는 최대 수정치는 대략 +11 정도'라는 점이 Bounded Accuracy 설계의 핵심입니다[^Bounded Accuracy is what?][^Bounded Accuracy 5e [DnD Design Guide]].

D&D Beyond의 Bounded Accuracy 토론에서도 같은 지적이 나옵니다. 한 참가자는 '수정치가 +10이면, d20이 전체 결과의 2 및 3를 차지한다. 즉, 주사위가 여전히 결과에 큰 영향을 주고, 캐릭터 시트 숫자가 주사위 결과를 압도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3.5판에서 +20을 넘겨버리는 수정치와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있는 셈입니다. Paizo 포럼의 옛 글에서도 '3.5에서는 d20 굴림 자체보다 캐릭터 시트 상의 보너스가 더 중요한 경우가 많아 결국 주사위의 의미가 희미해졌다'고 비판합니다. 5판은 Bounded Accuracy와 능력과 숙련 보너스 구조 덕분에 주사위의 역할을 다시 게임의 핵심 요소로 복원했습니다. Bounded Accuracy는 수정치 상한을 두어 작은 보너스도 오래 의미를 가지는 구조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3판에서는 +1 마법 무기가 고레벨에서는 거의 체감이 안 되어 버리는 옵션이었지만, 5판에서는 +1 공격과 피해 보너스가 전 레벨 구간에서 꾸준히 의미 있는 차이를 만들어 줍니다. 공격 보너스 +6 캐릭터가 +7로 올라가면 평균 성공률이 5%포인트씩 오르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설계 원칙은 낮은 숫자로도 충분한 깊이와 전략성을 제공하면서, 시스템을 단순하게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합니다. Bounded Accuracy는 난이도(DC) 설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플레이어 핸드북과 DM 가이드에는 작업 난이도를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 있습니다. 매우 쉬움(5), 쉬움(10), 보통(15), 어려움(20), 매우 어려움(25), 거의 불가능(30)입니다. MerricB의 'DC 설정 방법' 글과 Hipsters & Dragons의 난이도 해설 역시 이 표를 바탕으로, 실제 플레이에서 각 DC가 어떤 성공률을 의미하는지 분석합니다. Merric은 '보통(DC 15) 작업은 숙련된 캐릭터가 절반 정도 성공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하고, '거의 불가능(DC 30)은 대부분의 캐릭터에게는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진짜 전문가(높은 능력치, 숙련, 특전 보유 시)는 40% 정도 성공할 수 있다'고 분석합니다. Hipsters & Dragons에서도 '보통 DC를 15로 두면 평균적인 캐릭터(수정치 +0 기준)에게는 약 30%의 성공률'을 제공합니다[^Bounded Accuracy is what?][^In Defense of Ability Scores][^D20 in Baldur's Gate 3].

하지만 실제 캠페인에서는 이 표를 그대로 적용하면 '쉽다'라는 느낌이 기대보다 덜할 수 있습니다. 레딧의 'Task difficulty DCs: Easy is far from easy' 글에서는, PHB 및 DMG의 DC 표를 사용하면 평균치 캐릭터(능력치 10, 수정치 +0)에게 쉬운 DC 10이 성공률 55%에 불과하고, 보통 DC 15는 30% 정도이어서 '용어가 직관적이지 않다'고 소개합니다. 예로 '폭 1m의 나무다리 빈칸을 점프하는 상황'을 들며, 이는 일반인에게 어렵지만 모험가에게는 쉬운 일이며, DMG 표대로면 난이도 매기기가 애매하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 여러 DM과 디자이너들은 'DMG의 표는 기본 가이드일 뿐, 캠페인 톤과 파티 수준에 맞게 DC를 조정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Bounded Accuracy를 적용한 DC 설계 원칙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DnD Lounge 가이드와 MerricB 글을 종합하면, DC 8-10은 '대부분 캐릭터가 자주 성공하는 쉽고 일상적인 작업', DC 12-13은 '훈련 받은 캐릭터에게는 안정적이지만 비전문가에게도 시도할 만한 작업', DC 14-15는 '전문가에게 도전적이고, 비전문가는 운이 필요한 수준', DC 18 이상은 '특정 상황에서만 시도할 수 있는 높은 난이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능력치 16(+3), 숙련 보너스 +3으로 총 +6을 가진 캐릭터는 DC 15 보통 작업을 약 55% 확률로 성공하고, DC 20 어려운 작업을 30% 정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반면, 수정치 +0 캐릭터는 DC 10에서 55%, DC 15에서 30%, DC 20에서는 5%만 성공합니다. 이런 데이터는 '파티 전체가 어느 정도의 의미 있는 선택권을 가지게 하는' 방식을 설계할 때 참고가 됩니다. 중요한 점은 단순히 파티 평균에 맞춰 DC를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와 비전문가 모두에게 의미 있는 선택 공간'을 만들려는 것입니다. Campaign Mastery의 '수정치 여섯 종류' 글에서는 '작업이 전문가에게 어느 정도 성공률이 있어야 하는지, 그다음 비전문가도 경험이 망가지지 않을만한 성공률을 갖는지를 확인하라'고 조언합니다. Bounded Accuracy 덕분에, 대부분 DC가 10-20 범위에서 결정되고, DM은 즉석에서 난이도를 정하는 것이 쉬우면서도 파티와 플레이 스타일에 맞는 차이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Task difficulty DCs: Easy is far from easy.][^An Eternal Debate: Appropriate DC levels.][^How to Choose DCs for Your 5e Game][^Bounded Accuracy 5e [DnD Design Guide]][^DC Difficulty][^“How Hard Can It Be?” – Skill Checks under the microscope].

Bounded Accuracy의 설계 목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모든 레벨에서 모든 플레이어가 일정 정도는 관련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하자'입니다. Roleplayers Chronicle의 해설에서는 로드니 톰슨의 말을 인용해, 'Bounded Accuracy의 가장 큰 강점은 약한 몬스터들이 캠페인 내내 의미 있는 존재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면 고블린이나 코볼트 같은 약한 몬스터도 Bounded Accuracy 덕분에 레벨 1-20까지 계속 등장시킬 수 있고, 숫자, 위치, 전술을 활용하면 여전히 위협이 됩니다. 이 구조는 CRPG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발더스게이트 3에서 낮은 CR 몬스터(고블린 등)는 단순 경험치 가치는 낮지만, 수적으로 많거나 지형과 고도를 잘 활용하면 여전히 파티에 위협을 줄 수 있습니다. Bounded Accuracy가 이러한 상황을 수학적으로 뒷받침합니다. D&D Lounge의 디자인 가이드에서는 Bounded Accuracy가 '비전문가도 도전에 참여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실제 예시를 보면, DC 20의 어려운 작업도 수정치 +0 완전 비전문가는 5% 성공률, 수정치 +5 모험가는 30%, 수정치 +10의 전문가는 55% 성공률을 갖습니다. 즉, 전문가가 확실히 유리하지만, 비전문가도 '시도할 만한 의미가 있는 수준'의 성공 확률을 가집니다. 이는 3.5판 특유의 '전문가만 95% 성공, 비전문가는 거의 0%'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5판은 특정 캐릭터만이 특정 상호작용을 독점하지 않게 설계되었습니다. 이 구조는 파티 내 역할 분담에도 좋은 영향을 줍니다. Bounded Accuracy와 제한된 수정치 덕분에 '한 캐릭터가 비전투 판정을 전부 독식하는 상황'이 줄어듭니다. 예를 들어 카리스마가 높은 캐릭터가 설득과 기만에서 유리하지만, 도구 숙련이나 상황 보너스과 주사위 지원을 받은 다른 캐릭터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MerricB와 Hipsters & Dragons 역시 '여러 플레이어가 한 장면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 구조'를 5판의 강점으로 꼽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플레이어가 관련성을 가진다'는 설계 목표의 사회적 차원입니다. 숫자 뿐 아니라 테이블 경험에서 Bounded Accuracy는 특정 플레이어만 빛나고 다른 플레이어는 구경만 하는 상황을 줄입니다[^Bounded Accuracy 5e [DnD Design Guide]][^Bounded Accuracy is what?].

CRPG에서도 동일한 효과가 나타납니다. 발더스게이트 3은 5판 기반 판정 구조 위에 대화 선택지, 환경 상호작용, 수많은 스크립트 이벤트를 더해 다양한 캐릭터와 빌드가 각기 다르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Bounded Accuracy 덕분에 인식(Perception), 생존, 운동(Athletics) 판정에서 특정 캐릭터만 절대적으로 정답이 아니고, 파티 구성과 플레이 방식에 따라 여러 조합이 작동합니다. '모든 플레이어가 자기 캐릭터로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심리적 만족감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디자인 용어로는 Bounded Accuracy가 '행동 가능성(Actionable space)'을 좁히는 대신 '플레이어 별 유효 선택지'를 넓혀 주는 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Bounded Accuracy는 3.5판의 파워 인플레이션과 수정치 인플레이션에 대한 해법으로, 수정치 범위를 제한하고 DC 스케일을 고정하며 낮은 레벨 몬스터과 비전문가 캐릭터의 관련성을 유지하는 시스템입니다. 덕분에 DM은 난이도 설계를 단순화할 수 있고, 플레이어는 레벨이 올라가도 '주사위의 의미'를 계속 느낄 수 있습니다. 발더스게이트 3은 이 철학을 디지털 환경으로 옮겨, 복잡한 빌드 중심 메타 대신 '환경, 위치, 상호작용'에 더 많은 비중을 둔 전투과 탐험을 구현합니다. 이것이 3.5 및 RTwP의 '수치과 마이크로매니지먼트 중심 설계'와 5판 및 발더스게이트 3의 'Bounded Accuracy과 시스템 상호작용 중심 설계'가 어떻게 대비되는지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How D&D Editions Evolved Core Mechanics].

D&D 5판에서 대화는 기본적으로 능력 판정(Ability Check)의 한 종류로 취급되며, 특히 카리스마(Charisma) 능력과 연결된 기술을 통해 규칙적으로 운용됩니다. 플레이어는 대화 장면에서 자신의 행동을 서술하면, DM이 그 행동이 설득(Persuasion), 기만(Deception), 위협(Intimidation) 등 어떤 기술에 해당하는지 판단한 뒤, 필요 시 해당 능력 판정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설득, 기만, 위협, 연기는 모두 카리스마 기반 기술이며, 각각 '정직한 설득, 거짓말, 위협, 공연'이라는 사회적 접근 방식을 반영합니다. 예를 들어 인질에게 정보를 얻기 위해 협박한다면 카리스마(위협) 판정, 귀족을 속이려면 카리스마(기만), 누군가를 친화적으로 설득하려면 카리스마(설득) 판정이 요구되는 구조입니다. 각 대화 선택지의 난이도( DC)를 정하는 것은 DM의 역할입니다. 세 가지 접근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단일 DC 방식으로, DM이 상황을 고려해 하나의 DC를 정하고 플레이어의 능력 판정 결과를 그 DC와 비교하는 방법입니다. 예컨대, 이미 호의적인 NPC에게 작은 부탁을 하는 설득은 DC 10, 불신이 강한 NPC를 크게 설득할 때는 DC 20 정도로 설정할 수 있습니다. 둘째, 대결( Contest) 방식으로, 플레이어의 카리스마(설득, 기만, 위협) 판정과 NPC의 통찰(Insight) 또는 다른 능력 판정을 비교하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가 거짓말을 할 경우 카리스마(기만) vs 지혜(통찰) 대결을 진행합니다. 셋째, 패시브 점수(예: Passive Insight)를 사용하여 개별 판정을 줄이고 판독성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실제 플레이에서는 이 세 가지 방식을 혼합해 사용합니다. 우선 행동의 난이도를 생각하고, 실패 시 서사가 어떻게 흘러갈지를 고려한 뒤 DC나 대결 방식을 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왕의 시종을 설득해 면담 일정을 앞당기는 장면에서는 이를 '파티가 충분히 잘했을 때 성공할 수 있을 정도의 중간 난이도'로 보고 DC 12-15로 정할 수 있습니다. 이때 카리스마가 높고 설득 숙련이 있는 캐릭터는 약 50-70%의 성공률, 숙련 없는 캐릭터는 30% 정도의 성공률을 가지게 됩니다. Bounded Accuracy 덕분에, DC 15 기준으로 숙련 없는 캐릭터 역시 시도는 가능하지만 숙련 캐릭터가 확실히 유리한 결과를 얻게 됩니다[^D&D Basic Rules, Version 1.0, Released November 2018][^Everyday Heroes Quickstart Guide][^Me and My Girlfriend are looking to join a game or start one][^The New School, the Old School, and 5th Edition D&D].

소셜 스킬의 세부 역할에 대해서는 커뮤니티 내에서도 다양한 논의가 있습니다. Tabletop Joab의 'How and When To Use Social Skills' 글에서는 Persuasion, Deception, Intimidation, Insight, Performance 다섯 가지 기술의 사용처와 장면을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Persuasion은 '합리적이고 진실된 설득'에, Deception은 '거짓이나 숨기는 행동'에, Intimidation은 '명확한 위협과 힘 과시'에 각기 적합하다고 권장합니다. Persuasion은 폭넓게 이용되지만, Intimidation은 죄수 심문처럼 특정 장면에서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이런 구분은 발더스게이트 3 같은 CRPG에서도 대화 선택지마다 해당 스킬의 아이콘과 판정이 따라붙는 구조로 직접 반영되고 있습니다. 5판이 강조하는 '모험의 세 기둥(Three Pillars of Adventure)'에서, 능력 판정은 특히 탐험과 상호작용에 규칙적 기반을 제공합니다. GitHub의 '5e kid mode'와 같은 단순화 가이드도 최종적으로 '능력 판정 + 숙련 보너스' 구조 하나로 원칙을 통일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즉, 능력 판정은 전투과 탐험과 상호작용의 공통 인터페이스 역할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 공통 구조 덕분에 DM은 비전투 상황도 비교적 간단하게 규칙화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파른 절벽을 오르는 일에는 Strength(Athletics), 고대 문자 해석에는 Intelligence(History) 또는 Intelligence(Arcana) 판정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JamesDM.com의 'Where are the Non-Combat Mechanics?'에 의하면, 공식 캠페인 모듈들도 대부분의 비전투 도전을 능력 판정 중심으로 구성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장소에서는 History DC 10으로 기본 정보, DC 15로 추가 정보를 파악하거나, Insight DC 12로 NPC의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는 식입니다. 즉, 능력 판정이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기본 메커니즘'으로 자리잡았습니다[^How and When To Use Social Skills in D&D 5e][^D&D 5th Edition “Kid Mode” Suggestions and Variants][^Where are the Non-Combat Mechanics?][^Unearthing the Three-Pillar Experience].

하지만 5판의 주요 철학 중 하나는 ‘모든 상황에 세밀한 규칙을 두기보다는, DM이 임의 판정(ruling)으로 상황을 해석할 수 있게 한다'입니다. ‘Hipsters & Dragons’, ‘Grumpy Wizard’ 등은 OSR 슬로건 'Rulings, not rules'가 5판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강조합니다. 즉, 창의적인 플레이는 반드시 룰북에 근거하지 않아도 되고, 새로운 행동은 DM의 판단하에 인정될 수 있습니다. 'The Alexandrian’의 'Rules vs. Rulings?' 글에서는, '탄탄한 기계적 구조는 판정을 쉽게 만들고, 일관성을 높인다. 이는 플레이어가 자신의 행동 결과를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게 해주고, 더 창의적인 플레이를 유도한다'고 설명합니다. 능력 판정 규칙은 DM이 합리적으로 판정할 수 있는 기준이자, 플레이어가 자신의 행동 가능성을 감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돕는 도구입니다. 예로, 플레이어가 '절벽을 옆으로 기어서 넘어가겠다'고 했을 때, DM은 '위험도가 높지 않으니 판정 없이 자동 성공을 선언'하거나 '긴박하다면 DC 15의 Dexterity(Acrobatics) 판정'을 요구하는 식으로 실시간 판단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판정들이 앞서 설명한 Bounded Accuracy와 DC 가이드라인 범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사회적 상호작용에서도 같은 원칙이 적용됩니다. D&D Beyond의 사회 상호작용 가이드에서는, DM이 '합리적인 행동에는 판정 없이 성공을 선언하거나, 중요한 장면에는 DC를 정하거나 대결 판정을 요구한다'고 제안합니다. 레딧의 관련 논의에서는 DMG 245페이지의 표를 참조해, NPC의 태도(우호적 및 중립 및 적대적)에 따라 DC를 달리 적용함으로써 장면에 걸맞는 난이도를 설정할 수 있다고 권장합니다. 이 모든 결정에서 '얼마나 어려워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Bounded Accuracy, 플레이어 능력치 범위를 함께 고려하게 됩니다[^What are your thoughts on the saying, "Rulings, not rules"?][^'Rulings, not rules' works against the goal of 5e being approachable, accessible, and easy to learn & play.][^Rulings, Not Rules: A Foundation, Not an Oversight][^Improvisation in D&D for New Dungeon Masters][^A Reminder that the DMG has some amazing social rules hidden in there.][^Changing Your Game with Social Interactions in Dungeons & Dragons][^Bounded Accuracy 5e DnD Design Guide].

한편, 5판에서는 플레이어 캐릭터 간에는 Persuasion 및 Deception 및 Intimidation 등 소셜 스킬이 강제력 있는 판정으로 사용되지 않길 권장합니다. 레딧과 EN World 토론에서는 '플레이어의 에이전시와 자유 의지 보장을 위해 캐릭터간 설득은 판정보다 대화를 우선한다'는 합의가 많으며, 설령 사회적 판정을 한다 해도 그 결과를 받아들일지 말지 선택은 플레이어에게 남깁니다. 즉, 능력 판정은 NPC나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규정하는 도구이지, 플레이어의 내적 선택을 강제하는 수단이 아니라는 점이 강조됩니다. 종합하면, D&D 5판의 능력 판정 시스템은 대화와 비전투 상황을 규칙적으로 다루는 '가벼운 프레임'으로 설계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Persuasion, Deception, Intimidation 등의 소셜 스킬과 명확한 DC 구분을 통해, 사회적 상호작용을 판정의 대상으로 삼는 RPG 구조를 만듭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Rulings, not rules 철학, Bounded Accuracy, 유연한 DC 가이드로 플레이어가 규칙 목록보다 '상황과 세계'에 집중하며 다양한 행동을 제안할 수 있게 합니다. 발더스게이트 3 역시 이 구조를 디지털에서 구현하여, 대화 선택지에 능력 판정을 명확히 표시하고, 인터페이스로 DC와 성공 보너스를 알려 주면서도, 실제 플레이 흐름과 연출에서는 여전히 스토리텔링과 창의적 선택을 중시합니다. 이것이 바로 5판의 '규칙과 창의성 균형' 철학이 현대 CRPG에서도 실현되는 대표적 예시입니다[^Persuasion, Deception, and Intimidation should all be valid - but not on every NPC.][^A short rant about social skills. Your character's skills, I mean.][^How do you handle social skills? (5e)][^A Reminder that the DMG has some amazing social rules hidden in there.][^Changing Your Game with Social Interactions in Dungeons & Dragons][^When “Rulings, Not Rules” Hits Home…][^Rules vs. Rulings?].

D&D 5판은 테이블에서 능력 판정 구조를 비교적 단순하게 정리했지만, 실제 플레이에서는 '어떤 수치가 어떻게 적용되는지'가 종종 DM과 플레이어의 머릿속에만 존재합니다. 발더스게이트 3은 이 지점을 매우 직접적으로 돌파합니다. 발더스게이트 3의 대화와 상호작용 장면에서 플레이어가 능력 판정이 필요한 선택지를 고르면, 화면 중앙에 d20 주사위가 크게 표시되고, 상단에는 난이도(DC), 하단에는 적용되는 능력 수정치와 숙련 보너스, 기타 보정들이 모두 분리되어 나타납니다. 발더스게이트 3 위키의 'Dice rolls' 문서는 이를 '행동을 선택하면 DC와 수정치가 먼저 설정되고, 그 뒤 d20 굴림이 최종 결과를 결정하는 구조'라고 설명하면서, 인터페이스에서 DC와 보너스가 명시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라리안이 패치 5에서 도입한 새로운 주사위 인터페이스는 이러한 투명성을 한층 더 강화했습니다. 이전에는 '필요한 최종 목표 수치(예: +3 보너스를 반영한 ‘12 이상 필요’)'만 보여주었지만, 패치 이후에는 실제 DC(예: 15)를 상단에 크게 표시하고, 그 아래에 능력치 보너스와 숙련 보너스를 각각 시각적으로 분리해 보여 주도록 변경되었습니다. 필자는 이 변경에 대해 '각 판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캐릭터 빌드가 어느 정도 기여하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고 평가합니다. 또한 보너스가 더해질 때마다 아이콘과 함께 주사위에 덧붙는 애니메이션이 재생되어, 플레이어가 '이번 성공은 내 캐릭터 빌드 덕분이다'라는 감각을 자연스럽게 얻게 해 줍니다. 이는 단순한 시각 효과를 넘어서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d20이 굴러간 뒤 얼마가 더해지는지를 숨기지 않고 '능력치 + 숙련 + 기타 보정'을 모두 드러내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결과가 임의가 아니라 규칙에 따른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스웬 빈케는 여러 인터뷰에서 '라리안은 플레이어에 대한 공감과 신뢰를 중시하며, 플레이어가 게임 시스템을 이해하고 자신의 선택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고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개발 초기에는 '대화 화면에 d20을 직접 시각화하면 게임이 지나치게 하드코어해 보이지 않겠느냐'는 내부 우려도 있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주사위를 숨기지 말고 오히려 전면에 배치하자'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이는 '룰을 감추는 대신 룰 자체를 플레이 경험의 일부로 만든다'는 선택이었고, 결과적으로 많은 플레이어가 발더스게이트 3의 주사위 인터페이스를 '테이블 D&D의 감각을 잘 살려낸 연출'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통계나 기대값을 잘 모르는 플레이어라도, 'DC 15에 +5 보너스로 굴리면 어느 정도 성공 가능성이 있는지'를 화면을 통해 자연스럽게 학습하게 되고, 이는 곧 5판 규칙 전반에 대한 직관적 이해와 신뢰로 이어지게 됩니다.[^D20 in Baldur's Gate 3][^Some idea's, what do you think?]​

발더스게이트 3의 대화는 5판의 능력 판정 구조를 거의 그대로 가져와 게임화했습니다. 발더스게이트 3 위키의 'Abilities' 항목에서는 대화 중 능력 판정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예시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화에서 Persuasion, Deception, Intimidation, Religion, History, Insight 같은 기술들이 요구될 수 있으며, 각 기술은 대응하는 능력치(대부분 카리스마, 지능, 지혜)와 연결되어 있다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협상으로 설득하는 선택지에는 'Charisma (Persuasion) DC 14'라는 꼬리가 붙고, 거짓말로 속이려는 선택지에는 'Charisma (Deception) DC 16', 위협으로 굴복시키려는 선택지에는 'Charisma (Intimidation) DC 13'처럼 표시됩니다. 플레이어는 이 숫자와 자신의 보너스를 참고하여 '어떤 접근이 가장 현실적인지' 판단하게 됩니다. 이 구조는 테이블에서 사용하는 소셜 체크 구조를 정확히 반영하면서도, CRPG에 맞게 시각화된 형태입니다. D&D Beyond의 'Persuasion vs Intimidation' 글에서는 상황에 따라 Persuasion이 더 어려울 수도 있고, Intimidation이 더 어려울 수도 있음을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철저한 성실주의자인 경비병은 뇌물과 설득에는 잘 넘어가지 않지만, 가족을 협박하는 위협에는 약할 수 있으며, 반대로 이미 부패한 경비병은 부드러운 설득보다는 '부패를 폭로하겠다'는 위협에 더 쉽게 굴복할 수 있습니다. 발더스게이트 3의 다양한 대화에서는 이러한 맥락이 DC에 반영된 경우가 많습니다. 레딧에서는 한 플레이어가 '같은 상황에서도 Persuasion, Deception, Intimidation 옵션의 DC가 다르고, Persuasion이 항상 최선의 선택은 아니다'라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이는 '어떤 스킬이 더 강력한가'가 아니라 '어떤 접근법이 해당 NPC와 상황에 더 적합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설계입니다. 발더스게이트 3은 여기에 더하여 배경(Background), 클래스(Class), 종족(Race)에 따른 추가 대화 선택지를 제공합니다. 라리안 포럼의 'Backgrounds Influencing Conversations' 스레드에서는, 세이지(Sage) 배경을 예로 들며, 게일이 위브(Weave)를 보여주겠다고 할 때 세이지 캐릭터는 '책에서 위브를 공부해 봤는데 직접 경험해 보고 싶다'는 지식인다운 추가 대사를 선택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포럼 참가자는 '이 선택이 게일의 반응을 크게 바꾸지는 않지만, 플레이어가 자신의 배경을 대화에서 느낄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합니다. 발더스게이트 3 위키와 유튜브 영상들은 특정 클래스과 종족과 배경이 있을 때만 등장하는 고유 대화가 매우 많음을 강조하며, '종족+클래스+배경 조합마다 수많은 유니크 대사가 존재해, 한 번의 플레이로는 거의 다 볼 수 없다'고 소개합니다. 이는 테이블 RPG에서 DM이 '너는 드루이드이니 이 숲의 상태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거나, '너는 귀족 출신이라 이 예법을 알고 있다'라고 묘사하여 플레이어에게 특별한 경험을 주는 것을, CRPG에서 공식 시스템으로 승격시킨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Warlock - Pact of the Tome][^Persuasion, Deception, and Intimidation should all be valid - but not on every NPC.].

테이블 D&D에서 대화는 DM 재량에 따라 '판정 없이 서사적으로 해결되는 경우'도 많다. 플레이어가 훌륭한 연기를 펼칠 경우 굳이 Persuasion 체크를 요구하지 않고 성공으로 처리하는 DM도 있고 반대로 중요한 장면에서는 반드시 판정을 통해 결과를 결정하려는 DM도 있습니다. 발더스게이트 3은 이 중 후자, 즉 '대화에도 의미 있는 불확실성을 도입하는 방향'을 강하게 선택했습니다. 라리안 포럼의 'Meaningful dialogue rolls and checks' 스레드에서 한 유저는 '발더스게이트 3에서 많은 대화가 스킬 체크로 대체되었다'며 비판하고, 체크가 너무 잦으면 캐릭터 컨셉가 잘 드러나려면 더 많은 판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체크가 적을수록 각 판정의 랜덤성이 크게 느껴지고, 리로드 욕구가 커진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의견은 반대로 말하면, 발더스게이트 3이 '대화에서 판정이 가지는 무게와 불확실성'을 상당히 크게 설계하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Game World Observer 인터뷰에서 스웬 빈케 대표는 주사위를 대화 속으로 끌어들인 이유를 '플레이어 에이전시와 긴장감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주사위를 숨기면 플레이어가 결과가 ‘각본대로’ 나오는지, 아니면 규칙에 의해 나오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규칙에 의해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Gaming Respawn의 인터페이스 분석 글에서도 'DC와 보너스를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플레이어가 실패했을 때도 그 실패를 공정하다고 느끼게 만든다'고 평가합니다. 즉, 대화 판정의 불확실성은 긴장을 창출하지만, 동시에 투명한 정보와 연출은 그 긴장을 '룰에 기반한 긴장'으로 정당화합니다. 물론 이러한 설계에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라리안 포럼의 다른 글에서는 '발더스게이트 3의 스킬 체크가 상대적으로 드물고, 그 몇 번의 체크에 너무 큰 결과를 걸어 놓으면, 플레이어가 실패를 받아들이기보다 세이브-로드를 택하게 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 유저는 디스코 엘리시움을 예로 들며, '그 게임은 체크가 매우 많기 때문에 실패와 성공이 모두 캐릭터 컨셉를 반영하는 통계적 흐름으로 다가오나, 발더스게이트 3은 체크가 적어 운의 영향이 더 두드러진다'고 비교합니다. 이는 '대화에도 시스템적 불확실성을 도입할 것인가, 도입한다면 어느 정도 빈도와 어떤 결과를 걸지'에 관한 디자인 선택의 난점을 보여 줍니다. 발더스게이트 3은 이 중 '체크 수는 많지 않지만, 중요도는 높은 지점'을 택했고, 이는 일부 플레이어에게는 강한 드라마와 긴장감을, 다른 이들에게는 세이브-로드 유혹으로 작용합니다. 그럼에도 발더스게이트 3의 대화 시스템은 5판 능력 판정 구조를 시각화하고, 대화에 '주사위 기반 불확실성'을 적극 도입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테이블 RPG에서 DM이 감각적으로 조절하는 부분을 CRPG에서는 인터페이스와 시스템으로 명확히 드러내어, 플레이어가 규칙을 신뢰하고 자신의 빌드와 선택이 서사에 미치는 영향을 명확히 체감하도록 했습니다. 대화가 더 이상 단순한 '고정된 텍스트를 선택하는 메뉴'가 아니라, '위험과 보상이 있는 행위'가 되었으며, 이는 발더스게이트 3이 'D&D 5판 룰을 단순 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룰을 플레이 경험의 중심으로 끌어낸 사례'로 평가받는 이유가 되었습니다[^Shoving is Broken][^How to unpack PAK files][^What is THE best RPG for dual-wield rogue play?].

발더스게이트 3이 공개되었을 때 가장 큰 논쟁 중 하나는 '왜 RTwP가 아니라 턴제인가'였습니다. 과거 인피니티 엔진 시리즈의 상징이 RTwP였기 때문에, 많은 팬가 같은 방식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스웬 빈케와 라리안은 여러 인터뷰에서 '발더스게이트 3은 향수를 위한 게임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위한 현대적 RPG'라 강조하며, 턴제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Ars Technica 인터뷰에서 빈케 대표는 '저희는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D&D 5판 규칙과 저희 스튜디오의 강점을 살린 새로운 게임을 만들고 있다'고 말합니다. 라리안의 강점은 Divinity: Original Sin, 특히 DOS2를 통해 입증된 턴제 전투이며, 회사 내부적으로도 '좋은 턴제 전투를 가진 RPG를 만드는 것'이 오랜 목표였다는 점이 INT 매거진 인터뷰에서 드러났습니다. 현대 CRPG의 기술 및 디자인 트렌드도 이 선택을 뒷받침합니다. PC Gamer는 '발더스게이트 3이 턴제라는 사실이 훌륭하다'라는 칼럼에서, RTwP가 실시간의 긴장감을 제공하지만, 화면 상 모든 것이 동시에 움직여 '전투가 쉽게 난전이 되고, 끊임없이 작은 조정을 해야 하는 피로한 마이크로매니지먼트'로 흐르기 쉽다고 소개합니다. 반면 턴제를 '혼돈 속에서 질서를 만드는 시스템'으로 평가하며, 플레이어가 각 행동을 개별적으로 이해하고 계획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합니다. 레딧의 CRPG 토론에서도 한 유저는 RTwP는 계속해서 일시정지를 누르며 반응하는 게임으로 느껴진다고 하는 반면, 턴제는 명확한 행동 순서와 액션 이코노미를 바탕으로 전략을 세우는 체스 같은 경험이라 평가합니다. 명확한 규칙 구현 측면에서도 턴제는 5판 D&D와 자연스럽게 어울립니다. 라리안 포럼의 'New interviews' 스레드에선 한 유저가 '5판의 행동 구조(이동, 액션, 보너스 액션, 반응)는 RTwP로 구현하기 적합하지 않고, 턴제가 이를 가장 잘 구현하는 방식'이라고 분석합니다. 실제로 5판 룰은 테이블에서 이미 턴제이며, 이니셔티브 순서에 따라 각 캐릭터가 차례로 행동하는 구조를 전제로 합니다. RTwP로 옮길 경우 '백그라운드에서 라운드를 돌리면서 표면은 실시간처럼 보이게 만드는' 추가 변환층이 필요합니다. 반면 턴제는 거의 룰을 그대로 코드에 적용하면 되는 구조입니다. 이는 룰 충실도 측면에서 유리하며, DM가 담당하는 '턴 순서 설명과 액션 이코노미 관리 업무'를 엔진이 자연스레 대행하게 합니다. 멀티플레이 지원은 턴제 선택의 또 다른 실질적 이유입니다. DOS1 및 2의 '개별 이니셔티브 턴제'는 협동 플레이 시 '다른 플레이어 턴을 기다리는 시간이 많다'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발더스게이트 3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동시 턴제(simultaneous turn-based)'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발더스게이트 3에서 아군이 서로 인접해 있고 이니셔티브 순서가 근접한 경우, 최대 10개 유닛이 한 턴에 동시에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 구조는 '우리 팀 턴'과 '적 AI 턴'이 교대로 오는 전통적 턴제에 가깝고, 네 명의 협동 플레이어가 각자 자신의 캐릭터를 동시에 조작할 수 있는 여지도 살렸습니다. RTwP에서 동일한 멀티플레이를 구현하려면 일시정지 권한, 동기화, 랙 처리 등 복잡한 문제가 매우 많습니다. 레딧과 스팀 토론에서는 '턴제는 멀티플레이 시 모두가 언제 행동할 수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있고, 동시에 행동하는 체계를 가능케 한다'는 점이 여러 번 강조되고 있습니다[^Why the hell is baldurs gate 3, 5E?][^With all the debate about RTwP vs Turn-Based, I'm reminded of this Penny-Arcade comic from 1999][^Turn based vs Real time with pause][^Is RTWP combat gone?][^The RTwP vs Turn-Based RPG Debate (Baldur's Gate 3)].

발더스게이트 3의 턴제 시스템은 D&D 5판의 기본 구조를 따르면서 라리안 특유의 변형을 더한 형태입니다. 발더스게이트 3 위키의 'Turn-based mode' 항목에 따르면, 전투가 시작되면 모든 참가자가 '이니셔티브 굴림'을 하게 됩니다. 발더스게이트 3에서는 각 유닛이 d4와 민첩(DEX) 수정치를 굴려 이니셔티브를 결정하며, 이 값이 클수록 빨리 행동하게 됩니다. 이니셔티브가 정해지면, 매 라운드 그 순서대로 턴이 돌아가는데, 이 순서는 전투 도중 고정됩니다. 이는 5판의 'd20 + DEX 수정치'와는 수치적으로 다르지만, '랜덤 요소 + 민첩 기반 우선권'이라는 구조는 동일합니다. 턴 진행은 명확한 타임라인 인터페이스로 시각화됩니다. 유튜브의 발더스게이트 3 전투 가이드 영상에서는 화면 상단의 초상화 바를 가리키며 '이 순서대로 캐릭터들이 행동한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플레이어 캐릭터와 동료, 적 유닛이 모두 이 타임라인에 표시되며, '지금 행동하는 캐릭터가 누구이고, 다음에 누가 행동할지'를 항상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PC Gamer가 언급한 것처럼 '혼돈 속에서 질서를 만들어 주는 시스템'입니다. RTwP에서는 적과 아군이 동시에 움직이다 보니 일시정지를 하지 않으면 '누가 언제 행동했는지 흐릿해지는' 문제점이 있지만, 발더스게이트 3의 턴제에서는 각 액션이 분명히 구분됩니다. 발더스게이트 3의 '동시 턴제'는 이 기본 틀 위에 더해진 계층입니다. 발더스게이트 3 위키에 따르면, 아군 유닛들이 서로 근접해 있고 이니셔티브 순서도 연속되어 있을 때 최대 10개 유닛이 '동시에 턴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는 플레이어가 원하는 순서로 캐릭터들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행동할 수 있고, 모두의 턴이 끝나면 적의 턴으로 넘어갑니다. 이는 DOS2의 '개별 턴제'가 협동 플레이에서 발생하는 대기 시간을 줄이고, 한 턴 안에서 팀 전체가 전략을 수립하도록 돕기 위한 설계였습니다. PC Gamer에서는 이 구조를 '멀티플레이 턴제를 효율적으로 만든 중대한 변화'로 평가하며, '네 명의 플레이어가 동시에 캐릭터를 조작하고 액션을 수행한 후 턴 종료를 눌러 적에게 턴을 넘기는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이니셔티브와 턴 순서의 명확성은 전술적 계획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유튜브 가이드와 레딧 토론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바에 따르면, 플레이어는 타임라인을 보고 '곧 강력한 주문을 쓸 적을 제압할지, 먼저 튼튼한 적을 처리할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일부 빌드와 주문은 이니셔티브를 조작하거나 상대 턴을 늦추는 효과가 있는데, 이러한 능력은 타임라인이 분명할 때 더욱 분명하게 체감됩니다. 다시 말해, '다음에 누가 행동할지 명확히 보이는 시스템'은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턴 순서 조작이라는 메타 전략'을 활성화하는 역할을 합니다[^The RTwP vs Turn-Based RPG Debate (Baldur's Gate 3)][^Turn based vs Real time with pause].

턴제로의 전환은 게임 경험을 '느리지만 명확한 전술 퍼즐'에 가깝게 만들었습니다. PC Gamer의 '발더스게이트 3이 턴제라서 좋다'라는 칼럼에서는, 턴제가 RTwP보다 훨씬 '질서 있고 읽기 쉬운 전투'를 제공한다고 평가합니다. 글쓴이는 과거 RTwP 발더스게이트에서 전투가 자주 '난전으로 빠지고, 플레이어는 끊임없이 일시정지와 재시작을 반복해야 했다'고 회고합니다. 반면 발더스게이트 3의 턴제에서는 '각 턴마다 의미 있는 선택을 하고, 그 결과를 명확히 확인한 뒤 다음 선택을 할 수 있는 ‘체스 같은 방법론적 전투’'라고 평가합니다. 유튜브의 분석 영상에서도 턴제가 '행동 이코노미(액션, 이동, 보너스 액션)를 눈에 보이는 자원으로 만들어, 플레이어가 각 자원을 어떻게 쓸지 충분히 고민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습니다. 스트레스 측면에서도 턴제는 RTwP와는 다른 특성을 가집니다. 2025년 유튜브 분석 영상 'Why People Prefer Turn-Based To RTWP'는, RTwP가 제공하는 '혼돈과 몰입감'은 인정하면서도, 이를 즐기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주의 집중과 빠른 반응이 필요하다고 소개합니다. 이 영상에서는 'RTwP는 마이크로매니지먼트와 빠른 반응을 요구해 많은 플레이어들에게 피로를 준다'고 말하며, 반대로 턴제는 '시간을 들여 상황을 분석하고, 실수를 되짚어 볼 여유를 준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발더스게이트 3처럼 지형, 고도, 표면, 밀치기, 점프, 반응 등 고려할 요소가 많은 전술 게임에서는, 턴제의 '‘생각할 시간’'이 설계 의도와 잘 맞는다는 점이 강조됩니다. 물론 턴제가 더 느린 것은 사실입니다. 일부 플레이어는 PC Gamer의 반대 칼럼 '발더스게이트 3이 턴제라서 아쉽다'에서 지적했듯, '턴제 전투는 속도가 느리고, 작은 전투도 오래 걸린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발더스게이트 3의 동시 턴제와 지형 설계는 이러한 문제를 상당 부분 완화합니다. PC Gamer는 '동시 턴제 덕분에 잡몹 전투를 매우 빠르게 끝낼 수 있고, 지형과 폭발, 밀치기 등을 활용해 한 턴 안에 많은 적을 제거하는 멋진 연출이 가능하다'고 분석합니다. 즉, 턴제라도 '모든 전투가 느린 장기전'은 아니며, 설계 의도에 따라 빠른 전투와 느린 전투를 적절히 섞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It rules that Baldur's Gate 3 is turn-based][^Baldur's Gate 3 review: the rumours are true, this is a really good RPG].

플레이어 스트레스 감소 관점에서도, 턴제 전환은 RTwP가 요구하던 '계속해서 화면을 감시하고, 0.5초 단위로 일시정지를 눌러야 하는 부담'을 현저히 줄여 줍니다. 레딧의 '발더스게이트 3를 좋아하는 이유는 턴제이기 때문이다'라는 글에서 한 유저는 '발더스게이트 3은 턴제라서 전투가 명확하고, AI 행동도 이해하기 쉽다. 나쁜 턴제 게임과 달리, 발더스게이트 3의 AI 턴은 효율적이고 빨라서 기다리는 시간이 스트레스가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는 RTwP에 대해 'RTwP는 ‘주의력 테스트’ 같았고, 전투 승리를 위해서는 행동의 질보다는 일시정지 타이밍과 화면 감시가 더 중요해지는 느낌이었다'고 회고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턴제가 단순히 규칙 충실성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플레이어 피로도와 만족도를 고려한 UX 결정이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정리하면, 발더스게이트 3의 턴제 전투는 세 가지 축으로 이루어진 설계 선택의 결과입니다. 첫째, '5판 D&D 규칙과 라리안의 시스템 설계 역량에 가장 잘 맞는 형태'라는 규칙적과 기술적 이유이며, 둘째 '현대 CRPG와 멀티플레이, 스트리밍 환경에 적합한 명확하고 동시적인 턴제'라는 설계 트렌드입니다. 마지막으로, 플레이어 경험 차원에서 '전술적 사고 시간과 스트레스 감소, 정보의 명료성'을 제공하는 UX 선택입니다. 이 세 가지 요소가 맞물리면서 발더스게이트 3은 RTwP의 유산을 직접 이어가는 대신, 발더스게이트라는 이름 아래서 'D&D 5판 룰과 현대 CRPG 디자인이 만나는 새로운 정점'을 구현하는 방향을 택했습니다. 이는 D&D와 CRPG 50년 규칙 발전사 속에서 매우 일관된 방향 전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The RTwP vs Turn-Based RPG Debate (Baldur's Gate 3)][^Turn based vs Real time with pause].

D&D 5판에서 밀쳐내기는 '특수 근접 공격(special melee attack)'으로 정의됩니다. 플레이어 핸드북 규칙을 정리한 Roll20 콤펜디움에 따르면, 캐릭터는 자신의 턴에 Attack 액션을 사용할 때, 일반 공격 대신 밀쳐내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Using the Attack action, you can make a special melee attack to Shove a creature'라는 문장 그대로, 이 행동은 별도의 액션 타입이 아니라 공격 액션의 한 종류입니다. 이때 밀쳐낼 수 있는 대상은 '자신보다 한 사이즈 이상 크지 않고, 자신의 도달 범위(보통 5피트) 내에 있는 존재'로 제한되며, 이는 거대한 드래곤이나 트롤을 소형 캐릭터가 무작정 밀쳐낼 수 없도록 만든 최소한의 현실성 장치입니다. 밀쳐내기의 핵심은 '공격 굴림 대신 대결(Contest)을 사용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규칙에 따르면 밀쳐내기를 시도하는 캐릭터는 Strength(Athletics) 판정을 하고, 대상은 Strength(Athletics) 또는 Dexterity(Acrobatics) 중 높은 쪽을 골라 판정하게 됩니다. 승패는 두 판정의 결과를 비교하여 결정됩니다. 레딧과 Arcane Eye의 규칙 설명에서는 이 점을 반복하며, '밀쳐내기를 자주 사용하는 캐릭터는 높은 STR과 Athletics 숙련을 지녀야 하고, 대상이 STR이나 DEX 기반 캐릭터일수록 저항에 유리하다'고 요약합니다. 대상이 무능력 상태(incapacitated)라면, 규칙상 밀쳐내기는 자동 성공으로 처리됩니다. 성공 시 플레이어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대상을 5피트 밀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상을 그 자리에서 넘어뜨려 넘어짐 상태로 만드는 것입니다. 밀쳐내는 거리와 상태 중 하나만 선택 가능하며 둘을 동시에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추가로, 일부 특전(예: Shield Master)은 밀쳐내기의 액션 경제에 변화를 줍니다. D&D Beyond의 Shield Master 토론에서, 이 특전을 지닌 캐릭터는 'Attack 액션을 취하면, 보너스 액션으로 5피트 내 대상을 방패로 밀쳐낼 수 있다'고 설명됩니다. 이때에도 규칙상 밀쳐내기는 여전히 Athletics 대결(Strength vs Strength 및 Acrobatics)으로 처리됩니다. 논란이 된 부분은 '공격을 먼저 해야 보너스 액션 밀쳐내기를 쓸 수 있는가'였으나, RAW 해석상 Attack 액션을 선언하는 것만으로 조건이 충족된다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어쨌든 5판의 원칙에 따르면 밀쳐내기는 '공격 액션의 대체'일 뿐이며, 특정 특전에서 '보너스 액션'으로 취급되고, 반응은 아닙니다. 요약하자면 5판의 밀쳐내기 규칙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닙니다. 첫째, STR 기반 근접 캐릭터가 전투 중 위치 제어와 넘어짐 상태 이상 유발을 위해 선택하는 전술적 도구입니다. 둘째, 대상 크기 제한과 대결 구조로 인해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값싼 CC(군중 제어)'가 아니라, 능력치와 숙련도에 따라 성공 확률이 크게 달라지는 위험과 보상이 공존하는 행동입니다. 셋째, 액션 경제상 비용이 적지 않아, 밀쳐내기는 '공격을 포기하는 대신 제어권을 얻는 선택'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Sharing homebrew with private party].

발더스게이트 3은 이 밀쳐내기 행동을 적극적으로 '게임의 핵심 전술'로 끌어올렸습니다. 다만 구현 방식은 순수 5판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출시된 버전 기준으로 발더스게이트 3에서 밀쳐내기는 기본적으로 근접 범위 내 적을 뒤로 밀어내는 보너스 액션으로 구현되어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턴에 공격 액션과 별도로 밀쳐내기를 사용할 수 있으며 이 행동은 주사위 대결(Strength 대 Strength 및 Dexterity)이 아니라 캐릭터의 Athletics 수치와 대상의 방어 수치를 기반으로 한 단일 체크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단순화는 '전투 템포 유지'와 'AI 처리 부담 감소'를 위한 선택으로 보이며, 대신 성공률, 거리, 낙하 피해 등에서 상당한 보상을 제공합니다. 특히 발더스게이트 3은 지형과 높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발더스게이트 3 위키의 'Falling damage' 항목에 따르면, 낙하 피해는 떨어진 높이에 따라 최대 체력 비율로 계산되며, 4m 이상 떨어질 경우 피해가 시작되고 8m 이상이면 넘어짐 상태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약 5.4m 높이에서 떨어지면 최대 체력의 약 9% 피해를 입고, 21m에 가까운 높이에서는 대부분 캐릭터가 한 번에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낭떠러지나 맵 밖으로 밀려나 떨어지면 즉시 전투에서 제거됩니다. GameRant의 표면 설명과 레딧 전략 글에서는 상당수 전투가 절벽 옆이나 다리 위, 높은 발코니 등 '떨어뜨릴 수 있는 위치'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밀쳐내기를 가장 위험한 전술 도구 중 하나로 만든다고 분석합니다. 이 구조는 근접 탱커의 전술적 역할을 크게 확장합니다. 5판 기본 룰에서 탱커는 주로 기회 공격(Opportunity Attack)과 위치 활용을 통해 적을 막거나 때때로 밀쳐내기로 적을 넘어뜨리는 정도의 제어를 하지만, 발더스게이트 3에서는 탱커가 '환경을 무기로 사용하는 주역'으로 변모했습니다. 스팀 게시판의 한 유저는 '근접 캐릭터는 그냥 때리는 것보다 적을 절벽에서 떨어뜨리는 것이 훨씬 유리한 경우가 많다. 이는 탱커의 재미를 크게 높여 준다'고 평가합니다. 같은 글에서 그는 '그러나 밀쳐내기가 보너스 액션이라 너무 쉽다'며 원 5판 방식처럼 공격을 대체하는 행위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했습니다. 이는 발더스게이트 3의 설계가 밀쳐내기를 단순한 옵션이 아니라 '턴마다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전술 선택'으로 상승시켰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발더스게이트 3은 밀쳐내기를 반응과 결합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일부 아이템과 피트, 클래스 능력은 '적이 특정 행동을 할 때 자동으로 밀쳐내기를 시도하는' 반응을 제공하여, 5판의 '기회 공격' 개념을 확장합니다. 이는 '근접 제어 캐릭터가 주변을 지배하는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라리안 포럼의 전투 메커니즘 토론에서는, 이 반응 밀쳐내기가 '고지에서 다가오는 적을 계속 떨어뜨리는 플레이'를 가능하게 해 일부 전투를 지나치게 쉽게 만든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반대로, 이는 탱커가 단순히 맞아주는 존재가 아니라 '위치를 활용해 적을 제어하고 제거하는 핵심 전술가'로 변모했음을 명확히 보여 줍니다[^Uneven Ability Scores][^Sharing homebrew with private party][^About Ability Checks]. 이제 제목에서 설명한 발더스게이트 3의 표면 시스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