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3부작과 미래

이미 섀도우즈의 출시를 겪은 미래 사람의 관점에서 어쌔신크리드 신화 3부작의 여러 층위에 걸친 이야기를 되짚어보고 이 이야기와 이 게임들이 가지는 의미를 살펴보고 이에 기반해 미래의 이야기를 예상해봅니다.

신화 3부작과 미래

오래 전 세 가지 신화에서 어쌔신크리드 신화 3부작을 마무리하고 개인적으로 이 게임들에 깊은 감명을 받아 그 감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시간이 흘러 그 후속작이 나오고, 또 그 후속작인 셰도우즈가 여러 가지 논란 속에 등장한지도 시간이 지났습니다. 들려오는 소문에 따르면 이 시리즈의 향후 지속 여부조차 그리 투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세 가지 이야기가 어쎄신크리드 전체에 걸쳐 어떤 위상을 차지하는지와 이 이야기 뿐 아니라 현대 파트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었고 현재 상황은 어떤지 등을 생각해보고 만약 앞으로 현대 파트의 이야기가 더 진행된다면 무슨 이야기가 이어질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어쌔신크리드 신화 3부작인 오리진, 오디세이, 발할라의 세 가지 게임을 오랜 기간에 걸친 장치로 보고 그 장치가 무엇을 하도록 설계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특히 이 시리즈를 플레이했음에도 종종 의미를 놓치곤 하는 현대 파트를 중심으로 놓고 고대 파트와 더 깊은 근원인 이수와 로키의 이야기가 연관된 전체 이야기를 조망해 보겠습니다[^Assassin's Creed]. 오늘 자주 이야기할 '층위'는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동시에 굴러가는 여러 서사를 말합니다. 가장 익숙한 층위는 현대 파트와 고대 파트입니다. 신화 3부작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고대 파트 안에 신화 체험이라는 또 다른 층위를 집어넣습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나머지와 같은 판타지이지만 이수 기술로 만든 시뮬레이션이거나 이수의 기억이 문화적으로 번역된 결과입니다. 그보다 더 깊은 층위에 로키와 알레테이아의 장기 계획이 있습니다. 이 근원이 신화 3부작 전체의 인과를 지배합니다[^Aletheia]. 이야기가 기니 단순한 방법으로 진행할 적정인데 먼저 각 작품의 고대 스토리를 살펴본 다음 현대 파트가 무엇을 얻어 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다음으로 인물의 감정선만큼 중요한 매개를 살펴봅니다. 지팡이, 아틀란티스의 문, 위그드라실, 그레이 같은 것들입니다. 또한 겉으로 드러난 주인공 뿐 아니라 실제로 서사를 움직이는 주체가 누구인지 알아봅니다. 신화 3부작에서 이 질문은 결국 레일라가 주체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레일라를 움직였는지로 모입니다[^Layla Hassan].

이제 신화 3부작이 어쌔신크리드 전체에서 어떤 자리로 올라섰는지부터 살펴봅시다. 결론부터 말하면 신화 3부작은 시리즈의 한 시대의 의미를 가지면서도 동시에 시리즈의 규칙 자체를 다시 쓰는 구간입니다. 아마도 시리즈를 처음 시작하면서 신화 3부작으로 이어지는 스토리 전체를 예상하지 않았을 거라고 예상합니다. 시리즈를 구성하는 각각의 게임이 진행되더가 신화 3부작에 들어서면서 그 이전의 모든 이야기와 신화 3부작 전체를 아우르는 이야기를 다시 덧대어 전체가 마치 처음부터 이렇게 끝날 것을 계획한 것 같은 모양에 이르렀지만 이는 신화 3부작이 구상될 때 비로소 완성된 스토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신화 3부작을 어쌔신크리드 2.0쯤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쌔신크리드 오리진에서 액션 어드벤처 중심의 게임 문법에서 오픈월드 액션 RPG 중심의 문법으로 급격히 이동합니다. 이 변화는 전투의 변경 뿐 아니라 스토리를 전달하는 방식 자체의 변화입니다. 이전 시리즈는 정해진 시퀀스가 강하게 끌고 가고 사이드 콘텐츠는 부가 요소에 가까웠습니다. 신화 3부작은 퀘스트 구조와 성장 구조가 중심이 됩니다. 이는 플레이어가 스토리를 선형으로만 경험하지 않고 시간을 들여서 세계 안에 머무르는 방식으로 경험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체류 시간의 확대가 곧 현대 파트를 끼워 넣는 방식과도 연결됩니다. 현대 파트가 분량은 짧지만 플레이어가 몇십 시간 동안 고대에 머문 뒤 돌아오는 짧은 복귀 장면이 반복되면 현대는 게임 밖의 프롤로그가 아니라 전체를 묶는 프레임으로 작동하기 시작하며 이 역할이 어쌔신크리드 전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신화 3부작을 2.0으로 만드는 또다른 이유는 시스템이 아니라 서사 구조입니다. 이 시기부터 시리즈는 고대 스토리가 각각 따로 진행되는 각각의 게임이 아니라 하나의 긴 현대 이야기로 묶입니다. 이는 레일라 하산이라는 단일 현대 주인공을 중심으로 3편을 관통합니다. 레일라는 오리진에서 등장하고 오디세이에서 아틀란티스와 지팡이 사건을 겪고 발할라에서 위그드라실과 그레이로 들어가며 퇴장합니다. 이 구조가 트릴로지라는 말에 실제 의미를 부여합니다. 배경 시대가 세 개인 게 아니라 현대에서 하나의 인물이 하나의 궤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레일라의 결말이 레일라의 성공이 아니라 레일라의 자리 교체라는 점입니다. 발할라의 끝에서 레일라는 그레이에 남고 바심이 밖으로 나옵니다. 바심은 로키의 환생으로 드러나며 결과적으로 현대 파트의 주인공 자리를 가져갑니다. 이 사건은 시리즈 역사에서 현대 주인공 교체 뿐 아니라 현대 축이 인간 주인공의 성장담으로 이어지지 않고 이수의 환생이 현대 축을 장악하는 구조가 확정됩니다.신화 3부작의 현대 서사는 암살단이 유물의 힘을 막는 이야기가 아니라 유물이 암살단의 선택을 이용하는 이야기로 기울어집니다[^So About That Batshit Ending To Assassin’s Creed Valhalla]. 여기서 신화 3부작은 시리즈의 중심축을 바꿉니다. 어쌔신크리드는 오랫동안 암살단 대 템플러를 중심 갈등으로 유지했습니다. 신화 3부작도 그 갈등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오리진에는 오더 오브 디 에인션츠가 있고 오디세이에는 코스모스 교단이 있으며 발할라에는 오더 오브 디 에인션츠가 다시 등장합니다. 그런데 신화 3부작은 이 갈등을 높은 층위에 두지 않습니다. 가장 높은 층위에는 이수의 장기 계획과 그 계획의 실행 장치, 그리고 현대에서 그 장치가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암살단과 템플러의 갈등은 이제 그 장치가 세계에 침투하는 방식 중 하나로 변합니다. 이 구조적 위계 변화가 신화 3부작 혹은 어쌔신크리드 2.0입니다[^Basim ibn Ishaq]. 이 위계 변화는 기획적으로 뚜렷한 의도가 있습니다. 신화 3부작은 역사와 신화를 동시에 취급합니다. 이 신화는 오디세이의 아틀란티스 계열 DLC에서 알레테이아가 레일라를 시험하는 구조가 들어가고 발할라의 오딘 서사가 위그드라실과 환생 문제로 연결됩니다. 신화는 세계관의 장식 이상으로 현대 파트의 인과를 설득하기 위한 도구로 쓰입니다. 현대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고대에서 이런 신화 체험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고대에서 이런 신화를 체험했기 때문에 현대에서 이런 결과가 가능해졌다는 역방향 설계가 작동합니다. 이 역방향 설계는 로키라는 근원 주체를 이해할 때 더 선명해집니다.

신화 3부작의 위상을 결정짓는 또 하나의 기획적 특징은 엔딩의 기능입니다. 전통적으로 시리즈의 엔딩은 고대 파트의 사건을 정리하고 현대 파트에서 다음 떡밥을 던지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발할라의 엔딩은 다릅니다. 발할라 엔딩은 고대 파트의 정리라기보다 현대 파트의 리부트에 더 가까운 구조를 취합니다. 레일라가 그레이에 남아 리더와 계산을 계속한다는 설정은 현대 파트를 앞으로도 계속 끌고 갈 상층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고 바심의 탈출은 현대 파트의 하층 행동 주체를 교체하는 것입니다. 신화 3부작은 엔딩에서 다음 게임의 배경 정도가 아니라 다음 시대의 서사 장치를 갈아 끼웁니다. 이 정도 규모의 교체는 시리즈 안에서도 흔치 않습니다[^Assassin’s Creed Valhalla Analysis - Episode 11]. 신화 3부작이 차지하는 위상은 세 겹입니다. 먼저 게임 디자인에서 액션 RPG라는 새 문법을 확정한 구간입니다. 다음으로 현대 파트를 레일라라는 단일 축으로 재정렬해 트릴로지의 의미를 만든 구간입니다. 그리고 현대 축을 마지막에 로키의 환생인 바심에게 넘겨 시리즈의 최상층 갈등을 암살단과 템플러에서 이수의 장기 계획으로 바꿨습니다. 이렇게 확정해 놓으면 자연스럽게 신화 3부작의 가장 깊은 층위인 로키와 알레테이아가 무엇을 원했고 어떤 도구와 어떤 순서로 누구를 이용해 계획을 실행했는가입니다.

이수의 기본 문제는 힘의 경쟁이 아니라 종족 생존이었습니다. 이수 문명이 대재앙을 맞았고, 그 재앙을 피하거나 넘기기 위한 해법이 몇 갈래로 시도됩니다. 그 중 신화 3부작이 집중하는 해법은 두 개가 결합된 형태입니다. 하나는 의식을 저장해 미래로 보내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몸을 통해 다시 태어나는 환생 방식입니다. 이 두 해법이 각각 알레테이아와 로키라는 인물과 연결됩니다[^Isu incarnation]. 알레테이아는 이수로서 자신이 살아남는 방식으로 지팡이를 선택합니다. 즉 알레테이아의 의식이 헤르메스의 지팡이 로 옮겨집니다. 이 설정은 오디세이에서 단순히 불사의 지팡이로 보였던 유물이 사실은 한 인격을 담고 있는 매체라는 의미입니다. 알레테이아는 지팡이 안에서 바깥 세상에 직접 손을 뻗을 수는 없지만 지팡이의 소유자에게 말을 걸고 홀로그램 같은 형태로 모습을 보이며 소유자를 어떤 방향으로 몰아갈 수 있습니다. 이 능력 때문에 지팡이는 장기적 조작 장치가 됩니다[^Staff of Hermes Trismegistus]. 이제 로키 쪽을 보겠습니다. 로키는 자신이 미래에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중요한 점은 로키가 혼자서 움직인 게 아니라 알레테이아와 함께 움직였다는 점입니다. 로키는 알레테이아와 결합된 목표를 갖습니다. 현대에서 다시 만나는 것입니다. 이 말이 너무 로맨스로 들리면 이렇게 바꿔도 됩니다. 로키는 알레테이아라는 의식 저장체를 지팡이에 넣어두고 자신은 인간 사회에 섞여 언젠가 그 지팡이를 다시 손에 넣는 방식으로 귀환 계획을 설계한 것입니다. 이때 지팡이는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약속 장소이자 생명줄입니다. 여기서 키퍼 개념이 등장합니다. 알레테이아는 지팡이의 소유자를 무작위로 기다리지 않습니다. 지팡이에는 너무 많은 힘이 있고 동시에 너무 많은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알레테이아는 지팡이를 지킬 사람과 지팡이를 넘겨받을 사람을 구분합니다. 지킬 사람은 키퍼이고 넘겨받을 사람은 헤어 오브 메모리즈라고 불립니다. 키퍼는 지팡이를 보관하고 미래의 특정 계승자에게 넘기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헤어 오브 메모리즈는 단순히 지팡이를 들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알레테이아가 설계한 시험을 통과해 지팡이를 다룰 자격을 증명하는 사람입니다. 이 구조가 오디세이와 발할라의 현대 파트를 연결합니다.

오디세이에서 카산드라는 지팡이의 키퍼로 선택됩니다. 지팡이는 불사를 주고 그 덕분에 카산드라는 역사적으로 불가능한 기간을 살아남아 현대까지 버틸 수 있습니다. 카산드라의 수천 년 생존은 그냥 충격적인 설정이 아니라 알레테이아의 계획에서 필수적인 다리입니다. 현대의 레일라가 지팡이를 받을 때까지 지팡이를 잃지 않고 지켜야 했습니다. 카산드라가 한 일은 영웅담이 아니라 보관 임무입니다. 지팡이는 전달을 위해 존재했고 카산드라는 전달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레일라여야 했을까요. 이를 운명으로 정해버리면 이야기는 재미가 없어집니다. 신화 3부작은 운명처럼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기능적으로 설명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레일라는 애니머스를 다루는 현대 기술자이고 동시에 유물과 접촉하며 점점 더 깊은 시스템으로 들어가는 인물입니다. 오디세이의 현대 파트에서 레일라가 아틀란티스로 들어가 지팡이를 받는 순간부터 레일라는 키퍼가 아니라 헤어 오브 메모리즈 후보가 됩니다. 알레테이아는 오디세이의 아틀란티스 계열 과정에서 레일라를 시험합니다. 이 시험은 강해지라는 훈련 이상으로 지팡이를 통해 특정 장소에 도달할 수 있는지 특정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 단계를 실행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때 다음 단계는 발할라의 위그드라실과 그레이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발할라에서 로키의 환생인 바심은 위그드라실 장치에 갇혀 있습니다. 레일라는 자기장 이상을 막기 위해 그 장치에 접속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습니다. 로키의 계획은 속임수만으로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로키는 레일라가 그 자리에 올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고 레일라가 연결할 수밖에 없는 동기를 만들고 연결하면 빠져나갈 수 없는 구조를 준비해둡니다. 그래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지팡이가 다시 핵심으로 돌아옵니다. 발할라의 현대 파트에서 레일라는 위그드라실로 들어가고 그 과정에서 지팡이를 떨어뜨립니다. 바심이 풀려나온 뒤 그 지팡이를 잡아 젊어지고 회복합니다. 이 장면은 알레테이아와 지팡이, 로키 계획의 결말입니다. 알레테이아의 의식이 들어 있는 지팡이가 결국 로키의 환생에게 돌아가고 로키는 그 지팡이의 힘으로 다시 생물학적 불사에 가까운 상태를 얻습니다. 이렇게 되면 로키는 현대에서 시간을 다시 확보합니다. 시간 확보는 곧 계획의 지속을 의미합니다.

이제 그레이와 리더를 연결해야 합니다. 그레이는 이수의 디지털 공간으로 여기에 데스몬드의 의식 조각이 남아 리더라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리더는 끝없이 계산을 수행합니다. 중요한 점은 발할라의 현대 엔딩에서 레일라가 그레이에 남아 리더와 함께 계산을 계속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신화 3부작이 로키를 탈옥시킨 것에서 끝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현대는 이제 두 개의 상층을 갖게 됩니다. 하나는 계산을 수행하는 그레이의 리더와 레일라 축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에서 움직이며 목적을 실행하는 바심의 축입니다. 신화 3부작은 현대 서사를 이 두 층으로 분리해 이후 시리즈가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움직일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습니다[^Desmond Miles]. 여기까지가 근원층의 핵심입니다. 알레테이아는 지팡이에 의식을 저장해 장기 조작자가 되었고 로키는 환생 기술로 현대 행동 주체가 되었으며 두 사람의 접점이 지팡이입니다. 카산드라는 지팡이를 지키기 위해 수천 년을 살았고 레일라는 지팡이를 넘겨받아 시험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결국 위그드라실로 들어가게 되었고 그 순간 바심이 풀려나 지팡이를 회수하며 계획이 완성됩니다. 그레이에서는 리더와 레일라가 계산을 계속하며 또 다른 현대 축을 형성합니다. 이를 통해 이어서 이야기할 현대층은 고대, 신화, DLC 전체를 묶는 핵심이 됩니다.

오리진의 현대 파트는 단순히 레일라가 처음 등장한 시점입니다. 레일라의 출발점은 앱스테르고 소속 연구자이지만 그는 회사의 통제 밖에서 애니머스 HR-8을 운용하고 바예크와 아야의 기억을 무단으로 재현합니다. 이 설정은 이후 3부작의 현대 서사가 조직이 시키는 대로 하는 요원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금기를 넘는 연구자에 의해 움직인다는 전제를 만듭니다. 레일라가 미래에 어떤 위험한 선택을 하더라도 그것이 성격의 일탈이 아니라 처음부터 심어 둔 성향의 연장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입니다. 레일라가 오리진 말미에 윌리엄 마일즈를 만나고 암살단과 접촉하게 된다는 흐름은 그 전제를 조직적 현실로 바꿉니다. 즉 레일라가 혼자 도망치는 개인이 아니라 앞으로 유물과 정보를 추적하는 네트워크에 편입됩니다[^Mission to Egypt]. 여기서 자주 접하는 오해가 하나 있습니다. 오리진 현대는 다음 편을 위한 소개 정도라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종종 어쌔신크리드 시리즈를 감명 깊게 플레이한 분들이나 어쌔신크리드를 개발한 사람들의 인터뷰에서조차 현대 파트를 이렇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오디세이의 시작 조건을 생각하면 성립하지 않습니다. 오디세이에서 레일라는 단독 생존자가 아니라 셀을 운영하는 암살단 측 인력으로 등장하고 셀이 유물과 DNA를 회수해 아틀란티스로 가는 탐사를 실행합니다. 이 탐사팀 운영 자체가 오리진에서 윌리엄 마일즈와 접촉하고 살아남는 선택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상태입니다. 오리진 현대는 짧지만 레일라가 다음 단계의 주인공으로 굳어지는 기획적 계약을 체결하는 장면입니다. 오디세이의 현대 파트는 이 계약을 실행 단계로 이어 갑니다. 레일라는 레오니다스의 창에서 DNA를 얻어 고대의 기억을 재현하고 그 기억을 사용해 아틀란티스의 입구를 찾아냅니다. 그리고 아틀란티스에서 레일라는 카산드라를 직접 만납니다. 카산드라는 헤르메스의 지팡이로 수천 년을 살아남아 지팡이를 지키고 있었고 알레테이아가 말한 헤어 오브 메모리즈가 레일라라고 믿으며 지팡이를 넘깁니다. 지팡이의 계승은 고대 파트의 결말이 아니라 현대 파트의 주인공이 유물의 힘과 책임을 떠안는 순간입니다. 이 순간부터 레일라는 암살단 요원이 이상의 세계관 최상층 장치의 사용자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카산드라가 왜 죽는가입니다. 지팡이는 생명 연장의 기능과 결합되어 있고 카산드라는 지팡이를 내려놓는 순간 더 이상 시간을 버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팡이를 넘기는 장면은 전달이면서 동시에 퇴장입니다.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신화 3부작이 고대 주인공들의 위상을 이렇게 재정의하기 때문입니다. 카산드라는 그리스의 영웅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현대 파트로 이어지는 유물 운반체로서 역할을 다한 뒤 사라집니다. 오디세이의 고대 파트는 이미 현대 파트를 위해 존재하는 구조입니다. 또 오디세이의 DLC 아틀란티스의 운명에서 현대 파트는 한 단계 더 거칠어집니다. 레일라는 카산드라의 사후에 아틀란티스의 왕좌실 봉인을 마주하고 알레테이아의 의식에 직접 접촉합니다. 알레테이아는 레일라에게 네 개의 무덤 단서 같은 식으로 다음 행동을 지시하고 레일라는 다시 애니머스에 들어가 시뮬레이션을 체험하며 봉인의 암호를 맞춰 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레일라가 단순히 고대의 사실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알레테이아가 설계한 코스를 수행하는 점입니다. 이는 앞에서 설명한 근원층의 프레임인 알레테이아가 키퍼, 헤어를 선별하고 단련한다는 모델을 현대 파트에 그대로 적용합니다. 이 단련은 의도적으로 균열을 일으키는 장치입니다. 레일라는 지팡이를 손에 넣은 뒤 점점 공격적으로 변하고 결국 빅토리아 비보를 지팡이로 가격해 죽입니다. 이 사건은 팬덤에서 호불호가 갈리지만 기능은 분명합니다. 지팡이가 힘을 준다는 사실만으로는 다음 단계의 비극을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지팡이가 사용자를 바꾼다는 것을 실제로 설명해야 발할라에서 레일라가 더 위험한 결정을 내릴 때 그것이 갑작스러워 보이지 않습니다. 빅토리아의 죽음은 지팡이가 가진 권능의 비용을 서사적으로 확정하는 사건입니다. 그 직후 레일라가 오토 베르크와 싸워 하반신 마비를 만드는 장면 역시 같은 기능을 합니다. 레일라가 이미 선을 넘어버렸다는 것을 보여주며 현대의 주인공이 더 이상 순수한 암살단 히어로로만 서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합니다.

레일라는 왜 계속 애니머스에 들어가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냥 멈출 수도 있었습니다. 레일라가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집착 이상으로 알레테이아가 설계한 시험 구조가 레일라를 다음 단계로 보내는 경로이기 때문입니다. 오디세이 DLC의 현대 파트는 레일라를 망가뜨리는 동시에 레일라를 특정 위치로 몰아가는 역할을 겸합니다. 레일라는 자기 의지로 계속 들어간다고 믿지만 구조상으로는 이미 지팡이 사용자가 된 순간부터 탈출 비용이 너무 큽니다[^Victoria Bibeau]. 이제 발할라로 넘어가면 현대 파트에서 세계적 위기라는 외부 압박을 붙여 레일라를 마지막 문 앞에 세웁니다. 발할라에서 레일라의 팀은 지구 자기장 강화로 인한 문제를 추적하고 에이보르의 유해와 연결된 단서를 통해 노르웨이의 위그드라실 시설로 향합니다. 여기서 위그드라실은 현대 재난을 설명하고 조절할 수 있는 장치로 제시됩니다. 그러면 레일라가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이유는 충분합니다. 이것이 바로 속임수만으로는 불가능했던 단계입니다. 레일라는 바심을 풀어주기 위해 들어가는 게 아니라 세계를 구하기 위해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선택이 바심의 탈출 조건을 충족합니다. 발할라 현대 파트에서 핵심은 그레이입니다. 레일라는 위그드라실에 접속하며 그레이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갇혀 있던 바심을 만납니다. 바심은 자신이 좌표를 보내 레일라를 이곳으로 유도했다고 밝히며 장치를 감속해 재난을 멈추자고 제안합니다. 레일라는 협력하고 결과적으로 자기장 이상은 완화되지만 동시에 바심이 현실로 나옵니다. 즉 발할라 현대 엔딩은 재난 해결이라는 포장을 통해 로키 귀환이라는 실제 결과를 달성합니다. 이 구조는 기획적으로 공격적입니다. 플레이어가 레일라의 선택을 이해하도록 만들면서 그 선택이 만든 결과는 플레이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로키의 승리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발할라 현대 파트는 여기서 한 번 더 올라갑니다. 레일라는 그레이에서 리더를 만나고 리더와 함께 계산을 계속하기로 합니다.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레일라 퇴장이 사망이나 은퇴가 아니라 현대 서사의 상층을 분리해 계속 돌릴 수 있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 움직이는 주체는 바심이 되고 그레이에서 계산하는 주체는 리더와 레일라가 됩니다. 신화 3부작은 현대 서사를 단순히 다음 편으로 넘기길 뿐 아니라 구조 자체를 확장합니다. 이후 시리즈가 무엇을 하든 이 두 축 중 하나를 통해 현대 파트를 계속 이어갈 수 있습니다.

오리진의 고대 파트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메자이 바예크가 아들 케무의 죽음으로 무너진 뒤 복수를 하다가 더 큰 조직 구조를 발견하고 결국 아야와 함께 히든 원즈를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이 흐름은 신화 3부작이 현대 파트가 본편이라는 구조로 가려면 고대 파트가 단순한 시대극이 아니라 현대 파트가 의존할 조직과 언어를 만듭니다. 오리진에서 히든 원즈가 탄생하고 히든 원즈가 곧 암살단의 전신으로 자리잡습니다. 오리진은 고대층에서 조직의 기원을 고정해 현대층이 쓸 수 있는 좌표계를 제공합니다[^Assassin's Creed Origins]. 바예크와 케무는 가면을 쓴 집단에게 끌려가고 그들은 바예크에게 에덴의 조각을 사용해 금고를 열라고 강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케무가 죽습니다. 이 출발점은 오리진이 유물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선포하는 장면입니다. 유물은 누군가의 구원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권력 집단이 타인을 조종하기 위한 수단으로 먼저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장면이 오리진 전체의 기획 톤을 결정합니다. 바예크의 복수는 개인적이지만 그 복수가 결국 권력 기술과 조직의 문제로 확장될 수밖에 없게 됩니다[^Bayek of Siwa]. 바예크는 가면 쓴 자들을 추적하며 점점 더 큰 조직을 만나게 되고 그 조직이 오더 오브 디 에인션츠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오더는 이집트 내전과 로마의 개입을 뒤에서 흔들어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배 구조를 만들려 합니다. 바예크와 아야는 클레오파트라를 돕고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의 지원을 얻어 왕좌를 되찾습니다. 그런데 이 시점이 오리진의 핵심 변곡입니다. 바예크와 아야는 자신들이 정의를 세우고 있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권력 게임의 도구로 쓰였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가 오더와 손을 잡는 순간 바예크가 믿던 국가와 왕권의 정의는 무너지고 대신 어둠에서 세계를 지킨다는 새로운 방법론이 필요해집니다. 히든 원즈의 탄생은 이 좌절에서 나옵니다. 이를 기획 관점에서 보면 오리진은 플레이어에게 아주 강한 학습을 시킵니다. 먼저 공개 권력은 쉽게 오염되고 거대한 조직은 역사 자체를 조작하며 대응도 공개 권력이 아니라 비공개 조직이어야 합니다. 이 논리 구조는 이후 현대층에서 암살단이 왜 계속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지 왜 유물을 공개적으로 관리할 수 없는지 같은 설정을 자연스럽게 정당화합니다. 오리진의 고대층은 암살단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를 감정이 아니라 구조로 설득합니다[^Order of the Ancients]. 후반으로 가면 오더의 핵심 인물들이 더 드러나고 플라비우스 같은 인물이 유물을 사용해 사람들을 지배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바예크가 플라비우스를 처치하는 결말은 복수의 완성처럼 보이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결말은 바예크와 아야가 결혼을 유지하는 대신 조직의 창설을 택한다는 점입니다. 아야는 로마로 가고 바예크는 이집트에 남아 사람들을 모읍니다. 이 결별은 히든 원즈가 지역 조직이 아니라 국경을 넘는 조직으로 성장하려면 이들이 떨어져 각자의 거점을 만들어야 합니다. 오리진은 이를 서사적으로 자연스럽게 처리합니다[^Amunet].

신화 3부작에서 DLC는 본편이 만든 구조를 다른 층위로 시험하는 장치입니다. 오리진의 첫 번째 DLC인 히든 원즈는 본편이 창설을 보여준데 이어 운영을 보여줍니다. 바예크가 시나이로 가서 로마 점령군과 반군 사이의 충돌에 휘말리고 히든 원즈 조직 내부의 갈등과 방법론 문제를 마주하는 이야기로 정리됩니다. 이는 히든 원즈가 창설 순간의 순수한 결의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조직은 사람을 모으는 순간부터 분열을 내장하고, 그 분열을 관리하는 규율과 철학이 필요합니다. 히든 원즈 DLC는 그 규율이 기원 이야기만으로는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시킵니다[^Assassin's Creed Origins: The Hidden Ones DLC Review]. 기획 관점에서 보면, 히든 원즈 DLC는 신화 3부작 전체가 할 일을 미리 연습합니다. 고대층의 조직이 안정되어 있어야 현대층이 그 조직의 이름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편만 보면 히든 원즈는 막 태어난 조직이라 너무 이상적일 수 있습니다. DLC는 그 이상을 바로 현실로 내립니다. 어둠 속에 숨어 싸운다는 말이 멋지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내부의 폭력과 선동 뿐 아니라 목적의 순수성 문제까지 안고 간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런 냉정함이 있어야 암살단이 현대에서 계속 무너지고 다시 서는 구조가 설득됩니다[^Assassin's Creed: Origins The Hidden Ones Review "A Hidden Creed"]. 두 번째 DLC인 파라오의 저주는 표면적으로 이집트 신화의 사후세계와 파라오의 망령이 등장하는 판타지 확장입니다. 이 DLC는 신화 3부작의 큰 방향인 신화층을 기술로 다룬다는 방향을 오리진 단계에서 이미 강하게 밀어붙인 사례입니다. 테베와 왕가의 계곡에서 벌어지는 저주는 초자연 현상처럼 보이지만 결국 유물의 영향으로 설명되는 구조를 취합니다. 이는 오디세이의 아틀란티스의 운명과 발할라의 오딘 서사로 이어지는 준비 운동입니다. 파라오의 저주는 오리진도 결국 신화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신화 3부작은 처음부터 신화층을 기술층으로 통합할 생각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에 가깝습니다[^The Curse of the Pharaohs]. 본편의 정치 드라마와 직접 연결되는 사건은 적지만 신화 3부작 전체 관점에서는 상관이 큽니다. 파라오의 저주는 플레이어에게 사후세계 경험을 제공하면서도 그 경험을 현실의 역사가 아니라 유물에 의해 생성된 체험으로 처리합니다. 플레이어는 이미 오리진 단계에서 역사 플레이와 신화 체험이 같은 시스템 안에서 공존할 수 있다는 감각을 학습합니다. 이 학습이 있어야 오디세이에서 엘리시움과 저승과 아틀란티스를 플레이할 때 그것이 완전히 다른 장르로 튀지 않고 신화 3부작의 일부처럼 받아들여집니다.

오디세이 본편을 구성하는 큰 줄기는 세 가지입니다. 가족 서사, 교단 서사, 아틀란티스 서사입니다. 이 셋은 초반에는 따로 놀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서로를 밀어 올립니다. 가족 서사는 주인공이 스파르타에서 추방되고 동생이 데이모스로 길러졌다는 사실에서 시작합니다. 교단 서사는 코스모스 교단이 전쟁을 조작하고 신탁과 도시국가의 권력을 뒤에서 조종한다는 사실로 확장됩니다. 그리고 아틀란티스 서사는 피타고라스를 통해 지팡이와 봉인 장치가 등장하며 갑자기 최상층에 나타납니다. 이때 중요한 기획 포인트는 순서입니다. 오디세이는 처음부터 아틀란티스를 최종 목표로 두지 않습니다. 먼저 가족과 교단을 길게 끌고 가서 플레이어가 주인공의 분노와 집착에 충분히 몰입한 뒤 그 에너지를 아틀란티스의 봉인과 지팡이라는 시리즈 메인 장치로 전환시킵니다[^Cult of Kosmos]. 코스모스 교단은 오디세이의 오더 오브 디 에인션츠 역할을 하는 집단이지만 기능이 조금 다릅니다. 오리진의 오더가 권력의 실무 조직에 가깝다면 코스모스 교단은 이념과 공포를 더 적극적으로 씁니다. 교단은 전쟁을 길게 끌어서 혼란을 만들고 그 혼란 속에서 사회 전반에 손을 뻗습니다. 특히 신탁을 조종한다는 설정은 오디세이의 시작 비극을 납득시키는 장치입니다. 주인공 가족이 무너진 것은 단순히 잔인한 스파르타 문화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가 신탁을 이용해 인간의 선택을 강제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인간의 선택이 조작된다는 테마가 오디세이 전체를 관통하는 기본 문법으로 확정됩니다. 이 문법은 나중에 알레테이아가 레일라를 시험하는 구조와도 어울립니다. 인간이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처럼 보여도, 위에서 설계한 레일을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이 같기 때문입니다.

오디세이 본편에서 아틀란티스 서사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지점은 피타고라스입니다. 피타고라스는 주인공의 아버지이며 지팡이의 힘으로 오래 살아남아 아틀란티스의 입구를 지키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팡이가 무엇을 하는가보다 지팡이가 무엇을 요구하는가입니다. 피타고라스는 주인공에게 아틀란티스를 봉인하거나 열기 위한 열쇠로 네 개의 유물을 모으라고 시킵니다. 오디세이의 아틀란티스 라인은 봉인 장치의 퍼즐을 풀도록 설계된 퀘스트 체인입니다. 이 구조는 DLC에서 더 잘 드러나지만 본편에서 이미 고대층의 주인공은 봉인 장치를 푸는 작업자라는 역할을 부여받습니다. 이때 가족 서사와 교단 서사는 아틀란티스 서사로 흡수됩니다. 가족을 되찾고 싶은 욕망은 데이모스를 구하거나 막아야 한다는 결말 압력으로 작동하고 교단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목표는 교단이 아틀란티스를 이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상층 목표로 끌려 올라갑니다. 결국 오디세이 본편은 주인공이 교단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자기 가족을 마주하고 그 과정 전체가 아틀란티스 봉인과 지팡이 계승을 위한 정서적 동력으로 전환되는 설계입니다. 이 연결은 게임 내에서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길게 우회하지만 기획 관점에서는 목표가 분명합니다. 오디세이는 현대층에서 지팡이가 필요하고 지팡이를 현대까지 가져가려면 고대층에서 지팡이 계승자가 확정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 주인공은 피타고라스로부터 지팡이를 받습니다[^Alexios and Kassandra]. 오디세이의 선택형 결말이 던지는 혼란을 살펴봅시다. 종종 선택이 많으면 정사가 무너진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디세이의 선택은 오히려 신화 3부작의 기획과 잘 맞습니다. 왜냐하면 선택이 많을수록 플레이어는 무엇이 진짜인가를 의심하게 되고, 그 의심은 곧 기억 재현과 시뮬레이션이라는 메타 주제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즉 오디세이는 선택을 통해 정사를 흐리는 대신 정사가 왜 흔들릴 수밖에 없는지 세계관 감각을 강화합니다. 오디세이의 고대층은 기억이고 그 기억은 현대에서 애니머스로 재현되며 심지어 기억 안에도 시뮬레이션이 들어갑니다. 이런 구조에서 정사를 딱 하나로 고정하기는 애초에 어렵습니다. 오디세이는 그 사실을 시스템으로 체험시키는 쪽을 택합니다.

퍼스트 블레이드의 유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다리우스입니다. 다리우스는 숨겨진 칼날의 원형을 사용한 인물로 소개되고 오더 오브 디 에인션츠에게 쫓기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이때 DLC는 오디세이 본편에서 중심이던 코스모스 교단을 뒤로 밀고 오더 오브 디 에인션츠를 전면에 세웁니다. 오리진의 적대 구조가 오더 오브 디 에인션츠였기 때문에 오디세이와 오리진을 한 줄로 잇기 위해서는 같은 이름의 조직이 필요합니다. 퍼스트 블레이드의 유산은 그 일을 합니다. 오디세이는 그리스의 교단 이야기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오리진으로 이어질 오더의 계보를 보여 주는 이야기로 다시 정렬됩니다[^Assassin's Creed Odyssey – Legacy of the First Blade]. 줄거리는 비교적 직선적입니다. 주인공은 다리우스와 그의 가족을 만나고 오더의 추적을 피해 숨어 살려 하지만 결국 전면전으로 끌려나옵니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잠시 용병 생활을 접고 가족을 꾸리며 아이 엘피디오스를 낳습니다. 그리고 오더의 공격으로 연인이 죽고, 아이가 납치되며 주인공은 다리우스와 함께 아이를 되찾기 위해 싸웁니다. 마지막에는 주인공이 아이를 지키기 위해 아이를 떠나보내는 결정을 내리고 다리우스가 엘피디오스를 데리고 이집트로 갑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다만 이 전부가 아주 큰 역할을 합니다. 엘피디오스가 아야의 조상이 된다는 사실을 고정하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오디세이는 오리진의 아야를 피로 연결합니다. 이는 신화 3부작의 논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오리진은 히든 원즈의 창설 이야기였고 그 창설은 한 시대의 영웅이 조직을 만드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퍼스트 블레이드의 유산은 오리진의 조직 창설을 혈통으로부터의 귀결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말하자면 오리진의 아야가 우연히 뛰어난 인물이어서 조직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이어져 온 라인의 일부라는 느낌이 생깁니다. 기획적으로는 시리즈의 과거를 길게 깔수록 현재의 사건이 더 필연처럼 보인다는 전략입니다. 퍼스트 블레이드의 유산은 그 필연성을 피로 만들었습니다[^Darius]. 이 이야기는 숨겨진 칼날의 상징성을 다시 세웁니다. 오디세이 본편은 암살단이 없던 시대이고 주인공은 전통적인 암살단 요원이 아니라 용병입니다. 그래서 암살단의 상징이 희미해질 수 있습니다. 퍼스트 블레이드의 유산은 다리우스를 통해 숨겨진 칼날과 암살자 원형을 끌어와 오디세이가 어쌔신크리드라는 브랜드의 중심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않게 붙잡아 둡니다. 즉 이 DLC는 서사적으로는 혈통의 연결이고 브랜드적으로는 상징의 연결 역할을 동시에 수행합니다.

아틀란티스의 운명은 세 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됩니다. 엘리시움, 저승, 아틀란티스입니다. 겉으로는 그리스 신화를 세 번에 나눠 체험하는 구성이고 실제 플레이 감각도 그렇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 DLC가 세계관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신화 체험이 아니라 기술 교육입니다. 알레테이아는 지팡이의 힘이 너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힘을 다루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시뮬레이션을 만들어 줍니다. 즉 엘리시움도 저승도 아틀란티스도 실제 사후세계가 아니라 시험입니다. 이 설정 하나로 신화 3부작은 신화층을 장르적 장식이 아니라 기획 도구로 승격시킵니다. 엘리시움 파트에서 주인공은 페르세포네가 지배하는 낙원 같은 세계에 들어갑니다. 겉으로는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이 통제의 결과로 유지된다는 사실이 점점 드러납니다. 페르세포네는 규칙과 감시로 질서를 유지하고 인간이든 이수든 모두를 자기 체제 안에 묶어 둡니다. 여기서 중요한 학습은 좋아 보이는 질서도 결국은 감옥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학습은 신화 3부작 전체의 최상층 주제와 연결됩니다. 알레테이아가 레일라에게 계속 말하는 균형과 질서와 혼돈의 극단 경계 같은 메시지는 결국 이 지점에서 만납니다. 엘리시움은 세계관 확장일 뿐 아니라 지팡이 사용자의 윤리적 감각을 조정하는 훈련입니다[^The Fate of Atlantis]. 저승 파트로 가면 톤이 바뀝니다. 저승은 하데스의 세계로 죄와 후회, 미련이 사람을 붙잡는 공간으로 그려집니다. 여기서 DLC가 하는 일은 주인공의 관계와 상실을 한 번 더 재연시키는 것입니다. 이때 등장하는 인물과 장면들은 알레테이아의 관점에서 보면 목적이 있습니다. 지팡이를 든 자는 오래 살 수 있고 오래 산다는 것은 결국 상실을 무한히 반복한다는 뜻입니다. 알레테이아는 키퍼가 될 사람에게 이 상실을 견디는 방법을 가르치려 합니다. 그래서 저승은 처벌의 공간이라기보다, 정리와 단념을 강제하는 훈련장에 가깝습니다. 마지막 아틀란티스 파트는 신화층이 사실 기술층이라는 사실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포세이돈이 지배하는 도시는 신비한 유토피아처럼 보이지만 그 안쪽에는 계급과 감시, 실험, 통제의 논리가 있습니다. 즉 아틀란티스는 환상이 아니라 이수의 사회 모델을 전시하는 박물관입니다. 이 전시는 주인공에게 말합니다. 이수는 신이 아니라 기술을 가진 지배자였고 그 지배는 아름다운 말로 포장되지만 결국 인간을 도구로 삼는 체계였다고 말입니다. 이 대목은 발할라에서 오딘의 환생과 로키의 복귀를 받아들이기 위한 사전 교육이기도 합니다. 발할라에서 이수 이야기가 갑자기 커져도 오디세이의 아틀란티스는 이미 이수가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보았는지를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뮬레이션은 누구를 위한 교육일까요. 겉으로는 카산드라가 지팡이를 다루는 법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신화 3부작 전체를 보면 이 교육의 최종 수혜자는 현대의 레일라입니다. 왜냐하면 카산드라는 지팡이를 넘겨주는 키퍼로서 오래 버티는 역할을 하고 실제로 지팡이를 받아 현대에서 봉인을 풀고 힘을 쓰고 결국 위그드라실로 들어가게 되는 것은 레일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카산드라의 성장 서사라기보다 레일라를 위한 커리큘럼을 고대층에 설치해 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알레테이아가 지팡이 속 의식으로 존재한다는 설정 때문에 이 커리큘럼은 시대를 넘어 전달됩니다[^Aletheia's simulations]. 여기서 현대층과 직접 맞물리는 부분이 나옵니다. 아틀란티스의 운명 현대 파트에서는 레일라가 시그마 팀의 습격을 받습니다. 레일라는 지팡이로 다수를 죽이고 빅토리아 비보가 레일라를 말리려 하다가 결국 지팡이에 의해 죽습니다. 그리고 오토 베르크가 왕좌실에 직접 나타나 지팡이를 빼앗으려 하자 레일라는 오토 베르크를 하반신 마비 상태로 만듭니다. 이은 알레테이아가 설계한 교육이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더 무서운 방식으로는 교육이 성공했음을 보여줍니다. 레일라는 지팡이를 다룰 힘을 얻었지만 그 힘이 레일라의 윤리를 붕괴시켰습니다. 즉 지팡이는 능력을 주는 동시에 사용자를 부수는 도구로 확정됩니다. 이 확정이 있어야 발할라에서 레일라가 세계 재난을 막기 위해 더 깊은 장치로 들어갈 때 그 선택이 비극으로 이어져도 납득이 됩니다. 이어지는 코르푸는 서사상으로는 휴가처럼 보이지만 기능적으로는 종결입니다. 코르푸에서 주인공은 잠시 모든 것에서 벗어나려 하고 그 과정에서 에덴의 조각이 등장하며 레오니다스의 창이 무력화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에필로그의 역할은 먼저 오디세이의 주인공이 영원히 달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유물은 언제든 인간의 삶을 다시 빨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휴가조차 유물의 개입으로 끝납니다. 이 톤은 발할라로 넘어가기 전의 정서적 다리 역할을 합니다. 신화 3부작의 주인공들은 모두 휴식을 얻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비극적 세계관이어서가 아니라 유물과 계획이 그들을 놓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A Great Escape].

발할라 고대층의 시작은 에이보르의 어린 시절 비극과 레이븐 클랜의 선택에서 출발합니다. 노르웨이에서의 복수와 갈등이 있고 시구르드가 바심과 하이담을 데려오면서 히든 원즈가 본격적으로 이야기 안으로 들어옵니다. 이 시점부터 발할라는 두 개의 장르를 동시에 운영합니다. 하나는 바이킹 시대극이고 다른 하나는 히든 원즈 대 오더 오브 디 에인션츠라는 시리즈 정체성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발할라가 이 두 장르를 일대일로 섞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발할라는 시대극의 분량을 크게 하고 히든 원즈 서사는 그 시대극을 조종하는 바늘처럼 심습니다. 그 바늘의 역할을 하는 인물이 바심입니다. 즉 바심은 겉으로는 조력자지만 서사 상으로는 시구르드의 귀에 속삭이며 방향을 틀어버리는 장치로 계속 기능합니다[^Assassin’s Creed Valhalla: Story Summary]. 잉글랜드로 넘어가 레이븐소프를 세우는 과정은 발할라의 서사 구조를 정하는 과정입니다. 레이븐소프는 동맹을 통해 스토리를 공급받는 허브입니다. 플레이어는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동맹을 맺고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고 전투를 치르며 공동체를 키웁니다. 이 구조는 표면적으로는 바이킹 정착의 스토리를 만들지만 기획적으로는 훨씬 계산된 효과를 냅니다. 에이보르를 단순한 전사가 아니라 정치적 행위자로 만듭니다. 또 에이보르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길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훗날 위그드라실에서 오딘의 의식이 에이보르를 대체하려 한다는 위협이 등장할 때, 에이보르가 왜 그걸 거부해야 하는지 감정이 아니라 서사 경험으로 설득됩니다. 에이보르는 이미 레이븐소프라는 현실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Assassin's Creed Valhalla's many endings explained]. 발할라 중반의 핵심 사건은 시구르드의 변화와 풀케의 납치입니다. 시구르드는 바심의 영향 아래에서 점점 자기 운명과 신성에 사로잡히고 풀케는 시구르드를 신의 육신이라고 믿으며 잔혹한 실험을 합니다. 이 사건의 기능은 풀케의 실험은 환생과 이수 혈통을 고대층의 현실 문제로 끌어내리는 장치입니다. 즉 이수 이야기가 더 이상 신화 비전 속에만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신체와 정치 폭력의 문제로 드러납니다. 또한 시구르드가 팔을 잃는 사건은 발할라가 약속했던 예언을 실현하는 동시에 운명처럼 보이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따져보게 만듭니다. 결국 발할라가 하고 싶은 말은 운명은 신탁이 아니라 설계된 시스템이라는 방향에 가깝습니다[^Assissin’s Creed Valhalla Analysis - Episode 9].

이어서 결말부인 노르웨이 귀환과 위그드라실을 살펴봅시다. 에이보르와 시구르드는 위그드라실 장치에 접속하고 그 안에서 발할라처럼 보이는 세계를 체험합니다. 중요한 건 여기서 발할라가 신화적 사후세계를 실제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 세계는 현실이 아니라 시뮬레이션이고 이는 사람을 달콤하게 묶어 두는 감옥이 될 수 있습니다. 에이보르는 그 감옥을 깨고 현실로 돌아오려 하며 그 과정에서 오딘의 의식이 에이보르를 덮어쓰려는 위협과 맞섭니다. 이 장면은 앞에서 오디세이의 엘리시움 파트가 좋아 보이는 질서도 감옥일 수 있다를 가르쳤던 것과 같은 문법을 씁니다. 다만 발할라는 그 문법을 고대 주인공의 내면 전쟁으로 옮깁니다. 결국 에이보르가 오딘을 밀어내고 현실을 선택하는 장면, 발할라 고대층이 오랫동안 쌓아온 레이븐소프 경험을 통해 의미를 얻습니다. 여기서 바심이 본색을 드러냅니다. 바심은 로키의 환생이며 자신이 오딘에게 복수하려는 목적을 숨기고 있었다는 점이 폭로됩니다. 그리고 에이보르와 바심은 싸우게 되고 바심은 위그드라실 장치에 연결된 채 그레이에 갇히는 형태로 정리됩니다. 이 장면은 고대층의 클라이맥스이면서 동시에 앞에서 설명한 현대층의 탈옥 장면을 준비하는 필수 전제입니다. 바심이 그레이에 갇혀 있어야 현대에서 레일라가 들어가 그를 꺼내주게 되는 구조가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발할라 고대층 결말은 스스로 완결되는 결말이 아니라 현대층 결말을 위한 설치입니다. 신화 3부작이 고대층을 현대층의 부속으로 재배치한다는 점이 또다시 드러납니다. 한편 잉글랜드의 역사 결말 축도 따로 마무리됩니다. 알프레드 대왕과의 대립과 오더 오브 디 에인션츠 결말은 시리즈 시간축에서 템플러의 씨앗 같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발할라의 DLC는 외전처럼 보이지만 신화 3부작의 층위 관점에서 보면 각각이 서로 다른 목적을 갖습니다. 드루이드의 분노와 파리 포위전은 고대층의 정치극을 확장해 에이보르라는 인물의 현실적 무게를 강화하는 쪽에 가깝고 라그나로크의 서막과 포가튼 사가는 오딘 신화를 확장하며 근원층의 환생, 기억, 시뮬레이션 테마를 다시 강하게 밀어붙입니다. 방향 자체가 발할라가 운영하는 두 장르와 일치합니다. 드루이드의 분노에서 에이보르는 아일랜드로 가서 더블린의 왕이 된 친족 바리드를 돕고 다누의 자식들이라는 드루이드 집단을 추적합니다. 이 DLC는 신화층을 강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치극의 변형입니다. 드루이드 집단은 독과 환각을 쓰며 공포를 조장하고 종교 갈등과 지역 권력 문제를 이용해 세력을 키웁니다. 이는 오리진의 오더, 오디세이의 교단이 했던 방식과 닮아 있습니다. 신비한 권능은 결국 정치 도구가 되고 공동체는 그 도구에 흔들립니다. 에이보르는 이 구조를 부수며 더블린의 기반을 지키려 합니다. 이 DLC는 에이보르가 왜 현실을 붙잡는 인물인지 왜 환상에 머무를 수 없는지를 다시 확인시킵니다[^Assassin's Creed Valhalla Druids Endings Explained]. 파리 포위전은 더 노골적으로 정치 스릴러 쪽입니다. 에이보르는 프랑키아로 가서 샤를 3세와 그의 궁정 정치 그리고 바이킹 세력 사이에서 줄타기를 합니다. 근원층을 직접 밀지 않지만 기획적으로는 역할이 있습니다. 발할라 본편이 너무 빨리 위그드라실과 이수 폭로로 튀면 에이보르의 현실성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파리 포위전은 에이보르를 다시 전쟁과 정치의 현실에 묶어 둡니다. 그렇게 해야 위그드라실에서 에이보르가 오딘의 유혹을 뿌리치는 선택이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이는 근원층이 아니라 고대층의 중력을 보강하는 쪽에 가깝습니다[^The Siege of Paris DLC Guide]. 이제 라그나로크의 서막으로 가면 방향이 완전히 바뀝니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에이보르가 아니라 하비 즉 오딘의 시점으로 들어가 드워프의 세계 스바르트알파헤임에서 사건을 겪습니다. 발드르가 수르트에게 납치되고 오딘은 구출을 시도하지만 패배하며 프리그가 죽는 전개가 이어집니다. 이는 발할라 본편의 오딘 비전을 훨씬 더 크게 확장하면서 오딘이 왜 끝까지 환생과 통제를 붙잡는지 동기를 강화합니다. 라그나로크의 서막은 고대층의 시대극을 확장하기보다 근원층의 이수 기억이 신화로 번역된 층위를 확장해 로키와 오딘의 대립이 왜 치명적인지 더 크게 보여줍니다. 신화 3부작 전체에서 보면 이이 이야기는 근원층 복습 입니다. 포가튼 사가는 라그나로크의 서막의 핵심을 반복 구조로 재구성합니다. 오딘이 니플헤임에 내려가고 죽으면 처음으로 돌아오며 계속 도전한다는 구조는 로그라이크 재미를 넘어 끝없는 계산과 반복이라는 테마와 연결됩니다. 앞에서 현대층에서 그레이와 리더가 계산을 반복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포가튼 사가의 반복은 그와 형태가 닮아 있습니다. 즉 발할라는 시스템 형태 자체로도 계산, 반복, 시뮬레이션을 플레이어에게 체험시키며 고대층과 현대층의 테마를 한 번 더 겹쳐 놓습니다. 마지막으로 라스트 챕터 같은 에필로그는 에이보르 사가의 종결을 담당합니다. 이 부분은 현대층에서 에이보르의 유해가 발견되는 조건을 완성하는 성격이 강합니다. 즉 고대층의 끝맺음이 현대층의 시작 조건과 맞물리도록 정리하는 마침표입니다. 발할라는 본편만 해도 결말이 여러 축으로 갈라져 보이지만 여기까지 포함하면 그 갈라짐이 오히려 발할라가 어떤 층위를 강화하려고 했는지를 보여주게 됩니다. 정치극 DLC는 에이보르의 현실성을 강화하고 신화 DLC는 근원층의 테마를 강화하며 에필로그는 현대층의 수거 조건을 완성합니다[^Assassin's Creed Valhalla Last Chapter ENDING - Eivor Future & Basim Meets William Miles Scene (DLC)].

신화 3부작에서 신화 파트는 현대 파트와 근원층을 설득하기 위한 인터페이스입니다. 신화 파트는 세계관에서 실제로 어떤 곳이 있다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정보를 주고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 만든 화면입니다. 이 인터페이스가 중요한 이유는 신화 3부작이 계속 기억을 재현한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애니머스는 유전자 기억을 3차원으로 렌더링하는 장치라고 설명됩니다. 플레이어가 보는 화면은 처음부터 현실이 아니라 기술이 재구성한 공간입니다. 이 말은 곧 게임의 화면 자체가 세계관 안에서의 화면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어쌔신크리드는 HUD나 미니맵 같은 게임 요소도 설정 안에서 자연스럽게 흡수할 수 있었고 신화 3부작은 그 흡수 범위를 한 단계 더 확장해 신화 세계까지 끌고 들어옵니다. 즉 신화 파트는 장르가 아니라 인터페이스의 확장입니다[^Animus]. 이제 오리진, 오디세이, 발할라의 신화층을 각각 따로 보되 같은 질문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이 신화 세계는 누구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만들어졌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리진의 파라오의 저주를 떠올려 보면 테베에서 벌어지는 사후세계 체험은 이집트 신화의 구현처럼 보이지만 그 체험은 애플 같은 유물이 만들어 낸 환각과 연결되어 설명됩니다. 다시 말해 파라오의 저주는 사후세계가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유물이 사람의 인지와 감각을 조작해 사후세계처럼 보이는 체험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먼저 보여줍니다. 이때 플레이어는 이미 한 가지를 학습합니다. 화면이 바뀌었다가 곧 세계가 바뀌었다는 뜻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Game Review: Assassin’s Creed – The Curse of the Pharaohs]. 오디세이에서 아틀란티스의 운명은 이 학습을 정식 교과 과정으로 바꿉니다. 엘리시움, 저승, 아틀란티스는 실제 장소가 아니라 알레테이아가 설계한 시뮬레이션으로 제시됩니다. 여기서 신화는 인터페이스라는 말이 가장 직접적으로 성립합니다. 알레테이아는 지팡이 속 의식이고 지팡이를 든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체험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알레테이아는 인간에게 직접 말로 가르치기보다 신화적 형태의 시뮬레이션을 구성해 체험시키는 편이 더 효율적입니다. 엘리시움은 달콤한 질서가 감옥이 될 수 있음을 체험시키고 저승은 죄책감과 상실이 사람을 묶는 방식을 체험시키며 아틀란티스는 이수 사회의 통제 논리를 전시합니다. 이 세 단계는 결국 지팡이를 든 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을 미리 보여주는 교육으로 작동합니다.

발할라는 이 시뮬레이션 구조를 더 복잡하게 만듭니다. 발할라에서 신화 파트는 크게 세 겹으로 겹칩니다. 먼저 에이보르가 약물을 통해 보는 오딘 비전입니다. 또 위그드라실 장치 안에서 경험하는 발할라 같은 시뮬레이션입니다.그리고 현대 파트의 그레이입니다. 이 셋은 서로 다른 층처럼 보이지만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현실을 대체하는 시뮬레이션은 사람을 달콤하게 잡아먹는다는 점입니다. 에이보르에게는 오딘의 의식이 그 역할을 하고 시구르드에게는 발할라 시뮬레이션이 그 역할을 하며 레일라에게는 그레이가 그 역할을 합니다. 즉 발할라는 신화 파트를 오딘 이야기로 쓰는 동시에, 근원층과 현대층에서 반복되는 동일한 함정 구조입니다[^Calculations]. 그레이는 이 논리의 끝입니다. 그레이에서 데스몬드의 의식은 리더가 되어 계속 계산을 수행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계산이 시간선의 고집스러운 매듭이 다시 재난을 일으키려 하기 때문에 그것을 줄이기 위한 반복 계산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리더는 계속해서 가능성을 읽고 더 나은 경로를 찾으려 합니다. 이 설정은 신화 3부작의 모든 층위를 하나로 묶습니다. 고대층에서 플레이어가 보는 수많은 선택과 사건이 현대층에서 보면 결국 가능성 데이터가 되기 때문입니다. 즉 게임의 플레이 경험 자체가 세계관 안에서는 계산에 필요한 입력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신화 3부작은 플레이어를 세계관 안으로 더 깊게 끌어들이려는 메타 감각을 가집니다. 이제 신화는 인터페이스라는 말을 기획 관점에서 더 명확히 해봅시다. 인터페이스는 정보를 주는 동시에 행동을 유도합니다. 오디세이의 아틀란티스 시뮬레이션은 레일라를 단련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단련이 정말 레일라를 돕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레일라를 특정 지점까지 밀어 넣기 위한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여기서 신화 3부작은 애매함을 의도적으로 남깁니다. 레일라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지팡이의 잠재력을 해금한다고 믿지만 그 과정에서 빅토리아를 죽이고 윤리가 붕괴됩니다. 교육용 인터페이스가 사용자에게 유익한 기능을 주면서 동시에 사용자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기술은 중립적이라는 환상을 부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그 환상을 부수는 순간이 있어야 발할라에서 로키의 계획이 성공했을 때 그것이 단순한 배신이 아니라 인터페이스를 설계한 자의 승리로 보이게 됩니다.

이제 그 인터페이스가 왜 신화 3부작에서 유독 잘 작동했는지 그리고 왜 하필 이 시기에 액션 RPG로의 전환이 함께 일어났는지까지 생각해 봅시다. 신화 3부작은 이 셋을 한 묶음으로 설계한 흔적이 있습니다. 그 핵심이 층위 서사를 운용하는 비용을 시스템으로 해결했습니다[^Assassin's Creed Origins director talks series return, leaks, and that giant snake]. 오리진의 전투가 히트박스 기반으로 바뀌고 레벨과 장비와 스킬이 핵심이 되면서 플레이어는 한 지역에 오래 머무르게 됩니다. 전통적인 어쌔신크리드는 파쿠르와 암살로 짧은 리듬을 반복하는 편이었고 메인 시퀀스가 게임을 강하게 끌고 갔습니다. 반면 오리진 이후의 구조는 퀘스트를 수행해 레벨을 맞추고 장비를 바꾸고 다시 다음 지역으로 간다는 장기 리듬을 만듭니다. 층위 서사 관점에서 이 리듬이 중요합니다. 플레이어가 고대층에 오래 머무를수록 현대 파트로 잠깐 돌아올 때 그 짧은 장면이 오히려 강하게 기억됩니다. 현실로 잠깐 빠져나오는 느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고대층 체류 시간을 길게 만드는 시스템이 현대층을 프레임으로 만드는 효과를 강화합니다[^Viewpoints, loot and hitbox based combat - Assassin's Creed Origins' director spills its bladed secrets]. 오리진의 제작진이 기초를 바꿨다고 말하는 지점은 히트박스 같은 기술적 설명으로 드러나지만 조금 더 깊게는 게임의 결과를 플레이어의 입력으로 느끼게 한다는 감각을 강화한 것입니다. 페어드 애니메이션 전투는 깔끔하지만, 때로는 플레이어가 내가 맞췄다는 느낌보다 모션이 연결됐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히트박스 전투는 반대로 맞추면 맞고 빗나가면 빗나갑니다. 이 차이는 층위 서사와 직접 연결됩니다. 신화 3부작은 계속 플레이어에게 당신이 조작하고 있다는 감각을 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그 조작이 세계관 안에서는 기억 재현이라는 제한된 프레임 안에서만 허용됩니다. 즉 강한 조작감과 제한된 자유를 동시에 운용해야 합니다. 히트박스 전투와 RPG 능력은 그 모순을 관리하는 데 유리합니다.

오디세이로 넘어가면 이 시스템적 조작감이 선택으로 확장됩니다. 오디세이는 대화 선택과 다중 엔딩을 전면에 세웁니다. 오디세이의 선택은 애니머스 프레임을 보강합니다. 신화 3부작은 신화층을 시뮬레이션으로 만들고, 현대층에서 그 시뮬레이션을 수행하게 하며 근원층에서는 그 시뮬레이션이 누군가의 의도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이 구조에서 선택은 완전한 자유가 아니라 가능한 경로들의 탐색처럼 보이게 설계될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선택지를 누르는 행위는 세계관 안에서 보면 레일라가 애니머스에서 파라미터를 조정해 여러 가능성을 탐색하는 행위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선택이 많을수록 정사가 흐려지는 대신 기억 재현은 언제나 재구성이라는 감각이 강화됩니다[^Assassin's Creed Odyssey best ending explained - decisions, choices and how to get the best ending with Kassandra or Alexios].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디세이가 선택을 서사의 자유로만 쓰지 않고 시스템의 체류로도 쓴다는 점입니다. 선택형 퀘스트는 반복 플레이, 저장 슬롯, 분기 확인 같은 행동을 유도합니다. 플레이어는 한 번 보고 끝내기보다 가능성을 보기 위해 더 오래 머뭅니다. 앞에서 그레이가 계산과 가능성의 층위를 상징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디세이의 다중 엔딩 구조는 플레이어가 현실에서 하는 행동으로 그 가능성의 감각을 먼저 체험하게 만듭니다. 다시 말해 오디세이는 서사적으로 계산을 말하기 전에 시스템적으로 계산을 시키는 편입니다. 발할라의 시스템은 오디세이의 확장을 그대로 밀지 않고 일부를 다시 제한합니다. 발할라는 정착지와 레이드 그리고 지역 동맹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구조를 강화합니다. 발할라가 플레이어를 계속 레이븐소프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은 서사 구조의 핵심입니다. 제작진이 정착지를 통해 이곳이 집이라는 감각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하는 맥락을 보면 발할라는 세계를 정복하는 게임이라기보다 정착을 정당화하는 이야기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 설계는 위그드라실 결말에 연결됩니다. 위그드라실의 발할라 시뮬레이션은 달콤한 감옥인데 에이보르가 그 감옥을 거부하려면 현실의 집이 있어야 합니다. 정착지 시스템은 그 집을 플레이어의 시간과 노동으로 직접 만들게 합니다. 그래서 에이보르가 현실로 돌아오는 선택이 대사 한 줄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이미 투자한 삶을 지키는 선택이 됩니다[^Assassin's Creed Valhalla: Darby McDevitt Explains RPG Choices, Side Quests, and Animus!]. 발할라가 사회적 스텔스를 일부 복귀시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회적 스텔스는 1기 시리즈의 상징이었고 오리진과 오디세이에서 약해졌습니다. 발할라는 후드를 내리고 군중에 섞는 방식의 사회적 스텔스를 다시 가져옵니다. 이 복귀는 발할라가 정체성 회복을 시도했다는 신호입니다. 신화 3부작이 RPG로 변하면서도 결국 어쌔신크리드라는 브랜드의 핵심 문법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었고 발할라에서 그 균형점을 다시 잡으려 했다는 뜻입니다. 이 균형은 현대층과도 연결됩니다. 현대층이 암살단이라는 이름을 계속 쓰려면 고대층에서 그 이름이 단지 설정이 아니라 플레이 경험으로 느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발할라의 사회적 스텔스 복귀는 그 체감을 다시 붙여 주는 장치입니다[^Assassin's Creed Valhalla: Darby McDevitt Explains Settlement, Modern Day, and Truth Puzzles!].

이제 신화 3부작이 끝난 뒤 어쌔신크리드가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질문을 어떤 형식으로 전달하려 하는지까지 이어가겠습니다. 여기서도 핵심은 시대 배경이 아닙니다. 신화 3부작이 남긴 진짜 유산은 현대층의 주체가 바뀌었고 현대층을 게임 본편 안에서 짧게 끼워 넣는 방식 자체가 바뀔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점입니다[^So, about the ending of Assassin’s Creed Valhalla…]. 가장 먼저 확정된 변화는 현대층의 주체 교체입니다. 발할라의 현대 엔딩에서 레일라는 그레이에 남아 리더와 계산을 계속하고 바심은 위그드라실에서 현실로 탈출해 지팡이를 가져갑니다. 현대층은 한 명의 주인공이 끌고 가는 구조가 아니라 그레이의 계산축과 현실의 행동축으로 갈라집니다. 이 구조는 이제 현대층의 행동축이 암살단의 이상을 대표하는 인간이 아니라 로키의 의식을 가진 환생 인물이라는 점을 의미합니다. 바심이 실제로 히든 원즈 출신이고 능력 있는 암살자라는 사실과 별개로 로키는 애초에 인간의 자유의지보다 자신의 목표를 우선하는 존재로 그려져 왔습니다. 그래서 이후 시리즈에서 현대층의 기본 긴장은 암살단 대 템플러만으로는 부족해집니다. 암살단 내부에 들어온 로키라는 균열이 더 큰 문제가 됩니다. 여기서 신화 3부작이 해낸 일은 현대층을 리부트한 것입니다. 데스몬드가 죽은 뒤 현대 서사가 흔들렸고 레일라가 등장해 한동안 축을 잡았지만 레일라는 결과적으로 바심을 꺼내주는 이야기로 수렴했습니다. 이 결말은 레일라를 주인공으로 사랑했던 팬에게는 잔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쪽이 오히려 매우 명확한 구조 개편입니다. 레일라는 플레이어가 따라갈 수 있는 인간 주인공이었고 바심은 앞으로 플레이어가 의심하고 추적해야 할 내부의 타자가 됩니다. 즉 현대층을 다시 드라마가 되게 만드는 갈등원을 심은 것입니다.

다음은 전달 방식의 변화입니다. 신화 3부작은 현대층을 본편 안에 조금씩 넣는 구조였고 그 결과 현대층 팬은 더 보여 달라고 요구했고 반대로 역사 체험 팬은 방해하지 말라고 요구했습니다. 유비소프트는 이 문제를 현대층을 허브로 옮긴다는 방향으로 풀겠다고 공식적으로 말한 바 있습니다. 앞으로의 현대 서사는 개별 게임 안의 플레이어블 캐릭터로만 전달되지 않을 수 있고 시리즈 허브 플랫폼에서 메타 스토리를 전개할 수 있습니다. 이 변화는 신화 3부작에서 강화된 신화는 인터페이스라는 사고방식을 현대층 전달 방식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흐름입니다. 현대층을 더 이상 게임 중간의 짧은 조작 파트로 강제하지 않고 허브에서 선택적으로 깊게 파고들게 만들겠다는 발상입니다[^Assassin’s Creed’s Modern-Day Story Will Now Be Told Through Infinity]. 이 허브 방식은 신화 3부작의 구조와도 잘 맞습니다. 앞에서 그레이가 계산을 반복하고 가능성을 탐색하는 상층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허브는 그 계산을 서사적으로 표현하기 좋은 공간입니다. 각 시대의 기억이 허브 안에서 메모리로 정렬되고 그 메모리들이 현대층의 목표를 위해 호출되는 구조는 어쌔신크리드가 원래부터 갖고 있던 애니머스 메타를 게임 인터페이스 자체로 드러내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유비소프트는 애니머스 허브 형태로 현대 스토리를 담을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현대 서사를 전개하겠다는 방향을 내비친 바 있습니다. 이것은 신화 3부작이 만들어 둔 층위 서사를 인터페이스로 돌리는 감각의 연장입니다[^The new Assassin's Creed Animus Hub is exactly the kind of thing I expected it to be: part launcher, part lore and story hub, and a sensible central point]. 이미 2026년의 미래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어쌔신크리드 섀도우즈에서 이 허브가 처음으로 등장했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심이라는 인물이 왜 다음 시대에 적합한지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바심은 발할라에서 로키의 환생으로 폭로되지만 그 이전의 인간 바심이 사라지는 방식으로만 그려지지 않습니다. 미라지는 바심의 과거를 다루며 바심 안에서 로키의 기억이 어떻게 깨어나는지 별도의 상징 구조로 표현합니다. 특히 니할이 바심 안에 잠긴 로키의 기억을 상징한다는 해석은 신화 3부작이 즐겨 쓰는 방식인 내면의 층위를 캐릭터로 외부화하는 방식과 같은 결입니다. 이런 구조를 통해 바심은 인간과 이수 의식이 한 몸에서 싸우고 합쳐지는 존재로 정리됩니다. 이 정리는 이후 현대층에서 바심이 주도권을 잡아도 그가 완전히 외부의 악당처럼만 보이지 않게 만드는 안전장치이기도 합니다[^Assassin's Creed Mirage Ending Explained]. 이제 다음 시대의 핵심 질문을 생각해야 합니다. 바심은 왜 현대에 돌아왔고 지팡이를 왜 쥐었으며 알레테이아와의 관계를 어떻게 실행하려 할까요. 그 과정에서 암살단은 바심을 믿어야 할까요, 아니면 바심을 막아야 할까요. 신화 3부작의 결말은 이 질문을 회피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레이에 남은 레일라와 리더가 바심의 행동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입니다. 그레이의 계산축이 바심의 현실 행동축을 제어하거나 반대로 바심이 그레이의 계산을 이용하려 한다면 현대층은 기존의 싸움이 아니라 시스템을 누가 소유하느냐의 싸움으로 바뀝니다.

바심의 목적은 알레테이아와의 재결합을 완료하고 잃어버린 가족을 되찾기 위해 현대의 시스템을 다시 장악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능한 시나리오를 살펴보겠습니다. 바심의 첫 번째 목적은 생존이 아니라 재결합입니다. 로키는 대재앙 직전 알레테이아가 치명상을 입자 그의 의식을 헤르메스의 지팡이에 옮겨 생존시키고 언젠가 다시 함께하겠다고 약속합니다. 발할라 현대 엔딩에서 바심이 지팡이를 집어 들고 몸을 회복하는 장면은 이 약속이 실제로 성립하는 첫 순간입니다. 바심에게 지팡이는 무기나 힐링 아이템이 아니라 알레테이아라는 동료이자 작전 본부를 현실로 데려온 상태를 의미합니다. 또 다른 목적은 복수입니다. 미라지의 결말은 바심이 니할과 합쳐지며 로키의 의식이 전면에 떠오르는 구조로 정리되고 그 이후 바심이 과거에 자신을 고문하고 가둔 자들에게 복수하겠다고 결심해 노르웨이로 향하는 동기가 됩니다[^AC Mirage ending explained: Unpacking the final moments]. (⬇️ 로그인 후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