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설거지는 누가 해야 할까
누가 언제 어떻게 설거지 할 지 생각하지 않은 채로는 다회용 컵 사용을 강제할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현재의 위협으로 다가온 기후 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개인의 노력 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문제를 인식 시키고 또 그에 따른 올바른 행동을 긍정적인 방식을 통해 이끌어내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모든 노력과 노력에 의한 행동의 변화가 실제로 어떤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지 않으리라 몹시 회의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령 하얀 곰이 그려진 노란 컨버스백을 더 많이 재사용하면 같은 제품을 더 많이 사용함에 따라 제품이 쓰레기로 버려지고 이들이 자연으로 흘러 들어가 지구에 함께 살아가는 다른 생물에게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문제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조금 줄일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단 한 생명이 목에 컨버스백 손잡이가 걸려 죽어갈 위험을 피한다면 이는 정말 의미 있는 일은 맞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저 한 사람이 하얀 곰이 그려져 있지는 않지만 어쨌든 컨버스 백을 수백 번 사용하며 비닐봉지를 훨씬 덜 사용하고 필요하지 않은 장바구니를 사용하지 않는 생활을 한다고 해서 이 행동이 의미 있는 긍정적인 결과에 연결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유튜브 알고리즘은 난데없이 한국의 여러 자동화된 공장에서 물건을 끝없이 생산하는 영상을 여러 개 보여줬고 흥미로워 보여서 눌러 영상을 봤습니다. 한 영상에서는 즉석밥을 생산하고 있었는데 쌀이 커다란 기계에서 자동으로 세척된 다음 전용 내열 용기에 담겨 거대한 가열 장치 안으로 들어가 조리된 다음 컨베이어 벨트 위를 지나며 빠르게 포장되고 이물질을 감지하는 장치를 거쳐 몇 개 단위로 포장된 다음 다시 이 몇 개 단위가 한 상자 안에 자동으로 포장되어 이를 자동으로 비닐로 감싸는 장치를 거쳐 트럭에 상차 되는 장면을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영상에서는 플라스틱으로 여행용 캐리어를 만드는 장면을 보여줬는데 거대한 통에 서로 다른 색상의 플라스틱이 녹은 액체가 담겨 있고 두 조각으로 나눠진 틀을 서로 합친 다음 그 안에 플라스틱 액체를 주입해 형태를 만든 다음 공기로 압력을 가해 가방 모양이 갑자기 풍선 불듯 한번에 완성된 다음 나머지 부속이 자동으로 조립되어 태깅과 포장까지 자동으로 진행되어 출고 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영상은 셀 수 없이 많았는데 이 영상들로부터 느낀 점은 크게 두 가지 정도입니다. 먼저 영상 속 공장에는 사람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공장 대부분에는 아주 최소한의 관리자들과 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자들이 상주하고 있을 뿐 여러 공정에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여러 생산 공장 영상 중에서 한 공장에 일하는 가장 많은 사람을 본 영상은 참치캔을 제조하는 공장이었는데 이 곳에서는 공정과 공정 사이에 중간 산출물을 사람이 옮기고 있었고 또 원재료를 직접 손질하고 가공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 부탄가스 공장에서는 마지막 단계에서 부탄가스통이 물 속에 담겨 밀려오면 세지 않는지를 사람이 직접 검사하고 있었는데 이런 몇 가지 사례를 제외하면 대부분 공장에는 더 이상 사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다른 한 가지는 생산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는 점입니다. 즉석밥을 생산하는 공장은 컨베이어 벨트 위를 지나가는 즉석밥들의 속도가 너무 빨라 혹시 영상 재생 속도가 빠르게 조절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했을 정도입니다.
이런 영상들을 보며 현대에 이 세계를 살아가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소비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물건은 우리가 그 물건들을 사용하든 사용하지 않든 정말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속도로 이미 생산되고 있으며 이는 우리들이 매일 텀블러를 사용해 종이컵 사용을 줄이고 또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지 않는 수준의 노력의 합계 만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매번 분리수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분리수거된 쓰레기를 사용할 공장에서는 분리수거가 잘 된 쓰레기를 수입해 오고 분리수거를 직접 하는 각 가정에서는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분리수거 규칙을 따르기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공중파 프로그램에서는 엄청나게 쌓인 분리수거된 플라스틱이 실은 공장에서 전혀 사용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우리들의 분리수거가 실은 완전히 잘못됐다는 점을 지적하며 분리수거에 대한 잘못된 신호를 보내지만 정작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더 큰 이유에 대해서는 절대로 언급조차 하지 않곤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개개인들의 행동이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앞에서 개인적으로는 환경을 위한 여러 가지 행동에 그리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는데 같은 맥락으로 회사에서 제공하는 종이컵을 항상 즐겨 사용합니다. 종이컵은 물을 마시는 이상 하루 내내 재사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로 견고하게 잘 만들어졌고 이 컵을 사용함으로써 회사에서 저에게 일을 하라고 돈을 지급하는 시간을 업무가 아닌 일에 소모하지 않고 최대한 집중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시간 뿐 아니라 거기에 들어가는 노동력과 안전하지 않은 여러 사람이 사용하는 수세미 같은 위험 요소에 노출될 가능성을 훨씬 낮춰 줍니다. 같은 관점에서 플라스틱 컵 역시 장점이 있는데 일단 매장에서 음료를 판매한 다음 손님이 음료를 들고 매장을 떠나면 더 이상의 노동력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또 플라스틱 컵은 제품 전체가 같은 소재로 만들어져 있어 재활용에 강해 보입니다. 종이컵이나 플라스틱 컵 양쪽 모두 이론적으로는 더 편리하고 안전할 뿐 아니라 재활용 시스템이 동작한다는 가정 하게 재활용에도 강한 물건입니다. 표면에 인쇄된 로고를 제거한다면요.
그런데 실상 이 물건들은 마치 이들을 사용하는 행동이 죄악시 되는 것 같아 보입니다. 뉴스에서는 항상 하루 동안 사용 되는 플라스틱 컵이 수 백만 개에 달하며 이들의 무게가 어느 정도 된다는 이야기와 함께 이들이 버려져 심각한 환경 문제를 일으킬 거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한데 모인 먼 바다에 형성된 플라스틱 쓰레기섬을 보여주고 또 이들이 파도에 의해 부서져 바닷속 생물을 통해 다시 사람으로 되돌아오는 과정과 근해에서 퍼 올린 물 속의 미세플라스틱 입자 농도를 측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의 해결책은 흥미롭게도 항상 맨 끝에서 컵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플라스틱 컵을 사용하는 음료 매장과 이 매장에서 음료를 구입하는 사람들을 겨냥해 보증금 제도를 운영하고 또 플라스틱 컵 사용을 금지 하려고도 하고 또 개인 컵을 들고 가면 가격을 할인하는 정책을 실행할 것을 강제 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안전하게 컵 하나 닦을 인프라 조차 부족한 여러 작은 일터의 현실이나 수많은 다회용 컵을 세척해야 하는 음료 매장의 현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우리가 하얀 곰이 그려진 노란 바탕의 컨버스 백을 사용하며 이에 해당하는 물건을 버리든 버리지 않든, 또 새 물건을 구입 하든 구입하지 않든 이들은 앞에서 소개한 자동화된 공장으로부터 재생 속도를 의심하게 만들 정도의 엄청난 속도로 이미 생산되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우리들이 그런 물건을 소비하지 않으면 생산이 줄어들겠지만 이는 결국 다른 물건으로 전환될 뿐 생산 자체를 멈추기는 어렵습니다. 또 생산된 물건이 판매되지 않으면 이들은 오히려 사용되지도 않은 채로 버려질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이 과정에서 맨 끝에서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겨냥한 제도는 마치 위에서 소개한 점점 더 복잡해지는 분리수거 규칙과 여기에 소모되는 개개인의 분산된 노동력에 비해 그 결과는 여전히 사용 불가능한 현실과 비슷한 결과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 하는 공간에 안전하게 컵 하나 닦을 공간이 마땅치 않고 또 이를 보관하기도 그리 간단하지 않으며 짧은 시간 안에 몰려드는 수 많은 사람들이 사용한 컵은 언제 누가 어떻게 설거지 할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은 채 그저 가장 목표로 삼기 쉽고 가장 눈에 쉽게 띄는 부분만을 공격하는 정책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겁니다.
우리가 사용하지 않아도 여전히 물건은 생산되고 환경을 위한 행동을 위해서는 개개인의 시간, 비용, 노동력을 필요로 합니다. 이를 요구하는 정책을 만들기는 아주 쉽고 겉보기에 의미 있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필요한 비용을 맨 끝에서 물건을 사용하는 개개인에게 전가 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분리수거 사례처럼 개개인이 환경을 위한 올바른 행동을 유지하기를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담배 가격 인상과 비슷한 결과에 도달할 거라고 보는데 담배 가격을 인상 하더라도 흡연율 감소 효과는 미미하며 오히려 흡연율 감소는 사회적인 건강 의식의 변화에 의한 결과였습니다. 비슷하게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가장 끝단에 있는 사람들을 노려 보증금 제도를 운영하고 일회용 컵 사용을 금지시키는 등의 행동은 여기에 필요한 매장 및 소비자로 구성된 사용자들의 비용을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실천 불가능한 정책입니다.
최근 일회용 컵 사용 금지 정책이 실행 되려다가 취소되어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소식을 보며 애초에 맨 끝에서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정책은 성공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는 정부의 정책 일관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책을 오직 가장 실행하기 편하고 가장 저항이 적은 맨 끝에 있는 사용자들을 노려 실행함으로써 정부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뭔가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이는 효과를 얻을 뿐 실제 효과를 측정할 방법도 없고 여전히 생산되는 물건을 막는 효과도 없을 겁니다. 그저 정책을 입안하는 분들의 눈에 보이는 곳만을 공격하는 일차원적인 사고로부터 비롯된 해프닝일 뿐입니다.
일회용 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유통 과정의 맨 끝에 있는 사용자를 공격 하기로 결정 했다면 근본적으로 그들이 여러 번 사용하기를 원하는 그 컵은 누가 세척하고 누가 관리할지 생각하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달성할 수 없습니다. 이런 ‘쉬운’ 정책에 따라 비즈니스를 준비했다가 정부의 정책 변경으로 피해를 입는 분들은 안타깝기는 하지만 정책의 무의미함을 감안하면 이를 예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