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탕권의 역사와 미래

소탕권 메커닉을 처음 접하고 나서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 우리들은 소탕권에 대해서, 소탕권이 게임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그리고 소탕권을 활용한 설계를 잘 이해하고 있을까요?

소탕권의 역사와 미래

소탕권 이야기를 시작하면 대개 '편의 기능'이라는 관점을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게임디자인 관점에서 소탕권을 단순 편의 기능으로 보면 여러 가지를 놓칠 수 있습니다. 소탕권은 플레이어가 게임에 쓰는 시간을 줄이는 기능이면서 동시에 게임이 플레이어의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 쓰게 할지 다시 설계하는 장치입니다. 소탕권은 '전투를 안 해도 된다'가 아니라 '전투 대신 다른 것을 하게 만든다'에 가깝습니다. 이 전환이 성공하면 플레이어는 피곤한 반복에서 해방되고 게임은 더 오래 가는 구조를 얻습니다. 반대로 이 전환이 실패하면 플레이어는 '할 게 없어서' 떠나거나, '불편을 팔았다'는 반감을 갖게 됩니다. 소탕권은 이미 클리어한 반복 콘텐츠를 즉시 완료하고 보상을 정산받는 기능을 말합니다. 티켓이라는 아이템 형태로 존재할 수도 있고 무료 기능으로 열려 있을 수도 있고,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버튼으로 제공될 수도 있습니다. 핵심은 '시간을 생략한 정산'입니다. 이 정의는 장르를 가리지 않습니다. 퍼즐 게임에서도 광고를 보지 않고 보상을 받는 '스킵'이라는 형태로 같은 개념이 등장합니다. 즉, 특정 행동을 수행해야 받는 보상을, 다른 비용(토큰, 재화)으로 대체해 즉시 받는 구조입니다[^스킵이 무엇인가요?]. 다만 이 오늘은 '캐릭터 수집 게임'을 중심에 두고 설명할 겁니다. 캐릭터 수집 게임은 성장의 대부분이 반복 파밍과 재료 소비로 이어지고 그 반복이 하루 단위로 쌓이기 쉽습니다. 그래서 소탕권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데일리 루틴의 길이가 변하고 곧바로 플레이어의 접속 습관과 결제 습관이 변합니다. 한국 시장에서는 특히 '숙제는 빨리 끝내고 싶다'는 기대치가 강하게 형성되어 있어서, 소탕권은 기능 하나가 아니라 게임의 인상을 바꾸는 레버처럼 작동합니다. 크게 세 가지 질문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첫째, 소탕권은 어떤 맥락에서 등장했고 어떻게 발전했는가입니다. 둘째, 소탕권이 게임 시스템과 매출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입니다. 셋째, 같은 캐릭터 수집 게임이라도 소탕권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 시스템이 어떻게 달라지고 어떤 결과가 생기는가입니다. 마지막으로는 게임디자이너가 실제로 의사결정할 수 있도록, 도입 여부 판단법과 설계 요령, 그리고 하면 안 되는 설계를 정리합니다. 소탕권은 게임을 '덜 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게임이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덜 하게' 만들어야 하는 구간도 있습니다. 그 구간은 보통 반복 파밍입니다. 그리고 '덜 하게 된 시간'은 자동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더 재미있다고 느끼는 다른 활동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이 이동이 설계의 핵심이며 결론도 결국 여기에 모일 것입니다.

앞서 소탕권을 ‘시간을 생략한 정산'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제는 이 정의를 게임 시스템의 언어로 해석해 보겠습니다. 소탕권을 도입하면 게임은 '플레이'와 '정산'을 분리하게 됩니다. 원래는 전투를 해야 보상을 받습니다. 그런데 소탕권이 생기면, 전투를 한 번은 했다는 사실과 그 결과가 충분히 좋았다는 사실만 확인되면 이후에는 전투 과정을 건너뛰고 보상만 받게 됩니다. 이때 게임이 요구하는 '충분히 좋았다'의 기준은 보통 한국 커뮤니티에서 말하는 '3성’ 같은 형태로 나타납니다. 프리코네는 아이템 파밍을 편하게 하는 스킵 티켓을 쓰려면 퀘스트를 별 3개로 클리어해야 한다는 조건을 둡니다[^프린세스 커넥트! Re:Dive/퀘스트]. 블루아카이브도 임무를 3성으로 클리어하면 소탕이 가능하다고 정리되어 있고, 넥슨 커뮤니티 FAQ에서도 소탕은 임무 목표를 모두 완수해 별 3개로 클리어하면 사용할 수 있다고 안내합니다[^블루아카이브/임무][^(업무) 임무]. 여기서 게임디자이너가 꼭 기억해야 할 점은 소탕권은 '자동전투'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자동전투는 전투를 하되 조작을 줄여줍니다. 소탕권은 전투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탕권은 손의 피로를 줄이는 수준을 넘어 시간과 집중도를 통째로 되돌려 줍니다. 그 결과 플레이어는 남은 시간을 다른 데 씁니다. 이 '다른 데'가 어디가 될지까지가 소탕권 설계의 절반입니다. 소탕권을 넣고도 플레이어가 남는 시간을 의미 있게 쓰지 못하면 플레이어는 편해진 대신 공허해집니다. 반대로 남는 시간을 '재미 있는 선택'이나 '도전'으로 잘 연결하면, 플레이어는 ‘숙제는 빨리 끝냈고 게임의 본 게임을 즐긴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소탕권이 해결하려는 첫 번째 문제는 반복 파밍의 피로입니다. 수집형 게임의 성장 재료는 보통 반복 던전에서 나옵니다. 이 반복은 시간이 오래 걸리면 그 자체로 이탈 사유가 됩니다. 소탕권은 이 피로를 '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해결합니다. 두 번째 문제는 생활 패턴입니다. 모바일 게임은 길게 한 번 하는 게임보다 짧게 여러 번 접속하는 게임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소탕권은 짧은 접속을 가능하게 만들고 그래서 접속 습관을 만들기 쉽습니다. 세 번째 문제는 운영의 딜레마입니다. 반복을 줄이지 않으면 신규가 떠나고 반복을 줄이면 콘텐츠가 빨리 소진됩니다. 소탕권은 그 딜레마를 해결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딜레마를 다른 형태로 옮깁니다. 즉, 전투 시간을 줄이는 대신 스태미나, 입장권, 소탕권 같은 자원 소모가 더 중요해지고 운영은 '시간 대신 자원'을 어떻게 설계할지로 전장을 옮깁니다. 여기서 소탕권은 경제 시스템과 강하게 결합합니다. 소탕을 누르는 순간 보상이 나오고, 그 대가로 스태미나나 입장권 같은 자원이 나갑니다. 따라서 소탕권이 있는 게임은 대개 '자원 소비를 설계하는 게임'이 됩니다. 프리코네의 기본적인 공략 글에서도 하드 퀘스트는 하루 3회 플레이가 가능하고 자원을 쓰면 클리어 횟수를 초기화해 3회 더 플레이할 수 있으며 별 3개 클리어 시 스킵 티켓으로 바로 클리어가 가능하다고 설명합니다[^프린세스커넥트 De:Dive 기본적인 공략(많이하는 질문, 2019.4.1)].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킵 티켓'만이 아니라 '하루 3회 제한'과 '쥬얼로 초기화'가 같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소탕권은 보상 정산을 빠르게 만들지만 경제 시스템은 그 빠른 정산을 어디까지 허용할지 다시 잠급니다. 소탕권이 들어온 순간 게임디자이너는 스태미나와 횟수 제한, 그리고 그 제한을 풀어주는 유료 재화의 설계를 함께 책임지게 됩니다.

또 하나의 핵심은 소탕권이 인터페이스 규칙을 바꾼다는 점입니다. 소탕권이 없으면 플레이어는 전투 화면에서 경험을 쌓습니다. 소탕권이 있으면 플레이어는 목록 화면에서 결정을 내립니다. 어떤 던전을 돌지, 몇 번 돌지, 오늘은 어디에 스태미나를 쓸지 같은 판단이 목록 인터페이스에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소탕권을 넣은 게임은 '리스트 인터페이스'가 곧 게임이 됩니다. 이 인터페이스가 불친절하면 플레이어는 편해지기는커녕 더 피곤해집니다. 반대로 목표, 남은 횟수, 드랍, 기대 수량이 한눈에 들어오면 플레이어는 ‘게임이 나를 배려한다’고 느낍니다. 중국식 소탕 진화가 ‘필요 수량 표시’에서 ‘목표 달성 자동 정지’로 발전한 것도 결국 이 맥락입니다. 그 발전 흐름 자체는 이어서 사례와 함께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소탕권은 '공정성'의 감각도 바꿉니다. 소탕권이 없으면 시간을 더 쓴 사람이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소탕권이 있으면, 더 많은 보상을 받는 사람이 반드시 더 많은 시간을 쓴 사람은 아닙니다. 대신 더 효율적으로 자원을 쓰거나, 더 많은 스태미나를 확보하거나, 더 많은 소탕권을 가진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이때 플레이어는 공정성을 '시간'이 아니라 '자원'과 '제도'로 판단합니다. 그래서 소탕권이 있는 게임은 무료 제공량, 과금 없이 얻는 경로, 복귀 플레이어 지원 같은 설계가 훨씬 민감해집니다. 소탕권이 편의 기능으로 환영받을지, 불편을 파는 기능으로 욕을 먹을지는 대개 이 설계에서 갈립니다. '소탕은 좋은데, 왜 이걸 돈 내야 돼?' 같은 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어서 도탑전기에서 시작해 중국 모바일 RPG에서 소탕 인터페이스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실제 게임 사례를 따라가며 설명하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소탕권이 단순히 '있다/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형태로, 어떤 범위로, 어떤 조건으로 제공되느냐에 따라 게임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점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앞서 소탕권이 '시간을 생략한 정산'이고 그 순간부터 게임이 ‘전투 화면’이 아니라 ‘목록 화면’에서 굴러가기 시작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는 그 변화가 실제로 어떤 순서로 일어났는지 그리고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사례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이 흐름을 이해하면, 소탕권이 단순히 '있다/없다'가 아니라 '어떤 인터페이스로 제공하느냐'가 핵심이라는 점이 분명해집니다. 중국 모바일 RPG에서 소탕 인터페이스의 발전은 단순합니다. 처음에는 '횟수만 선택하면 끝'이었습니다. 다음에는 '내가 무엇을 얼마나 모아야 하는지'를 알려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필요한 만큼 다 모이면 자동으로 멈춰주는' 형태가 등장했고, 마지막에는 '횟수 선택조차 없애고 목표 달성까지 알아서 처리'하는 형태로 발전합니다[^중국 게임 - 일괄 소탕 기능의 진화]. 첫 단계로 소개되는 KOF98UM의 소탕 인터페이스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매우 단순합니다. 던전에 들어가면 소탕 버튼이 있고 1회, 10회, 50회 같은 횟수를 눌러 그만큼 즉시 반복 클리어 보상을 받는 방식입니다. 이 구조의 핵심은 '시간을 없애고 행동력을 태운다'는 점입니다. 재미있는 포인트는 여기서 소탕이 단순 편의가 아니라 게임 경제의 중심축으로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같은 글에서 KOF98UM이 소탕권의 제약을 없애고 소탕을 기본 시스템으로 만들면서 행동력 소비를 촉진하고, 행동력 가격에 누진 구조를 붙여 중과금에서 매출 효율을 높이며 고과금에게 가챠의 매력을 높여주는 도탑전기 구조를 완성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게임디자이너에게 굉장히 중요한데 소탕은 단지 플레이어를 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력 소비 속도를 올리는 버튼'이고, 소비 속도가 올라가면 그 다음 단계의 BM 설계가 훨씬 강해진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단계의 인터페이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왜 이 던전에 왔는지'를 화면이 충분히 알려주지 않습니다. 무엇을 얼마나 모아야 하는지, 지금 얼마나 모았는지, 앞으로 얼마나 더 필요한지 같은 맥락이 부족하면 플레이어는 횟수를 선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소탕은 편한데도 불구하고, 행동력 낭비나 실수에 대한 불안이 생깁니다. 즉 소탕이 시간을 줄여주지만 정신적 피로는 남습니다.

두 번째 단계로 소개되는 나루토는 이 약점을 해결합니다. 기본 구조는 비슷하지만 필요한 아이템 수량과 현재 수량, 남은 수량이 화면에 분명히 표시됩니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5회 소탕을 할지 1회 소탕을 할지'를 계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탕 메뉴를 던전 화면으로 보내지 않고 오버레이로 처리해 이전 단계로 돌아가기가 쉬워집니다. 글에서 칭찬하는 포인트가 바로 이것입니다. 소탕이 ‘기능’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플레이어가 맥락을 잃지 않고 빠르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 흐름이 개선됩니다. 게임디자인 관점에서 말하면, 이 단계는 소탕의 가치를 '시간 절약'에서 '의사결정 지원'으로 확장한 단계입니다. 소탕을 누를지 말지를 고민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소탕을 누르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주는 쪽으로 진화합니다. 세 번째 단계로 소개되는 드래곤볼은 많은 게임디자이너들이 '이게 진짜 혁신이다'라고 느낄 만한 지점을 갖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1, 10, 50회 같은 버튼이 남아 있는데 정작 필요한 수량 표시가 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50회 소탕 같은 큰 단위를 눌러도, 자동 소탕이 진행되는 동안 '핵심 아이템이 무엇인지, 몇 개가 필요한지, 현재 몇 개인지'가 표시되고 결정적으로 필요한 만큼 다 모으면 자동으로 소탕을 멈춥니다. 플레이어가 행동력을 낭비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듭니다. 이때부터 소탕은 '실수 가능성이 있는 도구'가 아니라 '실수를 시스템이 막아주는 도구'로 바뀝니다. 이 변화는 인터페이스의 방향성을 완전히 바꿉니다. 플레이어는 더 이상 '몇 번 돌까'를 계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50회를 누르면 됩니다. 다 못 모으면 다시 50회를 누르면 됩니다. 고민이 사라지고, 행동이 습관으로 바뀝니다. 여기서 기획적으로 아주 중요한 함의가 나타납니다. 소탕이 너무 편해지면 플레이어는 더 이상 파밍을 ‘플레이’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파밍은 버튼을 누르는 행정 처리로 바뀝니다. 이건 장점이자 위험입니다. 장점은 데일리 피로가 급감하고, 플레이어가 게임에 남기 쉬워진다는 점입니다. 위험은 파밍이 너무 빨리 끝나서 '할 게 없다'는 공허감이 빨리 온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목표 달성 자동 정지 같은 고도화된 소탕을 넣을수록 엔드 콘텐츠를 더 강하게 설계해야 합니다. 소탕 인터페이스의 진화는 결국 '엔드 콘텐츠 설계의 의무'를 같이 키웁니다.

네 번째 단계로 소개되는 전민투신전에서는 이 흐름이 한 번 더 과감해집니다. 글에서 말하듯 이 인터페이스에서는 소탕 횟수를 선택하는 버튼이 없습니다. 대신 ‘체력으로 소탕’ 같은 큰 버튼이 있고 ‘자동 소탕’ 체크 박스가 있습니다. 자동 소탕을 켜고 소탕을 누르면 해당 아이템을 다 모으거나 체력이 다 될 때까지 자동으로 진행됩니다. 회차를 고를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인터페이스 변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게임의 철학이 바뀐 것입니다. '플레이어가 판단하고 선택한다'는 전제를 접고 '플레이어는 목표만 말하면 시스템이 알아서 처리한다'로 넘어갑니다. 소탕권이 아이템 형태이든 기능 형태이든 여기서는 소탕이 사실상 운영체제처럼 작동합니다. 게임디자이너는 이제 전투의 재미보다 정산과 흐름의 안정성을 더 크게 책임지게 됩니다. 이 네 단계에서 공통으로 관찰되는 핵심 변화는 하나입니다. 소탕은 점점 ‘시간 절약’에서 ‘생각 절약’으로 이동합니다. KOF98UM은 시간을 절약하지만 생각은 남습니다. 나루토는 생각을 줄입니다. 드래곤볼은 생각을 거의 없앱니다. 전민투신전은 생각을 없애고 행동까지 자동화합니다. 이 변화가 왜 중요한지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소탕은 편해질수록 더 많은 플레이어를 붙잡을 수 있지만, 편해질수록 게임은 '진짜로 즐길 구간'을 따로 만들어야만 살아남습니다. 이어서 이 소탕 인터페이스의 발전이 게임 시스템의 다른 층, 특히 경제 시스템과 성장 곡선, 콘텐츠 설계, 운영 KPI에 어떤 충격을 주는지 구조적으로 풀어보겠습니다. 방금 설명한 '생각 절약'으로의 진화가 왜 행동력 소모율을 바꾸고 왜 콘텐츠 소모 속도를 가속하고 왜 구독·패스 같은 BM과 자연스럽게 엮이는지도 그 장에서 이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앞서 중국 모바일 RPG에서 소탕 인터페이스가 '횟수 선택'에서 '목표 달성 자동 정지' 그리고 '목표 달성까지 자동 처리'로 진화한 흐름을 봤습니다. 이제는 그 인터페이스 변화가 게임 시스템의 다른 층을 어떻게 흔드는지 이야기하겠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소탕권을 '편의 기능'으로만 보면 거의 항상 설계가 틀어집니다. 소탕권은 경제, 성장, 콘텐츠, 운영 지표까지 동시에 건드리는 기능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바뀌는 것은 경제 시스템의 리듬입니다. 소탕권이 없으면 플레이어는 시간을 쓰면서 재화를 벌고 재화를 쓰면서 강해집니다. 시간 자체가 경제의 마찰입니다. 그런데 소탕권이 생기면, 시간 마찰이 사라지고 대신 스태미나 같은 자원이 마찰이 됩니다. 즉, 스태미나의 소모 속도가 곧 성장 속도가 됩니다. 앞서 인용한 글에서 KOF98UM의 소탕을 설명하면서 '행동력 소비를 촉진한다'는 식으로 연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소탕 버튼이 생기는 순간, '스태미나를 얼마나 빨리 태우게 할 것인가'가 게임의 핵심 설계가 됩니다. 이 리듬 변화는 바로 '결제 포인트'를 바꿉니다. 소탕이 빠르면 플레이어는 스태미나가 부족해집니다. 스태미나가 부족해지면 플레이어는 멈춥니다. 그래서 게임은 멈추는 순간에 선택지를 던집니다. 내일 다시 오세요, 아니면 스태미나를 더 사세요. 결국 소탕권은 스태미나 판매, 입장권 판매, 추가 충전 같은 BM이 자연스럽게 붙는 접착제 역할을 합니다. 소탕권은 반복 파밍 시간을 절약하고, 절약된 시간을 다른 던전과 PvP에 쓰게 만들며, 그래서 소탕권 구매를 자연스럽게 유도합니다[^도탑전기가 시장에 미친 영향]. 이 말은 '소탕권이 매출을 올린다'는 단순한 문장이 아닙니다. 소탕권이 게임의 행동 루프를 바꾸고, 그 루프가 플레이어를 결제 화면 근처로 데려가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로 바뀌는 것은 성장 곡선입니다. 소탕권이 생기면 초중반 성장 속도가 빨라집니다. 스토리나 튜토리얼 구간에서 반복이 줄어드는 만큼 플레이어는 더 빨리 ‘다음 콘텐츠’로 이동합니다. 이건 장점입니다. 신규 플레이어는 빨리 재미 있는 구간에 도달하고, 이탈이 줄어듭니다. 그런데 이 장점은 항상 대가를 동반합니다. 플레이어가 빨리 도달하는 만큼, 엔드 콘텐츠가 부족하면 '할 게 없다'는 상태가 빨리 옵니다. 그래서 소탕권을 넣는 게임은 성장 곡선을 같이 재설계해야 합니다. 소탕권을 넣고도 예전과 똑같은 성장 요구량을 두면 플레이어는 매일 소탕만 하다가 지쳐 떠납니다. 반대로 소탕권을 넣고 성장 요구량을 너무 낮추면 플레이어는 너무 빨리 다 끝내고 떠납니다. 소탕권이 들어간 순간부터 게임디자이너는 '성장량을 어디서 체감하게 할 것인가'를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바뀌는 것은 콘텐츠 설계의 의미입니다. 소탕권이 없을 때 반복 던전은 플레이 콘텐츠입니다. 전투를 돌며 시간을 보내고 조작을 하고, 작은 성취를 느끼는 공간입니다. 소탕권이 생기면 반복 던전은 더 이상 플레이 콘텐츠가 아닙니다. 반복 던전은 재료 생산 라인입니다. 플레이어는 거기에 시간을 쓰지 않고 결과만 받습니다. 그러면 그 던전은 '재미있게 만들 이유'가 줄어듭니다. 대신 '정산이 정확하고 납득되게 만들 이유'가 커집니다. 이 변화는 게임의 제작 비용 배분까지 바꿉니다. 반복 던전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보다 드랍 테이블과 인터페이스 피드백을 더 신경 써야 합니다. 소탕권이 있는 게임에서 반복 던전이 잘 설계되었다는 평가는 대개 '편하고, 낭비가 없고, 결과가 믿을 만하다'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네 번째로 바뀌는 것은 인터페이스의 중심입니다. 앞에서 말했듯 소탕권이 들어오면 게임은 전투 화면에서 돌아가지 않고 목록 화면에서 돌아갑니다. 그래서 목록 화면이 곧 게임이 됩니다. 플레이어는 스테이지를 클릭하고, 소탕을 누르고, 재화가 줄고, 보상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합니다. 이 과정이 매일 반복됩니다. 즉, 플레이어가 가장 많이 보는 화면이 전투가 아니라 '일일 파밍 목록'이 됩니다. 도탑전기 VIP 가이드에서 VIP 4의 혜택으로 '한번에 10번의 소탕권을 사용하는 게 가능해져 반복작업 없이 빠르게 스태미나를 소비할 수 있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단지 편의가 아닙니다. 게임이 ‘반복작업’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 반복작업을 줄이는 권한이 VIP 혜택으로 상품화된다는 뜻입니다[^(가이드) 도탑전기 VIP 등급과 혜택! 나에게 알맞는 VIP등급은?].

다섯 번째로 바뀌는 것은 운영 지표, 특히 콘텐츠 소모 속도입니다. 콘텐츠 소모 속도는 제작자가 만든 콘텐츠를 플레이어가 얼마나 빨리 소비하는지에 대한 개념입니다. 이 개념은 소탕권이 들어오면 훨씬 더 민감해집니다. 왜냐하면 플레이어가 직접 플레이하며 속도를 조절하는 구간이 줄고 시스템이 정산으로 속도를 밀어붙이는 구간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콘텐츠 소모 속도라는 용어 자체는 '제작자가 만들어낸 콘텐츠를 소비자가 사용하고 소모해내는 속도'로 정의됩니다[^콘텐츠 소모 속도]. 게임디자인 관점에서 해석하면, 소탕권은 플레이어의 ‘시간’이라는 브레이크를 제거합니다. 그 결과 개발팀은 콘텐츠 소모 속도를 '일일 제한, 주간 제한, 스태미나, 티켓, 도전 횟수' 같은 규칙으로 다시 제어해야 합니다. 제어가 약하면 콘텐츠는 순식간에 태워지고 제어가 강하면 소탕권은 편의가 아니라 족쇄가 됩니다. 여기서 한국 시장에서 자주 나오는 실패 패턴이 시작됩니다. 소탕권을 넣고도 엔드 콘텐츠를 충분히 설계하지 않으면 '할 게 없다'가 빨리 옵니다. 소탕권을 유료로만 팔면 '불편을 판다'는 말이 나옵니다. 소탕권을 무제한으로 팔면 상위 플레이어가 콘텐츠를 태워버리고 운영이 흔들립니다. 결국 소탕권은 그 자체가 정답이 아니라, 소탕으로 비워진 시간을 어디로 보내는지 그리고 빨라진 소모 속도를 어떤 규칙으로 다시 잡는지에 따라 성패가 갈립니다. 이제 이어서 이 시스템 변화가 실제로 '흥행과 매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도탑전기 같은 사례에서 무엇이 성공 요인이 되었는지, 그리고 왜 VIP, 월정액 같은 모델과 소탕권이 같이 붙는지 더 구체적으로 풀어보겠습니다. 특히 한국 시장에서 소탕권이 '시간 절약'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 이유를 플레이어 습관과 결제 습관이라는 관점에서 연결해 설명하겠습니다.

앞서 소탕권이 경제 시스템의 리듬을 바꾸고 성장 곡선을 당기고 콘텐츠의 의미를 바꾸며 인터페이스의 중심을 목록으로 이동시키고 운영 지표로는 콘텐츠 소모 속도를 민감하게 만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는 그 변화가 실제로 '흥행'과 '매출'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이야기하겠습니다. 여기서는 특히 도탑전기가 왜 당시에 강력하게 먹혔는지 그리고 왜 소탕권이 VIP, 월정액, 구독 같은 모델과 자연스럽게 결합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도탑전기가 한국 시장에 주는 인상은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극한의 편의'였습니다. 인벤의 2014년 인터뷰는 도탑전기를 '극한의 편의 요소를 제공'하는 게임이라고 표현하고 그 편의가 플레이어에게 힐링처럼 느껴졌다는 평가까지 소개합니다[^(인터뷰) 일 매출 33억 '도탑전기", 글래비스 부사장에게 성공의 원동력을 묻다]. 이 표현이 중요한 이유는 당시 모바일 게임에서 '편의'가 단순 덤이 아니라 구매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지만 그때는 '게임을 편하게 만든다'가 곧 흥행 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감각 자체가 더 낯설었습니다. 도탑전기가 매출 측면에서 상징이 된 이유는 '일 매출 33억' 같은 숫자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 인터뷰에서 더 중요한 부분은 매출을 끌어올린 방식에 대한 설명입니다. 도탑전기는 과금 모델을 월정액과 건당 결제로 나누고 월정액은 결제 시 한 번에 주는 방식이 아니라 30일 동안 매일 재화를 지급하는 구조를 택했습니다. 이는 수익 관점에서 매우 강력한데 월정액의 핵심이 '지불'이 아니라 '매일 접속'이라는 행동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매일 접속은 소탕권 같은 ‘짧은 세션 루틴’과 결합할 때 가장 잘 돌아갑니다. 즉, 도탑전기의 월정액은 단독으로 성공한 게 아니라 플레이어가 부담 없이 매일 들어오게 해주는 편의 구조와 함께 성공했습니다.

여기서 소탕권은 매출에 두 가지 방식으로 영향을 줍니다. 첫째, 소탕권은 결제 행동을 ‘자연스럽게’ 만들기 쉽습니다. 같은 인터뷰는 도탑전기의 BM이 플레이어에게 과금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게임을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소비가 이루어진다고 설명합니다. 이를 게임디자이너의 언어로 풀면 소탕권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계속 굴리게 만드는 '마찰 제거'이고 마찰이 줄면 플레이어는 ‘계속 굴리는 비용’에 대해 비교적 덜 방어적으로 반응합니다. 즉 '편해지니까 그만큼 내도 된다'는 심리적 정당화가 생깁니다. 특히 한국 시장은 '시간이 없어서 못 한다'가 이탈 이유로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시간을 줄여주는 상품은 구매 이유로 바로 연결됩니다. 둘째, 소탕권은 결제를 ‘필요’로 만들기 쉽습니다. 이 부분이 위험하면서도 강력합니다. 소탕이 빨라질수록 스태미나는 빨리 바닥납니다. 스태미나가 바닥나면 플레이어는 멈춥니다. 그때 게임은 멈춘 플레이어를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선택지를 내놓습니다. 기다리기, 또는 충전하기. 이런 구조가 잘 설계되면 '합리적인 소비'로 받아들여집니다. 도탑전기 인터뷰에서 '상품 자체를 매력적으로 만들어 플레이어 스스로 계산하고 합당하다고 판단하게 한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소탕권이 바로 이 계산을 촉진하는 재료입니다. 플레이어는 '오늘은 10분만 더 하고 싶은데 스태미나가 없네' 같은 상황에서 실제로 머릿속 계산을 합니다. 그 계산이 ‘합당’하게 느껴지면 결제가 일어납니다. 소탕권이 VIP와 결합하는 이유도 이 두 가지와 연결됩니다. VIP의 구조 자체는 꽤 단순합니다. 누적 결제로 등급을 올리고 등급에 따라 편의와 보상을 더 줍니다. 이때 소탕권은 VIP 혜택으로 넣기 매우 좋은데 플레이어가 매일 자주 쓰는 기능이기 때문입니다. 도탑전기 VIP 가이드에서는 VIP 4에서 소탕권을 '한번에 10번' 사용할 수 있게 되어 반복작업 없이 빠르게 스태미나를 소비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 문장이 보여주는 핵심은 VIP가 단지 ‘보상’이 아니라 ‘생활을 편하게 하는 권리’로 팔린다는 점입니다. VIP는 곧 '덜 귀찮은 게임'을 만드는 수단이 됩니다. 그러면 플레이어는 전투력을 사는 것이 아니라, 생활을 사는 느낌으로 결제합니다. 이 결제는 플레이어 입장에서 거부감이 낮아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VIP와 소탕권의 결합에는 함정도 있습니다. VIP가 너무 강하면 'VIP 없는 플레이어는 게임을 제대로 못 한다'는 인식이 생깁니다. 특히 소탕권이 없다면 하루 루틴 시간이 길어지고 VIP가 그 시간을 확 줄여준다면, 그 순간 소탕권은 편의가 아니라 사실상 입장권처럼 느껴집니다. ‘양산형 게임’의 특징을 설명하는 나무위키 문서가 VIP 시스템을 '누적 과금량에 따라 VIP 등급이 오르고 혜택이 영구 적용'된다고 요약하는데, 이런 문맥에서 플레이어는 VIP를 ‘계급’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양산형 게임/특징]. 그래서 소탕권을 VIP에 넣을 때는 기본 제공량과 무과금 경로를 충분히 마련해 '편의의 차이'로 느껴지게 하고 '플레이 가능 여부'로 느껴지게 하면 안 됩니다. 도탑전기의 성공을 한국 시장의 맥락에서 다시 보면 여기에는 또 하나의 요인이 있습니다. 인터뷰는 도탑전기가 '모바일 화면에서 이용자들이 최대한 편하게 즐길 수 있게 한 것이 성공 요인'이라는 평가를 인용합니다. 도탑전기의 편의는 '이 정도면 모바일에서 할 만하다'라는 기준을 제시했고 이 기준이 시장의 기대치를 끌어올렸습니다. 이 기대치가 올라가면, 이후 등장하는 캐릭터 수집 게임은 소탕권을 제공하지 않으면 '왜 이렇게 불편해?'라는 반응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소탕권이 개인 게임의 기능을 넘어서, 장르의 표준이 되는 방식입니다. 정리하면, 소탕권이 흥행과 매출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히 '시간을 줄여주니 플레이어가 좋아한다'가 아닙니다. 소탕권은 플레이어의 일일 루틴을 짧게 만들고 짧은 루틴은 매일 접속 습관을 만들며 매일 접속 습관은 월정액과 궁합이 좋고 소탕으로 빨라진 자원 소비는 스태미나 충전과 궁합이 좋습니다. 그리고 VIP는 그 모든 편의를 ‘등급’으로 묶어 장기 결제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이 조합이 잘 맞으면 도탑전기처럼 '편해서 계속 하는 게임'이 됩니다. 반대로 이 조합이 과하면 '편의가 없으면 못 하는 게임'이 되고, 그때부터는 거부감이 매출의 발목을 잡습니다. 이제 초기의 소탕권과 현대 게임의 소탕권이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본격적으로 정리하겠습니다. 특히 소탕권이 '티켓 아이템'에서 '기본 기능'이나 '권한'으로 이동한 점과 인터페이스가 '횟수 선택'에서 '목표 기반 자동 정산'으로 진화한 점이 어떤 원인에서 나왔는지 사회적·문화적·기술적 배경까지 엮어 설명드리겠습니다.

앞서 소탕권이 흥행과 매출에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지 특히 도탑전기 같은 초창기 모델에서 왜 VIP·월정액과 궁합이 좋았는지까지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서는 초기의 소탕권과 현대 게임의 소탕권이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정리하겠습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면 요즘 플레이어가 소탕권에 기대하는 수준이 왜 달라졌는지 그리고 왜 예전 방식 그대로 설계하면 문제가 생기는지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초기의 소탕권은 '티켓 아이템'에 가까웠습니다. 플레이어는 소탕권을 모아두었다가 필요할 때 씁니다. 어떤 게임에서는 소탕권 자체가 재화처럼 거래되거나 이벤트 보상으로 뿌려지거나 VIP 혜택에 붙었습니다. 즉 소탕권은 게임 안에서 '실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현대의 소탕권은 종종 티켓이라기보다 '기능' 또는 '권한'에 가깝습니다. 어떤 게임은 소탕권을 거의 무제한으로 뿌리면서 사실상 소탕을 기본 기능처럼 만들고 어떤 게임은 아예 소탕권이라는 아이템을 없애고 '소탕 버튼'만 제공합니다. 그리고 그 대신 플레이어가 더 소탕하고 싶으면 스태미나를 충전하게 만들거나 일일 입장 횟수를 늘리는 상품을 팔거나 배틀패스에 '추가 혜택'으로 묶어버립니다. 즉, 소탕권이 '소비재'에서 '접속-성장 루프를 구성하는 권리'로 리포지셔닝된 것입니다. 이 변화는 인터페이스의 변화와 함께 일어났습니다. 초기 소탕권 인터페이스는 대체로 '몇 회 소탕할지'를 플레이어가 직접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생각을 해야 했고 낭비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대 소탕 인터페이스는 플레이어의 생각까지 줄이려는 방향으로 진화합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중국식 흐름처럼 '필요 수량을 표시'하고, '필요량이 채워지면 자동으로 멈추고' 심지어 '목표 달성까지 자동으로 처리'하는 방식이 정착합니다. 이 변화가 의미하는 것은, 소탕이 더 이상 ‘선택 기능’이 아니라 ‘기본 인프라’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플레이어는 소탕을 잘 쓰는 방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소탕이 당연히 편하게 되어 있기를 기대합니다.

또 하나의 변화는 소탕권이 붙는 BM의 중심이 'VIP'에서 '구독, 패스'로 더 넓어졌다는 점입니다. 물론 VIP는 여전히 강력하지만 최근에는 배틀패스가 훨씬 넓은 장르에서 표준화되었습니다. 한국 언론 보도에서는 전 세계 상위권 모바일 게임 중 54%가 배틀패스를 도입했다는 수치를 인용하며 배틀패스가 과금 부담을 줄이고 락인 효과를 만든다고 설명합니다[^'배틀패스' 구독형 요금제가 뜬다… 게임사 새 수익모델로 각광]. 이 흐름은 소탕권의 성격 변화와 직접 연결됩니다. 소탕권을 '티켓을 사는 것'으로 팔면 플레이어는 ‘편의를 돈으로 판다’고 느낄 수 있는데, 배틀패스에 묶으면 플레이어는 ‘기간 동안 더 편하게 즐길 권리’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그리고 배틀패스는 본질적으로 '정해진 기간 동안 매일 들어오게 만드는 장치'이기 때문에 '짧게 접속해서 소탕하고 나가는 습관'과도 자연스럽게 맞물립니다. 이 변화가 왜 일어났는지는 뒤에서 사회, 문화, 기술로 나눠 설명하겠지만, 여기서는 변화의 결과만 더 하나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현대 소탕권은 단순히 '시간을 줄여준다'로 끝나지 않습니다. 현대 소탕권은 '게임을 덜 하게 만든다'는 역설을 더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래서 현대 게임은 소탕권을 도입할 때,동시에 '엔드 콘텐츠를 어떻게 설계할지'를 더 중요하게 다루게 됩니다. 소탕권이 기본 기능이 되면, 파밍을 전투로 즐길 이유가 거의 없어지고 플레이어는 파밍을 빠르게 끝낸 뒤에 남는 시간을 레이드, 랭킹전, 시즌 콘텐츠 같은 ‘길게 잡아둘 수 있는 콘텐츠’에 쓰게 됩니다. 이때 엔드 콘텐츠가 약하면 게임은 금방 공허해집니다. 즉 소탕권이 발전할수록 엔드 콘텐츠 설계의 중요도가 더 커졌습니다. 한편으로 현대 소탕권이 더 '기본 기능화'된 이유는 플레이어의 생활 패턴과도 연결됩니다. 스마트폰이 생활의 중심이 되면서 플레이어는 게임도 '짧게 처리 가능한 앱'처럼 쓰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2024년 한국 성인의 스마트폰 사용률이 98%라고 정리되어 있습니다[^스마트폰 관련 조사 2012-2024 #브랜드 #스마트워치 #무선이어폰]. 또 방통위의 2024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 결과 발표 자료에서는 스마트폰 이용시간이 하루 평균 2시간 6분으로 전년 대비 늘었다고 제시합니다[^방통위 「2024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 결과 발표]. 이 숫자들은 '사람들이 폰을 많이 본다'는 단순한 결론보다 '폰에서 하는 활동이 여러 앱으로 쪼개져 있고 그 사이사이에 게임도 끼어든다'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파밍에 30분을 요구하는 게임보다 5분 만에 정리되는 게임이 더 경쟁력이 생깁니다. 그래서 소탕권은 점점 더 강력한 형태로 발전하고, 더 기본 기능이 됩니다. 하지만 이 발전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소탕권이 너무 강해지면 게임은 '딸깍하고 끝나는 것'만 남을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의 소탕권 설계는 '파밍을 얼마나 줄일 것인가'보다 '파밍이 줄어든 만큼 무엇을 남길 것인가'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이 지점에서 소탕권 설계는 단독 기능이 아니라, 전체 게임 구조 설계로 확장됩니다.

앞서 초기의 소탕권이 '티켓 아이템' 성격이 강했다가 현대에는 '기본 기능 또는 권한'으로 이동했고 인터페이스도 '횟수 선택'에서 '목표 달성 자동 정산'으로 진화했으며 BM도 VIP 중심에서 구독·배틀패스 같은 형태로 더 넓어졌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는 왜 이런 변화가 생겼는지 원인을 설명하겠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태도는 하나입니다. 소탕권이 진화한 이유를 '게임이 점점 편의만 추구해서' 같은 단순한 말로 끝내면 게임디자인에 도움이 안 됩니다. 진짜 원인은 사회 환경, 문화적 기대치, 그리고 기술적 기반이 동시에 변했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를 같이 봐야 '왜 지금은 이렇게 설계해야 하는지'가 납득됩니다. 먼저 사회적 원인부터 보겠습니다. 소탕권이 강해진 가장 큰 이유는 많은 플레이어가 게임에 쓸 수 있는 시간이 더 촘촘하게 쪼개졌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여전히 길고 이것은 '길게 붙잡히는 반복 파밍'을 싫어하는 태도와 직결됩니다. 정부 지표누리의 OECD 비교 자료는 2024년 기준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이 1,859시간이라고 제시합니다[^임금근로자의 성별 및 연령집단별 월간 근로시간]. 이 숫자가 절대적인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한국 시장에서 '매일 30분짜리 숙제'는 시간이 없는 플레이어에게 꾸준히 부담으로 작동합니다. 소탕권은 바로 그 부담을 줄여주는 장치입니다. 특히 수집형 게임은 하루를 빼먹으면 재료 누적이 끊기고 그 누적이 곧 성장 격차가 되기 쉬워서 '매일 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는 압박이 더 강하게 생깁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시간 압박이 큰 환경에서는 소탕권이 단순 편의가 아니라 생존 장치가 됩니다. 또 하나의 사회적 조건은 스마트폰이 생활 속 '기본 도구'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앞에서 이미 스마트폰 사용률과 스마트폰 이용시간의 자료를 소개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 자료들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플레이어는 한 앱에서 오래 머물기보다 여러 앱을 오가며 짧게 소비합니다. 이 환경에서는 게임도 '짧게 처리할 수 있는 루틴'을 제공해야 경쟁력이 생깁니다. 소탕권이 기본 기능화된 이유는 결국 여기로 돌아옵니다.

다음은 문화적 원인입니다. 한국 모바일 게임 문화에서 '숙제는 빨리 끝내고, 재미는 따로'라는 분리 욕구는 매우 강합니다. 이 말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싫어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재미를 느끼는 구간과 지루함을 느끼는 구간을 아주 명확히 구분한다는 뜻입니다. 반복 파밍은 지루한 구간으로 분류되기 쉽고, 레이드나 랭킹전, 새로운 스토리 같은 구간은 재미 있는 구간으로 분류되기 쉽습니다. 그러면 플레이어는 지루한 구간을 가능한 한 빨리 끝내고, 재미 있는 구간에 시간을 쓰고 싶어합니다. 소탕권의 확산은 이 문화적 욕구에 대한 시장의 집단적 답변입니다. 소탕 인터페이스의 진화를 설명하며 '불편을 최대한 삭제'하는 방향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플레이어가 원하는 것은 반복을 더 ‘잘’ 플레이하는 법이 아니라 반복을 가능한 한 덜 의식하게 만드는 경험입니다. 이 문화적 변화는 메타 공유 문화와도 연결됩니다. 요즘 수집형 게임은 공략이 빠르게 표준화됩니다. 덱, 장비, 성장 루트가 커뮤니티에서 빠르게 정리되고 퍼집니다. 그러면 반복 파밍은 더더욱 ‘의미 없는 과정’으로 취급됩니다. '이미 답이 나와 있는데, 왜 내가 손으로 돌려야 하지?'라는 생각이 쉽게 생깁니다. 그래서 소탕권은 '답이 정해진 반복'을 처리하는 도구가 됩니다. 소탕이 발전할수록 ‘생각 절약’으로 간다는 것도 결국 여기서 설명됩니다. 이미 생각이 끝난 반복은 시스템이 대신 처리해 주는 편이 사용자 만족도가 높습니다. 세 번째로 기술적 원인을 보겠습니다. 소탕권이 단순한 버튼이 아니라 ‘전체 운영 구조’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라이브 서비스 운영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게임 시스템을 출시 후 바꾸는 것이 어렵고 위험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원격 설정, 데이터 기반 운영, A/B 테스트 같은 방식이 널리 쓰입니다.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 발표를 정리한 글에서는 A/B 테스트를 위해 플레이어를 로그인 때마다 실험군으로 나누고 플레이 로그와 결제 로그를 합쳐 어떤 실험군에서 상품이 더 팔리는지, 어떤 실험군이 더 오래 하는지 평가하는 방식이 설명됩니다[^NDC 후기: 실전에서 사용하는 A/B 테스트]. 이런 운영 방식이 가능해지면 소탕권을 도입했을 때 콘텐츠 소모 속도가 얼마나 빨라지는지, 무료 제공량을 몇 회로 두면 이탈이 줄어드는지, 월정액에 묶으면 전환율이 얼마나 오르는지 같은 문제를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조정할 수 있습니다. 결국 소탕권이 강해질수록 운영은 더 정밀해져야 하는데 기술이 그 정밀함을 가능하게 만든 것입니다. 기술 발전은 또 다른 방향으로도 소탕권을 밀었습니다. 인터페이스 구현과 정산 안정성이 좋아졌습니다. 목표 달성 자동 정지 같은 인터페이스는 생각보다 구현 난이도가 있습니다. 드랍이 랜덤이면 목표를 달성했을 때 정확히 멈춰야 하고 멈추는 시점에 스태미나가 낭비되지 않아야 하고 정산 결과가 플레이어에게 납득되게 보여야 합니다. 이런 기능은 서버와 클라이언트가 안정적으로 동기화되어야 하고 오류가 나면 플레이어 신뢰가 크게 흔들립니다. 지금은 이런 기능을 감당할 수 있는 운영 기술과 품질 관리 경험이 시장 전체에 쌓였습니다. 그래서 '목표 기반 소탕' 같은 고급 인터페이스가 표준화될 수 있었습니다.

이 세 요인이 합쳐진 결과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시간이 부족해졌고 문화적으로는 반복을 재미로 인정하지 않게 되었고 기술적으로는 반복을 시스템이 대신 처리해도 될 만큼 운영이 정밀해졌습니다. 그래서 소탕권은 '있으면 좋은 기능'에서 '없으면 불편한 기본'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동과 함께 소탕권은 티켓 판매에서 구독, 패스, 권한 판매로 옮겨갔고 인터페이스는 횟수 선택에서 목표 기반 자동 정산으로 이동했습니다. 이어서 이 흐름을 소탕권만으로 보지 않고 자동사냥이나 방치모드, 게이지 같은 다른 시간 제어 메커닉까지 포함한 '스펙트럼'으로 놓고 비교하겠습니다. 왜 수집형 게임은 소탕권이 잘 맞고 리니지라이크 MMO는 소탕권보다 다른 장치를 더 많이 쓰는지, 그리고 각 장치가 콘텐츠 소모 속도, 동접 점유, 과금 저항을 어떻게 다르게 만들었는지를 이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앞서 소탕권이 왜 '티켓'에서 '기본 기능/권한'으로 이동했는지 그리고 그 배경을 사회·문화·기술로 나눠 설명했습니다. 이제는 소탕권만 떼어놓고 보지 않고 모바일 게임이 시간을 제어하는 다른 방식들과 함께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놓고 비교하겠습니다. 목적은 간단합니다. 같은 '시간을 줄여준다'는 목표라도 메커닉이 다르면 콘텐츠 소모 속도, 동접 점유, 과금 저항이 전혀 다르게 움직입니다. 그리고 이 차이가 곧 장르별로 어떤 설계를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됩니다. 먼저 스펙트럼의 양끝을 설정하겠습니다. 한쪽 끝에는 소탕권이 있습니다. 소탕권은 전투 시간을 0으로 만들고 보상만 정산합니다. 다른 쪽 끝에는 자동사냥이나 방치모드가 있습니다. 자동사냥과 방치모드는 전투 시간을 없애지 않습니다. 다만 손을 덜 쓰게 하거나 게임을 꺼도 시간이 흐르도록 옮겨 줍니다. 둘은 같은 '편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게임이 유지되는 방식이 다릅니다. 소탕권의 특징은 콘텐츠 소모 속도를 올리기 쉽고 동접 점유를 낮추기 쉽다는 점입니다. 플레이어가 반복 파밍을 딸깍으로 끝내면 접속 시간이 짧아지고 그만큼 동접 점유가 떨어지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대신 플레이어는 피곤하지 않아서 더 오래 남을 수 있습니다. 이 구조는 인스턴스 중심의 캐릭터 수집 게임에서 특히 잘 맞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게임은 필드에 사람이 모여 있어야 재미 있는 구조가 아니라 개인의 성장 루프가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접 점유를 억지로 높일 이유가 없습니다. 반대로 '짧게 끝내도 매일 들어오게 만드는 것'이 중요해집니다. 그때 소탕권은 매우 강력합니다. 그 다음 구간에 '목표기반 소탕'이 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 목표기반 소탕은 소탕권을 더 강하게 만든 형태입니다. 단순 소탕은 시간을 없애지만 목표기반 소탕은 생각도 없앱니다. '필요량이 채워지면 자동 정지'나 '목표 달성/체력 소진까지 자동 소탕'을 발전 흐름으로 설명되는데 이것은 소탕권의 공격력을 한 단계 더 올리는 방식입니다[^중국 게임 - 일괄 소탕 기능의 진화]. 게임디자인 관점에서 보면 목표기반 소탕은 '낭비 방지'라는 선한 목적을 갖지만 동시에 게임을 '승인 버튼'에 가깝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간은 콘텐츠 소모 속도가 더 빨라지고 엔드 콘텐츠의 의존도가 더 커집니다. 즉 목표기반 소탕은 파밍을 완전히 기계화하는 대신, 도전 콘텐츠의 설계가 약하면 공허감이 급격히 커지는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이제 소탕권의 반대편으로 가보겠습니다. 리니지라이크 MMO에서 자주 보이는 방식은 '자동사냥 + 보상 배율 게이트'입니다. 여기서 대표 사례가 리니지M의 아인하사드의 축복입니다. 아인하사드의 축복은 겉으로 보면 경험치나 아데나 획득률을 올려주는 버프인데 실제로는 '버프가 0이 되었을 때 아이템 획득 제한이 걸린다'는 패널티가 붙어 논란이 되었습니다. 기사에서는 축복이 0이 되면 경험치와 아데나 획득률이 기본으로 돌아가고 그 상태에서는 거래 불가 장비만 획득할 수 있는 제한이 걸린다고 설명하며 출시 시점에는 재료 아이템조차 얻을 수 없었다가 논란 후 패치되었다고 정리합니다[^(취재) 논란의 아인하사드, 축복인가]. 이 메커닉은 소탕권처럼 시간을 없애는 게 아니라 시간을 쓰게 두되 '보상의 핵심'을 잠가서 시간을 덜 가치 있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과금 저항이 매우 높아질 수 있습니다. 특히 자동사냥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손으로 조절할 여지가 적기 때문에 '자동으로 돌리는 시간'이 보상 없이 사라지는 경험이 치명적입니다. 같은 기사에서 '0일 때 패널티는 자동 사냥을 제공하는 리니지M의 특성과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스펙트럼의 중요한 차이를 한 번 정리해야 합니다. 소탕권은 시간을 줄여주는 대신 자원 소모를 키우고 보상 배율 게이트는 시간을 유지하는 대신 보상의 질을 조절합니다. 전자는 '시간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강하고 후자는 '경제 통제'에 강합니다. 그런데 후자는 잘못 쓰면 '기본 플레이를 막았다'는 비난을 부르기 쉽습니다. 반면 전자는 잘못 쓰면 '할 게 없다'는 공허감을 부르기 쉽습니다. 어느 쪽도 공짜가 아닙니다. 둘 다 다른 종류의 위험을 가져옵니다. 자동사냥을 한 단계 더 '오프라인'으로 옮긴 것이 방치모드입니다. 오딘의 방치모드는 게임을 종료한 뒤에도 필드에서 자동 전투 상태를 유지하는 기능이고 자동 전투 중에만 시작할 수 있으며, 방치모드 플레이 가능 시간이 8시간이라고 공식 FAQ에서 설명합니다[^방치 모드는 무엇인가요?]. 이것은 소탕권과는 완전히 다른 시간 제어 방식입니다. 소탕권은 시간을 삭제합니다. 방치모드는 시간을 삭제하지 않고, 시간을 플레이어의 생활 시간대에 맞게 '이전'합니다. 특히 8시간 제한이 있다는 점은 중요합니다. 방치가 무제한이면 경제와 성장 속도가 폭주할 수 있는데 일일 상한을 둬서 과속을 막습니다. 이런 방식은 오픈월드 점유와 경제가 핵심인 MMO에서 상대적으로 자연스럽습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을 꺼도 성장한다'는 만족을 얻고 게임은 '필드 체류'라는 MMO의 기본 전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대신 이 방식은 사냥터 점유나 PK 리스크 같은 오픈월드 마찰을 완전히 없애지는 않습니다. 그 마찰이 곧 리니지라이크 장르의 콘텐츠이기도 합니다.

이제 이 스펙트럼을 '콘텐츠 소모 속도, 동접 점유, 과금 저항'이라는 세 가지 관점으로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소탕권은 콘텐츠 소모 속도를 빠르게 만들고 동접 점유를 낮게 만들기 쉽지만 과금 저항은 설계에 따라 갈립니다. 기본 제공을 충분히 하면 거부감이 낮고 소탕권을 유료로만 팔면 거부감이 급격히 올라갑니다. 목표기반 소탕은 소모 속도를 더 빠르게 만들고 동접 점유를 더 낮게 만들기 쉽습니다. 반면 자동사냥은 소모 속도는 중간이지만 동접 점유를 높게 만들기 쉽고 게이지형 통제는 경제를 안정시키는 대신 과금 저항을 크게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방치모드는 동접 점유를 낮추면서도 성장의 연속성을 주고 일일 상한으로 소모 속도를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장르별 결론이 나옵니다. 캐릭터 수집 게임은 '인스턴스 기반 반복 파밍'이 많고, 그 반복은 재미라기보다 성장 비용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삭제하는 소탕권이 잘 맞습니다. 반대로 리니지라이크 MMO는 '필드 점유와 경제, 쟁'이 중심이라서 소탕권으로 시간을 삭제해버리면 월드가 비고 콘텐츠가 약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장르는 소탕권보다 자동사냥, 방치모드, 게이지 같은 방식으로 시간을 제어하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물론 MMO에도 일일 던전 같은 인스턴스 반복이 있기 때문에 그 구간에는 소탕권 유사 기능을 제한적으로 붙일 수 있지만 필드 핵심 루프까지 소탕으로 덮어버리면 장르 정체성이 흔들립니다. 이제 다시 캐릭터 수집 게임으로 돌아와 '같은 수집형 게임이라도 소탕권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시스템이 어떻게 달라지고 플레이어 경험이 어떻게 달라지고 매출 구조가 어떻게 달라질지까지 연결해보겠습니다.

앞에서 소탕권을 시간 제어 메커닉 스펙트럼 안에 놓고 소탕권과 자동사냥, 방치모드, 게이지가 서로 어떤 장단점을 갖는지 봤습니다. 이제 다시 캐릭터 수집 게임으로 돌아와 같은 장르 안에서 '소탕권이 있는 게임'과 '소탕권이 없는 게임'이 실제로 어떤 시스템 차이를 만들고 그 차이가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정리하겠습니다. 여기서는 단순히 ‘편하다/불편하다’가 아니라 설계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고, 플레이어 경험과 매출 구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연결해 보겠습니다. 먼저 시스템 구조의 차이부터 보겠습니다. 소탕권이 없는 수집형 게임은 반복 콘텐츠 자체가 플레이 시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시스템은 반복을 전제로 구성됩니다. 플레이어는 요일던전 같은 데일리 던전을 매일 직접 돌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시간과 조작이 들어갑니다. 이 구조는 자연스럽게 '자동전투'를 강하게 요구합니다. 모바일 터치 조작은 물리적 피드백이 약해 눈으로 확인하며 조작해야 해서 피로가 커지고 그래서 파밍 같은 반복을 간략화하기 위해 자동전투가 자리 잡았습니다[^자동전투]. 소탕권이 없으면 그 빈자리를 자동전투가 메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자동전투는 시간을 줄이지는 않습니다. 손만 덜 쓸 뿐입니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시간은 그대로인데 손만 덜 쓰는 숙제'를 매일 수행하게 됩니다. 이때 바쁜 플레이어는 결국 숙제량에 밀립니다. 반대로 소탕권이 있는 수집형 게임은 반복 콘텐츠를 '정산 단위'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직접 클리어를 통해 조건을 달성한 뒤 이후에는 소탕으로 처리합니다. 이 구조는 시스템의 무게 중심을 전투에서 '횟수 제한, 스태미나, 소탕 조건' 같은 규칙으로 옮깁니다. 예를 들어 세븐나이츠는 2017년 업데이트에서 요일던전과 황금의 방 같은 매일 이용하는 콘텐츠를 전투 없이 ‘소탕’만으로 진행할 수 있게 개선했습니다[^넷마블 ‘세븐나이츠’, 다크나이츠 ‘플라튼’ 업데이트 실시]. '매번 클리어하기 골치 아팠는데 원터치로 손쉽게 클리어가 가능해져 시간 절약이 되었다'는 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세븐나이츠 편의성 개편! 소탕기능 추가!].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소탕권이 단지 ‘있다’가 아니라 '매일 하는 반복 콘텐츠에 먼저 붙는다'는 점입니다. 소탕권을 어디에 붙일지 결정하는 것이 곧 숙제 구조를 재설계하는 일입니다.

소탕권이 없는 게임에서 플레이어 경험의 핵심은 '반복을 견디는 능력'입니다. 시간을 내는 사람이 강해지고 시간이 없는 사람은 뒤처집니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게임이 재미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뒤처지기 싫어서 하는 상태가 되기 쉽습니다. 이때 게임은 ‘접속’은 유지될 수 있지만 마음은 빠져나가기 시작합니다. 반대로 소탕권이 있는 게임에서 플레이어 경험의 핵심은 '반복이 아닌 선택'으로 이동합니다. 반복은 빠르게 끝나고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할지가 경험의 중심이 됩니다. 그래서 같은 10분이라도 ‘숙제를 끝낸 뒤 내 콘텐츠를 하는 10분’이 됩니다. 이 차이는 플레이어가 게임을 평가하는 말에서도 드러납니다. 가디언 테일즈 문서는 계정 레벨이 올라 소탕 기능이 해금되면 반복 콘텐츠를 터치 한 번에 끝낼 수 있어 피로도가 낮다고 평가하면서도 숙제 자체가 많아져 자동전투를 간단하게 하려 만든 기능일 뿐이고 수동으로 해야 하는 다른 콘텐츠에서 피로가 남는다는 점도 함께 말합니다[^가디언 테일즈]. 이 문장이 중요한 이유는 소탕권이 '모든 피로를 해결하는 만능키'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소탕권은 반복 파밍의 피로는 줄이지만 게임 전체 숙제량이 과하면 플레이어는 다른 구간에서 다시 피로를 느낍니다. 즉, 소탕권은 숙제량을 줄이는 도구가 아니라 숙제 처리 방식을 바꾸는 도구입니다.

소탕권이 없는 게임은 매출이 대체로 가챠나 성장 재료 패키지에 쏠리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성장을 크게 좌우하니 돈으로 시간을 직접 줄일 방법이 적고 결국 돈은 전투력이나 재료 자체를 사는 데 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구조는 흔히 '고과금은 강하지만 중과금이 갈 곳이 없다'는 문제를 만들기도 합니다. 반대로 소탕권이 있는 게임은 매출 포인트가 '시간 절약'과 '반복 확대'로 넓어집니다. 플레이어는 캐릭터를 뽑는 것 외에도 스태미나 충전이나 입장 횟수 추가, 월정액, 패스 같은 상품에서 ‘합당한 소비’의 이유를 찾기 쉬워집니다. 세븐나이츠 사례에서 회사가 '불필요한 플레이 시간을 줄이고 더 큰 보상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개선'했다고 말하는데 이런 개선은 플레이어 만족을 높이면서도 동시에 플레이어의 자원 소비 속도를 올려 BM이 끼어들 공간을 만들기 쉽습니다. 즉 소탕권은 매출을 '뽑기 한 가지'에만 의존하지 않게 만드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하지만 소탕권이 매출에 항상 플러스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소탕권이 강하면 콘텐츠 소모 속도가 올라가고 엔드 콘텐츠가 약하면 플레이어는 빠르게 지루해집니다. 이때 매출은 초반에 잘 나오다가 급격히 흔들릴 수 있습니다. 반대로 소탕권이 없으면 신규 유입이 줄고 남는 플레이어는 시간이 많은 코어 플레이어로 좁혀지면서 시장이 작아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탕권의 도입 여부는 '플레이어를 어떤 형태로 오래 붙잡을 것인가'라는 사업 전략과 함께 결정해야 합니다. 편의성으로 넓게 모을 것인지 장시간 플레이를 요구하는 코어 모델로 갈 것인지가 먼저 정해져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비교 포인트는 '해금 방식'입니다. 소탕권이 있는 게임은 소탕을 처음부터 주기도 하고, 특정 레벨이나 조건에서 열어주기도 합니다. 가디언 테일즈는 계정 레벨이 올라가면 소탕이 해금된다고 설명되어 있는데 이런 방식은 초반에 전투를 직접 경험하게 해 게임을 이해시키고, 중반부터 반복을 줄여 이탈을 막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소탕을 너무 늦게 해금하면, 플레이어는 해금 전에 지쳐서 떠날 수 있습니다. 즉 해금 시점도 시스템 설계의 일부입니다.

소탕권이 없는 수집형 게임은 반복이 플레이의 중심이 되고 자동전투 같은 방식으로 그 반복을 ‘견디게’ 만들며 성장의 격차가 시간에 의해 크게 벌어지기 쉽습니다. 소탕권이 있는 수집형 게임은 반복을 정산으로 바꾸고, 플레이어 경험의 중심을 선택과 도전으로 옮기며 매출 포인트를 시간 절약과 반복 확대까지 넓힐 수 있습니다. 다만 소탕권이 강해질수록 콘텐츠 소모 속도가 올라가므로 엔드 콘텐츠의 설계가 약하면 공허감이 빨리 오고 그 순간 매출도 같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결국 소탕권은 '편의 기능'이 아니라 '루프 설계의 스위치'입니다. 다음 장에서는 이런 비교를 바탕으로, 한국 시장에서 자주 터지는 실패 패턴을 ‘증상, 원인, 처방’ 형태로 정리하겠습니다. 소탕 과다로 인한 공허감, 유료 소탕 강요로 인한 반발, 소탕 범위가 잘못되어 PvP나 경제가 망가지는 문제, 그리고 정산 인터페이스가 불신을 만드는 문제까지, 실제로 반복되는 사고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소탕권이 있는 수집형 게임과 없는 수집형 게임이 시스템과 인터페이스, 매출에서 어떻게 갈라지는지 살펴봤습니다. 이제는 '소탕권을 넣었는데도 망하는 경우'를 정리하겠습니다. 이 장은 게임디자이너에게 가장 실전적인 부분일 수 있습니다. 소탕권은 표준 기능이지만 표준 기능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안전해지지는 않습니다. 한국 시장에서는 특히 비슷한 실패가 반복됩니다. 그 실패는 거의 항상 같은 증상으로 시작하고 같은 설계 원인으로 연결되며 어느 정도 정형화된 처방이 있습니다. 첫 번째 실패 패턴은 소탕을 강제로 만들 때 터집니다. 증상은 간단합니다. 플레이어가 '기본 플레이가 막혔다'고 느낍니다. 이 문제는 소탕권 그 자체에서 생기기보다는 소탕권과 같은 계열의 '시간 제어'를 과금이나 게이지로 강제로 묶을 때 잘 생깁니다. 리니지M의 아인하사드의 축복 논란은 이 패턴의 대표 사례로 자주 인용됩니다. 아인하사드의 축복 수치가 0일 때 재료 아이템도 획득할 수 없다는 점이 초기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고 이후 업데이트로 축복이 0이어도 재료를 획득할 수 있도록 변경되었다는 글이 커뮤니티에 남아 있습니다[^아인하사드의 축복이 없으면 재료 획득 불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버프가 있으면 더 잘 번다'가 아니라 '버프가 없으면 기본 재료조차 못 번다'는 구조가 플레이어에게 ‘플레이 금지’로 읽혔다는 점입니다. 처방은 원칙 하나로 정리됩니다. 어떤 형태의 편의든 그것이 없을 때 기본 진행이 불가능해지면 안 됩니다. 소탕권을 설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소탕권이 없어서 느린 것은 괜찮지만, 소탕권이 없어서 성장 재료가 0이 되는 순간 플레이어는 게임이 자신을 막는다고 느낍니다.

두 번째 실패 패턴은 소탕을 너무 많이 풀어서 공허감이 오는 경우입니다. 증상은 '할 게 없다'입니다. 이것은 콘텐츠가 적어서만 생기지 않습니다. 소탕이 강하면 반복 구간이 사라지고 플레이어는 하루 루틴을 3분 만에 끝냅니다. 그러면 남는 시간에 할 엔드 콘텐츠가 약할 때 문제가 터집니다. 이 패턴은 특히 목표기반 소탕이나 일괄 소탕 같은 고급 소탕 인터페이스가 들어가면서 더 쉽게 발생합니다. 블루아카이브는 임무 스테이지에 ‘일괄 소탕’ 시스템을 추가하면서 원하는 아이템을 ‘대상’으로 등록하면 그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스테이지들이 목록으로 모이고 그 목록에서 스테이지를 선택해 일괄 소탕을 진행할 수 있다고 패치 노트로 설명하고 있습니다[^블루 아카이브: (업데이트) 패치 노트]. 이 기능은 플레이어 입장에서 매우 편하지만 게임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스태미나가 더 빨리 타고 성장이 더 빨라지고 남는 시간이 더 크게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처방은 소탕을 강화할수록 엔드 콘텐츠의 시간을 같이 설계하라는 것입니다. 파밍을 줄인 만큼 도전 콘텐츠의 폭과 깊이가 늘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탕이 '편하다'에서 '텅 빈다'로 바뀝니다. 세 번째 실패 패턴은 소탕권의 수급과 사용감이 어긋날 때 생깁니다. 증상은 초반에는 '티켓이 부족해서 불편하다'이고, 후반에는 '티켓이 쌓여서 의미가 없다'입니다. 프리코네 커뮤니티 글에서는 초반에는 스킵 티켓이 조금 부족한 느낌인데 시간이 지나면 스킵 티켓이 수천 장으로 불어난다는 식으로 이야기합니다[^스킵티켓 얻는 방법좀 알려주셈요]. 이런 경험은 수집형 게임에서 흔합니다. 초반에는 스태미나도 부족하고 가능한 스테이지도 적고 스킵 티켓도 부족해서 '소탕을 쓰고 싶은데 못 쓰는' 답답함이 생깁니다. 후반에는 스태미나 충전을 많이 하지 않는 한 스킵 티켓이 남아돌고 소탕권이 더 이상 매력적인 자원이 아닙니다. 처방은 소탕권을 ‘소비재’로 팔려 하지 말고 소탕 자체를 기본 기능으로 만들거나 티켓이 있더라도 초반에 충분히 주고 후반에는 자연스레 무의미해지도록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프리코네 관련 글에서 스킵 티켓을 돈 주고 파는 것은 수익성이 낮고 오히려 스킵 티켓을 퍼주는 것이 전략적이라고 요약하는 주장도 같은 맥락입니다[^그 문어는 왜 스킵티켓을 돈 주고 사야한다고 생각했을까?_araboza]. 결국 수집형 게임에서 소탕권은 단독 상품이 아니라 다른 재화 소비를 촉진하는 촉매로 두는 편이 안정적입니다.

네 번째 실패 패턴은 소탕의 범위를 잘못 잡는 경우입니다. 증상은 '게임의 재미가 사라졌다' 혹은 '경쟁이 의미가 없어졌다'입니다. 소탕은 반복 파밍에서 가장 효과가 큽니다. 그런데 이 기능을 레이드나 PvP 같은 ‘의사결정과 실력이 개입되는 콘텐츠’까지 확대하면, 콘텐츠의 본질이 깨집니다. 어떤 게임은 '레이드는 한 번 클리어했으니 다음부터는 소탕' 같은 방식을 넣기도 하는데 이때 레이드가 갖고 있던 협동, 공략, 손맛이 빠지고, 남는 것은 보상 정산뿐이 됩니다. 게임디자인 관점으로는 '편하게 해줬다'지만 플레이어 경험에서는 '핵심 재미를 없앴다'로 읽히기 쉽습니다. 처방은 단순합니다. 소탕은 반복 파밍에서만 적극적으로 쓰고 엔드 콘텐츠는 소탕을 금지하거나 매우 제한적으로만 허용해야 합니다. 블루아카이브가 임무의 일괄 소탕을 강화하면서도 소탕이 모든 콘텐츠에 적용되는 게 아니라 퀘스트 계열에서 중심적으로 쓰인다는 식으로 안내되는 업데이트 공지도 이런 분리를 전제로 합니다[^(블루 아카이브) 8/5(화) 업데이트 상세 안내]. 다섯 번째 실패 패턴은 정산이 불신을 만드는 경우입니다. 증상은 '진짜로 드랍이 맞나?'입니다. 소탕은 전투 과정을 생략합니다. 그러면 플레이어는 결과를 믿을 근거가 줄어듭니다. 특히 랜덤 드랍이 많은 게임에서는 소탕 정산이 불투명하면 플레이어가 쉽게 의심합니다. 이 문제는 ‘확률’의 문제가 아니라 ‘연출’과 ‘기록’의 문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처방은 소탕 정산을 최대한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무엇을 몇 회 돌았고, 어떤 아이템이 몇 개 나왔으며 어떤 이유로 멈췄는지까지 한눈에 보이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투명성이 쌓이면 소탕은 신뢰 기반의 기본 기능이 됩니다. 반대로 불신이 쌓이면 소탕은 편의가 아니라 '조작 의심을 만드는 버튼'이 됩니다. 여섯 번째 실패 패턴은 소탕이 숙제량을 숨기는 데만 쓰일 때 생깁니다. 증상은 '편해졌는데 더 피곤하다'입니다. 소탕을 넣으면 데일리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게임디자이너가 그 시간 절약을 근거로 숙제 목록을 더 늘려버리면 플레이어는 '숙제가 늘었는데 소탕으로 가려놨다'고 느낍니다. 가디언 테일즈 평가가 소탕 기능으로 피로도가 낮아졌다고 하면서도 그것이 '숙제를 간단하게 하려고 만든 기능일 뿐'이라는 식으로 언급하는 것도 이 함정과 닿아 있습니다. 처방은 소탕으로 절약된 시간을 '새 숙제'로 채우지 말고 플레이어가 자발적으로 즐길 수 있는 선택형 콘텐츠로 채우는 것입니다. 소탕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더 오래 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이지만, 동시에 플레이어가 '원할 때만 더 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이기도 합니다. 그 균형이 무너지면 소탕은 도구가 아니라 가면이 됩니다.

앞서 소탕권이 실패하는 전형적인 패턴을 정리했습니다. 이제는 다시 게임디자이너의 자리로 돌아가서 가장 중요한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소탕권이 필요하냐'는 질문은 사실 '내 게임이 어떤 시간을 요구하는 게임이냐'는 질문과 같습니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플레이어가 내 게임을 어떤 방식으로 생활 속에 끼워 넣게 만들 것이냐'라는 사업 전략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실제로 판단할 수 있도록 실행 가능한 기준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먼저 소탕권이 거의 필수에 가까운 경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게임이 캐릭터 수집 게임이고 성장의 중심이 반복 파밍이며 파밍을 하지 않으면 다음 콘텐츠로 갈 수 없는 구조라면 소탕권은 사실상 필수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구조는 플레이어가 '지루하지만 해야 하는 구간'을 매일 반복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 시장에서는 이런 반복이 길어질수록 플레이어는 자동전투로 버티다가도 결국 피로해집니다. 모바일 환경에서 반복을 간략화하려고 자동전투가 자리 잡았지만 자동전투는 결국 반복을 전제로 하는 설계입니다. 반복이 전제인 게임에 소탕권이 들어오면 플레이어의 피로를 줄이면서도 성장 루프는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반복이 성장의 절반 이상'인 수집형 게임은 소탕권을 빼고 설계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렵습니다. 반대로 소탕권이 꼭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게임의 핵심 재미가 '전투 조작'이나 '스테이지 공략'이고, 반복 파밍이 상대적으로 적거나 반복이 있더라도 한 번 한 번이 여전히 재미있는 게임이라면 소탕권은 필수가 아닙니다. 원신이 대표적인 비교 대상으로 자주 거론됩니다. 원신은 ‘스킵’이나 ‘소탕’ 같은 기능이 거의 없다는 점이 오래된 불만으로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원신 커뮤니티에서는 도메인이나 재료 파밍이 반복인데도 매번 텔레포트와 이동, 전투를 반복해야 해서 피곤하다는 불만이 꾸준히 나옵니다[^I would be very happy if more gachas had sweeps]. 그런데도 원신은 소탕권 없이도 유지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원신은 반복 파밍이 있더라도 오픈월드 탐험과 수동 전투 자체가 ‘게임의 본체’이고, 반복 구간이 상대적으로 분산되어 있으며 소탕으로 시간을 지워버리면 오히려 게임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게임디자이너는 '우리 게임은 반복 파밍이 본체인가 아니면 플레이가 본체인가'를 먼저 정해야 합니다.

이제 의사결정 질문을 더 구체적인 형태로 바꿔보겠습니다. 첫 질문은 '데일리 루틴이 실제로 얼마나 길어지는가'입니다. 이때 게임디자이너는 출시 후를 기준으로 봐야 합니다. 출시 직후에는 콘텐츠가 적어서 데일리가 짧아 보일 수 있지만, 3개월만 지나면 이벤트, 주간 콘텐츠, 파밍 던전이 늘고, 데일리 루틴은 거의 항상 길어집니다. 그래서 지금 설계된 데일리 루틴이 ‘현재는 10분’이라도 운영 3개월 뒤 20분이 될 가능성이 높다면 소탕권을 전제로 설계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두 번째 질문은 '반복이 플레이어에게 어떤 감정으로 남는가'입니다. 같은 반복이라도 플레이어가 ‘조작이 재미있어서 반복’하는 경우가 있고, ‘보상을 위해 억지로 반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소탕권은 후자에서 효과가 큽니다. 전자에서 소탕권을 넣으면 플레이어는 '재미 있는 부분까지 날려버렸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투가 재미인지 보상이 재미인지 분리해서 봐야 합니다. 이 구분이 애매하면, 소탕을 전면 도입하기보다 '한 번은 직접 플레이, 그 다음부터는 소탕' 같은 조건부 방식이 더 안전합니다. 프리코네나 블루아카이브가 3성 클리어를 소탕 조건으로 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미 클리어로 ‘이해’와 ‘숙련’을 증명했으니 그 이후에는 반복을 정산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프리코네 역시 퀘스트를 별 3개로 클리어했을 때 스킵 티켓을 사용할 수 있다고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 방식은 ‘재미’와 ‘반복’을 분리하는 가장 흔한 답입니다. 세 번째 질문은 '복귀 플레이어를 어떻게 받을 것인가'입니다. 수집형 게임은 시간이 쌓이는 구조라서 복귀 플레이어는 빠르게 따라잡지 못하면 다시 떠납니다. 소탕권은 복귀 플레이어의 따라잡기 루틴을 단축하는 데 매우 유용합니다. 복귀 플레이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할 게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와 ‘할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입니다. 이때 목표기반 소탕이나 일괄 소탕 같은 기능은 복귀 플레이어의 피로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블루아카이브의 일괄 소탕은 아이템을 기준으로 스테이지를 묶어 보여주는 방식이라, 복귀 플레이어가 '지금 나는 뭘 파밍해야 하지?'라는 질문에 바로 답을 주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런 기능은 단순히 시간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복귀 플레이어의 ‘생각 비용’을 줄여줍니다. 네 번째 질문은 '우리 게임은 동접 점유가 중요한가'입니다. 수집형 게임은 대체로 동접 점유보다 잔존과 과금 전환이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어떤 게임은 길드 콘텐츠나 협동 레이드가 매우 중요해서 사람들이 오래 접속해 있는 것이 곧 콘텐츠의 활력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게임은 소탕권을 넣더라도 반복 구간만 줄이고, 길드 레이드나 협동 콘텐츠는 소탕을 제한해야 합니다. 앞 장에서 말했듯 소탕 범위를 잘못 잡으면 핵심 재미가 깨지기 때문입니다. 이 원칙은 여기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여기까지를 바탕으로 실제 결론을 내리는 방식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게임이 '반복 파밍 중심의 수집형 RPG'라면 소탕권은 기본값으로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게임이 '수동 플레이가 본체인 수집형 RPG'라면 소탕권을 전면 도입하기보다 반복 구간만 제한적으로 소탕화하거나 보상 배율 같은 다른 방식으로 반복 부담을 줄이는 쪽을 먼저 검토해야 합니다. 특히 소탕권이 없는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불만을 말할 때 그 불만이 '플레이가 재미없다'인지 '반복이 길다'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반복이 길다는 문제는 소탕권이 해결하지만 플레이가 재미없다는 문제는 소탕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탕권으로 플레이 시간을 줄이면 ‘재미 없는 부분’을 감추는 데는 성공할 수 있어도 결국 플레이어가 남는 시간을 어디에 써야 할지 못 찾으면 게임은 공허해집니다. 이어서 '도입하기로 결정했다면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로 넘어가겠습니다. 소탕권의 기본 제공량을 어떻게 잡을지, 조건은 어떻게 둘지, 티켓형과 목표형 중 어떤 인터페이스를 선택할지, 소탕을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디서 끊을지, 그리고 어떤 설계를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지 등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앞서 소탕권 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정리했습니다. 이제 '도입하기로 결정했다면' 무엇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로 넘어가겠습니다. 이제부터는 기능 설명이 아니라 실제 문서로 옮길 수 있는 설계 레시피에 가깝습니다. 다만 앞서 말한 내용을 반복하지는 않겠습니다. 여기서는 실수를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설계 포인트만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