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강제 집중 시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읽은 지 몇 년이 지났는데 이미 책을 읽을 즈음에도 한 가지 일에 온전히 집중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사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과연 한 가지 일에 온전히 집중한 경험이 삶 전체를 통틀어 얼마나 될 지 생각해 보면 집중력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일이 최근에 일어난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학교 다니던 시대에 더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았거나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덜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스스로를 인정했다면 이후 다른 삶을 살았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시작부터 사회가 요구하는 집중력을 내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아주 늦게 알게 됐고 이런 상태에도 불구하고 집중력을 유지하거나 충분한 시간 동안 유지되지 않는 집중력의 특징을 인정한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데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제 현대에는 시작부터 집중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후천적으로 집중력이 부족한 상태를 겪는 것 같습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여러 현대적인 미디어에 노출됨에 따라 집중력을 잃고 깊이 생각하는 능력과 습관을 잃게 된다는 내용을 그 당시에도 힘겹게 읽으며 이런 머리와 이런 집중력으로 이 험한 세상을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걱정했지만 이제는 그런 사람이 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 이전만큼 걱정스럽지는 않습니다.
어떤 일에 집중하는 것 이외에도 사실 현대에는 한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사라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일 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면 문서를 쓰고 있다 하더라도 항상 문서를 작성하는 일 한 가지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문서를 작성하다가 누군가 슬랙으로 말을 걸면 거기 답해줘야 하고 답하는 과정에서 다른 문서를 찾아보거나 빌드의 동작을 확인해야 하면 새 빌드를 받아 실행해 상황을 확인하곤 하는데 이런 대화를 몇 개 해결하고 나서 다시 문서로 돌아와 보면 이전에 뭘 하던 중이었는지, 무슨 생각을 하던 중이었는지 완전히 놓치곤 합니다.
일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이제는 너무 당연하게 그 일에만 집중하지 않게 된 일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일이 있습니다. 책은 어째 책을 읽는데 집중하고만 있으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냥 단말기를 켜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 되는데 괜히 편한 의자에 앉아야 할 것 같고 조명도 좀 조절해야 할 것 같고 또 폰도 멀리 치워 놔야 할 것 같습니다. 또 그냥 책을 읽기 시작하면 좀 심심하니 커피도 좀 준비하고 커피와 같이 먹을 간식도 좀 가까이에 두기 시작하면 이미 책을 읽으려던 목적은 희미해지고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는 멋진 나를 연출하는데 집중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심지어 이런 걸 어디 사진 찍어 올릴 것도 아닌데도요.
음악은 좀 더 심한데 한때는 음악을 들으며 음악에 집중하고 음악을 구성하는 악기 하나하나의 소리나 의도한 음악이 아닌 배경 소음, 악보 넘기는 소리, 저 멀리 들리는 관중들의 함성, 마이크 붙잡는 소리 따위를 듣고 또 가사를 듣고 노래를 부르고 흥얼거리는 등 음악에 오롯이 집중하곤 했습니다. 위에서 한 가지 일에 사회가 요구하는 만큼 충분히 집중하기 힘들어 어려운 삶을 살았음을 생각하면 음악에는 나름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 음악은 음악에만 온전히 집중하기 위한 매체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음악은 항상 다른 행동을 할 때 그 일이 청각을 요구하는 일이 아니라면 그럴 때 끼어들어 청각을 채우는 역할을 하기 위한 매체입니다. 음악에 집중하기 보다는 길을 걸으며 음악을 듣거나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음악을 듣거나 인도어 사이클을 타며 듣거나 쉬고 있을 때 음악을 듣는 등 음악은 항상 다른 행동을 할 때 함께 할 뿐 음악 자체를 위한 시간은 이제 완전히 없어진 것 같습니다.
한동안 수도권을 전혀 벗어나지 않다가 기차를 타고 좀 멀리 이동할 일이 있었는데 기차 안에서 뭘 해야 할 지 미리 생각해봤습니다. 어차피 기차는 빠르고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안 하고 멍하니 있거나 잠깐 잘 생각을 해보니 썩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고민하다가 책을 들고 갔는데 그 때 읽은 책이 바로 죽음의 청기사입니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자기 자리를 찾아, 또 자동판매기를 찾아 통로를 오가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줄어들고 창밖의 풍경이 조금씩 빨라질 무렵 소음을 줄이려고 귀에 쓰고 있는 헤드폰 너머의 소리가 그리 신경 쓰이지 않는 수준으로 줄어들고 오랜만에 다른 방해 없이 읽고 있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집이었다면, 카페였다면, 도서관이었다면 분명 책에 온전히 집중하는 대신 커피라도 하나 갖다 놓으려 하고 고개를 들어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뭐 먹을 것 없나 냉장고를 열어보기도 하고 또 키오스크 앞에서 바코드 쿠폰을 인식시키느라 폰을 들고 몸을 뱀장어처럼 이리 저리 움직이는 사람을 바라보기도 했겠지만 기차 안에서는 그런 일 중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냥 자리에 앉아 책을 읽다가 목이 아프면 잠깐 고개를 들어 흘러가는 바깥 풍경을 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여 책을 읽기를 반복하며 생각보다 훨씬 더 책에 집중할 수 있었고 책을 더 빨리 읽을 수 있었으며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책을 끝까지 읽고 제가 뭘 읽은 건지 생각해볼 여유까지 있었습니다.
정말 간만에이렇게 오롯이 뭔가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고 기분이 좋아져 기차에서 내렸는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강제로 환경을 통제해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환경이 일상 생활에서는 거의 탈 일이 없는 기차라는 점은 좀 아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또 이렇게 집중해 봐야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작부터 사회가 요구하는 집중력을 충분히 가지지는 못했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집중을 할 수도 있고 그게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으며 또 그 상황을 의도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은 이 상황에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편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집중해야만 하는 상황에 어떻게 집중력을 유지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