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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드가 한창이던 지난 2020년 3월 경 처음으로 원격근무를 검토한다는 소문을 들을 때만 해도 정말로 원격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노동환경이 썩어빠진 이 업계에서 그런 걸 시도할 거란 생각도 안 들었고 원격으로 개발환경을 구성할 수 있을지도 확신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2022년 말이 됐고 이 업계에서도 원격 근무는 꽤 흔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게임 클라이언트나 언리얼 에디터를 어떻게 돌릴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mstsc
만으로도 어지간한 작업을 할 수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이걸로 부족한 사람들은 parsec
을 사용했습니다. 저는 mstsc
로 모든 작업을 할 수 있는 쪽이었는데 15프레임만 나와 주면 게임 클라이언트 여러 개를 띄워야 하는 멀티플레이 테스트도 별 무리가 없었습니다.
원격 회의는 당시 회사에서 웹캠을 사줬습니다. 저는 그 모델이 마음에 안 들어서 제가 구매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화상보다는 음성만으로 회의를 하는데 더 익숙해졌습니다. 화상을 포함할 때 참여자들 각각으로부터 느껴지는 묘한 긴장감이 귀찮았습니다. 나보다 높은 사람이 화상을 요구하는 회의는 어쩔 수 없었지만 내가 높은 사람일 때는 음성만으로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원격 회의를 많이 했지만 여전히 회의 시작하기 전에 환경을 준비하는 일은 꽤 귀찮습니다. 열린 창문을 닫고 방문을 닫고 또 선풍기를 꺼야 했습니다. 안 그러면 원하지 않는 소음이 섞여 들어가 대화를 방해했습니다. 웹캠을 설정하거나 마이크나 스피커가 올바르게 설정되어 있는지도 확인해야 했습니다. 또 헤드셋을 착용해야 하는 환경도 있었는데 몹시 귀찮았습니다. 이런 고민을 하다가 문득 코비드 이전 시대에 회사에서 컨퍼런스 콜을 하던 장비를 떠올렸습니다. 그냥 스피커폰으로 대화할 수 있으면 분명 편할 것 같습니다.
스피커폰 장비를 찾다가 로지 독이라는 제품을 선택했습니다. 스피커폰이 메인이지만 뒷면에는 USB-C 기반의 도킹스테이션이 포함된 제품입니다. 광고한 대로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던 선을 상당히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랩탑 환경이었다면 더 극단적으로 선을 정리할 수 있었겠지만 데스크탑에 물려 놓아 선 정리 효과는 제한적이었습니다.
스피커폰은 훌륭하게 동작합니다. 창문이 열려 있어 지나가는 차량 소음이 들리거나 선풍기가 켜져 있어도 아무 상관 없습니다. 여러 번 실험해본 결과 이런 소리는 아예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스피커폰 바로 앞에 있는 키보드를 요란하게 두드리는 소리도 거의 전달되지 않습니다. 이전에는 회의 중 타이핑 하는 소리가 꽤 크게 섞인다는 것을 알고 있어 다른 블루투스 키보드를 사용하거나 살살 타이핑 해야 해서 상당히 불편했는데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음악을 켜고 있어도 음악 소리가 내 목소리에 섞이지 않습니다. 스피커폰 장비에 당연히 기대하는 동작이지만 실제로 해보면 굉장히 편리합니다. 내가 유튜브 비디오를 보고 있거나 음악을 듣고 있더라도 회의가 시작될 때 내가 방해 받지 않는 이상 이들을 끌 필요가 없습니다. 이 소리는 나에게만 들립니다.
다만 이 장비가 내 목소리만을 잘 전달하는 원리를 이해할 필요는 있습니다. 이 제품은 사람 목소리를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선풍기 소리, 창밖에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 바로 앞에서 타이핑하는 키보드 소리가 섞이지 않는 이유는 사람 목소리에 해당하는 주파수 대역을 제외한 나머지를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사람 목소리에 해당하는 주파수 대력을 전달하지만 이렇게 잘려 나간 대역에도 내 목소리의 일부가 들어 있습니다. 때문에 이 제품을 통해 들은 내 목소리는 마치 음질이 좋아진 VoIP 내선전화를 통해 듣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도킹스테이션은 광고대로 잘 동작합니다. 단 데스크탑 환경이라 모니터를 이 제품에 연결하지는 않았습니다. 컴퓨터에 연결되는 USB-C 포트가 충전포트여서 여기 랩탑을 물리면 좋을 것 같지만 아쉽게도 여기에 데스크탑을 물려 사용하고 있습니다. USB-A, USB-C 포트가 여러 개 있어 간단한 장비를 물리면 편리합니다. 책상 위에 작은 스캐너, 외장하드 따위를 짧은 선으로 간결하게 연결할 수 있었습니다.
캘린더를 연동하면 캘린더 일정에서 인식 가능한 원격 회의 주소를 발견해 회의 참여 버튼을 눌러 즉시 해당 원격회의 앱을 실행할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편리하고 또 실제로 그렇게 동작하기도 하지만 묘하게 불안하고 불편하다고 느꼈습니다. 회의 시작 전에 직접 회의 앱을 실행해 설정을 해야 마음이 놓이는 타입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결국 기계의 회의 참여 버튼은 사용하지 않게 됐습니다.
광고대로 동작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마이크와 웹캠을 즉시 뮤트하는 하드웨어 버튼이 있는데 편리하지만 위험합니다. 처음에는 이 버튼이 당연히 하드웨어 버튼일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마이크를 뮤트하면 기계 자체의 마이크가 꺼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소프트웨어 버튼이었습니다. 이 기계가 인식할 수 있는 원격회의 앱의 뮤트 기능을 켜는 역할을 합니다. 가령 줌을 실행한 상태에서 마이크를 뮤트하면 줌 앱을 통해 마이크가 뮤트됩니다. 하지만 슬랙 허들처럼 지원하지 않는 앱에서 마이크를 뮤트하면 기계에는 뮤트 된 것처럼 빨간 불이 들어오지만 실제로는 뮤트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굉장히 위험하다고 느꼈고 사용하지 않게 됐습니다. 웹캠 뮤트 버튼도 똑같은데 그나마 웹캠은 즉시 피드백이 오니 상대적으로 덜 위험합니다.
기계에 달린 볼륨 키는 동작하기는 하지만 피드백이 전혀 없어 답답합니다. 볼륨을 조절해도 이게 키가 눌린 건지 안 눌린 건지 소리를 들어 구분하기 전에는 알 수 없습니다. 느낌 상 중간 정도 볼륨이라고 생각되는 위치로 설정한 다음에는 아예 손 대지 않고 있습니다.
스피커폰으로써 잘 동작합니다. 그런데 스피커폰을 구입한다면 훨씬 낮은 가격대 제품이 분명 있을 겁니다. 또한 USB-C 도킹스테이션이 필요하면 더 낮은 가격대 제품이 있습니다. 이 둘을 합친 경쟁 제품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둘을 따로 구입하는 것보다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합니다. 대체로 잘 동작하지만 하드웨어 버튼들은 형편없습니다. 하드웨어 뮤트 버튼은 심각한 실수를 일으킬 위험이 있고 볼륨 버튼은 피드백이 없어 동작 여부를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회의 참여 버튼은 이 버튼을 편안하게 느기는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유용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