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조금 더 예쁘게 하면 어땠을까?

여러 게임디자이너들이 주니어 시절에 들은 무서운 말들은 결국 우리가 성장하게 해 주었지만 한편 그렇게까지 무섭게 말하지 않을 수 있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말을 조금 더 예쁘게 하면 어땠을까?

이번 주 글에 포함된 게임디자인의 분업이 만들어낸 비 존중 이야기를 한 김에 저 날 모인 사람들 각각이 서로 다른 곳에서 겪은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각자의 기억에 의존하고 있지만 일부는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함께 들어 실제로 일어난 일임을 증명할 수도 있습니다. 먼저 분업이 만들어낸 비 존중 이야기를 잠깐 하면 현대의 개발은 여러 가지 이유로 분업화 되어 있는데 특히 게임디자인이 분업화 될 때 완성된 결과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분들이 협업 과정에서 종종 비 존중을 겪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원인은 개인에게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며 지난 오랜 세월에 걸친 사실상의 교육 포기, 효율을 위한 분업화, 이로 인한 시야의 축소 등이 합쳐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협업 과정에서 게임디자이너들이 종종 겪는 비 존중 상황 중 일부는 의도적으로 상대를 비난하기 위한 의도가 아닐 때가 있습니다. 그저 분업 상황에서 여러 사람에 걸쳐 있는 불만을 이야기하고 싶을 때 우연히 맞닥뜨린 사람이 분업화된 역할을 수행하는 게임디자이너였을 뿐일 수 있습니다. 마치 나이 많은 분들이 자주 찾는 약국에 가면 볼 수 있는 의사에게는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을 것 같은 나이 드신 분들이 약사에게 여러 가지 질문과 불만을 늘어 놓으며 그 중 일부는 의사가 답해야 할 것 같은 질문들도 주고 받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협업 부서 입장에서 현재 진행 중인 업무에 불만이 있는데 이 불만을 토로할 곳은 여러 사람에 의해 분산 되어 있어 누구에게 이야기해야 할 지 모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불만을 토로할 올바른 대상은 자신의 상급자이지만 상급자에게 진지하게 이야기할 만한 주제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상급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기 부담스러울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야가 좁아진 게임디자이너가 나타나면 이 사람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상황이 그리 이상하지 않습니다. 마치 약국에 온 것과도 같습니다.

어떤 팀에 한 명 뿐인 주니어 기획자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 팀은 디렉터님 한 분을 주축으로 엔지니어와 아티스트들이 개발해 왔는데 디렉터님 한 분 만으로는 엔지니어들과 아티스트들이 커버하지 못하는 업무 범위를 커버하는데 한계가 있어 주니어 기획자 한 명을 구인한 것입니ㅏㄷ. 이 전에는 디렉터님으로부터 플레이 시나리오가 나오면 이를 바탕으로 직접 엔지니어들이 설계하고 구현해 왔는데 팀에 기획자가 한 명 생기자 엔지니어들은 디렉터님으로부터 직접 플레이 시나리오를 받는 대신 기획자가 중간에서 기획서를 써 주기를 기대한 것 같습니다. 모든 기능에 걸쳐 그러기는 어려웠지만 작은 기능부터 하나씩 기획서에 기반해 개발하면서 개발 히스토리가 남기 시작하고 이전에는 쉽게 휘발되던 시행착오가 기록으로 남아 미래의 우리들에게 도움을 주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저는 단 한 명 뿐인 주니어 기획자로써 팀이 저에게 요구하는 수준을 충분히 달성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수습 기간이 끝나지 않은 참이라 이 상황이 상당히 부담스럽게 느껴졌는데 저에게 직접 이야기 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상황이 이어지면 수습 탈락으로 끝날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팀에 한 엔지니어님과 이야기하다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뭔가 잘못된 답변을 합니다. 엔지니어님은 저에게 그 답변이 잘못된 이유, 올바른 답변에 이르기 위한 사전 지식과 개발 히스토리, 이에 근거할 때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른 답변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 엔지니어님은 팀에 처음 조인할 때부터 여러 가지 히스토리를 설명해 주시곤 했는데 아무래도 이 때 설명해 주신 히스토리는 이전에 한 번 이상 설명해 주신 내용이었을 것 같습니다. 설명을 다 듣고 제가 무슨 실수를 했는데 파악했을 즈음 엔지니어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진아. 너는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러닝커브가 좀 느린 것 같다.” 아무래도 그 팀에 모인 사람들은 이전에 회사에서 큰 성공을 거둔 프로젝트로부터 온 아티스트와 엔지니어들로 구성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엔지니어들 거의 대부분은 국내에서 아주 유명한 학교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어 그들 중 가장 경력이 짧고 또 평범한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그 분들 관점에서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느리게 배우는 사람일 뿐이었을 겁니다.

이 말씀을 듣고 인정하면서 동시에 머릿속에는 빨간불이 켜졌는데 그렇잖아도 수습 기간이 안 끝나 목숨이 위태로운 입장에서 이런 평가마저 들었으니 과연 수습이 종료되는 그날까지 목숨이 온전히 붙어 있을 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이 조직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지 아니면 이 조직에서 살아남지 못한 상황을 가정하고 그 다음을 미리 준비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상태로 그 날 일을 마치는둥 마는둥 하고 집에 돌아옵니다. 컴퓨터를 켜 얼마 전 이 팀에 입사하기 위해 작성했던 문서들을 살펴보니 다행히 작성 시점으로부터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이 문서들을 거의 그대로 사용해 구직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히스토리를 함께 겪어 온 사람들에 비해 중간에 이를 전해 들은 제 입장에서 이들을 일관된 맥락에 의해 기억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이 히스토리를 생각해내지 못할 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히스토리는 사실 일어날 수 있는 시행착오일 뿐이었고 이를 직접 겪었다면 잘 기억하고 있겠지만 이를 직접 겪지 않았더라도 상황을 듣고 생각해보면 자연스럽게 도달할 수 있는 결론에 가까웠습니다. 문득 질문을 받을 때 올바른 답변을 하지 못한 그 상황의 자신에 조금 억울했고 또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이윽고 수습 기간 마지막 날 디렉터님과 면담을 하며 팀원들, 그리고 디렉터님 스스로도 제 업무에 대해 썩 만족하지는 않지만 여기서 수습을 종료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해 계속해서 기획자로 일해 달라는 말씀을 들었는데 그 직전까지 제가 처했다고 느낀 상황에 기반한 마음 상태로는 이 자리에서 수습이 종료되며 짐을 싸야 할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긴장이 좀 풀려 남은 시간 동안 자리에 앉아있기 쉽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이 다음부터 그럭저럭 한 사람 분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디렉터님이 게임에 집중할 때 런칭에 가까워짐에 따라 회사 내 여러 부서들과 협업할 준비를 하거나 모든 엔지니어들이 바쁜 상황이어서 하는 수 없이 웹 기반의 운영 및 통계 도구를 만들거나 캐릭터를 꾸미는 시스템과 아이템 구조를 설계하거나 텍스트로 된 로그를 분석하거나 하는 등등의 역할을 했고 시간이 지나자 저에게도 게임 규칙에 관여할 수 있는 시점이 찾아옵니다. 이런 사건들을 거치며 처음에는 모가지가 달랑달랑한 사람에서 적어도 한 사람 역할은 해 내는 사람이 된 것 같기는 했지만 가끔 기분이 침울해질 때 귓가에서 이전에 한 엔지니어님으로부터 들었던 “우진아. 너는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러닝커브가 좀 느린 것 같다.” 라는 말이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이 가상의 소리는 제 마음이 좀 느슨해지려고 할 때마다 귓가에 찾아와 저를 다잡아 줬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그 때 느꼈던 두려움도 함께 찾아와 평소처럼 행동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한편 시간이 흘러 다른 회사의 다른 팀에서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며 한창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였습니다. 퇴근 시간이 지나고 한참 야근 하는 중이었는데 저 사무실 저 쪽 엔지니어들 자리에서 리드 엔지니어님 목소리가 들립니다. “싫어.” 모니터 위로 빼꼼 고개를 내밀어 보니 기획팀 한 분이 서 있었고 그 리드 엔지니어님과 뭔가를 보고 이야기하는 중이었습니다. 대강 무슨 문서를 보며 이야기하는 중인지 알 것 같아서 재빨리 검색해 문서를 찾았는데 문서를 쭉 스크롤 해 보다가 저 ‘싫어’가 무엇에 대한 ‘싫어’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단 대화는 그 ‘싫어’에서 끝났고 기획팀 팀원님이 자리에 돌아오셨길래 자리로 모셔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기획서는 전투에 특정 효과를 주기 위한 기능 변경을 요구하고 있었는데 기획자는 기능이 개발된 다음 이를 제어해 다양한 상황에 사용하기 위해 여러 값을 제어할 수 있기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값들의 이름은 엔지니어들 사이에 널리 논의된 바 있는 변수나 함수 네이밍 규칙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작성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값 하나하나는 이 기능 하위에서는 잘 동작하겠지만 다른 기능과 섞이는 순간 값의 정확한 용도를 구분하기 어려울 것이 분명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가능 별로 네임스페이스를 만들고 그 하위에서는 값 이름을 자유롭게 사용하게 만들거나 엔지니어들 사이에 지난 수 십 년에 걸쳐 논의되어 온 네이밍 규칙의 변천사를 설명하고 이를 기획서에 반영하기를 요구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또 어쩌면 어차피 값 이름들을 보고 그 옆에 설명을 함께 읽으면 무슨 역할을 하는지, 또 그런 값을 제어하고 싶은 의도를 이해했을 테니 스스로 원하는 모양으로 만든 다음 이를 기획자에게 알려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 기반해 엔지니어들 사이에 지난 수 십 년에 걸쳐 논의되어 온 네이밍 규칙을 설명하고 참고할 수 있는 문서 몇 개를 전달하자 문제는 금방 해결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상황은 좀 불만이었는데 저 역시 어쩌다 보니 그런 네이밍 규칙의 변천사, 네이밍 규칙에 대한 여러 가지 시도, 현재 유행하는 형태, 네이밍 규칙을 통한 안전한 설계 따위의 주제를 조금 알고 있었지만 이를 모든 비 엔지니어들이 알고 있을 것을 요구하는 것이 올바른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분명 이 주제는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논의되어 온 주제이고 특히 코드의 유지보수 가능성에 큰 영향을 끼치는 주제이기는 하지만 이런 맥락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저 엔지니어들이 주로 사용한다고 알려진 네이밍 규칙을 맥락 없이 그냥 알고 있기를 원하는 것은 좀 과하지 않은가 싶었습니다. 물론 그런 반응이 나온 맥락 역시 모르지는 않습니다. 회사는 프로젝트의 현재 상태를 그리 좋게 평가하지 않고 있었고 대표님은 호시탐탐 프로젝트를 드랍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대표님은 가끔 사무실에 나타나 프로젝트를 드랍해야 하지 않느냐고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자리에서 리더십과 대화하곤 했고 이 상황에서 엔지니어들 역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다만 이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엔지니어들 뿐만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이 프로젝트는 회사에 의해 드랍이 결정되어 여러 사람들이 회사를 떠나는 결말로 끝났는데 이 때의 기억은 지금도 남아 우리가 다른 부서의 상식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이 옳은지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곤 합니다.

또 한번은 기획팀의 모든 사람들이 한 마일스톤에 각자 둘 이상의 기능을 담당해 최대한 빨리 기획서를 작성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현대 모바일 수집형 게임에는 인터페이스를 포함한 온갖 자잘한 기능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을 일관성 있게 조율하기에 앞서 일단 각 기능을 모두 게임에 때려 넣고 나서 조율하는 쪽으로 개발 방향을 정했기 때문에 그 모든 기능의 기획서가 마일스톤이 시작된 다음 짧은 기간 안에 모두 나와야 했습니다. 상황 상 현실적인 기획서 수준으로 작성한 문서를 넘겨야 간신히 기한에 맞춰 개발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 정도 문서로는 개발을 시작조차 할 수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기획팀의 각자가 자신이 할 일에 집중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고 이는 관리자 역할을 해야 했던 저 자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각자가 작성한 문서는 일단 리드 엔지니어님께 넘어갔는데 각자가 기획서를 통해 요구한 기능은 일부가 서로 겹치기도 하고 또 일부는 다른 기능의 배타적인 상태가 있었으며 어떤 기능들은 동시에 개발할 수 없어 차례대로 개발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문제는 사실 기획팀 바깥으로 문서가 나가기 전에 서로 각자가 하고 있는 일을 공유하고 서로 이를 반영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지만 마음이 급했고 그런 당연한 과정을 생각해내지 못했습니다.

기획서들은 명백히 허술한 상태였고 기획팀 수준의 조율 과정을 거친 다음에야 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상태인 것이 확실했습니다. 하지만 일단 문서는 나갔고 이를 검토하던 리드 엔지니어님 선에서 여러 문제들이 튀어나왔는데 각각의 문제를 조율하다가 문득 이 분은 거기 모여 있던 기획자들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난 너희들이 조금 더 똑똑했으면 좋겠어.” 저를 포함해 거기 모여 있던 사람들 모두가 미안한 마음에 숙연해집니다. 우리는 기획서를 쓴 다음 빌드를 테스트하고 기능이 나올 때마다 이를 일관된 맥락에 따라 조율하는 작업으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엔지니어들은 각 기능을 개발하고 테스트하고 이들을 조율해 완결된 빌드를 만들어내는 마지막 순간까지 급하게 개발한 나머지 쉴 새 없이 튀어나올 온갖 문제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이 분은 엔지니어들이 이어서 강도 높은 초과근무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기획서를 검토한 다음에는 이를 배포해 팀 전체를 굴리기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기획팀 또한 이런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허술한 요구사항으로 가득한 문서에 대한 이런 적나라한 평가에 그저 숙연할 뿐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흐른 다음 그때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다시 모여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이 때 들은 말이 다시 튀어나옵니다. 그 때 우리들은 지금에 비해 훨씬 더 멍청했고 훨씬 경험이 부족했으며 시야도 훨씬 좁았습니다. 큰 그림을 보는 대신 마일스톤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집중하고 있었고 그나마도 각 기능을 여러 사람들에게 일관성 없이 흩뿌려 각자가 요구사항을 정의하는데 집중할 뿐 서로가 담당한 기능이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상황, 심지어 각 기능이 필요한 근본적인 이유에도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한번에 모아 검토하는 첫 번째 사람 선에서 온갖 문제들이 튀어나온 것이 별로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과 우리들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회사 한복판에서 모든 부서들이 들을 수 있는 트인 공간에서 우리들 모두가 한번에 그런 말을 듣는 것은 올바른 일이었을까요?

게임디자인의 분업이 만들어낸 비 존중에서 협업 부서에 협의를 시도하는 주니어 디자이너들이 협업 부서의 여러 요구사항에 원활하게 대응하지 못하더라도 일단은 그대로 두지만 이 상황에 대한 항의가 인간적인 측면을 건드리기 시작하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상황을 멈추고 개입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는 인간적인 측면을 건드리기 시작할 때 이 상황이 개방된 공간에서 계속되도록 방치하면 여러 사람에 걸쳐 그 개인에 대한 평가가 나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뭔가 잘못을 저질렀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공개된 장소에서 공격적으로 이야기하면 이를 듣는 사람들로부터 개인의 평가가 나빠지며 이는 나중에 이 개인이 또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려 할 때 고정관념을 만들어 전혀 필요하지 않은 어려움을 만들게 됩니다. 그런데 개방된 장소에서 기획팀 구성원 대부분이 모인 상태에서 우리들 모두가 조금 더 똑똑했으면 좋겠다는 말은 그 당시 우리들을 너무나 잘 표현하는 말이고 또 근본적으로 우리들이 멍청한 것 역시 사실이지만 그 말을 그 공간에서 들을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벤트로부터 기획팀에 대한 평가는 프로젝트 전체에 걸쳐 더 나빠지고 기획팀이 이후 협업을 수행하는데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을 겁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러닝 커브가 느린 것 같아’, 그리고 ‘싫어’ 같은 사례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 이 말을 듣는 사람에게 잘못이 없지 않았습니다. 또 이 말을 통해 상황을 개선한 것도 사실입니다. 전자는 긴장감을 느끼며 더 잘 기억하려고 했고 후자는 엔지니어들 사이에는 당연한 상식을 재빨리 익혀 문서를 수정해 업무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결과를 얻기 위한 좀 더 부드러운 말은 없었을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 때 우리들은 어렸고 지금보다도 더 멍청했으며 큰 그림을 봐야 할 필요성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했고 엔지니어들 사이에 상식적으로 통하는 규칙에도 너무 무지했습니다. 결국 이런 요구사항을 들으며 조금씩 성장한 덕분에 각자가 지금의 상태에 이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같은 결과에 도달할 다른 말,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요?

커피를 마시며 이제 오래 전에 지나간 웃긴 에피소드로 취급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모두가 성장했고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적절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가끔 이렇게 모여 서로 공유하는 작은 아쉬움, 작은 배려 없음, 작은 무시들이 모여 만들어진 이 에피소드가 현대에 다시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고 또 각자가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적절한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 각자 돌아가며 화장실에 다녀온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