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

오전에 치과에 가고 또 오후에 안경 렌즈를 바꾸러 갔다가 문득 저 자신이 사이보그의 정의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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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가 된 지 어느덧 한 달이 넘은 지금 감사하게도 나를 얼마에 팔 것인가 하는 고민을 마무리하고 적당한 가격에 저를 다른 회사에 팔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출근 전까지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또 그 동안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귀찮다는 핑계로 미뤄 뒀던 일들을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가령 치과에 가서 검진을 받기로 했는데 사실 치과에서는 방문하고 나서 반 년이 지나면 한번 방문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내 줍니다. 하지만 심지어 생각할 시간을 내기 위해 휴가를 내면서도 치과 갈 시간을 내지는 않은 덕분에 치과로부터 메시지를 받은 다음 어느새 반 년이 지나 마지막으로 치과에 방문한 지 1년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충동적으로 ‘내일에야말로 치과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전 날 예약한 다음 오전에 치과에 방문합니다. 예약할 때 대략 무슨 목적으로 방문할 지 적어야 했는데 ‘정기검진, 스케일링’이라고 기입했습니다. 이거면 충분할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너무 쉽게 예상할 수 있지만 당연히 그걸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난 1년 사이에 치아에는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곳곳에 자잘하게 파 먹은 곳이 생긴 것입니다. 또 이전에 때운 부분이 떨어진 곳도 있었는데 어쩌면 작년 한 해에 걸쳐 힘든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이를 꽉 다무는 습관이 생겼는데 그로 인한 것일 지도 몰랐습니다. 검진을 마치고 때워야 할 것 같은 여러 사진을 보고 상담을 받으며 평화롭게 스케일링을 하고 양치질 조언이나 칫솔 선택 조언이나 받은 다음 점심을 사러 가려던 계획이 슬슬 틀어지기 시작합니다. 조금씩 파 먹은 곳들 중 일부는 그대로 두고 관찰해도 큰 무리가 없긴 하지만 그 중 한 둘은 아무래도 머지 않은 시점에 때우는 편이 좋다는 설명을 들었고 또 어차피 언젠가 때워야 한다면 발견한 시점에 바로 때우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때워야 할 치아를 모두 때우기로 결정했는데 평일 오전의 기업화된 치과에는 의서 선생님 한 분을 최대한 짜내기 위한 여러 스탭들이 협업하고 있어 환자가 그리 몰려들고 있지 않음에도 의사 선생님은 여러 환자에 걸쳐 정신 없이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손봐야 할 것 같다고 판정한 모든 치아를 즉시 손보기로 결정했다는 안내를 받은 단 한 명 뿐인 의사 선생님이 작은 한숨을 쉬시는 것을 등 뒤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