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당신과 맞지 않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실은 저는 회사에 월급 받으며 똥 싸는 사람으로 소문 나 있습니다. 저는 제 열정에 근거해 열정적으로 회사에서 똥을 싸겠습니다.

누군가를 채용하려면 먼저 채용공고를 내고 서류를 받아 검토한 다음 한 번 만나 이야기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분을 선정해 인사 부서에 서류를 올리고 약속이 잡힌 다음 드디어 어느 날 회사 안 어느 회의실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할 시작하게 됩니다. 면접은 좀 이상한 자리입니다. 우리들은 세상을 살면서 가까이 함께하는 다른 사람들과 오랜 시간에 걸쳐 만나도 이 사람들을 잘 이해하기는 아주 어렵습니다. 그 어떤 누구라도, 심지어 독성 사람 조차도 여러 환경에 따라 다면적이어서 어느 한 가지 환경만을 만들 수 있는 개인의 입장에서 다른 누군가의 여러 측면을 알아내기는 아주 어렵습니다. 여러 전문가들도 근본적으로 한 사람의 여러 측면을 알아내기는 아주 어렵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그냥 포기하고 싶지는 않기에 사람들은 종종 혈액형, MBTI, 심지어는 별자리를 동원해 누군가의 특징을 정의하고 예측하고 싶어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두시간 동안 서로 제한된 환경에서 이야기하는 것 만으로 누군가를 평가하고 또 회사를 평가하는 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런 사실을 면접자와 피면접자 양쪽 모두가 알고 있기에 사실 면접은 형식적이고 이상한 자리라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이상적으로는 서류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함께 일할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을 일정 기간 이상 살아온 사람들 각각은 나름의 여러 가지 경험에 따라 순간적으로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지만 판단은 할 수 있는 다양한 직관을 형성하기에 서류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쎄함의 과학에 조금이라도 기대기 위해 서로 직접 만나봐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면접은 형식적이지만 결코 형식적이라고만 보기는 또 쉽지 않습니다. 처음 면접을 볼 때는 피면접자님께 여쭤볼 주요 질문을 적어 가서 상황에 따라 질문을 하나하나 던져 답변을 듣곤 했습니다. 특히 여러 사람들을 만나본 다음 그 분들 중 한 분을 선정해야만 하는 인턴십 면접 같은 상황에서는 사람들마다 어느 정도는 비슷한 질문을 해서 각자의 답변을 들어 비교할 척도로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접근은 항상 잘 통하지는 않았는데 종종 인턴십 면접 때 아주 많은 분들을 만나기 위해 한 번에 여러 피면접자님들을 만나야 할 때가 있었고 이럴 때 같은 질문을 차례로 하면 맨 먼저 답하는 분은 먼저 답해야 하기에 생각할 시간이 부족하고 맨 나중에 답해야 하는 분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좋은 답변을 이미 해버리는 바람에 불리해집니다. 그래서 질문 목록을 정리해 가는 건 아주 최소한으로 하고 상대를 대면하고 아이스브레이킹을 하며 시작해 서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형식으로 점점 더 바꾸게 됐습니다.
엔지니어들 사이에서는 커피테이블이라는 문화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 어느 날 약속을 잡고 만나 커피 두 잔을 사이에 놓고 서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평소에는 만날 일 없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견문을 넓히는 자리라고 합니다. 잘은 몰라도 업계에서 인싸 중의 인싸들이 그런 자리를 만들고 또 나가지 않을까 싶은데 근본적으로 사람을 싫어하고 또 귀찮아하는 저 같은 사람은 그런 문화의 존재를 알았고 또 비록 엔지니어도 아니고 또 직업적으로 코드를 다루는 사람도 아니기에 그런 자리에 나가는 건 탐탁치 않았지만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또 이로부터 직간접적인 경험을 얻을 수 있다는 점 자체는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을 얻으려면 누군가와 약속을 잡고 어느 날은 하루하루의 루틴을 깨고 시간을 내 누군가를 만나야 하며 이에 따라 그 날 집에 돌아와 아무렇게나 의자에 구겨져 지친 몸뚱이 중 손가락만 간신히 움직여 유튜브 영상을 보며 잠깐 쉬는 시간이 사라진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그런 힙한 문화는 인싸들이 하는 거고 저 같은 반투명 상태로 존재하는 듯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저 하루하루 루틴을 깨지 않고 조용히 집에 돌아와 유튜브 영상을 통해 양자역학 강좌나 보며 지친 몸을 쉬는 편이 더 낫다는 식으로 자신을 설득하곤 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분명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한다면 또 재미있지 않을까요?
그러면서도 면접 역시 엄청나게 귀찮아 하는 편입니다. 만약 면접에 안 들어갈 수 있다면 갖은 핑계를 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령 어느 해에는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기 위해 우리 팀이 처한 온갖 상황을 이야기하며 도저히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해 프로그램을 만들고 교육하고 평가를 수행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을 장문의 메일로 만들어 인사팀에 보내기도 하고 또 작년에 우리 팀이 인턴십 프로그램을 수행했기에 올해에는 다른 팀이 수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메일을 보내기도 합니다. 또 내년 상반기까지 개발계획으로 미루어 미리 사람을 충원해 준비할 필요가 별로 없어 보이니 그 즈음에 다시 한번 판단하는 편이 좋겠다는 식으로 충원을 슬금슬금 미루기도 하는데 이런 행동의 기저에는 면접을 보기 귀찮아하는 성향이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인턴십은 몰라도 개발 계획의 행간으로 미루어 미리미리 충원해 대비하지 않으면 팀이나 프로젝트에 재난이 발생할 때 정말 피똥 싸며 고생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아무리 면접을 보기 귀찮아도 충원을 준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충원은 TO를 확보하고 공고를 내고 서류를 검토해 면접을 보고 누군가 출근하는데까지 최소한 3개월은 걸리며 누군가 출근하시더라도 그 다음부터 실제 우리들과 함께 적어도 한 사람 역할을 하는데까지는 다시 몇 달이 걸리므로 지금 당장 인력이 급하지 않더라도 멀리 보고 미리 충원을 시작해야만 합니다. 이미 정신 없이 바쁜 시점에 충원하려고 하면 솔직히 이미 늦었습니다.
앞서 처음 면접을 보기 시작할 때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랐기 때문에 미리 피면접자님께 여쭤볼 질문을 적어 가 하나씩 여쭤보곤 했다가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서로 이런 저런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는 식으로 방식을 바꿨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러면 여러 사람을 만나 봐야 할 때 질문과 답변,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평가에 일관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해진 질문에 대한 답변보다는 저 뿐만 아니라 저와 함께 면접에 참여한 분들이 평생을 살아오며 쌓은 경험에 기반해 설명하기는 쉽지 않은 직관에 의존할 수는 있습니다. 또 이 직관이 생각보다 의미 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면접에 참여한 분들은 자신의 직관에 의해 판단을 내린 다음 그 판단의 근거를 설명할 수 있게 되면서 이 방법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마치 그 순간에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지만 레이더에 잠깐 나타난 점이 미국으로부터 발사된 핵미사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판단하고 즉각 대응하지 않은 덕분에 비록 그 말년은 불운했지만 전 지구적인 핵전쟁을 막은 소련의 한 레이더 모니터링 담당자의 이야기처럼 각자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며 점점 더 발전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침으로 면접을 수행하더라도 몇 가지 질문은 미리 정해 놓을 수밖에 없고 또 서류나 이력으로부터 어떤 특징을 발견하면 이에 대한 질문 역시 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너무 말끔하게 작성한 포트폴리오는 상대가 정말 이 문서의 내용을 이해하고 작성한 것이 맞는지, 이 문서를 이렇게 예쁜 모양으로 작성하기 위해 어떤 절차를 수행했는지, 또 이 멋진 데이터구조의 몇몇 값들은 어떻게 동작하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이력서의 어느 부분에 너무 짧은 이력이 끼어 있다면 이 이력에 얽힌 슬픈 이야기를 묻지 않을 수 없고 대체로 질문에 답하시는 분들도 당연히 그 부분에 대한 질문이 나올 거라는 사실을 예상하고 기다렸다는 듯 답변하곤 하십니다.
한편 최근 타임라인을 지나가다 아마도 직업 엔지니어를 목표로 준비하고 계신 것 같은 어떤 분이 국내에 널리 알려진 한 회사로부터 채용 제의를 받아 서류를 제출하고 면접에 다녀오신 모양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우리들은 앞서 설명한 대로 면접을 대강대강 각자의 직관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보며 여러 실수를 하고 또 채용해야 마땅한 분을 채용하지 않거나 그 반대의 행동을 하는 실수를 남발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 널리 알려진 유명한 회사는 결코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가끔 저 자신이 그런 굴지의 회사에 피면접자로 면접을 보러 가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 보곤 하는데 지금까지는 운이 좋아 어떻게든 업계에 살아 남아 버티고 있지만 그런 진짜 탑클래스 집단에 가면 면접 이전에 서류 수준에서 광탈하고 끝나겠지만 만약 면접에 간다 하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 없이 얻어 터진 다음 가루가 되어 바람에 날려 회의실을 빠져나오는 신세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분의 면접이 어떻게 진행되었을지, 어떤 질문을 받고 또 어떤 답변을 하셨을지 제가 알 길은 없지만 중간에 받으신 질문 한 가지에 답하기 쉽지 않았다는 글을 보고 질문 하나를 추측할 수 있었는데 그 질문을 제가 받았다면 어떻게 답변했을지 생각해봤고 그 과정이 꽤 재미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려고 지금까지 면접 이야기를 한 4천 글자 정도 해 오고 있었던 것인데 제가 흥미를 가진 질문은 제목과 비슷합니다. 만약 당신에게 열정이 있지만 일이 그 열정의 방향과 다를 때 어떻게 행동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이 질문에 흠결을 찾자면 여러 모로 완결성 있는 질문이 아니기는 하지만 질문의 의도는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타임라인에 지나가는 이 질문에 대한 글을 보고 한번 답해 보기로 합시다.
먼저 저 자신에게 열정이 있는지 부터 생각해보면 좋은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일에 대한 열정이 남아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초반에 열정을 불태우고 시간이 지나며 그 열정을 소진한 다음 힘든 시기를 보내는 것 같고 저 자신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유년기의 끝에 도달하는데 긴 시간을 보낸 것 같은데 가장 최근의 직업적 의사결정을 하면서 제가 이 일을 아직 재미있어하고 또 이 일을 더 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책 게임 기획자의 일의 맨 뒤에 실린 인터뷰에 참여한 글에서 이 일이 저 자신을 시시각각 파괴하려 하는 세계에서도 파괴되지 않고 이 일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생각해보면 아마도 이 일은 저를 적어도 한 번은 정신적으로 완전히 파괴한 적이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하지만 지난 직업적 결정을 내리며 다른 길들을 검토했지만 아직 이 일이 재미있고 이 일을 하고 싶으며 이 일을 통해 할 수 있는 성취가 남아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돈, 더 짧은 근무시간, 새로운 일에 대한 흥미로움 따위를 뒤로 하고 이전에 하던 일과 비슷하게 또 다시 개발팀에 속해 또 다른 프로젝트를 수행해 최애애애애애애애소한 런칭에 도달해 고객들과 만나 그들의 평가를 받고 또 다른 뭔가를 배워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경험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런 제 행동으로 미루어 저는 중간에 분명 정신적으로 완전히 파괴되어 열정을 잃고 급한 행동을 하려다가 여러 가지 실수를 저지른 시점이 있었고 이 때의 저는 열정을 잃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내린 의사결정과 제 행동으로 미루어 저 자신에게 열정이 남아있는지 생각해본다면 열정이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열정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제가 수행해야 하는 일이 제 열정의 방향과 달라 저를 힘들게 만든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분명 이 일은 재미있고 약간의 중독성이 있는 것 같아 제 스스로 쉽지 않은 시기를 보냈음에도 다시 이 일로 돌아온 것을 보면 열정의 방향과 제가 하는 일의 방향이 크게 어긋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수행하는 일은 여러 가지가 있고 모든 일이 항상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지는 않습니다. 어떤 일은 프로젝트가 고객과 만남을 위해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데 도움을 주지만 또 다른 일은 이런 방향과는 아무 관계 없이 회사 안에서 우리들이 존재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수행하거나 사람들을 통제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전근대적인 관리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회사가 만들어낸 일을 위한 일을 수행하는 행동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우리들을 이끌기도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의 계획을 반대하는 경영진과 회사를 설득해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제시하고 이를 승인 받을 때 느끼는 감정은 힘들면서도 즐겁지만 15분 이상 자리를 비운 다음 돌아와 자리 비운 시간을 업무시간에 포함할지 포함하지 않을지 선택하고 사유를 입력하는 팝업을 마주할 때마다 똥 싸러 가서 15분 이상을 소모하고 돌아와 그 팝업에 똥 싸고 왔으니 이 시간을 업무시간에 포함해 저를 회사에서 돈 받으며 똥 싼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고 입력할 때마다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는 깊은 자괴감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회사에서 마주하는 여러 가지 일은 각자의 방향이 있고 분명 어떤 일은 제가 가진 열정과 같은 방향으로 저를 계속해서 진지하게 제 업무에 일하도록 만들겠지만 또 다른 어떤 일들은 그런 저 자신을 마치 놀리듯 흡연하지 않으면서도 흡연자들과 함께 담배터에 나가 여러 주체에 대한 아주 지독하고 저속한 욕설을 서슴지 않고 떠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회사에서 제 열정과 방향이 맞지 않는 일은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일들을 만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일단 열정은 그 총량이 정해진 자원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또 인정하는 것입니다. 열정을 쏟으면 열정은 그만큼 소진되며 열정을 재충전하지 않은 상태로 계속해서 열정과 방향이 다른 일에 시달리다 보면 결국 열정은 고갈되고 회사나 프로젝트, 팀, 그리고 자기 자신조차도 별로 원하지 않는 상태에 이르고 말 겁니다. 그러니 가장 먼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열정을 아끼고 올바르지 않은 곳에 열정을 허투루 소모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열정과 방향이 같은 일에는 최선을 다해 일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면서도 열정의 소모를 최소화하고 열정과 방향이 다른 일에는 최소한의 결과를 만들어내 회사가 저를 고용해 급여를 주는 이유를 만족하는 범위 안에서 이번에도 열정의 소모를 최소화 해야 합니다. 물론 회사는 개개인이 자신들이 맞닥뜨린 모든 일에 열정적으로 행동하기를 원하겠지만 사람은 그런 식으로 동작하지 않으며 열정 역시 그런 식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동작하지 않습니다. 열정은 총량이 정해진 자원이며 이를 사용하면 줄어들고 또 열정을 충전할 수 있는 일을 수행하면 다시 늘어나기 때문에 서로 방향이 다른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며 열정의 총량을 조심스럽게 다뤄 스스로 열정이 고갈 되어 완전히 망가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회사 역시 개인이 열정을 쏟으며 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적절히 구분하고 일관된 상태를 유지하는 행동에 나쁜 평가를 절대 할 수 없을 겁니다.
이와 동시에 이 공간이 회사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회사는 저를 고용해 급여를 주고 있는데 회사가 굳이 돈을 들여 저 같은 사람을 고용하고 있는 이유는 제 열정의 방향과 일치하지 않는 온갖 일을 시킬 작정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회사가 제 열정의 방향과 일치하는 일만 골라서 줄 수 있다면 회사는 저에게 굳이 적당한 급여를 지급할 필요조차 없을른지도 모릅니다. 아주 적은 돈을 주더라도 저는 기꺼이 회사에서 일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매 해 급여를 인상하고 또 인상 폭에 대해 민감하게 굴며 협상하고 매 인사평가 시즌마다 “그래서 저 없이 런칭 할 수 있겠아요?”라며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제가 제 열정의 방향에 일치하지 않는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수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를 ‘까라면 깐다’고 표현하곤 합니다. 이곳은 회사고 회사는 저를 고용하고 저에게 급여를 지불하는데 이런 이상한 행동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저에게 온갖 일을 다 준 다음 ‘까라면 까라’고 말할 작정이기 때문이고 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여기는 회사이고 회사는 저에게 온갖 일을 주며 ‘까라면 까라’고 말하고 저 역시 회사가 ‘까라면 깐다’는 자세로 일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저는 ‘까라면 깔’ 뿐 아니라 심지어 ‘잘 까기도’ 합니다. 그 일이 제 열정의 방향과 맞든 맞지 않든 까라면 까고 또 잘 깔 겁니다. 이 사실은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제 열정과 일치하는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다만 제 마음 속에서 한정된 자원인 열정의 총량에 영향을 끼치겠지만 저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나 회사는 제 열정의 총량을 알아낼 수 없을 겁니다. 언제나 일관된 결과를 낼 테니까요.
하지만 그저 이 단계에 머무르면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회사에게 제 남은 열정의 총량을 들키지 않고 ‘까라는' 주문에 일관된 결과를 내고 있다 하더라도 결국 저 자신은 서서히 열정이 고갈되어 가는 상태를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아무리 앞에서 말한 대로 조심스럽게 열정의 총량을 관리한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열정은 채워지는 속도보다 고갈되는 속도가 더 빨라져 결국 그 끝이 찾아올 겁니다. 그렇다면 이미 결정된 그 최후를 위해 그저 절벽을 향해 달려가기만 해야 할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 처음에는 제 열정의 방향과 맞지 않던 일들도 계속해서 일을 수행하며 시야를 넓혀 가다 보면 결국 그런 일들도 제 열정의 방향과 그리 크게 어긋나는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가령 프로젝트가 처한 문제를 발견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일을 올바른 방식으로 재정의하거나 일을 아예 없애버리거나 일의 수행 과정을 재정의하거나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뭔가를 교육해 결국 올바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은 정말로 재미있습니다. 이런 일을 수행해 더 나은 결과를 얻으면 정말 신나고 그 날 퇴근하는 발걸음이 가볍고 또 뭔가를 해낸 것 같아 정말 기쁩니다. 반대로 똥 싸고 돌아와 지난 15분 이상의 자리를 비운 시간 동안 제가 월급 받으며 똥 싼 사람이라는 사실을 회사에 알리는 행동을 할 때면 아 진짜 ㅈ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지만 이 역시 곰곰이 생각해보면 누군가는 비포괄임금제에 기반해 프리라이딩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고 회사는 우리들의 개발비용을 최소화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런 행동을 하고 있을 겁니다. 회사에 제가 똥 싸며 돈 받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은 분명 자괴감 드는 일이지만 좀 더 시야를 넓혀 이 일이 결국 누구를 위한 일인지 생각해보면 이 일은 표면적으로는 회사를 위한 일이지만 더 넓게 보면 우리들이 매 달 마주하는 개발비용 청구서에 표시된 비용을 1원이라도 줄여 주려는 회사의 배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일은 그 일을 하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의 방향을 서서히 바꿔 제 열정과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일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어떻게든 최소한 중간관리자 이상의 역할을 하도록 종용하지만 저는 최대한 그런 상황을 피해 다니는데 중간관리자는 분명 이전에 비해 프로젝트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겠지만 그에 따라 별로 원하지 않는 일도 함께 해야만 합니다. 가령 원하지 않는 일을 수행하며 사기가 내려간 사람들을 다독여야 하고 우리들에게 엉뚱하고 또 쓸모 없는 일을 시키려는 온갖 외부 부서들과 싸워야 하며 아무 의미도 없는 사람들의 점심값과 저녁값 결재를 해야 하고 또 사람들의 휴가를 승인하는 일도 떠안아야만 합니다. 한번은 휴가 결재가 너무나 하기 싫고 또 의미도 없다고 생각해서 매크로를 돌려 휴가 결재가 올라오는 순간 승인하도록 했는데 결국 회사에서 휴가를 상신한 다음 최대 10초 안에 결재가 일어나는 상황을 보고 이를 설명하기를 요구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더 넓은 시야에서 보면 결국 우리들이 회사의 돈을 받아 비디오 게임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해 나가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피플케어는 피하고 싶고 각 멤버들을 트레이닝 하는 일은 귀찮지만 또 어느 순간 각자가 성장해 서로가 서로를 케어하고 또 첨예한 회의에서 능청맞게 올바른 결과를 이끌어내는 모습을 보면 피식 웃으며 ‘우리들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분명 단기적으로는 제 열정의 방향과 맞지 않아 저를 고갈 시킨다고 생각했던 일들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일의 모양을 조금씩 바꾸고 또 제 마음을 조금씩 바꾸며 여러 가지 일들이 점점 더 제 열정의 방향에 가까운 모양으로 변합니다. 심지어 상신된 휴가 기안을 결재하기 위해 스크립트를 만들고 회사가 이를 눈치 챈 다음에는 하루에 대강 지정된 시간 즈음에 두 세번 매크로가 동작해 회사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코드를 수정하는 과정 역시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면접으로 시작해 제목의 질문을 거쳐 제 최근의 상태까지 멀리 돌아오는데 거의 1만글자가 걸렸는데 결국 이 모든 일들은 자기 하기에 달렸다는 옛 말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일단 그 일이 제가 하고 싶은 일의 범주에 포함되는 이상 그 일의 여러 가지 측면으로부터 열정의 방향과 일치하거나 일치하지 않는 다양한 상황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열정은 한정된 자원이기에 무작정 아무 일에나 열정을 쏟다 보면 정신적으로 큰 파괴를 겪을 수 있어 열정을 쏟을 일과 일정한 수준 이상의 결과를 내면 충분한 일을 구분해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시야가 넓어져 더 큰 일을 볼 수 있게 되면 결국 열정의 방향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여러 가지 일들도 열정의 방향과 그리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며 이 즈음부터는 결국 여러 가지 일들을 제 열정의 방향과 비슷한 방향으로 바꿀 수도 있게 됩니다.
저는 여전히 열정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며 회사의 피고용인으로써 까라면 까고 또 잘 깔 작정인데 이 과정에서 열정을 잘 사용할 작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번 똥 싸고 온 다음에도 당당하게 ‘똥 싸고 왔으니 지난 15분어치 임금을 달라!’고 쓰고서도 당당히, 그리고 낄낄대며 이 사실을 주변 동료들에게 말할 겁니다. 그리고 열정을 전혀 잃지 않을 겁니다.
이번 64호에도 지난 2주간 공유한 이야기를 함께 보내 드립니다.




스트레스 조절 목적으로 매주 토요일마다 시간을 제법 내 글을 만들다 보니 매주 글이 공유되는 속도보다 글이 만들어지는 속도가 조금 더 빠릅니다. 처음에는 한 주 정도 펑크 내더라도 그 다음 주 글을 일정에 맞춰 공유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 수준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다 보니 공유를 대기하고 있는 글이 점점 더 늘어나 이 글을 보내 드린 '2024-10-18' 현재 내년 2월에 공유할 72호에 들어갈 글을 거의 다 만들어 가는 중입니다.
글을 미리 만들어 놓는 것 까지는 괜찮지만 종종 글을 작성하고 나서 시간이 많이 지난 다음에 공유되어 시의성이 너무 많이 떨어지는 문제가 자주 생겼습니다. 그렇다고 지난 시즌 1처럼 훨씬 빠른 속도로 공유했다가는 제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시즌 1을 진행하는 1년 동안은 정말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현재 뉴스레터에 영향을 주지 않고 미래에 공유할 글을 미리 보실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미래의 글을 현재 기준으로 약 넉 달 이상 더 먼저 보실 수 있는 방법은 의사 표현을 확실히 해야만 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이 블로그의 위쪽 메뉴에 걸려 있는 ☕커피 한 잔 사주세요에 멤버십을 만들었습니다. 이 쪽에는 미래의 글이 먼저 올라와 있습니다. 지금처럼 2주에 한 번 느긋하에 글 몇 개를 계속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 혹시 가장 최근에 작성한 시의 적절한 글을 보시려면 위 링크를 살펴봐 주세요.
그럼 다시 2주 뒤에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