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노션을 싫어하는 이유
지난달 초 트위터에 노션을 싫어하는 이유 몇 가지를 적은 적이 있습니다. 며칠 전 사람들이 왜 노션을 싫어하는지 모르겠다는 다른 트위터 글을 언듯 지나쳤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흘러 원문을 찾을 수 없게 됐지만 여전히 노션은 마음에 안 들고 노션을 쓸 때마다 짜증이 솟구치는데 왜 노션을 이렇게 싫어하는지 그 이유를 좀 정리하려고 합니다. 일단 제 배경을 잠깐 설명 드리면 지금은 업무용으로는 노션을, 개인용으로는 컨플루언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거의 낮에는 노션, 밤에는 컨플루언스 같은 느낌입니다. 대규모로 사용할 수 있는 두 제품을 비교하며 사용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당연히 컨플루언스를 선택할 입장에서 하는 이야기임을 염두해 주세요.
노션은 느립니다. 컨플루언스도 다른 작은 위키에 비해 빠릿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노션은 해도해도 너무 느립니다. 문서 하나가 조금만 길어져도 스크롤 하다 보면 블록을 불러오지 못해 문서가 중간에 끊긴 채 버벅거립니다. 특히 문서 중간에 데이터베이스, 동영상, 이미지, 여러 문단으로 구성되어 있기라도 하면 - 보통 문서 대부분이 이렇습니다 - 문서 하단에 있는 문단에 접근하려고 페이지다운을 누르고 있다 보면 페이지가 스크롤 되다가 중간에 블록 로딩이 안 끝나 멈춥니다. 굉장히 답답합니다. 하루에도 이런 상황을 여러 번 겪다 보면 이 사람들이 규모가 큰 서비스를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 진지하게 의심해보게 됩니다.
검색이 잘 안됩니다. 사실 검색은 노션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컨플루언스도 마찬가지로 일단 한국어 검색이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한국어는 단어 뒤에 조사나 동사를 띄어쓰기 없이 붙여 사용하는데 이 때 문장에 사용된 명사는 검색되지 않습니다. 가령 ‘노션을'이라고 쓴 다음 ‘노션’이라고 검색하면 검색되지 않습니다. 또 검색 인터페이스가 문서 화면의 일부를 덮고 나타나 결과를 찬찬히 살펴보기 어렵습니다. 종종 정확한 검색 결과가 아니더라도 검색 결과의 경향을 보고 힌트를 얻을 수 있는데 노션은 그럴 여지를 별로 주지 않습니다.
에디터가 브라우저 내비게이션 동작을 무시합니다. 노션은 문서를 열면 바로 편집 가능한 상태입니다. 여기까지는 특징이겠거니 하지만 에디터를 사용할 때 브라우저의 기본 내비게이션 동작을 무시합니다. 문서를 맨 처음으로, 맨 끝으로 이동하려고 할 때,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조작을 하려고 할 때 조작을 무시합니다. 문서를 편집하다가 이제 그만 하고 이전 페이지로 돌아가고 싶으면 반드시 마우스를 잡고 뒤로 버튼을 클릭해야 합니다. 상위 문서 하나에 연결된 여러 하위 문서를 편집할 때 굉장히 번거롭습니다.
에디터가 항상 나를 방해합니다. 빈 줄에 커서를 대면 “명령어 사용 시 / 를 입력하세요”라는 텍스트가 항상 따라다닙니다. 나는 본능적으로 저 텍스트를 읽으려고 하고 단기기억은 항상 시험당합니다. 커서를 이동할 때, 텍스트를 선택할 때, 문서에 있는 오브젝트를 선택할 때마다 노션은 이 순간에 가능한 동작들을 우아하지 못하고 내 단기기억을 망가뜨리는 방법을 사용해 알려주려고 합니다. 금방금방 이야기가 다음으로 지나가 버리는 회의 상황에서 문서를 작성할 때 노션은 문서 도구가 아니라 집중을 방해하는 중간광고처럼 행동합니다.
계층구조를 관리하기 어렵습니다. 노션은 분명 문서를 계층으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상위 문서가 있고 하위 문서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위 문서를 읽을 때 왼쪽 내비게이션 메뉴에 이 문서의 계층을 펼쳐 주지 않습니다. 이 문서의 상위 문서로 이동하는 유일한 방법은 문서 최상단의 상위 문서 링크를 클릭하는 것 뿐입니다. 왼편에 내비게이션 메뉴가 있으면서도 계층구조를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계층 파악을 위해서는 내가 직접 상위 문서에 계층을 정리한 블록을 만들어 놓고 또 하위 문서에는 상위 문서로 돌아가는 내비게이션을 문서에 포함해 놓기도 합니다. 계층을 허용하지 않는 전통적인 위키라면 모를까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데이터베이스 기능은 꿈에 부푼 관리자를 쉽게 속입니다. 노션 데이터베이스는 확실히 강력합니다. 노션의 핵심 기능에 완전히 통합되어 있습니다. 문서 중간에 데이터베이스를 생성할 수도 있고 아무 문서에서나 데이터베이스를 불러와 뷰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개발자들 스스로도 이 기능이 여느 경쟁자들에 비해 독보적이라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들 스스로가 이를 통해 수퍼파워를 얻을 수 있다고 광고한 덕분에 꿈에 부푼 관리자들이 노션만 가지고 프로젝트를 관리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게 만듭니다. 그에 따르는 교육과 관리 없이도요. 이론적으로 이는 불가능한 생각이 아닙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음을 설득하거나 실패를 체험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테이블이 지나치게 빈약합니다. 사실 이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기는 합니다. 테이블을 강력하게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은 테이블을 온갖 이상한 용도에 활용하기 시작합니다. 테이블은 데이터를 보기 편한 방법으로 정규화하기 위한 기능인데 사람들은 강력한 테이블 기능으로 문서 레이아웃을 강제하고 테이블 안에 이미지, 동영상, 칼럼, 네이스티드 테이블 등등 온갖 것을 집어넣어 개발자들의 유지보수를 어렵게 만듭니다. 컨플루언스는 과거 서버 버전에서는 네이스티드 테이블을 허용했다가 문서가 망가지는 상황을 자주 겪다 못해 클라우드 버전에서는 이를 아예 금지해버리기도 했습니다. 이걸 생각하면 테이블 순수론자들이 노션을 개발할 때 테이블 기능을 최소한으로 만들고 싶었을 것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노션 테이블은 테이블 순수론자를 이해하는 입장에서 봐도 좀 너무합니다.
버전 관리가 불투명합니다. 노션은 문서를 열면 그 자체로 뷰 이기도 하고 에디터이기도 합니다. 즉시 편집할 수 있습니다. 이건 장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문서 버전이 언제 올라가는지, 어디까지가 한 버전인지 불분명하게 만듭니다. 문서를 작성하면서 어느 시점의 스냅샷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 문서는 항상 수정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문서를 어딘가에 제출해야 할 때 이후 문서가 수정되더라도 문서를 제출하는 어느 시점을 특정해야 합니다. 또 서로 다른 편집자들이 문서를 수정할 때 편집자들 간의 수정사항을 비교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노션은 이 모든 요구사항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문서를 내보내기 해서 완전히 분리해내지 않는 이상 특정 버전을 고정하거나 정의하거나 가리키거나 비교할 방법 일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쯤 되면 설계 철학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불투명한 버전 관리는 단점이라기보다는 노션의 특징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낮에는 노션을, 밤에는 컨플루언스를 사용하는 올드스쿨 기획자 입장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여기까지가 당장 생각나는 제가 노션을 싫어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팀에서 업무용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이상 노션 사용을 회피할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특징에는 분명 설계 철학이 한 몫 하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앞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금 싫어하는 특징 중 일부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으로 노션을 계속해서 사용해볼 작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