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력이 부족한 사람의 일상 기록
주의력이 부족한 사람이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먼저 일상을 기록해 현실과 마주해야 합니다.
몇 달 전 생각의 멱살에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주의력이 부족한 상태로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요령을 익힌 방법을 소개했습니다. 뭐 엄청 그럴듯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고 다행히 일상 생활과 직업 양쪽 모두에 주로 컴퓨터를 사용하기 때문에 한 가지 생각을 쭉 이어서 하기 쉽지 않은 상태를 생각을 하는 내내 생각을 직접 타이핑 해 가며 이어가는 방법입니다. 한편으론 손가락으로 생각을 타이핑 하지 않으면 생각을 이어갈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고민해 보기도 했지만 애초에 한 가지 생각에[ 시간을 들여 깊이 이어갈 수 없다면 그나마 타이핑의 도움을 받아 생각을 이어갈 수 있으면 나쁘지는 않다고 평가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주의력이 약한 사람들은 생각을 이어가기 어려운 특징 외에도 일을 시작하는데 시작 에너지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많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뭔가 있어 보이게 이야기했지만 그냥 게으른 특징으로 나타나는데 할 일이 눈 앞에 쌓여 있지만 도무지 시작할 엄두를 못 내고 그냥 바닥에 누워 있는 나날을 반복한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머릿속으로는 오늘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줄줄이 읊을 수 있지만 그 생각이 몸에 전달되어 몸을 움직여 실제로 일을 처리하기 시작하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일을 영원히 안 하는 것은 또 아닙니다. 일을 미루고 미루고 미루고 미룬 끝에 정말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는 순간, 사회적 존엄이 위협 받거나 회사에서 해고될 위기에 처하거나 당장 내일 출근할 때 갈아입을 옷이 단 하나도 없는 순간이 된 다음에야 일하기 시작하곤 합니다. 그런데 일을 일단 시작하고 나면 하기 싫어 미루던 일을 억지로 하는 느낌이 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일을 효율적으로 순식간에 처리해 버린 다음 다시 바닥에 누워 그 다음 할 일을 생각만 하고 도통 시작하지 않기를 반복합니다.
1년쯤 전 'ADHD들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TODO list를 기획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관한 포스트를 보고 비슷한 상태에 놓인 사람 입장에서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고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생각만 하고 또 여느 때와 같이 아무것도 안 한 채로 1년이 지났습니다. 이 글을 타이핑하는 오늘은 국군의날과 개천절 사이에 있는 임시 공유일인데 오늘 오후 시간을 좀 들여 지난번에 소개한 주의력이 부족한 사람이 생각을 이어 가는 방법에 이어 똑같은 사람이 할 일을 어떻게 관리하고 또 모든 일을 영원히 미루며 폐인이 되지 않는 아슬아슬한 경계선 위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이야기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에는 주의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사회에 꽤 많이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전에는 그렇지 않아 그저 어떤 행동을 과도하게 수행하거나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할 수 없는 상태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 사회에 꽤 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부터 생각에 집중하지 못하고 해야 할 일을 미룰 때 이런 상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이를 문제로 정의하고 적극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원칙은 기록입니다. 일단 제 스스로가 지독한 게으름뱅이여서 아무 것도 안 하고 그냥 누워 있기만 할 수도 있지만 정말로 그런지, 또 컴퓨터 앞에서 어떤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기록하지 않으면 평가할 수가 없고 평가하지 않으면 개선할 방법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을 시시각각 기록하려는 시도 자체가 아무 것도 안 하고 누워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결코 실행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평소처럼 살기만 해도 알아서 제가 하는 주요 행동을 기록해 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크게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 일상을 기록해 주는 소프트웨어와 컴퓨터를 사용할 때 일상을 기록해 주는 소프트웨어로 전자는 ‘Life Cycle’ 앱이고 후자는 ‘Rescue Time’이라는 서비스입니다.
먼저 'Life Cycle' 앱은 스마트폰에 설치한 다음 GPS와 모션 센서 권한을 부여하고 나면 제조사 주장에 따르면 하루 1% 정도 배터리를 추가로 사용해 어디에 얼마나 있었는지 알아서 기록해 줍니다.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 생활은 주로 현재 위치에 따라 결정됩니다. 가령 매일 아침, 저녁에 같은 장소를 오간다면 그 장소는 어쩌면 일터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매일 자정에 같은 장소에 있으며 그 시각 전후로 몇 시간에 걸쳐 폰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곳은 어쩌면 집일 가능성이 있으며 아마 잠 자고 있어 폰이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항상 정오 즈음에 걸어서 이동한 다음 비슷한 반경에 있는 장소로 이동한다면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함일 가능성이 있고요. 대략 이런 생각에 기반해 현재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규칙적으로 행동하는지에 따라 매일 무슨 일을 얼마나 했는지 알아서 기록해 줍니다. 기본적으로 앱이 집, 일터 같은 추측하기 쉬운 항목들을 자동으로 설정해 주지만 앱이 추측하지 못한 규칙적인 행동을 조금씩 설정해 주다 보면 아무 것도 안 하고 그저 폰에 앱을 설치한 다음 그냥 들고 다닐 뿐인데도 하루하루 어디서 무슨 일을 얼마나 했는지 기록된 자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처음 앱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그저 기록이 쌓일 뿐 별다른 인사이트를 얻지 못할 텐데 이 앱의 진짜 쓸모는 앱을 설치해 놓고 시간이 꽤 흐른 다음에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가령 앱을 한 주 사용하고 나면 지난 한 주 동안의 통계를 보여주는데 그저 집이나 회사에서 시간을 얼마나 보냈는지 뿐만 아니라 출퇴근에 시간을 얼마나 사용했는지, 집에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깨어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또 출퇴근 외에 걷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이번 주에 규칙적이지 않은 새로운 장소에 방문했는지 같은 정보를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통계는 주간, 월간, 연간으로 점점 확장되어 몇 년에 걸친 데이터를 모으면 분기나 연 단위로 일하는 시간이 얼마나 늘거나 줄었는지, 집이 아닌 곳에서 머무른 날은 얼마나 되는지, 운동은 얼마나 했는지, 잠은 얼마나 규칙적으로 자거나 잠자는 시간이 늘어나는 추세인지 혹은 줄어드는 추세인지, 출퇴근 시간이 늘어나는 추세인지 줄어드는 추세인지 따위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앱을 지난 2017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해 7년째 사용해 오고 있는데 월 단위로 회사에 머무른 시간이 늘어나거나 줄어듦에 따라 원격 근무를 얼마나 했는지, 출퇴근에 시간을 얼마나 소모했고 또 출퇴근에 소모한 시간과 잠자는 시간 사이에 연관관계가 있다는 사실, 또 운동 시간이 서서히 감소해 이전의 절반에 도달했다는 사실 등을 추측 대신 실제 데이터에 기반해 판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앱은 유료로 이런 보다 본격적인 통계를 볼 수 있지만 무료로 사용하더라도 컴퓨터를 일상과 업무에 활용할 수 있다면 굳이 유료로 제공되는 통계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유는 감사하게도 이 앱은 기록한 모든 데이터를 csv 포멧으로 내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csv 파일로 데이터를 받으면 이때부터는 뭐든지 마음껏 살펴볼 수 있는데 장소와 장소에 머무른 시간을 초 단위로 함께 기록해 주기 때문에 한 가지 행동에 소모한 기간 별 시간 합계, 평균 시간, 기간 별 평균 시간의 변화를 엑셀이나 구글 스프레드시트 같은 도구를 통해 직접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엑셀을 사용해 행동 각각에 따른 기간 별 통계를 살펴보고 피봇테이블 기능을 활용해 데이터를 탐색하고 또 연관관계 분석을 통해 서로 관계가 있는 행동을 알아냈습니다. 가령 출퇴근 시간의 증감과 잠자는 시간의 증감이 서로 관계가 있고 회사에 머무른 시간과 운동 시간의 증감이 관계가 있음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지만 이를 직접 숫자로 확인하기 전에는 이런 관계가 있음을 짐작조차 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엑셀을 통해 주로 살펴볼 통계가 어느 정도 고정된 다음에는 개인적으로 편리하게 사용하는 MySQL 데이터베이스에 csv 파일을 넣고 쿼리를 돌려 숫자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엑셀은 통계를 탐색하고 행동이나 시간 사이의 연관관계를 찾아내고 피봇테이블을 사용해 새로운 통계 유형을 발견하는데는 큰 도움이 되지만 이런 행동을 규칙적으로 수행하기에는 좀 거추장스러운 느낌이 있었습니다. 엑셀만 다룰 수 있었으면 엑셀 안에서 반복적인 숫자 탐색을 편안하게 수행할 방법을 찾아냈겠지만 같은 작업을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도구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데이터베이스에 직접 데이터를 쌓고 엑셀에서 발견한 숫자들 사이의 관계를 직접 조회한 결과를 보며 일상 생활 속에서 행동의 변화를 찾아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엑셀 사용을 그만 둔 것은 아닌데 여전히 반 년이나 일 년에 한 두 번 정도는 새 csv 파일을 엑셀에 넣고 새로운 연관관계가 있는지 탐색하고 있습니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상황의 일상을 기록하는데는 ‘Rescue Time’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소프트웨어의 근본적인 목적은 컴퓨터를 사용하는 시간과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기록해 생산성을 모니터링 하기 위한 것인데 회사 단위에서 사용하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만 개인이 사용하기에도 충분합니다. 사용하는 컴퓨터에 이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로그인 해 두기만 하면 됩니다. 만약 사용하는 컴퓨터가 여러 대라면 컴퓨터 각각마다 설치해 두면 되는데 제 경우에는 사용하는 컴퓨터가 총 네 대여서 네 대 각각 설치해 두고 있습니다. 그 중 석 대는 윈도우, 한 대는 맥인데 다른 OS를 지원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설치해 둔 다음 이전 Life Cycle 앱처럼 설치 사실 자체를 좀 잊고 살다가 어느 날 웹사이트를 열어 보면 지금까지 생각하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현실을 적나라하게 기록한 결과가 자신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이 서비스가 알고 있는 프로그램과 웹사이트에 대해 생산적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구분해서 표시해 줍니다. 가령 위 스크린샷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컴퓨터를 사용한 기록인데 파란색으로 표시된 서비스는 생산적인 것, 빨간색으로 표시한 것은 그렇지 않은 것, 그리고 회색은 이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거나 Rescue Time 서비스가 모르는 앱이나 웹사이트를 나타낸 것입니다. 개인적인 일상, 그리고 업무 대부분을 개인 컨플루언스와 개인 지라를 통해 수행하고 있어 아틀라시안 도메인 밑에 있는 웹사이트를 가장 오래 사용하고 있고 그 다음으로 마스토돈과 트위터를 많이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서비스 역시 수 년에 걸쳐 사용해 온 덕분에 평소 컴퓨터를 사용할 때 이 서비스가 제 컴퓨터 사용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 비생산적인 활동을 최소화 하고 생산적인 활동에 집중하도록 습관을 바꾼 결과 지금처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사용을 줄이고 또 유튜브 영상을 멍하니 쳐다보는 시간 역시 극적으로 줄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통계로 직접 보기 이전에는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었지만 컴퓨터를 사용해 실제로 무슨 일을 얼마나 하는지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카페 등에서 랩탑 배터리를 다 썼지만 정작 진행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일 때도 있었는데 그렇다면 랩탑 배터리는 도대체 어디다 다 쓴 것인지 알 수 없는 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Rescue Time을 사용하기 시작하자 어떤 웹사이트에 얼마나 머물렀는지 가혹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잠깐 씩 봤다고 생각한 트위터 사용 시간을 모두 합치자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시간이 튀어나왔고 이게 정말 맞는지 검산하는데 시간을 보냈으며 또 그만큼의 시간을 놀라워하는데 사용했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스스로의 컴퓨터 사용 습관의 현실과 대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서비스는 그저 제 행동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지만 이 소프트웨어의 존재를 인식하며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할 때 수행하려던 과업에 조금 더 집중하고 주의력이 흐트러질 때 덜 생산적인 소프트웨어와 웹사이트를 사용하더라도 이 시간을 최소화하고 또 이렇게 보내는 시간이 전체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인지 혹은 줄어드는 추세인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하루하루 마스토돈 타임라인을 읽는데 쓰는 시간을 점점 줄여 가는 직접적인 행동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긴 시간에 걸쳐 과업을 수행하는데 사용하는 세부 소프트웨어의 변화를 통해 과업의 종류가 변해 가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던 점도 의미 있습니다. 가령 어느 때는 주로 문서 작성 도구만 사용해 일하다가 어느 때는 한동안 인터페이스를 그리는데 시간을 사용하다가 또 어느 때는 하루 종일 빌드와 지라를 붙잡고 테스트를 반복하는데 시간을 보내곤 하는데 이렇게 업무 구성의 변화와 생산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시간, 그렇지 못한 시간 사이의 관계를 추측할 수 있었던 점도 좋았습니다.
주의력이 부족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 비슷하게 살아가기 위해 지난번 생각의 멱살에서는 한 가지 생각을 길게 유지하고 또 생각이 중단되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는 대신 이전에 남긴 기록에 기반해 생각을 이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했고 오늘은 할 일을 관리하기 위해 우선 일상을 기록해 자신의 행동과 컴퓨터 사용 습관의 적나라한 기록과 대면하는 방법을 소개했습니다. 기록 자체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기록 방법이 일상에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하는 점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의식적으로 엑셀에 한 시간 마다 지난 한 시간 동안 한 일을 직접 기록해야 했다면 이런 데이터는 단 며칠도 기록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Life Cycle, Rescue Time 둘 다 그냥 설치한 다음 잊어버리면 뒤에서 조용히 스토커처럼 기록하고 있다가 이 적나라한 데이터와 대면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큰 도움이 됐고 또 아주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 기록에 대해 소개했으니 다음에는 실제로 할 일을 쌓고 이들을 하나하나 수행해 가는 개인적인 요령을 소개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