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작업용 기계와 유튜브 기계 리뷰의 영상제작 편향
문서 작성에 사용하는 기계도 어느 정도 좋은 사양일 때 생산성이 올라갑니다.
요즘은 그런 표현이 좀 덜 사용되는 것 같지만 꽤 오랜 세월에 걸쳐 컴퓨터를 구입할 거라고 하면 용도에 따라 사양을 추천하는데 항상 문서 작업과 웹서핑은 가장 낮은 사양의 컴퓨터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어 왔습니다. 문서를 만든다고 하면 워드를 실행해 타이핑하거나 브라우저로 위키 웹사이트를 열어 파이팅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데 확실히 이런 작업을 어지간히 한다 하더라도 높은 사양을 필요로 할 것 같지 않습니다. 웹서핑 역시 그저 웹을 돌아다니며 유튜브 영상 보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글을 읽고 또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보고 인터넷 쇼핑 사이트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또 메일을 확인하는 정도 작업을 생각하면 이 역시 그리 높은 사양이 필요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기준에 맞춰 제시되는 사양을 살펴보면 이제 슬슬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하는데 CPU 성능이 낮아지는 건 기본이고 더 적은 램, 더 적은 스토리지, 사실상 없는 것과 다름 없는 GPU 따위가 달려 있음과 동시에 스토리지 역시 더 속도가 느리고 턱없이 저렴한 구식 스토리지를 붙여놓은 컴퓨터를 당당히 업무용이라고 써 붙여 판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문서를 작성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언제 어느 시점에라도 하루 중 문서를 작성하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들어 있습니다. 문서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팀 내에서 의견을 일치시키기 위해 생각을 공유하는 문서부터 시작해 팀 밖으로 나가 실제 개발에 기여하게 될 기획서나 회의 결과를 기록한 회의록, 주요 인터페이스 설계를 담은 그림 위주의 문서, 또 엑셀 스프레드시트, 텍스트 형식으로 된 데이터 등 그저 문서라고 부르기에는 꽤 넓은 범위의 결과물들을 문서라고 부릅니다. 여러 문서를 작성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문서 작성에 사용’한다 하더라도 고사양 기계를 사용할 것을 사람들에게 권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서 작성 목적이라고 하면 일단 그 시대에 사용 가능한 모든 부품 중에서 가장 저렴하고 가장 질 낮은 부품들을 끌어모아 그럭저럭 윈도우가 굴러가게 만든 다음 그걸 부품의 총합에 비해 지나치게 비싼 가격에 팔고 있는 꼴도 마음에 안 들었고 또 그런 버벅거리는 기계를 사용하며 낮은 생산성에 머무르는 꼴 역시 보고 싶지 않습니다.
업무용, 혹은 문서 작성에 사용하는 기계는 다른 작업에 필요한 기계만큼은 아니지만 적어도 중간 수준 이상의 사양을 갖춘 좋은 기계여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문서 작성에 사용하라고 광고하는 기계들은 전부 집어 치우고 문서나 좀 작성하고 인터넷이나 좀 사용한다 하더라도 충분히 좋은 기계를 사용해야 합니다. 지금부터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컴퓨터를 익숙하게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컴퓨터가 조작에 따라 빠릿하게 반응하는 상태여야 작업의 흐름이 끊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령 고속도로에서 앞 차를 추월하고 싶어 추월 차선으로 나왔지만 출력이 충분하지 않거나 출력이 천천히 오르면 이미 추월하려고 마음 먹은 차량은 이미 저 앞에 가 있고 내 뒤로 상향을 올린 차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게 될 겁니다. 결국 별 수 없이 아무 것도 달성하지 못하고 주행 차선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데 컴퓨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파일을 열 때, 웹사이트를 열 때, 영상을 재생할 때, 음악을 들을 때 각각의 작업이 빠릿하게 수행되지 않으면 작업 흐름이 끊기고 작업이 완료되기를 기다리는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낭비하게 되며 그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주의력이 흐트러질 수 있습니다.
1메가도 안되는 작은 워드 문서를 편집하는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이 작업에 맞춘 인터넷에서 파는 아주 싼 기계라도 이 정도 작업이 느리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현대에는 문서는 글씨만으로 구성되지 않습니다. 문서 하나는 글씨 뿐 아니라 그림, 영상, 테이블, 스프레드시트, 외부 데이터 소스 등 다양한 구성요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 문서에 넣을 사진을 열려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사진은 아이폰으로 찍은 11메가 짜리 JPG 파일입니다. 이 파일을 더블클릭 했더니 마우스커서가 모래시계로 바뀌며 한동안 아무 반응도 없을 테니 잠시 하염없이 모니터를 바라보며 기다리든지 옆에 있던 스마트폰을 집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올라왔을 새로운 글을 좀 살펴보다 보면 이미지가 열릴 겁니다.
올바른 이미지인지 확인한 다음 이를 복사해서 워드에 붙여 넣으면 이번에는 아까보다 긴 시간이 걸릴 텐데 이번에는 이미지를 읽어 워드 파일에 전용 포멧으로 포함한 다음 이를 워드 형식으로 화면에 표시하는데 아까보다 훨씬 더 많은 연산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과장한 시나리오가 아닙니다. 현대에 인텔 i3 계열 프로세서, 4기가 램, EMMC 스토리지를 쓰는 기계에서 워드 파일에 이미지 하나 집어넣으려고 하면 흔히 겪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고작 워드 문서에 사진 하나 넣으려다가 시간은 시간대로 낭비하고 괜히 스마트폰을 집어 들어 이후 몇 분을 더 무의미하게 보내게 됐습니다.
이번에는 시나리오를 바꿔 워드 대신 위키에 글을 쓰는 상황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컨플루언스 위키에 새 페이지를 생성하고 글을 타이핑하기 시작했는데 한참 글을 쓰다 보니 중간에 인터페이스를 설명하는 그림이 하나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인터페이스 작성애 즐겨 사용하는 발사믹 와이어프레임을 사용해 인터페이스를 그리기로 결정합니다. 발사믹 와이어프레임 데스크탑 앱을 실행했더니 이번에도 마우스 커서가 모래시계로 바뀌며 한동안 아무 일도 안 일어나다가 한참 만야에 창이 떠 인터페이스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뜨는데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일단 뜨고 나자 그럭저럭 별로 느리지 않게 작업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이제 발사믹 와이어프레임에서 그린 결과를 위키로 옮겨야 하는데 위키에는 이미지 모양으로 붙여 넣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방금 그린 와이어프레임을 전체선택하고 이미지로 복사 바로가기 키를 누릅니다. 발사믹 와이어프레임 앱은 아무 반응이 없었지만 앱이 얼어붙어 ‘응답없음’ 상태로 바뀐 것으로 미루어 내부에서 한창 뭔가를 하고 있을 것 같아 보입니다. 한참만에야 응답없음 상태가 풀렸고 브라우저로 열어 놓은 위키 페이지에 인터페이스 이미지를 붙여 넣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상황을 아주 조금만 과장해 보겠습니다. 약 2주 쯤 전에 워드 문서로 작성한 글을 보낼 일이 있어 그동안 준비한 워드 파일을 메일로 전송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열어 내용을 점검하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문서 대부분이 글이고 적은 수의 그림이 저해상도로 포함되어 있어 파일 자체가 그리 무겁지 않았습니다. 파일 용량은 3.7메가 남짓입니다. 이미 이전에 점검하던 곳 다음부터 점검할 생각으로 파일을 열어 총 477페이지 중 300페이지 정도를 열려고 마음 먹었는데 파일이 열리긴 했지만 Ctrl + End
키를 눌러도 한 25페이지 정도에 멈춰 그 자리를 문서의 맨 마지막이라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워드 하단의 스테이터스바를 가리킨 마우스커서가 모래시계로 바뀌었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를 반복하며 워드가 뭔가 작업 중이라는 사실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결국 처음으로 300페이지에 커서를 갖다 놓고 문서를 검토할 수 있었던 시점은 이로부터 몇 십 초가 더 지난 다음의 일이었고 작업 시작은 그보다 더 오래 딜레이 되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그 하나하나만 생각하면 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작은 조각들이 모여 훨씬 더 큰 시간이 되고 그 큰 시간 동안 멍하니 기다리거나 다른 일에 주의력을 빼앗기거나 한참 흐름을 타던 업무가 끊겨 다시 이전과 비슷한 몰입 상태에 도달하는데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됩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지갑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가장 좋은 기계를 구입해 사용하라고 입이 닳도록 말하곤 하는데 여기에 덧붙여 업무용이든 문서를 작성하든 뭘 하든지 간에 가능한 좋은 기계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이 이야기를 먼저 하는 이유는 좋은 기계, 즉 더 비싼 기계를 구입을 권할 때 항상 듣는 이야기가 ‘나는 문서작성이나 좀 할건데’ 라는 것이었고 저는 이 말에 ‘저도 문서 작성해서 먹고 살아요’라고 답합니다. 문서 작성 역시 컴퓨터로 하는 여러 다른 작업 못지 않게 높은 사양이 필요하며 높은 사양은 업무 효율을 올려줄 뿐 아니라 주의를 잃지 않게 해 주고 몰입을 깨지 않게도 해 줄 뿐 아니라 실제로 문서 내용을 풍부하게 하는 역할도 합니다.
만약 충분히 좋은 기계를 사용해 문서를 작성하고 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또 무슨 일이 안 일어나는지 생각해봅시다. 수 백 페이지 짜리 워드 문서는 순식간에 열릴 것이고 기껏해야 2~3초 안에 맨 마지막 페이지까지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상태로 준비되기 때문에 문서를 열자마자 이전에 작업하던 위치로 한 번에 이동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겁니다. 스크롤 역시 순식간에 이루어지므로 모래시계로 변한 마우스커서를 바라보며 멍하니 기다리거나 그 사이를 못 참고 다른 창으로 넘어가 주의를 빼앗기거나 아예 스마트폰을 집어 드는 상황은 아예 일어나지 않습니다. 커다란 이미지 역시 순식간에 열리고 순식간에 복사되고 순식간에 붙여넣어집니다. 이 사이에 아무 딜레이도 없고 이 작업을 머릿속으로 생각한 다음 명령이 손으로 전달되어 입력된 다음 그 결과가 바로 모니터에 나타나고 다시 눈을 통해 머리로 돌아오는 사이클에 딜레이가 없어지면 집중한 상태로 계속해서 작업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 중간에 다른 창으로 넘어가거나 스마트폰을 집어 들 여유 따위는 없습니다. 문서에 포함할 드로잉을 작성할 외부 앱 역시 순식간에 실행되고 완성된 드로잉 역시 이미지 모양으로 빠르게 복사되고 빠르게 붙여 넣을 수 있으며 저장할 때 딜레이도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도 주의가 산만해질 여지는 없습니다. 처음에 이 비싼 장비를 고작 ‘문서 좀 쓰기 위해’ 구입했다고 생각했을 수 있지만 이 장비는 수명을 다하는 그 순간까지 엄청난 시간을 아끼고 또 높은 집중력을 조금이라도 더 긴 시간에 걸쳐 유지하도록 해줄 겁니다.
한동안 윈도우 기계를 조립해서 구입한 적이 없어 이런 ‘문서 작성용’으로 만들어진 기계를 접할 일이 없었다가 최근에 유튜브 영상을 통해 새로운 컴퓨터를 소개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한동안 잊고 살았던 문서 작성에 사용하기 적합한 사양이라는 표현을 들었고 기분이 확 안 좋아졌습니다. 현대에 유튜브 영상을 통해 주로 정보를 얻고 있습니다. 그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기 딱 좋은 모양으로 그럴싸한 설명과 그에 어울리는 화면을 동시에 보여주고 또 들려주며 정보를 전달하면 그냥 영상을 끝까지 보고 나면 마치 그 영상에 포함된 디테일을 모두 받아들인 것만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또 적극적으로 글을 읽어 내려가야 하는데 비해 영상은 배속을 올려 떠들게 만들어 놓고 다른 일을 병행하다가 제가 원하는 정보인 것 같으면 다시 영상으로 돌아가 재생 속도를 약간 줄인 다음 정보를 습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상에서 컴퓨터를 소개할 때 두 가지 편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지금까지 길게 설명한 ‘업무용’ 혹은 ‘문서 작성용’ 기계에 대한 저평가입니다. 문서 작성에 아주 높은 사양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맞지만 컴퓨터 시장 전체에서 가장 낮은 사양의 장비들을 모은 수준 낮은 기계에 의존할 만큼 그렇게 낮은 사양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물리적으로 가능은 하겠지만 위에서 이야기한 온갖 상황들로 인해 더 낮은 주의력을 통해 작성하고 같은 작업을 하는데 더 오래 걸리며 이 때마다 몰입이 깨져 더 낮은 수준의 문서를 작성하는 결과로 연결됩니다. 문서 작성에는 적어도 윈도우와 문서 작성에 사용하는 여러 앱을 동시에 띄운 상태가 부드럽게 동작하는 수준의 사양은 필요하며 이는 흔히 ‘문사 작성용’이라고 소개하는 가장 질 낮은 기계보다는 훨씬 비싸고 훨씬 좋은 장비여야 합니다.
두 번째는 충분한 사양의 기준이 ‘영상 편집’ 목적에 치우쳐 있습니다.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사람들은 당연히 영상 제작에 초점을 맞추기 쉽습니다. 또 그 영상을 보는 시청자들 역시 상당수는 영상을 적극적으로 만드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영상은 FHD 수준의 저해상도에서 컷을 좀 편집하고 자막을 좀 넣고 적당한 효과를 넣는 수준에서는 그리 고사양이 필요하지 않지만 본격적으로 영상을 여러 포멧으로 렌더링하고 보다 큰 해상도에서 작업하고 여러 소스로부터 얻은 영상에 색상을 맞추는 등 조금만 뭘 더 하려고 하면 급격하게 더 좋은 장비가 필요합니다. 그렇다 보니 유튜브에서 컴퓨터를 소개할 때 기준이 영상 편집에 맞춰져 있는 경우가 많고 유튜버 스스로가 영상 편집을 얼마나 더 편안하게 할 수 있었는지에 따라 좋은 기계와 덜 좋은 기계가 구분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영상 편집을 원활히 할 수 있는 기계라면 아마도 문서 작성과 문서에 포함될 다양한 요소의 저작도구들을 동시에 띄워 놓아도 분명 충분히 잘 동작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데 가령 아주 높은 해상도 영상을 리얼타임보다 더 빨리 인코딩 해 내는 기계라도 기초적인 입출력에 병목이 있으면 앞에서 소개한 그림을 붙여넣는데 버벅거리는 상황이나 무거운 문서를 편집하는 상황에서 다른 앱이나 브라우저, 브라우저를 통한 서비스를 띄우는데 버벅거릴 수 있으며 이는 영상을 아무리 빨리 렌더링하더라도 영상 작업에만 유효할 뿐 다른 포그라운드 작업에는 유효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크게 두 가지 결론에 도달하는데 하나는 문서 작업에 대단한 고사양 장비가 필요하지 않은 것은 맞지만 일상적인 작업의 몰입 상태를 깰 정도로 기계가 느려지면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이 경계선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아무리 업무용 혹은 문서 작업에만 사용하는 기계라고 하더라도 지갑이 허락하는 한 가장 좋은 기계를 사용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유튜브를 통해 기계에 대한 정보를 얻을 때 기계의 사용 용도가 영상 편집과 내보내기에 치우쳐 있어 영상 작업이 아닌 문서 작성을 포함한 일상 작업에도 영상에서 본 것과 같은 성능과 같은 경험을 줄 거라고 예상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