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를 기억에 사용하는 관점에서 대시보드 앱의 불필요함
지금까지 제 요구사항에 맞는 대시보드 앱을 찾기 위해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시행착오를 겪은 다음 문득 제 요구사항에 맞는 대시보드 앱은 이미 제 가까이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기록을 만드는 행동의 일부를 메모한다고 불러도 될 지 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만약 기록하는 일을 메모하는 일로 바꿔 말해도 괜찮다면 저는 아마도 메모를 적게 하지는 않는 편에 들 겁니다. 가장 근본적으로 단순히 생각을 해 나가기 위해 메모가 필요합니다. 다른 수많은 사람들은 머릿속으로만 생각을 이어 나갈 수 있지만 저는 개인적인 이유로 그러기 쉽지 않습니다. 마치 거대언어모델이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사용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긴 프롬프트를 읽은 다음 실제 사용자의 명령을 읽는 것처럼 만약 머릿속으로만 뭔가를 생각하려 한다면 마음 단단히 먹고 생각이 다른 곳으로 튀지 않도록 정말 온 힘을 다 해야 합니다. 하지만 손으로 타이핑 하며 생각을 이어 나가면 생각이 다른 곳으로 튀려는 순간 손가락으로 타이핑 하는 행동이 생각을 붙들어 주기 때문에 같은 생각을 좀 더 잘 이어갈 수 있습니다. 위키 모양의 기록 방법을 꽤 이른 시점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왕에 기록을 남길 거라면 위키 모양으로 기록을 남기는 편이 미래에 더 효율적일 수 있음을 기록에 의존해 생각을 시작한 초기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위키위키의 근본은 여러 사람이 동시에 여러 문서 뭉치를 편집해 나가고 이 모든 수정사항이 기록에 남아 히스토리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혼자 사용하는 관점에서 위키는 아무 위치, 아무 이름으로나 문서를 생성하고 문서의 모든 변경사항이 기록에 남으며 문서들을 서로 하이퍼링크를 통해 연결하는 문서 작성 방법을 말합니다. 마치 하이퍼링크의 시초로 알려진 vCard와 별로 다르지 않은 기록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 블로그 역시 새로 작성하는 글은 항상 이보다 과거에 작성된 글을 참조하기 위해 링크를 사용하므로 넓은 의미에서 개인이 사용하는 위키의 특성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편 제게 메모 혹은 기록은 생각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 거의 반 강제적으로 필요한 행동이었기 때문에 이 분야의 선구자들과 비교할 때 좀 늦고 또 좀 원시적이며 또 좀 비효율적일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 나름대로의 연구와 실험을 반복해 적어도 제가 실천하기에 적절하고 또 장기적으로 안전한 방법에 도달했습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메모 도구는 두 가지인데 각각 지라와 컨플루언스입니다. 이 도구가 개인이 사용하기에 좀 거추장스럽고 또 이런 용도로 사용하라고 만든 도구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이 블로그에서 이전에 이 도구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많이 해 온 것 같으니 오늘은 생략하겠지만 여전히 이 도구들은 주로 기업 수준에서 여러 사람이 적극적으로 할 일을 관리하고 또 문서를 생산하는 정보시스템으로써 활용되고 있다는 점은 이 도구를 개인 수준에서 기껏해야 메모에 활용한다는 점은 좀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라는 메모에도 유용해요에서 이야기한 대로 짤막하게 남긴 메모는 그 메모를 한 행위에서 일이 끝나지 않고 메모에 의한 그 다음 행위로 이어진 다음에야 메모의 역할이 끝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가령 샤워 하고 나오면서 마지막 하나 남은 비누가 얇아져 이제 새 비누를 주문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상황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가장 올바른 행동은 그 즉시 아이폰을 집어 들고 비누를 주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메모를 할 필요도 없이 바로 필요에 따른 행위를 끝마쳤기 때문에 더 이상 일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 이상 아무런 생각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할 일을 생각한 시점에 그 생각에 따른 행동을 바로 이어서 할 수 없을 때도 있고 또 이런 생각을 모아 뒀다가 한 번에 실행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비누를 주문해야 한다는 메모를 지라에 ‘비누’라는 이름으로 태스크를 만들어 놓습니다.
지라는 처음부터 어떤 기록을 만들면 그 기록에 일련번호가 부여되는데 이 기록이 지정된 순서에 따라 완료 상태가 될 때까지 그 중간 과정을 추적하는 도구입니다. 중간 과정을 필요에 따라 굉장히 강력하게 수정할 수 있어 일 하는 모양이 잘 정립된 환경에서 일이 이미 결정된 규칙에 따라 수행될 때 상황을 관리하기 편하게 만들어 줍니다. 가령 지라 프로젝트를 처음 만들면 모든 할 일은 ‘To Do’, ‘In Progress’, ‘Done’의 세 가지 상태가 될 수 있고 할 일을 처음 만들면 ‘To Do’ 상태로 시작합니다. 이제 만들어진 일의 상태를 바꾸고 또 할 일을 열어 진행 상황을 메모할 수도 있습니다. 앞서 저는 밤에 샤워하고 나와 일단 옷을 갈아 입은 다음 잊어버리지 전에 아이폰을 집어 들어 개인 할일 지라 프로젝트에 ‘비누’라는 할 일을 만듭니다. 이렇게 제목만 입력한 지라 태스크 하나를 만드는데는 5초 정도 걸립니다. 이 태스크에는 자동으로 ‘TODO-5183’이라는 일련번호가 부여되며 이제 이 일이 ‘Done’ 상태가 될 때까지, 그리고 제가 의도적으로 이 태스크를 삭제하지 않는 이상 시스템 상에 영원히 남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슬슬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 자러 갑니다. 오늘의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이고 이제 자고 일어난 다음 날의 새로운 제가 전 날 남겨 놓은 태스크들을 보고 이를 수행해 줄 겁니다. 그러니 더 이상 뭔가를 기억하려 하거나, 반대로 잊어버리지 않으려 노력하며 고통 받는 대신 깔끔하게 모든 것을 잊어버려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적어도 정신적으로는 편안하게 오늘을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다음 날의 새로운 저는 이전의 제가 남겨 놓은 태스크를 살펴보고 적당히 빈 시간에 각각을 수행합니다. 이 중에는 새 비누를 주문하는 ‘TODO-5183’도 포함됩니다. 이 메모를 지탱하는 지라가 없다면 저는 훨씬 더 엉망인 삶을 살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메모는 제 입장에서 크게 두 가지 방식의 결말을 맞습니다. 하나는 ‘TODO-5183’의 사례처럼 어떤 행동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 저녁거리를 사 들고 가는 행동이나 오후 3시에 참여할 어떤 회의 준비를 하는 것도 있습니다. 이런 지라 태스크는 서로 다른 개인 지라 프로젝트에 만들어지는데 이 모두가 똑같이 제가 어떤 행동을 하기를 요구하고 제가 그 행동을 하는 결말로 끝나거나 어떤 이유로 태스크를 수행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태스크를 닫는 결말로 끝납니다. 또 다른 결말은 태스크를 만들게 만든 그 기록, 즉 메모 자체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협업 부서의 동료와 짧은 대화를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저와 스치고 지나가기만 해도 회의록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하는데 약간 과장해서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와 크게 다르지도 않습니다. 나중에 그 기록을 누가 읽든 말든 일단 기록을 만들어 놓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기록 방식 때문에 저와 이야기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분들도 있고 이 반응이 낯설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저와 이야기하고 나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기록이 남고 그 기록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도움이 될 상황을 만들어냅니다. 만약 빌드의 어떤 예상하지 않은 동작에 대해 추긍을 받는 상황이지만 왜 이렇게 작업했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 만약 과거에 저와 이 동작에 대해 이야기한 것 같은 기억이 난다면 검색을 통해 그 근거를 찾을 수 있고 위기를 안정적으로 돌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무슨 기억력이 좋아서 이 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을까요? 또 제가 기억력이 좋아서 나중에 그 메모들을 기억해 내고 꽤 긴 기간에 걸쳐 일관성 있는 의사결정을 하고 또 미래에 과거의 제 결정을 번복할 때 미리 부터 도개자부터 박고 시작하는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와는 정 반대입니다.
메모 할 일이 일어나면 일단 지라 앱 부터 열고 시작합니다. 제가 회사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면 지라 웹사이트가 항상 열려 있기에 재빨리 화면을 클릭하고 새 태스크를 만듭니다. 제목에 방금 나눈 이야기를 아무렇게나 적어 두면 끝납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난 다음 지라 태스크를 열어 내용에 방금 한 이야기를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키보드를 두드려 재빨리 휘발성 뇌에서 비휘발성 지라 태스크로 옮깁니다. 휘발성 뇌에서 비휘발성 지라 태스크로 옮길 때는 미래의 제가 그리 똑똑하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만약 현재의 제가 알고 있는 어떤 규칙, 축약된 표현, 처음 들은 단어 따위를 있는 그대로 빠르게 옮기는데만 집중해 기록하면 미래의 저는 이를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잠시 후의 저, 또한 내일의 저나 그보다 더 먼 미래의 저를 신뢰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최대한 줄임말을 사용하지 않고, 현재의 저만 알 것 같은 단어를 함부로 사용하지도 않은 채 웬만하면 오늘 이 기록을 남기는 저에 비해 기반지식이 없을 미래의 제가 읽어도 대강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문장을 사용해 기록을 남깁니다. 맞습니다. 문장입니다. 메모는 주로 문장 모양으로 남기는데 이는 현재의 저와는 명백히 다른 사람인 미래의 제가 읽더라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 시점까지 메모의 가장 큰 역할은 휘발성 뇌로부터 비휘발성 기록매체인 지라 태스크로 기억을 옮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서 메모는 메모를 한 그 행위에서 끝나지 않고 반드시 어떤 실행으로 이어지거나 기억으로 이어진다고 이야기했습니다. ‘TODO-5183’은 다음 날 비누를 주문하는 행동을 한 다음 끝납니다. 회사에서 짧은 대화를 통해 만들어진 지라 태스크 역시 이 내용으로 회사 컨플루언스에 짧은 기록을 만들고 또 필요하다면 이로부터 파생된 액션 플랜을 만들어낸 다음 끝납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효과가 추가되는데 바로 제가 이 메모의 내용을 기적적으로 기억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흔히 메모를 ‘나중에 참고하기 위해’ 남긴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고 또 여러 매체에서 그렇게 표현합니다. 또 제가 생활하며 만나는 사람들이 메모를 사용하는 모습 또한 비슷한 형태로 나타나곤 합니다. 회의를 하려고 모여 앉았는데 누군가 발언을 위해 노트를 뒤적여 자신이 해야 할 말의 근거가 적힌 부분을 찾아낸 다음 발언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메모는 나중에 참고하기 위해 작성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행동을 살펴보면 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메모를 하는 순간 이미 이 메모의 존재에 대한 기억이 남고 나중에 메모를 참고하는 이유는 부정확할 수 있는 기억을 뒷받침하기 위함입니다. 메모를 하는 순간 이미 기억했습니다. 단지 그 정확성을 담보하기 위해 메모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앞서 메모를 하는 행동은 휘발성 뇌에서 비휘발성 지라 태스크로 기억을 옮기는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실은 뇌에서도 휘발성 영역에서 비휘발성 영역으로 메모의 일부, 또는 적어도 이런 메모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옮겨지는 것 같습니다. 일단 메모하고 메모에 기반해 회사 컨플루언스에 새로운 페이지를 만들고 나면 이 행동으로 인해 저는 이런 일이 있었다는 기억을 가지고 있게 됩니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과 다른 이야기를 하며 이 때의 기억을 자연스럽게 인용하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미루어 일단 메모를 하면 이 기록은 아틀라시안 서버와 회사 컨플루언스 서버에 기록됨과 동시에 저 자신에게도 기록되는 것 같습니다. 앞의 두 가지 기록은 전기가 공급되는 한 유지되겠지만 맨 마지막 기억은 제 의지와 달리 종종 유실될 때도 있는데 이럴 때 다시 참고하기 위해 앞의 두 가지 메모가 존재합니다. 이 경험의 핵심은 메모는 나중에 참고하기 위해서 남기는 것이 아니라 메모 하는 그 행위로부터 이미 기억에 남아 실은 메모를 더 이상 참고할 일이 잘 일어나지 않으며 어쩌다 그럴 일이 생길 아주 적은 때를 대비하기 위한 용도가 없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시중에는 여러 가지 대시보드 앱이 있고 과거부터 이런 대시보드 앱이 꽤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앱이나 웹사이트를 열면 오늘 일정과 할 일이 일목요연하게 나타나고 바깥 기온이나 교통 상황, 다른 관심 가질만한 주제 따위가 예쁜 모양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무척 매력적입니다. 과거에는 회사에서 지급한 오피스 스위트에 포함된 아웃룩 앱이 이런 역할을 하곤 했습니다. 연락처, 메일, 캘린더, 할일을 앱 하나로부터 관리할 수 있는 이상 아웃룩 앱 자체가 일종의 대시보드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프로젝트의 핵심 기록 도구가 원노트에서 컨플루언스로 바뀌고 팀의 핵심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메일에서 슬랙으로 바뀌었으며 팀이 생산하는 빌드는 마이크로소프트 제품과 아무 관계 없는 완전히 독립된 형상관리도구와 완전히 독립된 CI 솔루션에 의해 관리되면서 아웃룩에 남은 의미 있는 기능은 회의실 관리 시스템을 연동해 일정을 만들 때 회의실을 초대하면 회의실을 예약할 수 있는 점 정도만 남게 되어 과거와 같은 대시보드로써 역할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이 역할을 대신할 만한 적당한 도구가 없을지 찾아보는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메일을 잘 사용하지 않지만 여전히 메일을 볼 수 있어야 하고 일정을 볼 수 있어야 하며 기왕이면 어제 하루 동안 지나간 여러 슬랙 채널의 대화들 중 제가 신경 써야 할 것 같은 항목을 요약해주면 좋겠고 또 컨플루언스에 새로 작성되었거나 수정된 문서를 요약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퇴근 시간이 가까워 오면 바깥 날씨를 미리 알려줘 회사 입구까지 갔다가 우산을 가지러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불상사를 막아줄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또 자주 사용하는 웹사이트의 링크가 늘어서 있어 클릭 만으로 빠르게 필요한 웹사이트로 이동하고 또 필요한 앱을 빠르게 실행할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 이런 요구사항을 한 번에 충족하는 앱이나 서비스를 찾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먼저 제가 자주 실행하는 프로그램이나 제가 자주 방문하는 웹사이트를 빠르게 실행하는 방법은 오직 이 목적에만 집중한 전용 하드웨어가 판매되고 있습니다. 컴퓨터에 연결한 다음 각 하드웨어 버튼에 프로그램이나 웹사이트를 연결하면 기계의 하드웨어 버튼을 누르면 원하는 앱이나 웹사이트가 순식간에 나타납니다. 버튼 각각은 낮은 해상도로 이미지를 표시할 수도 있어 각 버튼마다 버튼에 해당하는 기능을 이미지나 텍스트로 표현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전에 함께 일한 적 있는 한 동료는 언리얼에디터, PIE 클라이언트 실행, 게임서버 실행, OBS, 엑셀, 퍼포스, 인하우스 데이터컨버터 등을 하드웨어 버튼에 매핑해 놓고 순식간에 눌러 실행하곤 했는데 그 모습이 정말 멋져 보였습니다. 저 장치를 살까말까 고민하다가 문득 저는 책상 위에서 마우스까지 손을 멀리 가져가는 것조차 귀찮아한 나머지 마우스를 오른손 바로 옆에 놓을 수 있는 아주 작은 키보드를 사용하기를 고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제 자리에 찾아와 뭔가 해 보려던 사람들이 키보드 앞에서 당황하는 모습이 너무나 익숙해 회사에서 지급한 키보드를 반납하지 않고 ‘손님용 키보드’로 계속해서 컴퓨터에 꽂아 놨다가 누군가 제 자리에 찾아오면 제 키보드를 뒤로 밀쳐 놓고 ‘손님용 키보드’를 앞으로 꺼내 손님들이 당황할 일을 방지합니다. 이런 작은 키보드를 오래 사용하다 보면 풀 사이즈 키보드에서 펑션 키가 있는 6열까지 손을 옮기는 것조차 귀찮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작은 키보드에서 펑션 키는 5열에 있는 숫자 키를 다른 키와 함께 눌러서 조작하는데 이를 통해 손이 정 위치를 거의 떠나지 않고서도 다른 키보드에는 6열에 있는 키를 5열 까지만 손을 움직이면서도 누를 수 있습니다. 이런 모당에 보통은 키보드 뒤에 두는 그런 하드웨어를 조작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자주 사용하는 동작을 짧은 윈도우 배치파일로 만든 다음 Windows + S 키를 누르면 나타나는 창에 명령어를 빠르게 타이핑하는 방식으로 실행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오늘 할 일은 지라에 나타납니다. 이곳에는 제가 할 일 뿐 아니라 제가 오늘 알아 둬야 할 메모가 함께 표시됩니다. 이들은 모두 똑같은 지라 태스크 모양이지만 이슈타입이 서로 달라 이게 할 일인지 기억할 정보인지, 미리 준비해야 할 회의인지, 아니면 작성해야 할 문서인지 구분할 수 있습니다. 회사 할 일을 예로 들면 회사로부터 크게 혼날 수 있으니 공개할 수 있는 제 개인 할 일의 일부를 예로 들면 이 글을 작성하는 2025년 2월 1일의 지라 현황은 이렇습니다. 오른쪽을 보면 이미 생수를 주문했고 점심 식사를 마쳤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집 앞에 설치된 보안카메라 중 2번 카메라의 배터리를 충전 중이며 배터리 충전이 끝나면 카메라를 다시 제 자리에 설치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외에 아직 저녁 식사를 해야 하고 지난 몇 주에 걸쳐 홈 서버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클라우드플레어 터널의 오동작을 완화할 두 가지 대책을 오늘 안에 실행할 예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왼쪽을 보면 꼭 오늘 수행해야만 하지는 않지만 시간이 나면 어쎄신크리드 미라지를 플레이 할 작정이고 또 로컬에 한국어를 잘하는 비전 모델을 설치해 사용하기 시작할 작정이며 홈서버의 보안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를 하고 또 지리의 힘이라는 책을 읽을 작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라는 메모 역할을 함과 동시에 저에게 있어 좀 투박한 모양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는 대시보드의 역할을 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대시보드는 다른 사람들이 자랑하는 대시보드와 같이 아름다운 모양을 하고 있지도 않고 그날 그날 일정이나 할 일이 자동으로 나타나지도 않습니다. 이 모든 할 일은 제가 직접 기억에 기반해 휘발성 뇌로부터 완전히 제거되기 전의 그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든 미래의 제가 곤란을 겪지 않도록 남긴 기록에 전적으로 의존합니다. 그러니까 저에게 지라는 대시보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제가 선망하는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는 아름다운 대시보드와는 동떨어져 있고 또 다른 사람들처럼 아름답게 자동화 되지도 않기에 기능 상으로는 비슷한 역할을 하는 방법을 이미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솔루션이 없을지 계속해서 찾고 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침 홈서버 이야기를 잠깐 한 김에 며칠 전에는 헤임달이라는 애플리케이션 대시보드를 실험해 보았습니다. 도커 컨테이너 모양으로 간단히 시작할 수 있는 이 앱은 자주 사용하는 웹사이트 링크를 늘어놓고 굳이 웹사이트 주소를 타이핑 하거나 북마크 메뉴를 뒤적일 필요가 없게 만들어준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이런 대시보드 앱이 너무 많은 옵션을 통해 사용자 별로 자신이 원하는 거의 모든 커스터마이징을 할 수 있지만 대시보드의 역할은 그보다는 차라리 제한된 기능 안에서 링크를 배열하고 이를 더 익숙하게 사용하는 것이고 이에 집중해 개발했다는 소개를 읽고 꽤 납득됐습니다. 하지만 앱을 설치하고 딱 12시간 만에 앞서 제가 책상 위에서 손을 멀리 까지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아한 나머지 완전히 커스터마이저블 한 하드웨어 버튼 뭉치를 구입하지 않을 정도로 지독한 게으름뱅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냈습니다. 그랬습니다. 이미 저는 웬만한 앱을 실행할 때 이미 윈도우에서는 Windows + S 키를 누르면 나타나는 텍스트박스에 앱 이름을 입력해 실행하고 있었는데 타이핑 할 키가 늘어나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지만 실은 손을 움직이는 시간 없이 바로 타이핑을 시작하므로 실제로 앱이 실행되기 시작하는 시점까지 걸리는 시간은 거의 같았습니다. 또 웹사이트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아이폰에서는 타이핑이 좀 불편하니 아이콘을 터치해 웹사이트로 이동하도록 북마크를 사용했지만 키보드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거의 항상 웹사이트 주소를 타이핑 해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가령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사용하기 위해 웹 클라이언트를 실행하려면 브라우저 주소창에 phanpy.woojinkim.org
라고 타이핑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습관을 가진 사람이 갑자기 자주 사용하는 앱과 웹 주소를 아름다운 모양으로 링크를 만들어 늘어 놓고 이를 클릭해 사용하는 대시보드 앱을 사용하려 해도 익숙해지지 않음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제가 지금까지 꽤 긴 시간에 걸쳐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는 유용하고 또 아름다운 대시보드 앱을 찾는데 실패한 근본적인 이유는 저 자신이 지독하게 게으른 나머지 생성된 습관, 또 저 자신이 현재의 저 뿐 아니라 미래의 저 자신을 전혀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 메모를 안정적으로 남기고 유지할 방법을 찾아내고 또 의도하지 않았지만 메모를 만들며 최소한 이 메모의 존재 자체를 기억하게 된 덕분에 대시보드 앱이 도와준다고 주장하는 여러 가지 기능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마땅한 대시보드 앱을 찾는데 번번히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할 일과 일정은 이를 아름답게 표시해 주지는 않지만 지라가 이미 그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 표시되는 할 일은 제가 수동으로 기록한 것도 있고 또 제 캘린더를 보고 n8n이 알아서 추가해준 것도 있습니다. 여기에 자주 사용하는 앱은 윈도우에서는 오랫동안 Windows + S 키를 누르면 나타나는 텍스트박스에 타이핑해서 실행해 왔고 최근에는 Microsoft PowerToys에 포함된 PowerToys Run을 사용해 맥에서 사용하는 Alfred 앱과 거의 같은 환경에서 실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고 있는 이유는 제가 제 기억을 믿을 수 없어 현재의 저와 미래의 제가 서로 기억을 공유할 거라고 신뢰할 수 없으므로 휘발성 뇌로부터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지라로 정보를 옮기는 행동, 키보드가 있는 기계를 사용할 때 손을 멀리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아 작은 키보드를 사용한 덕분에 그럴싸한 하드웨어를 마다하게 만든 것, 그리고 이로부터 오는 생산성 감소를 완화하기 위해 온갖 앱, 웹 실행을 타이핑에 의존하게 된 것 등의 이유가 겹쳐진 결과입니다.
대시보드 앱은 크게 두 가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기억을 보조하는 것, 다른 하나는 주요 리소스에 빠르게 접근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기억 보조는 할 일과 일정 목록을 표시하고 바깥 날씨나 현재 시각 따위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아웃룩이 이 역할을 전적으로 담당했지만 현대에 가까워지며 아웃룩이 커버하는 영역은 전체 업무 영역에서 그 범위가 점점 더 줄어들어 현대에는 사용 빈도가 낮아진 메일과 캘린더 정도의 역할만 하는 것 같습니다. 리소스에 빠른 접근은 완전히 커스터마이저블 한 하드웨어 버튼 뭉치나 웹페이지에 늘어선 링크 목록이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대시보드는 이들을 통합해 아름다운 모양으로 보여주고 사용하기도 쉬워 보였지만 제 취향과 제 습관에 알맞는 대시보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찾아봐도 마땅한 방법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그나마 리소스에라도 빨리 접근하게 해 줄 것 같이 보이는 대시보드 앱을 시도했다가 근본적으로 제가 지금까지 휘발성 높은 뇌를 가지고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했던 여러 가지 방법들 때문에 지라의 애자일 보드 - 위에 있는 스크린샷 - 가 대시보드의 기억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고 리소스에 대한 빠른 접근은 직접 그 이름이나 주소를 타이핑 하는 방식으로 적응해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적어도 제 관점에서 메모는 나중에 이를 다시 꺼내 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메모는 실제로 어떤 일을 수행하는 결말로 끝나거나 그 일을 기억하는 결말로 끝납니다. 어느 쪽이든 메모를 하는 행위 자체로 메모의 내용 혹은 메모 그 자체의 존재를 기억하게 되기 때문에 정보를 다시 찾아볼 목적으로 메모를 사용하는 일은 드뭅니다. 메모가 어떤 일을 수행하는 결말로 끝나는 시나리오에 지라는 꽤 잘 어울리는 도구여서 지라를 메모에 사용한다면 적어도 주요 정보를 표시하는데 필요한 대시보드의 역할은 필요 없어집니다. 대시보드는 제가 그 날 알아야 할, 그리고 수행해야 할 일들을 표시하지만 이미 가까운 곳에 답이 있었습니다. 지라가 이미 그런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 요구사항에 맞는 대시보드를 찾기가 그렇게 어려웠던 것이었습니다. 이제 이 현실을 인정하고 더 이상 대시보드 앱을 찾지 않을 작정입니다. 지라 애자일 보드가 이미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파랑새는 사실 가까이에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