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에 이잉크 디스플레이 제품은 최종 사용자용 제품에 한해 무의미하다
이잉크 디스플레이를 채택한 기계는 아주 잠깐 동안은 장점이 있었지만 현대에는 더 이상 무의미합니다.
지난 10여년에 걸쳐 이잉크 디스플레의 장점을 이해한 다음 적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직 전자책이 활성화 되기 이전 시대여서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입한 다음 배송지를 스캔 업체로 지정해 새 책을 파괴해서 아이패드로 읽을 pdf 파일을 만들었습니다. 첫 아이패드로 책을 읽는데 사용해보니 눈이 아픈 건 둘째 치고 해상도가 낮고 배터리가 오래 가지 않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또 당시 아이패드 사양은 수 백 메가에 달하는 당시로써는 거대한 pdf 파일을 만족스럽게 탐색할 만한 속도를 내지 못했습니다. 다른 문제는 그럭저럭 참아줄 수 있었지만 계속해서 책을 읽는데 사용하던 아이패드는 이윽고 다섯 시간 쯤 되면 배터리를 다 썼고 이 점을 개선하고 싶었습니다.
한편 이 시대에 이잉크 디스플레이 기반의 책 읽는데 사용할 전용 장치는 아마존 킨들이 있었는데 처음 킨들을 구입하려고 할 때 세계 전역에서 셀룰러 네트워크 로밍을 통해 책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기능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해 와이파이를 지원하는 버전에 비해 훨씬 비싼 가격에도 셀룰러 모델을 구입해 봤습니다. 킨들은 예상한 대로 동작했지만 모든 동작이 아이패드에 비해 압도적으로 굼떠 모르는 단어를 검색하기 힘들었습니다. 단어를 검색할 수는 있었지만 굼뜬 동작을 기다리다 보면 집중이 깨지기 일쑤였고요. 셀룰러 네트워크 지원은 오직 아마존 웹사이트로부터 책을 다운로드 할 때만 사용할 수 있었는데 크기가 작은 책은 순식간에 다운로드 됐기 때문에 셀룰러 네트워크는 처음 예상만큼 유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잉크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킨들은 아무데나 내버려 둬도 꽤 오랫동안 대기했는데 한 2주쯤 잊어버리고 있다가 집어 들어도 한동안 책을 읽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편안해 아이패드의 다섯 시간에 비해 압도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저 그런 셀룰러 네트워크 만큼이나 신경 쓰이는 점이 있었는데 예상보다 눈이 피곤하다는 점입니다. 첫 아이패드는 근본적으로 해상도와 주사율이 낮으며 화면에서 직접 빛이 나기 때문에 그냥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는 것과 똑같은 기계입니다. 그런 기계를 몇 시간 씩 들여다 보고 있으면 당연히 눈도 아프고 팔다리도 아프고 목도 아팠습니다. 킨들을 구입할 때는 이잉크 디스플레이는 해상도가 높고 또 한번 화면을 표시하면 이를 업데이트 할 필요가 없어 주사율이라는 개념이 잘 맞지 않는 대신 화면이 거의 깜빡이지 않아 눈이 훨씬 편안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혹했습니디. 그런데 실제로 사용해 보니 기계가 작고 가벼워져 오랜 시간 책을 읽을 때 팔다리와 목이 덜 아픈 건 사실이었지만 눈이 덜 피곤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은 그나마 훨씬 나아진 편이지만 초기 킨들에 사용된 이잉크 디스플레이는 페이지를 전환할 때 종종 화면에 이전 페이지의 잔상이 아주 조금씩 남곤 했습니다. 마치 종이책에서 뒷 페이지에 인쇄된 글씨가 어렴풋이 비쳐 보이는 느낌과 비교할 만 했는데 종이책은 뒷 페이지의 글씨가 일관되게 비쳐 보였지만 킨들에 비친 이전 페이지의 흔적은 거뭇거뭇한 점으로 나타나 마치 인쇄가 잘못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런 이전 페이지의 흔적이 쌓이면 꽤 지저분해졌기 때문에 옵션에는 몇 페이지 마다 한번 씩 페이지를 전환할 때 페이지 전체를 검정색으로 채운 다음 다시 흰색으로 채워 초기화 하고 나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동작을 제어할 수 있었습니다. 옵션은 이 동작을 몇 페이지마다 한번 씩 할 지 설정하게 되어 있었는데 운 좋게 여러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이전 페이지의 잔상이 남지 않는다면 굳이 화면을 그런 식으로 새로 고칠 필요가 없었습니다. 주로 글자로만 이루어진 책은 훨씬 많은 페이지를 넘긴 다음에도 잔상이 잘 남지 않았고 표나 그림이 포함된 책은 여지 없이 잔상이 남았습니다.
문제는 이 화면을 새로 고치는 장면을 쳐다보니 이 자체로 눈이 피곤해졌다는 점인데 글씨를 읽을 때는 잘 모르다가 몇 페이지마다 한 번 씩 페이지 전체가 검어졌다가 하얗게 변한 다음 다음 페이지로 바뀌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오히려 눈이 피곤한 느낌을 받아 잠깐 눈을 감았다 뜨곤 했습니다. 아이패드로 책을 읽을 때는 0에서 10 사이의 피곤함 중 약 5 정도의 피곤함이 계속해서 유지되는 느낌이라면 이잉크 디스플레이는 평소에 2 정도의 피곤함을 주다가 페이지를 새로고침 할 때 갑자기 7 정도의 피곤함을 잠깐씩 줬습니다. 배터리도 오래 가고 아무데서나 책을 다운로드 할 수 있고 또 작고 가벼운 특성은 꽤 오랫동안 킨들을 선호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사용하면 할수록 이 새로고침 동작이 계속해서 거슬렸고 그렇게 거슬릴 수록 실제로 이 디스플레이 때문에 눈이 아픈 것인지 아니면 제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눈이 피곤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눈이 피곤했습니다.
실은 킨들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결정적인 이유는 눈에 피곤함을 느끼며 슬슬 불만이 쌓여 다가다 어느 순간 기기 자체의 반응이 느려 단어를 찾으려 할 때마다, 같은 책의 챕터 사이를 오갈 때마다, 다른 책 두 권 사이를 오갈 때마다 너무나 동작이 굼떠 집중이 깨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잉크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장치들은 디스플레이가 전력을 적게 소모하기는 하지만 아마도 기기 전체의 가격을 맞추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기기 성능이 형편 없었는데 킨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단어를 찾으려면 화면에 인터페이스를 표시하기 위해 화면 전체를 깜빡이며 눈을 아프게 하는 건 덤이었고 챕터 사이를 전환할 때, 책 사이를 전환할 때 짧게는 몇 초, 길게는 10초 이상이 걸릴 때도 있었고 그 사이에 인터페이스를 조작하는 반응 속도와 실제로 원하는 동작이 끝날 때까지 걸리는 시간도 길어 같은 생각을 오랫동안 붙잡고 있기 어려운 입장에서 책을 읽는데 사용하는 장치가 오히려 책을 읽기 위한 행동을 방해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작고 가볍고 또 굉장히 만족스러운 배터리 수명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눈이 편하지 않은 디스플레이, 그리고 형편 없는 성능에 실망해 사용을 중단하고 중고로 팔아 버렸습니다.
이후 한국어로 된 전자책을 판매하는 회사가 나타났지만 여전히 아이패드 앱만 지원했는데 다행히 아이패드는 해상도가 급격히 높아졌고 또 화면을 더 어둡게 표시할 수 있어 이전 시대보다 훨씬 눈이 덜 피곤하게 책을 읽을 수 있게 됐습니다. 특히 아이패드는 새로 나올 때마다 성능이 급격히 개선돼 몇 백 메가 짜리 pdf 파일을 여는 정도는 거의 딜레이 없이 실행 됐고 사전을 찾는 반복되는 동작 역시 빠르게 수행되어 더 이상 집중력을 잃지 않고 사전을 찾고 다른 책의 다른 부분이나 같은 책의 다른 챕터를 왔다 갔다 하는데 방해를 받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아이패드는 크고 무거웠으며 배터리 성능은 디스플레이나 성능의 급격한 향상에 비해 썩 빠르게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처음 새로 구입한 아이패드는 거의 10시간 쯤 동작하는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 시간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결국 맨 처음 아이패드와 비슷한 별로 만족스럽지 않은 사용 시간에 도달합니다. 그럴 때마다 처음 사용했던 이잉크디스플레이 단말기인 킨들의 압도적인 몇 주 단위의 대기시간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어 전자책을 내던 국내 회사가 전용 이잉크 디스플레이 단말기를 냈고 이 회사의 전용 단말기를 두 번 사용하면서 지금까지 내린 결론은 이잉크 디스플레이 단말기는 사실 사기에 가깝다는 겁니다. 이잉크 디스플레이 단말기는 광고한 대로 동작하기는 하지만 광고에는 이 장치에는 성능을 올리기 어려운 근본적인 한계가 있으며 이잉크 디스플레이는 대량으로 판매되지 않기 때문에 기술 발전이 더딘 사실을 광고에 포함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잘 모른 채로 이잉크 디스플레이 단말기를 함부로 구입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하며 이 사실을 정확히 고지하지 않는 건 일종의 사기라고 생각하는데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이잉크 디스플레이는 지난 십 수년 사이에 거의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나름 표시속도도 빨라지고 새로고침을 할 필요도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주장하며 컬러 표시를 지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표시속도가 아무리 빨라져도 이잉크 디스플레이를 제외한 바깥 세계의 디스플레이는 적어도 초당 60프레임이 기본이며 요즘 세상에는 이보다 훨씬 높은 표시속도가 점차 기본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처음 고주사율 디스플레이를 채용한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는 아무 차이도 느끼지 못하지만 다시 고주사율을 지원하지 않는 스마트폰을 보는 순간 어떤 차이가 있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이런 고주사율이 일반화된 세계에서 이잉크 디스플레이의 주사율이 아무리 높아져도 거의 체감할 수 없습니다. 또 시간이 흐르며 여러 책이 전자책으로 출간되며 텍스트만 있는 책 뿐 아니라 사진, 표가 포함된 책도 전자책으로 만들어졌는데 근본적으로 전자책 포멧이 고해상도 사진이나 표를 포함하는데 한계가 있어 이들이 희미하게 표시되고 또 엉망으로 깨져 표시되는 문제 이상으로 처음에 설명한 새로고침 문제가 두드러집니다.
책은 직접 빛을 내지 않기 때문에 어두운 곳에서는 읽기 어렵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작은 배터리를 채용한 가벼운 독서등이 나타났는데 이잉크 디스플레이를 채용한 전자책 전용 단말기들은 직접 화면 앞에서 빛을 내 화면을 비춰 어두운 곳에서도 아이패드 같은 디스플레이에 비해 눈이 덜 피곤하다고 광고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빛을 앞에서 비추든 뒤에서 비추든 결국 어두운 장소에서 빛을 내뿜는 장치를 볼 때 느끼는 눈에 피곤함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잉크 디스플레이 단말기는 앞에서 빛을 쏴 반사시키는 방식을 주로 사용했는데 이 때문에 화면 전체의 밝기가 균일하지 않아 마치 습기를 머금어 종이가 우글거리는 상태가 된 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줬는데 주변이 어두울 수록 이런 상태가 두드러져 신경도 쓰이고 눈을 피곤하게 만드는데도 기여합니다. 반면 아이패드류는 세대를 거듭하며 화면을 점점 더 어둡게 만들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표시속도가 빠르고 화면 전체 밝기가 균일해 오히려 눈이 덜 피곤하다고 느낍니다. 배터리만은 여전히 이잉크 디스플레이 단말기가 압도적이지만 이 장점을 제외한 나머지 거의 모든 특징에서 경쟁 기기에 뒤쳐진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이잉크 디스플레이를 채용한 모니터 컨셉을 봤는데 현대에 저런 장치에 장점이 있는지 의심스러웠습니다. 일단 디스플레이 자체는 업데이트가 적은 화면을 표시할 때 저전력으로 동작하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기술 발전이 너무나 더뎌 저전력 이외에는 장점이 없으며 널리 판매되지 않아 같은 크기의 일반 모니터에 비해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고 컬러 표시에 제한이 있으며 여전히 텍스트 이외의 다양한 그래픽을 표현하기에는 잔상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런 디스플레이를 서기 2023년에 사용해 모니터를 만들 때 어떤 이득이 있는지 납득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모니터를 여러 대 사용하는 환경에서 기존 패널을 대체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 보이지만 이 역시 디스플레이의 높은 가격 때문에 결정하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극단적으로 비교하면 당근에서 꽤 괜찮은 모니터를 굉장히 낮은 가격에 구할 수 있는데 비슷한 크기의 이잉크 디스플레이 모니터를 거의 열 배도 넘는 가격에 구입해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없어 보입니다.
이런 생각 끝에 현대의 이잉크 디스플레이 제품은 사실상 장점이 없어져 이제 고려할 가치가 없다는 의견을 가지게 됐습니다. 이잉크 디스플레이가 처음 나오던 시대에는 주사율의 개념이 없고 일단 화면을 표시하고 나면 더 이상의 전력을 요구하지 않는 점이 엄청난 장점이었지만 널리 판매되지 않은 덕분에 기술 개발이 더뎌 나머지 디스플레이가 너무 빨리 발전해 주사율, 저전력, 무게 등에 장점이 급격히 사라졌습니다. 또 이잉크 디스플레이 기계에 쉽게 함께 묶어 생각하는 저전력을 유지하기 위해 항상 형편 없는 성능을 묶어 제공하면서 이잉크 디스플레이 단말기 하면 일단 느리게 깜빡거리는 화면과 무슨 조작을 해도 반응하는데 최소한 1초는 꼬박 걸리는 느려 터진 동작을 상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시대가 바뀌어 굳이 이잉크 디스플레이가 아니더라도 저전력에 적당한 반응 속도를 보여주는 장치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고 배터리 기술 역시 이잉크 디스플레이 기술처럼 별로 발전하지 않았지만 사용 시간이 더 짧은 장치에 대한 반감이 줄어든 세계가 되어 이잉크 디스플레이의 압도적인 주 단위의 대기시간 역시 이제는 장점이라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한때 이잉크 디스플레이는 다른 디스플레이가 범접할 수 없는 특징을 가지고 시장에 나타났지만 세월이 흐르며 장점은 희석되고 단점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현대에 이잉크 디스플레이 제품은 이제 거의 사기에 가깝습니다. 현대에 이잉크 디스플레이는 여전히 표시 속도가 느리고 이 디스플레이를 포함한 장치는 저전력 요구사항 때문에 항상 성능이 낮으며 여전히 다양한 그래픽을 표시하려면 화면 전체를 새로고침 해야 하고 화면 밝기가 균일하지 못해 눈에 피로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경쟁 제품들에 비해 가격이 압도적으로 높기까지 합니다. 이잉크 디스플레이는 잠깐 동안 다른 디스플레이가 가지지 못한 장점을 가졌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못하며 이잉크 디스플레이 제품을 선택할 이유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