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업계의 고용 형태는 프로젝트 단위 계약직에 가깝습니다
맨 처음 본격적으로 회사에 고용되기 전에는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가령 LAMP 환경에서 동작하는 특이한 요구사항에 기반한 쇼핑몰을 만들었는데 이 때는 말 그대로 아르바이트여서 고용 형태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냥 요구사항을 듣고 제가 사용할 수 있는 기술 수준에 기반해 동작하는 웹 서비스를 만들면 그걸로 꾸역꾸역 제품 주문을 받아 회사의 다른 부서, 정확히 말하면 2미터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다른 분이 제품을 생산해 저녁에 발송하곤 했는데 표준화된 주문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영업 대상에 따른 다양한 요구사항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매번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주문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 일은 결국 월급이 밀리기 시작하면서 끝났는데 그 때는 당장 먹고 살아야 해서 그 밀린 월급을 받기 위해 뭘 해야 할 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다른 직장을 찾는데 집중해야 했는데 그 때 처음으로 게임 회사에 취직하게 됐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어 어떻게 생각하면 그 때 월급이 밀린 것이 차라리 전체적으로 보면 잘 된 일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 때 월급이 밀리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저 그런 코드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 현대에 매일같이 욕하는 덜떨어진 키오스크를 만들고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한편 그 때 코드를 만들던 경험이 긴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일하는데 영향을 주곤 하는데 그건 다른 기회에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어느 날 마스토돈에서 미국 IT 기업은 프로젝트 단위로 인력을 채용해 프로젝트의 존속에 따라 고용 관계를 유지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봤는데 미국 IT 기업이 아니라 당장 저 자신이 고용된 형태가 그런 모양이어서 이런 고용 형태가 특이한 것인지 한번 고민해 봤습니다.
상경한 다음 게임 만드는 일을 하면서 아주 유명한 대기업에 고용되어 본 적이 없어서 대기업에서는 인력을 어떻게 운용하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일본식 공채 시스템을 통해 인력의 용도를 확정하지 않은 상태로 신규 인력을 잔뜩 채용해 공통 기초 교육을 진행한 다음 이들을 회사 내 여러 부서에 배치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또 게임 회사 중에서도 큰 곳은 비슷한 공채 시스템을 통해 인력을 뽑아 교육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교육 받는 과정에 있는 분들이 우르르 몰려 지나가는 모습을 마주친 적이 있을 뿐 그 분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채용 되고 또 어떤 과정을 통해 여러 부서에 배치되는지도 잘 모습니다. 그저 어느 날 공채 출신의 스탭이 팀에 출근하고 그냥 그 분과 일할 뿐이었습니다.
전해 듣기로는 공채 출신의 인력은 회사에서 별도로 관리하고 심지어 회사를 떠난 다음에도 상태를 지속적으로 확인한다고 하는데 공채를 통해 채용된 적 없이 항상 술자리에서 하는 표현으로 수시채용은 ‘뒷문'을 통해 회사에 들어가기를 반복한 사람 입장에서는 그 분들이 받는 특별 관리와 이에 기반한 부서 재배치가 동작하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한편 ‘뒷문’을 통해 채용된 우리들은 회사와 고용계약서를 작성하고 또 전산 상으로 회사에 고용된 것으로 표시되며 대출 심사 등을 위해 은행과 이야기해 보면 고용 형태가 정규직으로 조회 되지만 사실상 프로젝트 단위로 고용된 비정규직에 더 가깝습니다.
프로젝트 단위로 필요한 인력을 채용하고 회사는 이 채용 과정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채용 과정은 프로젝트 단위로 이루어진다고 보면 됩니다. 회사는 대체로 ‘뒷문’을 통해 들어온 인력에게는 공채 분들께 하듯 어떤 교육을 하거나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뒷문’을 통해 들어온 인력은 출근 첫 날부터 바로 업무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프로젝트가 어떤 이유로든 취소되면 프로젝트가 고용했던 인력 대부분은 회사를 떠나야 합니다. 회사가 우리들을 직접적으로 해고하지는 않지만 일단 회사 안에서 할 일이 없어집니다.
이 상황에서 발 빠른 누군가는 이미 이전에 나쁜 냄새를 맡고 회사 안의 다른 부서에 연줄을 만들어 프로젝트가 취소되는 시점에 바로 이어서 부서를 옮길 준비를 마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회사 밖으로 똑같은 준비를 마치기도 하는데 이런 냄새를 맡지 못했다면 프로젝트가 취소되고 개발 관련 리소스에 더 이상 접근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며 회사 안에서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상황을 맞이합니다. 종종 회사는 의도적으로 이 상태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 같은데 사람들 대부분은 이 상황을 얼마 견디지 못하고 알아서 회사를 떠납니다. 회사 역시 이 상황에서 급여를 지급하며 다음 자리를 찾을 때까지 짧은 기간 동안 직원을 지원하는 선에서 직원에 대한 책임을 마무리하는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가 취소될 때마다 이런 상황을 당연히 겪다 보니 프로젝트 단위로 업무를 진행하는 회사에서는 다들 이런 고용 형태가 당연한 줄 알고 살았습니다. 회사 안에 다른 프로젝트가 있더라도 이미 그들은 그들 각각의 필요에 따라 사람들을 회사 밖으로부터 이미 채용했거나 채용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회사 안에서 유휴 인력이 발생하더라도 이들에게 눈을 돌릴 겨를이 별로 없습니다. 회사 역시 주로 채용 과정을 보조하는 역할에 머무르므로 갑자기 발생한 유휴 인력을 회사 안에서 재배치하는 방법을 잘 모르기도 하고요. 그래서 나쁜 냄새가 나면 탈출 버튼을 누를 준비를 해 두는 것이 약간은 이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이런 고용 형태는 전통적인 회사의 고용 형태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 한 회사 안에 여러 부서를 두고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는 회사들은 부서 조정에 따라 유휴 인력이 발생하면 이들을 재배치 하는 절차가 있었고 직원들도 당연히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회사 안에서 재배치 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판교에 있을 때는 이런 재배치가 직원들의 예상과 다른 모양으로 실행되자 직원들이 회사 앞에서 단체행동을 하기도 했는데 프로젝트가 취소되면 알아서 회사를 나가야 했던 우리들의 시각으로는 신기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게임 업계에도 사내 재배치 절차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번은 팀에 더 있다가는 정신이 파괴될 것 같아 그만 두겠다고 선언했는데 인사 부서에서 회사 내 다른 프로젝트가 사람을 구하고 있어 그 쪽과 연결해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사실은 이미 다음에 이동할 곳이 결정되어 있는 상태였는데 그래도 한 번 만나보기라도 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 만났는데 이 절차는 마치 회사 밖으로부터 구인할 때와 마찬가지로 상대 프로젝트에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제출하고 그쪽에서 이를 수락해 면접을 보는 절차였습니다. 이 때 도움이 됐던 것은 회사 안에 포트폴리오를 제출하기 때문에 회사와 맺은 보안 서약을 어기지 않고서 이전에 진행했던 프로젝트 관련 자료를 편안하게 포트폴리오에 첨부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면접은 잘 되지 않았고 나중에서야 이 과정에 인사 부서가 개입하기는 했지만 상대 프로젝트 관점에서는 사실상 회사 밖에서 인력을 채용하는 과정과 완전히 똑같았으며 사내 재배치와는 별 관계가 없었음을 알게 됩니다.
또 다른 한 번은 프로젝트가 취소되자 인사 부서에서 회사 안에 여러 프로젝트의 구인 현황을 들고 와 우리들을 한 회의실에 모아 놓고 프리젠테이션을 했는데 여러 프로젝트가 채용하고 있었고 우리는 그 분들과 회사 안에서 더 편하게 만날 수 있고 또 회사 바깥에 있는 사람들보다는 각 프로젝트의 상황을 아주 조금은 더 알고 있으며 면접 일정이 잡힐 때 슬리퍼를 신은 채 근처 회의실에 가기만 해도 됐고 또 이전과 마찬가지로 회사와 맺은 보안서약을 깨지 않고서도 편안하게 포트폴리오를 제출할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과정이 업계 바깥의 일반적인 회사에는 있다는 재배치 과정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은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서류전형, 실무 면접 절차를 거쳐 다른 부서에 재배치 되는데 성공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실무 면접 한 번으로 재배치 되기는 했으니 회사 밖에서 채용하는 경우와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여전히 업계 바깥의 여느 회사에서는 당연하다는 재배치 절차와는 차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한번은 이 업계에서는 드물게 노동조합이 있는 회사에 갔는데 노동조합이 회사에 강하게 요구하는 것 중 하나가 업계에서 늘 하던 대로 프로젝트가 취소될 때 인력을 해고하는 대신 인력을 재배치 하는 것이었습니다. 회사가 노동조합을 얼마나 인정하고 얼마나 대우하며 이들의, 우리들의 의사를 얼마나 잘 들어 주는지 알기는 쉽지 않았지만 이 회사에 고용되어 있는 동안 프로젝트가 취소될 때 거기 소속되어 있던 인력을 이전처럼 해고해 버리는 사례가 아예 없지는 않았으나 이전처럼 극단적으로 일어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결론. 여러 이야기를 돌아 왔는데 지금도 게임 업계의 그저 그런 회사들 대부분은 프로젝트 단위로 인력을 채용합니다. 서류 상으로는 회사에 정규직으로 고용된 것처럼 보이고 사회적으로나 전산 상으로도 그렇게 보이지만 프로젝트가 취소되면 사실상 해고되며 이런 사건이 별로 새롭지 않습니다. 그래서 게임 업계의 주된 고용 형태는 표면적으로는 정규직이지만 실상은 프로젝트 단위의 계약직 형태로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