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푸집

바다이야기는 파칭코가 아니라 릴게임이었고 100원 4초라는 숫자는 취향이 아니라 법이 정한 상한을 정확히 채우는 유일한 답이었습니다. 그 기계가 무슨 규칙으로 돌아갔는지 복원해 보고 규제가 게임의 형태를 어떻게 빚었으며 그 게임이 다시 20년치 규제를 어떻게 빚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거푸집

2006년 여름 마산의 한 게임장 풍경을 생각해봅시다[^마산 '바다이야기' 게임장 본지 기자 르포]. 45평 남짓한 공간에 기계가 130대 들어차 있고 새벽 1시 30분이지만 100여 대가 전부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취재를 간 기자가 본 것 중에 제일 이상한 것은 사람이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업주가 버튼 위에 라이터를 올려 두어 눌린 상태로 고정해 놓았고 기계는 알아서 돌아갑니다. 손님 한 명이 그렇게 5~6대를 동시에 붙잡고 있습니다[^'바다이야기' 직접 해보니]. 왜 여러 대를 돌리느냐고 묻자 그렇게 하면 확률이 올라간다는 답이 돌아옵니다. 수학적으로는 틀린 말이고 시행 횟수만 늘 뿐 기댓값은 그대로 음수이지만 행동으로 보면 손실 속도가 5~6배로 빨라집니다.

이 장면을 보면 결론은 하나입니다. 여기에는 플레이어가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베팅액은 100원으로 고정이고 선택지가 하나도 없으므로 버튼을 사람이 누르든 라이터가 누르든 결과가 같습니다. 사람은 돈을 넣고 결과를 관람하는 역할만 남습니다. 그런데도 그 기계는 2년 동안 4만 5천 대가 팔렸고[^'바다이야기' 제조·판매사 대표 구속기소] 전국에 성인게임장 1만 5천여 개를 채웠고 한 나라의 게임 규제 체계를 통째로 갈아 치웠습니다.

바다이야기 사례를 보면 거푸집과 비슷합니다. 콘크리트는 스스로 모양을 정하지 않습니다. 거푸집을 짜고 그 안에 부으면 그 모양대로 굳습니다. 이 글에서 하려는 이야기는 바다이야기라는 물건이 규제라는 거푸집 안에서 굳었다는 것이고 더 나아가 그렇게 굳은 물건이 다시 다음 거푸집이 되어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확률공개의무에 대한 각 국가 별 법률 탐구'에서 일본의 콤프가챠 금지가 도박법이 아니라 경품표시법에서 나왔다는 것을 살펴봤고 '일본의 선불식 지불수단'에서 충전식 재화를 다루는 법이 한국과 왜 그렇게 다른지도 살펴봤습니다. 두 글 모두 결국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어떤 나라의 게임이 왜 그렇게 생겼는지 알고 싶으면 그 나라 법전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다이야기는 그 명제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입니다.

규제가 만든 폼팩터

먼저 널리 퍼진 오해 하나를 정리하고 시작하겠습니다. 바다이야기는 파칭코가 아닙니다. 원작인 일본 산요물산의 우미모노가타리는 구슬을 쏘는 물리 기기 파칭코가 맞지만 한국의 바다이야기는 릴게임인 슬롯머신입니다. 원작에서 가져온 것은 바닷속이라는 세계관과 캐릭터와 연출뿐이고 코어 루프는 통째로 슬롯으로 갈아 끼웠습니다. 왜 그랬는지가 오늘 이야기의 출발점입니다.

두 기계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 두면 이후 이야기를 조금 더 편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파칭코는 이름 그대로 구슬을 다루는 물리 기계입니다. 플레이어가 다이얼이나 레버로 발사 세기를 조절해 강철 구슬을 위로 쏘아 올리면 그 구슬이 못이 촘촘히 박힌 판을 타고 흘러내리다가 특정 구멍에 빨려 들어가고 그 순간 안쪽의 릴이 돌거나 구슬이 무더기로 쏟아집니다. 발사 세기와 타이밍을 손으로 맞춘다는 점에서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플레이어의 물리적 개입이 남아 있고 배당도 현금이 아니라 구슬로 지급됩니다[^Pachinko - Wikipedia]. 반면 릴게임은 그림이 그려진 원판 여러 개를 돌려 같은 그림을 맞추는 슬롯머신이고 구슬도 발사 장치도 없습니다. 버튼을 한 번 누르면 내부 난수가 결과를 정하고 그 사이에 플레이어가 손으로 끼어들 여지는 없습니다. 원작 우미모노가타리는 전자이고 바다이야기는 후자입니다. 세계관과 캐릭터는 파칭코에서 그대로 가져왔지만 정작 돈이 오가는 코어 루프는 플레이어의 손을 완전히 들어낸 릴게임으로 갈아 끼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손을 들어낸 자리가 앞에서 본 라이터가 눌러도 똑같이 돌아가던 기계의 정체입니다.

에이원비즈는 원래 스크린경마를 만들던 회사였습니다. 2004년에 문화관광부가 사행성간주게임물제도를 도입해 스크린경마를 규제하자 그 자리를 슬롯머신 형태의 릴게임이 차지했습니다. 이건 제 추측이 아니라 헌법재판소 결정문에 그대로 적혀 있는 내용입니다[^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32조 제1항 제4호 등 위헌확인]. 같은 회사가 같은 게임장에 같은 상품권 인프라를 그대로 둔 채 껍데기만 바꿔 끼운 것입니다. 규제가 한쪽 문을 막자 물이 옆으로 흘렀다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규제가 다음 물건의 모양을 직접 정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결정문에 훨씬 무서운 문장이 있습니다. 헌재는 스크린경마의 사행성을 억제하려고 도입한 그 제도들이 오히려 이 사건 게임물의 사행성을 극대화했다고 적었습니다. 정확한 문장은 위 개정된 각 기준에 의해 도입된 사행성간주게임물제도와 경품강제배출제도가 오히려 이 사건 게임물의 사행성을 극대화하여 그 폐해의 심각성이 대두되자입니다[^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32조 제1항 제4호 등 위헌확인]. 규제가 사행성을 키웠다는 판단을 헌법재판소가 스스로 적어 둔 것이고 지목된 두 제도 중 하나가 경품강제배출제도라는 점은 뒤에서 다시 다루겠습니다. 거기가 이 기계의 심장이기 때문입니다.

법이 정한 숫자들

바다이야기의 기본 파라미터는 딱 두 개로 요약됩니다. 1회 베팅 100원 그리고 1회 스핀 약 4초입니다. 1만 원을 넣으면 1만 점이 쌓이고 한 번 돌릴 때마다 100점씩 빠지므로 100회 분량입니다[^(풍랑 휩싸인 바다이야기) '바다 이야기'는 어떤 게임]. 판결문도 1회의 게임에 약 4~5초가 소요된다고 인정했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08. 1. 9. 선고 2007구합33245 판결 (부가가치세부과처분취소)]. 여기까지는 그냥 숫자입니다. 그런데 2004년 12월 문화관광부고시 제2004-14호가 정한 사행성간주게임물 기준을 옆에 놓으면 이 숫자들의 의미가 갑자기 달라집니다. 고시는 1회 게임시간을 4초 이상으로 시간당 총 이용금액을 9만 원 이하로 최고당첨액을 2만 원 이하로 정해 두었습니다[^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32조 제1항 제4호 등 위헌확인].

산수를 해 보겠습니다. 1시간은 3600초이고 1회에 4초가 걸리면 시간당 최대 900회를 돌릴 수 있습니다. 900회에 100원을 곱하면 정확히 9만 원입니다. 시간당 총 이용금액 상한과 같습니다. 즉 100원과 4초는 게임디자이너가 고른 값이 아닙니다. 법이 그어 놓은 두 개의 선을 동시에 정확히 꽉 채우는 유일한 해입니다. 다른 조합을 넣어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5초로 늘리면 시간당 720회에 7만 2천 원이 되어 상한에 1만 8천 원이 남고 그만큼 덜 벌게 됩니다. 200원으로 올리면 4초에서 시간당 18만 원이 되어 상한을 두 배로 넘겨 사행성 게임물로 간주되고 그 순간 게임물이 아니게 됩니다. 규제선에 가깝게 설계한 것이 아니라 규제선 바로 위에 정확히 맞춰 설계한 것입니다. 규제의 치수를 그대로 따른 설계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여 주는 표본입니다.

한 대 앞에 앉으면

그럼 이 릴게임은 한 대 앞에 앉으면 실제로 무엇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다루겠습니다. 화면부터 보통 슬롯과 조금 달랐습니다. 마산 게임장에 직접 앉아 본 경남신문 기자는 1만 원을 넣자 1만 점이 쌓였고 상하로 나뉜 게임 화면 중 상단에서 금화가 떨어지면서 하단 화면이 돌아갔다고 적었습니다[^5만원 써도 상어.고래 안 나타나 - 마산 '바다이야기' 게임장 르포]. 위아래 두 단 가운데 상단은 바닷속 배경 애니메이션이 재생되는 연출 전용 화면이고 하단이 실제 릴이 도는 곳입니다. 릴이 몇 개였는지는 이 글 끝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2006년에 그 기계를 직접 보고 쓴 부산일보 기자는 원판이 네 개라고 적었습니다[^(풍랑 휩싸인 바다이야기) '바다 이야기'는 어떤 게임]. 그 원판에 문어와 해삼과 해마 같은 바다생물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고 같은 그림을 맞추면 당첨이었습니다[^5만원 써도 상어.고래 안 나타나 - 마산 '바다이야기' 게임장 르포]. 여기까지만 떼어 놓고 보면 세상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슬롯머신입니다.

플레이의 리듬도 그만큼 단순합니다. 앞서 본 대로 1만 원이면 100회 분량이고 한 판은 4초입니다. 그런데 그 100회 동안 대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금화가 떨어지고 원판이 돌고 그림이 어긋나고 다시 금화가 떨어지는 4초짜리 사이클이 반복될 뿐입니다. 그러다 아주 가끔 화면 전체가 갑자기 어두워지고 바닷속에 고래나 상어나 해파리 같은 큰 생물이 헤엄쳐 나타납니다[^(풍랑 휩싸인 바다이야기) '바다 이야기'는 어떤 게임][^'바다이야기' 직접 해보니]. 이것이 곧 큰 것이 터진다는 신호였고 그 뒤에 당첨이 연속으로 쏟아지는 구간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니까 한 판의 경험은 긴 무료함과 짧은 폭발로 이루어져 있고 그 폭발을 예고하는 것과 폭발을 지급하는 것 이 둘이 이 기계의 전부였습니다. 미니게임도 프리스핀도 보너스 스테이지도 없습니다. 예고를 맡은 연출 레이어 하나와 지급을 맡은 장부 맞추기 레이어 하나가 있고 나머지는 평범한 슬롯의 껍데기입니다. 그리고 이 극단적인 단순함이 오히려 이 기계의 힘이었습니다. 배울 것이 하나도 없으니 진입장벽이 0이고 룰을 설명할 필요도 없이 중장년층까지 즉시 흡수했습니다. 앞머리에서 업주가 버튼 위에 라이터를 올려 두어도 기계가 똑같이 돌아갔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100회 내내 플레이어가 고를 것이 하나도 없으니 이 기계의 실체는 예고와 지급 두 레이어로 요약되고 그 두 레이어에 당시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 각각 예시와 연타입니다. 지금부터 그 둘을 차례로 뜯어보겠습니다.

연타라는 장부 맞추기 장치

이제 이 글에서 제일 중요한 대목입니다. 바다이야기 하면 다들 연타를 떠올리고 대개는 당첨이 연속으로 터지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 설명은 결과만 말하고 원리를 놓칩니다. 연타는 재미 요소가 아니라 장부를 맞추기 위한 장치입니다. 법이 정한 규칙 두 개를 다시 보겠습니다. 하나는 최고당첨액 2만 원 이하이고 다른 하나는 당첨점수가 2만 점에 도달하면 상품권을 자동으로 배출한다는 경품강제배출제도입니다. 법은 한 번에 2만 원 넘게 못 딴다는 규칙을 강제 배출로 구현했습니다. 2만 점이 되는 순간 기계가 상품권을 뱉고 점수를 0으로 되돌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연타는 이 되돌림을 무력화하는 장치입니다. 검찰 공소사실이 이를 정확히 기술합니다. 피고인들은 최고당첨 제한액수를 125배까지 초과해 당첨될 수 있게 하고 최고한도액 잔여점수가 내부 기억장치에 누적되게 하는 등 프로그램을 조작했습니다[^'바다이야기' 제조·판매사 대표 구속기소].

여기서 산수가 다시 맞아떨어집니다. 법정 최고당첨액 2만 원에 125배를 곱하면 250만 원입니다. 그리고 250만 원은 판결문이 확정한 유통본의 최고당첨액과 정확히 같습니다[^'바다이야기' 제작·판매 대표 실형, 1242억 추징]. 즉 250만 원짜리 대박은 2만 원짜리 강제 배출을 125번 반복한 것입니다. 고래가 나오면 250만 점이 확정됩니다. 그것을 한 번에 지급하면 불법이므로 2만 점씩 끊어서 5천 원권 4장을 뱉고 남은 248만 점을 메모리에 넣어 두고 다시 2만 점을 뱉고 246만 점을 남기고 그렇게 125번을 반복해 5천 원권 500장을 쏟아 내는 것입니다. 법적으로는 2만 원짜리 당첨이 125번 일어난 것이고 실질적으로는 250만 원짜리 당첨이 한 번 일어난 것입니다.

이 재구성이 맞다는 것을 현장 기자가 눈으로 확인해 줍니다. 마산 게임장에 직접 앉아 본 경남신문 기자는 2만 점의 포인트가 쌓일 때마다 5천 원짜리 상품권 4장이 나왔다고 적었고 그것이 한 게임에 상품권으로 지급되는 경품의 최대액수인 2만 원을 넘게 하지 않기 위해 계산된 메커니즘이었다고 썼습니다[^5만원 써도 상어.고래 안 나타나 - 마산 '바다이야기' 게임장 르포]. 공소사실의 125배와 판결문의 250만 원과 현장의 2만 점당 5천 원권 4장이라는 세 개의 서로 다른 자료가 같은 산술 위에서 만납니다. 다만 덧붙이면 125연타라는 표현 자체는 당시 자료에 등장하지 않고 위 세 수치에서 제가 재구성한 것입니다. 여기까지 오면 앞서 헌재가 지목한 경품강제배출제도가 왜 무서운지 알 수 있습니다. 강제 배출은 플레이어를 보호하려고 만든 장치입니다. 2만 점이 되면 무조건 뱉게 해서 판돈이 무한정 불어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강제 배출이 250만 원을 2만 원 단위로 쪼개 지급하는 회계 단위가 되었고 그 쪼갬 자체가 125번의 팡파르와 500장의 상품권이 쏟아지는 연출이 되었습니다. 보호 장치가 연출 장치가 된 것입니다. 헌재가 사행성간주게임물제도와 경품강제배출제도를 나란히 지목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예시와 메모리

연타를 가능하게 한 하위 기능이 메모리입니다. 별개 기능이 아니라 연타의 구현 수단입니다. 합법 사양에서는 2만 점을 배출하고 나면 잔여 점수가 소멸하고 0으로 리셋되어야 합니다. 바다이야기 유통본은 그 잔여 점수를 내부 기억장치에 보존했습니다. 디자이너의 언어로 옮기면 법은 각 스핀이 독립 시행이어야 한다고 요구했고 바다이야기는 몰래 상태를 들고 있었습니다. 매 판이 독립이어야 하는 기계가 이전 판을 기억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더 이상 같은 기계가 아닙니다. 이 한 줄이 2만 원짜리 게임을 250만 원짜리 도박기로 바꿨습니다. 예시는 조금 다른 층위의 물건입니다. 곧 당첨이 나온다는 것을 릴이 멈추기 전에 미리 알려 주는 예고 연출이고 감사원이 그 존재를 명확히 인정했습니다. 감사원은 바다이야기 1.1변경버전의 경우 예시·연타기능이 탑재되어 있어 고배당이 이루어지는 사행성 게임물이지만 이를 그대로 등급분류하여 시중에 유통시켰다고 결론지었습니다[^사행성 게임물 규제관리실태 감사결과 발표]. 앞서 본 상·하단 2단 화면이 이 기능을 떠받칩니다. 예시로 등장하는 고래나 상어는 릴이 도는 하단이 아니라 연출 전용인 상단에 출현했습니다. 결과를 결정하는 곳과 감정을 만드는 곳이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시선은 위에 머물고 아래는 결과를 사후 확인하는 영수증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예시를 게임디자인으로 뜯어 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정보로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베팅액이 고정이고 선택지가 없으므로 예시를 보고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행동이 하나도 없습니다. 더 걸 수도 없고 그만둘 이유도 딱히 없습니다. 그러니까 예시는 정보가 아니라 보상입니다. 결과가 나오기 전에 도파민을 미리 지급하는 장치이고 동시에 기계를 읽고 있다는 통제의 착각을 만드는 장치입니다. 실제로 당시에 예시를 읽는 공략법이 인터넷에 2만 건 단위로 범람했습니다. 읽을 것이 없는 신호를 읽으려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매달렸다는 사실 자체가 이 장치의 효율을 증명합니다.

이 대목을 학술적으로 뒷받침하려고 자료를 꽤 찾아봤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짚고 넘어갑시다. 슬롯머신 심리학에서 제일 유명한 개념은 니어미스 효과입니다. 거의 맞을 뻔한 결과가 다음 판을 부른다는 것이고 바다이야기의 예시를 설명할 때 제일 먼저 가져다 쓰고 싶어지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첫째로 예시는 애초에 니어미스 효과가 아닙니다. 니어미스 효과는 졌지만 거의 맞았다는 사후의 경험이고 예시는 앞으로 터진다는 사전의 신호입니다. 시점도 방향도 반대입니다. 둘째로 그 개념 자체가 유명한 것에 비해 증거가 약합니다. 2020년에 나온 재현 연구는 실험 어디에서도 니어미스 효과의 행동적 지속성을 재현하지 못했고 베이즈 인자가 오히려 영가설을 지지했습니다[^The near-miss effect in slot machines: A review and experimental analysis over half a century later]. 반대로 증거가 뒷받침하는 쪽은 통제의 착각입니다. 우연에 기술의 단서를 섞어 넣으면 사람은 부적절한 확신을 갖는다는 1975년의 고전적 연구가 있고[^The illusion of control] 슬롯머신으로 니어미스 효과를 확인한 실험조차 그 효과가 본인이 직접 선택한 조건에서만 나타났습니다[^Gambling near-misses enhance motivation to gamble and recruit win-related brain circuitry]. 즉 사람을 움직인 것은 거의 맞았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내가 골랐다는 감각 쪽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바다이야기에서 사람을 잡아 둔 것이 니어미스 효과였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고 다만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게 하는 구조였다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 예시를 읽는 공략법 2만 건이 그 믿음의 화석입니다.

하우스 엣지는 화면 바깥에 있었습니다

바다이야기 수익 구조에서 제일 교묘한 지점은 따로 있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 기계는 투입된 금액 대비 102%에 해당하는 상품권을 배출하도록 설정되어 있었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08. 1. 9. 선고 2007구합33245 판결 (부가가치세부과처분취소)]. 회수율 102%면 플레이어가 이득을 보는 구조입니다. 1만 원을 넣으면 액면 1만 200원어치 상품권이 나옵니다. 게임기만 놓고 보면 이건 하우스가 지는 게임입니다. 그런데 그 상품권을 현금으로 바꾸려면 게임장 근처 교환소에 가야 하고 거기서 액면의 약 10%가 공제됩니다[^서울행정법원 2008. 1. 9. 선고 2007구합33245 판결 (부가가치세부과처분취소)]. 1만 원을 넣어 액면 1만 200원을 받고 10%를 떼면 손에 쥐는 것은 9180원입니다. 실질 회수율은 91.8%이고 기대손실은 8.2%입니다. 즉 게임기 자체는 본전 이상으로 세팅해 놓고 실제 하우스 엣지는 게임 바깥의 환전 단계에서 뽑는 구조였습니다. 그 10%는 게임장과 상품권 발행사와 총판이 나눠 가졌습니다.

이 설계가 왜 교묘한지는 플레이어의 관점에서 분명합니다. 화면 안에서는 손실이 보이지 않습니다. 점수는 계속 늘고 상품권은 계속 나오고 기계는 나에게 지고 있습니다. 손실은 화면 밖 교환소에서 한 번에 일어나고 그때는 이미 게임이 끝난 뒤입니다. 게임디자인과 비즈니스모델이 의도적으로 분리되어 있었고 회수율이라는 지표는 그 분리를 감추는 역할을 했습니다. 여기서 지금도 쓸모 있는 교훈이 하나 나옵니다. 시스템의 경계를 게임 화면에 그으면 이 기계는 플레이어에게 유리합니다. 경계를 플레이어의 지갑에 그어야 비로소 실제 손실이 보입니다. 회수율이나 기대값 같은 숫자를 볼 때 그 숫자가 어디서 어디까지를 재고 있는지 먼저 확인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거푸집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질문이 생깁니다. 이런 물건이 어떻게 심의를 통과했느냐는 것입니다. 답을 하려면 2004년이 아니라 1999년으로 가야 합니다. 한국에서 게임장은 원래 공중위생법상 전자유기장업이었습니다. 목욕탕이나 이용원과 같은 법에 묶여 있었고 소관 부처도 보건사회부였습니다. 그런데 1999년 2월에 공중위생법이 폐지되면서 게임장이 갈 곳을 잃었고 문화관광부가 이미 갖고 있던 음반·비디오 심의 체계 안으로 편입됐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입니다. 게임이 음반이나 비디오와 한 법에 묶인 이유는 세 매체가 닮아서가 아니라 폐지된 법의 고아가 된 업종을 어딘가에는 넣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규제의 초점이 청소년 유해성에 맞춰졌고 아케이드 고유의 위험인 게임장이 도박장이 되는 문제를 다룰 도구는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거기에 두 개의 규제 완화가 더해졌습니다. 첫째로 1999년 2월에 상품권법이 폐지되어 인지세만 내면 누구나 사실상 무제한으로 상품권을 발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2002년 2월 9일에 문화관광부가 고시를 고쳐 관광상품권을 경품의 종류에 포함시켰습니다. 명분은 월드컵축구대회 숙박대책과 문화산업의 진흥·발전이었습니다[^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32조 제1항 제4호 등 위헌확인].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이 중대한 변화가 법률 개정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음비게법은 경품의 종류를 문화관광부장관이 고시로 정하도록 백지위임해 두었고 그래서 고시에 괄호 하나를 넣는 것으로 상품권이 합법이 되었습니다. 국회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행성이 무엇인가를 정의한 법률 조문이 없었습니다. 1회 4초라거나 시간당 9만 원이라거나 하는 기준은 전부 고시와 영등위 내부 규정에만 있었습니다. 어떤 기계가 게임물인지 사행행위인지를 나누는 스위치가 사실상 영등위의 등급분류 하나였다는 뜻입니다. 게임물이면 문화관광부 소관으로 게임장에서 영업할 수 있고 사행행위면 경찰청 소관으로 절대적 허가 금지 대상이 됩니다. 그 갈림길에 놓인 문지기가 하나뿐이었습니다.

그 문지기는 코드를 읽을 능력이 없었습니다. 감사원은 영등위가 프로그램을 검증하지 않고 설명서와 사진만 보고 심의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근본 원인 중 하나로 게임 소프트웨어를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의 부재를 지목했습니다[^사행성 게임물 규제관리실태 감사결과 발표]. 그러니 심의본과 유통본이 다른지 확인할 방법이 애초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달랐습니다. 판결문이 확정한 두 사양의 차이는 놀라울 만큼 작습니다. 심의본은 최고당첨액 2만 원에 최고 배수 200배였고 유통본은 250만 원에 25,000배였습니다[^'바다이야기' 제작·판매 대표 실형, 1242억 추징]. 릴도 심볼도 베팅 단위도 그대로입니다. 바뀐 것은 배당 상한과 메모리 리셋 딱 두 개입니다. 코드 몇 줄이 2만 원짜리 게임을 250만 원짜리 도박기로 만들었고 심의 기관은 그 몇 줄을 볼 능력이 없었습니다.

몰라서 당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상품권의 환전 문제는 2002년 도입 이전인 2001년 9월 국정감사에서 이미 지적되었습니다. 감사원은 문화관광부가 2002년 2월 이전까지 상품권을 사행성 조장을 이유로 금지해 왔다는 사실과 경품용 상품권의 99% 이상이 환전용 칩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제도를 유지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사행성 게임물 규제관리실태 감사결과 발표]. 상품권이 화폐가 되었다는 것은 숫자로도 드러납니다. 2006년 8월 한 달 상품권 유통액이 2조 7,685억 원이었지만 그해 발행 한도액은 9,683억 원이었습니다. 같은 종이가 한 달에 세 바퀴 가까이 돈 것이고 그것은 상품권이 경품이 아니라 칩이었다는 뜻입니다.

굳은 물건이 다음 거푸집이 됩니다

여기서 또 하나 널리 퍼진 오해를 정리합시다. 바다이야기 때문에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시간 순서가 맞지 않습니다. 게임산업법은 2006년 4월 28일에 제정되었고 바다이야기 사태는 그해 8월에 터졌고 법의 시행일은 사태 이후인 2006년 10월 29일입니다. 이 순서는 언론 보도가 아니라 헌법재판소 결정문이 확인해 줍니다. 2020년 결정문은 게임산업법이 2006년 10월 29일 시행되기 전 같은 해 8월에 소위 바다이야기 사태가 발생함에 따라 게임의 사행성이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부각되었다고 적었습니다[^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28조 제3호 등 위헌소원]. 그러니까 이 법은 온라인게임 부흥기에 진흥법으로 태어나서 규제법으로 시행되었습니다. 정확한 서술은 바다이야기가 게임법을 만들었다가 아니라 바다이야기가 이미 만들어진 게임법의 운용 철학을 규제 쪽으로 틀었다입니다. 시행 이틀 전인 10월 27일에 시행령과 시행규칙과 고시가 한꺼번에 제정되면서 경품의 종류에서 상품권이 삭제된 것이 그 증거입니다.

새 규제의 모양은 정의 하나로 결정되었습니다. 게임산업법 제2조는 사행성게임물을 정의한 다음 게임물의 정의에서 그것을 명시적으로 배제합니다. 사행성게임물은 게임물이 아닙니다. 게임물이 아니면 등급분류를 신청할 수 없고 등급이 없으면 유통 자체가 불법이 됩니다. 이 3단 논법이 20년 동안 아케이드부터 블록체인 게임까지를 관통합니다. 그리고 조문에는 바다이야기의 흔적이 그대로 남았습니다. 경품 제공을 금지한 제28조 제3호는 예외를 두면서도 현금과 상품권과 유가증권은 예외에서도 배제한다고 적었고 제32조 제1항 제7호는 게임 결과물의 환전과 환전 알선을 금지했습니다. 상품권과 환전이라는 두 단어가 조문에 그대로 적혔습니다.

산업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숫자가 말해 줍니다. 2008년 대한민국 게임백서는 그 시기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전체 아케이드 게임장은 약 1,800개소인 것으로 추산되고 이는 전년 대비 78%가 감소한 것으로 산업의 붕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불법 게임장을 제외하면 전체 게임장이 전국에 600여 개소 수준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남은 1,800개 중에 1,000개가 이미 불법이었다는 뜻입니다. 백서는 그 붕괴의 원인으로 시장이 아니라 행정을 지목했습니다. 18세이용가 유예기간이 2007년 4월 28일에 만료되었지만 게임물등급위원회 출범 이후 게임제공업소용 18세이용가 게임물의 등급분류가 한 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영업할 수 있는 게임이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고 이건 시장 요인으로 설명되는 종류의 사건이 아닙니다.

다만 여기서 규제가 아케이드를 죽였다고 단정하고 싶은 유혹은 참는 편이 정확합니다. 한국 아케이드 시장은 2000년을 정점으로 2001년부터 이미 꾸준히 줄고 있었습니다. 2004년과 2005년의 급팽창은 건강한 성장이 아니라 사행성 릴게임과 상품권 매출이 만든 거품이었고 2007년의 붕괴는 그 거품이 꺼진 것이기도 합니다. 데이터에 더 잘 맞는 서술은 규제가 아케이드를 죽였다가 아니라 규제가 거품이 꺼지는 속도를 정했다에 가깝습니다. 다만 거품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남습니다. 리듬게임이나 크레인게임처럼 사행성과 아무 관계가 없는 장르가 함께 붕괴한 것은 거품이 꺼진 결과가 아니라 규제가 그런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사행성게임물과 리듬게임이 같은 법 같은 위원회 같은 등급분류 절차 안에 있었으므로 사행성을 잡으려고 조인 나사가 리듬게임의 목도 같이 졸랐습니다.

그런데 정작 막으려던 것은 놓쳤습니다. 합법 아케이드가 870억 원 규모로 주저앉은 뒤에도 불법 사행성 게임장은 2008년 11.6조 원에서 2016년 14.4조 원으로 오히려 성장했습니다. 합법 시장의 170배입니다. 수요는 사라지지 않고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규제가 없었다면 불법 시장이 더 컸을 것이라는 반론이 가능하고 그 반사실을 확인할 방법은 없으므로 규제가 실패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막으려던 것은 지하에서 자라고 막을 필요가 없던 것은 지상에서 죽었다는 그림 자체는 남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이 사건에서 확인된 책임은 정치가 아니라 행정 쪽에 있습니다. 당시 바다이야기 게이트라는 이름으로 정치권 유력인사들의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검찰 수사 결론은 정치권 유력인사 개입설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었고 거론된 인물들은 무혐의로 정리되었습니다.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것은 개발사와 판매사 대표 두 사람이고 각각 징역 1년 6개월을 받았습니다[^'바다이야기' 제작·판매 대표 실형, 1242억 추징]. 반면 감사원이 확인한 행정의 실패는 구체적입니다. 영등위 부장 등 4명이 파면되었고 문화관광부 국장 등이 정직되었고 전직 장·차관을 포함해 42명이 검찰에 수사참고자료로 통보되었습니다[^사행성 게임물 규제관리실태 감사결과 발표]. 거대한 음모를 찾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 사건의 확인된 뼈대는 훨씬 시시하고 그래서 훨씬 무섭습니다. 정의 없는 법과 코드를 못 읽는 심의와 화폐가 된 상품권이 있었고 누군가 그 셋이 만든 틈을 파고들었을 뿐입니다.

20년 뒤의 거푸집

2020년 12월에 헌법재판소는 게임산업법의 경품 금지 조항이 합헌이라고 결정하면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비록 적법하게 등급분류를 받은 게임물이라고 하더라도 경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사후적인 게임물의 변경이나 경품의 환전 그 밖의 불법 또는 탈법적인 방법들과 결합하여 사행성이 극으로 치달을 수 있음이 위 바다이야기 사태로 확인된 바 있다고 말입니다[^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28조 제3호 등 위헌소원]. 사태로부터 14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그리고 헌재가 든 두 가지 위험은 사후적인 게임물의 변경인 개변조와 경품의 환전인 상품권 교환소입니다. 이 글의 앞에서 복원한 바로 그 두 구조입니다. 규제 설계자가 그 기계에서 무엇을 배웠는지가 조문과 결정문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2024년 3월에 시행된 확률형 아이템 조항입니다. 이 조항은 확률을 공개하라고 하면서 독립 시행이 아닌 경우 그러니까 이전 시행의 결과가 다음 시행의 확률에 영향을 주는 구조를 명시적인 공개 대상으로 지정했습니다. 그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바다이야기의 메모리가 떠올랐습니다. 매 시행이 독립이어야 하지만 기계가 이전 시행을 기억하고 있다는 바로 그 구조입니다. 20년 전에는 그것이 잔여 점수를 내부 기억장치에 누적하는 형태였고 지금은 뽑기 횟수를 누적해 확률을 올리는 형태입니다. 조문 구조가 닮았다는 것과 입법자가 그것을 차용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고 후자를 뒷받침할 근거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같은 나라의 법이 20년을 사이에 두고 같은 구조를 두 번 규제 대상으로 지목했다는 사실 자체는 남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좀 곤란한 지점이 나옵니다. 이전 시행이 다음 시행에 영향을 주는 그 구조를 우리는 다른 이름으로도 부릅니다. 천장입니다. '여러 가지 천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천장은 누적 투입이 확률에 반영되는 장치이고 구조만 놓고 보면 메모리와 동형입니다. 그런데 천장은 플레이어를 보호합니다. 최악의 경우에 얼마를 쓰면 되는지를 확정해 주어 손실에 상한을 씌웁니다. 같은 구조가 한쪽에서는 2만 원 게임을 250만 원 도박기로 만들었고 다른 쪽에서는 무한할 수 있었던 지출을 유한하게 묶습니다. 무엇이 둘을 나누는가 하면 방향입니다. 메모리는 배당의 상한을 뚫는 쪽으로 누적했고 천장은 지출의 상한을 씌우는 쪽으로 누적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하나는 숨겼고 하나는 공개합니다. 규제가 겨냥하는 것은 재미가 아니라 불투명성입니다. 실제로 약탈적 수익화를 정의하는 학술적 시도들도 제한적 공개와 회피 불가능한 권유와 기술이 아니라 구매를 강화하는 구조를 요건으로 들지 어디에도 재미있으면 안 된다는 항목은 없습니다.

무엇을 가져갈 것인가

바다이야기를 조사하면서 제일 자주 마주친 감정은 기시감이었습니다. 이전에 '어둠의 도파민 전쟁'에서 다크패턴을 다루면서 했던 이야기와 구조가 거의 같습니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물건을 우리는 대개 피상적으로만 압니다. 나쁜 놈들이 나쁜 짓을 했다는 요약은 기억하기 쉽지만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습니다. 정확히 무슨 구조가 어떻게 작동해서 그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야 상업적 성공과 지속가능성과 규제기관과의 관계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사한 것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규제는 설계를 없애지 않고 형태를 바꿉니다. 스크린경마를 막으니 릴게임이 나왔고 최고당첨액을 2만 원으로 묶으니 2만 원을 125번 주는 물건이 나왔습니다. 규제선 바로 위에 최적화된 설계가 앉습니다. 규제를 피해야 할 벽으로만 보면 벽 모양에 맞춰진 설계를 만들게 되고 그 설계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만든 사람이 아니라 벽을 세운 사람이 정합니다. 규제 문서를 읽을 때 이 조항이 무엇을 금지하는가만 보지 말고 이 조항이 무엇을 허용하는 모양인가를 같이 보는 편이 낫습니다. 바다이야기 개발자는 후자를 읽었습니다. 둘째로 보호 장치가 연출 장치가 되는 순간을 경계해야 합니다. 경품강제배출제도는 플레이어를 보호하려고 만든 것이지만 결국 125번의 팡파르를 만들어 냈습니다. 제한을 걸 때는 그 제한이 어떤 리듬을 만드는지까지 봐야 합니다. 상한을 정하면 사람들은 상한에 부딪히는 순간을 이벤트로 경험하고 그 이벤트가 반복되면 그게 곧 게임이 됩니다. 셋째로 시스템의 경계를 어디에 긋는지가 숫자의 의미를 정합니다. 회수율 102%는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 숫자가 재고 있는 범위가 게임기 안쪽까지였을 뿐입니다. 경계를 플레이어의 지갑까지 넓히면 같은 기계가 91.8%가 됩니다. 우리가 만드는 게임에서 어떤 지표를 볼 때 그 지표가 어디서 어디까지를 재고 있는지 그리고 그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는 습관은 생각보다 자주 필요합니다.

넷째로 기만성은 되돌릴 수 있는 설계 변수입니다. 이건 이번 조사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반가웠던 발견입니다. 슬롯머신에서 투입액보다 적게 돌려받고도 승리 연출이 나오는 현상을 손실의 승리 위장이라고 부릅니다. 이 현상을 연구한 팀이 소리만 바꿔도 플레이어의 손실 인식이 개선된다는 것을 보였습니다[^Losses disguised as wins in modern multi-line video slot machines]. 같은 수학 다른 피드백입니다. 같은 확률과 같은 배당을 두고도 그것을 어떻게 알려 주느냐에 따라 플레이어가 자기 상태를 정확히 아는 정도가 달라진다는 뜻이고 이건 디자이너의 손 안에 있는 변수입니다. 규제가 오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는 영역입니다. 다섯째로 정의 없는 규제는 문지기 한 사람에게 전부를 겁니다. 사행성이 무엇인지 법률에 없었으므로 게임과 도박을 나누는 일이 영등위의 등급분류 하나에 달렸고 그 문지기가 코드를 읽지 못하자 전부가 실패했습니다. 이건 규제기관 쪽 교훈처럼 보이지만 만드는 쪽에도 해당합니다. 우리가 어떤 판정을 한 곳에 몰아 두었는지 그리고 그 한 곳이 실제로 판정할 능력이 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면서 계속 걸렸던 것을 적어 두겠습니다. 규제가 바다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서사는 우아하지만 위험합니다. 개변조는 명백히 능동적인 범죄였고 판결문이 인정한 것은 심의본과 유통본이 달랐다는 사실입니다. 규제가 허술했다는 것이 개변조를 저지른 사람의 변명이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규제를 만드는 사람도 자기가 무슨 모양을 만들고 있는지는 알아야 합니다. 헌법재판소가 스스로 적었듯이 사행성을 억제하려고 도입한 제도가 사행성을 극대화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고 그것을 확인하는 데 4년이 걸렸고 그 4년의 비용은 게임장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냈습니다.

바다이야기 실기 한 대가 지금 게임물관리위원회 부산 청사 1층 로비에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압수품이고 플레이도 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릴이 네 개인지 다섯 개인지를 끝내 확정하지 못했습니다. 2006년에 그 기계를 직접 보고 쓴 부산일보 기사는 원판이 네 개라고 적었고[^(풍랑 휩싸인 바다이야기) '바다 이야기'는 어떤 게임] 다섯 개라는 주장은 전부 지금 영업 중인 불법 도박 사이트에서만 나옵니다. 20년이 지나 그 기계에 대해 남은 1차 자료가 판결문과 감사원 보고서와 신문 몇 건뿐이고 검색 결과의 대부분은 그 이름을 빌린 현재의 도박 사이트라는 사실이 이 사건의 성격을 잘 말해 주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부산에 갈 일이 있으면 릴이 몇 개인지 세어 보고 오겠습니다. 그때 보게 될 것은 아마 게임이 아니라 2004년의 고시가 굳어진 모양일 거라고 예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