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립토 게임은 언제 어떻게 돈을 벌까 (1)
크립토 게임들은 고객으로부터 직접 돈을 받지 않고서도 돈을 벌 수 있다고 주장하곤 합니다. 이들의 표준 시나리오를 살펴봅시다.
지난 회사로부터 잘리면서 그 전까지 메타버스와 함께 고민하던 크립토 게이밍에 대해 이제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 주제에 대해 지난 2년여에 걸쳐 고민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말하지는 않던 주제를 한번 생각해 보고 이 주제에 대한 고민은 여기서 마무리 할 작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개인적인 관점에서 크립토 게이밍에 대한 정의를 해보겠습니다. 비트코인과 함께 격렬하게 등장한 블록체인은 이 기술을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모두에게 공개된 가치 중립적 데이터베이스의 존재가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해결 가능해 보이는 문제 중 하나는 고객들이 온라인 게임에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입하지만 근본적으로 게임 상의 성장과 재화는 근본적으로 개발사에게 처분 권한이 있기 때문에 개발사가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결정하면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고 또 고객이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입한데 비해 재산권을 주장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데이터를 게임 밖의 가치 중립적일 것으로 추정되는 데이터베이스에 기록하고 이를 바탕으로 게임이 동작한다면 게임으로부터 발생한 데이터에 대한 권한을 고객이 가지고 이에 대한 재산권 주장이 가능해지리라는 아이디어가 나타났고 이를 구현한 것이 바로 크립토 게임입니다.
크립토 게임은 인게임에서 달성한 성장, 획득한 자원이나 재화를 게임 데이터베이스가 아닌 블록체인 데이터베이스에 기록해 이 데이터의 탄생 시점부터 블록체인 상에 고객이 소유한 지갑에 직접 기록하고 이 데이터에 근거해 게임이 동작하며 일단 블록체인 상에 기록된 데이터에 대한 권한은 이 데이터가 포함된 지갑의 소유를 증명할 수 있는 고객에 있습니다. 일단 데이터에 대한 권한을 가진 고객은 이 데이터를 자유롭게 다른 지갑으로 이동 시키거나 판매하는 등 여러 권한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개념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를 초기 인터넷이 고정된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어 단방향으로 데이터를 전달하기만 했던데 비해 그 다음 단계의 인터넷은 사용자와 서비스가 서로 데이터를 주고 받으며 사용자의 요청에 따른 정보를 동적으로 구축해 전달했고 또 그 다음 단계의 인터넷은 이전 단계에서 사용자의 요청에 다양한 정보, 즉 컨텐츠가 포함되었지만 이들이 서비스에 전달되어 마치 서비스의 소유처럼 사용된다는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을 사용하는 고객들이 생산한 컨텐츠의 소유권은 고객 자신들에게 있으며 이 컨텐츠가 노출되고 또 공유되는 범위나 공유 여부 따위를 직접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봤고 여기에 가치 중립적일 것으로 추측되는 데이터베이스의 존재가 의미 있을 거라고 봤습니다. 게임으로부터 생성된 재화 역시 마찬가지로 이들이 게임 바깥에 기록되어 고객의 시간과 비용의 결과를 고객이 직접 통제할 수 있으면 고객 관점에서 여러 장점을 가질 수 있으리라 예상했습니다.
말이 좀 복잡한데 기술적으로는 게임 상에 유통되는 핵심 재화의 생성과 유통, 소멸에 이르는 여러 과정이 게임에 의해서가 아니라 블록체인 데이터베이스에 의해 이루어지는 모양을 기본으로 여기에 게임으로부터 생성된 아이템, 게임으로부터 달성한 성장 등 여러 가지 정보를 NFT 모양으로 블록체인 데이터베이스에 기록하고 게임은 단지 이 데이터베이스에 기반해 정보를 처리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고객에게 그래픽을 통해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데 가까운 형태입니다. 좀 더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블록체인을 통해 유통되는 재화를 게임 상에서도 사용할 수 있고 게임 상에서 획득한 재화가 즉시 블록체인에 기록되어 이에 대한 소유를 증명할 수 있는 고객이 직접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는 형태를 지원하는 여러 게임을 크립토 게임이라고 불렀습니다.
유명한 블록체인에서 새로운 재화가 발행되는 과정은 블록체인의 규칙에 의해 통제됩니다. 가령 비트코인 네트워크는 거래 요청의 묶음인 블록을 승인하는데 컴퓨터를 통한 계산량을 투입했음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면 그 댓가로 비트코인을 받습니다. 이더리움 네트워크는 한때 이와 유사한 방식을 사용했으나 현재는 계산량 대신 이더리움 보유량에 따라 거래 요청을 승인하는 형태입니다. 때문에 이런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규칙에 따라 생성되는 재화를 바로 게임에 사용하는데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기에는 주로 이더리움 네트워크에서 스마트 컨트렉트를 통해 재정의된 NFT 모양으로 게임 속 요소를 발행하는 형태를 사용한 것 같습니다.
저 유명한 액시인피니티는 게임 상에 등장하는 액시 - 일종의 포켓몬과 비슷한 인게임 캐릭터 - 자체가 NFT 모양으로 블록체인에 기록 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인게임에서 엑시를 교배해 얻은 또 다른 액시 역시 NFT 모양으로 블록체인에 기록되는 형태였는데 이렇게 새로 생긴 액시는 그 다음에 게임에 진입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판매해 수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 게임 상에서는 액시 끼리 교배하는 과정으로 표현되지만 뒤에서는 스마트컨트렉트에 의해 새로운 액시가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등록되는 동작이 수행됩니다. 시간이 흐른 다음에는 게임 상에서 유통되는 통화 역시 스마트컨트랙트에 의해 정의된 별도 토큰 형태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 토큰은 전통의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통해 유통되는 다른 암호화폐로 교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전에 액시 자체에만 재산권을 주장할 수 있던 단계에서 게임 상에서 획득한 통화 역시 재산권을 주장할 수 있는 단계에 이릅니다. 액시와 통화 양쪽 모두 새로 게임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원하는 형태의 교배된 액시를 획득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또 성장을 빠르게 진행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판매할 수 있어 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실제 세계의 돈을 벌 수 있다는 개념이 나타났습니다.
이 게임의 웹 스토어에 가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 교배한 액시를 올리고 또 인게임 통화를 다양한 암호화폐를 사용해 교환할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스토어에는 제작사가 직접 발행한 통화나 제작사가 직접 제작한 액시가 올라오지는 않는데 이는 여느 부분유료화 게임들이 게임의 다양한 장소에 유료 화폐가 필요하도록 설계한 다음 스토어로부터 유료 화폐를 직접 판매하고 또 다양한 패키지나 단일 아이템을 판매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입니다. 게임 제작사는 게임을 개발하고 운영하기는 하지만 이로부터 직접적인 수익을 얻지는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게임을 개발하고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극 초기에는 처음 생성한 액시 NFT를 인게임에서 교배해 얻은 액시를 또 다른 플레이어에게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아주 작은 금액을 벌었을 수는 있습니다. 또 블록체인 네트워크 상에 NFT를 정의하는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NFT가 거래될 때 일정량의 거래 수수료를 수취하도록 설정해 이후 일어나는 모든 액시 NFT의 거래에 작은 수수료를 받아 수익을 얻을 수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런 간접적인 방식의 수익은 장기적으로 서비스 비용은 높지만 여전히 수익은 작아 개발사가 다음을 도모할 만한 충분한 수익을 획득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이 사례는 크립토 게이밍 초기 사례로 수많은 고객의 유입으로 인해 NFT 거래 수수료만으로도 막대한 수익을 얻을 수 있기는 했지만 이 사례를 다른 게임들이 복제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한편 이후 등장한 수많은 러그풀 - 의도적인 사기를 가리키는 크립토 업계 용어 - 사례들은 아직 제품이 없는 상태에서 미래에 제품이 개발되면 게임 상에서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는 NFT를 발행해 판매하기도 했는데 여기에는 캐릭터, 게임 상의 공간, 무기, 탈것 등 여러 가지 형태가 있었습니다. 초기에 고객들과 크립토 게임 업계에 들어온 개발팀들은 서로 게임을 개발하는데 어느 정도 비용과 기간이 필요한지 잘 몰랐기 때문에 개발팀이 제시하는 화이트페이퍼와 이들이 판매하는 NFT만을 보고 이를 일종의 킥스타터 프로젝트에 가깝게 해석한 다음 돈을 낸 것 같아 보입니다. 개발팀이 제시한 화이트페이퍼에는 그럴듯한 하이레벨 게임디자인 문서, 그럴듯한 컨셉 아트, 미래에 토큰 발행 계획 따위가 언급 되어 있었는데 이 문서만으로는 사실 미래에 어떤 게임이 만들어질지 상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객과 개발팀 양쪽 모두 게임 개발을 잘 몰랐던 것 같고 서로 희망을 가지고 NFT를 매개로 아주 적은 돈을 개발팀이 벌 수 있게 해 줬고 아주 잠깐 동안은 양쪽 모두 행복했을 겁니다.
크립토 게임을 개발하기로 한 팀들은 초기에 자신들의 매일 업무를 NFT 구매자들에게 자주 공유했습니다. 제가 속한 프로젝트 역시 비즈니스 부서로부터 개발 중인 화면을 커뮤니티에 자유롭게 공유해 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았지만 전통의 업계에서 온 사람들은 보안에 민감했고 그 습관이 남아 차마 그러기 어려웠습니다. 어느 날은 개발 중인 스크린샷을 올리기도 하고 어떤 팀은 언리얼 에디터 상에서 편집 중인 레벨 스크린샷을 공유하기도 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코드를 작성하고 있는 화면을 찍어 올리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지금 듣는 음악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고객들 입장에서 NFT를 구입한 행동은 마치 개발팀의 일상을 함께 구입한 것 같은 느낌을 줄 뿐 아니라 마치 자신이 낸 아주 작은 돈 만으로도 개발팀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는 권한 마저 구입한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만들었습니다. 사실 게임 만드는 모습을 볼 일이 없는 고객 입장에서 NFT를 구입하는데 돈을 조금 내면 개발팀의 일상을 살펴보고 또 하루하루 진행을 가까이에서 확인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제품이 완성되기 전에도 꽤 큰 만족감을 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다만 그런 식으로 만약 개발을 계속했다 하더라도 제품이 완성되기 까지는 엄청난 시간과 돈이 든다는 점이 달라지지는 않으며 그렇게 행복하게 매일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NFT를 팔아 모은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은 순식간에 바닥나고 경험이 없는 개발팀은 이 상황을 해결해야만 합니다.
크립토 시장에서 NFT를 구입하는 고객들은 NFT가 실제 세계에서 잘 보존된 미술품이나 유물처럼 어떤 변하지 않는 가치를 가진다고 여기는 것 같아 보입니다. 실제로 블록체인 데이터베이스 상에서 이 데이터는 그 자체가 원본이며 소유자의 변화에 따라 서로 다른 지갑을 가리키도록 변경될 뿐입니다. 그래서 실제 세계의 미술품과 비슷하게 그 수량이 한정되어 있음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 개발팀이 처음 미래에 사용할 수 있는 캐릭터 NFT를 1000개 판매했다면 이 NFT는 세계에 오직 1000개 밖에 없기 때문에 가치를 가집니다. 그런데 만약 같은 게임의 캐릭터 NFT가 추가로 판매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바로 위에서 개발비가 순식간에 바닥난 불쌍한 개발팀이 개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두 번째 NFT 판매를 할 계획이라고 발표하면 이전에 NFT를 구입해 개발자들의 일상과 느리디 느린 개발 진행을 행복하게 바라보단 고객들은 갑자기 돌변해 자신들이 소유한 NFT의 가치를 낮추려는 개발팀의 시도에 격렬하게 반응합니다. 온갖 욕설은 기본에 협박이 오가는 아수라장이 되기도 하는데 결국 개발이 계속되지 않으면 세계에 NFT가 오직 1000개 밖에 없건 말건 그냥 디지털 쓰레기가 될 뿐이기에 이런 격렬한 반응은 금방 가라앉고 개발팀 역시 이전 고객들을 대우하는 의미에서 두 번째 판매하는 NFT 묶음은 이전과 다른 이름으로 판매해 이전 고객들과 구분할 수 있게 해 불만을 무마하고 또 아주 약간의 개발 비용을 얻습니다.
이 스토리를 보면 이제 그 다음을 쉽게 예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개발팀은 그때그때 개발 비용이 필요할 때마다 서로 다른 여러 NFT를 판매하기를 반복합니다. 이 때마다 개발팀은 개발에 쏟을 자원을 NFT 에셋 제작과 판매에 할애하고 어차피 불가능한 개발이었지만 개발 진행은 더더욱 늦어집니다. 처음에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미래의 제품에 등장할 캐릭터, 탈것 따위를 판매했다면 이제는 미래의 제품에 등장할 가상 부동산, 아직 존재하지 않는 능력치, 무기 따위를 판매합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할 때마다 개발팀이 제품을 설계할 여유는 점점 줄어듭니다. 어떤 개발팀이라도 처음 제안한 제품을 그대로 완성하지 않습니다. 개발을 진행하면서 시장이 바뀌기도 하고 고객들의 요구가 변하며 실제로 개발해 보니 생각대로 동작하지 않아 게임을 수정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의사결정에 따라 흔히 ‘갈아 엎는다’는 표현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부분을 고쳐야 할 수도 있는데 이미 NFT 형태로 게임의 아직 개발되지 않은 여러 부분을 판매해 버렸기 때문에 설계 상의 결함을 해결할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이미 판매한 캐릭터는 그 모양 그대로 존재해야 하고 이미 판매한 부동산이나 무기 역시 그 상태 그대로 게임에 등장해야만 하기 때문에 문제를 발견하더라도 그냥 개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개발이 진행이라도 되고 있는 그나마 나은 상황입니다.
팔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팔아 버렸지만 여전히 개발비를 충당할 수 없는 개발팀은 미래의 제품에 유통될 통화를 미리 발행해 판매하기로 결정합니다. 어차피 미래에 게임이 개발되면 인게임의 여러 요소를 구입하기 위해 가칭 골드가 필요할 테니 어차피 게임의 완성까지 기다려 줄 고객들이 골드를 미리 보유하고 있다가 게임 서비스를 런칭할 때 이를 사용하게 하면 이들은 그 시점에 처음 게임에 진입한 다른 고객들에 비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인게임에 유통되는 골드라도 블록체인 데이터베이스 상에 기록되고 화이트페이퍼를 통해 미래로 갈수록 발행량을 통제할 작정이라고 설명해 놓았으니 미리 골드를 획득해 놓을 충분한 이유가 될 지도 모릅니다. 물론 실제 세계에서 경제를 조금이라도 공부했다면 경제 확장에 따른 통화 팽창이 일어나지 않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겠지만 크립토 세계에서는 그런 역사와 상식은 실제 세계의 불투명한 경제시스템에서 일어나는 문제일 뿐입니다. 미래로 갈수록 발행량이 줄어들 예정인 골드를 미리 판매하고 이전의 NFT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거래 수수료를 부과하면 이전에 비해 훨씬 큰 개발 비용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미래에 유통될 골드를 초기 발행해 커뮤니티에도 일부 부여하고 개발팀도 일부 갖고 또 다른 지갑에 만약을 대비한 물량을 비축하고 또 다른 투자자에게도 할애하는 계획 대로 진행하고 보면 이전에 비해 더 큰 실제 세계의 화폐를 획득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다음 스토리는 이제 안 봐도 예상하실 수 있을텐데 골드를 아무리 성공적으로 발행한다 하더라도 아직 제품이 없는 골드는 시장에서 별다른 가치를 가지지 못합니다. 개발팀이 아무리 매일 개발 상황을 공유하고 자신들의 계획을 예쁜 문서로 만들어 발표하기를 반복하지만 개발팀은 오직 제품으로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만약 개발팀이 처음부터 러그풀을 할 계획은 없었고 정말로 제품을 개발할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이들의 예상에 비해 게임 개발에는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의 비용이 필요하고 고작 고객들 몇 명이 구입한 NFT 약간과 미래에 유통될 골드를 팔아 획득한 돈 만으로는 제품 근처에도 갈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들 스스로도 그런 제품을 개발할 만한 충분한 기술이 없음을 깨닫는 시점이 옵니다. 심지어 과거에 역사적으로 유명한 제품을 개발해본 경험이 있는 성공적인 사람들이 포함된 팀이라도 높은 제작 비용과 기술 부족으로 프로젝트에 실패하는 일은 굳이 크립토 게임 업계가 아니더라도 생각보다 흔하게 일어납니다. 업계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고 유튜브에 흔히 올라오는 그럭저럭 봐줄 만 한 게임 트레일러 뒤에 얼마나 큰 돈과 기술이 오가는지 파악하기는 이전에 성공적인 개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라도 쉽지 않습니다.
팀은 한계를 맞이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이 있어야 동작합니다.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팀과 커뮤니티 양쪽 모두의 분위기는 가라앉고 이미 NFT와 골드 가격은 바닥을 찍고 지하로 내려가는 중입니다. 초반에 개발 진행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개발을 간접 체험하며 즐거워하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실제 세계 기준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지만 마치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 같은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팀이 판매한 뭔가를 구입한 사람들은 팀에게 가혹하게 굴지만 팀 역시 개발비가 없는 이상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릅니다. 개발팀이 순수하게 킥스타터와 비슷한 접근으로 개발하기 위해 블록체인을 통해 여러 NFT와 가칭 골드를 판매했었다 하더라도 이 방식 만으로는 개발비용을 조달할 수도 없고 개발에 필요한 기술이나 에셋을 조달할 수도 없음을 자연스럽게 깨닫습니다. 어느 날 개발팀은 그동안 판매했던 블록체인 데이터베이스 상의 디지털 흔적을 남긴 채 인터넷 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우리들은 이를 러그풀이라고 부릅니다. 혹은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의 지갑에 들어 있던 가칭 골드가 대량으로 유통된 흔적을 발견할 수도 있는데 이쯤 되면 이는 범죄의 영역에 훨씬 더 가까워집니다.
여기까지가 크립토 게임 프로젝트의 가장 표준적인, 그리고 처음부터 나쁜 결말을 예상하지는 않은 어떻게 보면 순수하게 접근한 개발팀이 맞이할 수 있는 시나리오입니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의 곳곳을 보면 짐작하실 수 있겠지만 너무 많은 곳에 고객들을 기만할 수 있는 취약점이 많고 세계에는 이를 악용할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 시나리오는 순식간에 수많은 가짜 개발팀들에 의해 악용되어 똑같은 방식으로 선량한 얼굴을 한 채 고객들에게 여러 가지 방식으로 미래를 판매하고 시간을 끌다가 같은 방식으로 사라졌습니다. 이전 프로젝트에 소속되어 다른 프로젝트 사례를 조사하다가 크립토 게임 업계를 일으킨 극 소수 프로젝트를 제외한 거의 모든 프로젝트가 러그풀로 끝났음을 알고 같은 시장에서 장사를 하려는 우리들 역시 완전히 같은 평가를 받고 또 완전히 같은 예상을 받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사실 이런 시나리오가 크립토 게임 업계에서 최초로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고도성장기에 건설업계가 이런 식으로 동작했습니다. 아직 건설되지 않은 아파트를 고객들이 미리 구입하게 만든 다음 고객들이 지불한 계약금과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통해 빌린 돈을 합쳐 토지를 구입하고 또 고객들이 지불한 중도금으로 아파트를 건설하며 나중에 아파트를 구입하려는 고객들에게는 좀 더 높은 금액에 판매해 초기에 위험을 감수한 계약자들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고도성장기에 주거 수요가 높고 정부가 이런 판매 방식을 보조해 은행들이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줬으며 세계 경제가 안정되어 안정적인 자제 조달을 할 수 있을 때만 제한적으로 가능한 방식이었습니다. 고도성장기가 끝나고 전체 인구의 연령대 중앙값이 계속해서 올라가며 리세션 국면에 접어들고 또 세계 경제가 안정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세계에서는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로 건물을 판매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역시 순수하게 건물을 판매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던데 비해 이 방법을 사용할 수 있었던 마지막 시대의 끝자락에는 고객들로부터 돈을 받은 다음 사라져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끼친 사례들이 여럿 있었고 이는 크립토 게임 업계에서 극 초반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 전체에 걸쳐 일어난 일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따라 오신 분들은 아직 제목인 크립토 게임은 언제 어떻게 돈을 벌까에 대해서는 아직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눈치 채셨을 겁니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크립토 게임 프로젝트가 이를 개발하겠다고 선언한 개발팀이 순수하게 개발비용을 모으기 위해 가치 중립적이라고 추정되는 블록체인 데이터베이스를 경유해 아직 개발되지 않은 미래 제품의 일부를 판매했지만 이 비용만으로는 개발비를 전혀 감당할 수 없고 또 그들 스스로가 개발을 수행할 능력이 안 되어 결국 배드 엔딩으로 끝나는 수많은 사례의 표준 시나리오입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작성하는데 이미 초안 기준으로 1만자를 돌파하기 직전이니 제목의 크립토 게임은 언제 어떻게 돈을 벌까에 대한 본격적인 내용은 이어지는 다음 글 크립토 게임은 언제 어떻게 돈을 벌까 (2)에서 마저 설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