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얼마에 팔 것인가

오늘은 제 연봉을 까보겠습니다.

나를 얼마에 팔 것인가

계약서 상에는 계약 내용에 대한 비밀유지 조항이 있고 이 조항을 어기면 회사는 저를 해고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되게 오래 전에 이루어진 계약이고 이미 저는 그 회사를 아주 아주 오래 전에 그만 다니게 됐으니 계약의 일부를 이야기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전 시대에는 호봉 같은 방식으로 급여를 책정했다고 하는데 저는 처음부터 연봉 계약을 하는 회사와 그런 시대에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첫 게임회사에서 연봉 계약을 할 때 얼마를 제안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고 얼마 정도를 받아야 하는지도 잘 몰랐으며 제안이나 협상이 어떤 형식이나 절차를 통해 진행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제가 일하게 될 부서를 포함한 상위 본부장님과 마주 앉아 ‘연봉을 얼마로 하실 생각이세요?’라는 질문을 전혀 준비 없이 받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을 뿐입니다.

졸업 전 직장을 구하러 서울에 올라왔지만 아직 무슨 일을 해야 할지도 잘 몰랐습니다. 마지막 아르바이트의 유산에서 소개한 대로 웹 스크립트를 아주 조금 다룰 수 있었고 이걸로 요즘 기준으로 설명하면 백엔드에 조금 더 가까운 일을 할 수 있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을 하는 회사들에 신입으로 이력서를 내 봤는데 결과는 당연하게도 서류에서 광탈합니다. 아직 졸업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어 이를 어쩌나 하고 또 습관처럼 게임을 플레이 하다가 문득 친구로부터 게임회사에서 일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듣습니다. 처음 들을 때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보니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쪽으로 생각이 변합니다. 그때 한참 열심히 하던 한 MMO 게임 웹사이트의 게시판에 직원 분들이 글을 쓰면 이름 옆에 개발팀 아이콘이 나타났는데 그 모습이 정말 멋지고 또 대단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습니다. 포트폴리오를 제출하라길래 한 번도 작성해본 적 없는 게임 기획서라고 이름 붙인 쓰레기를 만든 다음 한 줄 짜리 이력서에 첨부해 제출했는데 황당하게도 정말로 연락이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