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브배달은 배달원에게 이익인가?
음식 배달 앱의 주문 옵션 중 하나인 세이브 배달은 분명 단위 시간 동안 수익을 올려 주지만 동시에 업무 난이도를 함께 올려 모든 측면에서 이익은 아닐 수 있습니다.
오래 전에 지나가다가 다른 분이 쓰신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김밥 가게에서 계란김밥을 시켰는데 김밥을 만드는 과정을 보니 계란물을 만들어 김처럼 얇고 넓게 익힌 다음 그 위에 김밥 속을 얹어 말아 만들었다고 합니다. 보통 김밥은 바로 김 위에 김밥 속을 얹어 말아 완성하는데 비해 계란김밥은 일단 겉을 만드는데 시간과 수고가 필요했고 완성하는데 훨씬 긴 시간이 필요했는데 가격은 일반 김밥과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가격은 원자재 가격과 제조에 필요한 시간과 노력에 기반해 책정하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김밥 가게에서는 주로 원자재 가격에 집중한 가격 책정 정책을 사용하고 있는 모양이었다고 합니다. 사실 가게 입장에서 김밥마다 너무 큰 가격 차이를 두기는 쉽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분명 만드는데 훨씬 긴 시간과 더 큰 노력이 필요한 메뉴라도 합당한 가격을 설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주아주 오래 전에는 게임 패키지 풀 프라이스 가격이 3만 몇천원이던 시대가 있었는데 사실 그 시대에는 그 가격도 상당히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5만원 짜리 게임이 나타났고 시간이 흐르면서 6만원 짜리 게임이 나타났지만 여전히 이들은 가장 비싼 게임 중 하나에 속할 뿐이었습니다. 현대에 가까워지며 가장 유명한 게임들은 이제 7만원에서 시작하는 사례가 나타났고 또 게임의 각 부분을 나눠 별도로 판매하기도 하며 게임을 여러 에디션으로 나눠 가장 싼 버전은 여전히 7만원 수준이지만 가장 비싼 에디션은 10만원을 넘는 가격에 판매하기도 합니다. 이런 가격 정책은 무척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데 같은 게임에 더 큰 돈을 낼 의사가 있는 고객에게 더 다양한 컨텐츠를 제공하며 그에 따른 돈을 받지만 그럴 의사가 없으면서도 게임 자체를 플레이 하고 싶은 고객에게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게임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러는 사이에 게임 자체는 무료에 가깝게 제공하면서도 게임 속 다양한 경험에 필요한 시간이나 자원을 줄여 주는 방식으로 경험의 밀도를 올리기 위해 아주 작은 비용을 자잘하게 지출하게 만드는 게임들도 나타났는데 현대에는 이런 방식으로 과금하는 게임들이 큰 경제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현대에는 게임 개발 비용이 점점 올라가면서 제작 비용 자체를 줄일 방법을 연구하고 또 판매 방식을 바꾸는 접근도 하고 있습니다. 일단 풀 프라이스로 판매하는 게임들 중 상당수는 풀 프라이스로 판매할 때 게임을 정말 정말 정말 정말 많이 팔아야 간신히 손익 분기점을 넘을 수 있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일부 하드웨어 제조사의 퍼스트 파티 급 스튜디오는 처음부터 높은 제작비를 사용하면서도 풀 프라이스를 초과하지 않기 위해 거대한 제작비 지원을 받아 게임을 제작하는데 이 경우 잘 알려지지는 않지만 하드웨어 판매를 부스팅 하는데 사용될 뿐 게임 자체는 제작비를 회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모든 개발사가 그런 대단한 기회를 얻을 수는 없기에 제작비를 줄이고 또 판매가를 올리기 위한 여러 방법을 짜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고객들이 비하하는 표현으로 사용하곤 하는 ‘유비소프트식 오픈월드’라는 표현은 사실 대단한 명예라고 생각하는데 오픈월드 게임 개발에는 굉장히 높은 비용이 들지만 이런 게임을 비슷한 수준으로 적당한 기간마다 뽑아낼 수 있다는 것은 사실 제작 비용을 훌륭하게 통제하며 제작 파이프라인을 원활하게 구축했다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판매방식 역시 시즌 패스를 통해 컨텐츠 업데이트를 기간 단위로 판매하거나 싱글플레이 게임이라도 인게임머니를 판매해 초창기 온라인 게임이 결제를 통해 시간을 구입하게 하던 굉장히 공정한 방식의 과금 방식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김밥 가게, 그리고 게임 개발사들의 고민은 상품 가격을 현재와 비슷한 상태로 유지하기 아주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제조비용을 감안해 수익을 낼 수 있는 수준으로 판매 가격을 함부로 올렸다가는 아무도 구입하지 않는 상황이 될 수 있어 그 제약 안에서 이익을 낼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김밥 가게에서는 메뉴에 따른 원가를 고려해 메뉴 별 가격을 조절하기 보다는 전체적으로 가격을 조절해 특정 메뉴가 더 비싸 보이도록 하지 않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 댓가로 메뉴에 따라 노동력이 더 많이 소요되지만 그 단일 메뉴만을 판매할 경우에는 이익을 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게임도 비슷한데 고객들에게 익숙한 풀 프라이스로 게임을 팔아서는 정말 어지간히 많이 팔지 않는 이상 이익을 낼 수 없기 때문에 만일 게임 프랜차이즈가 고객들에게 어느 정도 신뢰를 쌓고 있다면 이를 감안해 게임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고객들을 고려해 게임을 여러 에디션으로 나눠 더 높은 가격에 판매하고 또 그럴 의사가 없는 고객들도 여전히 더 낮은 가격에 판매해 풀 프라이스의 기준을 올리지 않고서도 게임을 더 높은 가격에 판매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초기 판매 가격을 올려도 수익에 그리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게임 컨텐츠 업데이트를 시즌 단위로 판매하거나 인게임 머니를 판매하거나 신규 웨어러블이나 신규 레벨을 확장팩으로 묶어 판매하는 등 다양한 접근을 통해 초기 구매 가격을 건드리지 않고 전체적인 판매가를 올리고 있습니다.
지난번 회사에서 잘린 다음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집에 안 있던 사람이 집에 있게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열심히 요리를 시작하지는 않을 것이 확실하니 몇몇 끼니는 배달 음식을 시켜 먹게 되었는데 재미있게도 F1을 시청하기 위해 쿠팡플레이를 결제했더니 쿠팡이츠 10% 할인 서비스가 함께 딸려 와 배달음식 주문에 쿠팡이츠를 이용하기 시작합니다. 이 서비스에는 ‘한 집 배달’과 ‘세이브 배달’이라는 두 가지 옵션이 있습니다. 한 집 배달은 말 그대로 배달원이 가게에서 음식을 받아 바로 배달지 까지 이동해 배달하는 것입니다. 배달비는 거리나 가게의 설정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거리에 비례해 정확히 증가하거나 감소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거리 외에도 가게에서 설정한 배달비 분담 비율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가령 주문자와 가게 사이에 배달비 분담 비율을 일대일로 설정하면 배달비가 6천원일 때 주문자가 3천원, 가게가 3천원을 내지만 이 비율을 변경하면 같은 배달비를 낼 때 주문자가 4천원, 가게가 2천원을 내도록 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거리에 따라 배달원이 받는 배달비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 같은데 한 집 배달일 때는 확실히 그렇지만 세이브 배달은 이 계산이 아주 조금 더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세이브 배달은 서로 가까운 곳에서 출발하는 서로 다른 둘 이상의 가게로부터 서로 다른 목적지로 향하는 음식을 각각 픽업하는데 이들의 배달지 역시 서로 가까운 곳이어서 이동 경로가 크게 늘어나지 않도록 계산된 경로를 배달원에게 제안하는 것입니다. 배달원은 비슷한 경로를 이동하는 동안 배달을 둘 이상 처리할 수 있어 단위 시간 안에 조금 더 큰 배달 요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문한 사람 입장에서는 한 집 배달에 비해 배달 시간이 더 오래 걸리므로 항상 기존보다 손해를 보게 되는데 이를 만회하기 위해 배달 요금이 한 집 배달에 비해 아주 조금 저렴합니다. 이전에는 이 비용 차이가 너무 적어 고작 이만큼 할인 받느니 그냥 한 집 배달 옵션을 선택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는데 날씨가 안 좋거나 밤 시간대여서 배달원이 줄어드는 상황이라면 세이브 배달이 배달원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여 콜이 더 잘 잡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종종 세이브 배달 옵션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주문 하는 입장에서 한 집 배달 옵션을 선택할 때 배달 요금이 3천원이었다면 세이브 배달은 2천5백원 정도로 비용이 아주 낮지는 않지만 어쨌든 할인 폭이 없지는 않고 이런 주문을 비슷한 이동 거리 안에서 두 건을 수행한다면 분명 배달원 입장에서는 매력적일 겁니다. 평소에는 주문자와 가게가 갹출한 배달비 6천원을 받을 상황이었다면 세이브 배달일 때는 이동 거리가 조금 더 늘어나지만 비슷한 거리를 이동할 때 조정된 배달비 5천원 짜리 두 건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득 세이브 배달로 집 근처에 있는 다른 배달지에 먼저 갔다가 아파트 단지 주변에 난 도로를 빙 돌아 단지 입구를 통과하는 배달원의 이동 경로를 보다가 세이브 배달이 배달원 입장에서 좋기만 한 것인지 고민해 보게 됐습니다. 분명 이동 거리와 소요 시간 만을 생각하면 비슷한 거리를 이동하고 또 비슷한 시간을 소모하는 세이브 배달이 한 집 배달에 비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한 번의 장거리 이동으로 두 건의 배달을 수행할 때 업무 난이도는 이전에 비해 훨씬 증가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는 가게에 가서 음식을 가지고 목적지 까지 이동한 다음 그 음식을 꺼내 배달하면 배달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이브 배달을 수행할 때는 일단 가까운 곳에 있기는 하지만 서로 다른 두 가게에 가서 서로 다른 두 가지 음식을 받아야 하는데 일단 여기서부터 업무 난이도가 급격하게 증가할 수 있습니다. 가게마다 음식을 한 덩어리로 포장해 준다면 나쁘지 않지만 종종 음료 등을 따로 포장해 두 덩어리 이상으로 포장해 줄 때가 있는데 이들이 같은 짐칸에서 섞이면 실수할 여지가 높아집니다.
그래서인지 세이브 배달을 통해 도착한 음식에 붙어 있는 영수증을 살펴보면 가게에서 표시한 것인지 아니면 배달원이 직접 표시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눈에 잘 띄게 큰 글씨로 ‘콜1’, ‘콜2’ 같은 표시를 해 뒀는데 아마 실수를 막기 위한 조치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두 배달을 동시에 진행할 때 지금 수행하는 배달이 둘 중 ‘콜1’인지 ‘콜2’인지에 집중해 목적지를 선택하고 또 목적지에서 음식을 선택할 때 콜 번호에만 집중해 실수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이 상황에서 이동 거리에만 집중하면 이런 세이브 배달이 단위 시간 당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임에는 확실합니다. 그런데 업무 난이도는 두 배달을 함께 수행하며 급격히 상승합니다. 이전에는 지금 수행하는 콜이 1번인지 2번인지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고 짐칸에 있는 물건을 약간 무지성에 가깝게 꺼내 배달하면 그만이었습니다. 하지만 둘 이상의 배달을 함께 수행하려면 배달을 수행하는 모든 순간에 이 배달이 어느 배달인지 신경 써야 하고 만약 이 과정에서 실수가 일어날 때 이를 수습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을 소요할 겁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단위 시간 당 수익을 올리는 효과는 분명하지만 업무 난이도가 그에 못지 않게 올라가 아주 숙달되지 않은 배달원에게는 과중한 업무 부하가 생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마치 이 이야기를 시작할 때 떠올린 어느 분이 경험한 김밥 가게에서 김밥이 제작 난이도나 원자제 가격에 비례해서 가격을 설정하는 대신 전체적으로 비슷한 가격대로 설정해 인기 있는 메뉴를 팔 때는 이익이 나지만 인기가 없거나 제조 단가가 높은 메뉴를 팔 때는 이익이 나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계란김밥은 만드는데 다른 김밥에 비해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업무 부하를 요구하지만 가격은 다른 김밥과 비슷한데 모든 사람이 이를 주문하지는 않기 때문에 메뉴 별 제조 난이도와 단가를 크게 고려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세이브 배달 역시 비슷한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합니다. 세이브 배달은 배달원 입장에서 단위 시간 당 이동 거리는 크게 차이 나지 않으면서도 더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게 해 줍니다. 하지만 이에 비해 업무 난이도는 한 집 배달에 비해 훨씬 높으며 굳이 숫자로 표현하려고 시도한다면 한 집 배달에 비해 두 집 배달은 난이도가 기존의 두 배 보다 더 많이 오를 겁니다. 그러면서도 세이브 배달로 고객을 유도하기 위해 난이도는 두 배보다 더 높지만 배달비는 두 배보다 더 낮게 설정하고 있어 계란김밥이 그 제조 단가에 비해 낮은 가격을 받는 것과 비슷하게 세이브 배달 역시 업무 난이도 상승에 비해서는 더 낮은 가격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본업인 비디오 게임 이야기로 잠깐 돌아오면 게임을 풀 프라이스에 판매하면 이익을 내기 아주 어렵습니다. 이 때 게임의 일부를 DLC나 시즌 패스로 분리해 판매하면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이들의 제작비를 고려하면 이들 각각을 풀 프라이스에 비해 훨씬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면 이들의 단가에 비해 여전히 너무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게 됩니다. 고객들은 게임을 나눠 DLC로 판매하는 방식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만 제작사 입장에서는 DLC를 그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은 여전히 제작비를 별로 반영하지 않은 아주 낮은 수준으로 게임을 판매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라도 판매하는 가장 큰 이유는 DLC를 판매한 수익을 내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아예 게임의 고객이 아닌 사람들이 게임 본편을 구입해 볼 이유를 만들어 DLC를 구입 가능한 고객으로 만들기 위한 데 있습니다.
계란김밥, 세이브 배달, DLC 판매 모두 제공 받는 서비스에 비해서 더 낮은 가격을 지불하는데 이는 각각 다른 메뉴를 원활하게 판매하기 위해서, 더 적은 배달원으로도 배달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아직 본편 게임을 구입하지 않은 고객들을 신규 고객으로 만들기 위해서 실제보다 더 낮은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문득 어느 날 저녁을 요리하는 대신 배달을 시킨 다음 배달원의 이동 경로를 살펴보다가 이 서비스가 결코 배달원에게 이익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