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사람을 소진시킨다

지난 수 년 동안 넷플릭스 스포츠 시리즈 본능의 질주에서 팀 상황에 대해 강인한 모습을 보여 온 귄터 슈타이너 감독은 지난 시즌 6에서 소진된 모습을 드러냅니다.

고통은 사람을 소진시킨다

이번 주에는 다니엘이 절대 떠나지 말았어야 할 곳을 통해 F1을 배경으로 하는 넷플릭스 스포츠 시리즈인 본능의 질주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 시리즈가 처음 시작할 때 촬영을 허락한 소수의 팀과 소수의 인원이 이후에도 마치 이시리즈의 주인공처럼 다뤄지는 모습을 보며 이들에 더 쉽게 감정을 이입할 수도 있고 또 이 사람들과 팀을 중심으로 겉에서 펼쳐지는 레이싱 이면의 사건을 접할 수도 있어 좋았습니다. 위에 소개한 이야기에서는 드라이버 중 한 명인 다니엘 리카도가 지난 몇 년에 걸쳐 결국 나쁜 선택인 것으로 밝혀진 여러 가지 선택을 반복하며 과거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F1의 메인스트림으로부터 멀어져 가다가 2024년 시즌에 지난 몇 년 동안의 침체와 달리 가장 좋아 보이는 기회를 얻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넷플릭스 스포츠 시리즈에는 다니엘 리카도 뿐 아니라 거의 진 주인공 급 대우를 받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하스 팀의 총 책임자였던 귄터 슈타이너입니다. 지난 2016년 팀이 처음 생길 때부터 이 역할을 맡았던 귄터 슈타이너는 넷플릭스 스포츠 시리즈가 시작된 후 기억에 남는 퍼스널리티를 보여주며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엔지니어 출신으로 팀 수석이 되어 팀을 이끌고 있지만 하스 팀은 처음부터 그리 훌륭한 기록을 보이지 못합니다. 가장 큰 원인은 부족한 예산인데 이는 어쩌면 악순환을 반복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돈이 없으니 팀, 선수, 자동차에 투자하지 못하고 그 결과 성적이 좋지 않고 성적이 좋지 않으니 스폰서들이 떨어져 나가고 그 결과 다시 돈이 없어 팀에 투자하지 못하는 식입니다. 본능의 질주 본편에서 항상 하스는 예산이 부족해 뭔가 삐걱거리는 모습으로 등장하곤 하는데 가령 다른 팀 감독이 업무를 도와줄 스탭 여러 명과 돌아다닐 때 귄터 슈타이너는 혼자 돌아다니거나 다른 팀의 피트월에 거의 열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레이스가 진행되는 동안 각자의 업무를 수행하는데 비해 하스의 피트월에는 2023년 기준 단 세 명이 앉아 있을 뿐입니다. 하위권 성적으로 레이싱을 마친 다음 이 사실을 팀 소유주인 진 하스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해야 하고 또 드라이버들이 레이스카를 박살내도 이 사실을 진 하스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하며 위축되는 모습은 팀 수석임에도 팀 오너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스 팀은 넷플릭스 시리즈가 시작된 이후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초반에는 드라이버들이 큰 기복을 보이고 또 종종 레이스카를 해먹어 그렇잖아도 부족한 예산을 더 부족하게 만들었습니다. 다른 시즌에는 대형 스폰서가 붙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 스폰서는 실제로 돈을 거의 내지 않고 팀 이름에 스폰서 이름만 걸고 있다가 팀에 피해를 안깁니다. 또 다른 시즌에는 미래를 위해 이전 오랜 기간에 걸쳐 달린 로만 그로장과 캐빈 마그누센 두 명 모두를 방출하고 루키 드라이버 두 명으로 경기를 치렀지만 놀랍게도 두 명 모두 이전 몇 년 동안 로만 그로장이 레이스카를 박살낸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레이스카를 박살내기를 반복해 그렇잖아도 빠듯한 팀 재정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심지어 루키 드라이버 중 한 명은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며 퇴장해 스폰서를 유지할 수도 없게 됐고 이런 팀에서 달려 줄 드라이버도 마땅찮아 한동안 레이스카를 운전한 적 없는 캐빈 마그누센을 다시 데려와야만 했습니다. 2023년 시즌에는 몇 년 만에 안정적인 스폰서십을 유지했지만 둘 다 젊다고 보기는 어려운 캐빈 마그누센과 니코 휠켄베르크는 부족한 차량 성능과 더불어 최하위 성적을 기록합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귄터 슈타이너 감독이 인기를 얻고 또 최하위 팀인 하스가 사람들 사이에 오르내리게 만든 이유는 적어도 넷플릭스 시리즈에서는 귄터 슈타이너 감독의 언행이 시청자들의 기억에 강하게 남았기 때문입니다. 앞서 설명한 여러 해에 걸친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억양으로 ‘Fok’이라고 말한 다음에는 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행동을 이어가는 쾌활함, 솔직함, 그와 동시에 종종 나타나는 진지함이 이 캐릭터를 사람들에게 각인 시키고 또 이 캐릭터가 포함된 하스 팀을 사람들에게 각인 시킨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넷플릭스 역시 이 캐릭터가 시청자들로부터 인기 있음을 알게 된 다음에는 비 시즌 때 어려운 팀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캐릭터를 부각 시킨 이유도 있을 겁니다. 다른 팀 감독들은 그렇지 않지만 귄터 슈타이너만은 높은 설산에 오르기도 하고 페라리 전 감독인 마티아 비노토와 포도밭에서 포도를 수확하고 와인을 마시기도 하며 홀로 낚시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또 사막 상공에서 헬리콥터를 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이 모든 고통과 커다란 책임에도 불구하고 어려움 앞에 ‘Fok’이라고 말한 다음 웃어 버리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모습은 확실히 매력적입니다.

특히 기존 드라이버 두 명 중 한 명은 은퇴, 다른 한 명은 방출한 다음 루키 드라이버 두 명으로 구성한 라인업으로 시작했던 시즌은 감독이 아무리 유쾌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고통 받을 수밖에 없는 결과로 돌아옵니다. 믹 슈마허는 시도 때도 없이 크래시를 반복했습니다. 퀄리파잉에서 크래시 되어 다음 날까지 레이스카를 수리하지 못해 레이스에 아예 참여하지 못하는가 하면 레이스에서도 항상 어딘가에 충돌해 레이스를 끝까지 마치지 못하곤 했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에서는 자신의 한계를 알아야 더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나레이션을 넣기도 했지만 다른 드라이버 대부분은 차량을 파괴하지 않고서도 한계에 가까운 주행을 통해 좋은 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하스는 피트월에서 일하던 사람이 반으로 줄어든 모습을 보이며 한 해 동안 얼마나 심각한 재정적 손실을 겪었는지 말 없이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니키타 마제핀 역시 크래시는 조금 덜할지 몰라도 드라이버들 사이의 규칙을 무시하는 위험한 주행, 심심하면 차량 제어에 실패해 일으키는 스핀, 스핀 끝에 일어나는 크래시 등을 통해 하스 팀의 인지도를 사정 없이 망가뜨렸고 슈마허와 마찬가지로 팀에 심각한 재정적 피해를 입혔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에서는 이런 상황에 놓인 귄터 슈타이너 감독을 때때로 ‘Fok’이라고 말하고 또 영어에 익숙하지 않아 심각한 말 실수를 하더라도 이를 웃기게 표현합니다. 여느 사람이라면 레이스카에 대한 기술개발은 진척이 없어 자동차는 드라이버가 크래시 하지 않아도 저 혼자 불이 나며 멈추거나 어딘가 고장나거나 연기가 나며 멈추고 또 멈추지 않는다면 출력이 떨어져 움직이는 시케인 역할을 하며 선두와 두 바퀴 이상 차이 나는 성적을 내고 피트월에 전략 담당자를 배치할 생각을 하기 이전에 전략이 무의미한 수준이며 이런 상황에서 구할 수 있는 드라이버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핵심 스폰서인 하스 역시 이 상황에 전혀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감독으로써 버텨내기 힘들 겁니다. 하지만 지난 몇 년에 걸쳐 넷플릭스 시리즈에 등장한 귄터 슈타이너 감독은 이런 ‘Fok’을 남발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상황 속에서도 그저 ‘Fok’이라고 말할 뿐 다시 웃으며 팀을 운영하고 또 2024 시즌 새 감독인 코마츠 아야오에게 진지한 얼굴로 시간을 썼으면 진척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진지하게 말하기도 하는 등 감독으로써 무사히 역할을 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2024년 2월에 공개된 시즌 6에 나타난 귄터 슈타이너 감독은 이전 5년에 걸쳐 보여준 입이 좀 거칠지만 쾌활했던 모습에 비해 이전에 비해 사람이 고갈된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실 아무리 실제 상황을 바탕으로 제작한다 하더라도 넷플릭스의 편집 방향에 따라 계속해서 귄터 슈타이너 감독의 밝은 면을 강조해서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캐릭터의 고갈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는 것은 어쩌면 지난 5년에 걸친 밝은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겪은 고통 끝에 이 캐릭터라도 소진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전에는 니키타 마제핀이 또 다시 바보 같은 주행을 한 다음에도 무전으로 ‘그래서 사람들이 너를 싫어하는 거야’ 라고 말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이 장면이 그렇게까지 고통스럽지 않게 편집했지만 지난 2023 시즌을 다룬 시즌 6에서 감독은 종종 말없이 의자를 뒤로 젖힌 채 눈을 감고 완전히 망가진 표정을 하고 있기도 하고 또 얼굴을 감싸 쥔 채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전까지 그렇게 강하고 쾌활했던 사람이라도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 결국 그런 모습으로 변해 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즌 6은 지난 2023 시즌에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제작되었기에 2023년 말 감독 자리에서 경질되었다는 사건을 포함하지 않고 있습니다. 시리즈 처음부터 강한 인상을 준 캐릭터이고 지난 몇 년에 걸쳐 겪은 온갖 어려운 일을 스크린 너머로나마 함께 해 왔기에 이 캐릭터의 퇴장은 여러 모로 아쉽습니다. 물론 귄터 슈타이너 감독이 레이싱 팀 감독으로써 훌륭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감독 역시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성적으로 말해야 하며 이는 예산이 부족한 것과는 별개로 그 안에서 납득할 수 있는 실적을 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특히 2021년에서 2022년 사이에 두 드라이버를 모두 루키로 교체한 결정은 굉장히 용감한 결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완전히 실패했으며 팀을 심각한 재정적 위기로 몰아넣은 결정이기도 했으며 이 결정으로 인해 2024 시즌에도 하스의 피트월에는 여전히 다른 팀에 3분의 1도 안되는 인원이 앉아 모든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또 본인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엔지니어링 부서가 원활하게 동작하지 않는 상태를 오랜 기간 방치해 프레임과 엔진을 다른 팀으로부터 공급 받고 있음에도 레이스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퍼포먼스를 보였고 이 결과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감독 자리에서 경질되는 모습은 납득할 수 있는 성적을 거두는데 실패한 선수들이 사정 없이 사라지는 것과 비슷한 비정한 세계를 보임과 동시에 깊은 아쉬움을 느끼게 만듭니다.

개인적으로 시지난즌 6년에 걸쳐 모니터 너머로 지켜본 귄터 슈타이너 전 감독의 변화는 고통이 사람을 소진 시켜 가는 과정으로 정의합니다. 분명 그는 독특한 퍼스널리티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됐고 또 쾌활한 면을 통해 화면에 등장하는 시간을 즐겁게 만들었습니다. 넷플릭스 입장에서 이런 캐릭터는 분명 시리즈를 만들어 가는 큰 동력이었겠지만 잘못된 스폰서 선택, 잘못된 드라이버 기용, 잘못된 리서치 방치 등 커다란 실책이 부각되지 않는 상황을 만들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모든 문제는 납득할 수 있는 예산을 지원 받으며 긴 안목에 걸쳐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갑작스레 감독을 교체하는 충격 효과를 통한 일시적인 개선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단지 그 뿐이라면 다음 감독 역시 세월이 흐름에 따라 고통 속에 소진되어 귄터 슈타이너 감독이 시즌 6에 보여준 고통 속에 완전히 소진된 모습을 뒤따를 뿐입니다. 하스 팀 입장에서 귄터 슈타이너 전 감독은 독특한 퍼스널리티를 통해 여러 사람에게 인기있었지만 결국 팀 성적을 끌어올리는데 실패하는 여러 결정에 직접 기여한 실패한 감독으로 기억될 겁니다. 또한 그 개인 관점에서는 오랜 기간 팀 운영으로 인한 고통 속에 소진되어 불명예스럽게 팀을 떠난 경험으로 남을 겁니다.

다니엘이 절대 떠나지 말았어야 할 곳에서 어떤 의사결정을 할 때 나중에서야 이 의사결정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의사결정을 할 시점에 가진 정보에 기반할 때 대부분 그 결정이 최선일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다니엘 리카도는 옮기지 말아야 할 때 옮겨 몇 년에 걸쳐 커리어에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반대로 귄터 슈타이너는 그 퍼스널리티로 인해 오히려 고통에도 불구하고 하스 감독 직을 떠날 수가 없었고 그 결과 개인이 완전히 소진되어 실패한 감독으로 불명예스럽게 팀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두 가지 이야기는 떠날지 떠나지 않을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각각 서로 반대의 상황으로 생각해볼 만 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한쪽은 떠나는 결정을 함으로써 커리어에 큰 피해를 입었고 다른 한쪽은 떠나지 않는 결정으로 오랜 세월 고통을 받아 소진되어 불명예스러운 경질을 겪었습니다. 어느 한 쪽이 옳지 않고 또 어느 한 쪽이 틀리지도 않습니다. 다만 각각의 결정은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옳고 그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이야기를 모니터를 통해 보는 우리들은 이를 통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여지를 만드는 것이 최선입니다.

다시 귄터 슈타이너 전 감독 이야기로 돌아와 개인적으로 이전에 정신적인 소진을 겪어 본 입장에서 외부에서 개입할 때까지 소진된 상태로 조직을 이끄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경질 조치는 전 감독 입장에서 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 마치 다니엘 리카도가 맥라렌에서 방출된 다음에야 슬럼프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인 것처럼 그 고통스러운 자리를 타의로라도 내려 놓은 다음에야 자신을 추스리고 더 나은 모습을 보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넷플릭스 시리즈로부터 더 이상 이 캐릭터를 볼 수 없음은 아쉽지만 이 고통으로부터 떨어져 자신을 추스리고 다시 레이스에 기여할 수 있는 상태로 돌아올 수 있다면 잠깐 그 캐릭터를 못 보는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추신. 내년 2025년에 올해 2024 시리즈에 근거한 새 넷플릭스 시리즈가 나오더라도 귄터 슈타이너 감독의 빈자리가 그리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지난 테스트, 바레인 그랑프리의 프랙티스 세션을 보니 하스 팀의 새 감독인 코마츠 아야오 역시 강단 있는 결코 만만찮은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