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S는 망한다. 아니 망했다.
아쉽게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몇 번의 변덕 덕분에 블로그를 처음 쓰기 시작한 다음의 모든 글을 지금까지 유지하지는 못했지만 글을 쓴 기간만 생각하면 꽤 오랫동안 글을 써 왔습니다. 블로그를 처음 쓰기 시작하던 시대에는 개인 홈페이지 시대가 저물고 글을 올리기 편리하게 만들어진 웹 기반 서비스에 서로 상대의 글에 대한 의견을 블로그 글을 통해 남겼음을 표현하는 지금 생각하면 기괴하기 짝이 없는 트랙백과 블로그 글을 기계가 읽어 다른 모양으로 변환하기 편리하게 하는 용도일 것으로 예상하는 RSS 링크를 붙인 블로그 웹사이트가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의 틈을 비집고 RSS들을 읽어다가 여러 블로그에 걸쳐 글을 읽을 수 있게 만들어진 서비스들도 한창 인기를 끌었는데 아무 글이나 읽으며 즐거워 하던 시대에는 이런 서비스의 도움을 톡톡히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동안은 어지간한 뉴스 사이트에서도 RSS를 제공하기도 했는데 뉴스를 평소에 글을 읽는 도구 안으로 편안하게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은 좋았지만 지금에 와서, 좀 더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에 가까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위에 이야기한 트랙백의 기괴함 만큼이나 뉴스 사이트의 RSS 역시 그 기괴함에 웃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20여년 동안의 글 쓰는 습관을 거친 현재의 블로그 서비스에는 RSS를 제공하고 있기는 한데 블로그를 서빙하는 고스트가 알아서 제공하고 있고 딱히 이걸 제공해야 한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 고스트가 RSS를 제거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한다면 RSS를 제거할 적극적인 의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고스트 앞단에 붙어 있는 클라우드플레어를 통해 RSS 주소에 접근하면 다른 주소로 보내 RSS를 무력화할 수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까지 부정적으로 행동할 필요는 없는 것 같고, 또 블로그를 고스트로 서비스하는 이유가 뉴스레터와 등록 후 구독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구독자 전용으로 설정한 글은 알아서 부분공개되니 방치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RSS가 어때서?!와 여기 연결된 블로그와 RSS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사용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RSS와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RSS가 서로 상당히 달리 보일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때 RSS에 의존해서 글을 읽던 시대에는 심지어 RSS를 제공하지 않는 웹사이트에 분노하거나 RSS를 제공하지 않는 웹사이트를 파싱해 RSS를 제공하게 만드는데 몰두하기도 했었는데 컨텐츠를 만드는 입장에서 이런 행동이나 이런 수단이 썩 의미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론 적으로 현대에 RSS는 수명을 다했고 RSS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이익도 주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또 아무 재미도 없으니 최근의 마스토돈 커뮤니티는 오래 못 갈 거라고 봐요에서 한 아직 결과를 알 수 없는 예측이나 반년 전 트위터 대안 분산 서비스에 대한 회의적 의견에서 했던 이제 와서 보니 틀린 예측처럼 이번에도 RSS의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해 보고 이유를 설명하려고 합니다.
한번은 웹에서 플래시를 통해 동작하는 게임을 만든 적이 있었는데 일단 플래시가 동작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은 딱히 당시 웹의 제한이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아 게임을 만드는데 큰 문제를 겪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는 게임 사이트에 배너를 붙이는 광고주들에게 일어났는데 광고주들이 게임 사이트에 배너를 붙일 때 우리들에게 지불하는 금액은 웹사이트를 통해 배너가 몇 번 노출되는지, 몇 번 클릭되는지, 그리고 클릭을 통해 광고주가 원한 정확한 행동으로 연결되는지에 따라 책정되었습니다.
이전까지 웹사이트는 한 번 로딩되고 나서 페이지 상의 내용을 바꾸려면 페이지를 다시 로딩해야 했기 때문에 여기에 맞춰 배너 노출 횟수를 업데이트하고 이에 따른 비용을 청구할 수 있었는데 플래시 게임 사이트에 붙어 있던 배너는 같은 정책을 사용하는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미니게임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게임에 따라 한 번 시작하면 평균 몇 분 씩 게임이 돌아갔는데 그러는 사이에 그 페이지는 새로고침 되지 않았고 플래시 게임 덕분에 이전에는 훨씬 더 높았던 광고 단가가 배너가 화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상황임에도 낮게 책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광고주에게 이런 특징을 설명하고 노출 시간에 따른 비용 책정 등 다른 정책을 제시해야 했지만 당장 컨텐츠를 제공하는 우리들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당장 적정 광고 단가를 책정하도록 만들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플래시 게임이 동작하는 동안 캐릭터가 말하는 대화창 하나하나에, 그리고 스테이지가 전환될 때, 게임 내 정보를 보여주는 팝업 하나하나에 웹페이지 접근 로그를 심었고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페이지 리로딩 없이도 페이지 조회 횟수가 올라가게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이는 꽤 합당한 숫자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가서야 이를 템퍼링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고 현대적인 웹사이트 광고비 책정 관점에서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으로 정의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도 그 당시 상황에 템퍼링 말고 다른 어떤 방식으로 광고주에게 웹사이트의 구조 상 다른 방식의 광고비용 정산 방식이 필요함을 납득시키고 이에 맞춘 새로운 정산 규칙을 담은 광고 상품을 출시하고 계약을 다시 하는 등의 여러 회사가 얽힌 복잡한 과정을 우리들의 필요만으로 해낼 수는 없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에 웹사이트를 만들어 컨텐츠를 제공하는 이유는 거칠게 요약해 두 가지입니다. 첫째. 거칠게 표현하면 자랑하기 위해서, 조금 예쁘게 표현하면 자기 효능감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입니다. 현대에는 온갖 방식의 자기 표현 방식이 있고 각각의 방식에 따라 많은 사람들에게 인터넷이 닿는 현대 지구 상에 나라는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하고 저런 생각을 함을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한편 글을 쓰는 사람들 역시 좀 많이 몹시 클래식 하기는 하지만 현대에 자신 표현을 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텍스트를 통해 현대 지구 상에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런 행동의 근본적인 이유는 자기 효능감을 충족하기 위해서인데 자기 효능감은 단지 컨텐츠를 인터넷 상의 공개된 장소에 노출 시킨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글을 써 어딘가에 올려 놓기만 하는 데서 끝난다면 인터넷에 웹사이트를 만들어 글을 올리는 행동과 일기를 쓰는 행동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인터넷에 글을 써 올리는 행동을 통해 자기 효능감을 충족하려면 글을 쓰는 것과 함께 그 글을 누군가 읽고 나아가 피드백을 주고 받는 단계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웹사이트에 구글 애널리틱스나 디스커스를 붙여 누군가 다녀간 흔적을 살펴보고 또 운이 좋다면 답글을 주고 받기도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글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든 수익을 얻는 것입니다. 요즘 세상에 글을 써서 돈을 버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거나 사실상 불가능한 일로 알려지고 있지만 여전히 텍스트가 아닌 모든 컨텐츠의 시작은 텍스트를 통한다는 점에서 이전 시대처럼 글을 직접 팔아 돈을 만드는 방식에서 글을 통한 컨텐츠 생산을 통해 간접적으로 돈을 버는 방식으로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으로는 웹사이트에 광고 배너를 달아 사이트 운영 비용을 충당하거나 글을 어딘가에 기고하고 원고료를 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간접적인 방법에는 글을 통해 이름이 알려져 다른 기회를 얻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글에서 이야기하려는 RSS의 문제와는 어긋난 소재인 것 같아 더 이야기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RSS는 이런 시나리오 상에서 컨텐츠 생산자에게 그 어떤 이득도 주지 않으며 일방적으로 컨텐츠 생산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시스템으로 단기적으로는 구독자들에게 이익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컨텐츠 생산자를 파괴해 구독자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RSS는 오직 컨텐츠를 구독자 중심으로 재조합해 구독자의 편의를 도모하는데만 집중하고 있어 컨텐츠 생산자에게 그 어떤 자기 효능감 충족도 해 주지 못합니다. 자기 효능감을 충족하는 방법으로 웹사이트 방문자 수의 증감, 다른 글에 인용, 답글을 통한 피드백 같은 것이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RSS를 통한 독자들은 이 모든 행동에 극도로 소극적이거나 이 모든 행동을 수행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컨텐츠 생산자 입장에서 웹서버 로그나 클라우드플레어 애널리틱스를 통해 RSS 접근 횟수를 알 수는 있겠지만 구글 애널리틱스 같은 전통적인 웹사이트 로그 측정 방식으로는 RSS 접근 횟수가 잡히지도 않습니다. 실컷 컨텐츠를 생산해 웹사이트 운영 비용을 내며 제공하고 있지만 RSS를 통하면 극도로 일방적인 방법을 통해 구독자에게 편리하게 가 닿기는 하겠지만 컨텐츠 생산자는 접근 횟수, 피드백 등 자기 효능감 충족을 위한 아무런 기록도 얻을 수 없습니다.
또한 웹사이트를 통한 직접적인 수익구조를 파괴합니다. 트위터가 오랜 시간에 걸쳐 충분한 수익을 내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광고하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트위터 자체에는 광고 기능이 있었지만 서드파티 클라이언트가 임의로 광고를 제거하면 광고는 고객에게 가 닿지 않았고 노출 횟수에 따라 광고비를 책정하더라도 실제 사용자에 비해 턱없이 적은 광고비를 책정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심지어 여러 서드파티 클라이언트는 광고 없는 타임라인을 제공하는 점을 기능으로 내세우기도 했는데 이를 통해 서드파티 클라이언트 제작사가 수익을 얻는 점은 기묘하게 느껴졌습니다. 2023년 초여름 현재 일론님이 인수한 트위터가 API 접근 자체를 유료화 하는 결정은 짜증은 나지만 이런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RSS는 웹사이트를 통해 직접적인 수익을 얻기 위한 가장 흔한 수단인 배너를 통한 광고 집행 구조를 파괴합니다. RSS를 통해 글을 읽을 수는 있겠지만 그 글에는 원래 그 글과 함께 노출되었어야 할 광고 배너는 노출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종종 웹사이트 템플릿에 배너를 다는 대신 글 내용 자체에 배너를 달아 RSS에 광고 배너가 포함되도록 한 경우도 있었는데 이에 대응해 RSS를 읽는 서비스들이 글에 포함된 배너를 효과적으로 무력화 함으로써 직접적인 수익 구조는 완전히 무력화 되었습니다.
또한 RSS는 웹사이트를 통해 간접적인 수익을 얻기 위한 브랜딩을 무력화합니다. 현대에 글을 팔아서 돈을 버는 것은 위에서 이야기했듯 거의 불가능하거나 완전히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지만 그나마 글을 통해 웹사이트와 그 웹사이트를 만드는 개인 또는 그룹의 브랜딩을 통해 다른 기회를 모색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RSS를 통해 변형된 상태로 읽히는 글은 이 글과 함께 제공되었어야 할 웹사이트의 브랜딩 구성요소 대부분을 제거해 버립니다. 웹사이트 이름, 글쓴이 이름, 웹디자인, 글에 포함된 배너 이미지나 중간 삽입 이미지, 글 끝에 붙어 있는 관련된 글, 같은 카테고리나 같은 태그를 사용한 글 목록 등의 모든 브랜딩 요소를 제거하고 오직 글 만을 구독자에게 전달합니다.
이런 특징은 RSS를 통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장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과도한 광고와 사려 깊지 않고 또 의도적으로 불편하게 설계된 웹사이트의 함정을 피해 안전한 읽기 환경을 제공해 읽는 행동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점을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컨텐츠 제공자들에게 자기 효능감을 충족해 주지도 못하고 또 직접적, 간접적으로 웹사이트를 통해 수익을 얻을 가능성을 완전히 파괴해버리기 때문에 RSS는 장기적으로 컨텐츠 제공자들을 없애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위에서 그냥 결과론적인 이야기만 하면 재미가 없으니 뭔가 예상을 해 보면 재미있을 거라는 이야기와 함께 이전의 예측을 소개했는데 이번에도 예측을 해 보면 앞으로 6개월에서 1년 쯤 지난 시점에 텍스트를 주로 제공하는 웹사이트가 새로 생길 때 이 서비스가 공익의 역할을 하지 않는 이상은 RSS를 원해서 RSS를 제공하는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가령 국영 방송사의 웹사이트는 공익의 역할을 하므로 RSS를 제공할 수 있겠지만 개인이 작성하는 블로그 웹사이트나 사익을 위해 운영되는 뉴스 사이트가 RSS를 제공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또 아직 RSS를 제공하는 곳이 있다면 사이트 개편을 통해 제거될 겁니다.
결론. RSS는 한 20년 쯤 전에 트랙백과 함께 나타난 블로그 웹사이트의 기괴한 유산으로 한동안 의미 있게 동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현대에 이는 컨텐츠 제공자들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고 있어 공익을 위한 용도 이외에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