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통
지난 2년 동안 진행한 뉴스레터를 오늘로 마무리합니다. 앞으로는 평범한 블로그 모양의 웹사이트를 운영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2025년 2월 16일 일요일입니다. 뉴스레터는 항상 제가 정한 주기에 맞춰 글을 공유하기 때문에 그 주에 공유할 글보다 좀 더 많은 글을 미리 작성해 두면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어떤 이유로 그 주에 글을 작성하지 못할 일이 생기더라도 주기에 맞춰 글을 계속해서 공유하는데 지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기적으로 마감에 맞춰 원고를 제출해야 하는 웹툰 같은 분야에서는 이렇게 미리 작성해 놓은 분량을 ‘세이브 원고’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이런 세이브 원고는 제가 주말 일정을 수립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항상 글이 시의 적절한 시점에 공유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글 어딘가에 그 글을 작성한 시점을 ‘2025년 초’나 ‘2024년 겨울' 같은 식으로 약간 모호한 모양으로 나타내곤 했는데 이렇게 글을 작성한 시점을 표시한다 하더라도 글이 공유될 시점과는 차이가 있기에 어느 때는 상당한 뒷북을 치거나 글이 공유되는 시점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도 않은 주제로 이야기할 때도 있었습니다. 다만 오늘은 이 글을 작성한 다음 바로 전송할 계획이기 때문에 방금 설명 드린 시의 적절하지 않은 글이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글이 뉴스레터의 마지막 글이라는 점은 좀 더 미리 개선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1년은 52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약 2년 전인 2023년 4월에 혹시 거기 계시면 제게 알려주세요로 뉴스레터를 시작한 다음 매 주 글을 공유했습니다. 그 때는 2022년 글쓰기 회고에 소개한 소위 ‘글을 못 쓰는 병'을 막 벗어난 상태였습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업무 이외에는 도무지 아무 것도 쓸 수 없는 상태를 겪다가 굉장히 오랜만에 글을 쓸 수 있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이 참에 계속해서 글을 쓰는 상황을 만들어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글을 쓸 수 없게 되는 상태에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기왕에 글을 다시 쓸 수 있게 된 김에 최대한 빡빡하게 매 주, 그리고 각 주마다 대부분 여섯 가지 주제에 대한 글을 보냈습니다. 만약 매일 글을 쓴다고 가정하면 일주일에 하루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날에 글을 작성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실은 매주 토요일 오후를 글 쓰는 날로 설정해 그 날 하루에 다음 주에 나갈 글을 전부 다 쓰는 식이었습니다. 그렇게 총 50주에 걸쳐 글을 작성했습니다. 오래된 제 경험과 생각, 또 주변에서 보고 들은 것, 이로부터 느낀 점들을 가상의 상대에게 설명하는 형식으로 글을 작성하는 일은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왜 이전 몇 년 동안 아무 것도 쓸 수 없는 상태에 빠졌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매 주 그 정도 템포로 글을 만드는 것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기에 뉴스레터 시즌 2 계획 안내를 통해 매 주 레터를 보내는 것은 50회 까지로 마무리하고 이를 시즌 1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2주 마다 보내도록 일정을 바꿨습니다. 주기가 길어지고 또 각 주기마다 공유하는 글 수 역시 줄였기 때문에 글 하나하나를 작성하며 생각을 좀 더 길고 깊게 할 수 있어 저 개인에게는 더 도움이 되었습니다. 매 주마다 글을 보냈고 이를 50주 동안 이어갔으니 1년에 2주 모자란 기간인데 ‘그래도 대강 1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 다음은 2주에 한 번 글을 보내는 것으로 시즌 2를 진행했습니다. 이전과 다른 점은 2주에 한 번 글을 보내며 한 번에 보내는 글 수 역시 줄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글 각각의 분량이 조금씩 길어졌습니다. 글을 만들어 놓고 그걸 다시 읽어보는데 걸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경험을 통해 이를 간접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1년과는 달리 이번에는 이 정도 속도로 제 오래된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면 앞서 잠깐 소개한 세이브 원고가 아주 천천히 늘어났고 여전히 매 주 토요일 오후에 글 쓰는 날을 운영했지만 어쩌다 토요일에 일정이 생기더라도 약속한 날 약속한 분량의 글을 공유하는데 지장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가령 작년 11월에는 4주 연속으로 토요일에 글을 작성할 수 없었는데 이 역시 2주에 한 번 글을 보내는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한편 이렇게 회차가 늘어남에 따라 이 습관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지, 또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저 자신이나 글을 봐 주시는 분들께 올바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난번에는 한 주에 한 번 글을 보냈으니 50회가 되었을 때가 대략 1년에 다다른 시점이었다면 이번에는 두 주에 한 번 글을 보내 왔으니 75회가 되는 시점이 대략 2년에 다다르는 시점이기 때문에 지난번에 72번째 메일을 보낸 다음 어찌어찌 같은 습관을 4주 모자란 거의 2년에 걸쳐 유지했다는 점에 자찬하면서도 이제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도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이 정도 속도에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기에 기왕 이렇게 두 번째 해를 보낸 김에 이대로 세 번째 해를 계속해 100회 까지는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낙관적인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지난 72번째 레터를 보낸 다음 73번째이자 마지막 레터를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몇 주 사이에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났고 더 이상 레터를 작성해서는 안되며 한동안 앞으로 어떻게 이 습관을 계속할지 고민한 다음 적당한 방법을 정한 다음에야 다음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달 전에 사과문을 작성했습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제가 과거의 경험에 기반해 작성한 글들이 현재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깊은 실망감을 드린 것입니다. 저는 이 결과가 결코 제 의도가 아니었다고 말했지만 실은 이 상황에 제 의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 의도가 아니라 제 행위입니다. 제 행위가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깊은 실망감을 드렸고 이 원인은 제가 작성한 글 때문입니다. 글을 작성한 의도, 소재가 현재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과거로부터 왔다는 점 등은 이 판단에 고려할 요소가 아닙니다. 제가 작성한 글로 인해 실망하셨을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사과 드립니다. 이러한 상황의 원인은 저에게 있고 그 책임 역시 저에게 있습니다. 다만 제가 그 책임을 질 뾰족한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했기에 우선 지난 약 2년여에 걸친 글쓰기를 중단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볼 작정입니다. 2년 보다 더 먼 과거에 오랫동안 아무 것도 쓸 수 없는 상태에서 지금의 상태에 도달하면서 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이는 나쁜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저 자신이 너무 오랫동안 성장하지 않고 과거의 상태에 머무르며 과거의 시각으로 글을 만들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제 행동, 제가 쓴 글, 제가 하는 말은 그 파급 효과가 점점 더 커집니다. 사실 저는 이런 점을 부정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더 높은 직위에 있지도 않고 더 책임 있는 역할을 하고 있지도 않기에 과거와 같은 관점으로 생각하고 과거와 같은 관점으로 행동하며 글을 작성해 왔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서서히 변했고 제 행동은 제 생각보다 더 큰 파급 효과를 일으키며 이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제가 예상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이런 결과는 저에게 성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몇 주 동안에 걸쳐 실제 세계에서 저에게 일어난 일을 통해 지난 오랜 기간에 걸쳐 성장하지 않고 있던 제가 제 주변에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제 스스로를 조금은 당황하며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입장과 관점에 알맞도록 성장하지 않는 이상 커리어를 계속해 나갈 수 없겠다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과거의 시각에 기반해 생각하고 글을 만드는 행동을 멈추고 이 다음 단계로 진행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개인적인 목표는 정년까지 게임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성장하지 않으면 이 목표를 아마 달성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우선 다음에 나열한 몇 가지 행동을 하려고 합니다. 겉으로는 별다른 변화가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크게 두 가지 변화가 있습니다.
- 뉴스레터를 중단합니다: 지난 2년 동안 진행해 온 뉴스레터 발행을 중단합니다. 앞서 설명 드린 세이브 원고가 앞으로 몇 달 동안 뉴스레터를 운영할 만큼 준비되어 있기는 하지만 과거의 시각으로 작성한 글은 현재에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아직 공유하지 않은 모든 글을 제거할 겁니다. 현재 공개되어 있는 글 이외에 글을 공개하게 된다면 이는 아주 조심스럽게 가치 중립적으로 작성한 사회적 현실 속의 저와 완전히 동떨어진 주제에 한할 겁니다.
- 블로그 형식으로 돌아갈 겁니다: 사실 웹사이트 모양은 지금과 같이 유지될 겁니다. 그래서 겉보기에는 달라진 점이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2주에 한 번 시간에 맞춰 글을 공유하던 것에서 여느 블로그와 비슷한 형식으로 비정기적으로 글을 공유할 겁니다. 이는 바로 위에 설명한 대로 아주 조심스럽게 가치 중립적으로 작성해 제 사회적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주제에 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정기적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작성한 글을 메일을 통하지 않고 웹사이트에 공개할 겁니다.
가치 중립적인 글은 과거에 작성한 사례를 들면 처음으로 도커 이미지를 만들어 보고 배운 것, 숏폼 블로그 실험, GL-MT6000 공유기 사용기, 카를로스 사인츠의 팀 선택 의사결정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제 개인적인 현실과 연결되지만 주변에서 볼 때 제 사회적 현실이나 제 업무적 과거와 연결되지 않는 것들입니다. 아직 작성하지 않은 주제에는 아틀라시안과 윌리엄스 레이싱의 파트너십 같은 주제들이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이런 이야기들만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종의 성장통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어떤 글이 어느 분들께 문제를 일으켰는지 모릅니다. 또 알아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거를 언급한 제 글이 현실에 문제를 일으켰다는 사실, 그래서 그 글들이 제 주변에 큰 실망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그만 두는 것은 썩 올바른 결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생각의 멱살에 설명한 대로 텍스트를 만드는 일은 제가 생각을 이어가고 또 어떤 문제에 대한 실행 가능한 답변을 순식간에 내놓을 수 있는 원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상황이 개인적으로 저 자신을 힘들게 만들어 주변에 조언을 구할 때 ‘왜 님은 굳이 과거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끄집어내 글을 만들어 이런 일어날 필요가 없는 문제를 일으키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과거의 부끄러운 일을 끄집어내 곱씹는 행동은 정신 건강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제 관점에서는 과거에 일어난 일을 곱씹어 보고 다음 번에 같은 문제가 일어나면 어떻게 행동할지, 또 어떤 실행 가능한 해결책이 있을지 미리 생각해 둬 여러 차례에 걸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은 미래에 서로 다른 맥락에서라도 반드시 다시 일어납니다. 그래서 괴롭지만 과거의 일을 굳이 끄집어내 곱씹어 보고 이를 가상의 청자를 대상으로 설명하는 형식의 글을 만드는 일은 이번에 제 글이 큰 실망을 안겨드리기 전까지는 개인적인 관점에서 적절하게 동작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행동을 완전히 그만 두는 것 보다는 저를 포함해 아무도 다치지 않을, 아무도 실망감을 느끼지 않을 적절한 주제와 적절한 표현 방식을 도출해 가는 것이 가장 올바른 접근이라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하지만 그런 성장은 간단히 획득할 수 있지 않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성장 과정에서 절대로 실수해서도 안된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우선은 한동안 아무 것도 작성하지 않는 시간을 가지며 앞서 저에게 조언해 주신 고마운 분의 말씀을 무시하고 다시 이 상황을 끄집어내 곱씹어 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곰곰이 생각해볼 작정입니다. 그 다음에는 아주 조심스럽게 제 과거나 현재에 직접 연결되지 않는 가치 중립적 주제에 한해 비정기적으로 글을 만드는 식으로 블로그 모양의 웹사이트를 운영해 나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뉴스레터는 이 메일로 마무리하고 이 다음부터는 더 이상 메일을 발송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2년 여에 걸쳐 지켜봐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 제가 제 영향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작성한 글로 인해 실망하셨을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 말씀 드립니다. 열심히 고민해 올바른 방법을 찾아내겠습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