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수집형 게임의 이해

현대의 여러 가지 수집형 게임들은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고 어떻게 발전해 왔을까요? 오늘은 수집형 게임의 기원부터 현대적인 형태에 이르는 변화 과정과 이 장르를 둘러싼 여러 가지 수학적, 심리적 요소들을 살펴보겠습니다.

현대 수집형 게임의 이해

전에 캐릭터 수집 메커닉의 진화와 MMO 통합 가능성, 도탑전기가 시장에 미친 영향을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수집형 게임 자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작정입니다. 수집형 게임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글이 범위와 접근 방법을 정의해야 합니다. 1990년대 초 물리 트레이딩 카드 게임(TCG)에서 시작해, 2000년대 디지털 카드게임, 2010년대 이후 모바일 가챠·캐릭터 수집형 게임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한 줄로 이어 보려고 합니다. 단순히 '가챠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등장했다'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규칙과 메커닉이 등장했고, 그게 어떤 플레이어 심리와 비즈니스 논리에 기대고 있었는지, 그리고 문제가 터졌을 때 어떤 방식으로 고쳐 나가려 했는지를 차근차근 살펴보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결국 현대 수집형 게임 디자인에서 무엇을 조심해야 하고 어떤 원칙을 세워야 하는지까지 연결해 보겠습니다.

우선 시간 순서대로 보면 출발점은 물리 카드 수집입니다. 1993년에 나온 '매직: 더 개더링'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트레이딩 카드 게임'이라는 장르를 사실상 처음 정의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매직은 서로 다른 색과 역할을 가진 카드를 모아 60장 덱을 만들고, 그 덱으로 상대와 대전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카드를 모으는 방식이 '랜덤 부스터 팩'이라는 형태로 설계되었다는 것입니다. 플레이어는 부스터 팩을 사서 뜯어 보기 전까지 어떤 카드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없고, 안에는 커먼, 언커먼, 레어처럼 서로 다른 희귀도의 카드가 섞여 들어 있습니다. 이런 구조는 이후 대부분의 카드게임과 수집형 게임이 채택하게 되는 기본적인 수집 메커닉의 뿌리가 됩니다[^The First Trading Card Game to Today: A Brief History][^Researching Collectible Card Game History at The Strong]. 이후 포켓몬 카드게임, 유희왕 카드게임 같은 작품들이 연달아 등장하면서, '수집형 카드 + 대전 규칙 + 확장팩 발매' 패턴이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됩니다. 포켓몬 카드게임은 비디오 게임 시리즈와 연동된 도감 개념, 유희왕은 애니메이션 스토리와 연계된 테마 덱과 프로모 카드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카드 수집 루프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합니다. 공통점은 모두 '실제 카드'를 손에 쥐게 해준다는 점, 그리고 새 부스터 팩과 확장팩이 나올 때마다 덱을 보강하거나 완전히 새로 짜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자연스럽게 더 많은 카드를 모으게 만든다는 점입니다[^Welcome to the World of Trading Card Games][^Trading Card Games: From Tantalising Origins to Modern Appeal].

다음은 이 카드게임들이 디지털로 옮겨가는 과정입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 PC와 콘솔로 발매된 카드게임은 대부분 '물리 카드게임의 룰과 카드풀을 그대로 옮긴 버전'에 가까웠습니다. 플레이어는 여전히 카드 덱을 구성하지만, 규칙 처리와 전투 흐름은 컴퓨터가 자동으로 계산해 주고, 온라인 대전을 통해 멀리 떨어진 사람들과도 대결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수집 메커닉 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습니다. 여전히 부스터 팩을 사고, 여전히 카드 희귀도에 따라 덱 구성 난이도가 갈립니다. 다만 디지털 환경이기 때문에 카드 효과 처리나 복잡한 룰 분기에서 플레이어가 실수할 여지가 줄어들고, 카드 상태나 버프 같은 정보도 시스템이 자동으로 추적해 줍니다. 이런 차이는 나중에 디지털 전용 카드게임이 완전히 새로운 메커닉을 시도할 수 있게 해주는 기반이 됩니다[^A Study of Digital Card Games\][^The Rise of Digital Trading Card Games]. 2010년대에 들어서면 물리 카드의 단순한 디지털 복제에서 벗어나, 아예 '디지털 전용 수집형 카드게임'이 나타납니다. 대표적으로 하스스톤, 매직 아레나 같은 게임들은 실물 카드가 존재하지 않는 카드까지 포함해 전체를 디지털 구조로 설계합니다. 이들은 여전히 '부스터 팩을 돈이나 게임 재화로 사서 랜덤 카드 수집'이라는 물리 카드게임의 유산을 계승하지만, 디지털의 장점을 살려 와일드카드 같은 만회 수단을 넣거나, 서버 패치로 카드 능력치를 직접 바꾸는 식의 빠른 밸런스 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여전히 '무엇을 모으는가'의 대상이 카드에 머물러 있지만, 이미 '어떻게 계속 모으게 하는가'에서 디지털 특유의 강점을 시험해 보고 있는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Digital collectible card game][^Mediatization of a Card Game: Magic: The Gathering, Esports, and Streaming].

이 흐름이 완전히 바뀌는 지점이 바로 일본 모바일 소셜 게임의 가챠 도입입니다. 2010년에 코나미가 GREE에서 선보인 '드래곤 컬렉션'은 카드나 몬스터를 수집하는 구조에 '가챠'를 전면 도입한 작품으로 자주 언급됩니다. 플레이어는 퀘스트를 진행하고, 그 보상으로 받는 상자나 직접 사용하는 뽑기에서 몬스터를 얻습니다. 겉으로 보면 카드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때부터 '실제 팩을 사서 뜯는 행위'가 '어디서나 손가락으로 누를 수 있는 랜덤 뽑기'로 옮겨 가고, 반복 속도와 심리적 진입 장벽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물리 TCG에서 검증된 랜덤 부스터 + 희귀도 구조가 모바일 환경과 만나 '가챠'라는 새로운 수익 모델로 재탄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Gacha Game (Game Design)][^Dragon Collection]. 이후 '퍼즐앤드래곤', '몬스터 스트라이크' 같은 작품들이 퍼즐, 액션, RPG에 몬스터 수집과 가챠를 결합하면서 지금 우리가 아는 수집형 모바일 RPG의 기본형이 만들어집니다. 여기서 수집의 대상은 카드가 아니라 몬스터나 캐릭터가 되고, 덱 빌딩 대신 '파티/팀 편성'이 핵심 메커닉이 됩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보면 여전히 TCG와 똑같이, 여러 속성·역할을 가진 유닛을 모아서 특정 던전이나 보스에 맞는 조합을 찾고, 새로운 던전이나 속성 메타가 나오면 또 다른 유닛을 모으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즉 '무엇을 모으는가'가 카드에서 캐릭터로 바뀌었을 뿐, '어떻게 계속 모으게 만드는가'는 부스터 팩과 밴 시스템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검증된 방법을 재활용하고 있는 셈입니다[^Game Mechanics][^Team Building in 2024].

이런 연대기 위에 서서, 세 가지 축을 동시에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축은 디자인입니다. 각 시대의 게임이 어떤 규칙과 메커닉으로 '수집'이라는 행동을 게임플레이 안에 녹여 넣었는지, 어떤 식으로 여러 캐릭터·카드를 모으지 않으면 진행이 어렵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가챠 천장, 속성 상성, 덱/파티 슬롯 제한 같은 장치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이를 위해 매직, 포켓몬 TCG, 하스스톤, 퍼즐앤드래곤, 페이트/그랜드 오더, 원신, 블루 아카이브 같은 대표 타이틀의 구조를 차례로 분석할 예정입니다. 둘째 축은 심리입니다. 사람은 왜 같은 카드를 여러 장 모으고 싶어 하고, 왜 도감이 90% 찼을 때 마지막 10%를 채우기위해 몇 배의 시간과 돈을 쓰는지, 그리고 왜 확률형 보상이 주는 '언젠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지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가변 비율 보상 스케줄, 도파민 보상 예측, 완성 욕구 같은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수집형 게임은 이런 메커니즘을 의식적으로 사용해 플레이어의 동기를 설계합니다. 다양한 연구에서는 이러한 보상 구조가 도박과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뇌의 보상 회로를 자극한다는 점과, 특정 성향의 플레이어(예를 들어 충동성이 높거나, ADHD 성향이 있는 사람)에게 더 강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Motivational Profiling of League of Legends Players][^Links between problem gambling and spending on booster packs in collectible card games: A conceptual replication of research on loot boxes]. 셋째 축은 비즈니스입니다. 수집형 게임의 수익 모델은 단순히 '유료 재화를 파는 게임'이 아니라, 플레이어마다 제각각 다른 지불 의사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가격 차별 구조에 가깝습니다. 전통적인 패키지 게임은 모두에게 같은 가격을 받지만, 가챠 게임은 한 명은 0원, 다른 한 명은 수십만 원을 쓰게 할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발표된 여러 업계 분석 자료에서는, 상위 1%의 과금 유저가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구조가 얼마나 일반적인지, 그리고 이런 구조 위에서 가챠, 시즌 패스, 한정 상점, 배틀패스 같은 다양한 수익화 기법이 어떻게 조합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동시에, 규제와 사회적 비판, 플레이어 피로가 쌓이면서 일부 게임들은 루트박스를 폐지하거나, 확률 공개와 천장 도입, 시즌 패스 중심 모델로 전환하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런 변화가 실제 매출과 커뮤니티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도 함께 다룰 예정입니다[^What are gacha games? Mechanics, monetization & growth explained][^The top game monetization strategy to maximize profit].

이 글의 주요 독자를 세 그룹을 예상합니다. 첫 번째는 게임디자이너입니다.. 특히 카드게임, 수집형 RPG, 라이브 서비스 게임을 설계하는 분들에게는 '어떤 메커닉이 플레이어의 수집 행동을 어떻게 유도하는지'뿐 아니라 '어디서부터 과도한 압박과 번아웃, 이탈을 유발하는지'를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보이려고 합니다. 동일한 가챠 구조라도, 어떤 게임은 유저에게 상대적으로 공정하게 인식되고, 어떤 게임은 같은 과금 구조를 가지고도 훨씬 더 강한 반감을 부릅니다. 이런 차이를 게임디자인 관점에서 분해해 보는 것이 목표입니다[^Game Design Psychology: Understanding User Behaviour][^Understanding Player Psychology and Its Impact on Video Game Development\]. 두 번째는 데이터 분석과 라이브 운영 담당자입니다. 수집형 게임은 기본적으로 '장기 접속 + 반복 플레이 + 장기적으로 증가하는 과금'을 전제로 설계됩니다. 그런데 실제 라이브 데이터에서는 일정 시점 이후 일일 접속률과 과금이 동시에 떨어지는 '번아웃 구간'이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이 글에서는 FOMO를 이용한 이벤트 설계, 일일 퀘스트의 양과 피로도, 신규 캐릭터/카드 출시 주기와 매출 스파이크 패턴 등, 수집 메커닉과 라이브 지표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러 사례를 바탕으로 설명하려 합니다. 이를 통해 '숫자를 단기적으로 끌어올리는 설계'가 장기적으로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 짚어볼 수 있을 겁니다[^A Framework for Decoding What Players Really Want: The Psychogenic Equilibrium Theory of Gamer Motivation]. 마지막으로, 이 글은 수집형 게임을 깊이 이해하고 싶은 플레이어를 위한 글이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왜 나는 이 게임만 하면 뽑기를 멈출 수 없을까', '왜 어느 순간 이 게임이 질려 버렸을까' 같은 감정을 경험하셨을 겁니다. 이 글은 그런 감정이 개인 의지의 문제라기보다는, 설계된 보상 구조와 커뮤니티 환경, 메타 변화, 과금 모델이 함께 만들어 낸 결과라는 점을 차분하게 설명할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이 글은 물리 카드에서 디지털 카드, 그리고 모바일 캐릭터 수집형 게임으로 이어지는 큰 흐름을 따라가면서, '무엇을 모으게 하는가'와 '어떻게 계속 모으게 만드는가'를 디자인, 심리, 비즈니스 세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리고 그런 분석을 바탕으로, 좋은 수집형 게임 디자인이 되려면 어떤 원칙을 지켜야 하고, 어떤 함정을 피해야 하는지까지 연결해 보고자 합니다. 이 다음 장부터는 각 시대와 게임을 하나씩 짚어 가며,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Why I burn out on gacha games and how I am learning to enjoy them again][^A study of gatcha games: the UX of the Pokemon TCG Pocket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