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워치 사용기

애플워치 사용기

3년 전에 애플워치를 사용하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순전히 취향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사용하던 보통 손목시계는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작동했지만 딱 한가지, 초침이 정확한 시각에 맞지 않는 점이 불만이었습니다. 제가 초침까지 정확한 시각을 봐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방송이나 항공산업에 종사하지는 않으니까요. 심지어 인터넷 서비스 대부분은 정시로부터 몇 초 정도 틀려도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초 단위가 정확히 맞는 시계를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기계식 시계로 초 단위가 정확한 시계는 제가 범접할 수 있는 가격대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 애플워치의 여러 가지 특징 중 하나로 정확한 시각을 광고하고 있었고 적당한 가격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겠다 싶어 애플워치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애플워치는 시계 이외의 기능도 있었습니다. 하드웨어는 아무래도 속도보다는 저전력이 핵심일 것이 분명한 낮은 속도로 동작하는 프로세서와 조그만 스토리지 기반에 심박계와 모션 센서, 기압계, 모션센서 정도입니다. 그 외에 제가 모르는 다양한 하드웨어가 가득할지도 모르지만 제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하드웨어는 저 정도입니다. 소프트웨어에는 아이폰과 비슷한 몇몇 내장 앱과 애플워치를 지원하는 서드퍼티 앱을 이용해 기능을 확장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애플은 아이폰보다 더 사용자의 몸에 가까이, 더 오래 붙어있을만한 새로운 기계를 발명해냈다고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오늘 불만으로 가득 차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3년간의 결론은 애플워치는 '시계'를 제외한 나머지 어떤 용도로 만족시켜주지 못했습니다.

먼저 정보를 전달하는 기기로는 불만족스러웠습니다. 작은 화면으로 표시할 수 있는 정보량은 뻔했습니다. 작은 화면이 정보를 잘 전달하려면 사용자의 행동을 잘 추적해서 맥락을 파악하고 그때그때 필요한 적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합니다. 가령 온갖 정보기기 사용 사례에 늘 등장하는 비행기 탑승 시나리오를 생각해봅시다. (왜 항상 비행기 탑승 시나리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애플워치의 작은 화면에 내가 탈 비행기의 보딩시작시각, 출발시각, 터미널 이동시간을 고려한 출발시점을 한 화면 가득하게 보여줄 수 있고 이미 대다수 앱이 그러고 있습니다만 사실 각각의 정보를 시점과 상황에 맞게 작은 화면을 통해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앱 개발사들은 이런 연구를 그리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애플 자신도 이런 행동과 맥락에 따른 정보제공보다는 별로 와닿지 않는 통화 중 차고 문 여닫는 시연이나 호수 한가운데에서 전화받는 시연 따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서드퍼티 개발사들의 동기를 유발하는데 실패했고 애플워치용 앱스토어는 몇 년 째 (몇 달 아님) 거의 비슷한 앱을 나열한 초기화면에 여전히 별로 매력적이지도 유효하지도 않은 앱 목록이 있을 뿐입니다.

느립니다. 애플워치는 느립니다. 가장 최근 세대 제품도 충분히 빠르지 않습니다. 애플워치는 손목에 매달려 움직이는 기계입니다. 이 기계로부터 정보를 얻는 시나리오는 대부분 지금 당장 표시되어야만 합니다. 애플워치 앱스토어에 천년만년 걸려있는 앱 중에는 환율 앱이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폰 대신 애플워치에 깔린 환율 앱을 실행하며 사용자가 할 기대를 생각해봅시다. 주머니나 가방 안에 있을 아이폰을 꺼내 실행하는 것보다 더 빨리 정보를 얻을 것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빙글빙글 도는 로딩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어야만 그나마 앱의 초기화면에 도달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 시간이면 아이폰 앱을 실행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폰은 모든 작업을 훨씬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내 주머니나 가방만큼 가까이 있는데 말입니다. 다른 작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리에게 질문하면 시리는 종종 응답이 지연됩니다. 지금 당장 출발해야 하는데 스트라바초기화면은 로딩이 덜 끝나 버튼이 눌리지 않습니다. 곧 버스가 도착할텐데 버스 안내 앱은 아직 로딩중입니다. 이런 경험이 쌓인 결과 애플워치 배터리시간은 자꾸만 늘어났습니다. 어지간한 작업을 애플워치로 하지 않게 됐기 때문입니다. 앱을 언인스톨하고 아이폰 앱의 푸시만 받아도 별 무리 없이 살 수 있는데 뭐하러 로딩을 기다리며 애플워치에 앱을 직접 설치해 사용할까요?

애플워치의 피트니스 기능은 부정확합니다. 특히 심박측정은 신뢰할 수 없습니다. 애플워치가 심박을 온전히 측정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바닥에 누워 잠잘때 뿐입니다. 네. 정말로 누워서 잠잘때 외에는 심박을 예정된 간격에 따라 정확히 측정하는 법이 없습니다. 일단 애플워치가 선택한 광학식 심박측정 자체가 기본적으로 신뢰도가 떨어집니다. 피부색이 다르거나 피부에 땀이 나면 심박을 자주 놓칩니다. 네. 심박을 놓칩니다. 운동강도를 올려 실내자전거를 탄 다음 기록을 보면 중간에 별다른 이유 없이 심박이 사라진 구간이 나타납니다. 이를 악물고 드랍바를 잡고 있었을 뿐이지만 단지 온몸이 땀범벅이 됐다는 이유로 심박은 사라지고 운동량 계산은 오차가 큰 한심한 숫자를 표시합니다. 파워미터 데이터를 참고하는 스트라바가 아니었으면 애플워치에 뜬 한심한 숫자를 믿었을 겁니다.

심박은 부정확하고 또 너무 띄엄띄엄 측정합니다. 가령 핏빗은 심박을 매 5초마다 측정합니다. 그러고도 배터리는 최대 1주일간 유지됩니다. 애플워치는 매 10분 (초 아님) 마다 심박을 측정하고 모션센서로 내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 추가로 심박을 측정합니다. 워크아웃이나 스트라바 같은 앱을 사용하면 심박 측정 주기를 1초로 할 수 있습니다만 스트라바 앱을 통해 연속으로 심박을 측정하면 배터리는 6-8시간 안에 바닥납니다. 이 말은 애플워치가 한동안 피트니스 기기로 광고했지만 이 기기를 결코 지구력 운동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루짜리 등산은 물론이고 가장 짧은 브레베에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한번은 자랑스럽게 액티비티가 없을 때 심박이 일정 수준 이상 증가할 때 경고했는데 이건 기적적으로 10분에 한번 심박을 측정할 때와 내가 인터넷 게시물을 읽으며 짜증이 대폭발하는 순간이 일치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입니다. 애초에 10분에 한번 측정하는걸론 아무데도 쓸모가 없습니다. 그나마 잘때 애플워치를 사용하면 다른 수면 측정 도구를 사용하지 않아도 심박을 통해 수면상황을 예측할 수 있는데 아무렇게나 생각해도 핏빗이 압도적으로 더 잘할겁니다. 그쪽은 10분이 아니라 5초마다 측정하니까요.

패션 용품으로는 어떨까요. 예쁘게 생겼다는 이유로 흰색을 골랐습니다. 흰색 케이스는 제품 라인업 중 가장 스크래치가 안 생기는 재질로 만들어졌고 3년이 지난 지금도 인정합니다. 알루미늄이나 스틸 케이스를 사용하는 애플워치들은 이미 바람만 불어도 스크래치가 생긴다는 젯 블랙 아이폰 뒷판 꼴이 됐지만 흰색 케이스는 사정없이 여기저기 부딪쳤음에도 생활 스크래치 하나 없이 멀쩡합니다. 하지만 애플 웹사이트 어디에서도 이 케이스가 애플에서 발매하는 스포츠밴드를 제외한 그 어떤 밴드와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경고하지 않았습니다. 애플워치는 시계 본체와 밴드가 직접 연결되므로 둘 사이의 색상이 다르면 놀랍게 꼴보기싫게 됩니다. 가령 흰색 케이스에는 가죽 밴드가 놀랄 정도로 안 어울립니다. 또 가죽 케이스는 연결 고리가 스틸 케이스를 가정하고 만들어진 나머지 알루미늄 케이스, 특히 색상이 있는 알루미늄 케이스에 가죽 밴드를 연결하면 길거리에서 아무 옷을 조각조각 구입한 다음 대충 기워 입은 듯한 어처구니없는 하이퍼스팀펑크 액세서리가 되고 맙니다. 패션 제품이라고 하기에는 밴드가 모든 라인업을 고려해서 제작되지 않으며 웹사이트에서도 이런 점을 전혀 알려주지 않습니다. 밴드나 케이스에는 서로 어울리는 소수의 조합이 있고 이는 이미 웹사이트에 나열된 사진의 조합 뿐입니다. 이 조합을 벗어나면 순식간에 엉멍이 됩니다. 이런걸 패션 제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참다못해 두번째 애플워치를 구입해 지금은 애플워치 두 개를 사용합니다. 최초의 용도는 애플워치를 하루에 22시간쯤 하고 있었더니 충전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는 낮에만, 하나는 밤에만 사용하면 하루 두 번 완전히 충전된 애플워치를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한 가지 이유는 흰색 케이스 말고 스틸 케이스가 필요했습니다. 스틸 케이스에는 그동안 흰색 케이스로는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쓸 수 없던 가죽 밴드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생각이 크게 틀리지 않아 이제는 하루 두 번 충전 걱정 없이 애플워치를 사용할 수 있게 됐고 또 가죽 밴드가 어울리지 않을 것을 걱정할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구성은 누구에게도 추천하지 못하겠습니다.

근본적으로 기기의 용도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십 수년 전 아이팟, 폰, 인터넷 커뮤니케이터로 정리된 아이폰에 비해 애플워치는 수 년에 걸친 무성한 소문과 조악한 선점 제품 가운데 팀쿡의 손목에서 뜬금없이 등장했습니다. 꿈은 패션 아이템과 작은 아이폰이었겠지만 현실은 그 어떤 미션도 깔끔하게 처리해내지 못하는 주기적으로 교체할 또 하나의 기기일 뿐이었습니다. 한동안은 패션 아이템으로 광고했고 이제는 피트니스 기기로 광고하는 모양인데 이들 중 어느 것 하나도 똑바로 수행하지 못합니다.

피트니스 기기 관점에서 다음 번에 - 일이년 후가 되겠지만 - 손목에 장착하는 피트니스 기기를 구입한다면 그때는 핏빗 같은 좀더 단순하고 목적에만 충실한 기기를 선택하려고 합니다. 이미 지구력 운동에는 와후 체스트 스트랩과 가민 바이크컴퓨터, 스마트 트레이너에 달린 파워미터의 도움을 받고 있으므로 굳이 일상생활용 피트니스 기기에 그렇게 큰 돈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패션 아이템이면서 시간이 잘 맞는 장치라면 가민에서 나온 시계 중 아날로그 시계이면서 폰과 최소한의 정보를 주고받아 화면에 표시하는 수준의 기능을 제공하는 사례가 장기간 사용에도 항상 교체할 필요가 없는 정보기기로써 적당한 수준의 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장치들 각각은 다시 너무 좁은 목적에 집중해 그 외의 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겠지만 최소한 애플워치처럼 모든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무엇도 해낼 수 없는 것 보다는 훨씬 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