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 레이스엔지니어는 왜 책임을 회피했을까?

2024년 영국 그랑프리에서 노리스의 레이스엔지니어는 마지막 타이어를 선택할 때 여러 모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유는 그들 자신에게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 그 레이스엔지니어는 왜 책임을 회피했을까?

작년 모나코 똥 참기 게임을 시작으로 F1 게임을 보며 저에게 인상을 남긴 사건들을 종종 소개하고 있습니다. 가령 처음에는 모나코 시가지 서킷이 그 역사적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레이싱에는 썩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다니엘이 절대 떠나지 말았어야 할 곳에서는 갓 전성기를 지난 선수가 매 순간 나중에 가서야 판단할 수 있었던 썩 좋지 않은 선택을 연속으로 하면서 아주 천천히, 그리고 고통스럽게 커리어의 내리막을 걷다가 결국 원점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를 개인적인 커리어의 내리막과 비교해 생각해본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또 고통은 사람을 소진시킨다에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해 봤지만 결국 팀 성적은 오르지 않고 여러 가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동시에 나타나는 상황에서 레이싱 팀의 감독 개인이 서서히 망가져 가는 과정을 살펴봤는데 이는 종종 회사에 있는 개발팀에서도 일어나는 일이기도 해서 완전히 남 일 보듯 보기 어려웠습니다. 한편 F1의 2026년 규정 변경과 지속가능성을 통해서 지난 오랜 세월에 걸쳐 F1이 유지되어 온 것처럼 앞으로도 자동차 제조사들을 경기에 참여시키고 이 행동이 자사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어필할 뿐 아니라 관중들에게도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고민을 살펴봤습니다. 여러 부정적인 의견들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결정이 장기적으로 이 게임에 제조사들이 계속해서 참여할 이유를 만드는데 충분히 기여할 수 있으리라 예상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저는 이 게임을 보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나마 이 게임을 보게 된 계기 역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통한 것이어서 이 게임의 다양한 측면, 특히 역사적인 측면이나 기술적인 측면, 그리고 전략적인 측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여느 아주 캐주얼한 관중 관점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하는데 시각적으로 지금 누가 상위권에서 달리고 있는지, 누가 실수를 하거나 사고를 내는지, 그리고 누가 언제 추월을 하는지 같은 아주 직관적인 정보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수준일 뿐 여기서 아주 조금만 더 들어가면 별로 아는 것이 없어 과연 이 게임을 제대로 의미 있는 수준으로 보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다 보니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서 이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인간적인 측면에 집중해 게임에 참여하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게 된 다음 실제 게임을 보면 이전보다 게임이 좀 더 각 개인들의 이야기에 기반한 스토리를 가지게 되어 이전에는 그저 자동차들 사이에 일어나는 추월로만 보던 장면이 그 안에 타고 있는 드라이버와 팀 크루들에 걸친 이야기로 인식되어 좀 더 재미있게 볼 수 있게 되기는 했습니다.

아마도 독성 사람은 그런 인간적인 측면에서 게임에 집중할 때 느낄 수 있는 감정 때문에 스스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 정도 수준에만 머무르고 싶지는 않기에 2025년도 레드불 드라이버 라인업 의사결정처럼 조금씩 관심의 범위를 넓혀 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고 오늘 생각해볼 이야기 역시 캐주얼한 관중 입장에서 지난 영국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보고 또 왜 이런 일이 벌어졌으며 이로부터 제가 배울 만한 것에는 뭐가 있는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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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4년 영국 그랑프리는 메르세데스 팀의 드라이버 루이스 해밀턴의 팬이든 팬이 아니든 그의 우승에 뭉클한 느낌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메르세데스를 썩 좋아하지 않았는데 2021년 이전에 너무 오랜 세월에 걸쳐 게임을 지배했고 그들과 함께하는 레이스는 적어도 서킷을 달리는 자동차들의 맨 앞 부분에서는 도무지 재미 있는 일이 일어나기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팀마다 예산 상한이 도입되면서 그 동안 보이던 너무 큰 차이가 서서히 좁혀지기 시작했고 드디어 이들이 다른 팀과 같은 게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널리 선언된 것이 바로 2021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이들과 해밀턴은 오랜 세월에 걸쳐 너무 많은 승리를 거뒀고 이제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팀이 의미 있는 경쟁을 벌일 수 있는 시대가 시작되는 마당에 그 이전까지 게임 전체를 썩 흥미롭게 만들지는 못했던 것 같은 팀에 흥미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 처음 등장한 감독 토토 볼프는 시즌 시작 전 직원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렛츠 크러시 댐!’ 이라고 작은 확성기를 통해 말하는 멋진 모습으로 시작했지만 시즌이 끝날 무렵 스튜어트에게 ‘노우 마이크 노우!’라고 말하는 추태를 보이며 시작할 때의 멋짐을 단 한 순간에 너무뜨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로부터 시작된 드라이버의 슬럼프와 팀이 마주한 어려움은 마치 앞에서 다니엘 리카도가 아주 천천히 그의 커리어의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는 그 시점과 겹쳐지며 마냥 즐겁게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는 사이 이번에는 레드불이 이전 메르세데스와 같은 자리를 차지했고 지난 2년 동안 진행된 시즌에서는 F1에 새롭게 F0 클래스가 신설되어 맥스 베르스타펜과 레드불은 홀로 F0를 플레이 하고 있었고 2위와 수 십 초의 시간 차이를 기록하며 승리를 반복합니다. 분명 2위 이하에서는 온갖 사건 사고가 일어나며 캐주얼한 관중 입장에서 재미있게 볼 수 있었지만 어찌 됐든 우승은 레드불이었고 심지어 레드불 차량은 중간에 뒤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 사고를 보여주느라 두 시간 내내 거의 카메라에 잡히지 않다가 마지막 결승선을 지나는 몇 초 동안만 등장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24년 시즌이 시작되고 해밀턴은 자신이 거의 10년 가까이 머무르며 역사적인 기록을 달성한 메르세데스를 떠나기로 결정했고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역할을 하던 귄터 슈타이너는 경질되었으며 레드불은 홀로 플레이 하던 F0를 그만 두고 드디어 나머지 차량들과 같은 F1을 플레이 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해밀턴의 기록은 그리 개선되지 않았는데 처음에는 좋은 기록을 달성하지 못할 때마다 쿨다운 랩에 차량 불평을 하는 모습이 썩 훌륭해 보이지 않았지만 한때 이 게임의 역사를 써 내려간 드라이버가 아주 천천히, 그리고 고통스럽게 커리어의 내리막을 내려가기 시작하는 모습을 처음 본 것이 아니다 보니 그의 팬이 아니더라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2024년 영국 그랑프리, 자신의 홈 경기에서 몇 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는 장면은 해밀턴이 경기가 끝난 다음 라디오를 통해 보이는 감정적인 모습 만큼이나 의미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긴 기간에 걸쳐 메르세데스 팀과 함께 이 게임에 역사를 쓰고 전설을 만들어냈지만 그 역시 사람이어서 에이징 커브를 피할 수 없었고 하필 비슷한 시점에 함께 찾아온 비용 제한에 의한 팀 경영에 있어 새로운 도전, 공기역학이 중요해진 새로운 메타 등에 빠르게 적응하는데 실패한 팀의 어려움이 합쳐져 정말로 앞으로 펼쳐진 커리어의 내리막을 서서히 내려가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을 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는 사이 해밀턴은 커리어의 마지막을 메르세데스와 함께 하는 대신 내년 시즌부터 페라리에서 샤를 르끌레어와 함께 하기로 결정했고 이는 아마도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선택이었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가 오다 말다를 반복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드라이버, 전략, 차량, 팀 모두가 의미 있게 행동해 획득한 우승은 감명 깊었습니다. 이 날 해밀턴은 실버스톤에서 우승을 통해 여러 가지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냈고 또 다시 자신이 살아 있는 전설이라는 사실을 입증해냅니다. 그런데 이 날 그와 함께 포디엄에 3위로 오른 랜도 노리스의 이야기는 해밀턴이 달성한 전설과는 또 다른 당혹스러운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었는데 지금까지 해밀턴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오늘 생각해볼 주제는 같은 실버스톤을 달린 랜도 노리스의 후반부 주행에 관한 것입니다.

총 52랩을 주행해야 하는 실버스톤에서 마지막 몇 랩을 남겨 놓고 맥라렌의 랜도 노리스는 레이스 엔지니어와 이 마지막 몇 랩을 달릴 타이어를 결정하기 위해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에 레이스 엔지니어의 역할은 자동차 바깥에서 전체 상황을 읽고 같은 팀에 속한 자동차 두 대의 퍼포먼스 데이터를 보고 또 다른 팀들의 라디오를 들은 다음 이 정보를 종합해 피팅 할 시점, 이 때 장착할 타이어의 종류 따위를 결정해 드라이버에게 사실상 지시하는 역할입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시 하는 역할과 지시 받는 역할은 일종의 위계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실제로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지시 하는 레이스 엔지니어는 그 지시를 받아 수행하는 드라이버에 비해 위계 상 더 위에 있고 레이스 엔지니어의 결정과 지시, 그리고 수행에 따른 결과는 표면적으로 드라이버의 순위로써 돌아오지만 위계 상 이 과정에 따른 책임은 레이스 엔지니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드라이버는 시속 300킬로미터를 넘나드는 자동차 안에서 시시각각 높은 횡가속도를 받으며 서킷 위의 상황에 극도로 빠르게 반응하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미 한계까지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기에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떤 전략적 결정을 할 수는 있겠지만 사고의 시야가 좁아지고 더 즉흥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드라이버가 이런 상황에 처해 있기에 자동차 바깥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데이터를 직접 보고 있는 레이스 엔지니어야말로 드라이버에 비해 더 넓은 시야에 기반한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 날 레이스 후반에 베르스타펜은 마지막 타이어로 하드를 선택합니다. 이 상황에서 레이스 엔지니어는 이 날 레이스에서 미디엄 타이어 성능이 좋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고 같은 팀의 오스카 피아스트리는 이미 전 랩에서 미디엄 타이어로 교체한 상태입니다. 이 날은 레이스 도중 비가 오다가 멈추기를 반복했기 때문에 서킷 상태가 썩 좋지 않아 소프트 타이어를 사용하기에는 좋은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 역시 굳이 레이스 엔지니어가 아니더라도 대략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레이스 엔지니어가 자신의 권한과 책임을 인식하고 이 상황에서 랜도 노리스의 마지막 타이어를 선택했다면 사실 다른 선택은 없었습니다. 하드 타이어는 베르스타펜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었고 이미 같은 팀의 오스카 피아스트리가 지금까지 주행 데이터로 미루어 미디엄 타이어의 성능이 좋다는 사실에 근거해 미디엄 타이어로 이미 교체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랜도 노리스 역시 마지막 타이어로 미디엄 타이어를 선택한 다음 2위 또는 해밀턴을 추월해 그 이상을 노려볼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앞서 명시적이지 않더라도 지시 하는 사람과 지시 받는 사람이 서로 잘 동작하기 위해서는 그들 사이에 위계가 형성되어 있어야 할 거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여기서 레이스 엔지니어가 미디엄 타이어를 마지막 타이어로 선택했고 드라이버와 레이스 엔지니어 사이에 지시를 주고 받는 위계가 잘 형성되어 있는 상황이었다면 레이스 엔지니어는 그저 드라이버에게 피트 인을 지시하고 미디엄 타이어로 교체하라고 지시하면 끝날 상황입니다.

그런데 랜도 노리스의 레이스 엔지니어는 라디오를 통해 마지막 타이어 교체를 위한 피트 인을 지시하는 대신 갑자기 드라이버에게 소프트 타이어와 미디엄 타이어의 현재 퍼포먼스를 말하며 상황을 이상하게 만들기 시작합니다. 라디오를 통해 아직 트랙 온도가 충분히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소프트 타이어는 빨라 보이지 않고 또 같은 팀의 오스카 피아스트리는 한 랩 전에 마지막 타이어로 미디엄 타이어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전달했는데 이미 이 대화는 의미가 없습니다. 소프트 타이어가 빠르지 않다는 것, 팀메이트가 미디엄 타이어를 선택했다는 것은 랜도 노리스 입장에서 미디엄 타이어로 교체해야 한다는 사실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는 정보로써 그냥 말 자체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들은 이미 서로가 충분한 전문가로써 비가 그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실버스톤 서킷에서 마지막 몇 랩을 소화하기 위해 온도에 민감한 소프트 타이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 아님을 알고 있었고 그 결과 팀메이트가 미디엄 타이어를 선택한 상황에서 랜도 노리스 역시 피트 인 지시만 받고 교체되는 타이어에는 관심을 꺼도 됩니다. 게다가 앞서 말했든 이들은 엄청난 속도로 달리며 계속해서 여러 방향으로부터 횡가속도를 받고 온갖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도중 이런 정보를 전달 받으면 이를 기반으로 어떤 판단을 하려고 시도하며 주행에 문제를 일으킬 위험도 있습니다.

레이스 엔지니어는 주행 중인 드라이버에게 쓸모 없는 정보를 전달했는데 이는 정보를 전달한 데서 끝나지 않고 드라이버로 하여금 이 정보에 기반해 어떤 판단을 해야 한다는 신호로써 작용한 것처럼 보입니다. 드라이버는 이 상황에서 소프트 타이어가 더 나아 보인다는 의견을 말하는데 어쩌면 남은 랩 동안 소프트 타이어를 예열해 최상의 상태를 만들어 마치 2021년의 마지막 랩에 맥스 베르스타펜처럼 스프트 타이어의 압도적인 유리함을 경험할 수 있었을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기는 실버스톤이고 비가 그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드라이버가 제안한 소프트 타이어는 한참 판단에 대한 시야가 좁아져 있을 상황에서 내린 썩 좋지 않은 결정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미디엄 타이어 성능이 좋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앞으로 남은 랩이 아주 적지는 않으며 예열에 실패할 가능성이 없지 않고 또 예열하는 동안 순위가 바뀔 수 있는 위험을 감안하면 이 시점에 소프트 타이어는 올바르지 않은 선택입니다. 드라이버는 시야가 좁아져 잘못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겠지만 자동차 밖에 있는 레이스 엔지니어는 이 상황에서 시야에 영향을 받지 않고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그 자리에 앉아 드라이버에게 지시 하는 위계 상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불행히도 레이스 엔지니어는 자신의 권한을 사용하는 대신 드라이버에게 의미 없는 정보를 전달해 드라이버가 어떤 의미 있는 판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레이스 엔지니어는 도저히 주행 중인 드라이버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대화를 시도합니다. 베르스타펜을 상대하려면 미디엄 타이어를 선택해야 하지만 해밀턴을 상대하려면 소프트 타이어를 선택해야 한다고 아주 길게 말해 버립니다. 이 말은 사실 이 시점에 랜도 노리스보다 뒤에서 하드 타이어를 사용해 주행 중인 베르스타펜을 방어해 최소한 2위를 수성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하드 타이어보다 이점이 있는 미디엄 타이어를 선택해야 하지만 지금 당장 눈앞에서 1위로 달리고 있는 해밀턴을 추월하려면 소프트 타이어를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이 말 역시 앞서 레이스 엔지니어가 드라이버에게 의미 없는 정보를 전달했던 것의 연장으로 드라이버가 어떤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저 긴 대화 전체가 아무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시점에 노리스는 해밀턴에 이어 2위로 달리고 있었고 어쩌면 해밀턴을 추월할 수 있었을른지도 모르지만 이를 위해 소프트 타이어를 선택하는 것은 충분히 위험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바로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베르스타펜은 이미 하드 타이어를 선택했기 때문에 굳이 뒤에 있는 베르스타펜을 의식해 타이어를 선택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만일 베르스타펜을 의식한다 하더라도 미디엄 타이어를 선택하면 될 일이었는데 여기에 눈 앞에 있는 해밀턴을 상대하기 위해 소프트 타이어를 선택해야 한다는 말은 1위를 하고 싶으면 소프트를 선택하는 옵션도 있다는 말로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눈이 앞쪽에만 달려있기에 앞에 있는 사람과 뒤에 있는 사람 중 누군가 한 사람에게 대응해야만 하는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본능적으로 앞에 보이는 사람에 대한 대응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고속으로 달리며 온 신경을 서킷과 다른 차량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시야가 좁아져 눈 앞에 보이는 상황에 반응하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안정적으로 2위를 유지하며 운이 좋다면 해밀턴을 추월할 가능성이 없지 않은, 그리고 이 날 레이스 내내 안정적인 성능을 보인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미디엄 타이어 대신 온도를 끌어올리는 동안 베르스타펜으로부터 추월 당할 가능성이 있고 심지어 온도를 끌어올리는데 실패할 위험성마저 있는 소프트 타이어를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전달했다는 것은 판단의 시야가 극도로 좁아져 있는 드라이버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명백한 레이스 엔지니어의 실패입니다. 마지막으로 노리스가 어떤 타이어라도 상관 없다고 말하며 마지막 타이어 선택의 책임을 레이스 엔지니어에게 넘기지만 이 말의 뉘앙스에는 눈 앞에 있는 해밀턴을 언급하며 그에게 대응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포함함으로써 책임을 넘기면서도 사실상 소프트 타이어를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드라이버가 소프트 타이어를 요청했으니 이 의견에 따라 소프트 타이어를 최종 선택한 레이스 엔지니어가 옳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레이스 엔지니어는 애초에 노리스에게 전혀 필요하지 않은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어야 하고 또 이런 정보에 의해 노리스가 주행 도중 어떤 판단을 해야 할 것 같은 상황을 만들어서도 안 됐습니다.

마지막 타이어를 소프트로 교체한 다음 타이어 교체 전과 같은 위치인 해밀턴 뒤로 나온 노리스는 이번에는 소프트 타이어를 사용하고 있었으니 페이스를 올려 추월을 노려볼 수 있는 상황이 되기는 했지만 앞서 잠깐 설명한 대로 특히 소프트 타이어는 교체 직후부터 원래 성능을 모두 낼 수 없습니다. 소프트 타이어로 교체한 직후부터 페이스를 올려 봤지만 타이어는 원래 성능을 내 주지 못했고 오히려 성능 저하가 발생해 해밀턴을 추월하기는 커녕 하드 타이어를 사용해 3위에서 달리던 베르스타펜에게 추월 당해 버립니다. 이미 이 시점에 타이어는 성능 저하가 발생해 소프트 타이어에 기대한 효과를 낼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애초에 미디엄 타이어를 사용했더라면 벌어지지 않았을 순위 변경까지 일어났는데 이 상황을 소프트 타이어로는 더 이상 수습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노리스는 이대로 2위인 베르스타펜과도 수 초의 시간 차이를 내며 3위로 레이스를 마무리했고 포디엄에는 올랐지만 몇 랩 전까지만 해도 앞에 달리던 해밀턴을 추월할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던 상황에서 순식간에 2위와도 몇 초 차이를 내며 들어오는 결과를 맞이합니다.

만약 팀 혹은 회사 내에서 명시적으로 드라이버와 레이스 엔지니어 사이에 위계 질서가 정리되어 있지 않다 하더라도 실제로 이들이 수행하는 업무를 살펴보면 이들 사이에는 위계 질서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고 또 만들어져야만 합니다. 지시를 내리는 쪽과 이를 수행하는 쪽 사이에는 서로 위계 질서가 확립되어 있어야 지시가 올바르게 전달되고 또 수행될 수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중요한 점은 위계 질서가 명시적이지 않은 형태로 정립되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지시를 내리는 쪽이 자신이 내린 의사결정에 대한 명시적인 책임을 진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하고 이에 맞춰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노리스의 레이스 엔지니어가 자신의 이런 입장을 충분히 파악했다면 애초에 미디엄 타이어와 소프트 타이어 양쪽 모두 선택할 수 있고 이들 각각이 서로 다른 다른 드라이버에게 대응하는데 의미가 있다는 아무런 정보도 없는 말을 전달해 드라이버에게 의사결정을 요구하지도 않았을 테고 자동차 밖에서 전체적인 상황과 더 많은 주행 정보를 보고 있는 레이스 엔지니어가 내린 판단을 그저 자시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레이스 엔지니어는 그렇게 지시하는 대신 시속 300킬로미터로 달리다가 브레이킹 하기를 반복하는 도중인 드라이버에게 의사결정을 미뤘고 드라이버는 예측 가능한 형태로 잘못된 의사결정을 했으며 레이스 엔지니어는 이 의사결정을 받아들입니다.

이 과정에서 의사결정은 드라이버가 내렸고 이는 좋지 않은 결과로 귀결되었지만 의사결정의 책임이 이 결정을 내린 드라이버에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레이스 엔지니어는 드라이버가 의사결정을 하기에는 대단히 가혹한 상황에 있기 때문에 자동차 밖에서 상대적으로 더 넓은 시야와 더 많은 정보에 기반해 의사결정하고 이를 드라이버에게 지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댓가로 지시할 권한을 가지고 권한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런데 노리스의 레이스 엔지니어는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자신의 역할에 소홀했을 뿐 아니라 의사결정을 하는 자신의 권한을 드라이버에게 위임했고 드라이버는 예측 가능한 형태로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렸으며 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따라 나쁜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기여했습니다. 이 상황의 표면적인 책임이 그에게 있지 않더라도 레이스 엔지니어는 이 상황을 만들어내는데 큰 책임이 있습니다.

왜 그는 자신의 책임을 회피했을까요? 먼저 레이스 엔지니어는 자신이 드라이버에게 지시를 내리는 위계 질서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회사에 의해 명시적인 위계 질서가 확립되어 있지 않더라도 지시 하는 입장과 지시를 받는 입장 사이에는 묵시적인 위계 질서가 확립되어 있어야 하며 이를 통해서만 지시 하고 지시를 받는 관계가 올바르게 동작합니다. 이 관계 정립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 이 사례처럼 매 순간 횡가속도를 받고 있는 드라이버에게 의사결정을 위임하고 잘못된 의사결정이 일어나는 상황을 그저 받아들이는 이상한 지시자가 나타납니다. 또한 회사 입장에서 이런 상황을 제대로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명시적으로 레이스 엔지니어와 드라이버 사이에 명시적인 위계질서를 확립하는 것도 좋은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명시적인 정의가 그들 사이의 인간적인 측면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이런 혼란과 패배를 감수하는 것 보다는 인간적인 면을 미뤄 두고 회사가 개입해 올바른 관계를 명시적으로 정의하는 편이 나을 수 있습니다.

왜 그는 자신의 책임을 회피했을까요? 묵시적인 위계질서로 인해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회사가 그런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이것은 관리의 실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