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게임 앱을 종료할 때 묻지 않을까?

왜 게임 앱을 종료할 때 묻지 않을까?

인벤토리 한 칸에 아이템을 몇 개 까지 겹칠 수 있나요?장착한 장비가 인벤토리를 차지해야 할까요? 같은 질문은 협업 부서에서 이 일을 담당할 가능성이 높은 주니어 디자이너에게 물어볼 만한 질문이기는 하지만 미리 생각해 두지 않으면 잘 대답할 수 없거나 뭔가 대답한다 하더라도 상대를 충분히 안심 시키거나 설득할 수 없는 답변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질문 중에는 ‘앱을 종료할 때 종료 확인을 해야 할까?'가 있는데 별 생각 없이 앱을 사용하다 보면 어떤 앱은 종료 확인을 한 것 같고 또 다른 앱은 종료 확인을 하지 않은 것 같으며 심지어 같은 앱이라도 어떤 때는 종료 확인을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해서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작업 내용을 저장해야 하는 앱을 종료하려고 할 때 작업 내용이 아직 저장 되지 않은 상태라면 앱을 종료할 지 여부를 묻기 보다는 작업을 저장할지 물어야 합니다. 보다 현대적인 앱이라면 저장할 지 여부를 묻는 대신 일단 임의로 저장한 다음 앱을 종료하려고 할 때 이미 저장한 작업 내용의 이름을 묻는 식으로 대응하기도 하는데 파괴적 행동 재확인보다 더 안전하고 또 더 부드러운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핵심은 앱을 종료할 때 종료 여부를 묻는 대신 작업 내용을 저장하거나 보다 현대적인 경우 이미 저장된 항목의 이름을 물어본 다음 이름을 정하면 앱을 종료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온라인 게임 앱처럼 저장이라는 개념이 없는 앱은 앱을 종료하려고 할 때 종료 여부를 확인해야 할까요? 기억을 되돌려 과거로 돌아가 보면 온라인 게임이 아닌 게임을 실행했다가 종료하려고 하면 꽤 높은 확률로 종료 확인 팝업을 마주쳤을 겁니다. 기억에 남는 사례는 시리어스 샘 시리즈에서 게임을 종료하려고 할 때 게임 이름을 차용해 ‘Are you serious?’ 라고 묻는 것이었는데 한참 신나게 몬스터들을 쥐어 팬 다음 게임을 종료하려고 할 때마다 피식거리곤 했습니다.

한편 시계를 서서히 현대로 돌리며 생각해보면 현대에 가까워질 수록 게임이 종료 확인을 생략하는 경우가 더 많이 떠오를 텐데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온라인 게임은 위에서 설명한 작업 내용을 저장하거나 이름을 결정하는 어떤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게임 진행 상황은 이미 이름을 결정한 내 캐릭터에 기반해 저장되고 온라인 게임은 심지어 게임을 멈출 수 없이 서버에 기반해 계속해서 게임이 동작하고 있어 고객 입장에서 명시적인 저장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현대에 가까워질 수록 게임은 하드웨어나 운영체제가 감당하기에 점점 더 가벼워지고 있습니다. 이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는데 현대에 가까워질 수록 게임들은 말도 안 될 정도로 높은 사양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대에 요구하는 수준의 고사양은 과거 게임들이 요구하던 고사양과는 조금 다른데 한때 지독한 고사양 게임을 만들던 오리진 시스템즈에서는 한 세대 다음 기계를 권장사양으로 삼아 현 세대에 아무리 좋은 기계에서 게임을 실행해도 게임이 충분히 잘 돌아가지 않곤 했습니다.

이 시대에는 게임을 처음 실행해 실제 게임을 플레이 할 수 있는 시점까지 몇 분 단위로 걸리곤 했고 또 게임을 저장했다가 다시 불러오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게임에서 죽거나 게임을 종료할 때는 신중해야 했습니다. 실수로 게임을 종료하면 몇 분에서 십 몇 분에 이르는 시간 동안 멀티태스킹도 안 되는 기계 앞에서 스마트폰도 없이 화면을 쳐다보며 버텨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감이 왔겠지만 게임을 종료할 때 종료 확인을 하던 이유는 게임을 다시 실행하는데 정말 큰 비용이 들기 때문으로 고객들은 게임을 종료할 때 정말로 종료하는 것이 맞는지 확인해야만 했습니다.

현대에는 과거에 비해 고사양의 하드웨어를 요구하지만 그 시대에 비해 게임은 순식간에 기동 되며 게임을 기동해 실제 플레이에 돌입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도 이전에 비해 훨씬 짧아졌습니다. 실수로 게임을 종료하더라도 서버 기반으로 게임이 실행되는 탓에 게임을 멈출 수 없어 내 제어를 받지 못한 캐릭터가 죽을 수는 있겠지만 다시 게임을 실행하는 행동 자체에 대한 부담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게임을 종료하려고 할 때 굳이 귀찮게 종료 확인을 하는 대신 빨리 종료됩니다.

물론 현대에도 항상 그런 것은 아닌데 안드로이드 기반 모바일 게임에서는 게임을 종료하는 행동인 백 버튼을 누르는 동작을 활용해 종료 확인을 함과 동시에 다른 게임 광고를 하거나 백 버튼을 계속해서 누르는 것 만으로는 게임을 종료할 수 없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백 버튼을 한 번 누를 대 종료 확인 팝업을 띄워 광고를 함께 보여주고 여기서 다시 한 번 백 버튼울 누르면 종료 확인 팝업을 닫도록 동작해 반드시 화면 상의 확인 버튼을 터치해야만 게임이 종료되도록 만들기도 하는데 이는 종료를 신중하게 만들기 보다는 종료 행동을 귀찮은 행동으로 인식하게 만들어 잠깐 게임을 종료하고 다른 행동을 하는 대신 그냥 게임에 남아 있는 습관을 만들면서도 다른 게임 광고를 보여주기도 하는 효과를 노리기 위한 것입니다.

이제 누군가가 게임을 종료할 때 종료 확인 팝업을 보여줘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아니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종료 확인 팝업을 보여줄 생각을 하느냐고 반문하거나 어두운 웃음을 지으며 고객들이 영원히 게임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 종료할 수 없는 종료 확인 팝업을 보여줘야 한다고 대답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