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스트레스 해소
왜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쓰는지 쿨타임 돌아올 때마다 생각해봅니다. 이번에는 어쩌면 이 행동이 제 스트레스를 줄여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동안 글을 만들면서 비슷한 고민을 여러 번 해봤습니다. 이제 완전히 습관으로 자리 잡은 매주 토요일 오후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 동안 준비해 놓은 여러 주제 중 하나 이상을 뽑아 그에 대한 제 생각을 타이핑하는 행동은 토요일 오후를 완전히 낭비하지 않도록 해 주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행동을 왜 계속하고 있는지, 또 이 행동이 저에게 어떤 이로운, 또는 해로운 영향을 주고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웠습니다. 온라인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영상에서는 사람들이 도파민에 중독되어 짧은 영상을 끝없이 소비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 비교해 덜 자극적인 책 읽기, 글 쓰기 같은 행동을 추천하고 있었지만 막상 규칙적으로 글을 쓰는 시도를 꽤 오랫동안 해 온 입장에서는 글쓰기의 효과는 과대평가되었을 수 있다는 의심을 강하게 한 적도 있습니다. 여러 영상의 화자들이 말하듯 글쓰기가 그렇게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면 글쓰기를 나름 꾸준히 해 온 저는 왜 그런 장점들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편 같은 업계에서 오랫동안 알고 지나던 분들과 만나 차를 마시며 몇 시간에 걸쳐 정신 없이 떠들다가 왜 아직도 글을 만들고 있어?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현대에는 모든 사람들이 글 대신 영상을 보고 제 스스로도 튜토리얼을 찾을 때 글보다는 먼저 영상으로 만들어진 자료가 있는지 찾아본 다음 영상이 있으면 일단 영상을 훑으며 대강 어떤 식으로 동작하는지 알아본 다음에야 문서를 찾아보고 그 다음에야 실제 작업을 진행하곤 합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영상을 보고 더 이상 글을 읽지 않은 세계에서 그나마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읽어볼 가능성이 있는 짧은 글을 쓰고 또 이런 짧은 글이 소비되는 마이크로블로그에 글을 만드는 대신 이제 정말로 아무도 읽지 않는 딱 보기만 해도 숨기 턱 막히는 긴 글을 요즘 세상에도 계속해서 작성하고 이를 인터넷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해 놓고 있는 이유를 궁금해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저 질문에 그 자리에서 대답하면서 제가 타이핑을 하며 텍스트를 만드는 일은 생각의 멱살에 소개한 대로 제가 머릿속으로만 계속해서 생각을 쉽게 이어 갈 수 없는 신체적 특징에 의한 한계를 우회하기 위해 머릿속과 동시에 손을 사용해 생각을 이어나가기 위한 시도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 설명을 시작합니다. 머릿속으로 생각을 이어가기 쉽지 않기 때문에 생각을 손가락으로 하고 그렇게 생각한 결과가 텍스트로 남으니 그 중 일부를 공개할 수 있는 모양으로 만들어 공개하기 시작한 것이 아직도 글을 만들고 있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명시적으로 글을 쓴다기보다는 제가 제 방식대로 생각한 다음 그 결과로 마치 로그처럼 남은 텍스트를 정리해 공개하는데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 구성된 다른 오프라인 모임에서 이번에도 제가 온라인에 짧지는 않은 텍스트를 계속해서 공개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계신 분으로부터 글을 왜 그렇게 길게 써? 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현대에는 아무도 글을 읽지 않으며 만약 만약 만약 만약에 누군가가 글을 읽기로 결정했다면 이 분 역시 최대한 짧은 글을 최대한 빨리 읽고 싶어 할 것임은 제 스스로의 행동만 살펴봐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아침마다 메일을 통해 도착하는 여러 뉴스레터들은 여전히 꽤 긴 글을 포함하고 있는데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이 글들을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회사든 집이든 일단 어딘가 안정적인 곳에 도착한 다음 편안하게 자리를 잡은 다음에야 그런 좀 더 긴 글들을 읽을 마음을 먹을 수 있습니다. 출퇴근 하는 지하철 안에서, 지하철을 환승하기 위해 긴 통로를 정신 없이 걷는 동안, 또 기나긴 계단을 오르는 동안,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자리에 돌아와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까지 몸을 잠시 축 늘어뜨리고 쉬는 시간 같은 여러 순간에는 긴 글을 읽을 엄두를, 그럴 에너지를 확보하기 쉽지 않았고 이런 것이 저 한 명 뿐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저와 같은 사람들을 배려했다면 같은 주제라도 글을 훨씬 짧게 줄이려고 했을 겁니다.
제목에 해당하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일단 주제와 좀 거리가 있어 보이는 배경부터 시작해 그 배경 하나에 그치지 않고 여러 가지 배경을 설명한 다음에야 그들과 연결되는 본격적인 주제로 진입하는 방식은 이를 마음 먹고 차근차근 읽어 가려는 분들께는 어쩌면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 어쩌면 이를 글 대신 설명하는 방식으로 전달할 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를 그저 고정되어 있는 긴 글 모양으로 나타내면 저 자신을 포함한 그 누구도 결코 읽고 싶지 않은 모양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가끔 새 글을 만들면서 이전에 작성한 글을 검색해 링크로 인용하려고 할 때 글 전체의 길이가, 그리고 문단 하나의 길이가 이전 시대에 비해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전에 쓴 글들이 계속 남아있고 제가 이 사실을 기억하고 있기에 종종 이전에 쓴 글을 검색해 인용하고 다시 그 글을 살펴볼 때 이전에 비해 글을 쓰는 방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음 역시 알 수 있었는데 앞서 소개한 대로 저는 명시적으로 글을 쓴다기 보다는 그저 머릿속 대신 손으로 생각하고 생각의 결과에 의해 남겨진 텍스트를 적당히 공개 가능한 모양으로 다듬는 행동이 글을 쓰는 결과로 나타난다는 점을 고려하면 뭔가 점점 더 긴 모양으로 나타나는 생각을 하도록 변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명시적으로 글을 쓰는 행동을 하지 않고 그저 생각한 다음 생각에 의해 발생한 텍스트를 공개하는 것은 저 자신에게, 혹은 글을 읽어 보실 가능성이 있는 분들께 올바른가 하는 생각도 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대략 두어 달 전에 그 회의는 왜 망했을까라는 글을 뉴스레터로 보낸 적이 있습니다. 이 때 회사의 다른 부서에서 일하시는 분으로부터 사내메신저를 통해 글이 너무 작나라한 느낌이 들었다는 의견을 받았는데 저는 저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의 좋지 않은 회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고 저 자신이 포함되어 있으니 이 글에서 회의 경험을 좋지 않게 평가한다 하더라도 저 자신을 포함하는 일종의 자학에 가까운 느낌이어서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지 않으리라 안일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심지어 다른 부서에서 일하시는 분의 시각으로 볼 때 자칫 이 글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분이 글을 읽으신다면 기분 나쁘게 받아들일 여지가 있다는 의견을 보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확실히 제가 너무 안일하게 행동하고 있으며 너무 제 생각의 결과를 날것 그대로 노출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 반성할 기회가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제 자신의 생각을 이런 식으로 공개한다면 비록 아무도 읽지 않을 현대에 어울리지 않는 긴 글이지만 제가 너무 저 자신을 드러내며 생활한 나머지 이미 제가 생각하는 방식을 잘 파악하게 된 누군가와 이야기하게 될 때 제가 극도로 불리한 입장에 놓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디선가 읽은 과거에 국가 수준의 정보 부서에서는 목표가 된 사람을 파악하기 위해 그 사람 집에 몰래 들어가 일기를 훔치고 사진을 수집하고 도청을 일삼았지만 현대에는 사람들이 알아서 자기 일상을 공유하고 생각을 글로 만들어 공유하고 있어 굳이 이전처럼 집에 도청 장치를 설치할 필요가 없다는 말과도 비슷한 맥락일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아슬아슬한 위험성, 그리고 아무도 읽지 않을 매우 높은 가능성, 막상 읽으려고 마음 먹은 분들을 숨 막히게 만들 정도로 긴 길이 등등을 고려할 때 저는 왜 계속해서 글을 만들고 있는지 쿨타임이 돌아올 때마다 여전히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그 쿨타임이 돌아왔습니다. 아주 대략 이유를 설명하려고 해보면 일단 글을 만드는 이유는 명시적으로 글을 만든다기보다는 제가 제 방식으로 생각했더니 그 결과로 글이 발생한다고 보는 편이 더 올바르다고 생각합니다. 머릿속으로 한 가지 생각을 이어가기 어려운 신체적 한계를 우회하기 위해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생각하다 보니 생각을 하고 나면 텍스트가 발생하고 마침 그게 공개하는 글 모양과 가까운 것 뿐입니다. 그러니까 글을 왜 쓰는가 하면 제 방식으로 생각하고 나면 글이 남기 때문에 명시적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냥 글이 발생하고 있는 겁니다.
이 관점으로 글을 쓰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아무도 읽지 않을 만큼 긴 글을 만들고 또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글이 서서히 길어지는 이유 역시 어느 정도는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저 제가 더 오랫동안 생각하고 그러는 사이에 한 가지 생각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하는 덕분에 점점 더 핵심에서 벗어나는 이야기가 많이 끼어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또 그런 글을 앞서 설명한 제 뇌의 작동 방식을 노출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공개해 놓는 이유는 일종의 인정 욕구의 발견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 당신이 지쳤다는 걸 회피하면 안되는 이유라는 영상을 보다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글을 쓴다는 내용을 봤는데 어쩌면 제가 생각을 통해 글을 발생 시키고 이를 공개할 수 있는 모양으로 다듬은 다음 공개해 두는 행동이 어쩌면 제 자신의 인정 욕구를 어느 정도 충족할 뿐 아니라 저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도 도움을 주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작년 - 2023년 - 에 처음 혹시 거기 계시면 제게 알려주세요를 시작으로 뉴스레터를 보내기 시작할 때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연속으로 50주에 걸쳐 뉴스레터를 보낸 다음 뉴스레터 시즌 2 계획 안내를 작성할 즈음에는 토요일 오후에 긴 시간을 들여 머릿속과 손가락으로 생각한 다음 그 결과로 글을 발생 시키는 행동이 완전히 일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시즌 1 때는 매 주 글을 공유해 왔기 때문에 한 주라도 빠뜨리면 즉시 그 주에 공유할 글이 없어지는 상태가 되기 십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코비드에 걸려 한 주 내내 골골거리며 도저히 글을 쓸 에너지를 확보할 수 없었던 주에는 여러 동네 고양이들을 통해 그저 여러 동네를 돌아다니며 찍은 고양이 사진을 조공하며 아무 글도 작성하지 않았고 달리 말하면 한 주 내내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음을 이실직고하고 한 번만 봐 달라고 간곡히 부탁해야만 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쯤 되니 생각에 의해 글이 자연 발생하는 상황이더라도 조금 부담스러운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글을 아예 안 만들어낸다면 그 역시 뭔가 한 주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일종의 중독적 상태일른지도 모릅니다.
그러다가 위 영상으로부터 글쓰기를 통해 스트레스를 줄인다는 말씀을 듣고 저 역시 어쩌면 머릿속과 손가락으로 생각하고 그 결과로 글을 발생 시키면서 이 과정이 나름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전에 소개한 바 있는 이렇게 생각하고 그 결과를 글로 만들어 두면 저 자신이 이 글을 근시일 안에 다시 읽지 않더라도 저는 한번 그 생각을 완결된 글 모양으로 해봤기 때문에 나중에 같은 생각을 바로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서 큰 도움을 받아 왔습니다. 그 자리에서 생각한 다음 즉흥적으로 이야기하는 대신 이미 그 생각을 끝까지 해 본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상대방보다 훨씬 빨리 생각한 것처럼 보이고 유효한 결론에 더 빨리 도달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는 점 역시 파악하게 됩니다. 하지만 실상 저는 머릿속으로만 생각하지도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고 또 객관적으로 지능이 높지도 않아 매사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마치 영화 엣지 오브 투마로우처럼 그저 미리 이 상황을 머릿속과 손가락을 통해 경험해 보고 이로부터 발생한 텍스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뿐입니다. 원인이야 어떻든 간에 결과적으로는 마치 제가 즉흥적으로 꽤 잘 정돈된 생각에 더 빨리 도달하는 것처럼 보이는 점은 변하지 않아 제 일과 생활에 여러 모로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일과 생활에 이전에 했던 생각과 이로부터 발생한 글이 도움이 되기 시작하자 좀 부담스럽다고 생각했던 매주 토요일의 글을 발생 시키는 시간을 매주 기다리게 됐습니다. 그리고 다른 일정 때문에 이 시간을 빼먹으면 뭔가 한 주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않은 것 같고 또 생각을 충분히 한 것 같지 않은 불안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과 느낌들이 어쩌면 제가 한 주 동안 생활하며 쌓인 스트레스를 완화하는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위 영상을 보고 하기 시작합니다. 토요일 오후에 시간을 들여 생각하고 글을 발생 시키지 않으면 불안한 것은 어쩌면 일종의 강박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강박을 통해 미래에 같은 생각을 말해야 할 때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생각을 마무리하지 않은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을 감소시키는데도 도움이 되고 또 일종의 인정욕구를 발현하는데도 도움이 된다면 이 모든 효과들을 종합할 때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있다고 해석해도 딱히 이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때 글쓰기의 효과는 과대평가되었을 수 있다는 의심을 하며 여러 사람들이 글쓰기의 장점이라며 소개하는 여러 효과를 저는 거의 겪지 못하며 효과를 과장해서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사실 이 의견은 지금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광범위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행동이라는 관점에서는 제가 느끼는 손가락으로 생각하며 글을 발생 시키는 행동은 확실히 글쓰기의 효과 중 제가 인정할 수 있는 종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글을 발생 시키지 않으면 좀 불안하다는 점에서 강박이라고 해석할 여지가 있지만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은 여전히 글쓰기의 여러 가지 효과가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다고 주장하는 입장에서도 인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