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동네 고양이들

이번 주는 코로나로 한 주 쉬어가겠습니다. 대신 귀여운 고양이 사진을 준비했습니다.

여러 동네 고양이들

저는 세상의 여러 가지 물질에 알러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고양이입니다. 고양이는 물질이 아니지만 고양이가 분비하는 어떤 물질에 알러지가 있어 환기가 잘 되지 않는 공간에 고양이와 함께 있으면 호흡기 계통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고양이를 만지고 나서 시간이 조금 지나면 고양이를 만졌던 손에 가려움을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고양이로부터 알러지를 얻을 상황을 피하기는 어려운데 거리를 지나가다가 이 친구들을 만나 한동안 눈길을 주고 받으면 그들 중 한둘은 가던 길을 멈추고 방향을 틀어 제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가까이 다가와 바짓자락에 몸을 부비는 친구들을 모른척 하고 그냥 지나갈 수는 없습니다.

개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과 고양이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갈린다고 하는데 둘 중 굳이 어느 한 쪽을 골라야만 한다면 고양이를 더 좋아합니다. 사실 개들 역시 사람과 너무 친한 친구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개들의 사람에 대한 너무 과한 호감은 종종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알겠지만 그렇게 까지 온갖 성의를 다해 좋아해줄 일인가 싶습니다. 사람을 그렇게 신뢰할 일인가 싶고요. 반면 고양이들은 상대적으로 그런 호감 표현에 조금 더 인색한 편인 것 같습니다. 이 친구들 중 일부는 사람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거리에서 만난 낯선 사람에게 최대한의 호의를 보이며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일단 조금 의심해보고 두어 발작 다가와 또 한번 의심해 보기를 반복하며 서서히 다가오고 또 먼저 최대한의 호의를 보이기 보다는 먼저 상대인 제게 호의를 보여 보라는 신호를 주며 조금 가까워질 기회를 주는 접근 방식이 더 마음에 듭니다.

지난 4년에 걸쳐 주변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코로나에 걸리는 상황에서도 꽤 많이 조심하며 용케 잘 피해 다니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제 착각일 뿐이었습니다. 주 초에 갑자기 열이 확 올라 39도 끄트머리에 도달해 비몽사몽한 가운데 남들처럼 목이 아프거나 기침이 심하게 나거나 하지는 않아 그냥 몸살감기가 아닐까 싶어 그 날 저녁을 해열제를 먹고 버티다가 다음 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병원에 갔는데 코로나였습니다. 역시 영원히 피할 수는 없었다는 생각과 함께 지난 4년에 걸쳐 코로나를 피해 다니기 위해 그토록 노력했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고 또 이전에는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2023년 가을 현재 그런 모든 지원은 사라지고 모든 치료 비용을 개인이 부담해야 했습니다. 그나마 실비보험에 가입해 꽤 큰 금액이 나온 처치 비용을 청구해 큰 경제적 타격을 입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코로나에 걸리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대비를 하고 있지는 않을 텐데 지원을 중단하는 것이 올바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양이 이야기 뒤에 갑자기 코로나 이야기를 한 이유는 항상 한 가지 커버스토리와 나머지 다섯 가지 다른 글을 묶어 뉴스레터를 보내고 있는데 이 글을 타이핑 하고 있는 9월 21일 목요일 저녁 현재 커버스토리는 시작조차 하지 못했고 지난 며칠에 걸쳐 고열에 시달리며 한 가지 생각을 길게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 이번 주 커버스토리를 작성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한 주는 올해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만난 고양이 이야기를 하며 한 주 정도 쉬어갈 작정입니다. 다음 주에는 분명 회복할 테니 이번 한 주는 양해를 부탁 드립니다.

올해 초에 통영에 갔다가 만난 친구들입니다. 어디든 가면 동네 길을 아무 이유 없이 돌아다니기를 좋아해서 시간이 닿는 만큼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동네마다 조금씩 다른 풍경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상해 보기를 좋아합니다. 이 때는 작은 책방에 찾아간 참이었는데 너무 일찍 도착해 책방은 아직 문을 열기 전이어서 남는 시간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주변을 돌아다녀 보기로 합니다. 그리고 몇 발자국 걷지도 않았을 때 저만치 지나가는 두 친구를 만났는데 한 친구는 멀직이 앉아 우리를 바라보기만 했지만 다른 한 친구는 길지 않은 다리로 도도하게 성큼성큼 걸어와 바짓자락에 몸을 문질러 옵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음을 알게 되자 이내 아쉬운 표정을 한 고양이 알러지 있는 사람을 뒤로 하고 다시 성큼성큼 걸어 갈 길을 가 버렸습니다.

둘 중에 한 친구는 목걸이를 하고 있어 아마도 동네의 누군가 보살펴주고 있는 친구인 모양입니다. 종종 고양이에게 해코지 하는 사람들이 있어 이 친구를 돌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표시로 목걸이를 해 주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그런 걸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다가올 때 빳빳하게 올린 꼬리의 언어로 미루어 분명 이 동네 고양이들 사이에서 꽤나 잘 나가는 친구일 것이 분명합니다.

집은 수도권 전철이 다니기는 하지만 꽤 시골이라 예쁘게 포장된 길가를 벗어나면 이내 오래된 길과 다닥다닥 붙은 집들을 마주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아마도 한 자리에서 아주 오래 사셨을 것 같은 집들이 있습니다. 평소엔 이 길로 출근하지 않았었지만 몇 번 시험해보니 이 작은 길로 지나다니는 것이 큰 길로 지나다니는 것 보다 역 30여초 정도 더 빨리 지하철 역에 도착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은 다음부터는 이 작은 지름길로 다니기 시작했는데 이 길을 지나가면 종종 이 친구와 마주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비 온 다음날은 바닥에 물이 고인 데서 물을 마시고 있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누군가가 내려 놓은 밥그릇에 밥을 먹고 있기도 했는데 나중에 자세히 보니 이 친구가 자주 지나다니는 아주 오래된 집 입구에 고양이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작은 문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너무 귀여워서 그 문을 드나드는 모습을 사진 찍어 둘까 생각했지만 남의 집에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그 작고 귀여운 문을 드나드는 모습은 머릿속에만 남겨 두기로 했습니다.

지난 처음 본 은하수점진적 닭갈비 디자인 이야기를 했을 때처럼 이번에도 시간대를 잘 맞춰 한밤중에 별을 볼 생각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수도권 동쪽으로 나아갔지만 이번에는 그 주 주말 내내 구름이 두껍게 쌓여 있어 별은 커녕 비를 맞지 않으면 다행인 날씨였습니다. 동쪽으로 향하는 여러 터널을 지날 때마다 뿌옇게 낀 안개와 해무를 맞이하며 별 보기는 글렀다는 생각을 했지만 미리 예약해 둔 모든 것들을 그대로 펑크 낼 수는 없어 예정대로 이동해 별을 보는 대신 동네에 있는 유명한 먹을 곳을 섭렵하기로 합니다.

별을 못 본 첫째 날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 잘 알려진 순두부 가게에 갔는데 먹고 나오는 길에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의 거의 모든 인기를 차지하고 있는 친구들이 눈에 띄었는데 바깥쪽으로 노출된 주방에서는 활활 타는 불꽃 위에 웍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는데 고양이들 역시 웍을 하염 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고양이라도 하염 없이 바라보고 있을 만한 광경이었는데 모르긴 몰라도 그렇게 바라보고 있으면 분명 뭔가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 한번은 수도권에서 동쪽으로 바다가 나올 때까지 간 다음 주변을 걸어다녔는데 한 해변 데크에 몸을 뻗고 누워 있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자고 있을까 했지만 우리가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눈을 뜨지는 않았지만 귀를 돌려 이쪽을 가리키고 있었고 우리가 지나가는 사이에 귀 각도가 조금씩 돌아가며 결코 뜨지 않은 눈을 대신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피고 있어 보입니다. 그렇게 데크를 지나 저만치 방파제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려 보니 이번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에게 다가왔는데 보니 아마도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줬을 것 같은 얼기설기 만든 비를 피해 몸을 누일 집과 물과 밥그릇이 보였습니다. 문득 이곳에 살고 있는 고양이 뿐 아니라 이 친구에게 신경을 써 주고 또 대강 바람에 날아가지 않을 자제들을 꾸역꾸역 들고 와 거처를 마련해 주고 또 가끔 들러 안위를 살필 누군가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집니다.

오늘은 코로나가 아직 완치되지 않은 비몽사몽한 가운데 평소 처럼 이번 주에 했던 생각을 글로 만들어 커버스토리로 사용하는 대신 한동안 돌아다니며 만난 고양이 이야기를 하며 한 주를 슬쩍 지나가려고 합니다. 다른 좀 더 의미 있는 커버스토리를 기대하셨던 분들께 정말 죄송한 말씀 드립니다. 다음 주 부터는 다시 멀쩡한 커버스토리와 다른 이야기들로 찾아 뵙겠습니다. 이제 코로나에 걸리면 치료비용을 전액 개인이 부담해야 하니 혹시 지금까지 코로나를 잘 피해 오신 분들은 이 점 참고하셔서 끝까지 아 고통스러운 병을 경험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커버스토리는 고양이 사진을 조공하며 때우고 있지만 다른 다섯 가지 이야기는 변함 없이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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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서 점검 혹은 컨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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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설명 드렸지만 요즘 코로나에 걸리면 검사비, 치료비 전액을 개인이 지출해야 합니다. 다행히 일을 쉴 수 있는 직업과 직군이고 또 다행히도 검사비와 치료비를 충당할 수 있었지만 과연 모두가 그럴 수 있을지 생각하면 걱정됩니다. 모두들 코로나에 (다시)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시고 저도 몸조리 잘 하고 나서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