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은 내려야 한다

젊은이들은 내려야 한다

얼마 동안 ‘이제 드럼통이 구를 때 소리가 완벽히 납니다’에서 마감 때 스트레스 관리하는 방법을, ‘첫 홀더 테스트를 마쳤습니다 (1)', '첫 홀더 테스트를 마쳤습니다 (2)’를 통해 이 마감을 통해 달성한 목표를 소개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언뜻 보면 모두가 노력해 프로젝트에 큰 영향을 끼칠 마일스톤을 달성한 사례처럼 보이지만 이건 밝은 면에 해당하고 사실 동시에 어두운 면도 있습니다. C레벨 패닉 같은 외부 요인이나 우리들 스스로 서로 다른 여러 사람들이 개발하던 여러 기능이 마감이 가까워 올 때 짧은 기간 안에 통합되어 온갖 결함을 유발하는 상황을 항상 겪으면서도 이를 예측하지 않아 마감이 가까워 올 수록 초과 노동을 통해 해결하는 문화가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는 어두운 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종종 여러 미디어에서 이런 장면을 미화하고 또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임무를 달성한 사람들을 영웅으로 묘사하곤 하기 때문에 쉽게 이런 상황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장면을 조금 뜯어 보면 결국 그런 위업을 달성한 개개인은 생계를 위해 피 고용 된 사람들일 뿐입니다. 만약 회사가 초과 노동에 대한 댓가를 금전을 통해 지급한다면 그나마 나은 상황인데 회사에 따라 온갖 미사여구를 달아 초과 노동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는 이유를 만들어내곤 합니다. 가장 자주 들은 말 같지도 않은 이유에는 게임 개발은 창의적인 업무이기 때문에 창의력을 발휘하는데 따르는 시간을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초과 노동에 대한 댓가를 측정할 수 없어 이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것이 있었는데 이 말을 하는 사람을 가까이에서 보고 이 말을 직접 듣고 어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말을 미디어에 나와서도 똑같이 하는 것을 보고 개인적으로 상당히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렇다고 2023년의 한국에서 생계를 위해 평생 일해야 하는 노동자로써 이런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받은 만큼만 일하는 ‘조용한 사직’이라는 말이 있음을 알고 있지만 결국 내가 하는 일과 연결된 회사의 과업이 올바르게 수행 되어야 회사가 돈을 벌고 우리들도 급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조용한 사직을 통해 내 몫의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개인 관점에서 괜찮은 전략이지만 장기적으로 자신을 포함한 팀이나 회사의 운명을 고려할 때 아주 훌륭한 전략이라고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지난 마일스톤 마감과 짧은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초과 노동이 수반되었고 이 노동에는 별도의 보상이 지불되지 않았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한편 팀에서 더 많은 책임을 지고 있을수록 그 책임에 합당한 신체적, 정신적 노동의 절대량이 필요하고 이를 수행하기 위해 보상 받지 못하는 경계를 넘는 노동을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릴 때는 이런 상황에 꽤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결국 이를 피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설사 이를 피하는 ‘조용한 사직’과 같은 전략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온전히 상황을 피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회사에 고용되어 생계를 유지하는 근본적인 목표 달성에 실패할 가능성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전략을 바꿔 스스로를 평소에 관리 업무 뿐 아니라 일상적인 업무 범위를 얇고 넓게 유지해 팀에 누군가를 대신해 조금 덜 익숙하지만 어쨌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놓은 다음 초과 노동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혹시 모를 업무 등장을 감안해 대기하는 인력을 최소화 하기로 했습니다.

실은 근래에 경험한 몇몇 프로젝트에서 제가 주로 전문성을 가진 시스템디자인을 해 낼 적절한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제 스스로도 실무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을 뿐 아니라 애초에 전체 시스템의 기반을 설계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후 보조 시스템이 설계되더라도 시스템 전체의 설계 철학을 유지하려면 다른 스탭들이 진행하는 업무에 관여하지 않을 방법은 없었습니다. 덕분에 구성원들 각자가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업무를 그분들 수준만큼 능숙하게 해 내지는 못하더라도 그 업무가 제가 할당될 때 방법을 전혀 몰라 허둥대지는 않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이 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분들을 거칠게 구분하면 두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었는데 하나는 이런 초과노동을 적극적으로 거절하시는 분들, 그리고 별로 하고 싶지는 않지만 앞에 설명한 여러 이유들 때문에 눈치를 보며 초과노동에 참여하는 분들입니다. 초과노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저 자신을 포함해 아무도 없습니다. 초과노동 자체를 없앨 수 있을 정도의 상황 통제 권한은 없지만 이 상황을 완화할 수 있을 정도의 권한은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이런 권한을 실행해도 목표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곤 했습니다. 가령 '첫 홀더 테스트를 마쳤습니다 (1)'에서 소개한 금요일부터 토요일 새벽에 이르는 기나긴 결함 수정과 서비스 환경 테스트를 진행하는 동안 이런 상황을 여러 차례 겪어 왔고 또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대략 알고 있는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상황을 꽤 잘 견디고 있었지만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분들은 평소에 잠 잘 시간을 훨씬 넘겨 계속해서 집중을 유지하는 상황에 적응하지 못해 꽤 곤란해 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합니다. 잠 잘 시간 지났는데도 계속해서 안 자고 버틸 수 있는 건 젊을 때 불금이나 불토에 제대로 놀려고 마음 먹었을 때 뿐입니다. 고작 돈 버는 일을 하면서 갑자기 잠 잘 시간을 넘겨서 일 하고 있는데 이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잠깐 이야기 했듯 미디어에서 종종 이런 상황을 버텨 임무를 수행한 결과 더 큰 과업을 달성하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바람에 이런 상황에 멀쩡하게 버티는 더 경험 많고 더 책임 있는 사람들의 눈치를 봐 가며 이미 졸려서 눈이 풀렸지만 자리에 똑바로 앉아 있으려고 노력하는 주니어님들은 웃기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한 여러 감정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속으면 안됩니다. 비록 여러 미디어에서 그런 행동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더라도 일을 하는 이유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이고 생계를 유지하는 이유는 개인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입니다. 일 하는데 행복하지 않다면 뭔가 개선할 여지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경험이 있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한밤중을 훨씬 넘긴 시간에도 멀쩡히 제 정신을 유지하고 계속해서 멀쩡한 판단을 하며 업무를 지속하는 데는 다들 작은 비밀이 있습니다. 여기에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체 똑같이 흉내 내려고 하면 신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입을 수 있으니 절대 그러면 안됩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표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