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전투는 해석과 표현의 기로에 섰다
게임 업계에는 게임 이름에 함부로 사용하면 안된다고 알려진 위험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 단어들은 분명 굉장하고 멋진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런 단어를 게임 이름에 사용한 게임들이 종종 개발을 시작하고 나서 아주 아주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출시되지 못하는 사례가 여러 번 있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누가 나서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게임 이름에 그런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게임 이름에 그 단어들을 사용했다가 개발에 아주 큰 어려움을 겪은 게임들이 있어 이 단어들은 업계에서는 꽤 흉흉하게 받아들여 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흉흉한 분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한 게임이 없지는 않아 과연 이 이름을 붙인 게임 개발이 그토록 어렵고 런칭에 도달하는데 장벽이 그렇게 많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앞으로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흉흉한 단어를 게임 이름에 두 번이나 붙였던 정말 엄청난 강심장들이 만드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 프로젝트 역시 오랜 세월에 걸쳐 개발해 왔지만 도통 출시 단계에 도달할 예정이라는 소문조차 들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게임 이름에 사용했던 흉흉한 단어를 없애고 프로젝트를 리부트 하고 나서 이제 드디어 대중에 작은 규모로나마 공개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스스로 과학자도 아니고 과학도도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과학적인 사고를 하려고 노력하는 입장에서 이런 우연의 연속이 과연 우연으로 치부할 일인지 고민하게 되면서 너무나 쉽게 샤머니즘의 굴레에 빠져들 수 있음에 주의하고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세계에는 우연을 잘 조합하면 신기하고 그럴싸한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한편 이번에는 최근 그런 흉흉한 단어를 두 번이나 사용하고도 프로젝트가 유지되었으며 결국 게임 이름을 재 정의한 끝에 소규모로 대중에게 공개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한 프로젝트의 뜬금없는 자동전투 시스템 이야기를 통해 2023년 초여름 현재 현대의 자동전투는 이제 플랫폼에 관계 없이 흉흉한 게임 접미사와 같이 재정의 또는 재해석의 기로에 섰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번에 공개된 프로젝트에는 PC 게임임에도 자동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객들 사이에 온갖 이야기가 오간 모양입니다. 인터넷 커뮤니티 상의 빅 마우스들은 주로 하드코어 게이머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들은 자동 기능을 대표로 한 성장과 경쟁에 집중하는 게임 장르를 납득하기를 거의 거부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하드코어 게이머들을 대상으로 개발하고 있는 것 같은 뉘앙스를 대외적으로 여러 번 보인 상황에서 게임에 그런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 자체가 인터넷 커뮤니티의 빅 마우스들로부터 나쁜 반응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는 지난 십여년에 걸쳐 주류 인기 장르가 변했음을 나타내는 지표일 뿐이며 빅 마우스에 의해 받는 커다란 비난은 어쩌면 주류 장르의 변화를 거부하는 고객들의 움직임일 수도 있습니다.
게임 역사를 공부하고 조사하는 사람은 아니므로 어느 게임이 처음으로 MMO 장르에 자동전투, 자동이동, 자동퀘스트를 도입했는지 조사하는데 시간을 낭비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 행동 자체가 시간 낭비라기 보다는 이 행동은 게임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몫이고 아직 현업에서 게임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확한 역사보다는 게임 만드는 개인의 경험 선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기억에 근거에 이야기하는 수준이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중국에서 개발해 한국어화 된 PC 게임의 자동 기능들을 보고 이를 비웃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함게 비웃었음을 인정합니다. 퀘스트가이드 인터페이스를 한 번 눌러 놓으면 이후 손 댈 필요 없이 캐릭터가 알아서 목적지까지 이동하고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전투를 벌이고 NPC와 대화해 스토리를 진행 시키는 등 일단 게임을 실행해 놓으면 시간을 투입함에 따라 게임을 캐릭터가 알아서 진행 시키고 있었습니다. 한편 우리가 알고 있던 MMO 게임이 이런 식으로 진행 된다면 프로그래스 퀘스트와 무엇이 다른지 게임의 본질이란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 시간이 흐르며 처음 자동퀘스트를 본 사람들은 그걸 비웃었던 그렇지 않았든지간에 고객들과 스폰서들의 요구에 따라 자동퀘스트가 포함된 게임을 개발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전에 개발에 참여한 적 있는 한 모바일 MMO 프로젝트에서 게임 전체의 자동 기능을 완전히 바닥부터 구축할 기회를 얻었는데 덕분에 자동이동, 자동전투, 자동퀘스트 등의 세부 기능을 완전히 바닥부터 설계하며 우리가 플레이 하는 게임의 본질이란 과연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한편 이런 자동 기능들을 설계하며 우리가 처음 자동 기능을 도입한 중국 게임을 볼 때 느낀 거부감과는 달리 우리가 고객이 직접 조작하게 만드는 그 부분들이 과연 고객이 게임으로부터 원하는 경험과 감정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고민해보기도 합니다.
레이싱 게임에는 크게 두 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직접 자동차를 운전하는 경험을 중심으로 한 액션 혹은 시뮬레이션 장르입니다. 이들은 내가 자동차를 선택하고 때에 따라 튜닝하고 조작을 연습해 코스에 익숙해져 좋은 기록을 내며 다음으로 나아가는 고객 자기 자신이 성장합니다. 개인적으로 직접 플레이 하는 레이싱 게임으로는 랠리 장르를 좋아해서 잘 하지는 못하지만 즐겨 플레이 하고는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레이싱을 하는 여러 팀 사이에서 팀을 운영하는 매니지먼트 장르입니다. 이들은 선택적으로 내가 직접 자동차를 조작할 수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레이싱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자동으로 진행되며 플레이어인 나는 그 결과만을 받아들이고 다음에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제한된 조건 안에서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기를 반복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본능의 질주 때문에 관심을 가지게 된 F1 때문에 출시 예정인 F1 Manager 2023의 한국어 자막 및 인터페이스 지원에 관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레이싱 이야기가 나왔으니 잠깐 모바일 레이싱 게임의 두 가지 엄청난 혁신에 대해 짚고 넘어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레이싱 게임의 근본적인 조작은 스티어링, 클러치, 기어, 엑셀레이션, 브레이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자동 변속으로 게임을 단순화하면 클러치와 기어가 빠지고 스티어링과 엑셀레이션 및 브레이킹으로 구성됩니다. 그런데 레이싱 게임이 모바일로 넘어오면서 문제가 생겼는데 스티어링은 기기를 좌우로 기울이는 동작으로 대신할 수 있었지만 엑셀레이션과 브레이킹을 터치 인터페이스에 곧이 곧대로 적용하는데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특히 항상 밟고 있어야 하는 엑셀레이션을 그대로 가져오면 자동차가 앞으로 나가게 하기 위해 화면을 항상 누르고 있어야 하는데 이에 따라 온갖 오 조작을 유발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바일 레이싱 게임 제작사들은 이 문제를 손을 다 떼고 있으면 항상 풀 엑셀 상태로 정의하고 브레이킹이 필요할 때만 손을 대게 만드는 방식으로 레이싱 게임을 스티어링과 브레이킹만 필요한 게임으로 혁신합니다.
첫 번째 혁신이 엑셀레이션에 대한 것이었다면 두 번째 혁신은 스티어링에 대한 것입니다. 모바일 레이싱 게임에서 디바이스를 좌우로 기울이는 동작은 잠깐은 재미있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플레이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레이싱 게임은 스티어링 휠을 가지고 해야 제맛이라고 말하지만 집중해서 뉘르부르크링 한 바퀴 돌면 힘들어서 30분씩 쉬어야 하는 마당에 남들에게는 스터이랑 휠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레이싱 게임을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휠은 조용히 치우고 책상 밑에 숨겨뒀던 게임패드를 조용히 꺼내 게임을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초기 모바일 레이싱에서 엑셀레이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깼던 것처럼 스티어링 역시 이 조작이 과연 레이싱 게임의 본질일지를 고민해보면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레이싱 게임은 시작한 다음 아무 조작 없이 그냥 놔둬도 알아서 가속하고 알아서 감속할 뿐 아니라 스티어링 역시 알아서 조작하기에 이릅니다. 이런 변화는 이후 오직 변속과 차선 단위의 원 터치 스티어링을 통해 또 다른 레이싱 메커닉을 선보인 CSR Racing으로 나타났고 이후 레이싱 경험을 스티어링으로 더 단순화한 Asphalt 9에서 절정을 이뤘습니다.
자. 다시 PC 플랫폼에서 자동 플레이 기능을 포함해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고 알려진 한때 흉흉한 이름을 사용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은 게임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게임의 자동 플레이 도입은 한편으로는 모바일에서 좋은 경제적 성과를 냈지만 한편으로는 고객들로부터 나쁜 평가를 받은 자동 기능과 강한 성장과 경쟁 시스템은 이제 모바일과 PC 같은 플랫폼의 경계를 넘어 장르의 변화로 받아들일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전히 고객들은 이런 자동 플레이 기능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며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이를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우리가 이전에 익숙하게 만들던 게임과 현대의 게임은 이제 장르가 완전히 달라졌음을 인식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 경영 시뮬레이션에서 자동 플레이 기능을 포함한 게임은 더 이상 우리가 알던, 그리고 그 게임이 겉으로 보여지는 장르와 달리 실은 매니지먼트 장르라고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자. 다른 이야기가 너무 길었는데 최근 공개되어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그 게임의 장르는 고객들에게는 MMO-RPG라고 알려졌지만 이 장르는 MMO-Management라고 불러야 마땅합니다. 모바일에서 커다란 경제적 성과를 거둔 바로 그 장르를 이제 PC 플랫폼으로도 개발하는 것입니다.
미 디지털폭격기 B-21…중국·러시아와 격차 30년 이상 벌렸다는 영상을 봤는데 미래의 전투기는 파일럿 한 명이 조종하는 전투기 한 대와 파일럿의 명령에 따라 함께 움직이는 기계 윙맨이 조종하는 서브 전투기 여러 대가 이루는 편대로써 동작하게 될 거라고 합니다. 이런 변화를 우리에게 익숙했던 주류 장르가 매니지먼트 장르로 이미 바뀌었으며 장르가 매니지먼트로 바뀐 순간 우리들이 게임을 통해 추구하는 경험과 감정 역시 이에 맞춰 변화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플레이 하는 게임은 더 이상 RPG가 아니라 Management입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장르 게임에는 잠깐 소개한 F1 매니저, 풋볼매니저 등이 있고 이 연장으로 지금까지 한 번도 게임 이름을 정확히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 게임은 ‘리니지 매니저’라고 불려야 마땅합니다.
그러면 누군가 왜 디아블로 이모탈은 전투가 자동이 아니죠?라고 물을 것 같아 오래 전에 글을 써 놓았는데 이는 장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디아블로 시리즈는 과거에나 현대에나 여전히 핵 앤 슬래시가 근본적인 게임 경험이며 이를 둘러싼 환경이 싱글플레이, 멀티플레이, MMO 등으로 변하고 있을 뿐입니다. 자동 플레이를 포함하면 핵 앤 슬래시라는 장르의 근본이 깨지기 대문에 이를 도입하지 않는 것입니다. 반면 흔한 MMO 게임들은 외형은 전통적인 모양을 하고 있지만 실은 매니지먼트로 장르가 바뀌었기 때문에 자동 기능을 포함하고 있으며 중장기적으로 이들은 전통적인 모습에서 좀 더 매니지먼트 장르에 가까운 외형으로 진화해 갈 거라고 예상합니다.
결론. 엔씨소프트는 역사적으로 리니지 시리즈를 MMO-RPG 장르로 개발해 왔지만 지난 십 수년에 걸쳐 주류 장르는 매니지먼트로 변해 왔고 이제 이에 따라 PC 플랫폼에서도 MMO-매니지먼트 장르를 개발했습니다. 이는 모바일에서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주류 장르의 플랫폼을 확장하는 정책으로 전통적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큰 목소리를 내는 고객들로부터 비난 받을 수 있고 고객으로써 당연히 그럴 수 있지만 게임 만드는 사람 관점에서는 그 목소리를 가려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솔직히 게임 이름을 ‘리니지 매니저 2024’로 바꾸고 해마다 연도를 업데이트 한다면 고객들도 더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