컷씬은 근본적으로 싱글플레이에서 나온 메커닉이다

컷씬 또는 시네마틱 기능을 게임에 넣으려고 하면 집에서 이를 체험할 때와 달리 엄청나게 복잡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체 왜 그럴까요?

컷씬은 근본적으로 싱글플레이에서 나온 메커닉이다

영화의 장르에 따라 다르지만 어떤 영화는 등장인물 중 한 명에 관객이 감정을 이입하게 만듭니다. 영화가 진행되어 감에 따라 관객은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일상 경험에 근거해 영화 속 등장인물의 생각과 행동에 공감하고 결국 등장인물의 영화 속 목표에 동조할 수 있습니다. 이 상태로 영화가 계속되면 등장인물이 조우하는 상황, 상대하는 인물, 그들의 대사와 행동을 함께 이해하고 함께 경험할 수 있어 영화가 훨씬 더 재미있어집니다. 실제 세계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거나 만약 일어난다 하더라도 수많은 영화 속 사건 중 어느 하나만 간신히 일어날 테지만 액션 장르에서는 한 영화 안에서 짧은 시간 안에 그런 실제로는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사건이 연달아 일어납니다. 각각의 사건은 관객에게 사건이 발생할 예정임을 미리 알려주기도 하고 또 어떤 사건은 관객에게 잘 알려주지 않고 갑자기 일으켜 이미 등장인물과 동조된 관객들에게 깊은 감정적 경험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영화는 다양한 연출 기법을 통해 관객에게 독특한 경험을 전달합니다. 가령 비행기가 추락할 때 실제 세계에서는 그 모습을 비행기 바깥에서만 볼 수 있지만 영화에서는 비행기 바깥 뿐 아니라 조종실, 기내, 이를 바라보는 외부에 일반인의 시선, 관제소의 시선 등 다양한 시선을 통해 상황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저 땅 위에서 떨어지는 비행기를 바라보는 경험은 상상해볼 수 있지만 그 순간 비행기 안에서 일어나는 일, 비행기에 타고 있는 사람들 각각의 반응과 행동, 이 상황을 모면하려는 조종사들의 행동은 실제 세계에서 그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은 이상은 결코 할 수 없고 이를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미 비행기가 등장하기 전부터 각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이들 중 하나 이상에 관객들을 동조 시킨 다음 비행기에 탑승 시키고 그 다음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관객에게 보여줘 관객들이 상황을 따라오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비행기가 추락하기 시작할 때 관객들은 이미 그 안에 탑승한 사람들의 개인사를 알고 있고 여러 관점에서 그 과정을 체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제 삼자 같은 입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영화 본 얼티메이텀에서 뉴욕에 도착한 본이 정부 요원들과 벌이는 자동차 추격 장면은 이들이 도로 위를 미친 듯 달리는 장면을 마치 이들을 따라 달리는 차 안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흔들리는 카메라를 통해 다양한 관점으로 보여줍니다. 역주행 상황에서 마주 오는 차량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고 추격해 온 차량과 부딪치지만 아주 큰 피해를 입지 않고 빠져나가는가 하면 도망치는 자동차 안에서는 알기 어려운 사방에서 경찰들이 몰려오는 장면을 보여주며 상황이 점점 더 주인공에게 불리해지고 있음을 관객에게 설명합니다. 이 추격 장면에서 흥미로운 점은 추격이 진행됨에 따라 주인공에게 다가오는 여러 위협을 순간 순간 보여줄 뿐 결코 이들을 관객에게 예고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다른 영화의 추격 장면에서는 종종 멀리 다가오는 기관차를 보여주며 기관차보다 먼저 교차로를 통과하거나 기관차와 충돌하거나 추격해 오는 적들에게 사로잡힐 수 있는 순간을 교차해서 보여주고 상황을 고조 시킨 다음 마지막 순간 주인공이 아슬아슬하게 교차로를 통과해 추격을 따돌리기도 합니다. 물론 주인공이 운전하는 자동차가 달려오는 기관차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건널목을 건너는 순간은 그 직전까지 예고를 통해 고조 시킨 감정을 폭발 시키기는 하지만 영화를 보는 여러 시간 시점에 따라 이런 예고는 상황을 예상해 지루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반면 본 올티메이텀 후반의 자동차 추격 장면에서 주인공이 탄 자동차는 마주 달려오는 다른 자동차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는데 이 때 관객에게 매 순간 다음에 일어날 상황을 거의 미리 알려주지 않습니다. 가령 반대쪽에서 달려드는 차량은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나타나 순식간에 지나가며 본이 빠르게 후진하다가 부딪치는 차량 역시 부딪치기 직전에 알려줍니다. 또한 다른 위협 역시 위협이 실제 주인공에게 영향을 주는 바로 그 순간 보여줄 뿐 상황의 큰 줄기를 구성하는 정보 이외에는 결코 미리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는 실제 아주 급하게 운전하고 있고 또 역주행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실제 세계에서 운전자가 겪을 수 있는 감정 상태에 가까울 겁니다. 본은 빠른 반사신경으로 아슬아슬하게 위협을 회피하고 있는데 이 때 위협은 순간 나타나 순간의 반응을 통해 순간 모면하기를 반복하고 있을 뿐입니다. 만약 이 때 다가오는 위협을 관객에게 멀리서 달려오는 기관차처럼 예고한다면 주인공이 아무리 다급하게 자동차를 운전하더라도 다음에 일어날 상황을 미리 알고 있기에 상황이 충분히 다급하게 다가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영화 다이하드 5에서 주인공은 헬리콥터에 쫓겨 완전히 코너에 몰립니다. 영화 특성 상 이들은 어지간한 위기에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관객이 잘 알고 있고 그 상황이 주인공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만드는지를 즐기는 것이 영화의 핵심 재미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 시리즈 초반에는 이 재미가 이 시리즈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잘 아는 사람들이 영화를 만든 것 같지만 현대에 이어서 제작된 나머지 시리즈는 다이하드를 그저 대머리 아저씨가 압도적 화력으로 적을 쓸어 버리는 영화로 착각한 사람들이 만든 것 같습니다. 다이하드 5에서 주인공은 도저히 대항할 방법이 없을 것 같은 헬리콥터에 의해 죽기 일보 직전 상황에 처하지만 주인공이 자동차를 하늘로 던져 올려 헬리콥터에 충돌 시켜 위기를 모면합니다. 그런데 이 때 헬리콥터에 의해 죽을 위기에 처한 주인공을 보여준 다음 주인공이 자동차를 몰고 터널의 빗면을 향해 돌진할 때 카메라는 자동차가 돌진하는 빗면과 그 궤적에 걸친 헬리콥터를 몇 초 전에 미리 보여줘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 순간 헬리콥터의 등장으로 고조된 위협은 헬리콥터가 파괴되기도 전에 끝나 버립니다. 어차피 주인공 버프로 주인공은 죽지 않을 테고 도대체 어떻게 자동차를 띄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 자동차로 위기를 벗어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비슷한 위기 상황에 상황을 관객에게 예고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관객은 주인공에게 몰입할 수도 있고 완전히 몰입이 깨질 수도 있습니다.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 영화 역시 다이하드 시리즈 초기처럼 어차피 주인공이 모든 위협을 극복하고 승리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얼마나 고통 받고 또 얼마나 고생하는지를 즐기는 영화입니다. 주인공이 극중 온갖 해괴한 상황을 맞이함에 따라 겁에 질려 미친 듯 행동하는 모습은 관객을 웃게 만들기도 하고 또 관객이 이 대단한 주인공 역시 근본적으로는 그냥 한 명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 줍니다. 이는 어쨌든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승리할 주인공에게 이입해 영화를 보려면 동시에 그 승리에 도달하기까지 온갖 처절한 고생을 반복하는 주인공에게도 이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영화 후반부에 주인공은 먼저 출발하는 헬리콥터에 탄 빌런을 추격하기 위해 막 떠오르는 헬리콥터 밑에 달린 짐을 간신히 끌어안고 헬리콥터와 연결된 채 떠오르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 주인공의 상태는 영화 상으로 손에 장갑만 덜렁 낀 채 하늘 높이 올라간 헬리콥터 밑으로 드리운 짐을 매단 밧줄을 붙잡고 기어 올라가고 있을 뿐입니다. 헬리콥터는 점점 더 높이 올라가고 주인공은 똑같은 밧줄을 붙잡고 있음에도 상황은 점점 더 위험해지며 수억 명의 목숨이 걸린 상황이 계속됩니다.

이 때 우리들은 이미 어찌 됐건 주인공은 헬리콥터 안에 있는 적들을 모두 제압하고 문제를 해결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 때 핵심은 주인공이 그 과정을 얼마나 처절하고 또 고생스럽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인공은 밧줄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위로 올라가 밧줄에서 헬리콥터 다리를 붙잡으려고 하지만 손이 잘 닿지 않고 헬리콥터 로터가 도는 거대한 소음과 바람 속에 중심을 잃고 아래로 순식간에 떨어집니다. 아슬아슬하게 밧줄을 붙잡아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결말을 맞이하지 않았고 또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사실 역시 알고 있지만 이제 밧줄을 다 올라와 헬리콥터 씬으로 무난히 넘어갈 거라고 예상한 관객들에게 순식간에 밧줄 저 밑으로 떨어져 지난 몇 분 동안의 진행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은 관객들이 결코 패배하지 않을 이 주인공의 인간적인 면에 이입하게 만듭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다른 장치로 주인공에 충분히 이입한 관객들은 주인공이 순간 저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순간 극장 전체가 울리도록 깜짝 놀라는 소리를 낸 다음 막상 아슬아슬하게 밧줄에 매달려 다시 기어 올라가는 주인공을 보며 서로 깜짝 놀랐다는 사실이 웃겨 피식 거리는 소리가 극장 안을 채우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통해 이런 여러 가지 경험을 하다 보면 별 생각 없이 게임에서도 이런 경험을 하게 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언처티드 시리즈에서 이런 시도를 훌륭하게 해 냈고 또 그 이전과 이후에도 여러 게임들이 영화 같은 연출을 통해 게임 경험을 폭넓게 확장 시켜 왔습니다. 최근 플레이 했던 어쎄신크리드 발할라에서도 명시적인 컷씬 외에 암살 장면을 보여주는 다양한 방법, 보스의 등장 연출, 동기화 할 때 주변 전경을 보여주는 연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카메라가 캐릭터 뒤에 고정된 게임 스타일에서도 영화처럼 게임 경험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고 또 지금 일어나는 사건과 이를 둘러싼 세계를 다양하게 보여줘 이들의 존재를 놓치지 않게 해 주기도 합니다. 그렇다 보니 게임 시스템이나 컨텐츠를 제안할 때 이런 영화적 경험을 줄 의도로 작성된 기획서를 마주칠 때가 자주 있었습니다. 가령 주인공이 던전 근처에 도착하면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던전 근처의 스산함과 던전 입구의 음산함을 여러 장면과 등장인물들의 겁먹은 표정을 통해 표현하는 것처럼 게임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하려고 한다든지 다리 위를 지나던 마차가 공격을 받아 다리 아래로 떨어지는 장면을 만들어 게임 역시 영화처럼 풍부한 경험을 주려고 한 것 같습니다. 이런 계획은 적어도 문서 상으로는 훌륭하지만 지금 만들고 있는 게임에 적용하려고 보면 온갖 문제가 있고 시스템을 설계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 기획을 수용하고 이로부터 발생하는 온갖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설계를 제안할 것인지 아니면 이를 거절할 것인지 고민하게 만듭니다.

일단 눈 앞에 닥친 문제부터 고민해 보면 영화에서는 등장인물의 표정을 통해 상황, 분위기,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예상할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게임에서는 애초에 표정을 풍부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할 작정으로 개발하지 않은 이상 어지간한 MMO 게임의 플레이어 캐릭터들은 그저 그런 페이셜 애니메이션을 가지고 있을 뿐이고 또 그나마 영화처럼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표정을 짓기는 어렵습니다. 기껏해야 소셜 애니메이션을 재생할 때 페이셜을 포함해 감정을 전달하는데 도움을 주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또한 모든 화면을 실시간으로 그려야 하는 게임이 처한 특성 상 멀리서 본 플레이어 캐릭터는 꽤 그럴싸해 보이지만 얼굴에 카메라를 가져다 댈 만큼 훌륭하지는 않습니다. 캐릭터를 충분히 멀리서 보여주는 아이소메트릭 뷰 게임에서 실시간으로 플레이어 캐릭터 가까이에 카메라를 가져다 대려고 할 때 아트 팀에서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알면 상황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분명 기술적으로 플레이어 캐릭터는 페이셜 애니메이션이 상황에 따라 여러 개 준비되어 있고 또 카메라를 얼굴 가까이 가져다 댈 수 있는데 이 제안을 거절하는 것은 팀 사이에 나쁜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있어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또 MMO 게임에서 리부트 된 둠 시리즈 중 하나인 둠 이터널의 글로리 킬을 넣고 싶어 할 때도 있었습니다. 거대 보스가 등장해 바닥에 장판을 깔아 대고 또 플레이어 캐릭터들은 이 보스를 둘러싸고 장판을 피해 가며 각자 공격을 날리지만 게임의 기본 카메라 시점을 유지하며 플레이를 하다가도 마지막 순간에는 여느 콘솔 게임에서 그러는 것처럼 주인공이 몬스터에 올라 타 몬스터에게 최대한의 고통을 주며 몬스터를 처형하는 메커닉을 넣고 싶어 했습니다. 플레이어와 몬스터는 서로 전투를 통해 상호작용 할 수 있는 별도 개체였는데 이들 모두는 멀티플레이 환경에서 서버 기반의 내비게이션 메시 위만을 이동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몬스터 위에 올라 타거나 거대 몬스터 위에서 이동하려면 이 과정 전체가 미리 제작된 연출이거나 몬스터 위처럼 보이면 별도 레벨을 제작하거나 극단적으로는 몬스터 위에 올라갈 수 있도록 몬스터가 내비게이션 메시를 들고 이동하도록 만들어야 할 수도 있었는데 이 모든 방법은 뻔한 MMO 게임에서 어느 것 하나 그리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또 둠 이터널에서 슬레이어가 글로리 킬을 할 때 그 주변에 있던 몬스터들은 글로리 킬이 끝날 때까지 슬레이어를 공격하지 않고 기다려 글로리 킬 연출이 방해 받지 않도록 해 줍니다.

비슷한 경험을 우리들이 만드는 게임에서 따라 하기 쉽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만드는 게임이 온라인 멀티플레이에 기반한다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게임은 화장실에 다녀오기 위해 게임을 멈출 수 없고 슬레이어가 글로리 킬로 사이버데몬의 눈깔을 뽑아 으깨는 동안 주변의 몬스터들을 함부로 멈출 수도 없습니다. 거대 몬스터 위에 올라 타 타이밍에 맞춰 키를 누르면 몬스터의 양쪽 뿔을 뽑아 몬스터에게 최대한의 고통을 주며 처형하기도 어렵고 또 그 사이에 다른 플레이어들은 무엇을 보고 있어야 할 지 정의하기도 어렵습니다. 우리들이 만드는 이 모든 상황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결코 멈추지 않는 서버에 완전히 동기화된 환경에서 일어나야만 하며 이 사실을 항상 마음에 새기지 않으면 앞에서 아주 조금 소개한 이상한 요구사항을 만들게 됩니다. 어쩌면 던전 입구를 보고 두려운 표정을 짓는 연출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전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표정을 보여줄 때 이 던전을 함께 공략하러 온 다른 플레이어들은 어떤 화면을 보고 있어야 할까요. 또 이 순간 주변을 돌아다니던 몬스터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아이소매트릭 뷰 게임에서 마지막 순간에 거대 몬스터를 처형하려 한다면 먼저 이 몬스터와 싸운 파티원 여러 명 중 누가 처형을 해야 할까요. 또 처형 하는 동안 다른 플레이어들은 어떤 화면을 보고 있어야 할까요. 그 순간 아직 죽지 않은 몬스터들은 처형을 시작한 플레이어를 제외한 나머지 플레이어를 계속해서 공격해야 할까요. 만약 처형 장면을 플레이 하는 플레이어가 몬스터에 올라 탔지만 타이밍에 맞춰 키를 누르기 전에 접속이 끊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몬스터가 다시 살아나 남은 플레이어들을 공격해야 할까 아니면 플레이어가 처형 조작을 하지는 않았지만 처형 당하는 연출을 보여주며 죽어야 할까 아니면 어차피 체력이 0이 됐으니 평범하게 죽는 연출을 한 다음 바닥에 쓰러져 보상을 토해 내야 할까요. 보스의 체력이 0이 될 때 주변에 자잘한 몬스터가 죽도록 만들면 처형 연출을 보여주는 동안 전투하지 않게 만들 수 있지만 그렇다면 이 몬스터들로부터 나온 경험치와 보상은 누가 가져야 할까요. 보스가 죽을 때 사라진 몬스터들의 경험치는 없는 것으로 해도 될까요? 만약 그렇다면 이 자잘한 몬스터들과 싸우며 자원을 소모한 플레이어는 작긴 하지만 이에 해당하는 보상을 받지 못할텐데 고객들이 이 사실을 납득할까요?

사실 인게임에서 연출을 사용하려는 시도는 오래 전부터 이어져 왔고 멀티플레이 온라인 환경에 대한 이해가 있고 이런 특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연출을 보여줄 단단한 계획과 지원이 있다면 영화 같은 멋진 경험이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한때 판교에 유명한 아이소메트릭 뷰 게임 두 개가 개발 중이었는데 그 중 하나는 어느 날 갑자기 정말 대단한 플레이 경험을 보여주는 트레일러 영상을 공개하며 분위기를 완전히 사로잡았습니다. 나중에 그 회사에 가서 보니 그 영상은 개발팀이 개발 방향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총 책임자가 그 동안의 개발을 일시 중단하고 개발팀 전체가 스스로 개발해 나가야 할 이상적인 게임의 모양을 영상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결과로 나온 영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후 개발팀은 이 영상을 근거로 멀티플레이 온라인 게임이면서도 다양한 연출과 이를 통한 다양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모양으로 개발되었습니다. 특수한 연출이 가능한 상황과 불가능한 상황을 정교하게 구분하고 동시에 게임을 플레이 하는 다양한 상황에 따라 연출이 각기 이루어지도록 했습니다. 또 방금 지나온 다리를 드래곤이 파괴해 더 이상 뒤로 돌아갈 수 없는 던전에서 일어나는 온갖 이상한 예외상황도 아름답지는 않지만 플레이를 불가능하게 만들지는 않는 다양한 안전장치를 통해 대체로 적절한 수준의 경험을 줬습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고 고객들도 큰 감명을 받았지만 이는 게임이 가진 특수한 제약과 목표로 삼은 영화적 연출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탄 결과입니다.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에 컷씬을 사용한 연출을 넣으려 할 때 항상 다양하지만 비슷한 질문을 받게 됩니다. 갓오브워처럼 컷씬을 통해 적을 처형한다면 이 순간 함께 플레이 한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무엇을 해야 하고 또 무엇을 보고 있어야 하는지, 마을에서 상점 NPC와 대화할 때 상점 NPC를 클로즈업 하는 카메라를 사용한다면 그 카메라 안에 보이는 다른 플레이어들이 보여야 하는지 보이지 말아야 하는지, 만약 마을에 돌아다니는 다른 플레이어들을 대화 도중 배경으로 보여주고 싶다면 그들 중 일부가 의도적으로 이 NPC와 대화하는 사람들의 화면을 망가뜨리기 위해 NPC에 겹쳐 서 있다면 이 상황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보스 등장 컷씬을 보여줄 때 컷씬은 스킵 가능해야 할 지, 만약 스킵 가능하다면 아직 컷씬을 보고 있는 플레이어는 전투에 돌입해야 할지 아니면 컷씬을 보고 있어야 할 지, 컷씬을 보고 있는 사이에 전투가 시작되었는데 이 때 공격을 받으면 컷씬을 보고 있는 플레이어는 공격을 받아 대미지를 입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어쎄신크리드의 동기화 기능처럼 특정 위치에서 상호작용하면 주변 전경을 컷씬으로 보여주는 기능을 넣으려 할 때 그 주변에 있는 몬스터가 전경을 보고 있는 플레이어를 공격해야 할 지, 아니면 공격하지 말아야 할 지, 만약 전경을 보고 있는 플레이어를 공격하지 않기로 한다면 플레이어가 의도적으로 몬스터의 공격을 회피하기 위해 이 기능을 활용할 때 이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같은 것들입니다. 이 질문들은 약 5분 동안 생각난 질문을 타이핑 했을 뿐입니다. 시간을 들여 생각하면 이런 질문만으로 구성된 1만 글자 짜리 텍스트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멀티플레이 온라인 게임 환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그 환경이 가진 한계, 여러 플레이어가 완전히 동기화된 상태로 계속해서 인게임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의 망각 등을 통해 위에 나열한 질문들은 요구사항을 가볍게 생각한 게임디자이너의 멘탈을 탈탈 털어버리기에 충분합니다.

이런 질문이 나오고 또 이런 질문을 유발하는 부실한 요구사항을 겁도 없이 만들 수 있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컷씬은 싱글플레이 환경에서 사용되어 온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싱글플레이 환경에서는 언제든지 게임을 멈출 수 있고 플레이어 한 명 이외에는 신경 쓸 요소가 없습니다. 이에 맞춰 전경을 구경하는 플레이어는 그 사이에 몬스터들의 공격 등 세계와 일체의 상호작용을 중단할 수 있습니다. 또 둠 이터널에서처럼 몬스터 가슴에 꽂힌 폭발물을 잡아 뜯어 주둥이에 쑤셔 넣는 동안 그 주변을 둘러싼 나머지 몬스터들은 슬레이어를 공격하지 않고 기다려 이 영광의 순간을 방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던전 입구로부터 느껴지는 음산한 기운에 표정이 굳어지는 주인공을 보여줄 수도 있는데 이 때 세계 전체를 잠시 멈춰 컷씬이 완전히 방해 받지 않고 재생되도록 할 수 있고 또 보스 몬스터가 감옥 창살을 잡아 뜯고 달려 나오는 그 순간 컷씬을 스킵할 다른 사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컷씬을 스킵하지 않으면 세계를 멈춘 채로 그냥 두고 플레이어가 컷씬을 스킵하면 그에 맞춰 세계를 다시 동작하게 만들면 됩니다. 싱글플레이 환경에서는 이 모든 장치를 사용하기 훨씬 쉽고 그만큼 이 모든 장치의 사용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멀티플레이 온라인 환경에서는 이 모든 경험이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앞서 영화에서 관객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영화적 접근을 조금 이야기했는데 게임은 그런 관점과는 굉장히 다른 방법으로 고객의 몰입을 이끌어냅니다. 영화에서 관객이 주인공에게 동조하도록 만들기 위한 방법들은 근본적으로 영화 속 주인공과 달리 관객들은 그저 어두운 방 안에서 의자에 앉아 가만히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을 뿐인 완전히 다른 개체입니다. 그래서 이들 사이에 연결을 만들기 위해 실제 세계에서 관객이 했을 것 같은 경험에 기초해 상황을 고조시켜 가곤 하며 이 모든 과정은 게임 관점에서 완전한 컷씬과 같습니다. 반면 게임에서는 애초에 게임이 시작될 때부터 게임 속 캐릭터를 고객이 직접 조작하고 있으므로 게임 속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고객과 더 잘 연결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영화 속 주인공과 관객을 연결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연출 대부분은 게임에서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꽤 잘 연결된 캐릭터와 이를 직접 조작하는 고객을 굳이 다시 한 번 연결하지 않아도 됩니다. 또 멀티플레이 온라인 환경은 애초에 상호작용할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 영화나 언제든지 세계와 상호작용을 중단할 수 있는 싱글플레이 게임과 달리 이론적으로 서버와 완전히 동기화 되어 동작하는 세계는 플레이어 본위로 멈출 수 없고 누군가 컷씬을 통해 이 세계와 동떨어진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면 그 사이에 나머지 세계는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 반대로 누군가 개인화된 경험을 할 때 그 자신을 나머지 세계로부터 어떻게 격리할지 같은 관점으로 고민하지 않으면 이상한 요구사항을 만들게 됩니다.

멀티플레이 온라인 게임을 주로 만들어 온 사람 입장에서 컷씬은 근본적으로 세계를 멈출 수 있는 싱글플레이 게임으로부터 온 표현 기법입니다. 이를 멀티플레이 온라인 환경에 적용하려면 컷씬 관점에서 플레이어 개인에게 줄 경험을 설계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와 동시에 멈출 수 없이 계속해서 동작하는 세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를 함께 고려해야만 합니다. 컷씬은 근본적으로 영화, 그리고 싱글플레이 게임으로부터 온 개념이라는 사실, 이는 멀티플레이 온라인 게임에 그대로 적용하는데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