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야근 시키는 방법

유연근무제도가 야근을 위협하고 있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전통적인 지원 제도를 유지해도 야근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야근 시키는 방법

회사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직원들을 지원합니다. 지원의 목적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업무 수행과 관계 없는 일이 신경 쓰지 않도록 해 업무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또 좋은 지원은 좋은 사람들을 불러들일 가능성을 올려 주는 역할도 있습니다. 가령 회사는 업무 공간에 커피머신을 설치하기도 하는데 이는 직원들이 커피를 사러 밖에 나가는 시간을 줄여 주고 또 업무 시간에 좀 더 멀쩡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을 가능성을 높여 주는 역할도 합니다. 물론 여기에 돈을 아껴 쓰레기 같은 커피를 제공하면 실컷 돈은 돈대로 내면서 직원들의 시간을 전혀 아껴 주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럴 바에야 개발비를 절약해 봅시다에서 말한 대로 차라리 돈을 아끼는 편이 나을 수 있습니다.

또 탕비실에 적당한 수준의 스낵을 제공하면 출출할 시간에 직원들이 삼삼오오 업무공간을 벗어나 근처 편의점에 가서 군것질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담배 한 대 피우고 올라올 시간 중에서 적어도 절반 정도는 절약할 수 있습니다. 한번에 몰려 나간 직원들 개개인의 시급을 고려하면 이들을 편의점에 다녀오게 만들기 보다는 탕비실에 스낵을 배치하는 편이 훨씬 저렴합니다. 물론 이 돈 역시 과하다고 생각하면 스낵을 치우거나 스낵을 배치하더라도 ‘집어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라고 적어 더럽고 치사하게 굴어 직원들의 업무 의욕을 영구적으로 꺾어 버리는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자잘한 거 말고 조금 더 본격적인 지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면 직원들의 모든 노동시간에 대해 보상하지 않는 곳일 수록 더 긴 노동시간을 지탱하기 위한 지원 정책이 있는 곳이 많습니다. 만약 하루 8시간을 초과한 노동에 제대로 보상하는 회사라면 직원들의 초과 노동이 회사에 이익으로만 다가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만약 8시간을 초과한 노동에 대해 제대로 보상하는 상황에서 직원들이 이전에 일하던 만성적인 야근 습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큰 손해로 이어질 수 있어 이런 업무 습관을 지원하는 정책을 유지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초과 노동에 보상하지 않는 곳이라면 직원들이 최대한 회사에 오랜 시간 머무르게 만들기 위한 지원을 해도 괜찮습니다. 가령 직원들이 밤 늦게 퇴근할 때 택시비를 지원할 수 있는데 중요한 점은 늦은 시간 퇴근 이기는 하지만 택시 사용률을 최소화하고 또 기왕에 택시를 타고 퇴근하게 만들 거라면 최대한 긴 시간 동안 회사에 머무르게 만들기 위해 사실상 택시를 잡을 수 없는 23시 30분부터 택시요금을 지원해야 합니다. 23시 30분부터 다음날 0시 사이에는 택시가 절대로 접히지 않기 때문에 직원들은 어쩔 수 없이 30분 더 회사에 머물러야 하고 0시가 되는 순간에는 택시 호출량이 폭주하기 때문에 또 한 30분 정도는 택시를 잡을 수 없어 이를 고려해 애초에 택시를 타고 집에 갈 예정이라면 0시 30분까지 회사에 머물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 저녁식사를 제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데 만약 출근 시각과 퇴근 시각이 각각 9시와 18시인 회사라면 19시 이후부터 저녁식사 비용을 지원하면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정책은 직원들을 고민에 빠지게 만들텐데 만약 출퇴근 시간이 1시간 정도인 직원이라면 18시에 퇴근해 집에 예정대로 도착하면 19시가 됩니다. 이제 저녁 식사를 준비해서 식사를 마치려면 시간이 제법 많이 필요할 뿐 아니라 퇴근 직후의 피곤한 상태에서 이런 일을 잘 수행해 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회사에 1시간 더 머무르면 저녁식사를 지원 받을 수 있기 때문에 19시까지 일한 다음 저녁을 먹고 퇴근시간을 피해 좀 더 널럴하게 퇴근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원래 지급해야 하는 초과수당과 저녁식사 비용을 비교해 보면 저녁식사 비용을 지원하는 편이 회사 입장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할 뿐 아니라 저녁식사 후 바로 퇴근하는 행동을 ‘먹튀’라고 부르며 공공연하게 배척하는 문화를 만들면 더 늦게 까지 회사에 남아 있도록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배려 아닌 배려는 회사가 각자에게 지불할 임금에 비해 훨씬 낮은 비용만을 지출 하면서도 직원들을 회사에 더 오래 머물게 만드는 긍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일단 직원들이 회사에 더 오랜 시간 머물면 업무 집중도가 낮 시간에 비해서 낮아지더라도 중요한 의사소통과 의사결정이 밤 시간에 더 많이 일어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지난 지연, 흡연 카르텔에 소개한 흡연자 그룹 안에서 중요한 정보가 오가고 또 의사결정이 일어나는 현상과도 비슷한데 둘 사이에 가장 큰 공통점은 정보 교환이나 의사결정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이 그룹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일단 이런 분위기가 회사에 널리 퍼지면 중요한 의사결정은 회의실을 예약하기도 힘든 낮시간에 비해 아무 방이나 텅텅 비어 있는 밤 시간에 일어나기 시작하며 이런 의사결정으로부터 뒤쳐지지 않기 위해 많은 직원이 더 늦게까지 남아 있고 또 사실상 0시를 넘겨야 이용할 수 있는 교통비 지원까지 활용하며 최대한 오랜 시간에 걸쳐 회사에 남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시나리오에 금이 가게 만드는 좋지 않은 조류가 널리 퍼지고 있는데 바로 유연근무 제도입니다. 전통적으로 회사는 9시에서 18시까지 일하고 중간에 사실상 대기 상태이지만 노동 시간으로 인정되지 않는 점심시간 1시간을 포함한 총 9시간 동안 회사 또는 적어도 회사 근처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시작 시각과 종료 시각이 일정한 상태에서는 위에서 설명한 여러 가지 지원을 시간에 근거해 제공하기 쉽습니다. 퇴근은 18시, 저녁식사 지원은 19시부터, 교통비 지원은 23시 30분 부터 입니다. 규칙은 너무나 간단해 예외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하지만 유연근무는 하루 8시간 노동, 1시간 대기 또는 휴식을 연속으로 달성 하기만 하면 시작 시각을 적당한 범위 안에서 조절할 수 있습니다. 가령 누군가는 더 빨리 출근할 수 있고 누군가는 더 늦게 출근할 수 있는데 이러면서 아름다운 규칙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먼저 더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저녁식사 지원의 매력이 떨어집니다. 8시에 출근하면 17시에 퇴근할 수 있는데 저녁식사 지원은 19시에 고정되어 있으므로 출퇴근에 두 시간을 소모하는 직원이 아니라면 이전처럼 한 시간 후에 식사를 하거나 한 시간 후에 집에 도착해 식사를 준비하는 상황 사이에 고민하는 대신 두 시간 후에 식사를 하느니 바로 집에 가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또 같은 상황에서 교통비 지원 역시 조건이 시간으로 설정되어 있으므로 매력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반면에 늦게 출근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지원을 더 많이 사용하면서도 회사에 머무르는 시간이 짧아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가령 11시에 출근하면 20시에 퇴근할 수 있는데 이 시점에 이미 저녁식사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상태이고 한 시간 정도 식사하고 돌아오면 교통비 지원 역시 잠깐만 회사에 머무르면 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이들은 분명 규칙을 준수하고 있지만 회사가 의도한 것보다 훨씬 더 적은 시간만 회사에 머무르면서도 모든 지원을 받는 상황이 일어납니다.

그럼에도 회사가 유연근무에 맞춰 이 규칙들을 재정의하지 않고 전통적인 형태를 유지하는 이유는 앞서 설명한 의사소통과 의사결정이 더 늦은 시간대에 일어나는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더 늦게 출근한 사람들이 회사가 의도한 것 보다 훨씬 짧은 시간 동안만 회사에 머무르면서도 회사의 지원을 모두 받으며 일종의 프리라이딩 - 엄밀히 프리는 아니지만 - 을 하고 있지만 이들에 의해 중요한 회의가 더 늦은 시간에 일어나고 중요한 의사소통이 한밤중의 담배터에서 일어난다면 더 일찍 출근하는 직원들은 이로부터 압력을 느끼게 됩니다. 이 상태를 방치하면 더 일찍 출근해 일찍 퇴근하던 사람들의 출퇴근 시간이 조절되거나 아예 관성에 따라 더 일찍 출근하는 습관을 유지하면서도 의사결정에 소외되지 않기 위해 더 오랫동안 회사에 머무르는 가장 좋은 행동을 보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행동을 모두 합하면 회사는 직원들의 업무 환경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도 더 적은 돈으로 더 오랜 시간에 걸쳐 이들이 회사에 머물도록 유도할 수 있습니다.

초과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포괄임금제를 적용하는 회사 관점에서 직원들이 더 오랫동안 회사에 머물게 유도하는 여러 장치는 사려 깊은 지원처럼 보이고 또 실제로 어느 정도 사려 깊은 지원이었지만 현대에 유연근무제가 도입되며 이 제도에 균열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연근무제에 맞춰 지원 정책을 조정하는 대신 계속해서 고정된 시각에 근거한 정책을 유지함으로써 직원들이 더 늦은 시간까지 회사에 머물게 만들어 의사소통과 주요 의사결정이 더 늦은 시간에 일어나도록 유도함으로써 이전 시대 수준 만큼은 아니지만 꽤 효율적으로 사람들을 더 늦게까지 회사에 더 낮은 비용만으로 머무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