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 흡연 카르텔

원시 사회와 마찬가지로 현대에도 지연 카르텔과 흡연 카르텔은 공고합니다.

지연, 흡연 카르텔

오늘은 오랜 세월에 걸쳐 단단히 굳어진 어떤 카르텔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이 카르텔은 여기 속한 개개인들이 자신의 소속을 명시적으로 자각하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 카르텔은 과거에서 현대에 이르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공고하게 자리 잡았으며 미래에도 그 위상에 변함이 없을 겁니다. 이 카르텔은 지연과 흡연을 통해 만들어졌는데 여기서 지연은 지각에 의한 연결, 그리고 흡연은 말 그대로 흡연에 의한 연결을 의미합니다. 지금 여기서 딱 한번만 풀어서 설명하면 주로 지각 하는 사람들, 그리고 흡연 하는 사람들에 의해 구성된 카르텔은 여러 회사에 걸쳐 직원들을 지원하는 다양한 규칙 설정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쳐 여기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지속적인 손해를 보도록 하고 있습니다.

회사에 따라 출퇴근 시간을 강하게 통제하는 곳들이 있는데 정확히는 주로 출근 시간을 강하게 통제하며 퇴근 시간은 언더타임에 대해서만 통제하고 오버타임에 대해서는 거의 혹은 전혀 통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퇴근 시간에 대한 통제는 사실상 통제력이 거의 없어 통제가 잘 이루어지기 어려운데 가장 큰 이유는 이런 통제를 시도하는 회사가 높은 확률로 포괄임금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포괄임금제를 채택하지 않아 오버타임에 대해 더 강한 통제를 해야 하는 상황일 때 회사는 오버타임을 정확히 측정해야 하는 확실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버타임이 통제되지 않으면 즉시 비용이 올라가 회사 운영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오버타임을 통제하기 시작하면 같은 시스템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언더타임 역시 통제할 수 있게 되는데 이 통제에 같은 시스템을 사용하고 또 오버타임을 통제하는데 사용된 비용에 근거한 강제성을 언더타임에도 똑같이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포괄임금제를 채택한 회사에서는 출퇴근 시간 양쪽 모두를 통제하고 싶겠지만 그럴만한 강제성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주로 퇴근시간을 통제하기 쉽지 않고 출근시간 통제에 집중하더라도 통제되지 않는 퇴근시간의 영향을 받아 출근시간 역시 통제하기 어려운 상태가 됩니다.

이런 상황에 놓인 회사에서 쉽게 보이는 현상은 사람들에 따라 출근 시간이 두 시간 이상 차이 나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아홉시 이전에, 누군가는 열한시 이후에 출근하지만 방금 설명한 강제성의 부재로 인해 상황을 통제하기 아주 어렵습니다. 사람들의 출퇴근 시간은 사실 별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사람들 사이에 협업이 일어나야 하는 상황에서 서로 다른 업무 시작 시각과 종료 시각은 협업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현대에는 굳이 서로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아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의사소통 할 수 있고 끝까지 숨어다닐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에서 설명한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원격 업무 대중화로 인해 이런 흐름은 더 강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이전 시대에 서로 대면하며 일해 온 사람들이 아직 회사에 더 많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의논이 필요할 때, 강한 협업이 필요할 때 서로를 대면하는 상황에서 일이 가장 잘, 그리고 가장 빨리 진행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서로의 업무 시작 시각이 다른 상황으로 인한 문제를 줄이기 위해 ‘코어 타임’을 도입하기도 하지만 이는 결국 가장 강한 협업이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을 하루 전체 업무시간의 일부로 축소하는 결과를 만듭니다.

그런데 여런 상황에서 지연에 의해 형성된 카르텔은 회사와 맺은 계약을 충실히 이행하는 사람들이 퇴근한 이후에도 회사에 남아 있으며 하루 중 늦은 시간에 이들만이 모인 가운데 의사결정이 일어나고 이들만이 모인 가운데 협업이 일어나고 이들만이 모인 가운데 동료애가 형성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들은 늦은 시간에 퇴근하며 교통비를 청구하기도 하고 또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을 더 능숙하게, 또 습관적으로 사용하는데 이런 행동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만약 회사와 맺은 계약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면 사용할 필요가 없었던 비용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 이들은 회사에 늦게 까지 남아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 마치 이들이 조직에 더 충성하고 더 충실한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라는 겉보기 평가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이는 명시적인 업무 관리 방법의 부재와 평가 방법의 부재와 함께 회사와 맺은 계약을 충실히 이행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만 오늘 이야기할 주제를 초과하는 것 같아 이렇게만 이야기 하겠습니다. 회사와 맺은 노동시간과 출퇴근 시각에 대한 계약을 충실히 이행할 때 겪는 상황으로는 오늘 계획한 업무를 마치고 계획된 시각에 퇴근할 때 언더타임으로 오인 받고 이 상황이 반복되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도 만성적인 언더타임을 하는 사람으로 낙인 찍힐 수 있습니다. 또 주요 의사결정이 일어나는 순간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지연으로 묶인 카르텔이 늦은 밤 만들어낸 결정사항을 다음 날 점심 즈음에야 맥락 없이 결정 결과만 전달 받아 결정 사항 자체, 그리고 결정 과정에 개입할 수 없게 됩니다. 여전히 동양 문화권에서는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일을 하고 또 조직에 충성하는 사람들이라는 오래된 이미지에 의한 실제와는 다를 수 있는 평가 방법이 의심 없이 통용되고 있어 이런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렵습니다.

실상 이들은 오버타임을 하고 있지도 않고 정확히 통제해 보면 오히려 언더타임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으며 늦은 밤 피곤한 상태로 주요 의사결정을 하고 그 의사결정에 참여한 모두가 서로 비슷한 상태이기 때문에 의사결정 결과는 훌륭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으며 늦은 시간에 일하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회사 서비스를 초과 사용해 비용을 증가 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오래된 동양적 이미지에 기반해 실제로 회사에 일으키는 효과와는 상당히 다른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들을 통틀어 지연에 의한 카르텔이라고 봅니다.

한편 흡연에 의한 카르텔 역시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일단 확실히 해 둘 것은 흡연은 기호 중 하나로 마치 콜라를 마시거나 커피를 마시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콜라를 마시는 것과는 달리 같은 공간에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연기를 만들어내 이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원시적인 시대에는 실내에서도 이를 허용했지만 현대에는 실내에서 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흡연 하는 분들은 기호의 해결을 위해 실외로 이동해야 하는데 일단 현대의 고층 건물에서 실외로 이동하는데 시간이 제법 걸릴 뿐 아니라 실외에서 흡연에만 집중하지 않기 때문에 흡연 한 번에 소요되는 시간은 생각보다 긴 편입니다. 특히 실외에서 마주친 흡연하는 분들은 그 자리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종종 실내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 정보수준이 더 높아지고 또 서로 더 친해져 업무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하는데 이는 반대로 이 흡연 카르텔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줍니다.

흡연 카르텔은 앞에서 소개한 지연 카르텔과 여러 모로 비슷한데 일단 흡연 카르텔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회사 내 휴게 공간에서 정상적인 휴식을 취할 수 없게 만듭니다. 전통적인 동양권 노동 문화에 근거해 실외 흡연 공간에서 흡연하는 행동은 비업무로 잘 취급 받지 않지만 휴게 장소에 앉아 있는 행동은 쉽게 비업무로 취급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엄연히 사용하라고 만든 실내 휴게 공간은 항상 텅 비고 실제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화장실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빈 휴게 공간은 사용이 저조하다는 평가를 받아 쉽게 업무 공간으로 개조 되어 흡연하지 않는 사람들이 실내에서 휴식을 취할 방법을 근본적으로 제거해 버립니다.

흡연 카르텔 역시 지연 카르텔과 마찬가지로 주요 의사결정과 정보 공유 과정에 카르텔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을 배제합니다. 회의실에서 일어나는 명시적인 의사결정 외에도 의사결정이 필요한 주제에 대한 여론을 형성하거나 의사결정에 필요한 사전 정보가 흡연 카르텔 안에서만 유통 되어 여기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정보 수준에 차이가 있는 상태로 의사결정에 참여해 훌륭하지 않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고 심하면 의사결정 자체가 이미 실외에서 흡연 카르텔 구성원에 의해 종료되어 의사결정 과정에 아예 참여하지도 못한 채 일방적으로 의사결정 결과만을 통보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배제에 의해 흡연 카르텔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회사의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하게 되어 탈출 버튼을 누를 시점을 놓치거나 다른 사람들의 특정 행동에 대한 맥락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져 덜 훌륭한 선택과 덜 훌륭한 행동과 덜 훌륭한 의사결정을 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업무 시간에 몸이 자리에 앉아 있다고 해서 머릿속도 업무에 집중한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일하는 지식노동자들이라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업무 위치를 이탈한 상태에서 명시적은 업무 진행이 일어나고 있다고 평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잠깐 설명한 대로 흡연에는 업무장소를 이탈한 상태의 시간이 필요하고 또 흡연 카르텔 구성원들끼리 일어나는 정보 교환, 친분 관리, 의사결정 등을 통해 이들이 명시적으로 업무 진행을 하고 있다고 평가할 만한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흡연 카르텔 구성원들의 업무시간을 업무 위치를 이탈하지 않는 범위로 한정한다면 상당한 언더타임이 일어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이런 측정은 일어나지 않는데 흡연 카르텔에 속한 사람들이 먼 과거로부터 회사 운영, 정책 수립, 정책 실행과 평가 과정을 완전히 독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시사회와 현재를 비교할 때 원시사회에 비해 현재가 더 개선된 점은 흡연 카르텔에 더 이상 실내에서 흡연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지만 이를 제외한 업무 환경은 아주 아주 아주 강력한 지연과 흡연 카르텔에 의해 지배 되고 있으며 여기 속하지 않는 사람들은 사실상 이들이 독점한 권한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이전에 흡연자들과 함께 일하기에서 흡연 카르텔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이점을 소개한 적이 있지만 이런 장점은 지금으로는 결코 흡연 카르텔에 속한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이점에 비해 결코 크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