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은 따줄 수 있지만 밥은 싸줄 수 없어요
상대에게 별을 따다 주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과학적, 그리고 기술적인 도전이 요구됩니다. 별을 따다 주겠다고 선언하기 전에 찬찬히 고려해 봅시다.
어느 날 오후 멍하니 가만 앉아 있다가 문득 이야기 하나가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어디서 읽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노총각이 같은 회사 직원에게 별이라도 따다 줄 수 있다며 대시 했는데 그럼 점심 도시락이라도 좀 싸 와 보라고 했더니 남자가 어떻게 그런 걸 하냐며 거절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저는 구내식당 죽돌이라 구내식당이 있는 회사라면 식당에서 뭘 주든 군소리 없이 성실하고 말끔하게 먹어 치우는 스타일이라 누군가에게 도시락을 만들어 달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한편 도시락 만드는 일에 얼마나 큰 노동력이 필요한지는 조금 이나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도시락을 만들지 않는 것이기도 한데 또 그래서 다른 누군가 에게 도시락을 만들어 달라고 할 생각도 없습니다. 지난 권고사직 이후 구직 하는 동안에는 식사 비용을 줄이려고 대량으로 판매하는 냉동 도시락을 잔뜩 주문했는데 이렇게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도시락을 뭐 하러 직접 만드나 싶습니다.
한편 별이라도 따다 줄 것 같이 굴었지만 도시락을 싸 와 달라는 말을 거절했다는 이야기를 정확히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하지 못한 채 일단 도시락 부분은 제쳐 두고 별을 따는 부분에 집중해 내가 여러 명일 때 생기는 도전거리 때처럼 대시 할 이성을 위해 별을 따려고 할 때 생기는 과학적, 그리고 기술적인 도전거리를 가볍게 생각해 봤습니다. 만약 제가 관련 전공자이거나 관련 지식을 더 깊이 공부한 상태였다면 훨씬 더 의미 있는 고민을 할 수 있었겠지만 저는 그저 다른 훨씬 전문적인 누군가가 이런 주제로 저 같은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글이나 영상을 만들어 주시면 이를 통해 간접의 간접적으로 상식을 얻는 수준에 가까워 고민의 깊이가 충분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별이라도 따다 줄 수 있다는 말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큰 무게를 가지고 또 얼마나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그저 상식적인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이 말을 하기 전에 해 봐야 할 과학적인, 그리고 기술적인 도전에 대해 한번 검토해 봐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지금 이 글을 작성하기 시작하면서 구글의 도움을 빌어 앞에서 소개한 원본 글을 찾아냈습니다. 일단 이 글을 소개한 다음 이야기를 이어 가겠습니다.
일단 근본적으로 대시는 술 마신 상태로 해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며 스스로를 가장 취약한 상태로 만드는 모험을 감수하는 그 순간에 정신 바짝 차리고 상대의 반응을 살피며 어떤 결과로 귀결되더라도 이를 받아들일 충분한 준비를 하고 그에 따른 순발력 있고 또 사려 깊은 행동을 해도 시원찮을 상황인데 술을 마시고 정신이 멀쩡하지 않은 상태로 대시를 했다니 이건 성공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또한 도시락을 만드는 일은 앞에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지만 도시락은 적어도 하늘의 별을 따다 줄 생각을 하기 위해 과학적, 그리고 기술적인 검토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만약 스스로 모든 반찬을 만들 수 없다면 단계 별로 접근하는 전략을 사용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가령 만들 수 있는 반찬을 만들고 그럴 수 없는 반찬은 구입하되 이 사실을 솔직하게 말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직접 만든 반찬의 범위를 넓혀 가는 접근은 사실 이 상황에서 용인 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노총각은 그런 가능한 접근을 포기하고 별을 따다 줄 수 있다는 자세를 고수했는데, 이 노총각의 관점을 존중해 이제부터 최소한의 상식만 가진 비전문가 입장에서 하늘에서 별을 따다 주려 할 때 생기는 과학적, 그리고 기술적 접근을 시도해 보겠습니다.
먼저 무엇을 따야 할 지 정확한 대상을 결정해야 합니다. 하늘에는 여러 천체가 떠 있는데 표현 상 정확히 별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스스로 빛을 내는 천체를 의미합니다. 별이 스스로 빛을 내기 위해서는 핵융합 반응을 통해야 하는데 우리 지구와 가장 가까운 별에는 태양이 있습니다. 태양은 수소 핵융합을 통해 빛을 내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헬륨 등 점점 더 무거운 원소에 기반한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며 빛을 냅니다. 그런데 한국어 표현 상 별은 보통 밤 하늘에 떠 있는 천체를 말하곤 하므로 지구에서 가장 가까워 따 올 난이도가 가장 낮은 태양을 말하는 것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지구에서 가까운 별은 프록시마자리의 센타우리 별인데 여기서는 간단히 프록시마 센타우리라고 부르겠습니다. 프록시마 센타우리는 태양 다음으로 우리 지구에서 가까운 별이며 거리는 약 4.2광년입니다. 이보다 먼 별은 따 오는데 필요한 난이도가 급 상승할 것이 분명하므로 이 별을 따 보겠습니다.
프록시마 센타우리 별을 따려면 이 별 가까이까지 이동해야 합니다. 4.2광년은 시속 약 10억 7천 9백만 킬로미터로 4.2년 동안 이동해야 하는 거리입니다. 일반상대성이론에 근거해 물체를 빛의 속도로 가속하면 질량이 무한대가 되기 때문에 질량이 있는 어떤 물체도 광속까지 가속할 수 없습니다. 과거 냉전시대 끄트머리에 우주선 뒤에서 핵분열 물질 혹은 핵무기를 반응 시켜 추진력을 얻어 우주선을 가속 시키는 이론이 알려진 바 있지만 지구상의 핵무기를 지구 저궤도 까지 가지고 올라가다가 사고가 나면 심각한 결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추진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1광년 이상의 거리를 이동할 때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이동하지 않고서는 한 인간의 일생 안에 도착하기는 불가능하므로 현대 기술의 발달을 무시하고 아광속으로 이동 가능하다고 가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질량이 있는 물질은 광속 이동이 불가능하므로 광속의 99.9999999% 까지만 가속할 수 있다고 가정할 텐데 그러면 광속은 초속 299,792,458미터인데 비해 이 글에서 가정할 아광속은 초속 299,792,457미터로 초당 약 1미터 정도 차이가 납니다. 하지만 이 때 가속할 물체의 질량은 무한대는 아니므로 가속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우주 공간을 이동하는 속도는 아광속 또는 광속의 99.99999999%를 의미하며 이를 간단히 아광속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가정을 추가해야 하는데 우리 지구, 태양, 태양계는 모두 각자의 궤도를 따라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는 프록시마 자리의 모든 별도 마찬가지이며 프록시마 센타우리 역시 궤도를 따라 이동하고 있습니다. 궤도 운동을 하는 두 물체 사이를 이동하는 경로를 구축하려면 매우 복잡한 계산을 해야 하지만 앞에서도 설명했듯 저는 이 분야의 전공자도 아니고 또 전문가도 아니어서 움직이는 지구, 움직이는 태양과 태양계, 프록시마 자리의 이동과 프록시마 센타우리의 이동을 고려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 지구, 그리고 프록시마 센타우리 양쪽 모두 상대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러면 이들 두 천체는 상대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므로 지구에서 출발한 우주선은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 직선 이동해 도착할 수 있습니다. 소설가 엔디 위어가 그의 책 마션을 쓸 때 이야기에 등장하는 상황을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기술하기 위해 지구와 화성의 공전 궤도를 표시하는 시뮬레이터를 개발했다고 하지만 여기서는 그 정도 수고를 기울이지는 않겠습니다.
이제 이 노총각은 별을 따 오기 위해 지구에서 프록시마 센타우리로 출발해야 합니다. 요즘엔 한화로 약 7백억원 정도를 내면 재사용 가능한 발사체를 사용하는 회사를 통해 우주로 뭔가를 발사할 수 있지만 이 분야에 유명한 회사는 주로 지구 저궤도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지구를 벗어날 목적으로 사용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물론 이 회사에서는 지구 중력권을 크게 벗어날 목표로 발사체를 연구 중이지만 2024년 초 기준 최근 두 번의 실험은 실험에 따른 데이터를 확보하는 측면에서는 성공적이었지만 임무 자체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 회사를 통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렇다면 별 수 없이 현 시대 기준 가장 앞선 우주 발사체 기술을 가진 나사에 문의해야 하는데 저궤도 발사체 기준으로 가장 저렴한 재사용 가능한 발사체를 사용하는 민간 회사는 나사에서 같은 저궤도 발사체를 발사하는데 비해 약 10% 정도의 비용만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구 저궤도 기준으로도 적어도 한화 7천억원 이상의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백한 상대를 위해 별을 따기 위해서는 이 정도 비용은 어렵지 않게 지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지구 저궤도에서 프록시마 센타우리를 향해 우주선을 아광속으로 가속하기 위한 여러 방법이 제안되었는데 이 중 널리 알려진 방법에는 우주선 뒤에서 핵무기를 사용해 추진력을 얻는 오리온 계획이 1960년대까지 제작된 핵무기만으로도 실현 가능했다고 합니다. 현실성은 여러 모로 부족했지만 현 인류의 기술에 기반해 현실적으로 태양계를 떠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며 당시 계산으로 광속의 10%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속도로는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 도달하는데 지구 시간 기준으로 왕복 84년이 걸려 현실성이 없습니다. 어차피 현실성이 없는 김에 여기서 우리는 오리온 계획을 통해 짧은 시간 동안 광속의 10%가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물리적으로 가능한 한계인 광속의 99.99999999%까지 가속할 수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또한 가속에 걸리는 시간 역시 아주 짧거나 없다고 가정해 지구 저궤도에 오른 노총각이 탄 우주선이 아광속에 거의 딜레이 없이 가속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제 지구 시간 기준으로 노총각을 태운 우주선은 약 4.2년 후 프록시마 센타우리 궤도에 진입합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는데 우리 지구와 프록시마 센타우리가 상대적으로 일정한 위치를 유지할 거라는 가정 하에 이동에 4.2년이 걸린다는 것은 아광속으로 이동 중인 우주선을 관측하는 지구 관점이라는 것입니다. 지구에서 아광속으로 멀어지는 우주선을 관측하면 4.2년 후 프록시마 센타우리 궤도에서 우주선을 관측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가속된 우주선에서 관측한 시간은 완전히 달라지는데 광속의 99.99999999%에 해당하는 아광속으로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 이동할 때 우주선 안에서는 6.175시간으로 관측됩니다. 즉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 아광속으로 이동하는데 지구 기준으로는 4.2년이 걸리지만 우주선에 타고 아광속으로 이동하는 노총각 관점에서는 대략 여섯 시간이 좀 넘게 지나면 도착한다는 것입니다. 별을 따기 위해 나사에 한화로 최소 7천억원을 태우는 엄청난 수고를 했지만 고작 몇 시간 쯤 걸려 프록시마 센타우리에 도착했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도시락을 만들기로 했다면 앞으로 몇 주가 걸릴 지도 모를 일을 고작 여섯 시간을 들여 전체의 절반에 해당하는 거리를 이동한 것으로 미루어 별을 따는 일이 도시락을 만드는 일에 비해 훨씬 쉬운 일로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이제 프록시마 센타우리 궤도에 도착했으니 별을 딸 차례입니다. 별을 이동 시키는 것은 분명 간단한 문제는 아닐 겁니다. 앞에 언급한 오리온 계획처럼 슈카토프 추진기, 중력 트랙터, 캐플란 엔진, 스타 터그 등 다양한 방법이 제안 되었습니다. 사실 이 모든 방법 중 실제로 시도해 성공을 거둔 방법이 아직 없고 각 방법들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넘어야 할 기술적 한계가 뚜렷하기는 하지만 이미 우리는 프록시마 센타우리에 도착하기 위해 아광속 이동을 가정한 이상 이 방법들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 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다만 슈카토프 추진기, 캐플란 엔진, 스타 터그는 별의 에너지를 추진력으로 사용합니다. 프록시마 센타우리는 그 스스로 빛을 내며 핵융합 반응을 통해 막대한 에너지를 느리게 우주로 방출하고 있기는 하지만 별을 따 가기로 했는데 그 별의 에너지를 사용해 별을 이동 시키는 것은 썩 좋은 아이디어가 아닐 수 있습니다. 마치 주유소에 가서 휘발유 30리터를 사 오기 위해 가져간 자동차 연료탱크에 휘발유 30리터를 주유한 다음 그 휘발유를 사용해 돌아오는 꼴입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휘발유가 30리터보다 모자를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노총각은 중력 트랙터 방식을 사용하기로 합니다. 이 방식은 질량을 가진 물체가 서로 끌어 당긴다는 성질을 활용해 우주 공간에서 이동할 수 있는 우주선 같은 물체가 중력을 이용해 이동 시키기를 원하는 천체 주변에서 중력을 이용해 대상 천체를 서서히 이동 시키는 방법입니다. 마침 노총각은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 지난 약 여섯 시간에 걸쳐 사용한 우주선이 있습니다. 이를 프록시마 센타우리가 지구를 바라보는 방향에서 프록시마 센타우리의 지름에 해당하는 삼차원 나선을 그리며 서서히 지구 방향으로 이동하면 중력 트랙터 효과로 별을 지구 방향으로 이동 시킬 수 있으며 이 때 별의 에너지를 직접 사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이야말로 별을 따기 위해 별의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 가장 적절한 방법입니다. 이제 나선을 그리며 지구 방향으로 출발합니다.
프록시마 센타우리를 향해 이동해 올 때는 직선 경로를 따라 아광속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이동 거리는 약 4.2광년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중력 트랙터를 통해 나선을 그리며 프록시마 센타우리를 끌며 이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전처럼 직선 경로를 따라 지구를 향할 수가 없습니다. 프록시마 센타우리의 지름은 약 214,550킬로미터인데 이 지름과 지구 까지의 거리 4.2광년, 즉 약 39,924,282,594,290킬로미터의 높이를 가진 원통을 피치가 0.1미터인 나선 모양으로 이동할 때 전체 이동 거리는 약 92,233,720,368,547킬로미터로 직선으로 올 때 이동한 4.2광년의 두 배보다 더 먼 약 9.75광년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번에도 올 때와 마찬가지로 빛의 속도에 도달하지 못하지만 아광속으로 이동할 작정이기 때문에 거리가 조금 늘어났지만 우주선에서 보낼 시간은 14.33시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아광속으로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 직선 이동 하는데 걸린 대략 여섯 시간, 그리고 중력 트랙터 효과를 위해 나선 운동을 하며 아광속으로 이동하는데 대략 열 네 시간이 걸렸으니 총 스무 시간을 조금 넘긴 시간이면 지구까지 별을 따 올 수 있습니다.
지구에서 관측할 때 우주선이 출발한 뒤 4.2년이 지나자 프록시마 센타우리가 지구에 가까워지기 시작하며 이로부터 다시 9.75년이 지나면 프록시마 센타우리가 지구 궤도로 이동해 온 모습을 관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프록시마 센타우리는 지름이 107,280킬로미터로 지구 지름의 8.6배에 달하며 이는 달 지름의 30배에 해당합니다. 이 별을 달 궤도에 띄워 놓는다면 달보다 30배 크게 보이게 되는데 이 정도면 밤하늘 대부분을 덮는 수준일 뿐 아니라 태양과 지구 사이에 놓인다면 태양을 가려 지구 생태계에 아주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먼저 강한 중력으로 달 궤도를 완전히 망가뜨려 바다에는 더 이상 파도가 치지 않을 겁니다. 또한 중력으로 인해 지구 대기를 우주로 빨아 올려 지구에는 더 이상 대기가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대기가 존재하지 않는 지구 환경은 달이나 화상 표면과 같이 사막화 되며 지금까지 대기권과 지구 자기장에 의해 지표에 도달하지 않던 태양풍으로 인한 방사선, 자잘한 운석이 지표면에 도달해 지표면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양이 됩니다. 아. 잠깐 깜빡 했는데 아까 대기권이 사라지면서 지표면에 거주하는 생명이 호흡하는데 필요한 공기, 그리고 탄소 기반 생명체가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물이 모두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 버렸기 때문에 지구에는 더 이상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혹독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바퀴벌레가 이런 환경에서 만약 살아남을 수 있다면 현대와 마찬가지로 지구 최고의 생명체는 바퀴벌레가 될 겁니다.
하지만 이런 미래를 예상할 수 있다면 굳이 별을 한번에 태양계 안까지 가져가는 대신 태양계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수도 있는 오르트 구름 밖에서 일단 별의 지구를 향한 이동을 일시적으로 멈춘 다음 별을 상대에게 건넬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 지구를 향해 이동해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고 태양계 전체에 비가역적인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 노총각 관점에서는 하루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지만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는 이미 대략 14년이 흐른 다음이므로 미리 지구에 도착해 상황을 파악한 다음 오르트 구름으로 돌아와 별을 마저 지구를 향해 이동 시킬지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별을 지구까지 바로 이동 시켜 거대한 문제를 일으키는 대신 별을 따기 위한 대장정을 시작하기 전으로부터 약 14년이 흐른 지구로 이동해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해 보기로 합니다.
그런데 노총각이 다시 지구에 도착해 회사에 출근해 보니 뭔가 이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노총각은 고작 만 하루가 조금 안 되는 시간에 걸쳐 각각 4.2광년과 9.75광년을 이동했을 뿐이었지만 지구에는 약 14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별이라도 따다 줄 수 있을 마음이 들게 만들었던 그 직원은 세월과 함께 나이가 들어 이제 노총각 자기 자신과 거의 같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생각이 달라집니다. 이전에는 지난 약 스무 시간에 걸쳐 경험한 거대한 도전이라도 불사하게 만들 것만 같았던 직원의 모습은 이제 지난 14년 동안의 여러 경험을 통해 더 성숙했지만 노총각 눈에는 그저 나이 든 상대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갑자기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며 별을 따 온 자신이 한심해 집니다. 고작 도시락을 만드는 대신 별을 따와 고백하려 했고 대상은 여전히 그대로 있지만 노총각의 마음은 완전히 식어 버렸습니다. 노총각은 별을 따 왔고 그 별이 지금 오르트 구름 바깥에 있다는 사실을 숨긴 채 상대의 눈을 피하며 회사를 나섭니다.
아니 잠깐. 회사를 나서기 위해 유리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에 손을 가져가던 노총각의 눈에 몇 달 전에 새로 입사한 학교를 갓 졸업한 것 같은 새로운 직원이 눈에 띕니다. 아. 이 별은 이제 이전보다 열 네 살이나 더 나이 든 그 직원을 위한 것이 아니었던 겁니다. 이 별은 처음부터 바로 저 새 직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20여 시간 전, 아니 14년 전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겁니다. 이번에는 술을 마시지도 않을 것이고 또 미리 고백해 도시락과 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을 맞지도 않을 겁니다. 그저 오르트 구름 밖에 있는 별을 가져와 맨정신으로 한 번에 고백해 자신을 위해 정말로 별을 따 올 수 있는 사람이 여기 있음을 평생에 걸친 열정을 한 번에 쏟아 새로운 상대의 마음을 가져올 겁니다. 노총각은 다시 우주선에 타고 이전과 같이 편리한 아광속으로 새로운 자리에 있는 프록시마 센타우리로 이동합니다.
노총각은 별을 따 와 태양계 바깥에 준비해 놓았지만 이 별을 여기까지 이동 시키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지구까지 남은 거리를 이동 시켰다가는 태양계 뿐 아니라 지구 생태계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미 지구는 이렇게 가까이 다가온 새로운 별의 존재에 영향을 받아 이전보다 기온이 상승하고 밤이 이전보다 훨씬 밝아진 환경의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아직 까지 생태계에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고 있지만 별이 지구에 가까워진다면 생태계에 극적인 변화를 일으켜 기껏 별을 따 온 다음에야 찾은 새로운 사랑을 없애 버릴 지도 모릅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노총각은 별을 작게 만들어 반지 위에 매달린 다이아몬드처럼 만들어 고백하기로 결정합니다. 반지 위에서 빛나는 적색거성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그 어떤 보석보다도 더 찬란하고 아름답게 빛날 겁니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 가정을 해 왔습니다. 아광속으로 이동할 수 있었고 훨씬 적은 피치의 나선운동 만으로 중력 트랙터 효과를 일으켜 프록시마 센타우리를 태양계 바깥까지 이동 시켜 왔습니다. 그런데 별을 작게 만드는 일은 지금까지 해 온 여러 가지 가정만으로는 실현하기 어려운 또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별에 엄청난 열과 압력을 가할 방법을 찾아야 하겠지만 이곳으로부터 태양은 멀리 떨어져 있고 또 함부로 별을 태양 근처로 가져갔다가 태양계와 지구 환경에 비가역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갖은 생각 끝에 노총각은 우주선이 별 궤도를 돌며 별이 적색거성 단계에서 더 나이 들도록 만들 방법을 찾아냅니다. 현재 프록시마 센타우리는 태어난 지 약 48억 5천만년 정도가 흘러 적색거성이 된 상태입니다. 별 주변 궤도를 아광속으로 돌기 시작하자 광속에 의한 시간 팽창을 통해 별은 수소 핵융합을 마치고 헬륨 핵융합을 시작해 헬륨 섬광을 발하며 점점 차가워집니다.
아.. 잠깐. 프록시마 센타우리의 질량은 약 2.428 × 10^29킬로그램으로 태양 질량의 약 12%에 해당하는데 이 정도 질량을 가진 천체가 축소되어 빛조차 더 이상 탈출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는, 즉 사실상 블랙홀이 되는 크기인 슈바르트실츠 반지름은 360.7미터입니다. 즉 프록시마 센타우리를 따다 주기 위해 반지 위에 올릴 수 있는 크기인 센티미터 단위까지 축소하면 그 질량에 의해 지름이 약 360.7미터가 될 때 프록시마 센타우리는 블랙홀이 되어 더 이상 백색왜성의 모습이 아니게 될 수 있습니다. 이전 까지는 블랙홀이 모든 물질을 빨아들여 관측되지 않는 검은 원으로 관측될 거라고 예상했지만 이제 우리들은 블랙홀의 회전으로 인해 주변에 빛나는 고리 모양이 생기고 이들과 블랙홀이 서로 빛을 주고 받아 흥미로운 모양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겁니다. 어쩌면 백색왜성 모양으로 빛나는 반지보다 블랙홀이 빛나는 반지가 훨씬 더 아름다울 수도 있습니다. 다만 반지 모양으로 만들어 건네며 청혼 하기 전에 슈바르트실츠 반지름 미만으로 줄어든 한때 프록시마 센타우리라는 이름을 가졌던 천체는 이제 블랙홀로 변해 그 주변의 모든 것, 가령 이 별을 따 온 노총각, 그리고 우주선을 빨아들여 오르트 구름 주변에는 오직 블랙홀만이 남게 됩니다. 태양계 바깥에 예상치 못하게 블랙홀이 생겼지만 지구로부터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어 지구 생태계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 채 지구에 남은 이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상관하지 않고 각자의 삶을 계속합니다.
잠시 시간을 내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도시락을 만들 수는 없지만 별을 따다 줄 수는 있다는 한 노총각의 말이 가진 의미를 비전문가 입장에서 살펴봤습니다. 이 계획에는 아주 큰 돈과 기술적, 그리고 과학적인 도전이 필요하며 일반상대성이론이 예측한 여러 가지 한계에도 도전해야 합니다. 또한 이 계획을 마무리할 때 실질적으로 결과를 상대에게 건네기 위한 마지막 단계에서 별의 질량으로 인해 블랙홀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노총각은 도시락을 만드는데 비해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코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는 과학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블랙홀을 품은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어 청혼하는 대신 차근차근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진심에 의한 정성을 담은 도시락을 만들어 조금씩 마음을 열어 가도록 만드는 선택을 하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지만 반면 지구를 떠나 상대가 이 노총각 없는 세계에서 행복한 일생을 보내도록 하는 자기 희생 적인 배려를 하는 것 역시 올바른 결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