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는 제 머리를 아름다운 별로 만들겠습니다
근미래에 찾아올 어쩔 수 없는 헤어스타일 변화를 미리 준비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과학을 아주 조금 가미한 헛소리에 사이언스 픽션 태그를 달아 공유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태그를 붙이는 행동이 정말 사이언스 픽션에 진지하게 임하시는 분들께 결코 좋은 의미를 가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만 글 내용도 헛소리이고 그 글에 태그를 붙이는 행동 역시 헛소리에 가깝다는 점을 생각하면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일관성 있는 행동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지난번에는 제 장래 희망을 주제로 한 장래 희망은 품질 좋은 석유입니다라는 이야기를 공유했는데 당연하게도 제 장래 희망은 이것 하나 뿐만이 아닙니다. 지난번에 소개한 이 장래 희망은 좀 더 먼 미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너무 먼 이야기로 느껴질 수도 있어 이번에는 좀 더 가까운 미래의 장래 희망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탈모는 유전된다고 알려져 있는데 종종 심한 스트레스에 의한 탈모가 생길 수도 있다고 합니다. 가령 지난 유년기의 끝에서 잠깐 소개했던 한 프로젝트의 PD님은 임금체불이 시작되고 이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그때까지 없던 원형탈모가 시작되어 한동안 고생하신 적이 있습니다. 게다가 일단 탈모가 시작되면 스트레스의 원인을 해결하더라도 몸은 원래대로 회복되지 않아 변한 외형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 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전 직장의 상사님도 원래 가족 전체에 탈모인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전부터 업무 스트레스가 극심해 탈모가 시작됐고 지금은 이를 멈출 수 없게 됐을 뿐 아니라 가장 최근의 직장에서 겪은 사건과 관련해 또 다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덕분에 탈모가 이전보다 심해져 사무실에서 실수로 이 관련 이야기를 하면 큰 댓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가령 별 생각 없이 스팀에서 히트맨 3을 할인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나눌 때 뒤통수에 꽂히는 강렬한 눈빛을 애써 무시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스트레스성 탈모를 겪는 분과 함께 일할 때 좋은 점이 있는데 각자가 사회생활을 하느라 스트레스를 직접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아침에 출근해 서로 인사를 나눌 때 상대보다 고개를 덜 숙인 다음 시선을 앞으로 하면 상대가 어느 정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이전에 관리자 역할을 훨씬 서투르게 하던 시절에는 팀에 도달하는 모든 스트레스 요소를 혼자 다 받느라 나가 떨어져 결국 팀에 큰 피해를 준 적이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는 모든 스트레스를 혼자 감당하면 오히려 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혼자 온 세상의 스트레스를 짊어진 나머지 탈모를 겪기 시작하면 이는 말하지 않아도 외형에 나타나기 때문에 면담을 통해 스트레스의 원인을 대략 파악한 다음 가능하다면 이 요소를 줄이는데 기여할 여지가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기 때문에 이 방법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지만 이 방법을 사용할 수 있는 상대에게 이를 사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저는 다행히 아직 까지는 탈모가 일어날 정도로 강력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없는 모양입니다. 물론 일하며 스트레스를 받기는 하지만 이 스트레스가 바로 머리카락으로 전달되어 이들이 머리통에서 분리되어 사방으로 흩날리는 형태로 영향을 끼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것은 아니어서 어릴 때는 사람이 공격적으로 변하거나 처리한 업무의 퀄리티가 떨어지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아직 까지 다른 분들이 겪었을 강력한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은 것 같고 이제는 어느 정도 그런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개인적인 방법을 익힌 것도 같아 이로 인한 심각한 탈모를 걱정하지는 않고 있지만 저 역시 언젠가 그런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언젠가 제가 그런 스트레스 상황에 처하면 다른 분들과 인사할 때 이전까지 그래 온 것처럼 다른 사람보다 고개를 덜 숙여 다른 사람이 제 머리통을 보고 제 상태를 파악하기 어렵게 할 작정입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탈모는 유전된다는 사실과 이런 유전적 특징이 제 일가 친척들에게 나타나고 있음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젊을 때는 그렇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눈썹부터 위쪽으로 머리카락이 처음으로 시작되는 위치 사이의 거리가 서서히 멀어져 가는 현상은 지금까지 이야기한 스트레스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태어나서 겨울을 여러 번 보냄에 따라 - 요즘 플레이 중인 어쎄신크리드 발할라에 나오는 표현 - 유전적인 영향 때문에 눈썹과 머리카락이 시작되는 위치 사이의 거리가 멀어져 가는 자연적인 섭리를 거스를 수 없었습니다. 이 현상은 아주 천천히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잘 느끼지 못했지만 어느 날 머리를 감은 다음 머리카락을 말리려고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다음 거울을 보니 대형 오피스 빌딩을 지어도 될 정도로 광활한 이마가 나타났고 건축 허가를 받을 수 없으리라는 사실에 안타까웠지만 건물을 올리지도 못할 거라면 광활한 이마는 단지 더 많은 겨울을 보낸 결과라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머리를 자르던 미용사님이 ‘아이구 이제 이마가 좀 넓어지셨네요’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화장실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이 사실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지만 사회적으로는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사실을 절감합니다.
이제 생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저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미래를 생각할 때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이미 저는 이 상황이 지속될 때 제 행동 계획을 이미 세워 놨고 적당한 시점이 되면 이를 실행할 작정입니다. 일단 저는 눈썹과 머리카락 사이의 거리가 임계점을 돌파하면 미련 없이 머리카락을 모두 밀고 홍석천님 스타일을 선택할 작정입니다. 흔히 바코드라고 부르는 헤어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서히 사라져 가는 신체의 일부를 안타까워하며 맞이할 수밖에 없는 다음 겨울에 대항해 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은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을 뿐 사회를 속일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인사할 때 고개를 덜 숙이는 전략은 어쩌면 한동안은 의미 있을 수 있겠지만 미래로 갈수록 플린 효과에 의해 사람들의 키가 더 커진 나머지 인사 대신 고개를 빳빳하게 들어도 상대가 제 스트레스 상태를 파악하기를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임계점을 돌파하는 순간 남은 머리카락을 모두 밀고 비록 두상이 그런 스타일에 어울리지는 않지만 사회적으로 이 모양에 익숙해지는 선택을 할 작정입니다.
하지만 그저 스타일을 선택해 눈썹과 머리카락이 시작되는 곳 사이의 거리를 무한대로 만들더라도 저를 둘러싼 사회가 이런 모양에 익숙해지도록 만들 수는 있겠지만 뭔가 이것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기왕 이런 머리 모양을 선택한 김에 이 머리 모양으로 뭔가 더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고 한 가지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가능한지 아직 확인하기 전이기는 하지만 만약 가능하다면 그렇게 눈썹 위로 생긴 무한대의 공간에 문신을 할 겁니다. 문신 모양은 바로 밤하늘의 별자리입니다. 북반구 하늘의 적당한 별자리를 머리에 문신으로 새겨 두면 저는 제 머리통의 도움을 받을 수 없지만 제 머리통을 보는 북반구에 사는 사람들은 밤하늘의 별자리 위치를 파악할 수 있고 지금 하늘에 떠 있는 저 별이 무엇인지, 또 저 별자리는 어디에 있는지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북극성을 찾은 다음 이를 기준으로 다른 별자리를 찾는 규칙을 기억하고 있다면 굳이 제 머리통에 새긴 별자리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겠지만 현대 도시의 광공해는 그렇잖아도 아주 밝지는 않은 북극성을 점점 더 찾기 어렵게 만들고 또 현대의 GPS 시스템은 굳이 하늘을 쳐다보지 않아도 위치와 방향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줍니다. 하지만 지난 점진적 닭갈비 디자인에서 스타워크 앱의 도움을 받아 별자리를 찾는 대신 이제 저와 함께 있는 사람들은 제 머리통을 보고서도 별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머리통에 별자리를 새기는 행동은 의외로 이미 이와 비슷한 사례를 럭셔리 차량의 옵션에서 찾을 수 있는데 롤스로이스를 커스텀 주문할 때 차내 천장에 원하는 위치에서 올려다 본 별자리를 별도로 설정할 수 있습니다. 기본값은 롤스로이스 옥스포드 공장에서 올려다 보이는 별자리이지만 원하면 세계의 어느 지역, 어느 계절에 올려다 보이는 별자리라도 주문할 수 있으며 주문에 따라 적어도 두 사람이 며칠에 걸친 노동으로 이 별 위치에 맞춰 LED 하나하나를 직접 설치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별자리는 지켜보고 있으면 별똥별이 지나가기도 하는 등 차 안의 분위기를 아주 환상적으로 만들어준다고 하는데 사실 영상이나 사진으로만 봤고 실제로 본 적은 없어 그 정도 느낌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자동차 안에서 올려다 본 천장이 그저 시커먼 철판이 아니라 그런 아름다운 별자리 모양으로 빛나고 있다면 그건 분명 대단한 경험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롤스로이스의 사례를 참고해 눈섭 위로 펼쳐진 무한의 공간에 제가 원하는 위치와 원하는 계절에 올려다 보이는 밤하늘의 별자리를 수놓는다면 그 역시 분명 롤스로이스를 통해 별자리에 둘러싸히는 경험 이상으로 천구를 그 바깥에서 바라볼 수 있는 보다 초월적인 경험을 줄 수 있으리라 자신합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생각하고 이를 이야기하자 정작 별이 보여야 할 어둠 속에서는 머리통에 새긴 별자리가 잘 보이지 않을 거라는 의견을 들었고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어떻게 하면 어둠 속에서도 별자리가 잘 보일 수 있을지 고민해봤습니다. 롤스로이스는 자동차의 전력을 이용해 LED에 불을 밝힐 수 있지만 제가 생산하는 미약한 생체전류로는 신경 사이의 신호 전달 이상의 용도로 사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체에 거의 무해할 정도의 방사능을 내는 반감기가 꽤 긴 물질을 사용해 별자리를 새긴다면 어둠 속에서도 은은하게 빛을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야광 문신이 되는 셈인데 밤중에 머리통을 바라보면 은은한 빛을 내는 별자리가 보이고 이를 바탕으로 야간 시력에 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별자리를 찾는데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아쉽게도 영화관처럼 별을 볼 목적이 아니지만 어두운 장소에서는 내 뒤에 있는 관객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는데 이럴 때는 어쩔 수 없이 관객들의 피해를 없애기 위해 모자를 써야만 할 것 같은데 이 점은 좀 아쉽습니다. 하지만 모자를 쓰지 않으면 제 뒤에 앉은 관객이 영화 대신 은은한 빛을 내는 제 머리통의 아름다운 별자리에 마음을 빼앗길테니 그 관객의 티켓 값을 물어 주지 않으려면 이 아름다움을 숨길 수밖에 없습니다.
자. 이제 밤에 은은한 빛을 내는 북반구 별자리를 새긴 채 별을 관찰하러 가면 저는 나침반을 챙기면 되고 제 일행은 이를 참고하기만 하면 됩니다. 적당한 위치에 도착하면 저는 나침반을 보고 북쪽에 맞춰 자리에 앉으면 준비는 끝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제 머리통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별자리를 보고 같은 방향의 하늘에서 별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시나리오는 대체로 이상적이지만 저에게는 개인적인 문제가 있는데 저는 항상 정확한 방향으로 앉아 있어야만 하고 또 웬만하면 움직여서도 안되는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 만약 제가 다른 방향으로 앉아 머리통과 하늘 사이의 별자리 정렬이 틀어지면 누군가 “거 아저씨. 북쪽으로 맞춰서 좀 앉아 봐요.”라고 말할 지도 모릅니다. 저 자신은 별자리를 마음껏 구경할 수 없어 좀 아쉽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니 별자리를 보고 싶으면 나중에 저 혼자 따로 오기로 하고 일행이 있을 때는 그들을 위해 북쪽 방향을 보고 가만 앉아 있기로 합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생각해 보니 이 시나리오는 오직 북반구에 있을 때만 유효한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지구는 인구 대부분이 북반구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분명 남반구에 사는 사람들도 있고 또 저 자신이 남반구에 갈 일이 전혀 없지도 않을 수 있습니다. 북반구 기준의 별자리를 머리에 영구적으로 그린 채로는 남반구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을 뿐 아니라 남반구에 사는 사람들을 부정한다는 이유로 주요 국가에 입국이 거부되는 낭패를 겪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조금 고통스럽겠지만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는데 서로 다른 색상으로 별자리를 두 벌 새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반감기가 긴 방사성 동위원소 중 서로 다른 색깔의 빛을 내는 물질 두 가지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북반구 별자리는 적색으로, 남반구 별자리는 청색으로 새긴 다음 서로 다른 별자리가 필요할 때 청색 및 적색 반투명 모자를 쓰면 필요한 별자리만 필터링 해서 볼 수 있으니 지구에서는 어딜 가든 쓸모가 있을 테고 남반구 국가에 입국하려고 할 때 심사관이 북반구 별자리를 보고 입국을 거부하려는 순간 적색 모자를 꺼내 써 남반구 별자리만 남기면 감격에 겨워 입국을 허가해 줄지도 모흡니다.
지금도 하루하루 제 머리카락은 눈썹으로부터 멀어지고 있고 언젠가 그 거리가 임계점을 돌파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 순간이 오면 남은 머리카락에 미련을 두지 않고 홍석천님 스타일로 깨끗하게 밀어 버린 다음 그 자리에 마치 롤스로이스 천장처럼 아름다운 별자리를 새길 겁니다. 별자리는 그 자체로도 아름다울 뿐 아니라 제가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으면 이를 본 주변 사람들이 하늘의 별자리를 찾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귀찮게 북극성을 찾거나 성도를 준비하거나 성도를 표시하는 앱을 사용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댓가로 저 자신은 하늘의 별을 편안하게 관측하거나 제 머리에 새긴 별자리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이 정도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저는 항상 방위를 알 수 있도록 나침반을 가지고 다녀야 하는데 아이폰에 GPS를 기반으로 한 나침반 기능이 있으니 이를 활용하면 될 겁니다. 정해진 미래를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여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방법을 실행할 작정입니다.
다만 한 가지 걱정거리가 남아 있습니다. 만약 그 상태에서 드문드문 머리카락이 난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끔찍하니 그건 나중에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