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은 전염된다
어떤 부정적인 감정은 전염 또는 전파됩니다. 이를 의도하지 않았다면 통제하는 것도 한 가지 대응 방법입니다.
더 어릴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예민하고 훨씬 더 짜증이 많은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 스스로는 잘 느낄 수 없었지만 오랫동안 저를 봐 온 분들의 말씀에 의하면 확실히 그래 보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 분들은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저를 떠나지 않은 것일까요. 잠시 그렇게 짜증이 많은 사람을 옆에 오랫동안 두고 있을 리가 없으니 이런 주변의 평가는 근거 없는 중상 모략이다! 라고 소리치려다가 문득 이 분들께 엎드려 큰 절을 하고 앞으로 평생에 걸쳐 이 분들이 오랫동안 감내해 주신 제 예민함과 짜증으로 인한 상처를 갚아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한때는 지금보다 훨씬 예민한 채로 살았던 것 같은데 최근에 쓴 글 중에서 그런 사례를 찾아보면 10년의 밤과 미움 받을 용기 없음이 있습니다. 전자는 오래 전에 어느 커다란 MMO 게임 프로젝트에 있을 때 지금 당장 더 효율적으로 일할 방법이 있고 또 다른 부서의 오랜 작업을 기다릴 필요 없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조금이라도 더 런칭에 다가가야 한다고 사람들을 다그치곤 했는데 결국 이로써 바뀌는 것은 없었습니다. 프로젝트는 런칭에 단 한 발자국도 가까워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람들은 저를 싫어하게 됐고 이 때 생긴 선입견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제 평가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생각해보면 아주 많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 단 한 사람의 생각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그 생각으로부터 시작한 설명과 설득이 필요하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더 적당한 때를 기다리며 조용히 인내하고 있는 것 역시 올바른 선택이라는 점을 아주 비싼 댓가를 치르며 아주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결과가 약간 뒤틀려 현실의 저에게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바로 후자인데 지금 당장 제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겠지만 그게 미션 크리티컬하지 않다면 지금 당장 개입해 화를 내거나 상대를 좌절 시키며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팀이나 프로젝트, 그리고 회사가 이를 견딜 체력이 충분하다면 적당히 뒤로 물러나 문제가 일어나도록 그냥 두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하는 편이 오히려 나을 수 있습니다. 특히 주니어님들과 일할 때 미션 크리티컬한 주제라면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관리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주제라면 미리 나서서 관리하기 보다는 적당히 문제가 일어나도록 놔둔 다음 미리 예상했기에 부드럽게 문제를 해결하고 문제를 통해 배우도록 하는 편이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 더 잘 배울 수 있고 또 제 입장에서도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덜 받으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관리자 역할을 하는 순간부터 미움 받지 않을 방법이 없음을 알고 있지만요.
더 어릴 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의 행동 사이에 아주 조금 차이가 생긴 이유는 아마도 크게 두 가지일 것 같습니다. 하나는 말 그대로 나이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나이를 먹으며 나름 생각도 하고 또 이런 저런 일을 겪고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이를 눈치 채기도 하고 눈치 채지 못하기도 하면서 여러 변화를 겪는 과정에서 아주 서서히 이전보다는 주변을 좀 더 많이 돌아보게 된 것 같습니다. 굳이 시니컬하게 표현하면 주변 눈치를 좀 더 많이 보게 됐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한동안 겪던 불면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적극적인 대응을 시작했기 때문일 것 같은데 이 불면에 대한 주제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헌데 불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제게 주의력 관련 문제가 있다는 것, 그리고 불면은 표면적인 증상이고 이를 만들어내는 좀 더 근본적인 신경전달물질 체계에 아주 조금 오류가 있다는 것 등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이전과 달리 훨씬 덜 예민하게 행동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어느 날 회사에서 회의실에서 저에게 마구 짜증을 내는 분을 상대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어린 저 같았으면 제 방식의 표현에 따르면 ‘엉덩이 한쪽을 물어 뜯어’ 버렸을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평생 남은 나머지 한쪽 엉덩이를 볼 때마다 나를 떠올리며 다시는 내게 그렇게 굴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종종 무례하게 구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행동하곤 했는데 효과는 확실했고 또 함께 일하는 다른 사람들을 보호할 수는 있었지만 제가 감내해야 하는 신체적 정신적 댓가가 컸습니다. 그런데 좀 더 나이가 들고 또 머릿속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해 시간이 흐른 다음의 저는 약간 앞으로 날아드는 주먹을 몸을 이리 저리 능글맞게 비틀며 피하는 것 같이 행동하다가 문득 ‘아이구 우진님. 지금 어려운 말 너무 많이 했어. 비싼 밥 먹고 왜 이렇게 화를 내고 그래요.’라고 말해버렸는데 문득 짜증으로 일그러져 있던 상대가 갑자기 웃참실패 상태가 되어 한번에 무너져버렸고 결국 그 분은 양쪽 엉덩이를 온전히 보전하면서도 서로를 보호하며 임무를 수행하게 됐습니다. 이날 이후 ‘조금은 변한 걸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한편 1년 전 일론님의 방해를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아무말 환경을 찾다가 마스토돈을 시작하게 됐는데 기존 트위터가 좀 더 다양한 사람들 - 그나마 트위터 사용자라는 편향이 있지만 - 이 사용하던데 비해 마스토돈을 포함한 액티비티펍 네트워크는 훨씬 더 강하게 편향된 사용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분들 중에는 마치 과거의 저처럼 사방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에 아주 조금 공격적인 의견을 내기를 반복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이 분의 느낌을 더 짧게 표현하면 온갖 일에 하루 종일 짜증을 내고 있는 상태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종종 여러 아무말을 읽고 싶어서 약간 거슬리는 점이 있는 분들도 타임라인에 두곤 합니다. 종종 거슬릴 때가 있지만 그건 그분들의 아무말을 타임라인에 두는 댓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그 분의 새로운 아무말에 섞인 짜증을 받아들이다가 제 스스로도 약간 짜증이 나는 감정이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표현을 쓰는 것이 올바른지 모르겠지만 약간 짜증이 ‘전염’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날 쓴 아무말들을 살펴보니 저 역시 아무말 하나하나에 짜증을 조금씩 섞어 내뱉고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했습니다. 여러 아무말을 읽기 위한 댓가를 지금처럼 지불하며 그에 따른 짜증의 전염을 감내할지, 아니면 제 스스로 짜증이 섞인 아무말을 해 이 짜증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염 시킬 위험을 줄일지를요. 이 주제로 한참을 생각하다가 댓가는 댓가이지만 타임라인의 아무말 다양성을 줄이는 댓가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짜증이 전염되지 않도록 이 분을 타임라인에서 제외하기로 했습니다.
이 결정이 옳았을까요. 여전히 액티비티펍 네트워크의 심하게 편향된 사용자들은 타임라인을 충분히 다양하게 만들어 주지 못합니다. 가끔 엑스(구 트위터)를 기웃거리며 훨씬 다양한 사람들이 하는 아무말을 보며 아무말 부족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아무말에 포함된 제 스스로에게 전염될 수 있고 또 저 자신이 전염시킬 수 있는 어떤 긍정적이지는 않은 감정이 포함되어 있다면 이를 굳이 감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감내할 필요가 없다기 보다는 오히려 위험에 제 스스로를 계속해서 노출 시킬 필요는 없지 않은가 싶습니다. 그렇게 타임라인에서 한 분을 줄이는데 여기까지 고민하다가 ‘아니 뭐 이런 걸 가지고 이렇게까지 고민하나’ 싶은 생각을 했는데 어쩌면 제 스스로는 이제 좀 덜 예민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다른 분들 사이에 섞이기에는 한참 멀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