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녹음과 주의사항

녹음은 부족한 사람의 기억을 보조할 뿐 아니라 어려운 상황을 돌파할 수도 있게 해 줍니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일상 녹음과 주의사항

2024학년도 수능이 끝나고 타임라인에는 ‘이제 갑자기 알지도 못하는 수능을 마친 분들에게 인생의 충고를 하려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 마라.’라는 글이 지나갔습니다. 사실 수능 당일 오전까지도 그날이 수능이라는 사실을 몰랐는데 저녁때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누군가 올린 수학 1번 문제를 머릿속으로 풀면서 오늘이 수능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어차피 당사자 분들이 현대 사회의 여러 변화한 환경에 맞는 그분들 스스로의 행동을 가장 잘 결정할 수 있을텐데 굳이 이야기를 보탤 이유는 전혀 없다는 점 역시 동의합니다.

그런데 그 날 밤에 또 타임라인을 훑어보다가 ‘새내기 알바러를 위한 노동 10계명’이라는 이미지를 포함한 글을 봤습니다. 새내기 알바러 뿐만 아니라 그냥 회사 다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것들이었는데 저 이미지를 인용한 글에서는 특히 녹취에 대해서 좀 더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녹취의 필요성, 요령에 대한 개인적인 접근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근본적으로 인간의 기억력은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엉망입니다. 직접 체험한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리기도 하고 어떤 상황에 잘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적당히 말이 되는 모양으로 지어낸 결과를 기억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오죽하면 이런 특징은 기억에 남은 큰 사실과 기억에 남지 않은 이들 사이의 연결을 스스로 만들어낸 다음 그 결과를 사실이라고 믿어버린 나머지 일어나는 가상의 사건에 기반한 게임이 나오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게임의 스토리텔링은 무척 인상적이어서 이제 출시 된지 오래된 게임이기는 하지만 시간이 된다면 체험해 보는 것도 꽤 괜찮은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튼 현대의 인간은 이런 스스로의 불완전한 기억에 기반해서는 아주 큰 일을 해낼 수 없음을 깨닫고 기억을 보조할 온갖 방법을 만들어냈습니다. 먼 과거에는 문자를 만들었고 시간이 흐르며 문자를 더 오래, 더 높은 밀도로 저장할 방법을 찾아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이런 보조 기억 방법이 너무나 강력해져 오히려 잊을 권리 또는 잊혀질 권리를 찾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녹취는 상황에 녹취 하는 자기 자신이 포함된 상황에서 주변에 들리는 소리, 특히 사람들의 대화를 녹음해 나중에 재생할 수 있도록 저장하고 또 보관하는 것입니다. 가령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주니어님께 회의록을 작성해 달라고 요구하면 대체로 녹음을 하려고 할텐데 사람들의 말은 한 번만 지나가고 주니어님의 상황에 대한 이해도는 아직 낮으며 딱 한 번만 지나간 대화의 맥락을 파악해 이를 빠르게 글로 기록하기는 아주 어렵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회의 도중 뭔가를 빠뜨렸더라도 이 사실 자체를 아예 파악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회의록 작성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회의록이야말로 업무의 맥락을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작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물론 회의록을 작성해 달라는 요청을 반복하며 주니어님들이 빠르게 성장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 분들은 스마트폰의 그리 훌륭하지 않은 녹음 기능을 사용해 방 안에 모인 여러 사람들의 대화를 녹음한 다음 이를 다시 들으며 회의록을 작성하는데 업무 맥락을 잘 모르는 상황이라면 대화를 다시 들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해 글로 옮기기는 여전히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녹음이 아예 없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체를 평가할 수 없게 될 테니 없는 것 보다는 있는 편이 낫습니다.

그런데 이런 녹음이 일상 생활에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보다 습관적으로 녹음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래된 동영상 찍는 기계 광고에는 한창 굉장한 사건이 일어나는 그 순간에 배터리가 방전되어 그 순간을 촬영하지 못하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반면 광고에 나오는 동영상 찍는 기계는 배터리 수명이 훨씬 길어 굉장한 사건이 일어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녹음도 이와 비슷한데 인간의 어처구니 없는 기억력을 보조하고 또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는 주요 이벤트마다 습관적으로 녹음을 해야 합니다. 어떤 중요한 자리의 대화는 녹음하고 그렇지 않은 자리는 녹음을 생략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녹음이 필요한 상황은 그런 기준에 따라 일어나지 않습니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한 자리에서 갑자기 중요하고 또 심각한 이야기가 오갈 수 있고 자칫 이를 놓쳐 손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녹음은 상황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습관적으로 해야 합니다.

한편 녹음은 반드시 상황에 자기 자신이 포함된 상황에서만 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포함되지 않은 상황을 녹음하는 행동은 도청으로 분류되며 정보통신보호 관련 법률을 위반하는 중대한 범죄 행위로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가령 스마트폰에 녹음 기능을 켜 놓은 회의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회의에는 자기 자신이 포함되어 있고 또 종종 자신이 발언하고 있으니 이 녹음은 어지간해서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잠깐 쉬는 시간에 스마트폰을 자리에 두고 화장실에 간 사이에 계속되는 대화가 녹음 되었다면 이는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상황의 녹음은 대체로 앞에서 설명한 회의의 맥락을 빨리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을 커버하는 용도 이상으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으니 어떤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이런 상황이 문제가 될 수 있음을 항상 마음에 새겨 두고 조심해야 합니다.

녹음 파일은 높은 보안 수준을 유지해야 합니다. 현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운영체제는 이전 시대에 비해 훨씬 높은 보안 수준을 제공합니다. 가령 스마트폰은 지문이나 안면 인식을 통해 잠금 상태를 해제할 수 있고 컴퓨터 역시 강력한 핀코드나 지문인식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녹음 파일이 이 파일에 접근 권한이 없을 사람에게 전달되어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별 것 아닌 회의와 결정사항이 포함된 녹음 파일이라도 그 안에 포함되지 않은 누군가에게는 회의록 상의 결정사항에는 문제를 제기할 수 없을지라도 대화 자체에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도 문자로 볼 때와 대화를 직접 들을 때에는 거대한 뉘앙스의 차이가 있고 여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의 손에 녹음 파일이 잘못 전달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절대로 컴퓨터에 패스워드 없는 상태를 방치해서는 안되며 스마트폰 역시 반드시 핀코드, 안면인식, 지문인식 같은 편안한 방법으로 보안을 유지해야 합니다. 나아가 컴퓨터용 운영체제는 반드시 스토리지를 암호화 해 물리적인 접근에도 대응해야 합니다. 녹음은 훌륭한 기억 방법이지만 이 기억을 다른 사람이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세요.

녹음을 해야 한다면 상황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인지하든 그렇지 않든 감시되는 상황에서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령 주의력이 부족한 사람의 일상 기록에서 소개한 컴퓨터 사용을 기록하는 소프트웨어는 이 소프트웨어 스스로는 단지 기록하고 결과를 표시할 뿐 아무 다른 영향도 끼치지 않지만 이 소프트웨어가 제 컴퓨터 사용을 모니터링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 스스로 알고 있는 이상 생산적인 컴퓨터 사용으로 분류되지 않는 작업을 업무 시간에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됐습니다. 또 업무 시간 중 잠깐 한눈을 팔더라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한눈 팔기를 마무리하고 다시 업무로 돌아오려는 압력을 받습니다.

이는 대화가 녹음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앞에서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만든 새내기 알바러들을 위한 노동 10계명에 언급되는 녹음이 일어나는 상황은 아마도 녹음을 하는 자기 자신에게 불리한 사건이 발생하는 상황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가 이 상황이 녹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그 스스로 의식했든 그렇지 않았든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해 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앞에서 설명한 녹음의 생활화와 함께 연습을 통해 익숙해져야 하는 부분입니다.

마지막으로 상황을 녹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를 굉장히 모욕적으로, 또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분들을 아주 조금은 경계해야 합니다. 약자 입장에서 자동차처럼 항상 전후좌우로 카메라를 켜놓고 모든 상황을 녹화하는 환경이 아닌 이상 녹음이 필요한 상황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또 유난히 취약한 상황이라면 이를 쎄함의 과학처럼 느낄 수도 있을텐데 이런 상황에 대응하는 녹음의 존재를 알게 된 상대가 이를 강하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이 분은 어쩌면 녹음 되어서는 안되는 상황이나 발언을 할 가능성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금 더 높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일어난 녹음, 거의 모든 사람들이 녹음 가능한 기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녹음에 대한 기사 등에 민감한 언행을 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런 분들에 대해서는 조금 더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녹음 또는 녹취는 일상 생활에서 상황을 기록하고 이를 복기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중립적인 관점으로 전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사회 생활에 이를 익숙하고 안전하게 활용하는 것은 중요하며 개인적으로는 이 활용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현행 법률을 위반한 심각한 범죄가 될 수 있음에 각별히 유의하고 원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파일이 전달되지 않도록 보안에 신경 써야 하며 녹음하는 행동 자체가 사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하고 또 이 주제에 유난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분들에 주의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