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로 달리는 따릉이
코비드가 세계를 재패하기 이전 시대에는 회사에 샤워시설이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집에서 출발해 동네 고개를 넘어 회사에 도착해 씻고 올라가면 몸에 에너지도 돌고 하루를 시작할 활기를 얻을 수 있었으며 낮은 체중과 강한 다리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코비드 이후에 샤워실이 없어지면서 아침에 자전거로 고개를 넘어갔다가는 땀에 뒤범벅 된 채로 하루를 보내야 할 수도 있었습니다. 더 이상 자전거로 출근하지 않게 됐습니다.
판교로 출근하던 시절에는 고개를 안 넘는다면 자전거도로를 따라 출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쪽도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똑같이 땀범벅이 되기는 했지만요. 일단 자전거도로에 진입하면 적어도 자동차와 부대낄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강남으로 출근하기 시작하면서 자전거로 출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종종 조금 이른 시각에 회사를 떠나면 강남대로로 퇴근하는 자전거들이 보일 때가 있었는데 마음속으로는 응원했지만 이 난장판인 도로에 자전거를 몰고 나갈 생각은 잘 안 들었습니다. 어쩌면 회사에 샤워 시설이 있었다면 시도해 볼 법도 했지만 샤워실 핑계를 대며, 또 강남대로를 무서워하며 여전히 자전거를 출근에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강남으로 출근하면서 거리에 따릉이를 봤습니다. 실은 한동안 따릉이를 연 단위로 결제해 긴요하게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느슨한 금요일에 서울 경계까지 따릉이로 이동한 다음 거기부터 지하철을 타는 건 꽤 괜찮은 경험입니다. 또 강남 곳곳에 퍼져 있는 지인들과 따릉이로 몇 블럭 이동해 밥을 먹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울 시내에서 따릉이 뿐 아니라 다른 자전거를 이용하는데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일단 따릉이를 타야 할 때 내가 헬멧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가 더 많았습니다. 헬멧을 쓰지 않아도 자전거를 탈 수는 있지만 스스로가 헬멧 없이 자전거 타기를 두려워합니다. 자전거는 도로로 달려야 하는데 자동차들은 자전거에게 공격적으로 행동합니다. 의도적으로 공격적으로 행동할 경우, 그리고 내 자전거를 타고 있을 경우에는 상황이 카메라에 찍히니 상품권을 발급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따릉이를 타고 있다면 대항할 방법이 없습니다.
자동차들은 종종 자전거와 함께 도로를 이용할 방법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버스전용차로 바깥으로 달리라고 안내하는 경찰관부터 우회전 할 때 자신의 오른쪽에 자전거가 존재할 수 있음을 애써 무시하는 운전자에 이르기까지 자전거가 법률에 따라 도로를 사용하는 일은 지독한 피곤함의 연속입니다. 자동차들은 종종 잘 갖춰 입은 자전거와 그렇지 않은 자전거를 강하게 차별합니다. 잘 갖춰 입고 좌회전 차선에 서 있을 때는 별 말 없던 자동차들은 종종 미니벨로를 타고 신호 대기 하고 있는 날에 유난히 경적을 울려 대거나 앞으로 밀고 나와 차선 밖으로 자전거를 밀어내려고 합니다. 이런 개짓거리들을 당하다 보면 도로에, 특히 강남처럼 복잡한 도로에 자전거를 가지고 나갈 생각을 잘 안 하게 되는데 오히려 이게 자동차들이 바라는 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따릉이는 인도로 다닙니다. 자전거는 인도로 달리면 안됩니다. 단속 되지는 않지만 인도로 달리다가 사람을 치면 끔찍한 일이 일어납니다. 적당한 개인 보험으로 자신을 보호할 수 없다면 심각한 재산상 피해를 입게 됩니다. 하지만 따릉이를 몰고 도로로 나가면 심각한 신체적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동차는 도로 위 자전거를 강하게 위협하며 자전거를 위한 도로 인프라는 존재하질 않습니다. 가끔 떠들썩하게 나오는 청계천 자전거도로는 나머지 자전거도로 네트워크와 접속되지 않아 교통수단으로써 의미가 적습니다. 자전거 그림이 그려진 자전거우선도로는 사기입니다. 자전거우선도로에서 택시에게 몸으로 밀려보면 알게 됩니다. 그런데 따릉이는 존재하고 이게 긴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들은 죽지 않기 위해 심각한 재산상의 피해를 입을 위험을 감수하고 인도로 달립니다.
어느 날 인도를 걷다가 따릉이를 보고 깜짝 놀랐을 때 할 수 있는 행동들에는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일단 쉬운 것.
- 따릉이를 향해 분노하기,
- 나를 놀라게 한 따릉이를 향해 욕하기.
어려운 것.
- 민원 넣기,
- 자전거를 위한 도로교통 인프라에 관심 갖기,
- 도로는 자전거와 함께 사용해야 함을 납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