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을 아무데서나 할 수 있는 게임과 그렇지 않은 게임 사이의 차이

인터페이스를 통해 제작을 할 수 있는 게임과 그렇지 않은 게임 사이에는 순환 메커닉에 차이가 있습니다.

제작을 아무데서나 할 수 있는 게임과 그렇지 않은 게임 사이의 차이

전에 몬스터가 장비를 드랍하지 않도록 하자!에서 현대에는 그런 사례가 거의 없어 보이지만 고대에는 종종 있던 아무 이유 없이 ‘잡템이 없는 게임을 만들겠어!’라든지 현실감 있게 ‘무기는 제작으로만 얻을 수 있게 하겠어!’라든지 또 ‘몬스터가 골드를 드랍하는 것은 이상해!’라든지 ‘장비에는 내구도가 반드시 있어야 해!’ 같은 아주 오래된 게임 플레이 경험에 기반하기는 했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요구사항을 고집한 나머지 게임의 나머지 부분과 이 요구사항이 서로 맞지 않아 이상한 게임을 완성할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요구사항은 장착한 장비가 인벤토리를 차지해야 할까요?왜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자동으로 사용할 수 있나요?에서 설명한 것처럼 스스로 그런 의사결정을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그 이유가 나중에 틀렸음이 밝혀지더라도 지금 이 시점의 정보에 기반해서는 의사결정의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미래에 게임의 각 부분이 서로 잘 맞지 않을 때 이유를 찾지 못해 이상한 게임을 만들게 됩니다.

한편 이번 마일스톤을 시작하면서 게이밍 NFT에 기반한 캐릭터들이 인게임에 살아 움직이고 우리 입장에서는 이게 너무 당연하다는 사실을 실제 동작하는 빌드로 만들어 고객들에게 증명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게임에 순환구조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게임에 시간을 투자하고 그 결과를 재화와 강함, 블록체인 상의 데이터 모양으로 얻을 근본적인 이유를 부여하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왜 인벤토리 크기를 키워야 하나요?에서 설명한 대로 고객이 게임에 투입한 자원을 게임 상에 남겨둘 수 있는 방법인 인벤토리를 제공해야 하는데 이게 이번 마일스톤의 가장 중요한 목표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인벤토리에 아이템을 보관할 수 있는 요구사항은 이 인벤토리에 의존하는 다양한 서브시스템과 연결되는 가장 근본적인 기능입니다.

인벤토리에 기반을 둔 서브시스템에는 ‘제작’이 있습니다. ‘제작’은 사실 ‘인게임 상점’ - 이하 상점, 유료 상점과 구분하기 위해 ‘인게임’이라는 접두사를 사용함 - 과 거의 비슷한 요구사항입니다. 제작과 상점 모두 ‘어떤 아이템’을 ‘다른 아이템’으로 교환하는 기능입니다. 골드로 다양한 아이템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면 상점이라고 부를 수 있고 다양한 아이템과 선택적으로 골드를 포함해 지정한 아이템 하나를 얻는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면 제작이라고 부릅니다. 겉으로는 꽤 다른 인터페이스, 꽤 다른 연출을 사용하지만 이들 둘은 사실상 똑같은 기능이라고 봐도 되며 둘을 서로 다른 담당자님께 맡겨 개발을 진행하면 결국 인터페이스는 꽤 다르지만 데이터구조는 꽤 비슷한 결과물이 만들어질 때가 많습니다.

제작 기능은 이를 확장해 ‘강화’로 만들 수도 있는데 강화 역시 근본적으로 아이템들을 서로 다른 아이템들로 바꾸는 개념인 제작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예 같은 것은 아니고 큰 두 가지 특징에 따라 제작과 강화를 구분합니다. 먼저 제작과 달리 강화는 재료 아이템에 결과로 얻게 될 아이템 자체를 요구합니다. 가령 강화된 도끼를 얻기 위해서는 강화 시스템에 강화할 도끼 자체를 재료로 사용합니다. 여기에 다른 재료 아이템과 때때로 골드를 포함해 강화를 시도하며 그 결과로 ‘강화된 도끼’를 돌려 받게 됩니다. 또 제작은 항상 예상한 결과를 돌려주지만 강화는 종종 그렇지 않습니다. 제작은 성공 확률이 항상 1로 고정되어 있거나 성공 확률을 지정하지 않지만 강화는 여러 상황에서 성공 확률이 1 미만이며 종종 성공 확률이 오히려 0에 더 가까울 때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확률에 따른 결과로 서로 다른 아이템을 돌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제작은 대부분 재료로 제공한 아이템에 따라 정해진 결과 아이템을 돌려주지만 강화는 종종 강화에 실패할 때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거나 실패한 강화에 사용된 재화를 완전히 제거해 고객을 크게 상심 시키는 대신 다른 고급 장비의 개선 혹은 강화에 활용할 수 있는 다른 아이템을 주기도 합니다. 여기서 이 ‘다른 아이템’은 고객 입장에서 원하던 결과인 ‘강화된 도끼’도 아니고 그 가치 역시 ‘강화된 도끼’보다는 부족하지만 다른 고급 성장 과정에 사용할 수 있는 재료를 받아 덜 상심하고 게임 입장에서는 인플레이션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에 이런 제작 기능이 있는 게임들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모양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게임 속 세계에 제작을 고정된 위치에서만 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MMO 게임의 문법으로 말하면 제작을 담당하는 대장장이가 마을에 있고 마을에 가야 제작할 수 있습니다. 게임 설정에 따라 대장장이는 모닥불이 되기도 하고 미래적인 아이템 생성 장치일 수도 있지만 핵심은 게임 속 세계에 지정된 장소에서만 제작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제작 기능이 인터페이스에 통합 되어 있어 게임 속 어디서나 제작을 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엄밀히 ‘모든’ 장소에서 제작을 할 수 있지는 않습니다. 상황에 따라 특수한 인스턴스 안에서는 기술적인 제약 때문에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내지 못할 수도 있는데 이런 경우를 제외하면 게임 속 장소 대부분에서 제작 인터페이스를 통해 재료만 갖추고 있다면 제작을 통해 다른 아이템을 만들 수 있습니다.

게임마다 이런 차이가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정된 장소에서만 제작할 수 있으면 고객은 플레이 중 제작에 의한 아이템이 필요할 때 플레이를 중단하고 제작 가능한 위치로 돌아와야 합니다. 가령 마을이 대표적입니다. 중단 없이 긴 인스턴스를 한 번에 플레이 하려면 제작이 자유로운 게임에 비해 미리 충분히 준비해야 하며 게임이 요구하는 성장 수준에 더 잘 부합하는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플레이 도중 총알이 떨어지거나 포션이 떨어지거나 도끼가 생각보다 약해 딜이 잘 안 들어가는 상황을 맞이하고 결국 플레이를 중단하고 마을에 돌아와야만 하는 상황을 맞이합니다.

한편 아무데서나 인터페이스를 통해 제작할 수 있으면 평소에 필드에서 피밍 해서 얻은 재료를 인벤토리에 쌓아 두고 있다가 인스턴스 플레이 도중 아이템이 떨어지면 그 자리에서 제작해 플레이를 이어 갈 수 있습니다. 이러면 플레이어는 인스턴스가 요구하는 강함에 못 미치는 상황이라도 제작 재료를 적극적으로 투입해 충분히 강하지 않은 상태를 극복하고 인스턴스를 클리어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과거에는 쿨타임이 없는 포션을 통해 요구 수준보다 낮은 강함 만으로도 인스턴스를 클리어 할 수 있게 만들었지만 현대에 가까워질 수록, 또 부분유료 모델에 가까울 수록 요구 수준보다 낮은 강함을 통한 인스턴스 클리어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게임에 따라 마을에서만 제작하게 만들면서 다른 사람의 제작 혹은 강화 과정을 구경할 수 있게 하기도 합니다. 가령 어떤 모바일 게임은 강화를 마을에 있는 모닥불 주변에서만 할 수 있게 만들었는데 내가 강화할 때 어떤 아이템을 강화하는지 주변에 보여주고 강화 성공, 실패 여부를 주변에 있는 다른 플레이어가 알 수 있게 했습니다. 그래서 모바일 게임에서 종종 채택하는 특정 레벨 이상의 강화 성공, 실패 여부를 서버 전체에 알려 특정한 감정 상태를 만들도록 유도하는 지저분한 텍스트 메시지를 보여주는 대신 그저 마을에 플레이어캐릭터를 세워 두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주변에서 일어나는 강화 시도를 구경하고 비슷한 감정 상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연출 측면에서 이 두 가지 제작 혹은 강화 방식의 차이는 고객이 게임에 접근하는 자세를 다르게 만들고 이 때 느끼는 감정을 투영하는 대상을 바꿉니다. 가령 마을에 있는 대장장이가 제작과 강화를 담당할 때 강화에 실패할 경우 고객은 강화 실패로부터 발생한 부정적인 감정을 NPC 모양으로 표현된 대장장이에게 집중할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의 원인을 NPC에게 투영해 NPC를 욕하고 비슷한 경험을 한 다른 사람들로부터 위로를 받을 여지가 있습니다. 오래된 MMO 게임에는 널리 알려진 유명한 대장장이들이 있는데 고작 마을 NPC인 주제에 이들이 게임 만큼 유명해진 이유는 고객들이 자신이 느낀 강한 성공이나 실패 감정을 이 NPC를 통해 표출하기 때문입니다. 강화 요구 횟수가 더 적지만 그 확률이 높지 않을 때 NPC는 부정적인 감정을 배설할 수 있는 역할을 합니다.

한편 인터페이스를 통해 제작과 강화를 하게 만든 게임은 약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이런 게임은 주로 강화 시도 횟수가 더 많고 강화 재료를 빠르게 소모하도록 설계합니다. 또한 실패 경험에도 불구하고 인터페이스를 통해 빠르게 같은 시도를 다시 할 수 있게 설계하는데 이 때 재료 아이템이 부족하다면 다른 고객들이 올린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는 이른바 거래소를 통해 재료 아이템을 빨리 수급한 다음 같은 시도를 반복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실패 경험은 부정적인 감정을 발생 시키지만 이를 투영할 대상이 없어 강화 행동은 오롯이 고객 스스로의 문제로 귀결되곤 합니다. 종종 중요한 강화 전에 강화 버튼을 스스로 누르는 대신 다른 사람이 누르게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실패할 때 느낄 부정적인 감정을 투영할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대장장이를 욕할 수 있었지만 직접 버튼을 터치해 실행한 강화에 실패하면 이는 오롯이 고객 자신의 잘못으로 느껴지기 쉽습니다.

대신 NPC 같은 대상 없이 고객이 직접 인터페이스를 통해 강화 하도록 설계했으면 고객이 실패에 의한 부정적인 감정을 바로 이어 재시도하는 행동을 의도할 수 있습니다. 이 재시도를 위해 게임에는 원래 시간을 들여 획득해야 할 재료 아이템을 비용을 들여 즉시 획득하도록 지원하는 거래소를 반드시 함께 제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스스로의 행동에 실패해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바로 뒤이은 재시도로 연결할 수 있고 거래소가 있어야만 바로 뒤이은 빠른 재시도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고객 관점에서 이런 설계가 긍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는데 게임 관점에서 고객이 요구하는 긍정적인 감정과 경험을 빠른 재시도를 통해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을 열어 놓는다는 측면에서 부정적으로만은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흔히들 이야기하는 사행성을 가질 여지가 없지 않으므로 이에 대한 안전장치는 필요합니다.

결론. 근본적으로 상점, 제작, 강화는 서로 상당히 비슷한 시스템입니다. 상점은 재화를 여러 아이템 중 하나로 바꿔 주는 것, 제작은 여러 아이템을 미리 정한 한 아이템으로 바꿔 주는 것, 강화는 강화를 통해 획득할 아이템 자체를 재료 중 하나로 사용하며 확률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고 다른 결과에 따라 서로 다른 아이템 집합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서로 다릅니다.

제작과 강화는 게임 내 제한된 장소에서만 할 수 있게 하거나 인터페이스를 통해 제한된 장소를 제외한 모든 장소에서 하게 만들 수 있는데 이는 단일 플레이 세션을 중간에서 실패하게 하거나 끝까지 이어 가게 만들 수 있으며 이는 현대에 부분유료 설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NPC를 통한 강화는 강화에 실패할 때 느끼는 부정적 감정을 NPC를 통해 배설하게 만들고 인터페이스를 통한 강화는 같은 상황에 느낄 부정적 감정을 여러 차례에 걸친 빠른 재시도를 통해 긍정적인 감정으로 만들 수 있는데 이 과정에 재료 아이템을 빠르게 수급할 수 있는 거래소 같은 수단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