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가 있어야 락인도 된다

자사에서 제조한 장비에서만 동작하도록 변경한 소프트웨어 실행 정책은 중장기적으로 새 고객을 락인 시킬 방법을 없앨 겁니다.

사용자가 있어야 락인도 된다

서비스는 고객들을 락인 시키기 위한 전략을 고안하고 또 고객들은 이에 대항해 한 서비스에 락인 되지 않을 방법을 찾곤 합니다. ‘락인’은 어떤 이유로든 고객이 물리적으로 서비스를 떠나지 못하게 만들어 지속적으로 수익을 내는 상태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상적으로는 경쟁사보다 고객이 더 매력을 느낄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 고객이 이전에 사용하던 서비스를 버리고 우리 서비스로 옮겨 오도록 하면 좋겠지만 다른 서비스로부터 고객을 이탈 시키는 것 만큼이나 현재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는 고객이 서비스를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한동안 여러 서비스는 고객이 서비스를 사용하며 만들어낸 데이터를 서비스 밖으로 이전할 수 있는 기능을 전혀 제공하지 않는 방법으로 고객들을 손쉽게 락인 시켜 왔습니다. 가령 가상의 기업용 위키 서비스가 있다고 해 보면 만약 이 서비스가 데이터 외부 이전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 이상 이 서비스를 사용하는 기업은 비교 우위에 있는 다른 서비스로 이전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지난 15년에 걸쳐 가상의 기업용 위키 서비스를 사용하며 제대로 파악하기조차 어려운 수많은 업무 기록이 위키에 보관 되어 있다면 이 데이터를 이전하지 않고 다른 서비스를 사용하기 시작하는 행동은 마치 회사를 폐쇄하고 모든 사람들을 해고한 다음 회사를 완전히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 만큼이나 무모한 행동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는 서비스 회사들은 고객 데이터를 안전하게 관리함과 동시에 그 데이터가 고객 스스로의 반출 요구로부터 안전하게 만들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한편 세월이 흐르며 이런 운영 형태는 세계 각국의 입법 기관으로부터 견제 받아 왔으며 주로 유럽 연합의 조치에 의해 고객이 자신의 데이터를 원할 때 서비스 밖으로 반출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야만 하는 상황이 됩니다. 서비스를 특정 지역에서 계속하려면 기능을 만들 수밖에 없었고 기왕에 만든 기능을 특정 지역에만 제공하는 행동은 다른 지역 사용자들로부터 지탄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제 여러 서비스에는 데이터를 서비스 외부로 반출할 수 있는 기능이 생겼습니다. 여전히 앞에서 예를 든 가상의 기업용 위키 서비스는 이 서비스를 장기간에 걸쳐 이용해 온 고객의 방대한 정보를 반출할 수 있는 모양으로 만드는데 기술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것 같지만 반출 서비스가 올바르게 동작하지 않을 때 지원을 요청하면 관리자가 사용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을 통해 반출 가능한 모양을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개인용 서비스로 넘어와 보면 사진 관리 서비스는 이제 사진 전체를 압축 파일로 받을 수 있게 됐고 동영상 재생 서비스는 시청 기록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이렇게 반출한 데이터는 대체로 그 데이터를 반출한 서비스를 통해 동작할 때 가장 의미 있는 모양으로 동작하지만 적어도 고객의 데이터를 아예 반출하지 못해 서비스 사용을 중단할 수 없는 상태보다는 훨씬 나아졌습니다. 또 서비스 사이의 경쟁에 따라 서로 상대 서비스로부터 반출한 데이터를 자사 서비스에 반입하는 기능을 추가해 이제 비슷한 경쟁 서비스 사이에 고객이 데이터를 이전하기가 이전에 비해서는 쉬워진 편입니다. 물론 여전히 여러 서비스에 걸쳐 이런 기능은 실제로는 매끄럽게 동작하지 않는 편이며 그럴 때마다 지원을 요청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아예 불가능해 억지로 돈을 내거나 고객이 직접 비용을 들여 자동 이전 전략을 수립하고 이전에 필요한 기술적 접근을 직접 해야 하는 상황에 비해서는 낫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는 고객이 서비스를 계속해서 사용하도록 만들기 위해 경쟁 우위를 점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경쟁사에서 제공하지 않는 다른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해 서비스를 이전할 생각을 하는 고객의 의사결정을 어렵게 만듭니다. 가령 주로 하드웨어를 판매하던 애플은 자사의 하드웨어에서 동작하는 운영체제를 하드웨어와 함께 표면적으로는 무료로 제공해 고객들이 운영체제가 제공하는 환경에 익숙해지게 만들어 비슷한 성능을 내는 다른 회사의 하드웨어로 옮기기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와 비교할 수 있는 사례에는 윈도우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제공하는 여러 하드웨어 제조사의 제품이 있는데 이들은 하드웨어가 다르지만 소프트웨어 환경이 거의 같기 때문에 한 회사의 하드웨어에서 다른 회사 하드웨어로 옮기더라도 이전에 사용하던 환경을 거의 그대로 옮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애플에 비해 윈도우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 기반한 하드웨어 제조사들은 고객들을 락인 시킬 방법이 훨씬 적거나 거의 없습니다.

한편 예전에 회사에서 지급해 준 삼성 갤럭시북은 처음 설정할 때 몇 시간에 걸쳐 각종 노티피케이션을 통해 전혀 작업을 시작할 수 없게 만들던 경험 덕분에 그냥 같은 작업에 개인 장비를 사용하기로 하고 반납해 버린 덕분에 삼성 노트 앱을 사용해본 적은 없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삼성 노트 앱은 생각보다 꽤 괜찮은 모양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삼성은 전통의 손으로 그린 그림과 손으로 쓴 글자를 입력하는 분야의 강제인 와콤을 소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 회사 기술에 기반한 태블릿 제품을 출시해 왔고 서드파티 제조사 도움 없이도 일정 수준 이상의 사용성을 만들기 위해 직접 노트 앱을 개발해 왔을 겁니다. 그런데 이전까지는 삼성 노트 앱을 삼성전자에서 제조하지 않은 하드웨어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던 모양인데 얼마 전 'Samsung Notes for Windows is shutting down for anyone not using a Galaxy Book' 이라는 기사를 보니 이제 더 이상 그러지 않을 모양입니다.

생각해보면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자사 하드웨어를 사용하는 고객들을 위해 제공하는 소프트웨어인데 이를 다른 제조사의 하드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도 제공하고 있는 상황은 썩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현대에 노트 앱은 단순히 운영체제 위에서 동작하는 단일 소프트웨어일 뿐 아니라 이 소프트웨어가 클라우드 환경을 통해 같은 사람이 사용하는 여러 장비에 걸쳐 동작하게 만들기 위한 인프라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삼성 노트 앱 역시 이 앱이 멀쩡하게 동작하도록 만들고 또 여러 하드웨어에 걸친 사용 경험을 주기 위한 인프라에 적잖은 돈을 사용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서비스를 자사 하드웨어를 사용하지도 않는 사람들도 사용해 인프라 비용을 올리고 있으니 갤럭시북이 아닌 하드웨어에서는 더 이상 삼성 노트 앱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결정은 단기적으로는 꽤 그럴싸한 결정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결정이 단기적으로만 유효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유효하지 않은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삼성 노트가 동작하는 인프라 비용을 감소 시키고 자사 하드웨어 구매자들에게 타사에 비해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함을 어필할 수 있으며 일단 갤럭시북을 선택해 사용하기 시작한 고객들이 다른 제조사의 하드웨어로 이동하려고 할 때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들 수 있는 장치 역할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중장기적으로 이 정책은 실패할 거라고 예상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이번 결정으로 삼성 노트 앱 사용자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앱과 서비스가 널리 사용되기 위해서는 이를 사용하는 두터운 사용자층이 필요합니다. 사용자가 많아야 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사용자가 많아야 문제가 생길 때 도움을 받을 가능성도 올라가며 사용자가 많아야 다양한 사용 경험이 인터넷을 통해 공유되어 사용자들이 더 높은 수준으로 앱과 서비스를 사용하며 더 큰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사용자층이 줄어들면 이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번 조치에 의해 삼성전자에서 제조하지 않은 하드웨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은 다른 노트 앱을 찾게 됩니다. 노트 앱 하나를 위해 하드웨어를 바꿀 결정을 하는 것 보다 같은 하드웨어를 사용하며 다른 노트 앱을 찾는 편이 훨씬 간단하고 쉽고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입니다. 사실 노트 앱은 경쟁이 엄청난 분야여서 활용 수준에 따라 온갖 플레이어들이 있어 이들이 제공하는 엄청나게 다양한 제품 중 하나를 선택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이렇게 삼성 노트 앱을 한번 벗어난 사용자들은 미래에 갤럭시북을 구입하더라도 삼성 노트 앱을 사용하지 않을 예정이며 이들은 삼성 노트 앱을 사용할 때 의도한 락인을 일으키지 않고 다른 제조사의 하드웨어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만약 삼성 노트 앱이 다른 제조사의 하드웨어에서도 원활하게 동작했다면 이 사용자들은 적어도 삼성 노트 앱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하드웨어로써 갤럭시북에 락인 될 가능성이라고 있었겠지만 일단 다른 노트 앱과 서비스를 선택한 순간 이런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집니다.

또 삼성전자는 분명 노트 앱만 제공하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이제 기억이 흐릿해졌지만 갤럭시북을 처음 설정할 때 나타나던 무수한 앱들, 그리고 이들이 요구한 삼성 계정을 생각하면 분명 다양한 다른 앱을 함께 제공하고 있을 텐데 다른 제조사의 하드웨어에서 유효하게 동작하던 노트 앱을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삼성 계정을 유지할 이유가 없어지고 똑같이 미래에 갤럭시북을 구입하더라도 여전히 삼성 계정을 만들 이유가 없어집니다. 덕분에 미래의 잠재 고객들에게 다른 하드웨어 제조사와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할 기회 자체를 제거하는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상황을 제목과 같은 ‘사용자가 있어야 락인도 된다’는 말로 요약하고 싶습니다. 당장 자사에서 제조하지 않은 하드웨어에서 동작하는 노트 앱에 높은 비용을 부담하고 싶지 않고 또 자사 제품에 차별화된 경험을 줘 하드웨어에 락인을 시도하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 조치를 통해 노트 앱의 사용자는 더 줄어들고 다른 제조사 제품을 사용하던 고객들은 경쟁이 심한 이 분야에서 다른 플레이어의 앱과 서비스를 선택할 것이며 미래에 이들이 갤럭시북을 구입하더라도 이들을 락인할 여지가 아예 없어지는 결과로 돌아올 거라고 예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