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벤토리 크기를 키워야 하나요?
지난 마일스톤 개발을 마무리한 빌드로 첫 홀더 테스트를 마쳤습니다 (1), 첫 홀더 테스트를 마쳤습니다 (2)를 진행한 다음 시간이 좀 지났습니다. 저희 신입 시스템디자이너 채용합니다에서도 짧게 언급했지만 우리들은 업계의 여러 곳에서 평생을 일하다가 이 곳에 왔지만 그렇게 모인 우리들의 집합은 업계에서 듣보 중의 듣보이기 때문에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뭘 만들어서 공개했는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는 전통의 시장으로부터 전혀 다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전 같으면 회사에서 주요 매체에 돈을 좀 내고 기사처럼 보이는 보도자료를 배포해 광고를 좀 할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들의 고객과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의도하는 고객 사이에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습니다.
젊은이들은 내려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마일스톤을 돌연사의 위협 속에 아주 성대하게 마무리한 다음 며칠 쉬며 소진된 기력을 회복하고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출근했습니다. 마치 이 뉴스레터와 마찬가지로 마감을 마치면 다음 마감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어서 우리들은 이제 다음 개발을 이어 나가야 하고 그러려면 다음 마일스톤 계획을 준비하고 개발팀 전체에 공유해 최대한 많은 분들의 동의를 이끌어내며 다음 마일스톤을 시작해야 합니다. 저 자신을 포함한 직급이 낮은 사람들이 개발과 짧은 서비스를 수행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는 사이에 고위 의사결정자들은 우리들의 상황과 시장 상황, 고객들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이미 다음 마일스톤 계획을 어느 정도 준비해 놓은 상태입니다. 물론 그런 다음 마일스톤 계획은 수준이 너무 높아 우리들의 실제 퍼포먼스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 로드맵을 보며 드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는 하지만 지난 마일스톤에 우리가 보인 퍼포먼스에 근거해 어느 정도 눈높이를 조절할 여지는 있을 겁니다.
한편 이번 마일스톤의 주요 목표 중에는 인게임에 인벤토리 기능을 만들어 플레이어마다 인게임에서 자원을 획득하고 자원을 모아 다른 자원이나 다른 아이템으로 바꾸도록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인벤토리를 개발한다는 의미는 이제 정말 본격적으로 플레이에 ‘시간’을 요구하는 ‘게임’을 만드는 겁니다. 정확하게는 인벤토리와 성장요소는 고객이 게임에 시간을 투입하도록 요구하는 수단입니다. 이런 기능이 없는 게임은 고객에게 어떤 플레이 경험을 줄 수 있지만 그 경험이 대단하지 않은 이상은 게임에 시간을 투입해 반복해서 플레이할 목표를 만들어 주기는 어렵습니다. 시뮬레이션 장르나 타임어택 기능이 있는 게임처럼 이런 장치 없이도 모니터 바깥의 고객 스스로가 성장하는 경우에는 인게임에 성장 기능이 없어도 고객이 게임에 시간을 투입하지만 이런 장르가 아니라면 인벤토리와 성장요소를 통해 고객이 게임에 시간을 투입하도록 인위적으로 유도해야 합니다.
인벤토리와 성장기능이 없던 이전 마일스톤의 결과물은 고객에게 어떤 장기적인 플레이 사이클을 제공하기 보다는 테크데모에 가까우며 우리들이 시장에 사기성 짙은 키워드에 기반한 제품을 개발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의미 있는 빌드를 내놓지 못하는 다른 플레이어와 비교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음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이번 소규모 빌드 공개와 공식 결과 보고(XOCIETY’s Holder Test in Review)를 통해 그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만든 빌드는 완결성을 가진 게임이라기 보다는 테크 데모에 더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이번 마일스톤에 중요한 목표는 인게임에 인벤토리를 제공해 게임에 투입한 시간을 영속성을 가지는 어떤 데이터로 바꿔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또 인벤토리에 기반한 성장요소를 우리 나름의 방법으로 투입해 고객들이 게임에 시간을 투입함에 따른 경험의 확장 가능성을 충분히 체감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마일스톤 안에 고객들이 게임에 투입한 시간에 따라 확장되는 경험을 충분히 체감할 수 있는 충분한 컨텐츠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비록 우리들이 개발에 초보는 아니지만 처음으로 이런 경험을 만들어보는 입장에서 함부로 고객들과 약속해 신뢰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개발 자체는 꽤 도전적으로 진행하지만 그 결과를 미리 말할 때는 보수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경험의 확장 가능성’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적당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위 의사결정자들이 정성을 들여 준비한 새 마일스톤 계획에는 인게임 인벤토리 기능 제공과 함께 장기적으로 인벤토리 확장 가능성을 함께 준비하기를 요구하고 있었는데 인벤토리 그 자체는 고객이 게임에 투입한 시간을 게임에 남겨 두는 기능으로써 동작하지만 인벤토리 확장은 이와는 약간 다른 관점으로 해석해야 하는데 오늘은 제목에 질문한 인벤토리를 확장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인벤토리의 가장 기초적인 용도는 게임에서 얻은 재화와 아이템을 플레이어 캐릭터 단위로 보관하는 것입니다. 이 데이터는 게임 구성에 따라 게임 안에서 인정 받는 어떤 가치로 해석할 수 있으며 이를 그냥 편하게 이야기하면 고객의 시간과 맞바꾼 가치를 보관하는 역할을 합니다. 인벤토리 운용에 따라 고객들의 플레이 스타일이 크게 드러나는데 누군가는 인벤토리에 외형 변경 아이템을 들고 다니며 그때 그때 눈에 띄는 인상적인 외형을 보여주기도 하고 누군가는 서로 다른 공격 스타일의 무기를 들고 다니며 상황에 맞는 의미 있는 전투 스타일을 보여주기도 하며 다른 누군가는 물약을 잔뜩 들고 다니며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죽지 않는 좀비 근성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고객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다른데 인벤토리는 그 가치를 보관하는기본적인 수단이고 또 우리가 만드는 게임은 그런 고객마다 달리 생각하는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여러 수단을 차츰 제공해 나가야 합니다.
인벤토리 크기는 그런 가치를 얼마나 많이 고정된 상태로 보관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인벤토리에 보관되는 아이템의 가치를 정의하는데 영향을 끼칩니다. 먼저 인벤토리 크기에 제한이 있다면 고객이 게임으로부터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우선순위가 높은 아이템을 남기고 나머지는 인벤토리 바깥으로 내보내야만 합니다. 버릴 수도 있고 상점에 내다 팔 수도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만드는 제품처럼 블록체인을 통한 아이템 거래를 허용한다면 게임 밖에서도 인벤토리 상에서 고객이 추구하는 가치의 우선순위에 높지 않은 평가를 받은 아이템이 거래되어 이 아이템이 들인 고객의 시간이 댓가를 지불 받고 다른 고객에게 이전될 수 있습니다.
만약 클래식 롤플레잉들이 종종 사용하던 아이템 하나가 인벤토리에 여러 슬롯을 차지할 경우 이 아이템을 한정된 인벤토리 공간에 유지한다는 의미는 고객 개인이 이 아이템에 큰 가치를 부여하고 또 이 아이템을 구입하는 고객 역시 이 아이템이 차지할 인벤토리 공간의 가치를 존중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현대에는 아이템 하나가 인벤토리 여러 칸을 차지하는 스타일을 잘 사용하지 않는데 가장 큰 이유는 고객에게 인벤토리를 정리하는 게임 상에 유효한 데이터 변화를 남기지 않는 행동에 시간을 사용하기를 요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이런 행동 자체가 귀찮기 때문이기도 하며 이전 시대에 비해 훨씬 다양한 카테고리의 아이템이 등장해 이들을 편안하게 정렬할 기능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아이템 하나가 인벤토리 한 칸을 차지하는 형태가 만드는 사람이나 사용하는 사람 양쪽 모두에 훨씬 편하기 때문입니다.
잠깐 아이템 하나가 인벤토리 여러 칸을 차지하는 스타일의 기원을 따라가 보면 초창기 MMO 게임에서는 가방에 아이템 아이콘이 정렬되지 않은 모양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건 실제 가방 표현과 비슷해 가방 안에서 물건을 찾으려면 마우스로 다른 아이템을 치우며 뒤적거려야 했습니다. 이 행동은 재미있기는 하지만 편리하지는 않았고 가방 속 아이템을 정리해 주는 외부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사용하는 행동이 기본이 될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가방을 뒤적이는 행동을 조금은 남기되 포션을 찾으려고 가방을 뒤적이다가 드래곤에게 맞아 죽는 억울한 상황을 줄이기 위해 인벤토리를 그리드 모양으로 만들고 별도의 포션 인벤토리를 구분하곤 했지만 가방을 뒤적이는 일종의 스큐어모피즘에 기반한 경험을 유지하기 위해 아이템 하나가 여러 칸을 차지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게임 인벤토리는 과거의 물리적인 ‘가방'으로부터 어느 정도 단절되었고 가상 세계에서 현실의 ‘가방’이 주는 경험을 굳이 반복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아이템 하나는 항상 아이템 슬롯 한 칸을 차지하는 모양으로 변경되었고 이제는 이런 모양이 기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객이 시간을 투입해 게임 인벤토리에 그 결과를 축적하다 보면 한계가 찾아옵니다. 고객은 계속해서 투입한 시간에 따른 자산을 게임에 남기고 싶어하지만 인벤토리 크기 제한은 자산을 더 이상 늘릴 수 없게 만들어 고객이 게임에 시간을 투입할 이유를 유지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경제를 순환시키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플레이어 한 명의 자산 증식에 한계가 있어 그 다음부터 투입하는 시간은 게임 내 다른 플레이어나 다른 시스템에 이전 되어 더 바람직해 보이지만 개인의 욕망에서 생각해보면 자산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상태에서 시간 투입은 의미 없는 행동입니다. 실제 세계는 일반적으로 로그아웃이 어려우므로 이런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시간을 투입하며 살아갈 수 있지만 게임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지속적으로 게임에 시간을 투입해 게임에 유의미한 데이터를 남기기를 원하는 고객을 위해 인벤토리 크기를 늘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인벤토리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늘릴 수 있는데 하나는 플레이어가 인게임 어디에 있든 즉시 접근할 수 있는 인벤토리와 소위 창고라고 부르는 제한된 상태에 있을 때 접근할 수 있는 인벤토리입니다. 전자는 주로 게임 플레이에 직접적으로 사용할 아이템을 보관하고 후자는 지금까지 설명한 ‘의미 있는 데이터’에 가까운 아이템을 보관하다가 때에 따라 여러 방식으로 다른 플레이어에게 시간이 아이템 단위로 이전될 가능성이 있는 아이템을 보관합니다.
언제나 접근할 수 있는 인벤토리를 확장하면 고객은 인벤토리가 가득 찰 때마다 이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플레이를 중단하고 주로 마을로 돌아가 인벤토리를 정리하는 행동을 반복해야 합니다. 이 때 이 인벤토리 크기가 커지면 마을로 돌아오는 행동을 더 낮은 빈도로 할 수 있어 탐험 능력을 올리고 경험의 난이도를 올릴 계기를 제공하게 됩니다. 한편 소위 창고라고 부르는 제한된 상태에서만 접근할 수 있는 인벤토리를 확장하면 플레이어 한 명이 게임 상에 더 많은 자산을 보유할 수 있어 고객이 자신이 시간을 투입해 이룩한 결과를 데이터 모양으로 유지하고 자산에 의한 애착을 가지고 앞으로도 시간을 투입하기를 계속하거나 다른 고객들을 도와줄 이유를 만들어 줍니다.
정리하면 이번 마일스톤에 개발할 인벤토리는 고객이 게임에 시간을 투입할 이유를 만들어 주는 가장 근본적인 장치입니다. 인벤토리는 과거에 스큐어모피즘에 기반한 덜 정돈된 형태에서 현대의 정돈된 형태로 변화해 왔습니다. 인벤토리에는 아무 때나 접근할 수 있는 가방에 비교할 수 있는 인벤토리와 제한된 상태일 때만 접근할 수 있는 창고에 비교할 수 있는 인벤토리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인게임 경험 난이도를 올릴 계기가 되며 후자는 일종의 자산처럼 동작해 게임에 지속적으로 시간을 투입할 의욕을 만들고 또 다른 플레이어에게 시간을 자산 모양으로 이전 시킬 가능성을 만들어 줍니다. 인벤토리 확장 기능을 설계할 때 이런 의미와 목적을 이해하고 있으면 어느 인벤토리가 어떤 조건에 의해 확장되어야 할 지 결정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