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경제를 외부에 공개할 이유가 무엇인가
일년 반 넘게 고민해봤지만 여전히 게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인게임 경제를 블록체인을 통해 외부에 노출해야 하는 이유를 찾기 어렵습니다.
현재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프로젝트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바로 블록체인에 기반한 가상화폐 시스템에 인게임 경제 전체 혹은 일부를 공개하는 일이라는 점을 납득하는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시장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다른 프로젝트들 중 그 누구도 인게임 경제를 게임 바깥에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로 인게임 경제를 여러 번 설계해 온 것 같기는 하지만 인게임 경제는 초기에 닫힌 경제 내부가 순환하고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목적으로 한 설계가 핵심이었고 시간이 지나며 마이크로트랜잭션에 의해 게임 바깥에서 자원이 유입되는 상황에서도 고객들에게 우리가 의도한 경험을 줄 수 있도록 경제를 설계하고 여전히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도록 해야 했습니다.
전통적인 온라인 게임 경제에서 너무 당연하게 신경 써야 하는 점은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는 일이었는데 이는 어쩌면 실제 세계의 중앙은행이 하는 일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중앙은행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물가를 통제해 화폐 가치를 유지 시키는 일인데 인게임 경제를 설계하는 목표 역시 물가 통제 혹은 인플레이션 통제이니 비슷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은 게임 내 여러 활동을 통해 보상을 얻는데 이렇게 보상을 얻는 모든 종류의 행동을 생산 활동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고객들은 게임 플레이를 통해 게임 밖에서는 게임이 제공하는 경험과 이를 통한 감정의 변화를 얻고 인게임에서는 인게임에서만 통용되는 보상을 받아 게임이 제시하는 허들에 도전할 기반을 마련합니다. 만약 고객이 인게임에서 얻은 보상을 소비할 방법이 없다면 모든 사람들이 쌓은 게임 내 자산 크기는 점점 더 커지고 우리가 실제 세계에서 경험하는 것과 똑같이 화폐 가치가 떨어져 여전히 게임은 같은 경험을 제공하지만 보상 수준이 하락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게임 경제를 설계할 때는 게임 수명 주기의 어느 지점에서라도, 또 고객 관점에서 어느 시점에라도 각 시점에 맞는 보상과 적절한 허들, 그리고 화폐 가치를 유지하게 만드는 적당한 재화 소모 체계를 구축해야 하는데 이를 게임 업계에서는 하수구라고 불렀습니다. 온라인 게임 초기에는 실제 세계의 메타포를 차용해 고객들을 쉽게 납득 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하수구를 만들곤 했습니다. 가령 무기나 방어구는 사용함에 따라 내구도가 떨어지는데 이를 수리하려면 마을에 있는 대장장이를 찾아 가야 하고 대장장이는 골드를 받고 내구도를 다시 원래 수치로 복원해 줍니다. 또 강한 피격을 받으면 방어구의 내구도 최대치가 영구적으로 감소해 마을에서 대장장이를 만나도 감소한 최대치 만큼만 내구도를 복원할 수 있어 이 과정을 반복하면 장기적으로 아이템의 가치가 점점 떨어지다가 고객이 직접 아이템을 소멸 시키게 됩니다. 이런 메커닉은 이해하기 쉽지만 가상 세계에서 마저 고객에게 실망스러운 감정을 주며 때에 따라서는 게임의 핵심 경험에 소극적으로 임하게 만들 수 있어 개인적으로는 내구도 수리는 낡은 메커닉일까요?에서 내구도는 동작하긴 하겠지만 적어도 현대적인 메커닉은 아니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무기에 집중해서 이야기하면 현대에는 내구도 수리처럼 ‘현재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골드를 지출해 실컷 돈을 썼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대신 ‘나빠지지는 않도록 만드는’ 방법을 잘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대신 같은 무기를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강화해야 하는데 강화에 자원과 비용을 받아 기왕 골드를 지출한다면 ‘현재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 대신 ‘더 강해지기 위한 목적'으로 돈을 쓰게 만듭니다. 조삼모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저 현상 유지를 위해 돈을 쓰는 것 보다는 불확실한 미래와 마주하더라도 더 강해지기 위한 행동에 돈을 쓰는 편이 부정적인 감정을 만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현실 세계의 메타포와 동떨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종종 전설 무기를 수리하기 위해 골드 뿐 아니라 전설 무기 수리에 필요한 자원 역시 내가 구해 가야만 하는 상황을 마주할 때 아무리 가상 세계라지만 서비스업 종사자가 자기 작업에 필요한 자원을 구비해 놓지 않다니 이게 말이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자전거에 브레이크 케이블을 교체하러 샵에 갔는데 샵은 케이블을 갖고 있지 않아 항상 내가 케이블을 따로 구입해서 가야 하는 것과 비슷한 경험입니다. 다만 자전거 샵에서는 종종 이런 일이 일어나고 별로 이상한 상황이 아니기는 합니다.
하지만 강화를 위한 목적이라면 강화에 필요한 재료를 내가 준비해 가야 하는 요구 조건이 실제 세계와 비교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습니다. 가령 타쿠미가 엔진을 해 먹고 새 엔진으로 교체하기 위해 공업사에 가져가야 하는 것은 엔진을 해 먹은 구형 자동차와 이 자동차에 얹을 새 엔진인데 새 엔진 없이 공업사에 구형 자동차만 가져가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가상 세계에서 무기를 강화하는 일도 비슷한데 지금 주력으로 사용하는 대검을 다음 단계로 강화하기 위해서는 용의 숨결 10개가 필요하고 이걸 대장간이 항상 보유하고 있으리라 예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기 내구도를 복원해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대신 무기를 더 강하게 만들거나 더 강하게 만들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골드와 용의 숨결 10개를 직접 준비해서 기술을 가지고 있는 대장장이에게 무기를 맡겨 강화하면 무기도 강해지고 고객 기분이 나빠지지도 않을 뿐 아니라 게임 만드는 사람 관점에서는 용의 숨결을 얻기 위해 소요한 시간, 포션값 등을 통해 게임 내 잉여 자원을 감소시키고 또 무기 강화 그 자체에 다시 골드를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F2P 모델이 시장에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서 인게임 경제 설계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갑니다. 이전 시대에는 인게임에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위해 주로 수직 성장 요소를 추가해 파워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곤 했습니다. 새로 추가된 던전은 현 시대 기준으로 가장 강한 무기 조차 어려움을 겪게 만들어 새로운 던전에서 원활한 파밍을 위해서는 이전에 비해 훨신 높은 수준의 장비를 준비해야 하고 여기에 다시 앞에서 설명한 강화 과정을 요구합니다. 이렇게 수직 성장 요소를 추가하면 게임의 서로 다른 부분을 플레이 하는 고객들은 자신이 플레이 하는 구간이 요구하는 수준의 화폐 가치를 유지한 채로 플레이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초반부를 플레이 하는 고객들은 여전히 초반부 보상을 통해 성장할 수 있어 게임에 더 강력한 던전과 보상이 있다 하더라도 이들이 초반을 플레이 하는 고객들에게 직접적인 인플레이션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같은 시점에 후반부를 플레이 하는 고객들 관점에서 초반 퀘스트 보상은 이제 거의 가치를 가지지 않지만 이 고객이 플레이 하는 던전에서 나오는 보상을 통해 이 시점에 어울리는 화폐 가치에 기반한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직 성장 요소를 크게 무과금 고객이 경험하는 수직 성장 요소와 과금 수준에 따른 고객이 경험하는 수직 성장 요소로 구분해 서로 같은 게임을 하고 있지만 주력으로 플레이 하는 컨텐츠에 따라 소비하는 재화량이 크게 달라지고 이에 따라 낼 수 있는 단위시간 당 대미지 역시 크게 달라집니다. 물론 고객의 과금 단위에 따라 고객을 구분하고 이들이 각각 경험할 게임 구성요소를 각각 설계하고 개발하는데는 아주 큰 비용이 필요할 뿐 아니라 복잡해 평범한 우리들이 설계하고 유지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 과금 단위에 기반한 여러 구분을 서서히 통합해 가상의 표준 고객의 과금 단위를 중심으로 게임 경험을 구성하는데 무과금 고객이 스토리를 밀 수 없거나 가상의 표준 고객에 비해 많은 과금을 하는 고객 입장에서는 게임에 더 이상 허들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경험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입니다.
이 단계에서 좀 더 나아가면 왜 룩템을 PvP 보상에만 넣나요?에서 설명한 개발팀이 더 이상 고객과 경쟁할 수 없는 시점이 옵니다. 게임의 수명주기에 따라 개발팀 크기 역시 변하는데 일반적으로 시간이 지나면 좀 더 효율적으로 일하는 더 적은 인원이 게임을 유지보수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들은 게임에 수직 성장 요소를 추가하며 고객들을 구분해 서로 다른 경험을 주는 경제 모델을 설계하고 집행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구분 수를 줄여 개발 비용을 줄여 더 오랜 기간에 걸쳐 게임을 유지 시키는 형태로 변해 갑니다. 하지만 고객들은 언제나 개발자들이 게임에 수직 성장 요소를 추가하는 속도보다 더 빨리 컨텐츠를 먹어 치우며 게임에 실망하기 때문에 이들을 위해 고객과 개발자가 대결하는 대신 고객과 고객이 직접 대립하는 구도를 만들어 이런 요소에 재미를 느끼는 고객들을 만족 시키고 또 개발팀이 다음 컨텐츠를 준비할 시간을 벌 수도 있습니다.
자. 여기 까지 오면서 생각해 보면 인게임 경제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지난 이십 여 년 동안 여러 가지시행 착오를 겪어 왔는데 이 과정에서 고객들이 부정적인 감정 대신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도록 만드는 재화 소모 기법, 마이크로트랜잭션을 통해 게임 외부에서 자원이 유입될 때 이를 인게임에서 최소한의 영향을 주고 받으며 처리하는 방법 따위를 연구해 왔고 이들이 실제 세계에서 꽤 잘 동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참여하는 프로젝트에서 요구 받은 과제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며 발전해 온 인게임 경제시스템을 게임 외부에 거의 직접적으로 노출시키면서도 인게임 경제가 온전히 동작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인게임 경제를 게임 바깥에 노출 시키는 가장 큰 이유는 고객이 게임 상에서 구축한 재산이 게임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게임 밖에서도 의미를 가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전에는 고객이 게임 상에서 구축한 재산은 오직 게임 안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었지만 새로운 시대에는 분산원장 기술에 기반한 외부 시스템에 데이터를 기록하는 방식으로 게임 상에 구축한 재산을 게임 바깥에서도 접근할 수 있게 만들어 고객의 재산권을 확장하려고 했습니다.
인게임 경제를 게임 바깥에 노출 시키기 위한 여러 제안이 쏟아졌는데 가령 멀티 유틸리티 토큰 모델에서 소개한 이른바 ‘노 토큰 모델’도 그 중 하나 입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온라인 게임의 닫힌 경제를 설계해 온 사람 입장에서 이는 게임 상의 화폐만을 게임 외부에 노출할 뿐 아니라 게임 상에서 화폐로 전환될 수 있는 여러 자원들 역시 게임 외부에 노출시키자는 주장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게임 외부에 노출된 여러 자원을 그 기술적인 노출 방식에 따라 ‘멀티 유틸리티 토큰’ 모델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이제 인게임 경제를 게임 바깥의 분산원장 기술 기반의 데이터베이스에 노출 시키기 위해 제안된 여러 가지 방식 중에는 인게임 상의 화폐와 인게임 상의 자원을 그대로 게임 바깥에 기록하는 방식이 주로 제안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게임 경제를 게임 바깥에 노출 시켜 얻을 수 있는 특징에는 게임을 플레이 하며 생산한 부가가치가 게임 바깥에 기록되어 게임의 존속 여부에 관계 없이 게임 바깥에 계속해서 남아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분산원장 기술 기반의 데이터베이스는 여기에 기록된 데이터의 소유권을 비대칭 키 알고리즘에 기반해 특정할 수 있는데 인게임에서 획득한 골드가 게임 밖 데이터베이스에 기록 되려면 이 골드의 소유주를 특정해야만 기록할 수 있고 이 동작 자체가 게임 상에서 나타난 골드가 즉시 게임 바깥의 데이터베이스에 기록 되어 게임의 존속 여부에 관계 없이 존속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동작에 매력을 느낀 분들은 분산원장 기술 기반의 데이터베이스가 가상 세계의 여러 대상에 대한 소유권을 가상 세계 중립적인 장소에 기록해 여러 대상에 대한 소유권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마치 분산원장 기술 기반의 데이터베이스가 일종의 중앙은행이 통제하는 화폐 시스템처럼 일단 기록되고 나면 이 데이터베이스에 근거해 거래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데이터의 소유권을 인정 받고 또 데이터의 가치를 측정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 것 같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그럴 수 있습니다. 인게임에서 던전을 돌아 얻은 보상이 인게임에서는 인벤토리 상의 골드로 보이지만 게임 바깥에 실시간으로 이 게임 전용 골드의 형태로 쌓인다면 게임을 종료하고 나서도 비대칭 키 알고리즘에 기반해 인벤토리 또는 지갑에 대한 소유권을 증명할 수 있는 사용자는 자신에게 할당된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된 여러 게임으로부터 획득한 가상의 부가가치를 확인하고 또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된 이상 이들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또 만약 이 데이터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는 제 삼자가 있다면 이를 데이터베이스 상의 다른 화폐단위로 교환하거나 아예 실제 세계의 재화로 교환할 수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인게임에서 생산한 부가가치가 게임의 존속에 관계 없이 게임 밖 데이터베이스 상에서 의미를 가지고 가치를 가지는 모델은 게임이 아닌 다른 서비스에서도 고객 개개인이 생산한 컨텐츠를 고객 개개인이 소유한다는 개념과 상통하는 점이 있어 이른바 ‘웹3’ 모델이라고도 불린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게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인게임 경제를 게임 밖에 노출 시키는 발상은 납득하기 쉽지 않습니다. 앞에서 게임 경제를 설계하는 사람의 목표가 중앙은행의 목표와 서로 비슷하다는 설명을 했는데 중앙은행은 주로 기준금리를 통해 국가 내 금융거래에 참여하는 주체 모두에게 영향을 끼쳐 물가를 안정 시켜 화폐 가치를 유지하는 임무가 있습니다. 인게임 경제를 설계하는 사람 역시 인게임에서 일어나는 성장과 보상, 허들과 가격을 설정해 고객들에게 우리가 의도한 경험을 하게 만들고 게임 외부에서 자원이 유입되는 상황에서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할 임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인게임 경제를 분산원장 기반 데이터베이스에 노출 시키면 중앙은행에 비유하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를 비트코인 가격에 연동 시킨 것과 비슷한데 직접 제어할 수 없는 숫자에 기반해 인게임 경제가 영향을 받도록 만들어 버리는 행동입니다. 만약 미트코인 가격이 올라 기준금리가 오르고 내린다면 경제 상황을 예측할 수 없어 경제 참여 주체들의 엄청난 비용을 낭비하게 만들 겁니다.
게임도 마찬가지인데 게임 경제가 외부에 닫혀 있을 때 게임 안에 발생하는 여러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서로 다른 화폐 단위를 통한 격벽 설계, 게임 진행 시점에 따른 차등 물가, 게임의 각 허들을 돌파하는데 요구하는 서로 다른 자원과 각 자원을 획득하는 컨텐츠 분산 같은 장치들은 인게임 경제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게임 바깥의 데이터베이스에 노출되는 순간 완전히 무력화 됩니다. 만약 어떤 온라인 게임이 게임 내 통용되는 핵심 화폐인 골드를 게임 바깥에 있는 분산원장 기반 데이터베이스에 기록한다고 해보면 인게임 화폐는 생산되는 즉시 게임 바깥에 기록되는데 게임 바깥에서 일어나는 골드 이동은 인게임이 통제할 수 없으므로 골드가 엉뚱한 장소에 나타나 순식간에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가령 위에서 게임의 서로 다른 부분을 플레이 하는 서로 다른 과금 수준의 고객은 서로 소비하는 장소, 방법, 메커닉이 서로 분리되어 있고 또 화폐 단위 역시 왜 현대 게임에 그렇게 많은 종류의 재화를 사용하나요?에서 설명한 대로 격리되어 있어 같은 게임 안에서도 서로 영향을 최소한으로만 주고 받으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골드가 게임 바깥에 기록되어 게임 바깥에서 거래 가능해지면 인게임의 최상위 컨텐츠에서 생산된 골드가 게임 바깥에서 이동해 격리 시스템을 뚫고 게임 초반부에 나타나 강한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고 인게임은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물론 이를 감안해 인게임에서 화폐 단위 분리를 통한 격벽을 설계하는 것과 같은 요령으로 게임의 서로 다른 시점에 통용되는 골드를 서로 다른 골드로 분리해 통용 시킬 수도 있겠지만 사용 범위가 제한된 화폐를 게임 외부에 노출 시킨다 하더라도 이는 제한된 사용 범위 만큼 가치도 떨어져 사실상 거의 거래되지 않아 게임 밖에 노출 시킨 의미가 없어질 겁니다.
근본적으로 이 모든 위험에도 불구하고 인게임 경제를 게임 밖에 노출 시키려는 가장 큰 목적이 고객들의 재산권 확보인데 특정 게임의 인게임 화폐가 가장 높은 가치를 가지는 곳은 인게임 그 자체입니다. 마치 회사가 상장 폐지 되면 이 회사의 주식 전부가 아무런 가치를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인게임 화폐가 게임 밖에 기록 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를 직접 활용할 수 있는 게임이 존속하지 않으면 게임 밖에 기록된 데이터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만약 특정 게임을 플레이 하는 고객들을 유인하기 위해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된 다른 게임에서 발행된 화폐나 자원을 받아 주는 게임을 개발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고객들을 유인할 수 있을 뿐 유인된 고객들이 화폐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인게임 경제가 순식간에 소모될 겁니다. 혹은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경제시스템을 설계한다면 유인된 고객들은 아주 빠르게 자신들이 보유한 다른 게임의 화폐가 이 게임에서 아주아주아주아주 낮은 가치만을 가진다는 사실을 파악하게 될 겁니다.
게임 경제를 외부에 공개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런 생각 끝에 인게임 경제를 게임 외부에 노출 시켜 인게임에서 생산한 부가가치를 게임의 존속에 관계 없이 유지한다는 아이디어는 흥미롭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실제로 동작하지 않으며 이런 시도를 한 게임들 역시 인게임 경제가 온전히 유지되지 않았습니다. 한 게임에서 생산된 부가가치는 그 게임이 존속하는 동안 그 게임에서 가장 큰 가치를 지니며 게임이 존속하지 않게 되면 마치 상장 폐지된 주식처럼 더 이상 가치를 가지지 않게 됩니다. 다른 게임의 고객들을 유인할 목적으로 다른 게임에서 생산한 부가가치를 인정하는 게임이 나올 수 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설계하면 새 게임의 경제를 순식간에 소모 시키고 이를 방지하려고 하면 아주 낮은 가치만 인정해야 하기 때문에 유인 그 자체 이외에는 실질적으로 사용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게임 경제를 외부에 공개할 이유는 이 고민을 거의 1년 반 동안 해 왔음에도 아직 찾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 고민 끝에 방식은 여럿 생각해낼 수 있었지만 그 의미를 설명할 수는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