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이언 모리스는 동서양 16000년의 발전을 하나의 숫자로 환산해 서양의 우위를 지리가 만든 개연성으로 설명합니다. 그 지수의 기준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동아시아 관점에서 살펴봅시다.
기억 속에 오래전부터 자리 잡은 한 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확히 언제 어디서 배웠는지는 이제 흐릿한데 줄거리만은 또렷합니다. 조선이 왜 끝내 나라를 빼앗기는 자리까지 밀려갔는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흥선대원군의 쇄국 너무 늦은 개항 갑신정변과 갑오개혁의 좌절 그리고 1910년. 그 이야기에는 늘 같은 물음이 따라왔습니다. 조선은 왜 근대화에 실패했는가. 오랫동안 그 물음 자체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실패가 이미 질문에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뒤처졌고 뒤처졌기 때문에 휘청였고 휘청였기 때문에 끝내 잡아먹혔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그것은 사실 하나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정체된 우리가 서구의 충격을 받고서야 비로소 근대라는 문턱 앞에 섰다가 그만 넘어졌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는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랫동안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처럼 느껴졌습니다. 누구를 탓해야 할지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계속됐습니다. 그리고 그 감각은 한국에서 역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몸 어딘가에 지니고 사는 오래된 감각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이안 모리스가 쓴 두꺼운 책을 펼쳤을 때 설명하기 어려운 기시감이 들었습니다. 'Why the West Rules—for Now' 우리말로는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라는 2010년의 책입니다. 모리스는 동양과 서양의 발전을 16000년에 걸쳐 비교하면서 그 발전의 정도를 사회발전지수라는 하나의 숫자로 환산합니다[^The Measure of Civilization]. 책의 결론을 아주 거칠게 줄이면 이렇습니다. 서양이 지금 앞서 있는 것은 인종이 우월해서도 문화가 특별해서도 위대한 누군가가 있어서도 아니라 지리가 만들어 낸 장기적인 개연성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개연성의 연장선 위에서 동양은 대략 6세기부터 18세기까지 1200년 가까이 서양을 앞질러 있었다고 책은 말합니다. 위로를 건네려는 의도가 분명한 책이었습니다. 우리가 게을러서 뒤처진 게 아니라고 한때는 우리가 앞서 있었다고 말해 주는 책. 그런데도 책장을 넘길수록 기시감은 짙어졌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정체와 충격과 추락. 제 기억 속에 오래 자리 잡고 있던 그 서사를 숫자로 다시 쓴 글이었습니다.
책의 한가운데에는 그 모든 이야기를 한 장에 담은 그래프가 실려 있습니다. 가로축은 만 년이 넘는 시간이고 세로축은 사회발전지수인데 그 추세선은 거의 끝까지 바닥에 붙어 완만하게 기다가 맨 오른쪽 끝에 가서야 갑자기 거의 수직으로 치솟습니다. 이런 모양을 하키스틱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 그래프를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같은 추세선인데도 그것을 서양이 마침내 솟아오른 영웅적인 상승으로 읽을 수도 있었고 모든 것이 오른쪽 끝의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가는 가파른 하강으로 읽을 수도 있었습니다. 어느 쪽으로 읽느냐는 그래프가 정해 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읽는 사람이 정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위로 삼고 무엇을 아래로 삼을지 곧 어느 쪽을 위라고 부를지를 정하는 그 선택이 이미 이야기의 입장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이 기시감에 대한 것입니다. 모리스의 책은 분명 거대하고 야심차고 여러 대목에서 훌륭합니다. 다만 동아시아의 한 귀퉁이 출신 입장에서 읽으면 책이 그리는 추세선이 어디서 출발해 어디로 흘러가는지에 자꾸 신경이 쓰입니다. 그 추세선이 어느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는지를 살피면 책의 매력과 한계가 같은 지점에서 함께 드러납니다. 그 기울기를 순서대로 짚어 가겠습니다.
먼저 책이 무엇을 했는지부터 공정하게 적어 두겠습니다. 모리스가 만든 사회발전지수는 한 사회의 발전을 네 가지 척도로 측정합니다. 한 사람이 하루에 끌어다 쓰는 에너지의 양 가장 큰 도시의 규모로 대표되는 조직화의 정도 문자와 통신으로 대표되는 정보기술 그리고 동원할 수 있는 전쟁 수행 능력입니다[^Book Review of Why the West Rules—For Now and The Measure of Civilization by Ian Morris]. 네 가지 척도에 각각 250점씩 모두 합쳐 1000점을 배분하고 기준이 되는 해는 서기 2000년입니다. 그 해에 각 척도에서 가장 앞선 사회가 250점 만점을 받도록 설계했습니다. 이렇게 해 두면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한 도시와 18세기 런던을 막연한 인상이 아니라 같은 단위의 점수로 비교할 수 있게 됩니다. 동양이 앞섰느냐 서양이 앞섰느냐를 두고 끝없이 맴돌던 논쟁을 적어도 반박할 수 있는 하나의 추세선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이건 정말 드문 시도이고 이 시도 자체가 게임디자이너 입장에서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느낌으로만 다루던 대상에 직접 숫자를 사용해 비교를 시도한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입니다.
모리스가 그리는 역사의 동력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사람은 어디서나 대체로 게으르고 탐욕스럽고 겁이 많다는 것입니다. 더 적은 수고로 더 많은 안전과 이익과 편의를 얻으려 하는 이 보편적인 성향이 자원과 질병과 이주와 기후라는 위기에 부딪히며 사회를 밀어 올리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게으름은 더 효율적인 길을 찾게 하고 탐욕은 더 많이 가지려 손을 뻗게 하며 두려움은 울타리를 높이고 무기를 만들게 합니다. 그래서 이 설명에는 세 가지 레이어가 있습니다. 생물학은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사회학은 그 욕구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지리학은 그 변화가 하필 언제 어디서 일어나는지를 담당합니다[^Ian Morris: Why the West Rules - For Now]. 동양 사람과 서양 사람이 본질적으로 똑같다는 이 전제는 인종주의와 문화우월론을 동시에 걷어내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위대한 누가 있어서도 아니고 우리가 못나서도 아니라는 말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공평합니다. 다만 바로 그 전제가 뒤에서 다루겠지만 동아시아가 능동적으로 내린 선택들을 설명에서 제거해버리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라면 차이를 만든 변수로 남는 것은 결국 그들이 딛고 선 땅뿐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지리로 돌리는 평면적인 이야기가 되어 버리는 셈입니다.
모리스 자신도 이 방법이 객관적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변호합니다. 지수는 논의를 더 객관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점수 하나하나에 너무 많은 가정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다만 지수는 논의를 더 명시적으로 만든다[^Why The West Rules – For Now: The Patterns of History and What they Reveal about the Future]. 이 문장이 책에서 가장 정직한 대목입니다. 가정을 숨기지 않고 표 위에 죄다 펼쳐 놓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그 가정을 하나하나 따져 볼 수 있습니다. 반박을 허용하는 책이라는 점은 끝까지 잊지 않고 기억해 두려 합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평가 방식을 의심하는 것은 책을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책이 제시한 틀 안에서 논의를 펼치는 것에 가깝습니다.
평가 방식을 의심하는 일은 아주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그 지수의 기준점 0은 어디에 있습니까. 답은 명확합니다. 서기 2000년의 서양 더 정확히는 미국입니다. 모리스의 계산에서 2000년 서양 핵심부의 한 사람은 하루에 약 230000킬로칼로리를 끌어다 쓰고 이 숫자가 만점인 250점이 됩니다. 같은 해 동양 핵심부인 일본은 약 104000킬로칼로리로 비례로 환산하면 113점 남짓입니다[^The Measure of Civilization (EH.net review)]. 여기서 잠시 생각해보면 이 성공 스토리는 좀 이상합니다. 만점의 기준을 오늘날 서양의 최대치로 설정하는 순간 16000년의 역사 전체가 그 한 점을 향해 정렬됩니다. 모든 시대 모든 사회가 결국 2000년의 뉴욕에 얼마나 가까운가로 환산되는 것입니다.
지수의 기준점 0을 오늘의 서양에 두는 것은 좌표 전체를 그 한 점 기준으로 설정한다는 뜻입니다. 그 순간 16000년의 역사 전체가 서기 2000년의 서양에 얼마나 가까운가라는 단일한 척도로 정렬됩니다. 기원전 9000년의 비옥한 초승달도 당나라의 장안도 송나라의 개봉도 모두 그 기준점으로부터의 거리로 환산됩니다. 이걸 두고 누군가는 목적론이라고 부릅니다. 역사가 실제로 그렇게 한 점을 향해 흘렀기 때문이 아니라 좌표를 그 점 기준으로 기울여 그렸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지수의 편향은 어디서 오는가 하는 물음이 다음 차례입니다. 표면적으로 지수는 네 가지 척도가 균형을 이룬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지수의 변동을 좌우하는 것은 거의 언제나 첫 번째 척도 곧 에너지입니다. 모리스 본인이 에너지 획득을 사회발전 논의의 토대로 정의했고 서평가들도 네 척도 가운데 결합된 추세선의 변동을 가장 크게 끌고 가는 것이 에너지라고 지적합니다[^Ian Morris — Social Development (methodology paper)]. 도시 규모도 정보기술도 전쟁 능력도 결국 에너지에 따라 좌우됩니다. 그러니 네 가지 척도라는 말은 외양에 가깝고 실질은 에너지라는 하나의 척도입니다. 이 편향을 만드는 것은 사실상 한 사람이 하루에 태우는 칼로리의 양 하나라는 뜻입니다. 이걸 환원주의라고 부르며 흠을 잡을 수도 있지만 단정하기 전에 한 가지를 짚어야 합니다. 뒤에서 다루겠지만 분기의 상당 부분이 정말로 에너지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이 환원은 역설적으로 사실에 꽤 부합하는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지금 기억해 둘 것은 하나입니다. 이 지수는 본질적으로 에너지 지수이고 에너지로 잰 역사는 에너지가 폭발한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종류의 척도를 한 점수로 묶는 일에도 풀리지 않는 매듭이 있습니다. 칼로리로 재는 에너지와 도시의 인구는 그래도 생물학적인 숫자라 견줄 구석이 있지만 문해율 같은 사회적인 지표를 무슨 비율로 칼로리와 같은 점수 칸에 기입해야 하는지는 끝내 불투명합니다. 게다가 고고학의 증거는 본디 흐릿합니다. 흐릿한 증거를 또렷한 범주의 칸에 억지로 밀어 넣을 때 생기는 오차는 더하기로 쌓이는 것이 아니라 곱하기로 불어납니다. 16000년이라는 긴 시간을 한 줄로 꿰면 그 곱셈의 오차가 어느새 추세선 전체를 흔들 만큼 커질 수 있습니다. 문해율을 칼로리로 변환하는 비율을 누가 정했느냐고 물으면 결국 정한 사람은 지수를 만든 본인입니다. 그러니 이 지수는 정밀해 보이는 외양 아래 사실은 수많은 어림과 환산이 켜켜이 쌓인 구조물입니다. 명시적이라는 미덕이 정밀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네 가지 척도 가운데 나머지 둘도 잠깐 들여다볼 만합니다. 정보기술이라는 척도는 문자와 통신과 기록의 역량을 잽니다. 로마는 도로와 문서 행정으로 송나라는 활자와 지폐로 이 척도를 높이 세웠고 오늘날에 와서는 인쇄기에서 전신으로 전신에서 다시 인터넷으로 이 척도가 거의 수직으로 자랐습니다. 전쟁 수행 능력이라는 척도는 한 사회가 휘두를 수 있는 파괴력을 잽니다. 청동 무기에서 화약으로 화약에서 함포로 함포에서 끝내 핵무기로 이어지는 사다리입니다. 모리스가 굳이 파괴력을 발전의 한 척도로 넣은 것은 발전이라는 말이 결코 선함과 같은 뜻이 아님을 인정한 셈입니다. 더 발전한 사회는 더 많이 만들고 더 멀리 알리는 동시에 더 크게 부술 수도 있는 사회였습니다. 다만 이 세 가지 척도도 자세히 살피면 결국 에너지를 따라 함께 오르내립니다. 더 많은 에너지를 쥔 사회가 더 큰 도시를 세우고 더 멀리 소식을 보내고 더 무서운 무기를 벼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네 가지 척도는 끝내 에너지 하나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기울어진 좌표에서 동양의 1200년이 어떻게 읽히는지를 짚어 가겠습니다. 모리스의 추세선에서 동양은 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서양을 앞질러 있습니다[^Why the West Rules—For Now]. 그런데 이 좌표에서는 그 1200년은 종착점을 바꾸지 못하는 일시적인 고점에 지나지 않습니다. 동쪽이 잠시 높더라도 기준점은 끝내 서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모리스는 분명 두 가지 흔한 설명을 모두 거부합니다. 하나는 태초부터 서양이 유리하게 고정되어 있었다는 장기 고정 이론입니다. 동양이 1200년이나 앞서 있었으니 이건 틀렸다고 말합니다. 다른 하나는 그냥 운이었다는 단기 우연 이론입니다. 추세선에 너무 또렷한 패턴이 있으니 순전한 우연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모리스가 도달한 결론이 지리가 만든 장기적 개연성입니다. 누가 언제 앞설지는 지리로 상당 부분 예측할 수 있되 운과 선택이 약간의 변주를 준다는 것입니다. 균형 잡힌 이론처럼 읽힙니다. 그런데 동아시아 관점에서 다시 보면 이 균형 잡힌 결론조차 결국 무게중심을 서쪽에 두고 있습니다. 동양을 띄워 주는 척하지만 판을 결정적으로 뒤집는 사건은 다시 서양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추세선이 실제로 어떻게 변동했는지를 따라가 보면 이 점이 두드러집니다. 기원 무렵에는 로마와 한나라가 유라시아의 양 끝에서 나란히 정점을 찍고 있었습니다. 두 제국은 서로의 존재를 어렴풋이만 알았지만 모리스의 지수로 재면 발전의 높이가 엇비슷했습니다. 그러다 두 제국이 모두 무너지고 난 1천년기의 한가운데 서쪽이 깊이 가라앉아 중세의 어둠 속을 헤매는 동안 동쪽에서는 당나라와 송나라가 차례로 솟아올랐습니다. 특히 송나라의 개봉과 항저우는 인구가 백만에 이르던 도시였고 지폐와 화약과 나침반과 활자가 거리에서 일상적으로 쓰였습니다. 모리스의 지수로 재어도 이 무렵 동쪽의 점수가 서쪽을 또렷이 앞지릅니다. 그리고 그 우위가 6세기부터 18세기까지 1200년 가까이 이어집니다. 여기는 여느 동아시아 사람이 읽어도 기분이 좋아질법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한때 세계의 첨단이었다는 말은 식민의 기억을 안고 살아온 이에게 위안을 줍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그 긴 우위를 단 한 번의 변곡 곧 18세기 말의 화석연료가 통째로 뒤집어 버리고 추세선의 무게중심은 다시 서쪽으로 영영 넘어갑니다. 1200년의 우위가 한 세대의 급등 앞에서 일시적인 고점으로 줄어드는 셈입니다. 위안은 짧고 역전은 결정적입니다.
이 기울어진 좌표가 모리스가 처음 설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책을 읽는 관점이 한 번 더 달라집니다. 지리가 운명을 결정한다는 발상은 2400년이나 묵은 전통입니다. 그 전통의 출발점에는 히포크라테스의 '공기 물 장소'라는 글이 있습니다. 기후와 물과 토양이 사람의 체질과 기질을 빚는다고 보면서 그는 추운 유럽 사람은 용맹하지만 다스리기 어렵고 더운 아시아 사람은 온순하지만 겁이 많고 예속적이라고 적었습니다[^The Ugly History of Climate Determinism Is Still Evident Today]. 아리스토텔레스도 같은 틀로 자기 민족인 그리스가 마침 추위와 더위의 중간이라 가장 우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등이 서늘해집니다. 지리로 문명을 설명하는 전통은 그 첫 문장부터 아시아를 겁 많고 예속적인 자리에 앉혀 두고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지리결정론의 유전자에는 처음부터 오리엔탈리즘이 내재되어 있었습니다.
이 전통은 곧장 권력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몽테스키외는 더운 나라에는 전제정이 어울린다고 적었고 19세기에 이르면 프리드리히 라첼과 그의 제자들이 환경결정론을 어엿한 학문으로 세웁니다. 라첼의 미국인 제자 엘런 처칠 셈플은 인간은 지표의 산물이라는 강경한 결정론을 영어권에 퍼뜨렸고 엘즈워스 헌팅턴은 온대 기후 그중에서도 북서유럽과 미국 동북부가 문명에 최적이라는 노골적인 기후 위계론을 펼쳤습니다[^Environmental determinism]. 이 시기 지리결정론은 제국주의와 식민 지배와 과학을 자처한 인종주의의 학문적 알리바이였습니다. 유럽이 우월한 것은 지리 덕이라는 논리가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데 그렇게 편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20세기 중반에 이 전통은 한 번 무너집니다. 프랑스의 비달 드 라 블라슈가 가능론을 세워 환경은 한계를 정할 뿐 문화를 결정하지는 않으며 인간의 창조적 적응이 핵심이라고 반박했고 뤼시앵 페브르는 필연은 없다 있는 것은 가능성과 그 가능성을 쓰는 인간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결정타는 정치였습니다. 나치가 라첼에게서 빌려 온 생활권 개념을 침략의 명분으로 쓰면서 지리결정론은 학계에서 거의 추방됩니다. 1950년대에 이르면 이 사조는 지적으로 파산했다고 말해도 좋을 지경이 됩니다.
파산한 사조가 관뚜껑을 박차고 나온 것은 한참 뒤의 일입니다. 1997년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가 대륙의 축 방향과 작물과 가축의 분포로 세계의 불평등을 설명하며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사람들은 이걸 신환경결정론이라고 불렀습니다. 비판도 따라왔습니다. 비판지리학자들은 다이아몬드가 20세기 내내 쌓인 인간과 환경에 관한 사유의 진전을 무시하고 옛 결정론을 그대로 되살렸다고 공격했습니다[^Guns Germs and Steel: Against History]. 환경결정론은 인종이 아니라 환경이라고 말하며 인종주의와 선을 긋지만 결국 서구 우위라는 결과를 자연으로 만들어 그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책임을 지워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함의는 고스란히 모리스에게 이어집니다. 모리스는 다이아몬드의 계보 위에 서되 두 가지로 자신을 구별합니다. 하나는 막연한 지리 때문이라는 말을 추세선으로 바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리가 고정상수가 아니라 기술 수준에 따라 의미가 뒤집히는 변수라고 본 것입니다. 좁은 대서양은 항해술 이전에는 장벽이지만 항해술 이후에는 고속도로가 됩니다. 모리스는 이걸 동적 지리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모리스의 입장은 흔히 중요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지도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그런데 동적 지리는 결정론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결정론을 세련되게 다듬은 것입니다. 가능론이 그토록 강조했던 인간의 창조적 적응을 모리스는 기술이 지리의 의미를 다시 정한다는 문장 안에 흡수해 다시 결정론 안으로 봉합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계보를 한 줄로 적으면 이렇게 됩니다. 결정론에서 파산으로 파산에서 부활로 부활에서 정량화된 신결정론으로. 모리스는 그 긴 사슬의 가장 끝 가장 정교한 위치에 있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다이아몬드의 결정론이 너무 경직되었다고 나무라던 모리스 본인이 나중에는 아예 지리가 운명이다라는 제목의 책을 따로 써냈습니다. 동적 지리라는 외양이 세련되어도 모리스가 끝내 지리결정론자라는 사실은 그 제목 한 줄에 정직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측정의 방식에도 비슷한 계보가 있습니다. 한 사회의 발전을 하나의 축에 줄 세운다는 발상은 19세기의 단선적 사회진화론에서 왔습니다. 모건과 타일러와 스펜서는 모든 사회가 야만에서 미개로 미개에서 문명으로 같은 단계를 밟는다고 전제했는데 이 단계론은 서구를 문명의 정점에 두는 자문화중심이라는 이유로 일찌감치 폐기되었습니다. 에너지를 발전의 척도로 삼는 발상은 1940년대 레슬리 화이트의 법칙에서 왔습니다. 문화는 한 사람이 한 해에 끌어다 쓰는 에너지가 늘어날수록 진화한다는 것이 그 법칙의 뼈대입니다[^White's law]. 모리스의 에너지 획득이라는 척도는 사실 화이트의 1인당 에너지를 고고학 데이터로 환산해 놓은 것입니다. 네 척도를 똑같이 250점씩 나눈다는 방법론조차 모리스의 발명이 아닙니다. 모리스는 1956년 인류학자 라울 나롤이 제안한 원칙 곧 어느 척도에 더 무게를 둘 분명한 이유가 없으니 똑같이 두자는 원칙을 그대로 따랐다고 스스로 밝힙니다[^A Preliminary Index of Social Development]. 여기에 1990년 유엔 인간개발지수의 합산 방식이 더해지면 모리스의 지수가 완성됩니다. 그러니 이 지수는 새로 발명된 측정이 아니라 반세기 묵은 신진화론 프로그램의 가장 완성된 재시도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그 프로그램이 한 번 폐기된 이유 곧 자문화중심과 환원주의라는 부채도 이 지수가 함께 물려받았다고 판단하는 것이 공평합니다. 모리스의 한계는 그 개인의 부주의가 아니라 모리스가 선 계보의 오래된 유산입니다.
모리스가 이 점수를 짜 맞춘 방식을 읽는 동안 자꾸 게임 시스템 설계라는 본업이 떠올랐습니다. 게임의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을 하다 보면 성질이 전혀 다른 여러 요소를 어떻게든 하나의 숫자로 환산해야 하는 순간을 끝없이 만나기 때문입니다. 가장 익숙한 예가 전투력입니다. 캐릭터의 머리 위에 박히는 그 한 줄짜리 숫자는 공격력과 방어력과 체력과 치명타와 속도처럼 단위도 의미도 제각각인 스탯들을 한데 욱여넣어 만든 합성물입니다. 모리스의 1000점이 에너지와 도시 규모와 정보와 전쟁 능력을 한 칸에 몰아넣은 것과 구조가 놀랍도록 같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같은 지점에서 같은 난처함이 생깁니다. 방어력 1점은 공격력 몇 점과 같은가. 여기에는 객관적인 교환 비율이 없습니다. 결국 설계자가 손으로 계수를 정합니다. 더 무겁게 둘 분명한 이유가 없으니 일단 비슷하게 맞춰 두자는 나롤의 원칙은 사실 밸런스 회의에서 우리가 매번 내리는 결정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습니다. 문해율을 칼로리로 전환하는 교환 비율을 누가 정했냐는 물음은 방어력을 공격력으로 전환하는 교환 비율을 누가 정했냐는 물음과 똑같은 물음입니다.
기준을 잡는 방식까지 닮았습니다. 우리는 전투력의 눈금을 대개 그 시점에서 가장 센 장비나 캐릭터에 맞춰 정규화합니다. 지금 이 순간의 최상위가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옛날 장비는 자연스럽게 그 최신 기준 아래에 놓입니다. 모리스가 만점 250점을 서기 2000년에 설정한 것과 우리가 전투력 100퍼센트를 이번 업데이트의 신규 장비에 설정하는 것은 같은 방식입니다. 둘 다 오늘을 좌표의 기준점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게다가 한 번 전투력 공식을 세상에 내보내고 나면 그 숫자를 유지하는 일이 설계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예전에 '전투력'이라는 글에서 이 숫자 하나를 고안하고 유지하는 과정을 따로 길게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핵심은 늘 같았습니다. 숫자를 내건 순간부터 사람들은 그 숫자에만 집중하기 시작하고 정작 그 숫자가 요약하려던 실제 경험은 뒷전으로 밀린다는 것입니다. 모리스의 지수도 더 점잖은 형태로 같은 운명을 겪습니다. 16000년을 한눈에 읽히게 해 주는 대신 모든 문명을 2000년의 뉴욕에 얼마나 가까운가로 줄 세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리스의 방법을 마냥 비웃을 수가 없습니다. 좋은 게임디자이너가 전투력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태도는 이 숫자가 진실이 아니라 쓸모 있는 약속이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전투력은 캐릭터의 강함 그 자체가 아니라 강함을 대략 가늠하게 해 주는 합의된 허구입니다. 모리스가 지수는 객관적이지 않고 다만 명시적일 뿐이라고 밝힌 것은 바로 그 정직한 태도를 역사학의 언어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두 경우 모두에서 진짜 위험은 교환 비율이 어설프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 교환 비율이 어설프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합성된 숫자를 세상의 진짜 무게로 착각하는 데 있습니다.
사실 이 책은 한 권의 책이 아니라 하나의 장르에 속합니다. 왜 서양이 세계를 앞섰는가라는 물음은 지난 한 세대 동안 여러 권의 두꺼운 책이 저마다 다른 답으로 경합해 온 질문이었습니다. 데이비드 랜즈는 '국가의 부와 빈곤'에서 정반대의 답을 내놓았습니다. 부를 가른 것은 지리가 아니라 문화이며 유럽의 노동윤리와 합리성과 과학 정신이 그 차이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The Wealth and Poverty of Nations: Why Are Some So Rich and Others So Poor]. 모리스가 사람은 어디서나 거기서 거기이고 다른 것은 지도라고 말한다면 랜즈는 사람이 곧 문화가 다르다고 말합니다. 정면으로 부딪치는 두 입장입니다. 니얼 퍼거슨은 '시빌라이제이션'에서 서양이 나머지를 앞선 비결을 여섯 개의 킬러 앱으로 정리했습니다. 경쟁 과학 재산권과 법치 근대 의학 소비사회 그리고 노동윤리입니다[^The Killer Apps | Civilization: The West and the Rest with Niall Ferguson]. 모리스와 퍼거슨은 둘 다 미래의 쇠퇴를 예감하며 책을 마무리하지만 결정적으로 톤이 정반대입니다. 퍼거슨은 서양의 우수함을 자랑스럽게 옹호하는 반면 모리스는 우수함이 아니라 입지의 운으로 같은 결과를 설명합니다. 자부심과 우연이라는 정반대의 정서가 같은 현상을 두고 갈립니다.
가장 강한 반대편은 대런 에스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입니다. 그들은 빈부를 가른 것이 지리도 문화도 아니라 제도라고 주장합니다. 포용적인 제도를 갖춘 나라는 번영하고 착취적인 제도에 갇힌 나라는 가난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모리스와 다이아몬드의 지리 가설을 정면으로 기각하는 반례로 남북한을 듭니다[^'Why Nations Fail']. 같은 반도 같은 기후 같은 문화를 공유하면서도 오직 제도가 달랐기에 한쪽은 휴대전화를 만드는 나라가 되고 다른 한쪽은 굶주리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리결정론을 단 하나의 사례로 무너뜨리는 날카로운 칼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제도론이 동아시아를 향해서는 양날의 칼이 된다는 점입니다. 착취적인 황제의 권력과 바다를 닫은 정책이 발목을 잡았다는 비판이 되는 동시에 조선의 과거제와 정교한 기록 문화와 관료제가 꽤 포용적이었다는 반론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모리스가 이 장르 안에서 외롭게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문화를 강조하는 쪽에서는 모리스가 모든 것을 지리로 환원했다고 비판하고 제도를 강조하는 쪽에서는 모리스가 제도를 놓쳤다고 비판하며 유럽중심을 의심하는 쪽에서는 모리스가 여전히 서양을 자로 삼는다고 비판합니다. 세 방향에서 동시에 협공당하는 상황 그것이 모리스의 위치입니다.
이 경쟁자들이 저마다 가리키는 변수들 가운데 동아시아 관점에서 가장 곱씹게 되는 것은 분열과 통일의 문제입니다. 퍼거슨이 첫 번째 킬러 앱으로 경쟁을 꼽은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유럽은 끝내 하나로 통일되지 못한 채 수십 개의 나라로 쪼개져 서로 다투었고 그 쪼개짐이 역설적으로 혁신을 몰아붙였다는 것입니다. 한 군주가 새로운 항해나 새로운 사상을 금지해도 바다 건너 다른 군주가 이를 후원했습니다. 콜럼버스는 한 왕실에서 퇴짜를 맞으면 다른 왕실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반면 중국은 거대한 하나의 제국이었기에 황제 한 사람이 바다를 닫기로 결정하면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정화의 함대가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이 차이를 너무 단정적으로 읽는 것을 경계합니다. 통일은 그 자체로 거대한 성취였고 분열은 끝없는 전쟁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경쟁이 혁신을 낳았다는 이야기는 그 경쟁이 동시에 수백 년의 살육을 일으켰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무엇을 발전이라 부를지를 정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한쪽으로 편향된 좌표를 만들고 있는 셈입니다.
이제 이 지수에서 가장 가파른 구간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모리스 서사의 절정은 18세기 말에 있습니다. 북서유럽이 화석연료 곧 석탄을 본격적으로 끌어다 쓰면서 추세선이 거의 수직으로 치솟고 1200년을 앞서 있던 동양이 단숨에 추월당하는 장면입니다. 에너지가 지수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화석연료는 곧 그 지수를 수직으로 폭발시킨 사건입니다. 지수로 치면 화석연료가 바로 그 수직 상승의 기점입니다. 그래서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라는 질문이 사실은 왜 서양이 먼저 화석연료를 손에 넣었는가라는 훨씬 범위가 좁은 질문으로 줄어듭니다.
화석연료가 무엇을 바꾸었는지는 에드워드 앤서니 리글리의 틀이 가장 선명하게 설명합니다. 산업화 이전의 모든 경제는 유기경제였습니다. 에너지는 결국 광합성에서 옵니다. 햇빛이 식물을 키우고 식물이 사람과 가축의 힘과 장작이 됩니다. 그러니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상한은 토지 면적이 정합니다. 인구가 늘면 한 사람 몫의 에너지가 줄어들어 아무리 영리한 사회라도 현상 유지 이상을 넘기 어렵습니다. 맬서스가 말한 인구의 천장이고 리카도가 말한 토지의 희소성입니다. 석탄은 이 천장을 깨뜨립니다. 석탄은 수억 년 동안 압축된 과거의 광합성 말하자면 화석이 된 햇빛이기 때문에 이걸 캐서 태우면 토지의 제약을 우회해 한 사람 몫의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The Path to Sustained Growth: England's Transition from an Organic Economy to an Industrial Revolution]. 농경 사회에서 수만 킬로칼로리에 머물던 1인당 에너지가 산업화한 서양에서는 1800년에 약 38000 1970년대에는 약 230000킬로칼로리까지 치솟습니다[^Foragers Farmers and Fossil Fuels: How Human Values Evolve]. 맬서스의 천장을 뚫고 지속 성장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다만 그 전환이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갈아 넣었는지는 또 다른 이야기여서 예전에 '거대한 전환'에서 그 어두운 면을 따로 다룬 적이 있습니다. 에너지 역사가 바츨라프 스밀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는 화석연료 문명입니다. 비료도 전기도 항공도 컴퓨터도 따지고 보면 모두 화석이 된 햇빛 위에 서 있습니다[^Meet Vaclav Smil the man who has quietly shaped how the world thinks about energy]. 모리스의 지수가 수직으로 치솟는 지점이 바로 이 전환입니다.
에너지로 문명을 재려는 시도는 사실 모리스에서 멈추지 않고 더 넓게 뻗어 갑니다. 천체물리학자 에릭 차이슨은 단위 질량이 단위 시간에 흘려보내는 에너지의 밀도를 별과 생명과 문화를 한꺼번에 꿰는 보편의 복잡도 척도로 제안했습니다[^Energy rate density as a complexity metric and evolutionary driver]. 빅 히스토리라는 이름으로 빅뱅에서 오늘까지 우주의 역사 전체를 복잡도의 척도로 읽는 흐름도 같은 뿌리에서 자랍니다. 그 큰 틀에서는 모리스의 에너지 획득이라는 척도는 에너지가 곧 복잡도라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인류사 한 토막에 해당합니다. 별이 빛나는 것도 세포가 살아 있는 것도 도시가 돌아가는 것도 결국 에너지의 흐름이라는 한 문장으로 묶을 수 있다는 발상은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다만 매력적일수록 한 번 더 멈춰 서서 물어야 합니다. 그 척도가 무엇을 잘 잡아내고 무엇을 흐리게 만드는지를 말입니다. 에너지로 재면 또렷이 잡히는 것이 있고 에너지로만 재면 끝내 잡히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한 사회가 무엇을 두려워했고 무엇을 금지했고 어느 갈림길에서 망설였는지는 칼로리 기준으로는 좀처럼 표현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정직하게 인정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분기의 거의 전부가 이 한 전환에 달려 있다면 에너지가 지수를 지배한다는 사실 그러니까 앞에서 환원주의라고 흠을 잡았던 그 일원성은 적어도 이 대목에서는 역설적으로 사실에 부합합니다. 분기는 정말로 대체로 에너지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모리스를 비판하려면 에너지를 너무 많이 보았다고 탓할 것이 아니라 누가 먼저 그 에너지를 손에 넣었는가를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매끈한 추세선 아래 감춰져 있던 동아시아의 선택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서양이 먼저 화석연료를 쥔 것은 영국에서 석탄이 마침 물길과 항구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케네스 포머런츠는 영국을 운 좋은 괴짜라고 불렀습니다. 석탄이 공업지대 곁에 있었기에 증기기관이 경제성을 가졌다는 것입니다[^Ten Years of Debate on the Origins of the Great Divergence]. 그런데 중국에도 석탄은 있었습니다. 중국은 이미 송나라 때부터 석탄과 코크스와 철을 대량으로 생산하던 기술 선진국이었습니다. 문제는 위치였습니다. 주요 탄전은 북서부에 있었고 인구와 직물업이 몰린 경제의 중심은 남쪽의 양쯔강 하류였습니다. 석탄을 그 먼 거리만큼 양쯔까지 실어 나를 이유도 그 막대한 운송비를 감수할 동기도 없었으니 증기기관에 대한 수요 자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Coal in China]. 포머런츠는 이걸 지질의 우연이 첫 산업 돌파의 전제조건을 갈랐다고 표현합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사정이 겹칩니다. 중국은 노동이 너무 쌌습니다. 노동이 싸면 노동을 아끼는 기계를 만들 유인이 약해집니다. 마크 엘빈은 이걸 고수준 균형의 함정이라고 불렀습니다. 중국 경제가 농업과 수공업과 교역망에서 너무나 잘 굴러갔기 때문에 오히려 노동을 아끼는 자본 투자가 수익을 내지 못하는 균형에 도달했다는 것입니다[^High-level equilibrium trap]. 엘빈은 이것이 문화의 결함이 아니라 기술과 자원과 인구압이 만든 구조의 덫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설명이 동아시아에 대한 가장 품격 있는 변호입니다. 우리는 뒤처진 것이 아니라 너무 잘 가꿔진 정점에 갇혀 있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송나라의 이야기는 조금 더 들여다볼 가치가 있습니다. 11세기 송나라의 제철 생산량은 일부 추정으로는 700년 뒤 산업혁명 직전 유럽 전체의 생산량에 견줄 만했다고도 합니다[^Economy of the Song dynasty]. 석탄과 코크스로 철을 뽑고 수력으로 기계를 돌리고 지폐로 거래하고 운하로 물자를 실어 나르던 사회였습니다. 산업혁명에 필요한 부품들이 거의 다 그 시대에 흩어져 있었던 셈입니다. 그런데도 그 부품들은 끝내 하나의 기관차로 조립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는가를 두고 학자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를 말합니다. 누구는 몽골의 침입과 뒤이은 인구의 격감을 가리키고 누구는 명나라가 들어서며 닫아건 바다를 가리키고 누구는 엘빈의 고수준 균형을 가리킵니다. 어느 이유가 옳든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송나라는 자원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자원을 한 방향으로 몰아갈 수요와 제도와 우연이 끝내 함께 모이지 않아서 멈춰 섰다는 것입니다. 매끄러운 추세선에서는 이 멈춤이 그저 동쪽 고점이 조금 낮아지는 한 구간으로만 보입니다. 그러나 가까이 살피면 거기에는 수많은 갈림길과 사람의 손으로 막힌 갈림길들이 있습니다. 매끄러운 추세선은 그 갈림길들을 모두 지워 버립니다.
여기서 페르 프리스라는 역사가의 단서가 결정적입니다. 그는 석탄과 식민지를 가졌다고 충분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그것을 발견하고 정복하고 활용해야 하며 그러려면 그걸 쓸 기술과 그럴 동기를 함께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Are Coal and Colonies Really Crucial?]. 다시 말해 화석연료조차 순수한 지리가 아닙니다. 자원은 그것을 쓸 기술과 수요와 결합할 때에만 비로소 자원이 됩니다. 그렇다면 중국이 늦은 까닭은 자원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원과 수요와 기술이 서로 어긋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어긋남의 뒤에는 분명히 동방의 선택과 구조가 있습니다. 바다를 닫은 해금정책이 있었습니다. 명나라는 1371년에 처음 바다를 닫아 합법적인 대외무역을 조공사절로만 한정하고 국제교역을 나라가 독점했습니다[^Haijin]. 동아시아 세 나라가 이걸 연쇄적으로 모방해 조선은 은둔의 왕국이 되었고 1876년에야 군사적 압력 앞에 항구를 열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모리스의 지리결정론이 무엇을 놓치는지가 또렷이 드러납니다. 바다를 장벽으로 만든 것은 지리가 아니라 정책이었습니다. 모리스는 태평양이 대서양보다 넓어서라고 말하지만 동아시아는 닿을 수 있는 가까운 바다조차 법으로 닫아걸었습니다. 지리결정론이 끝내 다루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 국가의 선택이라는 요소입니다.
가장 유명한 갈림길은 정화의 원정입니다. 명나라는 1405년부터 1433년까지 일곱 차례나 아프리카까지 닿는 대항해를 벌이고도 그 거대한 원양 함대를 스스로 폐기해 버렸습니다. 흔히 중국이 스스로 대항해 시대를 포기한 순간으로 인용되는 장면입니다. 최근의 한 연구는 그 배경의 한 메커니즘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영락제는 원정 자금을 위해 제국의 정규 조세체계 바깥에 별도의 폐쇄된 재정체계를 만들고 환관을 내탕고 감독관으로 앉혀 무역의 이익을 황실이 독점했습니다. 그러자 정규 관료들은 원정 비용을 공금으로 떠안으면서도 무역 수입은 받지 못해 그들에게 해상무역은 적자인 사업이 되어 버렸습니다[^The Cessation of Zheng He's Voyages and the Beginning of Private Sailings]. 다만 여기서 한 가지는 조심해야 합니다. 이 재정의 다툼이 원정 중단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단정하면 틀리기 쉽습니다. 해금의 이념 북방의 군사 위협으로 국가 자원을 돌려야 했던 사정 유교 관료제의 반상업 정서가 함께 작용한 복합적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원양으로 나아갈 것이냐 말 것이냐가 지리가 아니라 사람들의 결정으로 갈렸다는 사실입니다.
인재가 어디로 흘러갔는가도 그런 선택의 하나입니다. 제국의 가장 영민한 사람들은 과거제를 통해 유교 경전 암기와 행정으로 빨려 들어갔고 자연과학과 공학으로 이어지는 누적된 직업의 길은 좀처럼 제도로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조지프 니덤이 던진 저 유명한 물음 곧 고대와 중세 내내 기술에서 앞섰던 중국이 왜 근대 과학과 산업혁명을 낳지 못했는가 하는 물음에 한 경제학자는 과거제가 인재의 물길을 돌려 과학적 발견의 누적을 막았다는 가설로 답했습니다. 다만 이걸 유교가 발전을 가로막았다는 문화결정론으로 끌고 가면 엘빈도 웡도 프랑크도 모두 이를 부정합니다. 문화의 결함이 아니라 유인의 구조가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안드레 군더 프랑크는 한 발 더 나아가 1800년 무렵까지 세계경제는 줄곧 아시아가 특히 중국이 중심이었고 서양의 부상은 일시적인 일탈에 가깝다고까지 보았습니다. 유럽은 우월해서가 아니라 신대륙에서 캐낸 은을 들고 이미 번창하던 아시아 시장에 입장권을 산 변두리의 손님이었다는 것입니다[^ReOrient: Global Economy in the Asian Age (review)]. 애덤 스미스조차 당시 중국을 유럽의 어느 곳보다 부유한 나라라고 적었습니다. 프랑크의 관점에서는 모리스의 지수마저도 발전을 오늘의 서양 최대치로 정의해 둔 탓에 이미 유럽중심의 도구입니다.
극동아시아의 한국 출신 입장에서 말을 조금 보태면. 조선 후기에는 실학이라는 흐름이 있었습니다. 박제가는 수레와 벽돌과 무역을 늘리자고 했고 정약용은 토지와 행정의 제도를 통째로 뜯어고치자고 했으며 더러는 청나라를 통해 들어온 서양의 기술과 지식에 조심스레 눈을 돌렸습니다. 만약 이 흐름이 조정의 중심으로 올라 정책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은 한국의 역사 교육이 오래 품어 온 아쉬움입니다. 그러나 실학은 끝내 변방의 학문으로 머물렀습니다. 그것을 받아 안고 밀어붙일 국가의 의지가 그 의지를 떠받칠 상인과 기술자의 두터운 층이 그리고 그것을 절박하게 만들 외부의 압력이 제때 함께 모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학을 생각하면 모리스의 매끄러운 추세선이 무엇을 지우는지가 가장 아프게 다가옵니다. 그 추세선 위에서 조선은 그저 동쪽 일시적 고점의 한 점일 뿐이지만 그 한 점 안에는 다른 길을 모색하던 사람들과 그 길이 끝내 열리지 않은 수많은 이유가 빼곡히 들어 있습니다. 지수는 결과만 기록하고 열리지 않은 문은 기록하지 않습니다.
조선과 일본을 나란히 놓으면 모리스의 거시 지수가 절대 잡아내지 못하는 차이가 드러납니다. 둘은 똑같이 바다를 닫았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쇄국은 완전한 고립이 아니었습니다. 나가사키의 데지마에는 네덜란드 상관이 열려 있었고 중국과의 교역 쓰시마를 통한 조선과의 통로 사쓰마를 통한 류큐와의 통로까지 네 개의 입이 열려 있었습니다[^Foreign Relations in Early Modern Japan: Exploding the Myth of National Seclusion]. 일본은 그 데지마를 통해 난학 곧 네덜란드를 통한 서양 학문을 들여와 메이지의 도약을 위한 밑천을 비축했습니다. 조선의 창은 그보다 더 좁았습니다. 똑같은 쇄국이라는 단어 아래의 이 미세한 개방도 차이가 19세기에 두 나라의 운명을 갈랐습니다. 1000점짜리 거시 지수로는 이런 차이를 보기 어렵습니다. 추세선은 매끄럽게 그려지지만 실제 역사는 데지마라는 손바닥만 한 섬 위에서 갈라졌습니다.
그런데 동양과 서양만 그리는 이 구도에는 처음부터 빠진 축이 있습니다. 둘 사이를 잇는 중동입니다. 사실 모리스의 책에서 중동이 빠진 것은 아닙니다. 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모리스가 말하는 서양은 유럽이 아닙니다. 그것은 비옥한 초승달지대 곧 중동과 이집트에서 발원해 서쪽으로 옮겨 간 발전의 핵심부를 가리킵니다[^Why the West Rules—For Now (Kirkus Reviews)]. 핵심부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지중해로 지중해에서 북서유럽으로 다시 북미로 옮겨 갑니다. 그러니 중동은 책에서 빠진 것이 아니라 서양이라는 이름 아래 삼켜진 것입니다. 결과는 이상합니다. 인류사의 대부분 기간 동안 서양이 앞섰다는 지수상의 우위는 사실 대부분이 중동의 우위였습니다. 농업도 첫 도시도 첫 문자도 모두 중동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서양이라는 명명이 그 공을 끝내 유럽으로 옮겨 놓습니다. 측정 이전에 이름 붙이기에서부터 좌표는 이미 기울기 시작합니다.
중동이 단지 출발점이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9세기 바그다드의 지혜의 집에서는 그리스와 페르시아와 인도의 지식을 아랍어로 옮기고 키웠습니다. 무슬림과 기독교도와 유대인 학자가 나란히 앉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갈레노스와 유클리드와 프톨레마이오스를 번역하고 주석을 달았고 대수학과 광학과 의학과 천문학이 그 자리에서 꽃피어 근대 과학의 토대가 되었습니다[^How Ancient Greek Knowledge Reached the Western World Through the Islamic Golden Age]. 유럽이 가라앉아 있던 동안 문명의 연속성을 지킨 것은 중동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리즘이라 부르는 말은 그 시절 바그다드에서 대수학의 기초를 놓은 알콰리즈미의 이름에서 왔고 빛과 시각의 원리를 실험으로 따진 이븐 알하이삼은 근대 광학의 먼 선구로 꼽힙니다. 르네상스가 다시 펼쳐 든 그리스의 책들도 상당수는 이 아랍어 번역과 주석을 거쳐 유럽으로 돌아간 것이었습니다. 모리스의 지수에서 이 시기 서양의 우위는 정확히 말하면 이슬람 세계의 우위입니다. 동양이 앞섰다는 그 1200년과 시기가 겹치는데 그 안에는 동도 서도 아닌 중동이라는 제3의 정점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두 추세선만으로 그린 그래프는 이 정점을 서양의 한 점으로 흡수해 지워 버립니다.
중동은 또한 동과 서를 이었습니다. 재닛 아부루고드는 13세기의 세계체제에서 중동이 동과 서의 경제적 잠재력이 균형을 이루던 지리적 지렛목이었다고 분석했습니다. 단일한 패권 없이 북서유럽에서 중국까지 이어지는 교역망이 있었고 16세기 유럽의 세계체제는 바로 이 중동과 인도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더 오래된 체제에서 자라났다는 것입니다[^Before European Hegemony: The World System A.D. 1250-1350]. 실크로드를 따라 화약과 종이와 나침반 같은 동방의 기술이 서쪽으로 흘러갈 때 중동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번역하고 개량해 다시 흘려보내는 능동적인 매개였습니다. 그러니 동과 서라는 이분법 자체가 그 사이에 놓인 중동이라는 매개를 지워 버린 추상입니다. 두 핵심부만 그리면 그 사이 1만 킬로미터의 교류망과 그 위에 선 제3의 문명이 통째로 사라집니다.
이 교류망을 한때 가장 넓게 펼쳐 놓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몽골이었습니다. 13세기 몽골 제국은 동쪽 끝의 고려에서 서쪽 끝의 페르시아까지를 한 우산 아래 묶었고 그 우산 아래에서 사람과 물건과 기술과 병균이 전에 없던 속도로 오갔습니다[^Mongol Empire]. 화약과 인쇄술과 나침반이 서쪽으로 흘러간 것도 흑사병이 동에서 서로 번진 것도 이 길을 따라서였습니다. 동과 서를 가른 것이 지리라면 그 지리를 가로질러 둘을 한 몸으로 엮은 것은 말과 길과 제국이라는 사람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동양과 서양을 처음부터 독립적으로 발전해 온 두 문명으로 그리는 것은 실은 두 문명이 천 년이 넘도록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아 온 사실을 지우는 일입니다. 모리스의 두 추세선은 나란히 그려지지만 역사의 두 추세선은 끊임없이 서로를 건드리고 있었습니다.
중동에는 중동 나름의 장기 분기가 있었습니다. 티무르 쿠란은 서기 1000년 무렵 중동 경제가 적어도 유럽만큼은 앞서 있었으나 1800년에는 크게 뒤졌다고 진단하면서 그 원인을 지리도 식민도 이슬람 신앙 자체도 아닌 이슬람 법제도에서 찾습니다. 초기에는 이로웠던 법제도가 10세기부터 발목을 잡았다는 것입니다. 상속법이 성공한 사업체의 자본을 잘게 쪼갰고 법인이라는 개념이 없어 큰 조직이 오래 살아남지 못했으며 종교 기부 재산인 와크프는 한 번 묶이면 풀리지 않을 만큼 경직되어 있었습니다[^The Long Divergence: How Islamic Law Held Back the Middle East]. 여기에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오스만의 교역로 통제가 겹쳐 유럽이 아예 아프리카를 돌아가는 항로를 개척할 동기를 얻었고 그렇게 열린 대서양 항로가 중동을 우회하면서 지렛목의 지위가 무너졌습니다[^Cape Route]. 여기서 눈에 띄는 평행이 있습니다. 쿠란이 말하는 제도의 발목 잡기는 엘빈이 말한 고수준 균형의 함정과 그리고 동아시아의 해금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한때 앞섰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무언가가 어긋났다는 구조가 세 지역에서 똑같이 반복됩니다. 동아시아도 중동도 유럽도 결국 같은 분기 논쟁의 서로 다른 변주였던 셈입니다.
화석연료라는 척도로 보면 중동의 어긋남은 가장 잔인합니다. 분기의 결정적 연료는 석탄이었는데 중동에는 접근할 만한 석탄이 거의 없었습니다. 중동의 화석연료는 석유였지만 석유가 경제적 가치를 얻은 것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곧 내연기관과 정유가 등장한 다음이었습니다. 산업혁명이 이미 끝난 뒤였다는 뜻입니다[^Oil and the Rentier State in the Middle East]. 그래서 석유는 중동 자신의 산업혁명을 끌어가지 못하고 이미 산업화한 열강이 퍼 가는 원자재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세계 에너지의 심장인 그 땅이 정작 에너지 전환의 결정적인 순간에는 잘못된 연료를 깔고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연료가 가치를 얻었을 때에는 이미 퍼 가는 대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동양과 중동이 화석연료에 늦은 이유를 한데 모으면 결국 세 겹입니다. 자원이 어디에 무엇으로 있었는가 그것을 쓸 수요와 동기가 있었는가 그리고 그것을 폭발시킬 증기기관과 과학과 공장이라는 보완 기술을 누가 먼저 쥐었는가. 이 세 겹의 어긋남은 운명이 아니라 위치와 유인과 타이밍의 누적입니다. 모리스는 이걸 지리적 개연성이라는 한마디로 묶지만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다시 해금과 고수준 균형 같은 동방의 선택과 구조가 들어앉아 있습니다. 화석연료조차 순수한 지리가 아니라 지리와 선택이 함께 빚은 결과입니다.
여기까지 살펴보고 나면 처음의 기시감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동방이 1200년을 앞서다 화석연료의 충격으로 역전당한다는 이 추세선은 본질적으로 거대한 충격과 반응의 이야기입니다. 충격과 반응이라는 틀은 페어뱅크와 그의 동료가 정식화한 뒤 아편전쟁에서 불평등조약으로 자강운동의 좌절에서 혁명으로 이어지는 순서로 한국과 중국과 일본의 교과서에 스며들었습니다. 정체된 동아시아가 서구의 충격을 받고서야 비로소 근대에 들어섰다는 서사입니다. 그런데 폴 코언은 이 틀을 통렬하게 비판했습니다. 충격과 반응의 틀은 서구와 무관한 중국 내부의 동학을 중요하지 않다고 지워 버리고 서구의 역할을 과장하며 중국을 끝내 서구사의 렌즈로만 읽는 유럽중심의 왜곡이라는 것입니다[^Discovering History in China]. 그가 페어뱅크에게 던진 이 비판은 거의 그대로 모리스에게 적용됩니다. 동아시아의 역사교육이 이미 한 세기 전에 내면화한 그 틀을 모리스는 1000점짜리 지수로 다시 포장했을 뿐인지도 모릅니다. 책을 펼쳤을 때 느꼈던 그 익숙함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같은 19세기를 세 나라가 얼마나 다르게 가르치는지를 보면 동양이라는 단어를 하나로 묶는 일이 얼마나 위태로운지가 드러납니다. 중국은 아편전쟁부터 1949년까지를 백년국치 곧 치욕의 세기로 가르칩니다. 1989년 이후 강화된 애국주의 교육의 핵심이자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구호의 정서적 토대입니다[^The National Humiliation Narrative]. 이 서사는 추락을 외세의 침탈로 전면화해 해금이나 정화의 중단이나 양무운동의 한계 같은 내부의 결정보다 외부의 가해를 앞세웁니다. 일본은 정반대로 가르칩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1885년의 탈아론에서 청과 조선의 낡은 틀을 버리고 서구 문명에 합류하자고 주장했고 메이지 유신과 화혼양재와 부국강병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유일의 따라잡기 성공이라는 서사가 거기서 자랍니다[^Datsu-A Ron]. 다만 그 성공 서사는 곧장 제국주의와 식민 지배의 명분이 되었다는 어두운 면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는 기억 속에 오래 새겨진 바로 그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왜 우리는 식민지가 되었는가. 일제 식민사학은 정체성론을 들어 조선이 봉건이나 중세 단계에도 이르지 못한 채 정체했고 스스로 근대화할 수 없어 일본의 지도가 필요했다고 규정했습니다. 이에 맞서 민족사학은 내재적 발전론 곧 자본주의 맹아론을 들어 조선 후기에 이미 농업의 상업화와 수공업의 발달 같은 자생적인 자본주의의 싹이 있었으나 일제가 그 싹을 잘랐다고 반박했습니다[^Sprouts of capitalism]. 이 맹아의 실재 여부는 지금도 학계에서 다투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세 나라의 서로 다른 서사가 공유하는 깊은 구조는 하나입니다. 모두가 왜 우리는 서양에 그리고 일본에 뒤졌는가라는 방어적이고 상처 입은 물음에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모리스의 책을 읽는 동아시아에서 읽는 이는 두 개의 함정 사이에 놓이게 됩니다. 모리스가 그리는 정체와 추월의 추세선은 식민사관의 정체성론과 구조가 똑같습니다. 둘 다 동양이 어느 순간 멈춰 서서 추월당했다고 말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모리스의 정체론에는 과학의 외피가 입혀져 있다는 점입니다. 숫자로 된 정체론은 더 반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첫 번째 함정은 이 추세선을 식민사관식 정체론으로 흘러가는 길입니다. 우리는 원래 멈춰 있었고 그래서 뒤처졌다고 받아들이는 길. 그런데 반대편 함정도 똑같이 위험합니다. 백년국치식의 외부 가해론으로 도망쳐 모든 것을 서구와 일본의 침탈 탓으로 돌려 버리는 길입니다. 이 두 번째 길은 마음 편하지만 해금과 정화의 중단과 실학의 주변화 같은 우리 안의 결정들을 가립니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 교육이 던지는 자성적인 물음 곧 우리 안의 무엇이 그 결과를 불렀는가라는 물음이 오히려 그 내부의 결정들을 직시하는 데 가장 잘 맞는다는 점입니다. 외부 조건만 다루는 모리스의 지리와 우연 그리고 외부 가해만 다루는 백년국치 사이에서 동아시아에서 취할 수 있는 입장은 남 탓과 자책 사이의 좁은 균형점입니다. 부끄러움 없이 그러나 운명론 없이 우리 안의 결정을 직시하는 입장. 이 입장이 이 책을 한국에서 읽을 때에만 가능한 제3의 관점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근본적인 의심이 남습니다. 동양이라는 단위 자체가 과연 측정 가능한 대상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한국과 중국과 일본이 똑같은 쇄국 아래에서도 서로 다른 길을 갔고 그중 일본만이 따라잡기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동양이라는 단일한 핵심부를 묶는 모리스의 전제를 안쪽에서부터 흔듭니다. 흥미롭게도 모리스의 후예라 할 정량 역사학이 이 의심에 힘을 보탭니다. 피터 튀르친이 이끄는 세계사 데이터베이스는 30개 지역 414개 사회를 분석해 사회의 복잡도가 사실상 하나의 축으로 환원된다는 것을 보였습니다[^Quantitative historical analysis uncovers a single dimension of complexity]. 발전을 한 숫자로 줄이려던 모리스의 도박을 데이터로 일부 입증한 셈이지만 동시에 복잡도가 정말 한 축이라면 서양 대 동양이라는 이분 자체가 측정의 단위로 적절한가라는 더 근본적인 물음이 따라옵니다. 빈 웡이 제안한 상호적 비교가 바로 이 물음의 다른 이름입니다. 유럽을 보편의 척도로 놓고 중국을 그 척도로 재는 대신 중국을 척도로 삼아 유럽을 역방향으로 분석하자는 것입니다. 동양 대 서양이라는 구도 자체가 어쩌면 19세기의 충격과 반응론과 일제의 식민사관이 함께 빚은 근대의 발명품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책을 마무리하며 기준을 한 번 옮겨 놓았습니다. 만점의 눈금 0을 오늘의 서양에서 떼어 내면 좌표는 다시 평평해집니다. 기울기가 없는 좌표에서는 같은 역사가 여러 방향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는 기울어진 좌표에서 아래로 향한 것이 아니라 허수축과 같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중동은 우회당한 길목에서 멈춰 선 것일 뿐 처음부터 낮은 위치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서양의 도약은 유일한 기적이 아니라 유라시아 곳곳에서 일어난 정점과 정체의 이야기 가운데 마침 세 번째로 찾아온 차례였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렇게 좌표를 수평으로 되돌려 놓는 것 또한 하나의 해석이고 이 해석이 모리스의 좌표보다 무조건 옳다고 우길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적어도 그렇게 읽는 편이 동아시아 관점에서는 더 정직한 경우가 많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의 제목에는 지금은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영어로는 for now입니다. 모리스 자신도 이 편향이 영원하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모리스는 자신의 추세선을 미래로 연장해 현재의 추세가 이어진다면 머지않아 동양이 다시 서양을 앞지를 수 있다고 내다봅니다[^Morris's "Why the West Rules — For Now" Part II]. 기준점이 다시 동쪽으로 옮겨 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대목에서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한 사람이 하루에 태우는 칼로리로 문명을 재던 그 지수가 이번에는 동쪽을 가리키기 시작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수의 방향이 우리 쪽으로 돌아오는 것을 반가워하려는 순간 다시 그 눈금 0을 떠올리게 됩니다. 바늘이 어느 쪽을 가리키든 잰다는 행위 자체가 누군가의 기준점을 중심으로 삼는 일임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울에서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그 바늘이 마침내 우리를 가리키기를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그 지수를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끝까지 묻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앞선다는 것과 잘 산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고 더더욱 그 둘은 같은 방식으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리스에게 마지막으로 공정한 평가를 돌려드립니다. 모리스는 자신의 가정을 숨기지 않고 표 위에 죄다 펼쳐 두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그 지수의 기준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좌표가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는지를 조목조목 따져 볼 수 있었습니다. 반박을 허용하는 책만이 이런 대화를 허락합니다. 모리스가 깔아 둔 공용의 좌표 위에서 이를 반박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그 책의 가장 큰 미덕입니다. 다만 다음에 누군가 16000년의 역사를 하나의 숫자로 다시 그리려 한다면 그때는 눈금 0을 어디에 둘지부터 그리고 이 지수 위에 동과 서만 올릴지 아니면 그 사이의 중동까지 올릴지부터 먼저 물어 주었으면 합니다.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가 이미 절반의 결론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충분히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지수의 기준점이 언젠가 뉴욕에서 조금 더 동쪽으로 옮겨 가는 날을 기다려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