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전환
1944년에 나온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챕터와 세계사의 전환점을 따라 다시 읽으며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유토피아가 어떻게 사회를 갈아 넣었는지 또 그 맷돌이 다시 돌기 시작한 지금 우리가 무엇을 읽어낼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비가 오는 저녁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배달 라이더를 봅니다. 헬멧 안쪽으로 휴대폰 화면이 희미하게 빛나고 그 화면에는 다음 콜과 단가가 실시간으로 떠 있었습니다. 빗줄기가 굵어지면 단가가 조금 오르고 주문이 몰리는 시간대가 지나면 다시 내려갑니다. 한 사람의 한 시간이 분 단위로 값이 매겨지고 그 값은 날씨와 수요에 따라 출렁입니다. 누가 정해 준 것도 아닌데 그 자리에 모인 모두가 화면에 뜬 숫자를 자연스러운 시세처럼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시간과 수고가 시세를 가진 물건처럼 거래되는 이 풍경을 가만히 생각하면 그것이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풍경을 80여 년 앞서 설명해 둔 책이 한 권 있습니다. 1944년에 나온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입니다[^The Great Transformation (book)]. 이 책에서 폴라니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를 빌려 산업 문명을 "사탄의 맷돌"이라고 불렀습니다. 곡식 대신 사람과 땅과 돈을 집어넣어 상품이라는 고운 가루로 빻아 내는 맷돌입니다. '거대한 전환'은 이 맷돌이 언제 처음 돌기 시작했고 무엇을 갈았으며 어쩌다 건물째 무너져 두 번의 세계대전과 파시즘을 불러왔는지를 추적하는 책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다시 읽는 일은 단지 옛 경제사를 읽는 일이 아니라 우리 발밑에서 지금도 돌고 있는 맷돌의 설계도를 읽는 일에 가깝습니다.
먼저 이 맷돌을 그린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봅시다. 폴라니는 외부에서 시장을 관찰한 학자가 아니라 맷돌에 한 세계가 통째로 갈려 나가는 한복판을 살아 낸 사람입니다[^Karl Polanyi]. 1886년 빈에서 태어나 부다페스트에서 자랐고 루카치와 만하임이 드나들던 갈릴레이 서클을 만들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군 기병 장교로 러시아 전선에 나갔습니다. 1919년 우익 호르티 정권을 피해 헝가리를 떠나 빈으로 망명했고 사회민주주의가 실제로 시정을 맡아 돌아가던 이른바 붉은 빈에서 경제 주간지의 편집자로 일했습니다. 1933년 히틀러가 권력을 잡자 다시 런던으로 옮겨 노동자교육협회 강사로 생계를 꾸렸고 그 강의 노트가 훗날 이 책의 뼈대가 됩니다. 책을 완성한 곳은 전쟁 중의 미국이었고 출판은 1944년이었습니다. 전후에는 컬럼비아대에서 가르쳤지만 아내 이로나 두친스카의 공산주의 전력 때문에 미국 비자가 막혀 캐나다에 살며 뉴욕으로 통근했습니다. 그사이 나치는 그의 누이와 매부와 조카사위를 살해했습니다. 규제 없는 시장이 끝내 파시즘을 낳는다는 이 책의 차갑고 단정적인 확신은 이런 개인사를 알아야 온전히 읽을 수 있습니다.
그의 사상이 어떤 토양에서 자리잡았는지도 함께 살펴보면 책의 결을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갈릴레이 서클 시절부터 폴라니는 마르크스주의와 기독교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와 실증주의를 한꺼번에 빨아들였습니다. 특히 로버트 오언과 토니의 기독교 사회주의, G.D.H. 콜의 길드 사회주의, 페이비언의 점진주의가 그의 바탕을 이루었고 가장 권위 있는 전기인 개러스 데일의 'Karl Polanyi: A Life on the Left'는 그를 합스부르크의 부르주아 급진주의자에서 기독교 사회주의자로 옮겨 간 사람으로 그립니다[^Karl Polanyi: A Life on the Left]. 붉은 빈에서는 오토 바우어를 비롯한 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어울리며 1919년 노동자들이 평의회 공화국을 세울 힘이 있었는데도 사회민주주의의 점진주의에 막히는 모습을 곁에서 보았는데 이 경험이 훗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충돌이라는 그의 분석으로 이어집니다[^Karl Polanyi's Great Transformation and the Countermovement to Capitalism]. 같은 시기에 그는 미제스나 하이에크 같은 자유시장 이론가들과 직접 맞붙었습니다. 사회주의에서는 합리적 계산이 불가능하다는 미제스의 공격에 맞서 사회주의 회계의 가능성을 따지는 논쟁에 뛰어든 것입니다[^Karl Polanyi]. 이 모든 경험이 모여 그는 경제를 사회와 문화에서 떼어 낼 수 없다고 보는 실체주의의 길로 갔습니다.
그의 동생은 과학철학자 마이클 폴라니입니다[^마이클 폴라니]. 동생이 모든 앎은 명시적 규칙으로 환원되지 않는 암묵지 위에 선다고 본 것과 형이 경제를 명시적 시장 법칙으로 환원할 수 없다고 본 것은 한 형제가 서로 다른 영역에서 같은 직관을 끝까지 밀고 나간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칼 폴라니에게 '거대한 전환'은 한 번의 저작으로 끝난 작업도 아니었습니다. 전후 컬럼비아대 시절 그는 포드재단의 지원을 받아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그리스의 경제를 파고들었고 1957년에는 제자들과 함께 '초기 제국의 교역과 시장'을 펴내며 시장 없이도 인류가 어떻게 교역하고 분배했는지를 실증하려 했습니다[^Karl Polanyi]. 경제가 사회에 묻혀 있었다는 명제를 그는 평생에 걸쳐 더 깊은 역사로 뒷받침해 나갔습니다.
그렇다면 책 제목에 들어간 '거대한 전환'은 무엇에서 무엇으로의 전환을 말하는 것일까요. 경제가 사회 속에 묻혀 있던 상태에서 거꾸로 사회가 시장 속에 묻히는 상태로의 역전입니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에서 경제는 따로 떨어진 영역이 아니라 친족과 이웃과 신앙과 관습 안에 잠겨 있었습니다. 폴라니의 표현으로 "인간의 경제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사회 관계 속에 잠겨 있"었고 생산과 분배는 사회 원리로 조직되었습니다. 시장은 사회의 한 기능이었을 뿐 사회를 지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9세기에 처음으로 시장이 사회에서 갈라져 나와 거꾸로 사회를 자기 법칙에 복속시키는 '시장 사회'가 등장합니다. 시장을 사회 안에 두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시장 안에 집어넣으려는 시도였습니다[^Embeddedness]. 폴라니가 빌려 온 이 내재와 탈내재의 구분은 멀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공동체의 번영을 향한 자연스러운 경제와 부의 획득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부자연스러운 경제를 갈랐던 데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Karl Polanyi and the antinomies of embeddedness]. 그리고 이 탈내재의 시도 한가운데에는 한 번도 실현된 적 없는 유토피아가 있었습니다. 폴라니는 오직 시장만이 경제를 조정하는 자기조정 시장이란 "냉혹한 유토피아"이며 인간과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서는 단 한순간도 존재할 수 없는 환상이라고 못박았습니다[^The Great Transformation Part 1 Summary & Analysis].
이 진단이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는 점을 폴라니는 역사인류학으로 뒷받침합니다. 그는 이익을 좇는 경제 행동이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본성이라는 고전 경제학의 대전제를 정면으로 부정합니다. 원시 공동체에서 개인은 물질적 재화의 사적 이익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권리와 자산을 지키려 행동했고 노동을 움직이는 동기도 이익이 아니라 상호성과 경쟁과 일의 즐거움과 사회적 인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역사적 경제 체제가 상호성과 재분배와 가정경제라는 세 원리의 조합으로 짜여 있었음을 말리노프스키 같은 인류학자의 자료를 끌어 와 보여 줍니다[^The Great Transformation (book)]. 이익 동기가 인간의 자연이 아니라 특정 제도가 길러 낸 습성이라면 그 위에 세운 자기조정 시장이야말로 자연이 아니라 역사상 전례 없는 예외가 됩니다. 맷돌은 인류가 늘 돌려 온 도구가 아니라 어느 날 새로 지어 올린 기계였습니다.
시장의 기원에 대한 통념도 그는 같은 방식으로 뒤집습니다. 시장이 인간의 물물교환 본능에서 마을 안에서 싹터 점점 커졌다는 진화론적 서사는 역사적으로 틀렸다는 것입니다. 시장의 기원은 공동체 안이 아니라 다른 집단과의 대외무역에 있었고 그것은 평화로운 교환이라기보다 모험과 탐험과 약탈과 전쟁에 가까웠습니다. 중세 도시들은 오히려 원거리 무역의 불안정한 자본이 지역 살림을 부수지 못하도록 마을 장터와 원거리 무역을 엄격하게 갈라 두었습니다. 전국을 하나로 묶는 단일 시장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중상주의 국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결과였습니다[^The Great Transformation: Connexions Archive].
토지가 단순한 생산요소가 아니라는 통찰은 이미 책의 한 장 제목에 들어 있습니다. 폴라니는 한 장을 통째로 '삶의 터전이냐 경제 개발이냐'라는 물음에 할애합니다. 같은 땅을 두고 거기서 대대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터전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더 높은 수익을 뽑아낼 개발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의 대립입니다. 그는 시장이라는 틀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개발만 밀어붙이면 오히려 농촌이 피폐해진다는 점을 스페인 목양업의 실패로 보여 줍니다. 토지를 사람과 공동체에서 떼어 내 부동산 시장의 한 항목으로 만드는 일은 그래서 단순한 경제 조치가 아니라 한 공동체의 살림 전체를 들어내는 사건이었습니다. 개발이 곧 진보라는 말을 폴라니가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맷돌이 이 유토피아를 갈아 내려면 갈아 넣을 재료가 있어야 합니다. 폴라니가 지목한 재료가 바로 노동과 토지와 화폐입니다. 그는 이 셋을 '허구적 상품'이라고 불렀습니다[^Fictitious commodities]. 노동은 인간의 삶 그 자체이고 토지는 자연의 다른 이름이며 화폐는 구매력의 기호일 뿐입니다. 셋 다 팔기 위해 생산된 물건이 아닙니다. 그런데 자기조정 시장이 작동하려면 이 셋마저 사고팔 수 있는 상품으로 취급해야만 합니다. 폴라니는 바로 이 지점에서 결정적인 한 문장을 적습니다. 노동과 토지와 화폐가 상품이라는 전제는 완전히 허위인데도 마치 상품인 것처럼 여기는 이 허구가 사회의 조직 원리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노동력으로, 자연을 부동산으로, 신용을 통화로 갈아 넣는 순간 맷돌은 사회의 살과 흙과 피를 함께 빻기 시작합니다. 비 오는 사거리의 라이더가 화면 속 단가로 환원되는 그 순간이야말로 폴라니가 말한 허구적 상품화의 가장 작고 가장 일상적인 한 단면입니다.
이 맷돌에 대해 흔히 하는 가장 큰 오해는 그것이 저절로 돌기 시작했다는 생각입니다. 시장은 인간의 물물교환 본능에서 자연스럽게 솟아났고 국가는 그저 비켜서 있기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폴라니는 이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습니다. 전국 규모의 시장은 자연발생이 아니라 중상주의 국가가 계획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며 자유방임으로 가는 길은 오히려 중앙에서 조직하고 통제하는 끊임없는 정부 개입으로 닦였다는 것입니다. "자유방임은 계획되었다"는 이 역설은 책 전체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명제입니다[^The Great Transformation (book)]. 맷돌은 자연의 바람으로 도는 풍차가 아니라 누군가 설계하고 누군가 손잡이를 돌리는 기계였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 기억해도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됩니다.
폴라니가 맷돌이 처음 돌아간 자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곳은 뜻밖에도 16세기 튜더 시대의 종획운동입니다. 지주들이 공유지에 울타리를 두르고 농경지를 양을 치는 목초지로 바꾸며 수백 년간 그 땅에서 살던 농민을 몰아낸 사건입니다. 토마스 모어가 "양이 사람을 먹어치운다"고 적었던 바로 그 일입니다[^인클로저]. 그런데 폴라니가 여기서 끌어내는 교훈은 종획운동이 나빴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변화의 속도입니다. 종획은 가난한 자들을 향한 부자들의 혁명이었지만 튜더 왕조와 초기 스튜어트 왕조가 왕권을 발동해 그 속도를 사회가 견딜 만한 수준으로 늦춘 덕분에 영국은 그 재난을 치명적인 파국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변화의 방향이 옳고 그른가보다 변화의 속도가 사회의 생존을 가른다는 이 통찰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원리이고 오늘날 모든 급격한 전환을 가늠할 때 가장 먼저 꺼내 볼 만한 잣대이기도 합니다.
맷돌이 본격적으로 사람을 갈기 시작한 전환의 순간을 폴라니는 1795년의 작은 결정에서 찾습니다. 그해 5월 영국 버크셔의 한 여관에 모인 치안판사들이 빵 가격과 가족 수에 연동해 임금을 보조하는 제도를 선언했습니다. 임금이 아무리 낮아도 공공기금에서 차액을 메워 최저 생계를 보장하는 스피넘랜드 제도입니다[^From Basic Income to Poor Law and Back Again: Part 1]. 나폴레옹 전쟁으로 곡물 값이 치솟고 프랑스혁명의 충격으로 지배 계급이 떨던 시기에 나온 구체제 온정주의의 마지막 몸짓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역설적이었습니다. 임금을 깎아도 기금이 메워 준다는 사실을 안 고용주들은 임금을 바닥까지 내렸고 일하든 안 하든 비슷한 처지가 된 노동자들은 차츰 구호 대상 극빈자로 가라앉았습니다. 폴라니는 이 제도가 노동 시장의 형성을 약 40년간 가로막은 동시에 노동자를 "안락한 비참"에 가둔 실패였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피넘랜드를 연구하는 일이 곧 19세기 문명이 어떻게 태어났는가를 연구하는 일이라고까지 적었습니다.
전환의 다음 순간은 1834년입니다. 신구빈법이 스피넘랜드를 폐지하고 이른바 열등처우 원칙에 따라 구빈원을 일부러 감옥보다 못하게 만들어 사람들이 제 발로 시장 임금을 받아들이도록 몰아넣었습니다[^From Public Charity to Putting the Poor to Work: On the Speenhamland System]. 살 권리를 보장하던 자리에 굶주림의 공포를 다시 들여놓은 것입니다. 바로 이 순간에 전국적 노동 시장이 처음으로 작동하기 시작했고 노동이라는 허구적 상품이 비로소 맷돌 안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이 상품화에는 늘 그것을 정당화해 주는 사상이 따라붙었습니다. 맬서스는 인구가 식량보다 빠르게 늘어 빈곤은 자연법칙의 불가피한 결과라고 했고 리카도는 노동 임금이 생존 수준에 머무는 것을 철칙으로 규정했습니다. 타운센드는 인간을 굶주림으로 길들이는 짐승에 빗댔고 훗날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에 옮긴 스펜서의 사회다윈주의가 적자생존의 논리로 그 위에 얹혔습니다. 경제를 자연과학의 법칙으로 환원하는 이 경제주의가 없었다면 사람을 굶주림으로 떠밀어 노동 시장에 집어넣는 일은 도덕적으로 견디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맷돌은 돌면서 동시에 자기가 자연의 섭리라고 설명하는 목소리를 키웠습니다.
노동 시장이 만들어 낸 새 계급은 곧 정치적 목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 의회가 1832년 개혁법으로 중산층에게만 선거권을 넓히고 노동자를 배제하자 노동자들은 보통선거권을 요구하는 차티즘 운동으로 답했습니다[^Reform Act 1832][^차티스트 운동]. 폴라니는 경제와 정치의 제도적 분리가 더는 학문적 문제가 아니게 된 순간을 바로 여기서 가리킵니다. 노동 시장이 사람들의 삶을 짓누를수록 그들은 더 집요하게 투표권을 외쳤고 그 요구가 관철될수록 노동의 완전한 상품화가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한편 1846년 곡물법 폐지는 외국산 곡물에 매기던 높은 관세를 걷어 내 지주 계급에 대한 제조업 자본가의 승리를 확정했고 자유무역 원리를 전국에 관철했습니다[^거대한 전환(칼 폴라니) 요약]. 시장을 푸는 힘과 사람을 지키려는 힘이 같은 의회 안에서 동시에 맞붙기 시작한 것입니다.
같은 시기 국제 무대에서는 또 다른 맷돌이 돌고 있었습니다. 폴라니가 백년 평화라고 부른 1815년부터 1914년까지의 시기입니다. 유럽 강대국 사이에 대규모 전쟁이 거의 없었던 이 한 세기를 그는 군사적 억제의 결과가 아니라 국제 금융 자본의 이해관계가 빚은 부산물로 해석합니다. 로스차일드 같은 초국적 금융 집단, 그가 오트 피낭스라고 부른 세력은 각국 정부에 돈을 빌려주고 있었기에 전쟁이 나면 채무 불이행으로 자기 자산이 위태로워졌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평화가 곧 이익이 되도록 강대국을 묶어 두는 기제로 움직였습니다. 이 주장은 후대의 실증 연구에서도 상당한 근거를 얻습니다. 케임브리지의 한 연구는 19세기 글로벌 자본 시장의 독점적 중개력이 실제로 평화의 도구였으며 평판 높은 금융 중개인이 평화 유지를 조건으로 돈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전쟁을 억눌렀다고 분석합니다[^The Peaceful Conspiracy: Bond Markets and International Relations During the Pax Britannica]. 평화조차 도덕적 이상이 아니라 맷돌이 잘 돌아가기 위한 조건이었습니다.
다만 이 백년 평화는 어디까지나 유럽 안의 평화였습니다. 같은 시기 유럽 밖에서는 아프리카가 분할되고 아시아가 아편전쟁으로 강제로 열렸습니다[^아프리카 분할][^아편 전쟁]. 자기조정 시장이 내부에서 채우지 못한 원자재와 값싼 노동과 새 시장을 폭력으로 바깥에서 끌어오는 과정이 제국주의였고 그것은 금본위제의 국제적 확산과 맞물려 19세기 세계 경제를 완성했습니다. 미국이 비교적 오래 자기조정의 환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1890년대 프런티어가 닫히기 전까지 노동과 토지와 화폐가 사실상 무한히 공급되었기 때문이라고 폴라니는 봅니다[^Frontier Thesis]. 빈 땅과 새 이민과 풍부한 신용이 맷돌에 끝없이 재료를 대 주는 동안에는 맷돌이 사회를 갈고 있다는 사실이 잘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맷돌이 사람과 땅과 돈을 그대로 갈아 버리도록 사회가 가만히 두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서 폴라니의 가장 유명한 개념인 이중운동이 등장합니다[^The Great Transformation (book)]. 시장을 풀어 놓으려는 자유화의 힘이 한쪽에서 밀면 다른 쪽에서는 사회가 본능적으로 자기를 지키려는 보호의 힘으로 맞밉니다. 노동자의 건강과 가족과 주거가 무너지고 삼림이 벌거숭이가 되고 강이 오염되자 노동조합과 공장법과 사회보험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났습니다. 1833년의 아동 노동 규제와 1847년의 10시간 노동제가 그 첫 물결이었습니다[^Factory Acts]. 마르크스는 1847년 공장법을 사회주의의 첫 승리라고 불렀지만 폴라니는 그 입법을 주도한 쪽이 오히려 인도주의적 보수파였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독일에서 사회보험을 처음 도입한 쪽도 비스마르크라는 보수적 국가주의자였습니다[^Otto von Bismarck]. 사회의 자기보호는 어느 한 계급의 이익이 아니라 여러 계급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힌 곳에서 솟아났다는 것입니다. 맷돌에 모래를 끼얹는 손은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토지의 상품화를 폴라니는 노동 못지않게 무겁게 다룹니다. 전통 사회에서 토지는 친족과 이웃과 농업 기술과 신앙과 촌락과 길드와 교회에 분리할 수 없이 얽혀 있었습니다. 그것을 이 모든 관계에서 떼어 내 부동산 시장의 작동 조건에 복속시키는 일이야말로 시장경제 유토피아의 절대적 핵심이었고 19세기 내내 이어진 산림 벌채와 강 오염과 토양 침식은 그 상품화가 치른 직접적 대가였습니다. 토지 시장의 확립이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생태와 공동체를 함께 부수는 사건이라는 이 통찰은 훗날 환경경제학과 공유지 이론의 선구가 됩니다. 기후 위기 앞에 선 지금 다시 읽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모래가 쌓일수록 맷돌도 삐걱거리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노동과 토지와 화폐에 시장이 정말로 작동하면 사회가 부서지므로 사회는 자기를 지키려 들고 그 보호 장치가 거꾸로 자기조정 시장의 작동을 막습니다. 이 모순이 처음으로 전 세계 규모에서 터진 순간이 1873년의 장기불황입니다. 미국과 유럽을 덮친 이 불황은 짧게 보아도 20년 가까이 물가 하락과 실업을 끌고 갔습니다. 미국만 보아도 1873년 가을부터 1879년 봄까지 이어진 수축기는 약 65개월로 기록상 가장 긴 축에 들고 1878년 실업률은 8퍼센트를 넘었으며 1870년대에 명목임금이 약 4분의 1이나 떨어졌습니다[^Long Depression]. 같은 기간에 철 생산은 두 배 넘게 늘고 강철 생산은 스무 배가 되었습니다. 물건은 더 많이 쏟아지는데 값이 무너지는 전형적인 디플레이션 불황이었습니다. 각국은 보호관세와 사회 입법으로 자국 경제를 감싸기 시작했고 이중운동의 보호 축이 국가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움직였습니다.
같은 시기에 벌어진 논쟁, 곧 금만 화폐의 바탕으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금과 은을 함께 바탕으로 삼을 것인가를 둘러싼 다툼도 단순한 화폐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미국 농민들이 은본위제를 요구한 것은 금본위제가 강요하는 디플레이션이 그들의 부채 부담을 키웠기 때문입니다. 1873년 주화법이 은을 화폐에서 밀어내며 금본위로 기울자 농민들은 그것을 '1873년의 범죄'라고 불렀습니다[^Long Depression]. 화폐라는 허구적 상품을 누가 어떤 모양으로 빚을 것인가는 그 자체로 격렬한 사회적 다툼이었던 것입니다. 화폐 공급을 시장에 완전히 맡기면 통화가 출렁이고 물가가 급락하며 기업이 연쇄도산해 생산 조직 자체가 무너집니다. 통화 가치가 10퍼센트에서 30퍼센트씩 떨어지는 와중에도 임금과 계약에 묶인 비용은 곧바로 내려가지 못하므로 기업이 먼저 쓰러지는 가격 수준 하락의 문제를 폴라니는 가리켰는데 이는 훗날 케인스가 다듬을 통찰을 한발 앞서 건드린 대목이기도 합니다. 중앙은행은 바로 이 파괴를 막으려는 방어 장치로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중앙은행이 통화를 관리하는 순간 금본위제가 내세운 자동적 자기조정이란 허구임이 스스로 드러납니다. 누군가 손으로 돌리고 멈추고 조이는 맷돌을 두고 저절로 도는 자연이라 부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회가 모래를 끼얹을수록 맷돌이 멈춰 서는 상황을 폴라니는 보호주의의 역설이라 부릅니다. 그래서 19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자기조정 시장은 겉으로는 유지되는 듯하면서도 속으로는 관세와 사회 입법과 중앙은행 개입이 쌓여 이미 작동을 멈춰 가고 있었습니다. 노동 문제와 토지 문제와 화폐 문제가 한꺼번에 누적되며 만들어 낸 이 긴장이 임계점을 넘는 순간 그것은 세계대전과 대공황이라는 폭발로 터져 나왔습니다. 국제 금본위제의 균열은 그 붕괴의 가장 가시적인 징후였을 뿐 원인은 훨씬 깊은 곳에 쌓여 있었습니다. 맷돌은 모래가 잔뜩 낀 채 억지로 돌다가 결국 축이 부러진 것입니다.
전환의 순간들은 20세기에 들어 점점 빨라집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과 함께 각국이 금본위제를 멈추고 통화를 풀어 전비를 댔습니다. 오트 피낭스가 평화를 강제하던 기제가 무너진 것입니다. 전쟁이 끝나자 강대국들은 사라진 19세기 체제를 인위적으로 되살리려 1920년대 내내 통화 긴축과 임금 삭감을 밀어붙였고 영국은 1925년에 전쟁 전 환율 그대로 금본위제로 돌아갔다가 수출 경쟁력 악화와 만성 실업만 떠안았습니다[^Gold standard]. 폴라니가 1920년대를 보수적이라 부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미 죽은 체제를 되살리려는 안간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안간힘이 실패하면서 1930년대는 혁명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맷돌이 건물째 무너진 결정적 순간이 1929년에서 1933년 사이입니다. 1929년 미국 주식시장 붕괴로 시작된 대공황은 금본위제라는 국제 연결망을 타고 전 세계로 번졌습니다. 금을 지키려면 국내 경기를 희생해 디플레이션을 견뎌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폴라니가 가리킨 핵심 함정입니다. 후대의 경제학도 이 진단을 뒷받침합니다. 벤 버냉키와 해럴드 제임스가 24개국 자료로 보인 바에 따르면 금본위제에 더 오래 머문 나라일수록 더 깊은 수축을 겪었고 디플레이션이 은행과 차입자의 자산을 깎아 신용을 무너뜨리며 불황을 전파했습니다[^The Gold Standard, Deflation, and Financial Crisis in the Great Depression: An International Comparison]. 1931년 영국이, 1933년 미국이 차례로 금본위제를 버린 사건은 단순한 통화 정책 변경이 아니라 자기조정 시장의 국제적 형태가 공식적으로 붕괴한 사건이었습니다. 폴라니는 이 붕괴야말로 20세기 초의 세계 경제 해체와 1930년대 문명 전체의 전환을 잇는 보이지 않는 고리였다고 적습니다. 독일에서는 금본위제를 지키려던 브뤼닝 정부의 극단적 긴축이 실업률을 30퍼센트까지 밀어 올렸고 그 폐허 위에서 나치가 권력을 잡았습니다[^Heinrich Brüning]. 금을 지키려다 민주주의를 희생했습니다.
폴라니가 거듭 강조하는 또 하나의 명제는 어떤 나라도 자기 힘만으로 역사를 만들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국가들은 스스로 변화를 일으킨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이미 진행 중인 거대한 경제·사회적 변동의 산물이자 수혜자입니다. 같은 붕괴를 두고 미국은 뉴딜로, 영국과 북유럽은 점진적 사회입법으로, 독일과 이탈리아는 파시즘으로 답했습니다. 똑같이 맷돌이 무너진 폐허 위에서 무엇을 지을 것인가는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그 사회가 내린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1930년대에 독일이 그 변화를 조작해 파시즘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는 사실을 폴라니는 특히 자세히 분석합니다.
여기서 폴라니의 가장 논쟁적인 진단이 나옵니다. 그는 파시즘을 어느 미친 지도자나 특정 민족성의 산물이 아니라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시장 사회가 낳은 보편적 반응으로 읽습니다[^The Man from Red Vienna]. 파시즘은 민주주의를 부숴 사회의 보호막을 걷어 내고 사회를 다시 시장에 강제로 복속시키는 길이었습니다. 경제를 정치에서 떼어 낸다는 자유주의의 꿈을 가장 극단적으로 실현한 형태가 역설적이게도 파시즘이었던 것입니다. 마르크스가 시장의 모순 끝에서 노동자 혁명을 보았다면 폴라니는 같은 자리에서 더 큰 가능성으로 파시즘을 보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쓸 수 있었던 데에는 붉은 빈의 기억이 있습니다. 잘 조직된 노동자들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약 16년간 사회주의 시정부를 유지하며 시장의 파괴력을 실제로 누그러뜨리는 모습을 그는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시장을 사회 안에 다시 묶어 두는 일이 환상이 아니라는 증거를 살아 본 사람이 동시에 그 실험이 파시즘의 군홧발에 무너지는 것까지 지켜본 것입니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 장은 절망이 아니라 자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폴라니는 시장 유토피아를 폐기한 뒤에야 비로소 자유를 제대로 말할 수 있다고 봅니다[^Freedom in a Complex Society (The Great Transformation, Chapter 21)]. 그는 자유를 두 층위로 나눕니다. 하나는 제도의 층위로 규제와 자유는 서로를 해치는 관계가 아니며 잘 설계된 규제는 오히려 자유의 총량을 늘린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도덕과 종교의 층위로 사회의 실재를 인정하는가의 문제입니다. 파시즘과 사회주의는 둘 다 자기조정 시장의 환상을 버리고 사회의 실재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와 갈라지지만 파시즘은 그 결론으로 자유를 내던지고 사회주의는 자유를 끝까지 붙든다는 점에서 서로 갈립니다. 그는 서구인의 의식을 이룬 세 가지 깨달음을 죽음의 인식과 자유의 인식과 사회의 인식으로 꼽으며 사회의 실재를 받아들이는 일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과제라고 적었습니다. 로버트 오언이 말한 대로 필요하고 불가피한 악을 직시하면서도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 길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복합 사회에서의 진짜 자유란 시장의 힘 앞에서의 무력함이 아니라 굶주림과 공포로부터의 자유라는 결론입니다. 맷돌을 멈추는 일이 곧 자유의 후퇴가 아니라 오히려 더 넓은 자유의 시작일 수 있다는 이 역설이 책의 마지막 음입니다.
이 책이 오늘까지 살아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것이 한 분야에 갇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2001년 판본의 서문에서 이 책을 시장 자유화의 실패를 이해하는 데 여전히 가장 중요한 저작의 하나로 꼽았고[^The Great Transformation] 경제가 사회 관계에 묻혀 있다는 그의 내재성 개념은 마크 그라노베터로 이어지는 신경제사회학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Embeddedness]. 제임스 스콧과 E.P. 톰슨의 역사 서술,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 살린스의 인류학에 이르기까지 그의 그림자가 닿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렵습니다[^The Great Transformation (book)]. 그를 붉은 빈의 사람으로 다시 불러낸 한 평자는 폴라니가 시대에 의해 세 번 입증되었다고 적기도 했습니다[^The Man from Red Vienna].
그렇다면 1944년의 이 책이 2026년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지로 넘어가 봅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맷돌이 멈춘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폴라니의 책은 출간 직후 수십 년간 인류학자들 사이에서만 조용히 읽히다가 1980년대 레이건과 대처의 시장 자유주의가 19세기의 풍경을 닮아 가면서 다시 호명되기 시작했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폭발적으로 재발견되어 2001년판 이후 처음으로 2024년에 새 판본이 나왔습니다[^The Great Transformation by Karl Polanyi is a classic critique of capitalism – but it wasn't an overnight success]. 시장화를 사회의 보호가 따라잡기 시작하는 국면을 가리켜 사람들은 '폴라니적 순간'이라고 부르는데 2008년 이후의 세계가 바로 그런 국면이라는 진단입니다[^Karl Polanyi's Great Transformation and the Countermovement to Capitalism].
허구적 상품의 세 재료는 지금도 그대로 맷돌 안에서 빻이고 있습니다. 노동은 비 오는 사거리의 라이더처럼 디지털 플랫폼이 평점과 단가로 실시간 관리하는 긱 노동의 형태로 다시 상품화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배달과 대리운전과 가사 노동이 앱 위에서 분 단위로 값이 매겨지고 거기에 더해 부동산이 삶의 터전이 아니라 자산 시장의 한 종목으로 다뤄지는 풍경은 토지의 상품화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매일 보여 줍니다. 토지는 더 넓게 보면 기후 위기라는 이름으로 청구서를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시장 사회가 지속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과 자연이라는 자기 존립의 토대를 갈아 없애기 때문이라는 폴라니의 진단이 가장 잘 들어맞는 영역이 바로 환경입니다. 화폐는 반복되는 금융위기로 자기 불안정성을 증명해 왔습니다. 이 재료들이 똑같은 속도로 갈리지는 않습니다. 한 연구는 산림 같은 토지의 보호 기준은 비교적 엄격하게 지켜진 반면 노동 기준은 자주 형해화되었음을 보이며 그 차이가 토지와 노동의 본래 성질이 아니라 감시자의 힘과 가시성과 공익이라는 명분의 차이에서 온다고 분석합니다[^Was Karl Polanyi wrong? Land, labor, and private authority in the global economy]. 무엇이 더 세게 갈리고 무엇이 덜 갈리는가는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누가 모래를 끼얹을 힘을 가졌는가의 문제라는 뜻입니다.
21세기의 맷돌은 더 빠르게 돕니다. 인공지능과 플랫폼 자본주의는 노동을 다시 잘게 쪼개 데이터 라벨링과 알고리즘 관리라는 형태로 상품화하고 한때 시장 밖에 있던 창작과 지식과 관계마저 거래 가능한 항목으로 끌어들이려 합니다. 사람의 행동과 취향과 관계가 데이터라는 이름으로 채굴되어 팔리는 지금의 풍경은 폴라니가 노동과 토지와 화폐에 대해 한 말 그대로입니다. 본래 팔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데 상품처럼 다뤄질 때 그것은 사회의 어떤 토대를 갈아 없애는가라는 물음입니다. 데이터는 노동과 토지와 화폐에 이어 맷돌에 들이밀린 네 번째 재료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동시에 사회가 모래를 끼얹는 손도 새 모양으로 등장합니다. 탄소세와 탄소 배출권 거래가 자연이라는 토지를 다시 가격의 언어로나마 사회 안에 묶으려는 시도라면 게임업계에서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공개하도록 강제한 규제는 가장 작고 구체적인 이중운동의 한 사례입니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면 사회가 부서지는 자리마다 어김없이 그것을 도로 묶으려는 손이 함께 자리잡는다는 폴라니의 그림은 규모만 다를 뿐 지금도 똑같이 작동합니다.
이중운동의 반대 축도 지금 또렷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2008년 대침체와 코로나 위기를 거치며 보호관세와 산업정책과 큰 정부와 경제 민족주의가 한꺼번에 돌아왔습니다. 자유무역의 순수한 신봉이 무너지고 각국이 공급망과 반도체와 핵심 광물을 자국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지금의 풍경은 1873년 이후 각국이 관세 장벽을 세우던 모습과 닮았습니다. 시장을 풀어 놓으려는 힘과 사회를 지키려는 힘이 다시 맞밀고 있는 것입니다. 코로나 국면을 분석한 한 글은 마스크와 백신을 둘러싼 갈등과 취약 계층에 집중된 죽음이 시장 근본주의가 사회의 실재를 부정한 대가였다고 읽으며 자기조정 시장은 그것이 상품화하려는 사회를 파괴하지 않고서는 결코 실현될 수 없다는 폴라니의 경고를 다시 불러냅니다[^Polanyi's Prescience: Covid-19, Market Utopianism, and the Reality of Society]. 폴라니가 가리킨 또 하나의 장치인 헌정주의도 지금 그대로 작동합니다. 그는 자본가 계급이 경제 영역을 다수결의 손에서 떼어 내려고 삼권분립과 사법심사와 중앙은행 독립 같은 제도를 세웠다고 보았는데 오늘날 중앙은행 독립성 논쟁과 세계무역기구나 국제통화기금을 둘러싼 다툼은 그 진단을 거의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합니다[^The Great Transformation Part 3 Summary & Analysis].
다만 이 책을 읽고 나면 마냥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그가 거듭 경고한 것은 대항운동이 늘 좋은 방향으로 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시장의 파괴 앞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지켜 줄 무언가를 외칠 때 그 외침은 사회민주주의로도 갈 수 있고 파시즘으로도 갈 수 있습니다. 2016년 이후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떠오른 브렉시트와 자국 우선주의와 강성 우파의 부상은 분명히 시장 세계화에 대한 사회의 반작용이지만 그 반작용이 향한 곳은 약자의 보호가 아니라 국경과 적의 색출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노동의 불안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이 자신을 지켜 줄 무언가를 더 집요하게 외치고 그 외침이 어디로 향하는가에 따라 한쪽에서는 복지국가가, 다른 쪽에서는 권위주의가 들어선다는 그의 분석이 가장 서늘하게 되돌아오는 대목이 바로 여기입니다. 맷돌이 멈추는 순간이 곧 해방의 순간은 아니며 그 폐허 위에서 무엇을 지을지는 여전히 우리가 매번 새로 선택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 책을 예언서처럼 보는 일은 폴라니 자신에게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를 깊이 읽은 사람들조차 그의 한계를 정직하게 지적합니다. 그가 '자본주의' 대신 '시장경제'라는 밋밋한 말을 택하면서 권력과 착취라는 자본주의의 실제 동력이 흐려졌다는 비판이 있고[^Karl Polanyi's Great Transformation and the Countermovement to Capitalism] 규제된 자본주의가 끝내 불안정하리라던 그의 예측은 전후의 긴 호황 앞에서 한 번 빗나갔습니다. 그가 집필 도중 이론을 바꿨는지 아닌지를 두고도 학자들의 해석이 갈립니다. 어떤 이들은 그가 모든 경제는 늘 사회에 내재한다는 쪽으로 옮겨 갔다고 읽고 다른 이들은 그런 전환의 문서 증거가 없으며 이 책은 비마르크스적 토대 위의 급진적 변혁 사회주의라는 그의 일관된 신념의 결정판이라고 읽습니다[^Karl Polanyi, the "always-embedded market economy," and the re-writing of The Great Transformation]. 그러니 이 책은 정답을 적어 둔 경전이 아니라 지금의 세계를 비춰 보는 진단 도구에 가깝습니다. 노동과 토지와 화폐를 상품화하는 일이 정말 불가피한지조차 다시 물어야 한다는 더 급진적인 독법도 이미 나와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 셋의 상품화를 '폴라니 매트릭스'라고 부르며 그것이 시장경제에 필수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해롭다고 주장하며 비영리 금융과 공동체 토지신탁 같은 대안을 제시합니다[^Escaping the Polanyi matrix: the impact of fictitious commodities: money, land, and labor on consumer welfare].
이 책을 다시 읽고 손에 남는 교훈을 굳이 거칠게 요약해 본다면 그것은 정답의 목록이 아니라 세 가지 보는 법에 가깝습니다. 먼저 당연해 보이는 시장의 흐름이 사실은 누군가 설계하고 누군가 돌리는 기계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그 기계가 갈아 넣는 노동과 토지와 화폐는 본래 상품이 아니어서 끝까지 갈리면 사회 자체가 부서진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회는 늘 그 기계에 모래를 끼얹어 왔고 그 모래가 어떤 모양으로 쌓이는가가 우리가 사회민주주의로 갈지 파시즘으로 갈지를 가른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가처분 시간'에서 우리의 한정된 시간이 어떻게 경쟁의 대상이 되는지 살펴본 적이 있는데 폴라니는 그보다 한 세기 앞서 시간이 아니라 노동이라는 형태로 사람 자체가 시세를 가진 물건이 되는 더 깊은 자리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도파민 전쟁'에서 다룬 주의력을 둘러싼 경쟁도 결국 사람의 내면을 새로운 시장으로 개방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같은 맷돌의 가장 최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비 오는 사거리로 돌아옵니다. 화면 속 단가가 빗줄기에 따라 오르내리는 그 풍경을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의 날씨가 아니라 누군가 설계한 맷돌이 돌아가는 소리이고 그 맷돌은 1795년 버크셔의 여관에서 처음 손잡이가 돌아간 바로 그 기계의 가장 최신 모델입니다. 이 맷돌을 멈출 수 있다고, 혹은 멈춰야 한다고 여기서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그것이 저절로 도는 자연이 아니라 사람이 돌리는 기계라는 것, 그리고 사회가 한 번도 가만히 갈려 나가기만 한 적은 없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그 앞에 선 우리도 조금은 덜 무력해질지 모릅니다. 폴라니가 80여 년 전에 남긴 가장 큰 선물은 답이 아니라 바로 그 시선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