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자들과 함께 일하기
흡연자 비율이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회사에서는 여러 흡연자 분들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어릴 때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를 타면 자리마다 재떨이가 있었고 버스 안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있었습니다. 기억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버스의 기억은 담배 연기가 쩔어 나는 후각에 집중되어 있었고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눈이 아팠습니다. 이 시대의 버스 터미널과 버스 내부는 탑승객들에게 꽤 적대적인 환경이었던 것 같은데 목적지로 가는 버스가 정차할 장소가 일관되지도 않았고 그때그때 변경되는 일정과 승차 위치는 큰 소리로 이 사실을 외치는 버스 기사님들로부터만 알 수 있어 종종 버스를 놓치거나 너무 늦게 도착해 기사님들로부터 욕을 먹기도 했습니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이리 저리 바쁘게 뛰어 다니고 또 버스 기사들이 큰 소리로 행선지를 외치고 있었으며 그 사이사이에서 담배를 문 분들이 내뿜는 연기까지 더해져 버스 터미널과 버스는 썩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흡연자의 감소는 개인적으로 느끼는 흡연 매너의 개선으로 느낄 수 있는데 이전에는 주변에 비흡연자가 있든 말든 실외이기만 하면 아무데서나 흡연하는 행동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면 시간이 지날 수록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 역 입구 같은 장소에서 흡연하는 행동은 흡연자들 사이에서도 매너 없는 행동으로 인식되곤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관점에서 흡연자 분들은 수가 적을 때는 매너 있게 행동하지만 한 곳에 여러 사람이 모이면 행동이 달라지곤 합니다.
삼성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건물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회사 건물 바로 옆 골목은 흡연의 메카라 불릴 만 했습니다. 일대 반경 수 백 미터 안에 있는 회사의 흡연자들이 모두 그 골목으로 몰려와 담배를 피웠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회사 건물과 가까이 있는 아주 큰 사거리의 대각선 반대쪽에 있는 대형 빌딩에서 일하는 분들도 흡연을 위해 이곳까지 걸어온다고 하며 이들은 이 골목을 ‘사우나’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아마도 골목 전체가 과장 없이 항상 연기로 자욱했기 때문에 생긴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골목에 모인 분들은 미디어에서 보도하던 점점 나아지는 흡연 매너와는 거리가 있는 행동을 보이곤 했는데 일단 공초를 그 자리에 그냥 버리는 데서 시작해 골목이 항상 젖어 있을 정도로 침을 뱉었고 마시던 커피를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사라졌습니다. 건물 옆에 한 줄로 쭉 서서 길 가운데를 바라보며 흡연을 한 덕분에 길 전체가 별로 접근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 됩니다. 회사에서 고용한 분이 이 거리를 계속해서 청소했는데 한 번 청소할 때마다 50리터 쓰레기봉투를 가득 채우는 쓰레기가 나오는 모습을 자주 봤습니다. 직접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강남구 보건소의 어떤 행정 착오로 인해 주변에서 오직 이 골목만이 금연구역으로 설정되지 않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흡연자들이 이 골목으로 모여들며 생긴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주변 건물로부터 민원이 엄청나게 쏟아졌고 얼마 후 이 골목 역시 금연구역으로 지정되며 삼성동 사우나의 역사는 막을 내립니다.
더 이전 시대에는 강남역 가까이에 새로 지은 아주 큰 건물에서 일했는데 건물 전체는 금연구역이었고 흡연 하려면 반드시 건물 밖으로 나가 건물 뒤편에 있는 흡연구역까지 가야만 했습니다. 누군가가 같은 층에 있는 회의실 하나를 흡연공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환기 시설이 없는 회의실은 순식간에 공간에 있는 공기를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고 회의실 안에 비치된 모든 집기가 누래졌습니다. 하지만 흡연하던 높은 분들은 이 회의실에 모여 이야기하기를 즐겼고 이 회의실에서 회의를 하다 보면 어지럽고 눈이 아프며 목이 빨리 쉬곤 했습니다. 나중에 회사가 다른 곳으로 이사 갈 때 건물 관리주체에게 이 방을 복구하는데 꽤 큰 비용을 지불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대중교통 안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됐고 또 공공장소 대부분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흡연 하는 사람들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지난 2021년까지 성별 및 연령집단별 현재흡연율을 찾아보니 2021년에도 19세 이상 응답자 중 흡연자는 약 19%로 파악되며 회사에서 주로 만나게 되는 30대, 40대 인구의 약 19%, 약 22% 정도가 흡연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또한 성별에 따른 고용률을 살펴보면 2021년 기준 여성은 약 53%, 남성은 약 72% 정도가 고용된 것으로 나타나 우리들이 회사에서 마주치는 흡연자의 상당수가 남성일 것 같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흡연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흡연의 효과에 대한 연구가 널리 알려졌을 뿐 아니라 담배 가격 인상, 흡연구역 축소 같은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흡연 인구가 줄어들고는 있지만 여전히 주변에서 흡연하시는 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흡연자들과 함께 일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일을 처음 시작할 무렵에는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들과 최대한 가깝게 지내고 또 제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말하기 편하고 밝고 활기찬 좋은 사람으로 알려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몰려 다닐 때 최대한 따라 다니며 함께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회사에 흡연자가 훨씬 더 많던 시대에는 매 시간마다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나 엘리베이터를 향해 몰려 나갔고 이 모임에 끼지 못하면 팀의 인간관계로부터 소외당할 수 있다는 걱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흡연하지는 않지만 같이 바람이나 쐬러 나가자며 함께 나갔는데 과연 사람들은 흡연공간에서 온갖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사무실 안에서는 잘 하지 않던 불평을 흡연하는 동안에는 자연스럽게 하곤 했고 흡연공간에 모인 여러 다른 부서 사람들과 만나며 나름 고급 정보가 유통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댓가로 옷에서는 항상 담배 냄새가 났고 나갔다 들어오면 업무에 대한 집중은 완전히 깨졌으며 코끝에서 담배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고 담배를 만지지도 않았지만 손은 끈적거고 머리가 아팠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회사 생활을 할 때 모든 사람들과 친할 필요가 없으며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도 없고 그러기도 불가능하며 모든 이야기를 알아야 할 필요도 없고 제가 알 필요 없는 이야기를 더 많이 들을 수록 정신적으로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사실을 천천히 깨달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흡연 모임에 끼지 않아도 더 이상 소외된다는 느낌을 받지 않기 시작했고 그들 사이에만 오간다고 생각한 고급 정보란 사실 가십에 가까우며 본인에게 직접 듣거나 제대로 된 경로를 통해 접하지 않은 이상 함부로 신뢰할 수 없는 잡음에 가까운 정보라는 사실 역시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더 이상 옷에서 담배 냄새가 나지 않게 됐고 손이 끈적거리지도 않게 됐으며 두통을 겪지도 않게 됐습니다. 업무에 계속해서 집중할 수 있어 생산성이 올라간 것은 덤인데 덕분에 종종 불필요한 초과노동을 기피해 중간관리자로부터 나쁜 평가를 받아 닌자 퇴근술을 갈고 닦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편 현대에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보다 안 피우는 사람이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앞에 인용한 통계에서 보듯 이제 회사에서 만날 수 있는 흡연자는 19세 이상 인구의 약 20% 수준이며 성별에 따른 고용률 차이를 감안하면 이보다 좀 더 많은 비율이 흡연하는 것 같지만 이전 시대에 비해서는 드라마틱하게 감소한 숫자입니다. 스스로도 그 모임에 낄 필요를 느끼지 않고 모임에 끼지 않음으로써 일어날 수도 있는 정보 습득 기회의 감소를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게 됩니다. 그러면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 상황이 생산성을 올리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먼저 중간에 흡연을 위해 자리를 떠날 필요가 없어 한 가지 일에 더 길게 집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생각의 멱살에서 소개한 대로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들만큼 집중 상태를 잘 유지하고 집중 대상을 잘 통제할 수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을 계속해 오면서 지난 뉴스레터 20주 리뷰 (2)에서 소개한 것처럼 제가 낼 수 있는 집중력의 한계 안에서 같은 생각을 길고 깊게 유지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규모가 큰 과업을 아주 작은 세부 목표들로 나눠 이들 하나하나를 관리하며 결국 큰 과업을 완수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실천하게 됩니다. 덕분에 연속으로 긴 시간을 할애해 업무할 수 있게 됐고 명백히 경쟁력 있는 생산성을 유지하게 됐습니다.
근본적으로 긴 회의는 뭔가 일이 잘못 되어 가고 있다는 신호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 긴 회의나 연속된 회의를 아예 피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 비슷한 멤버 구성으로 긴 회의나 연속된 서로 다른 회의를 하다 보면 흡연 하는 분들은 긴 시간동안 회의에 집중하고 또 회의에 머무르며 서로 다른 주제 사이에 정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들은 일정 시간마다 밖에 나가야 하고 또 밖에 나가지 않은 채 시간이 길어지면 집중력을 잃어 의미 있는 판단을 하지 못하거나 판단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는 등의 행동을 보이곤 했는데 덕분에 누가 흡연자인지 파악하고 있으면 회의 후반으로 갈수록 저 자신에게, 우리들에게 더 의미 있는 결론을 이끌어내기 훨씬 쉬워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 흡연자들이 밖에 나간 사이에 이전에 이야기하던 주제를 정리하고 다음에 이야기할 주제를 예습할 수 있어 시작부터 주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을 수 있어 큰 도움이 됐습니다.
물론 흡연에는 장점도 있습니다. 높은 스트레스를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고 또 함께 나간 사람들과 함께 느슨한 부서와 직급 경계 속에 사무실 안에서보다는 좀 더 터 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 보입니다. 또한 앞에서 한 번 부정하기는 했지만 이 안에서 회사 내외의 고급 정보가 유통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일정 시간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다닌 다음 자리에 돌아오므로 계속해서 자리에 앉아 있어 발생하는 여러 가지 건강 문제를 완화할 수 있습니다. 또 자주 밖에 나가므로 날씨가 변덕스러운 날 가장 최신의 바깥 날씨를 파악할 수도 있는데 점심 먹으러 나가기 전에 창밖을 내다보는 대신 가장 최근에 나갔다 온 흡연자에게 바깥 날씨를 묻는 것이 훨씬 더 유효합니다. 이런 장점을 얻지 못함으로써 잃은 기회가 분명 적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시간이 흐르며 흡연자와 비흡연자 사이에 어떤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을 관리자 입장에서 제어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가령 어떤 정보를 흡연자들 끼리만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정보 우위를 사용하려고 하는 시도가 일어날 때가 있는데 앞에서 이야기했다시피 출처가 불분명한 정보는 정보가 아니라 가십에 가까우며 함부로 이에 기반해 의사결정을 해서는 안됩니다. 또 처음에 저 자신이 그 커뮤니티에 끼지 앉아 두려워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에도 처음 일을 시작하시는 분들이 같은 두려움을 가질 수 있는데 그럴 필요가 없음을 명백히 선언해 두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미 결정된 사안에 대한 불만이나 대안이 공식 회의 자리가 아니라 흡연 공간에서 한정된 사람들 사이의 대화를 통해 나왔다면 이를 함부로 받아들여서도 안됩니다. 업무는 업무공간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사적인 자리에서 한정된 인원 사이에 일어난 의사결정을 함부로 받아들이면 팀 내 커뮤니티의 단절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론. 과거에서 현재에 가까워질 수록 흡연자 수는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지만 회사에서 주로 만나는 연령대의 사람, 그리고 성별에 따른 고용률 차이를 감안하면 여전히 회사에는 아주 많은 흡연자들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에는 이들의 모임에 끼지 못하는 상황을 두려워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천천히, 그리고 고통스럽게 깨달았습니다. 비흡연자 입장에서 흡연자들과 일할 때 생산성, 집중도 따위에 강점을 가지지만 한편 한 자리에 너무 오래 앉아 있어 생기는 건강 상의 문제를 얻을 위험이 높은 것도 사실입니다. 관리자 관점에서는 흡연자 모임에서 비공식적으로 논의된 사안이 팀에 공식적인 의견으로 변하지 않도록 주의 깊게 관리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