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게임으로 의사결정 하면 안돼요

게임 구성요소는 핵심 메커닉에 기반해 설계해야 하지만 아직 핵심 메커닉이 확실하지 않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무의미한 시나리오에 기반한 논쟁은 피해야 합니다.

없는 게임으로 의사결정 하면 안돼요

이전 인벤토리 인터페이스 설계 철학왜 인벤토리에 전체화면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려고 하나요?에서 인벤토리 모양을 결정하는 의사결정 방법을 설명했습니다. 사실 비슷한 이야기를 여러 글에 걸쳐 한 것 같은데 이 주제를 여러 번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게임의 인터페이스를 고안하는 의사결정이 실제 인터페이스의 필요에 따르지 않고 그 시대의 유행이나 어떤 개인의 취향을 따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의사결정 방법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우리들은 스폰서가 원하는 게임 개발을 대행하는 역할을 할 뿐 우리들이 원하는 모양의 게임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용도와 의도에 맞는 의사결정을 하지 않으면 의사결정을 하는 시점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잘못된 의사결정의 결과가 게임에 적용된 상태로 개발을 계속하다 보면 이전의 잘못된 의사결정의 영향을 받아 점점 더 이상한 의사결정을 반복하게 될 수 있습니다. 가장 나쁘고 위험한 점은 뒤에 가서 하는 더 이상한 의사결정들은 이전에 수행한 첫 번째 잘못된 의사결정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기 어렵다는 겁니다. 앞서 의사결정에 참여한 사람들이 팀을 떠나기도 하고 기록을 제대로 남기지 않기도 하며 스스로 의사결정의 기억을 잊어버리면서 팀은 과거에 일어난 이상한 의사결정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지금 당장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해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는 하겠지만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번은 모바일 MMO 게임을 만드는데 참여했는데 극 초반에 프로토타입을 만들면서 아무 생각 없이 인벤토리를 팝업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때는 아직 이 MMO가 어떤 게임이 될 지 잘 몰랐습니다. 리더십은 개발팀을 세팅하는 사이에 경영진을 대상으로 한 소위 비전 피티를 준비하는 중이었고 나머지는 우리들이 여느 잘 세팅 된 개발팀처럼 길지 않은 시간 안에 꽤 괜찮은 빌드를 개발해낼 역량이 있음을 경영진에게 빌드를 통해 증명해 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게임에 맞는 메커닉을 선택하고 여기 맞는 인터페이스를 고안하기 보다는 그 시대에 가장 괜찮아 보이는 게임 또는 가장 큰 경제적 성과를 달성하고 있는 게임의 인터페이스를 거의 무지성으로 복제했는데 이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팝업 모양의 인벤토리 인터페이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