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소비 회고
2023년도 가계부를 뒤져 15만원 이상 지출한 항목들을 모아 살펴봤습니다. 성공한 것도 있지만 실패한 것도 두 개나 됩니다.
지난해에는 2022년 소비 회고를 했었습니다. 작년 규칙은 가계부에서 2022년 1월부터 12월 사이에 한 번에 10만원 이상 지출한 항목을 나열한 다음 이들 중 이야기할 만한 항목을 찾아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같은 요령으로 2023년 1월부터 12월 사이에 지출한 항목을 나열한 다음 살펴볼 작정이기는 한데 물가 상승을 고려해 작년의 10만원 대신 이번에는 15만원 이상 지출한 항목을 나열한 다음 소개할 만한 항목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또 이번에는 이전 소비 회고가 있으니 이전과 비교해 뭔가 달라진 점이나 비슷한 점이 있는지도 알아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고로 가계부는 여전히 후잉가계부를 사용하고 있고 2050년까지 쓸 수 있습니다. :)
아이폰 14 프로: 지금 쓰고 있는 폰을 1년 전에 구입했습니다. 이전에는 아이폰 11 프로를 사용했는데 굳이 더 비싼 폰을 사용한 이유는 망원렌즈와 광각렌즈가 한 기계에 붙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즐겨 찍지 않지만 종종 망원과 광각을 변환해 가며 재미 있는 사진을 만들 수 있는 점이 좋았는데 이 점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쉬워 상당한 차액 지불을 감수하고 더 비싼 아이폰을 써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3년 만의 아이폰 변경은 딱히 변경이 절실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아이폰 11 프로도 훌륭하게 동작했고 이보다 더 빠른 성능은 딱히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1년 쯤 더 사용한 다음 천천히 생각할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폰 12부터 더 빠른 프로세서에 의해 제공되는 마스크를 쓴 채로 페이스아이디를 언락할 수 있는 기능은 다른 모든 기능이 이전과 비슷해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음에도 아이폰 교체를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지하철에서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지만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입장에서 마스크를 쓴 채로 페이스아이디를 언락할 수 있고 또 아무 방향으로나 얼굴을 들이대도 언락된다는 점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고작 이걸 위해 그 엄청난 비용을 지출했지만 이 정도면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합니다.
후잉가계부: 이제 몇 년 째 사용하고 있는 건지 잘 세기도 어려울 정도로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는 유료 가계부 서비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가계부의 기록 방식과 자회의 편의성, 그리고 장기간에 걸친 지원 등이 마음에 들어 유료 가계부임에도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종종 이 서비스를 다른 분들께 추천하면 다른 대기업에서 만든 서비스가 더 우월하다는 점을 들어 후잉가계부 사용을 거절하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대기업에서 만든 서비스는 카드사와 연동해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알아서 기록되고 카테고리 설정도 자동화 되어 나중에 자동으로 기록된 가계부를 설펴보고 틀린 점을 정리하면 되는 수준인데 비해 후잉가계부는 여전히 항목을 하나하나 기입해야 하고 기초적인 카테고리 추측 기능을 사용하는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기업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는 가계부 자체가 핵심이 아닌 이상 회사 사정 변화에 따라 서비스가 사라지거나 이전과는 성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큰 회사일 수록 서비스를 더 오래 유지할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후잉가계부를 소개했지만 이를 거절하신 어떤 분이 사용하시던 대기업의 가계부 서비스는 어느 날 CSV 익스포트 기능을 남긴 채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후잉가계부는 다른 가계부 서비스들이 나타나고 사라짐에 관계 없이 계속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여전히 훌륭하게 유지보수 되고 있습니다.
새 키보드: 앞의 두 가지가 나름 성공적이었다면 이건 실패한 지출로 평가합니다. 애플 M0110 키보드와 비슷한 모양으로 현대의 컴퓨터에도 잘 붙도록 만든 제품으로 일단 클래식한 모양이 마음에 들어 깊이 생각하지 않고 냅다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일단 12월에 주문한 제품이 6월에 도착한 것은 둘째 치고 이 키보드는 보기에 훌륭했지만 실제로 사용하기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아주 오랫동안 해피해킹키보드 한 종류만 사용하며 키보드에 아무 관심도 안 가지고 살다 보니 스페이스키 길이의 차이를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해피해킹키보드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던 한영전환 키와 이에 맞춰진 스페이스키의 길이는 다른 키 6.25개 너비였습니다.
이를 고려해 새 키보드를 주문할 때 옵션을 잘 선택했어야 했는데 아무 생각 없이 키 모양만 보고 선택했다가 해피해킹키보드의 6.25개 길이의 스페이스키 대신 7개 길이의 스페이스키가 달린 키보드가 도착했고 처음 두어 주 동안은 한영전환을 한다고 스페이스키 오른쪽 끝을 눌러 상당히 고통스러웠습니다. 또 해피해킹키보드에서 당연히 지원하던 여러 키를 겹쳐 누르기를 반복하더라도 이전에 누른 키가 여전히 계속해서 눌린 상태로 인식되어 여러 단축키 조합을 연달아 누를 때 특수키를 새로 누를 필요가 없던데 비해 이 키보드는 단축키 조합을 연달아 누를 때 특수키를 새로 눌러야만 해서 굉장히 불편했습니다. 이 키보드는 주문 제작이라 해피해킹키보드보다 더 비싸다는 점을 고려하면 굉장히 실망스러웠습니다.
고스트 호스팅 버전: 이전에는 블로그 호스팅에 워드프레스를 사용하다가 뉴스레터를 시작할 결정을 하면서 뉴스레터 기능이 플러그인 모양이 아닌 핵심 기능으로 제공하는 고스트 호스팅 버전을 구입했습니다. 연간 비용을 고려하면 워드프레스나 고스트 양쪽 모두 가격이 비슷한데 플러그인을 통한 기능 확장을 고려하면 고스트가 어처구니 없이 기능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워드프레스가 글을 쓰고 공유하려는 핵심 목적에 비해 지나치게 복잡하다고 생각했다면 고스트는 꽤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훨씬 저렴한 기본 버전을 사용할 수도 있는데 기본 버전과 스탠다드 버전 사이에 가장 큰 차이는 외부 자동화 지원 여부입니다. IFTTT, Zapier 같은 도구를 사용해 글을 쓰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올리거나 달력에 등록하거나 다른 곳에 쓴 글을 자동으로 가져오거나 수정하거나 알림을 보내는 등 다양한 자동화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데 이 기능 하나하나를 생각하면 고작 여기에 비싼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 올바른가 싶지만 일단 자동화를 구축해 당연히 동작하기 시작하면 이를 통해 시간과 생각을 상당히 절약할 수 있습니다. 또 직접 호스팅 해서 비용을 낮출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뉴스레터를 메일로 전송하기 위해 별도 이메일 전송 서비스에 가입하면 결국 비슷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뉴스레터 기능을 사용할 작정이라면 직접 호스팅 하기 보다는 고스트 호스팅을 사용하는 편을 추천합니다.
큰 모니터: 이전에는 27인치 FHD 모니터 두 대를 아주 오랫동안 사용해 왔는데 세월이 흘렀지만 모니터는 여전히 너무나 멀쩡히 동작했습니다. 모니터는 변하지 않았지만 그 모니터를 통해 보여지는 운영체제와 여러 소프트웨어 환경은 변화해 같은 해상도가 점점 더 좁게 느껴지는 신기한 일이 일어났고 어느 순간 세로 해상도가 훨씬 큰 모니터로 넘어갈 때가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한참이나 가로 세로 길이가 거의 같은 모니터를 살까 말까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모니터로 게임도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특이한 모양의 모니터를 구입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대신 4K 해상도에 모니터 암을 포함한 32UN880이라는 모델을 선택합니다.
사실 같은 크기, 같은 해상도의 다른 모니터에 비해 압도적으로 비쌌는데 일단 암이 기본으로 달려 있고 화질이 훌륭하다는 점 때문에 가성비 대신 비싼 모니터를 골랐습니다. 모니터 자체에 대한 불만은 거의 없습니다. 암은 훌륭하게 동작하고 모니터 자체 역시 불만이 없습니다. 다만 내장 스피커가 너무나 끔찍해 게임 사운드는 로지 독을 통해 듣고 있긴 합니다.
EmEditor: 오픈서치로 시작한 임시변통 로그 집계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커다란 CSV 파일을 다뤄야 했습니다. 먼 과거에는 비슷한 작업을 하기 위해 CSV 파일을 로컬에서 직접 조회하는 Log Parser라는 도구를 사용했고 이 도구는 오랜 세월 동안 업데이트 되지 않았지만 현대에도 여전히 잘 동작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에 비해 조회해야 하는 로그 크기는 훨씬 커졌고 무식하게 텍스트 파일을 직접 조회하는 방법은 올바르지 않을 것 같았을 뿐 아니라 분명 더 나은 도구가 있을 거라고 추측했습니다. 핵심은 로그를 오픈서치에 적재했는데 이 환경은 로그를 적재하는데는 적절했지만 로그를 조회하는 데는 전혀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검색엔진 환경은 ‘대강 비슷한’ 결과를 순식간에 돌려줬지만 로그를 조회하는 입장에서는 ‘정확한’ 결과가 필요했고 여기에 시간을 쓸 수 있었지만 오픈서치는 시간을 더 써서 정확한 결과를 가져오기 어려웠습니다.
고민 끝에 적재는 그대로 하고 그 로그를 CSV 모양으로 받아 다시 별도로 구축한 MySQL 서버에 넣은 다음 정확한 결과를 가져올 생각이었는데 이를 위해서는 오픈서치에서 덤프한 거대한 CSV 파일을 다뤄야만 했습니다. 알고 보니 과거에 Log Parser 가지고 빌빌거리던 시대에도 이미 거대한 CSV 파일을 엄청나게 잘 다루는 EmEditor라는 소프트웨어가 있었고 이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업데이트 되고 있을 뿐 아니라 성능도 계속해서 개선되고 있었습니다. EmEditor 단독으로 CSV 파일을 가공하고 조회할 수 있지만 조회 기능은 본격적으로 사용하기에는 한참 부족함이 있어 거대한 CSV 파일을 가공하는데만 사용하고 실제 조회는 MySQL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어쟀든 거대한 CSV 파일을 아주 빨리 가공하는데 훌륭합니다. 대신 그 역할만 시키기에는 가격이 엄청나게 비쌉니다.
아이폰 통화녹음기 magmo pro: 아이폰 통화 녹음 장치인 magmo 이전 버전을 사용해 왔습니다. 아이폰 뒤에 붙인 다음 통화를 시작할 때 켰다가 통화가 끝나면 끄는 아주 간단한 기계였지만 무슨 말을 했었는지 기록하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습관적으로 통화 때마다 기기를 조작해야 하고 파일을 꺼내려면 별도로 기계에 연결해야 하며 충전 역시 유선으로만 할 수 있는 온갖 단점으로 가득한 기계였지만 서버를 경유하거나 블루투스 통화장치를 페어링 해야 하는 등의 귀찮은 작업 없이 통화 녹음을 할 수 있어 불편하지만 단순함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 기계의 새 버전이 나왔고 이번에는 통화 시작과 종료에 맞춰 녹음이 자동으로 시작되고 끝난다길래 또 냅다 샀는데 이번에는 그리 훌륭하지 않았습니다. 광고한 대로 통화 시작과 종료에 맞춰 녹음이 시작되고 종료되지만 이를 위해 블루투스를 페어링 해야 하는데 여기까지는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페어링을 유지하는 동안 배터리 소모가 너무 빨라 대기시간이 어처구니 없이 짧고 그럼에도 여전히 유선으로만 충전할 수 있으면서도 아이폰 뒤에 붙어 있어 아이폰을 무선 충전할 수도 없는 이상한 상태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결국 이 장치로 자동 통화녹음 대기를 원활하게 하려면 아이폰에도, 이 장치에도 유선 충전을 위해 선 두 개를 꽂아야 하는 괴상한 모양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전에는 아이폰의 진동을 통해 녹음하던데 비해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마이크를 사용하는데 신호 처리 관련 기능이 전혀 없어 소음을 더 많이 넣고 송수신음을 비슷하게 만들거나 소음을 줄이고 수신음이 더 커지는 문제를 안고 가거나의 설정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제는 SKT 사용자에 한해 A-Dot 앱이 너무나도 예술적으로 통화녹음을 잘 해 주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이 장치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2023년에는 작년과 비교해 후잉가계부, EmEditor 같은 소프트웨어를 구입하는데 큰 돈을 사용했는데 후잉가계부는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잘 사용하고 있었으니 딱히 생각할 여지가 없지만 EmEditor는 과연 이런 용도에 제한적으로 사용할 소프트웨어에 이렇게 큰 금액을 지출해도 괜찮은가 싶어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CSV 파일을 GUI 기반에서 이렇게 빨리 처리하는 다른 솔루션을 발견하지 못했고 이 소프트웨어가 아니었으면 굉장히 원시적이고 실수하기 쉽고 느린 방법을 사용해 거대한 CSV 파일을 핸들링하거나 아예 클래식하게 Log Parser를 사용했을른지도 모릅니다. 별로 행복한 전개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소프트웨어 덕분에 MySQL로 쉽게 옮겨 간 다음 로그를 편안하게 조회할 수 있었습니다. 또 에디터 자체에서 다양한 CSV 가공 기능을 제공해 거대한 CSV를 입맛에 맞게 순식간에 편집할 수 있어 사용 범위를 조금씩 늘려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새 키보드와 새 아이폰 통화 녹음장치는 들인 큰 돈에 비해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키보드는 팔까도 생각해 봤는데 커스텀으로 밀축을 붙여 놔서 이런 키보드를 아무도 사용하지 않을 것 같아 팔기도 어렵고 매그모 역시 이런 장치를 팔 수도 없을 것 같아 난처합니다. 어쩌면 필요한 분이 계시면 그냥 드리는 편이 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2023년도에 큰 돈을 들인 물건은 이 정도입니다. 대체로 나쁘지 않았지만 두 가지나 멸망했기 때문에 내년에는 더 열심히 일해서 이렇게 낭비한 돈을 벌어야 하게 됐습니다. 자. 그러면 소비 회고는 여기서 마치고 또 1년이 지난 다음에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