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한달

원하지 않게 인생에 두 번째 백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오히려 다행입니다.

백수 한달

지난 권고사직 이후 백수가 됐습니다. 사실 한 달 이상 백수로 지낸 기간이 평생에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오래 전 프로젝트가 터지던 날 이후 게임 업계의 고용 형태는 프로젝트 단위 계약직에 가깝습니다에 설명한 것처럼 회사에서는 최소 인원을 재배치 했지만 그렇지 않은 인원들은 거의 3일에 한 명 씩 팀과 회사를 떠났습니다. 이 과정은 으로도 출판되어 경영진 관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볼 수도 있는데 당시 팀에 속한 입장에서는 갑자기 프로젝트의 핵심 리더십들이 모두 사라지고 정신 차려 보니 팀을 떠나는 분들과 프로젝트 안에서 커피 타임을 하며 이들을 다독여 줄 사람이 저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좀 넘는 기간에 걸쳐 수 십 명 - 과장이 아님 - 과 커피 타임을 하며 이들을 떠나 보내고 제 스스로도 그들의 감정을 받아내며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옆에 있던 다른 팀으로 재배치 받게 되는데 이 때 재배치 될 부서의 PD님과 제 이력서를 놓고 다시 면접을 보며 이 분으로부터 ‘이건 불운한 이력서다’ 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영원히 출시되지 않을 것 같은 프로젝트를 떠나 새로운 시도를 한 것 까지는 좋았으나 그 시도가 이렇게 회사에 큰 영향을 끼칠 만큼 장렬히 실패하며 결국 이력서에 실패한 또 다른 이력 한 줄을 추가하게 되었으니 불운하다는 말을 들어도 크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게임 만드는 사람의 이력서는 출시에 도달하고 라이브를 하며 고객을 만나 평가 받는 기록으로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 년에 걸쳐 출시작이 없는 이력서는 이런 이력이 비록 자기 자신의 잘못 만은 아닐지라도 결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나름 대로는 그때그때 주어진 정보에 기반해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결국 이력서에는 몇 년에 걸쳐 아무 것도 출시하지 못한 기록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