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에게 총을 쏠 수 있나요

민간인에게 총을 쏠 수 있나요

지난 주에 파크라이 6을 시작했습니다. 개인적으로 1인칭 롤플레잉을 좋아하는데 굳이 1인칭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카메라 앞에 사람이 얼쩡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게 저 자신이더라도 걸리적 거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게임이 나온 지 시간이 좀 지났지만 굳이 나온 즉시 풀 프라이스를 지불하고 플레이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기다렸고 스팀에서 충분히 납득할 만한 가격으로 할인하기에 바로 구입해서 시작했습니다.

일단 저는 이전에 트로피코에 이입해서 플레이 하던 사람이라서 그런지 엘 프레지덴테에 대항하는 게릴라라는 설정에 잘 이입할 수 없었습니다. 시작하자마자 엘 프레지덴테의 군대가 죄 없는 민간인들을 죽이는 장면을 보여주며 그들의 이미지를 제게 주입하려고 하지만요. 제 입장에서 엘 프레지덴테는 섬을 운영하고 잘 먹고 잘 살며 주민들을 보살펴 주시는 분인데 난데없이 그 분이 총을 들고 나타나 나쁜 말을 서슴치 않고 하는 모습을 보고 트로피코를 플레이 하는 저와 파크라이를 플레이 하는 저를 분리해야만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파크라이는 3 이후 부침이 좀 있었지만 모던 파크라이를 5, 뉴던 정도로 보면 개인적으로 5가 더 마음에 들고 파크라이 뉴던은 형편 없다고 평가합니다. 근본적으로 총 쏘며 성장하되 그 성장이 여느 롤플레잉 처럼 사람과 아이템에 집중하기 보다는 경험할 수 있는 컨텐츠가 늘어나고 또 세력이 넓어지는 게임이던 이전 파크라이를 비슷하기는 하지만 쓰레기 줍는 게임인 뉴던으로 만들어놨기 때문입니다. 파크라이 6은 겉보기에는 5와 비슷해 보이지만 뉴던의 고약한 요소를 가져와 총 쏘는 사이사이에 쓰레기 줍는 게임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상자에서 나오는 조각 보상을 확정 보상으로 바꿔 느낌이 뉴던 만큼 나쁘지는 않습니다. 배경이 마음에 들어 한동안 플레이 하겠지만 쓰레기를 주울 때마다 ‘거지같은 뉴던’을 읊조릴 겁니다.

한편 사람을 죽이는 게임의 윤리에 대해 히트맨의 페이션트 원 미션 이후 오랜만에 생각해 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총 쏘는 게임 대부분에 군인이나 좀비가 나오는 이유는 그런 설정이 총을 쏘기에 적당해서 이기도 하지만 좀비와 군인은 사람들의 윤리와 도덕적 경고등을 켜지 않고서 사람처럼 생긴 상대에게 총을 쏘고 칼을 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파크라이 5에서 상대해야 하는 사람들은 비록 좀비도 아니고 또 적 진영의 정규군이나 특수부대도 아니지만 블리스(마약?)를 먹고 맛이 간 광신도들이라 사람 처럼 생긴 것에 총을 쏴도 기분이 크게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파크라이 뉴던이나 파크라이 6에서는 비록 상대가 적대적이기는 하지만 정규군도 아니고 좀비도 아닌 그냥 사람입니다. 특히 파크라이 6의 상대는 독재정권의 군대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좀비가 아닌 사람입니다. 특히 그 군인들 중에는 게릴라에게 돈을 받고 정보를 흘리며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다는 설정도 있어 군복을 입었지만 사람들에게 총을 쏘기에 상당히 불편합니다.

게다가 어떤 시설에는 게임 내 설정에 등장하는 화학물질에 노출되어 맛이 간 채로 침대에 누워 있는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에게 총을 쏘면 ‘비무장 민간인을 쏘지 마십시오’라는 메시지가 나타납니다. 아니. 얘들 군복 입었는데 비무장은 그렇다 치고 민간인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구분하라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 뭘 믿고 확인 사살을 안 하죠? 게임이 군복 입은 사람을 쏘지 말라고 경고하기에 어쩔 수 없이 웬만하면 총 대신 마체테를 휘두르고 있습니다.

이건 게임이고 게임 안에서 설정에 따라 사람에게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며 그 결과로 게임 속 상대는 죽게 됩니다. 현실과 차이는 현실에서는 실제 인간이 죽고 도덕, 윤리적으로 그릇된 일이며 불법이기 때문에 그에 마땅한 처벌을 받게 되고요. 이런 현실의 기준을 게임에 가져오면 게임 안에서 아무도 죽일 수 없는 상태가 되는데 이를 완화하는 장치가 바로 상대를 군복을 입은 정규군, 특수부대, 테러리스트, 괴물, 좀비 등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군인들은 처음부터 그 옷을 입는 순간 서로 직업적으로 상대를 죽이거나 죽임 당할 수 있다는 실제 세계에서와 같은 규칙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해 게임 속에서 그들에게 총을 쏠 수 있습니다. 특히 괴물이나 좀비는 사람과 비슷하게 행동하지만 이들은 근본적으로 사람이 아니며 실제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현실에 비해 훨씬 느슨한 윤리, 도덕적 기준을 적용해 이들에게 총을 쏘면서도 마음이 훨씬 덜 불편합니다.

현대에는 게임 속에서 사람을 죽여야 할 때 그 사람을 현실적이지 않은 모양으로 표현해 살인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더 많은 게임이 이전 시대에 비해 훨씬 더 현실적인 살인 묘사를 하는데 꽤 집중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총을 쏘지 말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마체테를 휘두른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했지만 마체테를 휘두를 때 종종 칼을 머리 꼭대기부터 꽂아 넣는 묘사가 나오는데 이는 마치 존윅 2에서 같은 위치와 방향에 총알을 꽂아 넣는 장면과도 비슷하지만 존윅 시리즈의 장르가 실은 코미디라는 점을 감안하면 파크라이 6의 묘사가 훨씬 더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사람에게 총을 쏘는 모든 게임의 상대가 군인, 괴물, 좀비여서는 다양하지 않은 설정으로 모든 게임이 똑같이 재미 없어질 겁니다. 그나마 앞에서 언급한 히트맨, 파크라이 등에는 멀쩡한 민간인을 죽이지 않고 퀘스트르르 클리어 할 수 있는 선택을 제공하기도 하고 일단 총을 쏘는 순간부터 게임이 플레이어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식으로 게임 모드를 바꾸면서도 가벼운 처벌을 가하는 식으로 이런 문제를 완화하고 있기도 해서 앞으로 이런 문제를 여러 게임이 다양하게 접근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재미 있을 겁니다.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게임을 하며 게임 속 상대를 죽일 때 어떤 느낌을 받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이번 주에도 다섯 가지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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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튼 연타와 현대 게임의 백섭
1년 넘게 주중에는 샐러드로 식단을 좀 관리하고 주말에는 흥청망청 먹기를 반복하면서 점심 시간이 되면 우진님은 원래 따로 먹는 걸 알고 계신 다른 분들은 알아서 저를 버려 두고 점심을 드시러 떠납니다. 그러다가 지난번 시차 적응 이벤트로 두 주 정도 한국 표준시에서 -17시간 정도 차이 나는 시간대에 맞춰 일했더니 일정이 끝난 다음

그럼 다음 시간에 뵈어요~